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혁명의 조건

신봉승 지음 | 선
혁명의 조건

신봉승 지음

선 / 2012년 10월 / 488쪽 / 14,500원





비 내리는 위화도

하늘에 구멍이 뚫리지 않고서야 이렇게 쏟아질 수가 있나. 이성계는 벌써 며칠째 중얼거리기만 할 뿐, 그야말로 천지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성계. 삼남지방을 침공한 왜구의 무리라면 그 수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섬멸, 격퇴하였던 용장이라, 그의 용장됨은 고려 왕국 구석구석까지 인지되어 있지만, 억수 같은 폭우를 쏟아붓고 있는 하늘의 시새움 앞에서는 그 역시 일개 범부에 불과할 뿐이다.압록강 하구에 떠 있는 위화도는 이미 강물에 잠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명나라를 쳐야 한다는 정명론에 휘말리어 본의 아니게 개경을 떠나 위화도에 진을 친 이성계 휘하의 병력 3만도 위화도가 범람하고서는 살아날 방도가 없다. 천하의 명장 이성계이지만 3만여 명의 대군이 수장될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몰린 지금 아무 대책도 세울 수 없는 무력함이 야속할 따름이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장대비가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이성계는 3만여 휘하 장병들의 안위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위화도란 대체 어떤 곳인가. 평안북도 의주군 위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압록강 하구에 떠 있는 섬, 위화도는 길이 9킬로미터, 평균 너비 1.4킬로미터, 주위 21킬로미터의 길쭉한 형태로, 면적은 11.2평방킬로미터이다. 오늘날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서 조금 모자라는 넓이라면 결단코 작은 섬이랄 수는 없지만, 병사 3만여 명이 진을 치고 있어 그야말로 발 들여 놓을 틈도 없다.



▲ 1388년(우왕 14년) 5월 7일

이성계와 휘하의 3만여 고려 병사들이 압록강변에 이르렀을 때는 위화도를 잇는 부교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었다. 위화도에 진을 치기 위해서는 압록강을 건너야 하는데, 부교를 놓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개경을 떠나 황해도 황주와 평양을 거치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큰 고초를 겪었던가. 그리고 위화도에서 요동 땅으로 진격하자면 건너야 할 부교를 또 놓아야 한다. 설혹 부교를 설치하여 요동 땅에 발을 들여놓아도 명나라와의 일전이 기다리고 있다. 전세가 불리하여 후퇴하고자 했을 때, 만에 하나라도 부교가 떠내려가고 없다면 고려의 원정군 3만여 병사는 요동 땅에서 떼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이성계는 이 점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위화도까지 설치되어 있는 부교가 격류에 유실되고 만다면 장마철이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위화도에 갇혀 있어야 한다. 거기에 질병이라도 돌게 되면 휘하의 3만 병사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개죽음을 당할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하나. 회군을 해야 하나!’ 회군을 한다면 왕명을 거역하게 된다. 결과는 극형에 처해질 게 분명하다.이성계의 심중은 무겁고 답답하기만 하다. 자기 한 사람의 극형을 면하기 위해 3만의 병사들을 죽음의 골짜기에 쓸어 넣어야 하나, 아니면 자신이 중벌을 받더라도 3만여 명의 소중한 목숨들을 그들의 부모처자 곁으로 돌려보내야 하나. 이성계는 선뜻 결단하지 못한다. 앞뒤의 여러 사정이 실타래처럼 꼬여 있었기 때문이다.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퉁두란, 조영규, 조인벽이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 비에 흠뻑 젖은 모습들이다. 퉁두란이 이성계의 의표를 찌르듯 침중한 목소리를 토해낸다. “장군! 회군하자요. 더 이상은 안되갔어요!” 이성계는 묵묵부답이다. 퉁두란은 이성계와 함께 전장을 누비고 다녔던 아우와도 같은 여진의 장수라 누구보다도 이성계의 속내를 잘 읽는다. “장군, 물에 빠져 죽은 병사가 벌써 백 명을 넘었습니다!” 조영규도 퉁두란의 회군론에 동조하고 나선다. 조인벽인들 잠자코 있을 까닭이 없다. “며칠 안에 비바람이 멈추지 않는다면 위화도는 물바다가 된다니까요!”이성계는 직설적인 대답을 피하면서도 이들의 내심을 건드려본다.

“비가 오는 것도 다행이고, 위화도에 들어와 있는 것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때가 아니오.”

