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기억하게 된다
김광희 지음 | 달과소
사랑하면 기억하게 된다
김광희 지음
달과소 / 2012년 6월 / 284쪽 / 12,000원
1장 작은 이야기들
조심해야지, 눈물 없는 슬픔이
"할머니. 나 태권도장 갈 때 동전지갑 가지고 갈래요."
"왜?"
"태권도장 옆에 있는 새싹문방구에 살 게 있어서요."
"뭘 살 건데?"
"친구가 거기서 100원짜리 과자를 사먹는데 나도 사먹고 싶어요."
"안 돼. 그건 불량식품이야. 그런 것 사먹으면 병 생겨. 내일이 의진이 생일이니까 엄마가 맛있는 것 많이 사줄 거야.""할머니. 그럼 나도 내 생일 축하로 문방구 과자 사먹어 볼래요."
"절대 안 돼. 할머니가 동전지갑 숨긴다."
"그럼 오늘은 안 가져가도 할머니 없을 때 가져갈 거예요."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일곱 살 너에게 불량식품의 결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구나.
의진이와 여진이가 함께 뛰어 놀다 여진이가 마룻바닥에 얼굴을 부딪치며 넘어졌다. 얼마나 아픈지 펄펄 뛰며 자지러지게 운다. 나는 여진이를 끌어안고 마룻바닥을 치며 "마룻바닥 맴매" 했더니 여진이는 오빠 때문에 넘어졌다며 오빠를 '땟지' 하란다. 그래서 "오빠 땟지" 했더니 억울한 의진이가 한마디 한다. "할머니. 그냥 한번 해보는 소리지요?"
여진이는 아직도 입에 그 무엇이든 넣고 빨기를 좋아한다. 나는 "안 돼!"하고 큰 소리로 야단치면 여진이는 깜짝 놀라 재빨리 입속에 든 것을 뱉어 내동댕이치며 화난 얼굴을 하고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집어던진다. 그리고 야단칠 때 오빠가 옆에 있으면 오빠를 끌어안고 엉엉 운다. 나는 나쁜 환경호르몬과 전자파와 먼지, 곰팡이, 진드기 이런 것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다. 그래서 아이들 손이 먼지 있는 곳에 닿거나 장난감 등이 입에 닿으면 질겁하고 큰 소리로 찌찌 찌찌 하고 소리를 지른다. 하도 찌찌 찌찌 하고 고함을 쳐대니까 오늘은 의진이가 묻는다."할머니. 찌찌가 뭐예요?"
"그것은 더럽고 나쁜 것이야."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살인적인 오염 물질이 우리 아이들을 상하게 할까 봐 노심초사 내 마음은 늘 불안하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길가에 종이 하나라도 함부로 버리면 온 세상이 더럽고 지저분해지니까 절대로 길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고 아주 진지하게 말해준 적이 있다. 그래서였는지 의진이와 여진이는 아직까지 껌 종이 하나라도 길가에 버리지 않고 집에 가져와 휴지통에 넣는다. 요즘 여진이는 집에 돌아오는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순간 사탕 껍질이나 껌 종이를 손에 땀이 나도록 꼭 쥐고 와서 내게 먼저 준다. "할머니. 누가 길에 저런 걸 다 버렸네요. 그러면 안 되는데."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보고 여진이는 낯을 찡그리며 말한다. 아직도 자동차 타고 가며 담배꽁초를 차창 밖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버리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여진이가 공부하고 있는 한글 카드에 영어단어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초등 1학년인 의진이에게 영어단어를 암기시켜 보기로 했다. 의진이는 놀랍게도 40여 개의 영어단어를 몇 분 안에 금방 익힌다. 나는 하도 신통해서 기쁜 마음으로 돈 1천 원을 주었더니 의진이는 바람처럼 날아가 제가 좋아하는 유희왕 카드를 사 가지고 왔다. 그다음 날 나는 영어단어의 스펠링까지 외우면 1천 원을 또 주겠다고 했더니 10여 분 만에 20개의 단어를 거뜬히 받아쓴다. 그리고 또 1천 원을 주었더니 이번에도 유희왕 카드를 사가지고 왔다. 나는 후회했다. 별로 필요도 없이 온 집안 구석구석 널려 있는 카드를 무심코 사버릇하는 의진이에게 돈을 주어 본 것을 후회했다. 돈으로 상금을 주면서 영어단어 익히기를 시작한 내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어제 오후,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온 의진이의 손에 색다른 카드가 있었다. 웬 카드냐고 물었더니 "이 카드는 한 장에 천 원씩 하는 비싼 카드인데 반 친구가 주었어요. 그리고 오늘 공원에서 놀 때 신발차기를 해서 내가 제일 멀리 차서 선생님이 상금으로 1천 원을 주셨어요."라고 대답했다."그래. 그 천 원 어디 있니? 어디 좀 보자."
