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는 열여섯
황용희 지음 | 멘토프레스
별이는 열여섯
황용희 지음
멘토프레스 / 2012년 9월 / 176쪽 / 12,000원
탄생
깜박 졸았나 보다. 아까 눈 떴을 때 새벽 4시였는데 지금 5시 10분 전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부기는 자기 팔에 누워 있는 강아지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예감이 이상하여 강아지 몸에 손을 대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강아지가 차갑게 식어 있는 것 아닌가. 부기가 놀라 흐느끼자 가족들이 모두 일어난다. 아내 막순, 큰아들 신검, 둘째 아들 해무. 이렇게 네 사람이 한꺼번에 울부짖는다.
강아지가 부기네 집에 온 지 올해로 16년째다. 1995년 가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요크셔테리어 새끼 한 마리를 데려왔다. 강아지 사 달라 조르는 아이들 등쌀에 부기가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마침 새끼 몇 마리 받은 손아랫동서가 선뜻 한 마리 내어준 것이다. 부기가 그 어린 것을 품에 안고 집에 오자 애들이 난리가 났다. 학교 파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집에 뛰어온 다음 현관에 신발 팽개치고 강아지 ‘별이’에게 매달린다.
샛별이
부기는 별이를 큰아들과 작은아들 방 사이, 그러니까 현관입구 골목에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배변훈련을 시작했다. 별이는 아장아장 큰방과 작은방, 거실을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녔다. 부기는 별이를 화장실에 자주 데려갔다. 강아지에게 화장실 구조를 익히고 여기가 ‘응가’하는 곳임을 각인시키려면 눈에 자주 보여줘야 한다.
몇 달이 지나 이빨이 돋아나며 물에 불리지 않아도 사료알갱이를 톡톡 깨물었다.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음식을 씹고 소화하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이빨 나기 전, 부기 팔에 안겨 손등을 핥고 놀 때 손가락 넣어 입안을 살피면 녀석이 잇몸으로 손마디를 문다. 아직 턱관절이 발달하지 않아 무는 힘이 약하다. 그리고 장난기도 있다.
그런데 집에 온 지 얼마 됐다고 별이가 가족을 상대로 서열을 정하고 있다. 자기와 가장 잘 놀아주고 예뻐하는 신검이가 1순위, 그다음 친정에서 요람에 싸 서울로 데려오고 먹을 것 잘 주는 부기가 2순위. 나머지 막순과 해무, 할머니는 등급 외. 녀석의 판정이 매정할 정도다. 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인 큰오빠 신검과 평생 우정을 언약하고 아빠 부기를 제외한 작은오빠 해무와 엄마, 할머니를 눈에 띄게 차별했다. 그렇지만 다른 가족에게 밉보이지 않으려는 가상한 노력도 병행한다. 신검이를 죽도록 사랑하되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여 큰 틀에서 가족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한 것이다.
부기는 오늘도 잠들지 못한다. 별이 짖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것이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올 겨울 들어 부쩍 심하게 짖어대니 사람이 살 수가 없다. 낮에는 잠잠하다 밤만 되면 짖는다. 좋아하는 사과에 말린 닭고기와 소시지로 꼬드겨도 그때뿐, 소용이 없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대책을 세워야 했다. 열흘가량 잠을 설친 부기 눈에 핏발이 서고 머릿속이 하얘지자 미칠 지경이다. 별이를 병원에 몇 번 데려가 봤지만 의사들도 원인을 집어내지 못한다. 의사는 가족들이 강아지를 더욱 따뜻하게 대하고 심리적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다는 원론적 얘기만 한다. 다만 최후 수단으로 성대제거수술이 있긴 한데 그것은 신중히 결정할 문제라며 더 이상 언급을 삼간다. 부기는 성대수술을 고려하지 않았다. 어찌 가족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행할 수 있겠는가.
어제 별이 짖는 소리가 이웃집에 들려 관리실에 민원을 제기한 모양이다. 경비아저씨가 오고 관리실에서 찾고 이런 난리가 없다. 관리실에서 네 번째 경고를 하고 간 그날 기어코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희끄무레한 새벽빛 감도는 이른 시각에 부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강아지가 깨워준 것이다. 오늘따라 별이가 극렬하게 짖어대고 있다. 순간 억센 남자 손아귀가 별이를 낚아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부기가 소스라치게 놀라 아내를 깨울 때 이미 별이는 바닥에 쭉 뻗어 있다. 막순이가 기겁을 한다.