“그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이외까. 다행이라뇨!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또 군량이 썩어가고 있는 판국에 다행이라뇨!” 퉁두란은 더 못 참겠다는 듯 나섰다.“비가 와서 다행인 것은 진군이 늦춰졌음이요, 만일 빨라졌다면 우린 벌써 달포 전에 명나라 군사들의 창칼에 쓰러졌을 게 아닌가!” 세 사람은 잠시 머쓱해진다. 막상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또 위화도에 들어온 것이 다행인 것은, 진군이 늦어진 만큼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질 않았는가.”생각해보면, 지장(智將)은 눈앞의 실리보다 멀리 내다보는 것으로 수하들의 안위를 도모해야 한다. 퉁두란이 더욱 강한 어조로 내뱉었다.“장군. 회군하자요. 이젠 다른 방도가 없지를 않습네까!”

“그건 왕명을 거역하는 일이 된다니까!”

“왕명이 아니라, 최영의 명을 어기는 일일 테지요. 애시당초 잘못된 명이었다면 끝장을 보아서라도 바로잡아야 하질 않갔습네까!”“하면, 나더러 최영 장군과 일전을 벌이라는 말인가?”

“최영의 명을 따르면 장군은 살아남질 못해요. 장수가 싸움터에서 죽으면 모를까, 조정의 모함 때문에 죽는다면 그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없어요.”이성계는 짧은 한숨을 놓는다. “서둘지 말아요. 나도 지금은 회군령을 기다리고 있는 심정이외다.”퉁두란의 반응은 용수철처럼 날카롭게 튕겨 나온다.

“거 가당치도 않은 말씀 그만하시라요. 최영이라는 자가 어떤 작잔데 새삼스럽게 회군령을 내려요. 장군께서 죽기를 기다리는 자가 바로 그 작자외다!”“그렇지가 않아요. 그분도 용장인데, 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꿈쩍하지 않는다면 회군령을 내려야지 어쩌겠소.”“헛참, 최영이 누굽네까. 두고 보면 알아요. 장군께서 끝내 버틴다면 지체 없이 달려와서 장군의 등을 밀어서라도 요동으로 쫓아낼 위인이 바로 노회한 최영입네다. 아시갔습네까!”이성계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인다. 퉁두란은 더욱 거친 어조로 밀고 나온다.

“회군을 하는 것도 기회를 잡아야디요. 최영이 그 사실을 눈치챈다면 한걸음에 달려올 것이 아닙네까. 회군은 그 전에 이루어져야 승기를 잡을 수가 있어요!”이성계는 조용히 부연하는 것으로 퉁두란의 거친 진언을 가로막아 본다.

“그 일보다는 먼저 전력해야 할 소중한 임무가 있어요.”



***



날이 밝아도 비는 멎질 않는다. 강물은 더욱 불어나 요동치며 흘렀고, 땅은 질퍽거렸다. 그러면서도 잠시 햇볕이 들 때면 습기 찬 무더위에 숨이 막힌다. 이성계는 병사들을 보살피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회군만이 살길이다. 그러나 그 회군이 평생의 은인과도 같은 최영 장군을 처단해야 하는 일이라면 이성계로서는 고통이 아닐 수가 없다. 동북면 출신인 시골 무사 이성계가 고려 조정의 신진세력을 아우를 정도의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은 최영 장군의 지지와 보장이 따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패로 얼룩진 훈구세력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고려왕조의 앞날을 가늠할 수가 없다. 명장 최영이 그 부패세력인 훈구의 우두머리라면 이성계를 지지하는 신진 개혁세력에게는 제거의 대상이 된다. 바로 이 점이 이성계에게는 고통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위화도에서의 회군은 바로 평생의 은인인 최영을 제거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비는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여기서 더 회군의 기회를 놓친다면 위화도는 범람하는 압록강의 흙탕물 속으로 잠겨들게 된다. 3만 명의 병사들과 함께….



