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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 바람 앞에 당당하게 섰으니

서정윤 지음 | 북오션
들꽃이 바람 앞에 당당하게 섰으니서정윤 지음북오션 / 2012년 7월 / 192쪽 / 11,000원

1부'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위한 한 부분이 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_알렉산데르 푸시킨



삶이 비록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슬픔을 딛고 일어서면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항상 미래를 지향하고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하염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이여한 번 지나가 버리면 그리움으로 남는 것

우리는 스스로에게 속고 있다.자신을 바로 보지 못한 채 너무 높여 보는 것에 빠져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결과가 어떻게 되든 예측하지 말고 시작하는 것이다.부딪히며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정 _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십구문반十九文半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그들 옆에 벗으면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귀염둥아 귀염둥아우리 막내둥아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내 신발은 십구문반

아랫목에 모인아홉 마리의 강아지야강아지 같은 것들아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존재한다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아버지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어설픈 짓이다. 분명하지 않은 오늘을 살면서 어제는 어떠했는지 반성할 시간을 가지지도 못하고 그냥 아이들의 눈빛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버지이다. 이런 어설픈 삶을 바라보는 눈길은 어떨까. 굳이 알려줘서는 안 되지만 그걸 알고 있는 자신에게는 어떨까?

2부 내가 없으면 세상 모든 것이 없는 것이 된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_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사랑은 희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을 모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함께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솔로몬 왕 앞에서 "나의 아이가 아니니까 저 여인에게 주어서 키우게 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사랑인 것이다.

꽃 _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그 있는 것조차 내 속에 있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세상 모든 것이 없는 것이 된다. 내 속에 있는 그대여! 그대로 인해 내 삶에 백일홍 붉은 울음이 핀다. 그대를 위해 나는 꽃이 될 수 있다.

그녀는 환희의 환영幻影 _윌리엄 워즈워드



최초로 내 눈에 비쳤을 때그녀는 환희의 환영순간을 장식토록 보내진 아름다운 환영그녀의 눈망울은 황혼의 별처럼 고왔고거무스런 그녀의 머리칼도 황혼 같았다그러나 그 밖의 모든 아름다움은 싱그러운 5월과 명랑한 새벽과 같은 것춤추는 자태, 유쾌한 형상으로느닷없이 나타나 깜짝 놀라게 하고 기습을 감행했다

더 가까이, 바라보면정령이면서도 한 여인!집안에서 몸가짐 경쾌하고 자유스러워처녀다운 자유의 발걸음얼굴엔 고운 사연과 아름다운약속들이 깃들어 있고인정의 매일의 양식에도순간의 슬픔과 소박한 수작, 칭찬,비난, 사랑, 키스, 눈물과 미소에도 알맞게 빛나고 알맞게 선한 그녀

지금 나는 차분한 눈길로그녀 몸체의 고동鼓動을 바라보니생각에 잠긴 숨결을 숨 쉬는 존재삶과 죽음을 오가는 나그네확고한 이성, 절제된 의지이내와 통찰력, 힘과 익은 솜씨주의를 주고 작정作定된 완벽한 여인그러면서도 여전히 정령으로천사 같은 빛으로 휘황하여라

마음의 상처는 보듬어선 안 된다. 혼자 가지고 숨겨서는 상처만 커질 뿐이다. 그 상처로 죽을 수도 있다. 상처는 터뜨려야 한다. 우선은 많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터뜨려서 고통이 커져야, 아물 수 있는 길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부 나비를 위해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처음 가는 길 _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두려워 말아라 두려워하였지만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길을 만드는 일은 외로운 일이다. 누구와도 의논할 수 없는 고독의 길이다. 그리고 길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은 태어나면서 정해진다. 이마에 표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자신의 길을 가야만 한다. 자신의 알껍질을 깨어야 더 큰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내 젊음의 초상 _헤르만 헤세



지금은 벌써 전설이 되어버린 먼 과거로부터내 젊음의 초상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지난날 태앙의 밝음으로부터무엇이 반짝이고 무엇이 불타고 있는가를

그때 내 앞에 비추어진 길은 나에게 많은 번민의 밤과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나는 그 길을 이제 두 번 다시 걷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내 길을 성실하게 걸어 왔고그 추억은 보배로운 것이다잘못도 실패도 많았지만 나는 절대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젊다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할 수도 있지만 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하는 것이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는 말이다. 뭔가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이 젊음이다.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별 하나 _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될 수 있을까외로워 쳐다보면눈 마주쳐 마음 비쳐 주는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가슴에 화안히 안기어눈물짓듯 웃어 주는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길을 비추어 주는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아무도 나를 향해 눈길을 주지 않는다. 누구도 나에게 손 내밀어 주지 않는 세상이다. 다들 나를 바라보며 내가 손 내밀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걸 느낀다.눈길을 돌리니 다들 간절함으로 고개를 든다.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4부 들꽃이 바람앞에 당당히 섰다



기도 _맥스 어만



내 할 일은 날마다내 스스로 하게끔 하여 주시고때로 캄캄한 절망에 사로잡힐 때면외로움에 지쳐 있을 때나에게 위안을 주던그 힘을 떠올리게 하소서

어린 시절 고요한 강가에서 꿈꾸던그 화사한 날들을 그려 보게 하소서



그때 난 신께 약속했었죠나의 열정은 뜨거우며변하는 세월의 바람 속에서도결코 용기를 잃지 않겠노라고

쓰라린 패배의 고통과방심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강렬한 욕정으로부터 지켜 주소서



가난과 풍요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잊지 않게 하소서날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시고저 수많은 별들의 찬란함을 깨닫게 하소서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을뿐더러함부로 남을 심판하지 않게 하소서세상의 열띤 함성에 휩쓸리지 않고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친구들을 보내 주시고정처 없는 나의 여정에따스한 희망의 불빛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게 하소서

그리고 병들고 늙어내 꿈의 성채에 접근할 수 없게 될지라도아름다웠던 한 생애와 지난 달콤했던 세월의오랜 추억들에 대하여변함없이 감사할 수 있게 하소서

기도는 자기 최면이라는 말을 한다. 일상의 생활이 기도인 사람들도 있지만 막다른 골목에서 올리는 일생의 처음 기도는 화살이고 비행기구름이다.아무런 방법이 없을 때 기도를 올린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쓰고 그래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올리는 기도는 생명이다. 간절하면 할수록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기도는 생명의 깃발이다.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_이성부



이제 비로소 길이다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벅찬 가슴들 열어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 너머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이제부터가 큰 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길은 길로 연결된다. 막다른 길조차 돌아 나올 길이 있는 것이다. 바닷길 하늘 길들이 내일의 구름 속에 숨어 있다. 언젠가 드러날 길을 위해 준비해 놓는 삶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맨 처음 가는 길조차 희망과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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