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치마 사다코
은미희 지음 | 네오픽션
흑치마 사다코
은미희 지음
네오픽션 / 2011년 08월 / 384쪽 / 13,000원
일제 강점기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로 대한제국을 쥐락펴락했던 일본의 초특급 스파이, 배정자. 아니 그녀의 잃어버린 이름은 배분남이었다. 그녀가 세 살 때 아버지 배지홍이 역적으로 몰려 세상을 떠났고 그 충격으로 눈이 먼 어머니와 함께 세상을 떠돌며 어렵사리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굶주림에 지쳐 통도사에 잠시 몸을 의탁했던 그녀는 절에서 도망쳐 나오던 길에 행색을 수상히 여긴 포졸에 의해 관가로 끌려갔다. 결국 아버지가 역적이었음이 밝혀지고 그녀는 밀양으로 보내져 관기로 이름을 올렸다. 관기로 지내던 중 밀양 부사가 분남이 자신의 친구였던 배지홍의 딸임을 알게 되고 그녀의 처지를 측은히 여겨 일본 상인 마쓰오를 통해 그녀를 일본으로 보낸다. 일본에 도착한 그녀는 조선의 우국지사 안경수를 거쳐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1887년 어느 날, 옥균은 분남을 불렀다.
“나갈 채비를 차려라. 될 수 있으면 예쁘게 치장해라. 옷도 좋은 것으로 입고.”
밖으로 나온 옥균은 인력거를 부르는 호사를 누렸다.
“잊지 말아라. 조선이 아무리 싫어도 조선은 너이자, 너의 정신이다.”
툴툴거리는 인력거 안에서 옥균이 낮은 소리로 일렀지만 분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지나치는 풍경만 바라보았다. 조선은 그
저 자신에게 있어 떠올리기 싫은 아픔이었고, 상처였다. 이념이고, 애국이고, 뭐고 간에 자신만 잘 살면 그만이었다. 그것보다 더 귀하고 값진 일이 세상에 무어 있겠는가?인력거는 어느 유서 깊은 저택에 멈춰 섰다.
“어서 오시오. 이게 얼마 만이오?”
키가 작은 늙수그레한 남자가 얼굴 가득 부드러운 웃음을 담고서 옥균을 맞았다.
“인사드려라. 이분은 일본 초대 내각총리대신이신 이토 히로부미이시다.”
일본의 총리라니. 초대 총리라는 옥균의 설명에 분남은 오금에 짱짱하던 힘이 순간 풀리는 듯했다. “분남이라 합니다.”
분남은 살풋이 눈 내리깔고 웃음 짓고 있는 키 작은 남자에게 인사를 했다. 그 남자가 옥균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누구입니까?”
“제가 데리고 있는 아이입니다.”
옥균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토 히로부미의 시선은 자꾸만 분남을 향했다. 취기가 돌수록 그의 시선은 더욱 노골적이 돼갔다. 분남은 그 눈빛이 싫지 않았다. “몇 살이냐?”
“스무 살이옵니다.”
“스무 살? 허허, 가장 좋을 때로구나. 네가 부럽구나. 내가 네 나이일 때 무얼 했을까?”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 부럽다는 말에 분남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분남이……분남이라…… 어떠냐? 분남이라는 이름 대신 내가 이름 하나 지어주마, 괜찮겠느냐?”“그래 주시면 제게는 더없이 영광이겠습니다.”
이토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 정자, 정자 어떠냐? 사다코…… 좋지 않으냐?”
사다코, 정자라는 일본식 이름이었다.
“사다코……”
분남은 눈을 반짝이며 이토를 쳐다보았다.
“제가 어찌 고마운 선물을 마다하겠습니까? 사다코…… 이제 저는 사다코로 살겠습니다.”
“그래, 마음에 든다니 고맙구나. 헌데 갈 데가 없어서 김 선생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고 했느냐?”“네,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집도 좁고 불편한 데다 손님도 많은데 저까지 거기서 유숙하고 있어서 김 선생님도 적이 불편하실 겁니다.”“그래? 이 아이의 말이 맞소?”