정명론

이성계가 쫓기듯 위화도에 진을 치게 된 데는 최영이 주도하는 정명론에 휘말리는, 그야말로 뼈아픈 사연이 있다. 망해가는 원나라를 계속 섬겨야 한다는 친원론이 정권을 장악한 훈구대신들이 주류를 이루는 보수세력의 주장이었다면, 욱일승천의 기세로 떠오르는 명나라와 교유하면서 고려 조정의 부패를 척결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신진 진보세력은 ‘친명론’을 주장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갈등과 대립은 생사를 건 싸움으로 번지고, 때로는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기도 한다.정명론! 조정의 부패로 혼조의 기미마저 보이는 처지에 명나라를 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고려 왕실의 혈통이 원나라에 치우쳐 있었고, 그런 원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은 훈구세력들이 고려 조정에 득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원을 내세운 보수세력이 백성들의 토지를 강탈하여 치부, 부패하게 되면서 그와 같은 난정을 척결하여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자는 진보세력들에 의해 친명론이 대두된 것은 시대의 흐름이나 다름없다.공민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우왕은 처음부터 말썽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개혁승 신돈의 비첩인 반야의 소생이었던 탓에 왕씨가 아니라 신씨라는 풍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우왕은 열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조정 중신들은 어린 우왕에게 여자를 알게 했다. 자신들의 세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길이 최선이었다. 우왕은 십오륙 세가 되면서 대궐의 담장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민가의 닭이나 개를 활로 쏘아 죽이는 일은 다반사였고, 길 가는 여인들을 닥치는 대로 욕보이기도 했다. 왕실이 썩으면 조정이 부패하고, 조정이 부패하면 중신들이 치부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것이 고금의 이치다. 그 결과가 전제(田制)의 문란으로 이어지면서 권문세도들은 무지렁이 백성들의 땅을 마구잡이로 빼앗아 사유화하여, 날이 가면 갈수록 무지렁이 백성들은 거리로 쫓겨나면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것 외엔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게 된다.‘누군가 나와서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을 발칵 뒤엎어 주면 좋으련만!’



***



조정 중신들이 임석한 편전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부수상 격인 수문하시중 이성계의 긴장한 얼굴은 보였어도 아직 수상인 최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주상 전하 듭시오.”

환관의 해맑은 목소리가 꼬리를 길게 이어간다. 최영이 먼저 들어서고 그 뒤를 우왕이 따르는 형국이다. 우왕의 용안은 시름에 잠겨 있는 듯 보였고, 최영은 언제나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이다.‘급기야 올 것이 왔구나…….’ 이성계는 운명을 가늠하듯 중얼거려본다. 마침내 우왕이 입을 연다.“나라의 흥망이 풍전등화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소. 모두 과인의 부덕함에서 기인된 것이오만… 오늘은 최 시중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이 나라 고려가 나아갈 길을 정하도록 하시오.”최영은 헛기침을 한 다음 실로 오랜 시일을 가다듬어 온 자신의 소회를 입에 담는다.

“제공들도 알 것이오. 명 태조가 이 나라 고려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음을 말이외다. 과다한 공물을 바치라는 것은 참고 견딜 수가 있소이다마는… 저들이 이 나라 고려의 국토를 유린하고자 함에는 분노가 앞설 따름이오. 압록강 북쪽이 뉘 땅이었소. 이는 고구려의 땅 아니었소. 고구려의 땅을 차지하고 있는 무리들이 철령 북쪽을 마치 제 땅인 양 역참을 세우려 들고 있지를 않소. 이는 분명한 영토의 침공이외다! 적의 침공을 받으면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 것인지는 제공들이 나보다 더 소상히 알고 있으리라 믿어요. 저 오만방자한 명나라의 침공에 대한 대처 방안을 논의해 주시오!”최영의 어조에는 예상을 넘어서는 강경함이 실려 있다. 대소신료들의 시선이 우왕에게로 옮겨간다. 우왕의 부연 역시 논리적인 하자는 고사하고, 군왕으로서의 체통에도 모자람을 보이지 않는다.“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도 자주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일이고, 또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일이라면 목숨을 내걸어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할 것으로 알아요. 과인은 경들의 결기를 듣고 싶을 뿐이오!”우왕과 최영의 의지가 이러하다면 명나라를 선제공격하는 것은 국론이나 다름이 없지 않겠는가.

“수문하시중 이성계 아뢰옵니다.”

최영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이성계를 노려본다.

“승산이 없는 싸움은 아니 하는 게 옳은 줄로 아옵니다. 게다가 작은 나라의 병력으로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병법에도 없음을 유념하소서.”이성계의 뜻을 살려두고서는 조정의 위신이 서질 않는다. 따라서 최영의 어조에 서슬이 담기는 것은 당연하다.“고려의 영토를 수복하려는 기상은 고사하더라도, 저들이 철령 북쪽에 역참을 두려고 나서는데, 내 땅을 빼앗기면서까지 명나라와 화친할 의향이면 마침내는 나라를 송두리째 내주게 되지를 않겠는가. 이 장군은 이 점에 대한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으로 알아요!”이성계는 밀릴 수가 없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것을 모를 까닭이 없어서다.

