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의 진실
박준수 지음 | 밀리언하우스
악화의 진실
박준수 지음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 441쪽 / 13,000원
위기의 시작
병인년(1866년) 십일월 초순의 늦가을, 하늘은 청아하고 옅은 구름은 작은 바람에도 흩어졌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엔 농부들의 손놀림이 한산하고, 논두렁에는 철모르는 허수아비만 덩그러니 남아 빈 들녘의 황량함을 더했다. 이제 머지않아 추운 겨울이 다가올 것임을 몇몇 사람들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십일월 초나흘, 막 신시에 접어들 무렵, 광화문 담장 너머 육조거리 동쪽 편에 있는 의정부 본아 당상청에는 판중추부사 조두순을 비롯하여 여러 당상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판중추부사 조두순이 묘당에 모여 있는 당상들을 좌우로 쭉 훑어보고는 쇠약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좌의정 대감이 보이지 않는군요.” 우의정 유후조가 말을 받았다. “운현궁에 들렀다가 오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조두순은 좌의정 김병학이 늦는 이유는 운현궁에 들러 대원군의 지시를 받아 오는 길이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대원군이 집권하면서부터 국가의 모든 대소사는 운현궁에서 결정되었고, 의정부는 그저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는 단순한 기구일 뿐이었다.
잠시후 좌의정 김병학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늦었습니다. 판중추부사 대감.”
“노고가 많군요. 그래 운현궁에 들렀다가 오시는 길이라지요?”
“예.” 김병학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원위 대감께서는 근자에 어떻게 지내시던가요?”
“대원위 대감께서는 여전히 나라의 안위와 왕실의 위엄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계시지요.” 김병학은 마치 다른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형조판서 최우형이 끼어들었다. “강화도를 침략한 양이(洋夷)들의 기세가 이제 한풀 꺾여 큰 근심을 덜게 되었으니, 앞으로 경복궁 중건 공사만 순조로우면 나라에 큰 걱정거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 모두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김병학이 좌중을 쭉 휘둘러보며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머지않아 경복궁은 정궐의 위엄을 되찾을 것입니다.” 유후조가 애써 김병학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그렇고말고요, 북궐은 지난 임진년에 전화로 소실된 후로 나라의 크나큰 근심이었습니다. 이제 대원위 대감의 결단과 노고로 큰 근심거리 하나를 덜게 되었으니, 이 어찌 대원위 대감의 공렬이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좌중의 분위기가 대원군의 칭찬으로 달아오르고 있을 즈음, 깐깐한 성격의 조두순이 분위기를 확 바꾸었다. “허나, 문제는 재정이지요. 나라 재정이 이미 바닥난 지 오래되지 않았소이까. 앞으로 경복궁 중건 공사에 비용이 얼마나 더 들어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에요.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만 해도 삼남 지방의 옥토를 모조리 다 사고도 남을 것입니다.” 조두순이 고개를 돌려 호조판서 김병국을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요즘 원납전 징수는 어떠하시오?” 김병국은 자신감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양반 사대부들의 불만은 점점 높아가고 상민들은 징수할 재화가 없으니, 형편이 썩 좋지는 못합니다.”김병국은 원납전 이야기만 나오면 답답한 심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며칠 전에도 운현궁에 불려가 대원군으로부터 원납전 징수 실적이 너무 저조하다고 심한 질책을 받았다. 원납전은 경복궁 중건을 위해 말 그대로 자발적으로 원해서 내는 성금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스스로 원해서 돈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허허, 큰일이외다.” 조두순의 말에 김병학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대원군은 집권 후 여러 가지 개혁을 무리하게 추진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경복궁 중건이었다. 경복궁 중건은 애초에 재정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왕권 강화라는 통치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대규모 토목공사를 조신들과 별다른 상의도 없이 대원군이 일방적으로 결정해버린 것이다. 나라 재정은 이제 경복궁 중건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느라 파산하기 직전이었다.