"친구에게 카드값으로 주었어요. 내일 그 친구에게 1천 원을 더 주어야 돼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친구가 카드를 그냥 주었다고 하더니 그게 아니고 천 원짜리 카드를 친구에게서 2천 원에 산 셈이다. 나는 당장 내일 그 친구에게 카드를 돌려주라고 야단쳤지만 어느새 의진이가 친구와 돈 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나 놀라운 충격이었다. 그날 밤 친구 사이에는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란 것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여덟 살 의진이가 무엇을 알아들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들이 일어날지 두렵기까지 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되도록 돈을 주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할머니, 오늘 유치원에서 운동시간에 친구가 실수로 내 눈을 쳤어요. 주먹으로. 난 너무 아파서 울었어요. 그런데 눈물이 잘 안 나왔어요. 눈물 없는 슬픔이었어요.""여진아.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지."
2장 흘러가는 강물처럼
우물가의 여인
종교 음악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내가 어려서부터 교회에 출석했던 이유는 단지 예배시간에 성가를 부르기 위해서였다고밖에 더 할 말이 없다. 찬송가 가사에 감격하여 눈물을 글썽이고 성가의 성스러운 선율이 내 목소리인 양 착각도 하고, 믿음이나 구원 이런 것에는 상관도 없는 찬송가를 부르기 위해 교회에 출석했던 내 종교생활이었다. 그러나 성가를 부르는 어느 순간에는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체험한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 헛되고 헛된 것들을 / 그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 오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워 주소서
어느 주일 대예배 시간에 헌금 송으로 내가 홀로 부른 복음성가다.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예수님이 나의 구주되심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예배 후 어느 교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고, 왜 한 사람에게 많은 재능을 주셨느냐고. 그러나 지금도 생각하니 감당도 못할 섣부른 재능을 나에게 주신 하나님은 잘못하신 것 같다. 나는 지금 교회에 나가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도 귀로 듣는 일밖에는 더는 할 일이 없다. 가끔 Malotte가 작곡한 주기도문을 테너 박세원 씨의 목소리로 들으며 왜 내가 수녀가 못 되었는가를 생각한다. 천방지축, 야생마 같은 나를 주의 엄하신 규율과 사랑의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길들였다면 부모, 형제, 남편, 자식들에게 그 많은 상처는 주지 않았어도 되는 것을.
우리들의 큰 죄 다 용서하옵시며 / 또 시험에 들게 마시고 죄에서 구원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황성숙 목사님! 올해에도 어김없이 부활절이 다가오네요. 그래도 내가 조금은 덜 늙었을 때 목사님은 내게 부활의 참의미를 정성 다해 열심히 설명해 주셨는데, 아직도 나는 부활의 뜻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아무 소용이 없는 단어일 뿐입니다.
며칠 전에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영화라고 하는
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영화인지 하도 궁금해서. 역시 나같이 나약한 사람이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당한 그 처참한 고통을 애통해하고 슬퍼하기보다는 그런 무서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했지요. 나를 위해 그렇게 피 흘리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애통한 마음을 불러 일으켜 돈을 많이 벌어보자는 제작자의 의도가 혹시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성직자는 그 영화를 보고서 그보다 더한 고초를 예수님은 겪으셨다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라고 통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제작자도 예수님의 수난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낸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필름 목사님께 보내 드리겠습니다. 내가 소장할 영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도 내 허리를 난도질한 돌팔이 의사를 용서할 수 없고, 끔찍이 인간들을 괴롭히는 무서운 이 세상 모든 흉악범들을 저주하고 증오할 뿐입니다. 내가 언제나 잊지 못할 사랑하는 목사님! 당신은 어찌 이 험악한 세상에서 수녀원 같은 울타리도 없이 그래도 똑바로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그렇게 예수님만 바라보고 한결같이 사십니까! 남들이 다 겪는 어려움, 괴로움, 외로움 어찌 없으시겠는지요. 그래도 엄살 같은 거 한 번도 비치지 않고 그렇게 의연히 늘 그 자리에 서 계십니다. 내가 언젠가 목사님이 제일 부럽다고 말한 적 있지요. 예수님은 당신을 너무 많이 사랑하십니다."