이토 히로부미는 옥균의 잔에 술을 첨잔하며 물었다.
“남녀가 유별한데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요.”
“허허, 그래요? 그럼 저 아이를 내가 거두면 어떨까요? 저 아이를 양녀로 삼고 싶은데요.”“양녀라구요?”
“그래요. 사다코, 어떠냐? 내 양녀가 되어주겠느냐?”
“좋다마다요. 왜 제가 거절하겠어요?”
분남의 음성이 희미하게 떨렸다. 술기가 도는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 오늘따라 분남의 얼굴이 고왔다. 단단한 이마에 곧은 코, 야무진 입매와 슬며시 고이는 미소도 꽃처럼 환했다. 마치 한 송이의 모란을 보는 듯했다.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기품이 있는 모란. “저 아이가 한문도 잘하고 서예도 잘합니다. 곁에 두고 있다 보면 무료하지는 않을 겝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어느 때보다도 말이 많았다. 그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은 일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주색에 빠져 방탕하게 생활하는 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호색은 일본에서 작은 문제가 되고 있었다. 옥균이 분남을 데려온 이유가 거기에 있음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기분이 좋은 듯 연방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다코…….”
분남은 새로운 이름이 마냥 좋았다. 게다가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라니, 분남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일본 최고 권력자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 어찌 꿈이라도 꿀 수 있었을까.이제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사는 거다. 분남이 아닌, 사다코로, 거지 분남이 아닌,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 사다코로.
***
옥균이 돌아가고 나자 방에는 이토 히로부미와 사다코 단둘만이 남게 되었다. 방 안에는 난초의 은은한 향이 사케 냄새와 함께 뒤섞여 감돌았다. 이토 히로부미는 또다시 호탕하게 웃더니 문득 웃음을 멈추고는 진득한 시선으로 사다코를 더듬었다. “어쩌다 이 일본까지 와서 김 선생에게 네 몸을 의탁하게 되었더냐?”
사다코는 지나온 자신의 삶의 궤적들을 소상히 이야기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비통히 이야기하고, 어머니의 실명을 애통하게 말하고, 걸식하던 시절을 침통하게 풀어냈다. 이토 히로부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사다코의 이야기를 들었다. “호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 이제는 아무 걱정 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내 딸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이란 말이다. 아무도 너를 놀리지 못하고, 아무도 너를 무시하지 못할 게야.”넘치는 감격에 사다코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년, 성심을 다해 이토 상을 모실 것입니다. 이년 이토 상의 말씀이라면 목숨까지도 내어드릴 것입니다.”“그래, 너를 믿겠다. 이제 너는 내 딸이다. 천륜으로 이은 자식이야 핏줄에, 몸에, 절반의 판박이로 내가 들어 있고, 내 기억 속에 네 지나온 날들이 오롯이 남아 있겠지만 너는 오늘 홀연히 내 딸이 되었다. 그러니 어찌 내가 너를 안다 하겠느냐? 하지만 이제부터 내 딸이 되기로 했으니 스스럼이 없어야 할 것이야. 오늘 밤 너랑 같이 있구나. 너를 보자. 너를 몸으로 알아보자. 괜찮겠느냐?”“어찌 싫다 하겠습니까?”
“그래, 다행이다. 그 옷을 벗어보아라. 너를 보고 싶구나.”
***
이토 히로부미와 한몸이 돼 있는 와중에서도 생각은 집요하게 새로운 가지를 뻗고 넝쿨을 뻗고 뿌리를 뻗어서는 사다코를 옭아맸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내놓았을 것이다. 나 역시 살기 위해서 이 남자에게 헌신할 것이다. 사다코는 진심으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제 몸을 바쳤다. 힘을 얻기 위해, 삶을 얻기 위해, 저는,
저 자신은, 권력에 봉헌하는 제물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안은 사다코는 그를 디딤돌 삼아, 모두가 저를 우러러보는 자리로 오르고 싶었다. 몸 하나로 권력의 상층부로 올라서서 팔천으로 떠돌던 지난날을 보상받고 싶었다. 죽으면 먼지로 흩어질 육신, 아끼고 소중히 갈무리한들 무얼 할까. 이 몸 하나 무기 삼아 세상의 중심으로 나아가리라.
