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 이야기
김종광 지음 | 샘터
광장시장 이야기
김종광 지음
샘터 / 2012년 7월 / 278쪽 / 14,800원
아름다운 모양이 굉장하다
고종 황제는 1897년 10월,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했다.
철호는 왠지 뿌듯했다.
"형님, 이젠 우리나라가 청나라랑 맞먹는 거지요?"
"지랄한다. 맞먹기는 무슨, 마지막 발악인기라."
모처럼 집에 와서 술 한잔하던 형호는 철호의 머리통을 때렸다. 동생 철호보다 열 살이나 많은 형호는 배오개시장(지금의 광장시장)에서도 제일 잘나간다는 이화 객줏집에서 일하고 있다."형님, 이제 지도 열다섯 살입니다. 언제까지 여기서 푹푹 썩으란 말입니까. 저도 객줏집으로 데려가 주세요. 겁나게 열심히 일할 자신 있당게요.""때가 되면 부를 것이다. 너까지 떠나면 누가 어머님을 모신단 말이냐."
형호는 어머니를 향해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어머님, 조금만 더 고생하세요. 일이 잘 풀릴 겁니다. 곧 보란 듯이 모실 겁니다.""나는 괜찮다. 그런데 너 장가는 언제 갈 생각이냐? 돈도 좋지만 슬슬 장가를 들어야제."
"장가 얘기는 좀 그만하쇼. 다 생각이 있으니께."
철호는 형의 속셈을 알고 있다. 형은 객줏집 셋째 딸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저번에 가서 보니 셋째 딸도 형을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형은 객줏집 사위가 돼서 그 객줏집을 물려받고 싶은 거다. 그러니 스물다섯 살이 되도록 그 많은 혼인 자리를 물리치며 총각으로 버티고 있는 거다.철호는 열다섯 살밖에 안 되었지만 이름난 나무꾼이다. 형이 대주는 돈으로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철호는 욕심이 있었다. 형한테 객줏집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은 해놓았지만, 형을 크게 믿지는 않았다.'두고 봐라. 나는 내 힘으로 일어설 거다.'
철호는 보부상이 될 결심이었다. 이화 객줏집 주인도 보부상이었다잖은가. 강원도 동해안과 배오개시장을 오가면서 어물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장사를 하려면 밑천이 필요했다. 그래서 종일 나무만 하는 것이다. 철호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나무하고만 살았다. 철호가 배오개시장에 져내는 나뭇짐은 상등품 대우를 받았다.
그날도 새벽부터 나무를 하러 갈 참인데, 배나무 숲 언저리 움막에 사는 배 목수가 찾아왔다. 목수 배 씨는 사람들이 사는 움막들을 손봐서 그럭저럭 집 꼴을 갖추게 했고, 미나리꽝촌이라고 불리는 철호네 동네 집들도 튼튼하게 고쳐주었다. "아저씨가 아침부터 어쩐 일이래요. 미나리 사실 일 있어유?"
철호네 동네 사람들은 대대로 미나리를 전문적으로 재배했다. 논농사가 어려울 만큼 습지였다. 처음에 누가 가장 먼저 미나리를 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배오개시장에서 좋은 값에 팔렸다. 동네 이름도 자연스레 미나리꽝촌으로 바뀌었다."니 하루 종일 나무해서 얼마나 버나? 내가 석 냥 주께, 나 따라댕길래?"
"석 냥 준다고요? 아저씨가 무슨 돈이 있다고?"
"걱정 마라. 일거리가 쌨다. 다 대한제국 덕분이지."
대한제국의 첫 황제가 황제국의 위엄을 보이고자 여러 가지 거창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을 '황제의 도시'로 새단장하려는 것이다."가장 먼저, 엄청나게 넓은 길을 전후 사방으로 뚫기로 하셨지."
"길 닦는 데 목수가 필요한가요?"