조두순이 다시 김병국에게 물었다. “이대로는 중건 공사를 계속하기가 힘들지 않겠소?” “예,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래 좋은 대책이라도 있소이까?” 조두순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넌지시 물었다. “글쎄요…….” 김병국이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조두순이 미간을 찌푸린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금에 와서야 경복궁 중건에 적극 반대하지 못한 것이 아쉽게 와 닿았다. 중건을 시작한 지 일 년여가 지나고 보니,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이백칠십여 년 간 누구도 경복궁 중건을 입에 올리지 못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유혹얼마 후 조정 중신들이 다시 묘당에 모였다. “대체 중차대한 국사란 무엇입니까?” 이조판서 이원명이 물었다. 좌의정 김병학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지금 나라의 재정 형편이 몹시 어렵습니다. 하여, 좋은 방책을 마련해야 하겠기에 급히 모이시라고 한 것입니다.” 김병학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우의정 유후조가 거들고 나섰다. “그렇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입니다. 지금 나라 형편이 말이 아니에요. 요즘은 경복궁 중건 공사도 거의 일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고, 이제 막 양요가 끝났다지만 언제 또다시 양이들이 침범해올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어찌 보면 이게 다 재정이 넉넉지 못하여 생긴 일들입니다.”
좌중은 말이 없었다. 그때 판중추부사 조두순이 마땅찮은 기색을 보이며 나섰다. “그 문제는 어디 하루 이틀 논의한 것도 아니지 않소?” 좌중에 침묵이 흐르자 김병학이 다시 나서서 말을 이었다. “지금 나라에 재화가 고갈되어 공사 간에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여 일시적 조처로써 당백대전을 주조할까 합니다만.” 김병학의 말에 좌중은 서로 멍하니 얼굴만 쳐다보았다. 조두순이 나서서 물었다. “지금 당백대전이라 하셨소?” 김병학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예, 판중추부사 대감.”
“대체 누구의 생각이요?”
“제가 대원위 대감께 아뢰었습니다. 지금 나라 재정이 몹시 어렵고, 그렇다고 마땅한 방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그래 대원위 대감께서는 뭐라 하시던가요”
“작금의 재정 형편이 몹시 어려우니, 좋은 방책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허나…….”
조두순이 말을 하려다 끊으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좌중도 술렁거렸다. 지금 쓰고 있는 통보(일문전 상평통보, 즉 엽전을 일컫는다) 보다 액면가가 무려 백 배나 높은 대전을 주조하겠다는 말에 좌중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김병학이 조두순에게 말했다. “대감, 말씀을 계속하시지요.”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역대로 전법의 변통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있었습니다. 갑자기 동전의 무게나 크기가 바뀌면 백성들에게 불편함을 주게 되고, 또한 백성들이 불신하는 수가 있어요.”좌중의 분위기를 살피던 유후조가 다시 불쑥 나섰다. “물론 전법이 공사에 폐해를 끼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허나 이제 막 양요가 끝난지라 공비가 날로 많아져 나라와 백성들의 형편이 몹시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때에 당백전을 주조하여 궁핍한 재정을 돌본다면 실로 좋은 방책이 아니겠습니까?”
조두순은 여전히 우려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좌중을 향해 말했다. “나라의 재정이 바닥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나, 돈의 액면을 높이거나 낮추는 문제는 신중해야 합니다. 처음 숙종 임금 때부터 나라의 법화로서 상평통보를 널리 유통하게 된 연유가 무엇입니까. 백성들이 물건을 교환할 때 불편하므로 동전을 만들어 그 편리함을 얻고자 함이었지, 취리가 목적이 아니었어요.”이번에는 말단에 앉아 듣고만 있던 상호군 김학성이 나섰다. “맞습니다. 나라의 재정이 고갈된 이때에, 나라의 재정을 넉넉히 할 좋은 방책이 있다면 당연히 강구해야 되겠지요. 헌데 이번에 주조하고자 하는 대전은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액면가치가 너무 높기 때문에 이를 위조하는 사주전 같은 간사한 폐단이 생겨날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이 저의 옅은 생각입니다.”