***
이토 히로부미는 차를 마시다가도, 사다코를 안다가도 문득문득 일본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거듭되는 말에 사다코는 세뇌가 되고, 새로운 신념으로 저를 무장시켰다. “네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 일본이 얼마나 개화했는지를. 너희 조선이 일본처럼 되려면 일본의 힘이 필요하다. 헌데 왜 너희 조선은 그토록 청국을 맹신하는지 모르겠구나. 청국은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늙었어. 세계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나라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청국이라니. 조선이 살 길은 일본 안에 있다. 그러니 네가 조선 백성들의 우매함을 일깨워줘야 할 게야.”청국을 입에 담는 이토 히로부미의 음성이 사뭇 불퉁스러웠다.
“사다코, 내일부터 승마와 사격을 배워라. 그리고 수영과 변장술도 함께 익혀두어라. 나중에 그것들이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을 것이니라.” 사다코는 그것을 왜 배워야 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녀는 이토가 하라면 하는 것이었다. 이토가 시키면 기꺼이 모든 것을 다 할 요량이었다. 역적의 딸 분남에게, 거지 분남에게, 기생 분남에게, 승려 분남에게, 청상과부 분남에게 이렇게 새로운 삶을 주었는데, 못 할 일이 뭐 있겠는가? 뼈가 물러지고 살갗이 터지고 몸이 어긋나도록 할 것이다. 하고, 하고, 또 해서 이토를 기쁘게 만들 터이다. 사다코는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있을 때면 예전에는 가져보지 못한 자존감을 느꼈다. 자신이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외출을 할 때면 사람들은 자신을 보고 사다코 양이라 부르면서 깍듯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해왔다. 그것은 이토의 옆에 있을 때라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사다코는 그게 온몸이 저리도록 짜릿했다. 사다코는 그 짜릿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놓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쥐고 싶었고, 얻고 싶었다. 더 이상 옛날의 분남이 아니었다.
***
“사다코.”
사다코를 부르는 이토의 눈매에는 거역할 수 없는 권위가 서려 있었다.
“나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했었지?”
“네.”
사다코 역시 그 눈빛에 정색을 하고 답했다.
“조선으로 들어가거라.”
“네? 조선으로 들어가라 했습니까?”
“그랬다. 조선으로 들어가라. 전라도 고창에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청나라가 이번 기회를 그냥 보낼 리 있겠느냐? 게다가 동학의 무리들이 충청도 보은에서 이만 명이 넘게 모여 척왜척양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 어디 청나라뿐이냐? 러시아도 조선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네가 들어가서 정황을 살피고 청과 러시아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도록 하여라. 그리고 내 지시를 따르거라.”이토 히로부미는 사다코의 암호명을 흑치마라 지어주었다. 그 옛날,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어낸 메이지유신은 미국의 증기선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녹슬지 않게 하기 위해 몸체에 타르를 바른 미국의 함대, 흑선(黑船)이 에도에 출현했을 때, 하급 무사였던 료마는 충격을 받고 일본의 변화를 꿈꾸었다. 그 검은색의 배가 이뤄낸 세상은 참으로 위대했으니, 사다코 또한 검은빛으로 조선에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내라고 이토 히로부미는 흑치마란 암호명을 내리고 격려했다.
흑치마 사다코이토의 명을 받고 조선으로 출발하기 전에 사다코는 김옥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김옥균의 편지를 몸에 지니고 조선에 도착했다. 그러나 한성으로 가는 나루터에서 포졸들의 검문을 받고 김옥균의 편지가 발각되어 강제 출국되고 말았다. 얼마 후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으로 돌아온 사다코를 찾았다. “사다코,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라. 러시아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청을 잃은 한국은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1896년에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신한 일이 있었지. 그때 이후로 애써 마련해놓은 우리의 조선 내 기반이 친러파 쥐새끼들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조선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땅이다. 부국강병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의 자원과 기름진 땅과 노동력은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야. 그러니 네가 한국의 황실로 침투해라. 이 밀월 관계가 더 깊어지기 전에 러시아를 황실에서 몰아내고 한국에서 몰아내라.”
