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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인순이 지음 | 명진출판
딸에게

인순이 지음

명진출판 / 2013년 1월 / 232쪽 / 13,800원





PART 1 엄마의 ‘기도상자’를 열어봐

: 모든 엄마의 가슴속엔 ‘기도상자’가 있단다



처음 ‘기도상자’를 열던 날

내 딸, 어릴 때 많이 아팠던 거, 기억나니?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진다. 온통 하얀 병실, 새하얀 침대에 누워 있던 겨우 네 살배기 아이. 그 가냘픈 숨소리와 핏기 가신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돼. 의사 선생님은 혈관종이라고 했지. 가끔 너는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댔는데 나도 같이 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단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점점 노랗게 변하는 너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너 대신 내가 아플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라도 했을 거야.

하지만 나는 가수였어. 아파 누워 있는 너. 힘없이 눈을 감고 있는 너를 두고도 나는 노래를 불러야 했단다. 네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면서도 사람들 앞에선 환하게 웃어야 했지. 누구에게도 내색할 수가 없었어. 무대에 오르기 전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눈을 감고 기도했지. “제가 갈 때까지 우리 딸 잘 지켜주세요.” 무대를 내려올 때면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 그 길로 네 곁으로 달려와 너를 붙잡고 또 한없이 울었지. 울다 기도하다, 기도하다 울다를 반복했어. 한참을 그러다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지쳐 잠들곤 했지.

그런데 그렇게 너와 내가 잠든 사이에 천사가 다녀간 모양이야. 거짓말처럼 깨끗이 나아 퇴원하는 너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감사의 기도를 드렸어. 그때부터 엄마는 매일 밤 너를 위한 ‘기도상자’를 열었어. 상자 안에서 어제 했던 기도를 하나하나 꺼내 살펴보고, 다시 기도드리곤 했지. 상자 속은 어느새 수많은 기도로 가득 찼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매일 밤 기도상자를 열었지.

아마 모든 엄마의 마음속엔 기도상자가 하나쯤 있을 거야. 오늘 밤도 엄마는 너를 위해 기도상자를 열어. 너는 기도상자로 자란 아이란다. 내 간절한 바람,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 그 결정체가 너야. 얼마나 놀라운 일이니? 내 바람과 믿음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실현되었다는 것 말이야. 사람들은 이런 일을 두고 기적이라고 하지. 딸아, 너는 내 기적이란다.

아이가 나를 닮지 않기를 바라던 마음

너를 가졌을 때, 마냥 행복하고 기쁜 마음 한편으로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도 있었다. 곧 태어날 이 아이가 한국 땅에서 살아내는 일이 힘들까 봐 조마조마했던 거야. 이제는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자라면서 받은 상처가, 아픔과 슬픔이 다시 덮쳐왔다. 이제 엄마가 되어 내 아이의 아픔을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아이가 외국인학교라도 가면 그런 고민을 덜 할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다.

참 많이 고민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너를 낳았다. 원정출산이라고 비난받으리라는 걱정보다 딸을 보호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 컸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 사실을 방송에서 숨김없이 밝혔다. 그러면서 마음껏 욕해달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었다. 아마 숨기고 싶었던 내 상처가 사람들의 눈에도 보였나 보다. 참 고맙고 미안했다. 나 혼자 지레 겁먹었구나. 내 딸은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태어난 내 딸은 미국인이기도 하고 한국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한쪽으로 구분 지으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엄마는 또 조마조마하다. 혹 내가 모르는 아픔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기도상자 한쪽에 이런 기도를 쌓아 올렸다. 내 아이가, 또 나를 닮은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은 내가 살아온 세상보다 훨씬 더 따뜻하기를.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세상,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단 한 번도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았으면.