조두순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습니다. 방금 상호군이 말한 대로 동전의 액면가를 너무 무겁게 하면 그런 폐단이 생길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할 것이외다.”김병학이 공손하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는지요?”
“내 생각으로는 우선 시험 삼아 당십전 같은 가벼운 것으로 먼저 징험해보는 것이 순서라 여겨집니다만.” 그 때 대호군 윤교성이 나섰다. “지금 나라의 재정 형편이 몹시 어려우니 부득이 큰 변통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백전의 발행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조두순이 눈살에 힘을 주고 말했다. “어찌 재정의 변통만 생각하시오. 재화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들 흔히 말하지 않습니까. 이 말은 나라의 형편에 따라 무작정 근거도 없이 동전을 찍어낼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전을 주조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나라에서 세금을 거두어들이겠다는 뜻 아닙니까. 그러니 결국 당백전을 주조한다는 것은, 백성들에게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세금을 내도록 강요하는 격이 되겠지요. 아마 몰라도 백성들의 생활은 파탄이 나고 말 것입니다. 농민과 공장, 어부가 생산해내는 실물에 관계없이 무작정 동전만 찍어내면 돈이 천해져 물가가 급등하는 폐단이 생길 것이오.”
김병학이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감, 그러니 일시적 조처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라의 재정 형편상 그렇게 해서라도 변통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병조판서 김병주가 거들고 나섰다. “이번에 양이들이 강화도에 침범하여 우리를 업신여기고 능멸한 연유가 무엇입니까? 모두 나라의 재정이 변변치 못해 국방을 튼튼히 할 수 없었기에 생긴 일들입니다. 하루빨리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거액의 군사비가 필요한데, 당백전 발행과 같은 과단성 있는 조처가 있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김병주의 말에 서너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당백전 발행에 대해 우려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번 일은 일시적 형편에 따른 조처로써 옛날 중국에서도 시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왕지사 말이 나온 김에 당백전 발행을 서둘러야 합니다.”
***
막 술시에 접어들 무렵, 김병학이 운현궁에 당도했다. 오늘 묘당에서 오고간 말들을 대원군에게 보고하기 위함이었다.“판중추부사 대감은 갑자기 돈의 액면이 크게 바뀌면 백성들이 불편해 하고 또한 간사한 자들이 사주전을 만드는 짓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염려하였습니다. 또한 고액전 발행이 부득이한 것이라면 우선 당십전부터 징험해보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하였습니다.”
김병학의 말에 대원군은 여전히 마땅찮은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판중추부사 대감의 의견에 대해 좌의정은 어찌 생각하시오?”“우선 가벼운 당십전부터 징험해보자고 하시지만, 작금의 재정 형편으로 볼 때는 마땅한 변통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내 생각도 같소이다. 지금도 경복궁 중건 공사에 하루 수천 냥씩 돈이 나가고 있는데, 당십전으로는 어림도 없지요. 역시 당백전 외에는 대안이 없어요.”
대원군이 술잔을 벌컥 들이켰다. 아마 그의 고민도 깊은 듯하였다. 대원군이 창밖을 응시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였다. “좌의정 대감.”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예.”
“괜찮겠지요?” 대원군도 은근히 걱정하고 있는 눈치였다.
김병학이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비록 소소한 폐단들이 생긴다 할지라도, 지금의 나라 형편으로는 달리 방도가 없지 않은지요?”“음……, 하긴 그렇지요.”
대원군이 김병국을 바라보더니 이어서 물었다. “호조에서는 당백전 유통에 대해 논의들을 하고 있는 거요?”“예, 하지만 유통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원군이 쏘아보며 물었다. “아니, 그 무슨 말이요?”
“이번에 발행하는 당백전은 지금 쓰고 있는 통보에 비해 실질가치가 훨씬 낮습니다.”
“그래서요?” 대원군이 급히 끼어들어 말을 끊었다.
“하여, 당백전을 시중에 유통시키더라도 백성들이 당백전 받기를 꺼려할 수가 있습니다.당백전에 비해 지금 쓰고 있는 통보가 훨씬 가치가 높으니, 통보를 좋아하고 당백전을 멀리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당백전은 액면이 높아 백성들이 쓰기에도 불편함이 클 것입니다.”“그럼, 새로 전법을 만들어서라도 유통을 시켜야지요.”