“별이야, 별이야! 이게 어떻게 된 것이니, 당신이 그랬어요? 어머, 이이가 어쩌려고….”
부기는 이미 사색이 되어 강아지 상태를 살핀다. 죽은 줄 알았던 별이가 한참 만에 눈을 뜬다.“아, 살아 있구나.”
부기 입에서 신음 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쪽에 정신을 놓고 있어 애들이 일어난 줄도 몰랐다. 언제 깼는지 두 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다. 소란 통에 할머니도 나와 계신다. 부기는 가족들을 정면에서 쳐다보지 못한다. 졸지에 죄인 신세가 된 것이다.
아내가 별이에게 물로 된 우황청심환을 먹였다. 약을 먹더니 정신이 조금 든 모양이다. 두리번거리다 부기를 발견하고 혀를 내민다. 손등을 핥고 싶을 때 하는 행동이다. 방금 전, 그처럼 모질게 했는데, 까닥했으면 죽을 뻔 했는데 아빠에게 아는 체를 하다니….
병원에서 3일 밤 자고 퇴원한 별이는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똑바로 걷지 못하고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런데 큰 문제가 발생했다. 별이에게 언어장애가 생긴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리내어 짖지 못한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강아지가 밤새도록 짖어대며 소란을 피워 생긴 일인데 이제 전혀 짖지 않아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니 일이 꼬여도 되게 꼬였다. 부기네 집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용하다. 그러자 오빠들 말수가 눈에 띄게 줄고 엄마는 조심스러워 발언을 삼가며 아빠는 죄책감에 입을 봉하니 칠순 할머니 한숨만 더 길어진다.
별이는 6개월간의 긴 침묵 끝에 말문이 열리고 음식을 삼켰으며 운동장에서 맘껏 달렸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부기 마음이다. 그는 사람 생명이나 짐승 목숨이나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흉중에 새겼다.
짝짓기
신방 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이 왔다. 별이가 변화를 보인 것이다. 원래 활발히 움직이는 녀석인데 요즘 들어 부쩍 수선을 떤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입덧이다. 지난 임신 때에는 곱게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입덧을 한다. 강아지가 사과를 본체만체한다. 사실 별이와 사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부기가 25년 넘게 아침 사과를 먹는데 강아지가 달라고 보채 한 입 떼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녀석 아침간식으로 굳어져 버렸다. 별이가 입덧을 하고 배가 불러오자 가족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 사과를 멀리하지만 키위를 좋아하여 고놈을 칼로 잘라 내놓으면 날름날름 받아먹는다.
드디어 녀석 배가 불룩해졌다. 그런데 예정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부기는 퇴근하자마자 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얘기를 듣던 의사가 진찰을 해보자고 한다. 잠시 후, 강아지를 안고 나온 의사가 피식 웃는다.
“상상임신이에요.”
“뭐라고요?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상상임신을 합니다. 드문 경우긴 하지만 샛별이는 상상임신을 했어요.”“세상에! 새끼 없는데 젖이 부르고 배가 이토록 튀어나올 수 있단 말입니까?”
“네. 그래서 강아지 주인들이 진짜 임신한 걸로 착각하지요.”
“이거 강아지한테 제대로 한 방 먹었네. 얘들아, 개 데리고 가자. 선생님 고맙습니다.”
“진료비 내셔야죠.”
“진료비라니. 몇 마디 물었을 뿐인데…. 이런 것도 돈 받습니까?”
“의사가 배 만지고 임신 여부를 판별했으니 당연히 진료에 속합니다.”
“그래, 진료비가 얼맙니까?”
“3만 원만 내세요.”
“이보시오, 선생. 배 한 번 만지고 3만 원은 좀 심한 것 아니오.”
수의사는 미소 지으며 부기에게 다가와 고갤 숙인다.
“정 그러시면 2만 5천 원 내세요.”
집에 돌아온 부기가 막순에게 짜증을 부린다.
“앞으로 저 인간 내 눈에 보이지 않게 해.”
“별이 말인가요.”
“그럼 여기 쟤 말고 누가 또 있어.”