"길을 닦으려면 철거를 해야 될 거 아닌가. 지금 한양에 가가(假家)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원래 길바닥이었는데 슬금슬금 엮어 만든 가게들이다. 그것들 깡그리 쓸어야 길을 닦든지 말든지 하제."조선 상업을 상징했던 상설시장 종로 시전가(종로 네거리의 육의전과 시전)는 이미 몰락한 상태였다. 1883년 인천 제물포가 개항되자 일본 상인들이 도성으로 몰려왔다. 신기하고 놀랍고 값까지 싼 외국 상품이 들이닥친 것이다. 육의전과 시전은 상품 독점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손님 없는 곳이 돼버렸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후 누구나 자유롭게 상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대대로 장사를 해왔던 육의전과 시전 상인들은 갑작스레 망해 버리거나 간신히 유지하고 있거나 장사터를 옮겨 재기를 도모하고 있었다. 반대로 그곳에서 장사를 해보겠다고 임시로 가게터를 엮은 새로운 상인들도 많았는데 그 가가들을 모두 쓸어 없앤다는 것이다."그럼 그 가가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래요?"
"장사꾼들 걱정까지 해줄 필요 없다. 뭐, 남대문이나 여께 배오개로 몰려들 오겠지. 나라에서도 남대문 쪽에 새로 가게터를 만들어준다는 얘기도 있고. 야,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봐라. 길을 닦고 나면 어찌 되겠나. 그 길가에 새 건물들이 들어서야 할 것 아닌가. 내 말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겠나?""못 알아듣겠는데요."
"목수가 살판나는 세상이 왔단 말이다. 나무꾼 때려치우고 내 조수를 해라. 나 따라댕기면 돈도 벌고 큰 목수가 될 수 있을 기다. 나 따라다니면서 신식 기술도 배우라마."철호는 아주 먼 미래까지 내다볼 염량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니 배 목수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석 냥을 품값으로 쳐준다지 않나.소문대로 황제는 가가에서 쫓겨난 상인들을 위해 '선혜청(宣惠廳) 창내장'을 개설하도록 했다. '남대문시장'의 효시다. 그러나 선혜청 창내장에 입점 가능한 상인은 150여 호에 불과했다. 창내장 건설 공사에 투입된 목수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서울 한양에 장사꾼이 수천 명을 헤아리지 않나. 너도나도 장사하겠다고 설치는 판국이야. 150호 가지고 뭘 어쩌겠다는 거지?""재력 있고 힘 있는 사람 순으로 뽑겠다는 거지. 떨거지 난전 장사꾼들은 이런 데 못 들어오지."
철호가 배 목수를 따라다닌 지 어느덧 일곱 해가 흘렀다. 스물셋이 된 철호는 타고난 손재주에 타고난 성실함으로 어엿한 상급 목수가 되었다. 배 목수는 3년 전에 운명했다. 철호는 극진히 스승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리고 배 목수가 배오개 주막집 여인에게서 얻은 딸 귀염이랑 혼례를 치렀다.형은 포부대로 객줏집 사위가 되었고 객줏집을 물려받았다. 어머니는 형이 모셔 갔다.
귀염이는 시어머니보다 미나리 농사를 더 잘 지었다. 철호는 "나 혼자 벌어도 충분한데 왜 그 고생인가?" 하며 탐탁해하지 않았지만, 귀염이는 당찬 여인네였다."돈이 모든 걸 말하는 세상이 오고 있어요. 놀면 뭐합니까.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요."
애를 둘이나 낳고도 귀염이의 악착스러운 농사는 계속되었다.
일본의 내정간섭이 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철호는 어떤 이들처럼 나라 구하겠다는 의병으로 나서지는 못할망정, 막걸리 안주로나마 나라 걱정을 했다. 철호가 울분이 가득 차서 씹어 뱉듯이 말했다."정말로 지독한 일본놈들이구만. 군대도, 토지도 빼앗고 이제 시장까지 빼앗으려 하다니. 우리가 지은 창내장을 먹어치울 기세잖은가. 제기랄, 우리 손으로 이 시장을 지어 일본놈들한테 바친 셈이군."일본인들은 나중에 명동이 되는 '진고개'까지 진출해 있었다.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된다고 해서 진고개라고 무시당하던 땅이, 일본 상인들의 거류지와 시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일본 상인들이 만족을 모르고 창내장을 먹어치우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일본 상인들의 속셈은 단순히 창내장을 접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창내장을 접수한 이후 그 시장을 종로로 옮기려는 것이었다. 조선의 상업 심장부인 종로를 삼키려는 야욕이었다.
철호는 대취한 상태로, 배오개시장 이화 객줏집으로 형을 찾아갔다.