"언제나 성녀 같으신 조성녀 어머님! 여전히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 예수님 뵈올 그 시간 준비하고 계시겠지요. 내 마음속 깊이 한결같이 정갈하시고 온화하신, 정겨운 모습 잊지 못합니다. 미비한 저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고 사랑 주시는 어머님! 목사님! 어머님과 목사님을, 만남의 은혜로운 시간을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목사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외롭고 슬픈 나를 위해 예수님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영원히 나와 함께해 주시는 사랑의 언약으로 알겠습니다. 내가 새 사람으로 거듭나지 못해도, 예수님은 나를 버리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의 언약은 영원할 것입니다."
무소유의 기쁨
그림 그리는 재주를 타고난 꼬맹이 핀 벨은 어느 날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리다, 폭력 조직의 대부 진 발리엔테를 살해하고 탈옥한 죄수 러스티그를 만나게 된다. 핀은 쇠사슬을 끊을 연장과 먹을 것을 가져오라는 협박을 받고 다음 날 밤 연장과 먹을 것을 준비해 러스티그를 찾아간다. 해양 경비선을 만났으나 죄수 러스티그를 보지 못했다고 거짓말하고 튜브도 몰래 던져 주어 그의 탈출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다음 날 밤 TV뉴스에서 그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아무에게도 이야기 못할 꼬맹이 핀 벨의 어린 시절 비밀이었다.
고아로 누나랑 누나 애인 조 밑에서 자라나는 핀은 에스텔라를 만나 사랑을 알게 되고 그림도 열정적으로 그렸으나, 가난으로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고기 잡는 어부로 평범한 청년으로 성장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제리래그노 변호사가 찾아와 의뢰인을 대신해서 자네 꿈을 이루어 주러 왔다며 뉴욕 가는 비행기 표와 천 달러를 놓고 간다. 핀은 다시 그림을 그렸다.
화려하고 멋진 개인전이 끝나던 날 밤, 러스티그가 핀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넌 충분히 그럴 자격 있어. 내가 기억하는 넌 아주 착한 아이였으니까. 꼬맹이 핀, 나한테 잘해준 유일한 인간이었어. 축하해, 네 성공, 개인전 모두 다. 난 평생 나쁜 짓만 하고 살았어. 한 가지 잘한 게 있다면, 내가 가진 돈 모두를… 돈은 무진장 벌었지… 그 돈을 네게 줬다는 거야, 전부 말야. 그것밖에는……. 내가 꾸몄어. 너를 뉴욕으로 부른 것도 나고, 그림도 내가 샀어, 전부 다. 넌 훌륭한 예술가니까." 배신한 동료의 칼을 맞고 피 흘리며 핀의 가슴에 안겨 죽어가며 러스티그는 그렇게 말했다. 오래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인지 모른다. 그 사람이 살아남아 날 후원했고, 선과 악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 후 나는 파리로 진출했고, 내가 원했던 걸 모두 얻었다. (감독: 알폰소 쿠아론, 주연: 에단 호크, 기네스 펠트로)
한 폭의 수채화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위대한 유산>의 이야기! 목숨이 끊기는 순간까지 무슨 돈이라도 움켜쥐고 살아야겠다는 속된 나의 생각을 부끄럽게 하는 영화 같다.