1897년 정유년, 조선은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왕은 황제라 칭제할 것을 천명했다. 살아남고자 하는 그들의 몸부림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이번에 하야시가 일본 공사로 한국에 부임해 들어간다. 너는 하야시 공사의 통역관으로 따라 들어가라. 너의 공식 신분은 일본 공사의 통역관이다. 일단 한국으로 들어가면 일본 공사관에서 머물도록 하고 하루라도 빨리 황실로 들어가거라. 그리고 한국 내의 반일 세력들과 민영휘 같은 친러파 일당들의 움직임을 빠짐없이 보고하도록 해라.”
***
양장 차림에 파마머리를 하고 보늬를 쓰고 다니며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다코는 금세 한국의 권력 사회에서 꽃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녀와 한 번이라도 눈을 마주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로 일본 공사관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그들은 모두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위인들이었다. 전라도 갑부도 있었고, 경상도 유지도 있었고 권력을 지닌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사다코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다투어 선물을 보내고 만나달라고 간청을 했다. 일본어를 구사하며 말을 타고, 사격을 하며, 남자들에게 명령을 하는 곱다니 생긴 여자, 그 여자는 그들에게 있어 별종이나 다름없었다. 삼종지도를 따르며 조신하게 자신들의 삶을 학대하는 한국의 여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함이 사다코에게 있었고, 그 다름은 대한제국의 상위 계층 남정네들을 달뜨게 만들었다. 게다가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재산을 더 불리기 위해서는 사다코의 관심과 호의가 필요했다. 사다코의 한마디는 요술 지팡이처럼 그들의 배를 불려주었다. 법보다 위에 있는 것이 사다코의 말이었고, 총칼보다 더 위세를 떠는 것이 사다코의 웃음이었다. 사다코는 그들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했다. 한 손으로는 달콤한 사탕을 내어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들의 목에 걸어놓은 올가미의 줄을 단단히 그러잡고 있었다. 반일 세력의 명부를 작성하고, 그들의 활동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으며, 또 일본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은밀히 활동 자금을 대는 사람도 캐냈다. 어느 곳에 질 좋은 쌀이 나는지, 면화가 많이 생산되는지, 금광의 위치와 광산의 정보들도 수집했다. 수집한 것은 하나도 빠트림 없이 하야시에게 보고했고 일본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광산을 빼앗겼고, 숨겨놓은 쌀을 강탈당했으며, 반일을 이유로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사다코에게 줄을 대려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사기 위해 끊임없이 주머니를 털어 선물을 보냈다.
***
일본에서 새로운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사다코는 그걸 들고 엄비와 황제를 찾았다. 엄비와 황제는 신기해했고, 그 용도와 사용법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갈수록 사다코를 보는 황제의 눈빛이 진득했다. 사다코를 바라보는 황제의 얼굴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와 함께 발그레 물이 들어 있었다. 황제는 외로워했다. 대한제국을 둘러싸고 세력 다툼을 벌이는 외국의 야욕과 그들의 말 한마디에 호들갑스럽게 대응하는 대신들 사이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황제는 젊고 발랄하고 세상 물정에 밝은 사다코를 좋아했다. 말도 통했다. 아녀자였지만 남자의 심정을 이해해주는 그녀를 총애했다. 사다코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그녀는 황제의 마음을 업고 자신의 오빠와 동생을 한성으로 불러들여 요직에 앉히고 그 위세로 더 당당하게 굴었다. 기방에서 배운 방중술은 황제의 마음을 붙잡아두는 데도 큰 몫을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문득 그는 이 나라를 걱정했다. “참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내가 싫다. 황제라고 앉아 있으면서도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그저 한탄스러울 뿐이다.” 그 한숨이 참으로 흥감했다. 그는 사다코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했고, 그녀는 하나하나 빠짐없이 일본 공사관에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