“원나라는 멀리 있는 쇠퇴한 나라이고, 명나라는 가까이에 있는 강성한 나라가 아니오이까. 이 나라 고려는 원나라와의 의리만 생각하였지 명나라와의 화친은 추호도 생각한 일이 없지를 않습니까. 명나라는 바로 이와 같은 고려 조정의 외교를 트집 잡고 있음을 유념하셔야지요. 이제라도 고려 조정이 친명 화친을 국론으로 정하고, 이를 명나라에 알린다면 명나라는 기필코 철령 북쪽이 제 나라 땅이라고는 아니 할 것으로 압니다.”판삼사사 이색을 중심으로 한 정몽주 등 소장학자들의 시선이 다시 최영에게 머문다.

“이 장군, 그건 궤변이오. 저들은 이미 전단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대감, 시생은 평생을 대감의 전법을 따르는 휘하의 막장으로 자처하고 살아왔습니다만… 이번만은 대감의 본의를 살피고 싶습니다. 고려가 병을 동원하여 요동을 친다면 이길 수가 있겠는지요! 또 싸워서 이겼다고 가정을 해도 2, 3만의 병력으로 저 광활한 중원 땅으로 진격할 수가 있다고 보시옵니까. 바로 그러한 때에 왜구가 삼남 쪽에서 창궐한다면, 삼남은 고사하고 도성의 방비를 해나갈 수가 있겠는지, 이에 대한 확답을 들려주셨으면 하옵니다.”이성계는 정면대결을 해서라도 전쟁을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철령 북쪽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최영의 포부를 나무랄 수가 없는 것이 난처한 문제이기도 했다.그 순간 우왕이 불쑥 말하면서 자리를 뜬다.

“알겠소. 내일 다시 논의합시다.”

어쩌면 다행인지 모른다. 궁지에 몰릴 위험을 감지했던 최영도 한숨을 놓으며 몸을 일으킨다. “끄응……!” 이성계는 신음을 뱉어냈다. 내일 다시 논의하면 뭘 하는가. 최영이 정명론을 접을 까닭이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기 때문이다.이성계의 생각은 적중하였다. 최영은 우왕의 침전에 들어 요동 공략의 마지막 점검에 임하고 있다. “전하, 명분은 사냥이옵니다. 해주의 백사정까지 주력병마를 옮겨 놓는다면 출진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아까 이성계의 완강한 반대를 보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오!”

“전하께서 친히 납시는 사냥이옵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을 줄로 아옵니다. 통촉하소서.”





목자득국

우왕의 사냥행렬이 개경을 떠난 지 사흘이 지나면서 도성 안팎에는 요상한 풍설이 나돌기 시작한다. 목자득국. 풍설의 진원은 이 넉 자에서 비롯된다. “대체 뭔 소리야, ‘목자득국’이라는 게……?”

“아, 보면 몰라! 이씨가 나라를 얻는다는 게 아닌가! ‘나무 목(木)’ 자와 ‘아들 자(子)’ 자를 합치면 ‘오얏 이(李)’ 자가 되는데, 거기에 득국(得國)이면 ‘나라를 얻는다’가 아닌가.”“이씨라니? 그 이씨라는 게 대체 누구야?”

“이성계 장군이 나라를 세운다는군……!”

풍설의 크기가 이 정도로 부풀려지면 이미 풍설의 도를 넘어서게 되고, 더 시간이 흐르면 마치 당연한 일로 굳어지면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 민심의 흐름이다.이 무렵 우왕을 태운 어가는 해주를 지나 같은 황해도 땅인 봉주에 머무르고 있다. 벌판은 군막으로 가득 찼고, 말발굽 소리로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지휘부를 벗어나 있는 병사들은 조금씩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이들은 사냥을 떠난 것이라 믿고 있었으나, 사냥은 하지 않고 강행군만 계속되는 것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요동을 공략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때를 같이하여 ‘목자득국’이라는 풍설도 함께 북상하여 병사들의 귀에 들어왔다. 조영규가 급하게 군막으로 들어선다. “전하의 군막으로 듭시라 하옵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