스스로를 믿는다는 건 힘들지만 그만큼 해볼 만한 거야

살다 보면 정말이지 나도 나를 믿지 못할 때가 많아. 힘에 벅찬 일이 닥치면 못하겠다고 선언해버리고, 그저 뒤로 숨고만 싶어지지. 그런데 그러다 보면 크고 작은 약속들을 어길 때가 있어.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면 사람들에게 믿지 못할 사람으로 각인되고 만단다. 그건 슬픈 일이지. 하지만 더 무서운 건, 결국엔 스스로도 자신을 못 믿게 된다는 거야.

스스로를 믿으려면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나만의 기준을 세워 봐.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일하는 거지. 남들이 다 좋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는 결단력, 너무 무리하는 거 같으니까 쉬라고 하는 말에도 끝까지 견뎌 마무리하는 추진력, 이런 것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결국엔 나를 믿게 되는 거야.

젊은 시절 엄마는 오만하게도 이것도 저것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단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나서 판단했지. 신뢰는 언제나 행동에서 생겨나잖니? 만일 엄마가 좋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말만 하고 아무 연습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엄마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 줄까? 어떤 무대에서 인순이를 만나건, 청중이 기대하는 것 이상을 주기 위해 나는 수없이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어.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조금은 나를 믿게 되었단다.

너는 스스로를 믿는 사람일까? 아마 그럴 거야. 스스로 마음먹은 일을 정해놓은 기준에 닿을 때까지, 힘들어도 결국엔 이루고야 마는 경험들이 쌓였을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쌓여갈 테니까. 너는 참 아름답고 강한 여자란다. 엄마 믿지? 엄마가 믿는, 너를 믿으렴.

사람 때문에 힘들지만 사람 때문에 치유되는 게 세상이야

사람들이 요즘 엄마한테 묻더라.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게 뭔가요?” 그게 뭐냐고? 바로 친구야. 엄마 주변에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한 친구가 별로 없단다. 엄마는 그게 못내 아쉬워. 이제는 위로가 되는 친구가 그리워. 내가 힘들 때 아무 조건 없이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 물론 네가 내 딸이자 친구로서 언제나 함께하고 있지. 네가 내 곁에 있어줘서 난 참 좋다. 고마워.

넌 사람들과 소통이 참 잘되는 것 같아! 나와도 그렇지만, 친구들과도 그런 것 같더라. 친구들이 가끔 자기만의 비밀을 너에게 털어놓는다고 했지. 너는 아마도 따뜻하게 등 토닥이며 들어줄 테고 말이야. 누군가의 비밀을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된다는 것만큼 가치를 인정받는 게 또 있을까? 네가 친구들에게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늘 들어주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타인의 비밀은 너무 무거운 것이라, 내가 그 무게를 못 이기고 지쳐버리기 쉽거든. 중요한 것은 너도 다른 사람들에게 너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건 그 사람을,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어쨌든 서로 믿고 의지하고 비밀을 나누고 하는, 그런 친구가 있다는 건 진짜 신나는 일일 거야.

어떻게 믿을 만한 친구인지 아느냐고? 사실 그걸 어떻게 알겠니? 하지만 이것만큼은 말해줄 수 있어. 사람 때문에 힘들지만 사람으로 말미암아 치유되는 게 세상 사는 일이고, 그게 바로 세상 사는 맛이라고. 네가 믿는 만큼 다른 친구들도 너를 믿을 거고. 너를 힘들게 하는 친구도 있겠지만 반대로 너에게 위로가 되는 친구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