할머니
부기 어머니는 각시섬에서 50년 넘게 잠녀 일을 하다 나이 들어 버들골 아들 집에 살고 있다. 어릴 때 친정이 잘살아 근심걱정 없이 자랐으나 팔자가 박복하여 숱한 고생 끝에 황혼을 그럭저럭 보내고 있는 것이다. 원래 강건하여 구십을 바라보는데도 특별히 아픈 데가 없다. 아들은 직장에, 며느리는 가게에, 손자들은 학교에 가니 종일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별이와 할머니는 자주 다퉜다. 할머니가 오래된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데 녀석이 그것을 약점으로 알고 어른 말을 듣지 않음은 물론 할머니 치마폭을 물어뜯으며 살살 약을 올리는 것이다. 하루는 할머니 발뒤꿈치를 물어 피가 조금 비칠 정도로 상처를 입혔다. 부기가 신문지를 둘둘 말아 강아지에게 갔다. 녀석은 신문지만 보면 꼬랑지를 팍 내린다. 동서가 강아지 줄 때 말 듣지 않으면 신문지를 쓰라고 일러주었다. 어릴 때 신문지 냄새를 맡게 하면 그것이 각인되어 신문 한 장으로 녀석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별이가 어느새 눈치를 채고 자기 집 구석에 들어가 몸을 숨긴다.“이 녀석, 왜 할머니 성가시게 하는 거야. 오늘 매 좀 맞아야겠다.”
강아지를 집에서 나오게 하고 벌을 세운다. 별이 가족에게 보일 수 있는 유일한 기능은 뒷발로 서는 것이다. 그다음 앞발을 모아 흔드는데 얼핏 보면 잘못을 비는 모양이다.
할머니는 종일 소파에 누워 계신다. 그 옆을 별이가 지키고 있다. 누워 있기 지루한지 노인이 긴 하품을 하고 강아지는 노인 품에 깊이 파고든다. 개를 싫어하던 할머니가 강아지와 가깝게 지낼 줄 몰랐다. 할머니는 갈수록 기억력이 떨어지고 방향감각마저 가늠하기 어려워 이제는 가까운 딸네 집도 못 찾는다. 온종일 집에 갇혀 살다 보니 말 걸 상대는 오직 별이뿐이다.“아가, 이리 오너라. 할미가 먹을 것 주마.”
노친이 반찬통에서 멸치 몇 마리를 꺼내 별이에게 내민다. 구수한 멸치 냄새를 맡은 강아지가 허겁지겁 바닥에 떨어진 물고기를 받아먹는다.
쉬는 날 몸도 피곤하고 특별히 다른 일정이 없어 집에 있는 날엔 그런 모습을 더욱 자주 보게 된다. 할머니가 별이와 얘기하는 소리가 안방까지 들리기 때문이다. 부기는 개를 살갑게 대하는 노친을 보며 어머니가 많이 외로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젊어서는 출세 위해 매진하고, 중년에는 가족의 화목을 위해 애쓰고, 늙어서는 가난과 고독과 싸우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인생사라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 삶의 과정 아니겠는가.
할머니가 비척대며 계단을 내려간다. 그 뒤를 강아지가 쫄랑대며 따른다. 버들골 은하수연립은 5층짜리라 엘리베이터가 없다. 강아지가 먼저 내려와 할머니 기다리며 연신 꼬리를 흔들어댄다. 할머니는 학교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별이가 앞장서 길을 안내한다. 녀석은 할머니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다 보니 이제 할머니 일과를 꿰고 있으며 웬만한 수는 읽어낸다. 할머니가 운동장 한 바퀴 돌 때 별이가 함께 돌며 할머니를 지킨다. 별이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할머니의 보호자며 반려견이다. 비 오는 날 빼고 할머니는 거의 매일 학교 운동장을 걸었으며 그 옆을 작고 눈부신 금발의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가 쫄랑대며 경호한다. 등 굽은 노인과 젊고 활달한 애완견의 환상적인 조합이다.
안나
우에무라 나오미는 스물아홉 나이에 알프스 몽블랑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안데스 아콩카구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알래스카 매킨리 등정에 성공한 금세기 최고 모험가다. 그는 세계 최초로 5대륙 정상에 올랐으며 아마존 강 6,000킬로미터를 뗏목으로 건넜다. 그는 1974년 12월부터 1976년 5월까지 1년 5개월 동안 개썰매로 그린란드 북극권 12,000킬로미터를 단독 주파했는데, 이 여정을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라는 책으로 남겼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안나는 개의 이름이다. 이누이트 마을 야콥스하운에서 출발하여 알래스카 연안 코츠뷰까지 전 일정을 완주한 열두 마리 개썰매의 대장견이며, 나오미의 분신인 토종개 암컷이다.