대원군이 두 눈을 부릅떴다. 말이 좋아 전법이지 결국 당백전을 강제로 유통시키자는 말이었다.“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각 아문에서 경비를 지출하거나 세금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반드시 당백전을 함께 섞어 쓰도록 하시오.”“알겠습니다.”
정부의 재정은 만성적인 적자였다. 이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경복궁 중건 공사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과도 같았다. 대원군으로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었다. 나아가는 것보다는 멈추는 것이 더 쉬워 보였다. 하지만 멈추어서 죽는 것보다는, 나아가서 사는 것이 더욱 절실했다. 방법은 멀리 있지 않았고, 많지도 않았다. 오로지 대전을 발행하여 큰 주전 차익을 얻는 것만이 살 길로 보였다. 욕망이 강할수록 유혹 또한 강렬했다. 유혹의 중심에는 당백전이 있었다. 무엇보다 사는 것이 절실했으므로, 거칠 것이 없고 문제될 것이 없었다. 나라 재정이 부족하면 당백전을 발행하면 될 것이고, 구리가 부족하면 백성들에게서 구하면 될 것이고, 당백전을 멀리하면 강제로 유통시키면 될 것이었다. 어쩌면 사는 길은 쉬워 보였다.
악화의 탄생아침부터 싸라기눈이 희뿌옇게 내렸다. 십이월도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당백전을 시중에 유통시킨 지 십수 일이 지났다. 우선 정부의 긴급한 지출을 위해 3만 5천 냥가량을 유통시켰다. 저자의 상인들은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들은 당백전을 예의주시하면서 시장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정묘년(1867년) 새해가 밝은 지도 벌써 보름이 흘렀다. 가끔 주막에서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음식 값으로 내민 당백전을 주모는 돈이 아니라 무슨 장식용 별전쯤으로 여겼다. 손님은 돈이라 우겼고, 주모는 엽전을 달라며 손사래를 쳤다. 당백전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주막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두어 푼 하는 장국밥 한 그릇에 당백전 한 닢을 내밀 때면, 거슬러 줄 돈이 없는 주모로서는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당백전은 고액전이라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다시 십수 일이 흘러 일월 말이 되었다. 당백전 유통으로 인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던 통화량이 서서히 시장을 교란하기 시작했다. 고액전의 유통은 단기간에 통화량을 급속히 팽창시켰고, 화폐가치를 크게 떨어뜨렸으며, 물가를 급등시켰다.
***
주전소에서 한번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당백전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주전 이익으로 메워보려는 정부의 의지가 너무나 강했다.
주전 이익(주전 차익)은 동전을 발행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을 의미한다. 동전의 명목 가치(액면가)에서 주전 비용을 차감한 것이 주전 이익이다. 문제는 너무 큰 주전 이익을 취하려다 보니 액면가를 터무니없이 높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기존 동전과의 등가관계를 무시하게 된 것이다. 동전 한 닢의 무게는 일 전 이 푼이라는 생각이 굳어져 있는 사람들이 당백전의 가치를 신용할 리 없었다. 동전의 액면가를 기존보다 더 높이더라도 일정한 한도 내에서는 국가의 권력으로 법제화하여 통용시킬 수 있지만, 당백전처럼 실제 가치보다 액면가를 무려 스무 배나 높여버리는 경우, 국가의 권력만으로 통용시키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 것이다.
당백전의 주전 이윤율은 과히 놀랄 만한 것이었다. 상평통보를 본격적으로 유통하기 시작한 숙종 초기부터 영조 초기까지의 주전 이윤율은 50% 선이었고, 그 이후부터 당백전이 발행되기 전까지의 주전 이윤율은 대략 10%~30% 선이었다. 그런데 당백전의 주전 이윤율은 무려 360%에 달할 정도로 급상승한다. 이를 보면 당시의 재정 형편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