미안하고 밉고 무섭고 사랑스러운 존재

그리도 사랑스러운 딸이었건만, 너는 사춘기가 오고부터 달라지더구나. 점점 멀어져가는 것이 느껴졌어. 머리를 앞으로 길게 늘어뜨려 눈을 가리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 해주고. 몇 번을 물어보아야 겨우 단답형으로 답하곤 하더라. 사춘기 때는 참아주고 받아주는 게 능사라는 한 청소년 심리전문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어. 정말 참고 참아야 하는 걸까? 전문가도 아닌 나는 사춘기 딸아이를 대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어. 그렇게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가 갑자기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워지다니. 안타깝다 못해 서럽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네가 사춘기를 겪으며 대화를 기피한 지 일 년쯤 흘렀을까, 결국 일이 터졌지. 네가 계속 ‘몰라’라고만 대답하니까 내 화가 폭발한 거지. 순간적으로 분이 끓고 언성이 높아졌어. ‘대체 내가 못 해준 게 뭔데? 너 나한테 왜 이래?’라고 소리치며 옆에 있던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졌지. 컴퓨터가 부서지고 괴성이 집 안에 울렸어. 차마 너를 때릴 수는 없고, 주체 못할 화는 풀어야겠고…. 순식간에 네 방은 엉망진창이 됐지. 네 아빠가 나를 안고 꼼짝 못하게 주저앉혔을 때에야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지.

그런데 내가 화를 멈추자 네가 울기 시작하는 거야. 나도 슬퍼서 울었어. 기억나니? 우리는 그날 서로 마주 보며 오래도록 울었지. 눈이 퉁퉁 부어 잘 떠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그날 우리는 네 조그만 침대에서 서로 끌어안고 잤잖아. 다음 날은 공교롭게도 <딸에게>라는 노래를 녹음하던 날이었어. 가슴이 무너지더라. 내 보석인데. 하늘이 내려준 선물인데. 내가 잠깐만 참았으면 됐는데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지금도 그날은 후회가 돼. 훗날 이렇게 멀리 떨어질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잘해줄걸. 더 이해해줄걸. 그렇게까지 화내지는 말걸….



PART 2 딸의 인생 앞에 지혜를 놓아주고 싶어

: 나 또한 내 엄마에게서 당당함을 배웠지



엄마의 전화기는 언제든 켜져 있단다

옛날에 엄마의 엄마는 애들이 나를 놀려서 울고 돌아오면 이렇게 말했지. “뭐가 걱정이야, 엄마가 옆에 있는데….” 그 말 한마디면 마음속 응어리가 눈 녹듯 사라지곤 했었지. 내게 그런 말을 해줄 엄마가 안 계신 지금, 그 옛날 엄마 모습이 사무치게 그립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많지만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들도 분명 겪게 될 테니까, 그럴 땐 너도 이 말을 기억하렴. “뭐가 걱정이야, 엄마가 옆에 있는데….”

나도 아버지가 그리울 때가 있어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산이었습니다.

지금 내 앞에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느새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습니다.

부디, 사랑한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하지 마십시오.

- 인순이, <아버지> 중에서



내 가슴에 있는 내 아빠는 용감한 영웅이었어.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평화를 위해,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나라에 와 있었잖아. 아마 우리 아빠는 많이 외로웠을 거야. 그래서 엄마랑 사랑했을 거야. 그리고 내가 태어난 거지. 나는 그런 우리 아빠를 이해해. 언젠가 미국 카네기홀에서 107명의 참전 용사분들을 모시고 공연한 적이 있었어. <아버지>라는 노래를 불렀었지. 얼마나 가슴이 설레고 떨렸던지…. 난 그분들께 이렇게 말했어. “여러분들은 모두 제 아버지십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눈시울을 적셨단다. 나 아버지 정말 많다, 부럽지? 그래도 네가 아빠랑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가 그립단다.

사랑과 연애는 너무 재지 말고 헛똑똑이처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사랑의 아이러니, 또는 사랑의 어려움은 사랑과 집착의 구별에 있지 않나 생각해. 과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잖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절대 그 사람에게 집착해서 짐이 되지 말아야 해. 그 관계가 부담스러워지면 누구든 피하게 되거든. 그런데 사랑과 집착을 구별하는 방법을 아니? 그 사람과 떨어져 있으면 엄청나게 보고 싶지만, 그래도 현재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으면 그게 진짜 사랑이야. 반면 그 사람하고 같이 있지 않으면 너무 불안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 이게 집착이야.