"난 형처럼 장사를 배우지 못해서 아무것도 모르오. 하지만 말이오, 창내장 그거 일본놈들한테 다 넘어가면 안 되는 거 아니오? 일본 장사꾼이 한양 한복판 노른자위에다 빨대를 박아서 쫙쫙 빨아들여도 되는가 말이오.""우리들이라고 아무 생각 없는 거 아니다."
형호가 말한 '우리들'이란, 배오개시장의 포목상들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젊은 상인들이었다. 배오개시장의 거상들은 일제히 포목상으로 전환한 지 오래였다. 숙박업 중심의 객주에서 판매업 중심의 포목점으로 바꾼 것이었다.화폐개혁 이전의 서울의 상업계는 네 개의 세력권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종로와 광교를 무대로 한 전통적인 시전 상인으로 주로 견직물 및 면포 상인들이었다. 또 하나는 배오개 객주 출신 상인들로 포목상인 등이 중심이었다.형호도 배오개 포목상인 무리의 중심인물이었다. 또 하나는 남대문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가로 객주 출신 상인들이 토산품을 취급했다. 또 하나는 마포 상가들로 쌀, 소금, 어류 등 생활필수품을 서울과 지방 사이에 중재했다. 그러나 화폐개혁 이후 닥친 금융 공황에 휘말려 이들 대부분이 도산하고 말았다. 이때 무사히 살아남은 상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포목상 중심으로 새로운 시장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주 만나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이미 창내장 상당수 가게가 왜놈한테 넘어갔어요. 창내장이 일본놈 천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운영권 자체가 일본놈에게 넘어가는 것도 오늘내일 일이고요.""설령 운영권을 우리 정부 내혜원(內藏院)이 유지한다고 해도, 일본놈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 정부에 친일 모리배가 너무 많아요.""일본놈들의 목적은 창내장을 접수하는 게 아니라 종로로 진출하려는 겁니다. 창내장을 없애 버리고, 대신 종로에 상설시장을 열자고 우길 겁니다. 남대문이 아니라 막바로 종로까지 쳐들어오겠다는 거라고요.""왜놈들이 종로로 들어오는 것만은 기필코 막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종로에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진고개 일대는 이미 일본 땅이 되었습니다. 남대문로는 물론 구리개(지금의 을지로) 일대까지 먹혀들었습니다. 우리는 종로만이라도 지켜야 합니다. 청계천 이북으로 종로와 이현(배오개)을 잇는 상권을 계획해야 합니다. 일본 상권이 청계천을 건너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우리의 새로운 상설시장은 종로와 이현을 잇는 중심에 위치해야 합니다.""그래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조선 상인만의 새로운 시장을!"
"아예 청계천에 다리를 놓는 것은 어떻습니까? 진고개를 바라보는 청계천 위에다 다리를 놓고 그 위에 시장을 만드는 겁니다. 청계천 다리 시장, 종로시장, 이현시장 이 삼각형으로 일본 상권이 진출하는 걸 막아내는 겁니다.""청계천이 아무리 준천이라지만 그 위에다 다리를 놓는다니요? 상상력이 지나친 것 아닙니까?""종로로 가든 이현으로 가든 지금 그곳엔 영세 상인들이 밀집해있어요. 거기로 가면 그분들과 필시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놈들이 보는 앞에서 동족끼리 싸우는 일은 없어야죠. 청계천 다리가 최고의 자리입니다.""어디로 가느냐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요. 우리들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불가능합니다.""해보지도 않고 왜 불가능하다 하십니까?"
"우리가 새로운 시장을 건설한다 한들 정부가 허가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선 정부의 선허가를 받아야 합니다.""정부가 그런 허가를 해주겠습니까?"
"정부는 어차피 일본의 압력 때문에 골치가 아픈 상황입니다. 그대로 창내장을 유지할 수도 없고 어디로 옮길 수도 없고, 이때 우리 조선의 상인들이 중심이 돼서 창내장이 옮겨 갈 새로운 시장을 짓겠다, 대신 그 운영권을 우리들에게 달라, 그런 약조를 해야겠죠. 황제께서도 이왕이면 우리 조선 상인들에게 시장을 넘기려 하지 않겠습니까?""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끽해야 포목상에 객주하는 소자본가인데, 우리가 무슨 연줄로 황제께 닿을 수 있겠습니까?"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다. 젊은 상인들만 새로운 시장 건설을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황제와 황제의 최측근 관리들도 상설시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황제는 일본 정부의 갖은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지만 나름대로 조선 백성을 위한 백년지대계를 꿈꾸는 정책을 은밀히 펼치고 있었고, 시장에 대해서도 그 필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김종한은 황제의 최측근 고위 관리로서 상당한 재산가였고 상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초창기 설립된 조선인 회사나 은행 등의 상업 조직에 김종한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었다. 즉 김종한은 황제의 은밀한 경제정책을 도맡아 수행하는 고위 관리자였다.젊은 상인들과 연이 닿은 김종한이 황제에게 그 움직임을 알리자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짐의 뜻 또한 같다. 대한제국에 상설시장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게나.""일본 정부의 방해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자네가 앞장서도록 하게."