나오미는 안나의 헌신이 없었다면 결코 북극권 종주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하고 충성스러운 안나가 대장으로서 통솔력을 발휘하여 흩어진 대열을 수습하고 내부분란이 일어나 개들이 모두 도망칠 때 도주한 개들을 끌고 다시 나타나는 장면은 극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날카로운 얼음조각에 발바닥이 베어 피투성이가 되고 과도한 행군으로 발톱이 빠져 나가는 시련 속에도 굴하지 않고 시작에서 끝까지 위대한 역사를 함께 써 나간 썰매개의 눈물겨운 여정은 놀라움 그 자체다. 특히 대장개 안나는 긴 여행 동안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임신과 출산의 고통 속에서도 나오미 곁을 떠나지 않는다.
부기는 젊은 시절 한창 산에 다닐 때 나오미를 알았다. 처음 읽은 책이 『내 청춘 산에 걸고』, 일본 메이지대학 산악부 학생답게 자연에 대한 존경과 산 사랑을 진솔하게 묘사한 산악도서로 ‘나오미 문학’이 인정받은 수작이다. 부키는 도봉산 포대능선 꼭대기에 앉아 있을 때나, 설악산 수렴동계곡 단풍나무숲을 거닐 때 배낭에서 이 책을 꺼내 읽곤 했다. 1976년 5월 북극권 탐험을 마친 나오미는 귀국길에 안나를 포함해 생사고락을 함께한 개 네 마리를 일본에 데려간다. 그러나 마땅히 기를 곳이 없고 다시 길을 떠나야 했으므로 개들을 비교적 기온이 낮은 훗카이도 동물원 두 곳에 맡긴다. 그곳에서 안나가 다른 개와 사랑에 빠져 새끼를 낳는다. 그때의 기쁨을 나오미는 이렇게 표현한다.“내 손자가 태어난 심정이다.”
안나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동물을 얼마나 존중했으면 이런 표현을 쓰겠는가. 잔꾀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자연 속에 들어가 몰입하는 나오미의 심성으로 볼 때 손자라는 말은 진정한 마음이 담긴 최고의 찬사라 생각한다. 이런 마음으로 동물을 대하고, 이런 가슴으로 사람을 대할 때 진실한 울림이 나오지 않을까.
별이
소파에 누워 있는데 별이가 깡충 뛰어오른다. 별이와 부기 배가 맞닿아 있다. 서로의 심장박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부기의 심장이 길고 굵게 뛰는 데 반해 별이는 가늘고 빠르게 뛴다. 품에 껴안고 가만히 안아주면 쉽게 잠든다. 일단 수면에 들어가면 짧고 달게 잔다. 코도 곤다. 몸에 경련을 일으키거나 깜짝깜짝 놀랄 때도 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도 난다. 잠자리가 사납거나 악몽을 꿀 때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단연 사과다. 오랫동안 입맛 들인 까닭도 있지만 천성적으로 과일을 좋아한다. 사과를 가장 많이 먹고 그다음이 제철과일이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 부기는 매일 과일을 먹는데 그 덕에 과일 맛을 알게 된 별이는 부기가 과일 먹을 때마다 달라고 보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과일을 얻어먹는다. 과일뿐 아니다. 옥수수, 고구마, 감자, 무, 파프리카, 땅콩에 이르기까지 못 먹는 농산물이 없다. 그리고 입이 고급이라서 껍질 벗긴 과일만 먹는다. 그래도 별이가 껍질째 먹는 과일이 두 가지 있는데 참외와 단감이다. 막순이가 참외하고 단감을 깎을 때 식탁 밑에 기다리고 있다가 껍질을 주면 제 집에 물고 들어간다.
사람이나 강아지나 균형 있는 식단이 건강 유지의 지름길이다. 영양이 골고루 들어간 주식, 적게 먹는 습관, 신선한 과일과 채소 등 별이는 건강한 몸으로 천수를 누릴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셈이다. 야생 동물과 달리 애완용 동물은 사람이 모든 것을 보살펴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은하수연립에 재가입주한 별이는 손가락 까닥 않고 평생 먹고 놀았다. 부기는 근무가 되게 힘들거나 주변 일로 어려움에 처할 때 차라리 개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만사태평 드러누워 근심걱정 없이 사는 별이의 팔자가 부럽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