집착은 사랑의 지분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단다. 집착이 심해지면 결국 사랑이 남지 않게 돼. 오래오래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거지. ‘너무 가깝지 않게, 너무 멀지 않게’ 서로의 거리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단다. 내 딸아! 똑똑한 연애, 현명한 사랑을 하는 네가 되었으면 해. 남자가 잡고 싶은 여자,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자기 일에 몰입할 줄 아는 여자, 그러면서도 만나면 싹싹하고 매력 있는 여자! 음…. 참 쉽지 않은 걸 쉬운 듯이 얘기하네, 그치?

그런데 말이야, 엄마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네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시에 찔려 아플 거 알면서도 아주 가까이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그러다 질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온 마음 다해 사랑이라는 걸 해보았으면 좋겠어. 추억 때문에 헤어질 때 더 힘들어진다 해도, 결단코 이 사람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남자를 만나면 용기를 내서 끝까지 붙잡고 늘어져 사랑을 해보렴. 연애를 할 때만큼은 헛똑똑이가 되라는 주문, 너무 심한 걸까?

따뜻한 불빛 속에도 수만 가지 사연이 있단다

내가 아직 네 아빠를 만나기 전이었어. 어느 오후 해가 뉘엿뉘엿 지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질 때였다. 아파트에도 하나둘 불이 켜져 창문마다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왔어. 나는 그 창문들의 따뜻한 빛이 너무도 부러웠단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저녁 먹고 차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려보니 왜 그리 마음이 사무치던지.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부러움이었지. 그런데 나중에 내가 그 창문 안쪽에 있게 되었을 때 깨달았어. 따뜻한 불빛이 아무리 행복하게 보여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수만 가지 사연들이 있다는 걸. 내가 상상도 못할 그런 사연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말이야.

네가 부닥친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일처럼 보일 때, 온종일 울었다면 그것으로 됐어. 울기를 멈추고 세 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해 보렴. 남의 일이다, 남의 일이다 생각하며 친구에게 하듯이 진심으로 충고를 해봐. 그게 바로 답이 될 거야. 가슴에 앙금을 남기지 마라. 너만 아프고 힘드니까. 털어버릴 건 과감하게 털어버리렴. 모든 사람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아간단다.



PART 3 엄마는 다시 꿈의 출발선에 섰어

: 이제 내 딸만이 아닌,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



딸을 사랑한 만큼 아이들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내가 다문화학교를 세우겠다고 말했을 때 너는 뜻밖에 강력히 반대했지. 그때 너는 다문화 교육의 문제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으니, 누구보다도 내 계획을 걱정했을 거야. 네 말은 다문화 아이들과 보통 사람들이 한곳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한다는 거였지. 맞는 말이야. 하지만 다문화학교를 세우려는 내게도 생각이, 신념이 있었단다. 성공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야. 한 사람이 성공하는 데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를 듣게 되었어. 다문화 학생들이 학교에서 적응을 못 해 방황하고 있다는 거야. 그들의 고등학교 졸업률이 28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것도 그날 알았어. 가정 형편이 문제든 학교에서 적응을 못 해서든, 이 정도라면 분명 나중에는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흐려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 그리고 섬광처럼 한 줄기 생각의 빛이 나를 치고 지나갔지. ‘혹시, 이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사람들이 말하는 소명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싶었지. 마음속에서 무언가 불같은 것이 끓어오르며, 당장에라도 아이들을 데려다가 제대로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막 솟아나는 거야!

나는 내 경험을 통해 그것이 가장 큰 힘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꺼이 그 아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거야. 그 아이들은 자라면서 점점 더, 자신이 100퍼센트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에 상처를 받을 거야. 하지만 진짜 사랑을 받는다면, 그 상처에 새살이 돋고 다시 자신감을 충전할 수 있게 돼. 내가 해줄 수 있고 해주고 싶은 게 바로 그것, 진짜 사랑을 주는 일이야. 공교육에서 아이들을 빼내 와 보통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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