황제가 내탕금 지원을 약속하고, 대한제국 정부의 최고위 관리 김종한이 총대를 메자, 상설시장 건설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신속하게 추진되었다. 마침내 '광장회사' 발기가 기사화되었다.
'도성 남문 선혜창 안의 시장을 종로로 옮긴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최근 한성에서 부자 소리 듣는 수십 명이 광장회사 설립을 논의하고, 자본금을 모집하고 있다. (고수, 즉 자본금은 4천 원가량이다.) 사장은 김종한 판서로 의결했다. 광교에서 장교까지 나무판자로 덮고 그 위로 시장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공사를 시작하기로 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회사 이름 '광장(廣長)'은 '광교(廣橋)에서 장교(長橋)까지'를 축약한 것이지만, '넓고 길다'는 뜻으로도 풀 수 있으니, 백년지대계를 꿈꾸는 이름으로 손색이 없었다.광장회사는 1905년 7월 5일에 창립식을 가졌다. 발기인 30여 명만 모인 조촐한 행사였다. 형호는 발기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물론 창립식에도 참석하여 무량한 감격을 맛보았다.광장회사가 농상공부에 정식으로 인가를 청원한 것은 1905년 7월 10일경이었고, 신청 직후 바로 인가를 얻었다. 시장의 명칭은 '동대문시장', 시장의 경영체 법인명은 광장주식회사로 인가받았다. 사장은 김종한, 사무장은 박기석, 총무장은 신태휴 등 회사의 중책을 맡은 임원들은 모두 양반가 출신이었다. 하지만 주주의 대부분은 평민 출신으로 젊은 날 고생한 뒤 부를 이룬 이들이었다. 배오개시장의 객주였다가 포목상으로 전환한 형호 또한 주주가 되었다.
인가를 받은 즉시 공사에 들어갔다. 이미 이름난 목수였던 철호도 공사에 참여했다.
"참으로 신이 나는구만. 우리 조선 사람들만의 시장을 짓는다니 말일세."
철호의 동무 명진이 뿌듯하다는 듯 말했다. 철호가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맞장구를 쳤다."청계천에 다리를 짓는 것도 참 멋지지 않은가."
"그런데 하늘이 심상치 않구먼."
"장마철 아닌가."
"적당히 내려줘야 할 텐데."
그러나 목수들의 바람과는 달리,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청계천에 모처럼 물이 빼곡히 차 흘렀다."목재를 건져라!"
목수들과 일꾼들은 하천 바닥의 목재들을 하나라도 더 건져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야속한 비는 목재들을 남김없이 쓸어가 버렸다. 엮어놓은 골재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결국 공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시장 건설이 백지화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철호는 답답해서 형호를 찾아갔다.
"형님, 포기하는 겁니까? 그깟 홍수 한 번에 공사 때려치우는 거예요? 목재야 또 사면 되는 거 아닙니까. 공사 다시 시작해야죠?""홍수도 문제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일본놈들이 방해하고 있어."
일진회의 거두 송병준이 선혜청 창내장의 운영권을 획득한 것이었다. 일본은 선혜청 창내장을 폐지하려던 속셈을 접었다. 대신 자신들의 충견 송병준에게 창내장을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일본 공사관은 '광장시장의 설치가 남대문시장에 영향을 미쳐 기존 상권을 교란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조회(照會)를 발송했다. 공사를 중지하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일본놈들, 대체 왜 그러는데요?"
일본 상인들의 진고개와 너무 가까운 청계천 다리 위의 공사를 막는 동시에 친일 상인들의 근거지가 된 남대문시장을 보호하려는 것이, 일본 공사관의 일석이조의 속셈이었다."그럼 시장을 포기하겠다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냐,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