언제인지 모르게 몇 해 전서부터 내가 쓰고 있는 살림살이, 가구, 옷 등 내 일상용품들을 내일 죽을 사람처럼 정리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다행히 내가 갑자기 어느 순간에 죽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 물건들을 버릴 수도, 어디에 둘 수도 없어 골치 아플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한 배려에서다. 그리고 구질구질한 것들을 왜 깔끔히 정리 못 하고 너저분하게 끌어안고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내 아이들이 내 육신을 치울 때, 그때 투덜거릴까 봐 요즘은 꼭 새로 사야 할 사소한 용품까지도 한 번 더 생각한다. 이제야, 나는 무소유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나 보다.
1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외국 여행을 갔을 때 나만의 사진기를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함께 간 일행들이 찍어 주어 찾게 된 사진이 200장도 넘었다. 그때부터 그 많은 사진들이 짐스럽게 느껴져 용품 정리를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에 처음 가 본 유럽 여행에서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다. 가이드와 일행들이 "사진 찍어 드릴까요?" 할 때마다 가슴속에 찍고 있다고 사양하는 일이 지겹기까지 했다. 남아있는 내 사진은 여권사진과 주민등록 사진뿐이다.
내 아이들이 엄마처럼 살아야지. 그리고 오래오래 잊지 못할 그리운 엄마 얼굴을 아름다운 유산으로 남겨 주지 못할 것 같아 슬프고 외로울 뿐이다. 사는 내내 내 아이들과 손녀, 손자들은 세계의 명작과 영화 명장면을 더 오래 기억할 것이며 훌륭한 연예인과 위대한 예술가들을 더욱 많이 좋아할 것이다. 이 나이에 나도 영화 보는 데 미쳐 가고 있으니 말이다. 위대한 유산은 위대한 사람만이 남길 수 있음을 이렇게 늦게라도 깨닫게 된 것이 불행인지 그나마 다행인지. 이제 마음을 비우는 비법도 익혀야 하리라, 너무 늦지 않도록.
3장 감동으로 남아 있는 명화들
대지
빈농에서 거부로 또 다시 평범으로, 온갖 인생 역정을 메뚜기 떼에 날려 보낸 삶의 귀로! 아무리 어려운 삶에도 살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펄벅 여사의 대지! 내가 젊어서 영화 <대지>를 보고 느꼈던 감동을, 어제 DVD로 다시 보며 새롭게 감격했다. 역시 명작이다. 흙을 끓여 먹고 자식을 팔아먹어야 할 만큼의 뼈아픈 가난! 왕룽 처 울란의 선하고 애처로운 눈빛! 목숨과 바꿀 뻔했던 행운의 보석이, 그러나 부자의 아내들이 겪는 외롭고 쓰라린 고통을 가져올 줄이야. 울란! 그녀는 상상도 못했다. 남편은 첩을 들이고, 아들은 방탕하고, 그래도 자식을 팔지 않아 다행이고 배고프지 않아 그녀는 행복했다.
땅으로 다시 돌아온 왕룽 일가는 행복과 평온함을 다시 찾는다. 울란, 그녀는 죽어갔지만, 대하소설 박경리 작 『토지』에서는 땅은 생명을 키우는 곳이라고 말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에서 스칼렛은 타라의 붉은 흙에서 항상 역경을 이겨내는 힘을 얻는다. 땅에는 어리석은 내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의 커다란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죽어서도 아름다운 사람 - 오드리 햅번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오드리 햅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신은 불공평하시다. 왜 한 사람에게 그 많은 아름다움을 주셨는지, 그녀는 나이 들어 죽을 때까지도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 봉사하였다. 신이 작정하고 이 세상에 보내신 사랑과 아름다움의 표상이리라.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아름다운 세기의 연인이다.
나는 요즘 젊은 날에 보았던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눈에 띄는 대로 모두 보면서 그녀의 숲 속 요정 같은 매력에 다시금 사로잡힌다. 내 나이 30대였을 때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햅번을 처음 보았다. 그 순간, '어쩌면 이 세상에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있을까?' 하는 놀라움과 한없는 부러움을 느꼈다. 햅번은 열아홉 살 때 런던에서 발레리나 수업을 받다가 1950년에 마리오덴비 감독의 눈에 띄어 <낙원의 웃음>으로 데뷔했으며 1953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로마의 휴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탔고, 1964년 <마이페어 레이디>로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올랐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