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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특사 이준

임무영, 한영희 지음 | 문이당


황제의 특사 이준

임무영, 한영희 지음

문이당 / 2011년 7월 / 428쪽 / 13,000원




“고개를 들라.”

황제폐하의 분부에 이준은 고개를 들었다.

“짐이 너의 의로움을 잘 알고 있도다. 너는 시종원경(황제의 비서실장 격)으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느냐?”“예, 폐하. 소신을 해아(지금의 네덜란드 헤이그)에 보내려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사옵나이다.”“그래, 너는 해아로 가서 만국의 대표들에게 내 뜻을 잘 전할 수 있겠느냐?”

“예, 폐하께서 하명하옵신 일은 소신이 간뇌를 쏟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완수할 것이오나, 다만 소신이 특별히 할 수 있는 서양어가 없는 탓에 폐하께서 이르라 하옵신 말씀을 제대로 전할 수 없을까 저어되나이다.”“그 일은 걱정하지 말라. 짐이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도다. 해아에 보낼 짐의 특사는 너를 포함해 세 명으로 정했노라. 정사는 의정부 참찬을 지냈던 이상설로 하고, 너는 부사직을 맡을 것이로다. 상설은 전년에 만주 용정으로 망명해 있으니 너는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로 가 상설을 부르도록 하라. 상설은 아직 이 일을 알지 못하니 네가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하리로다. 짐이 상설을 정사로 삼은 이유는 을사년에 왜인들에 의해 늑약당할 당시 상설이 참찬 직위에 있었으므로 늑약의 부당함을 만국인들에게 알리기 적당하여서로다. 짐이 너를 부사로 삼는 이유는 네 의지가 굴강하고, 사고가 논리적이며, 문장과 언변이 능하기 때문이나, 무엇보다도 네가 만국공법에 밝음을 알아서이노라.너는 상설과 함께 피득보(상뜨 뻬쩨르부르크)에 가서 공사 이범진을 만나도록 하라. 범진은 아라사(러시아) 황제 니고랍(니꼴라이) 2세를 알현하도록 주선해줄 것이니, 아라사 황제에게 짐의 친서를 전하고, 만국평화회의에 너희들이 짐의 대표단으로 참석할 수 있게 협조해 달라고 부탁하라. 이후 해아로 가되, 범진의 둘째 아들 위종을 데려가도록 하라. 위종은 어려서부터 미국, 불란서, 아라사에 유학하여 영어, 불어, 노어를 모두 능숙하게 할 수 있다 하니 너희들의 입으로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로다. 이렇게 너희 셋이 서로의 장점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대한제국이 엄연한 독립국이라는 짐의 뜻을 만국에 알리도록 하라.”

***



1907년 4월 22일 아침, 이준은 아내의 전송을 받으며 집을 나와 서대문역으로 갔다. 역 앞에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동행할 나유석이 나와 있었다. 두 사람은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부산행 기차를 탔다. 그리고 닷새만인 4월 26일 오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이준은 용정에 있는 이상설에게 전보를 보내 그를 블라디보스토크로 불렀다. 5월 2일 이상설이 도착하자 이준은 자신들이 만국평화회의에 황제의 특사로서 참가하라는 어명을 받았음을 전했다. 이상설은 예상보다 훨씬 막중한 임무에 깜짝 놀랐다.“만국평화회의가 6월 15일부터 개최된다니 해아에는 그전에 도착해야 할 텐데, 육로로 해아까지 가려면 20일은 넘게 걸릴 겁니다. 회의 날짜까지 이제 한 달 보름도 채 남지 않았으니 시간 여유가 별로 없군요.”“예, 게다가 우리는 해아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피득보에 들러서 아라사 황제폐하께 우리 폐하의 친서를 전하고 협조를 약속받아야 하는데 이 일도 금방 끝나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과연 개회일에 맞출 수나 있을지 걱정입니다.”그리하여 이준과 이상설, 그리고 안내원인 차고려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점인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기차를 탄 것은 5월 21일이었다. 세 사람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인 모스크바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중간 목적지인 상뜨 뻬쩨르부르크에 도착한 것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하고 15일이 지난 6월 4일이었으니, 만국 평화회의의 개막일인 6월 15일까지는 이제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상뜨 뻬쩨르부르크에서 헤이그까지 가는 데 아무리 서둘러도 사흘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 여유가 거의 없었다.

***



아관파천을 주도했던 친러파의 거두 이범진은 1896년 7월, 주미 공사로 임명받아 고국을 떠났고, 프랑스 공사를 거쳐 러시아에서 죽을 때까지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일본은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을 체결한 후 외부대신 이완용을 이용해 해외에 주재한 대한제국의 외교관들에게 공관을 폐쇄하고 귀국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명령에 따르지 않는 외교관들에게는 공관 운영비의 송금을 끊는 수법으로 귀국을 강요했다. 대부분의 외교관들은 어쩔 수 없이 귀국했지만 이범진은 비록 공식적으로는 공관이 폐쇄됐어도 그동안 러시아 정계와 맺어놓은 친분을 이용해 러시아 정부로부터 차관 형식으로 보조금을 받아 비공식적으로 공관을 운영하며 항일 외교활동을 주도했다.이위종은 열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외국 생활을 하면서 사관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받았다. 이위종은 학생이면서 동시에 공사관의 서기생 또는 참서관으로 근무했는데, 이범진이 외국어를 전혀 못하는 탓에 이위종이 주로 통역을 맡았으므로 어려서부터 실질적인 공사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의 청년이었지만 외교관 경력은 대한제국의 그 누구보다도 풍부했다. 그리고 러시아 귀족의 딸과 결혼하면서 러시아정교에 귀의하였으니 당대의 대한제국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국제 감각을 갖춘 인물이었다.이준 일행이 계속해서 러시아 황제 니꼴라이 2세를 알현하고자 하였으나 니콜라이 2세는 자국의 이익을 저울질 해보고는 그간의 태도를 바꾸어 바쁘다는 핑계로 특사단 일행을 만나주지 않으며 시간을 끌었다. “이거 큰일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지 벌써 열흘이 넘었습니다. 오늘이 만국평화회의 개회일이니 이미 해아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데 우린 출발은커녕 황제폐하의 친서조차 전달하지 못했지 않습니까?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친서도 친서지만, 니고랍 2세 폐하의 도움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회의장에 입장조차 못할 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회의는 3개월 동안 열리니까 조금 늦게 도착하는 한이 있더라도 니고랍 2세 폐하를 알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그렇기는 합니다만, 지금까지 보인 니고랍 2세 폐하의 반응을 생각하면 우릴 도우실 마음이 없는 듯하니 이대로 알현만 기다리다가는 영영 회의에 참석 못할지도 모릅니다.“결국 이준 일행은 할 수 없이 이범진에게 황제의 친서를 맡기고 뒷일을 부탁한 후 베를린행 기차에 올랐다.

***



상뜨 뻬쩨르부르크를 출발한 이준 일행은 이틀 후 베를린에 도착했다. 일정이 촉박했으나 공고사(고발장,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는 내용)와 탄원서를 프랑스어와 영어로 인쇄해 가져가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상뜨 뻬쩨르부르크에서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인쇄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사흘 후 기차를 타고 베를린을 출발한 일행은 6월 25일 오후 헤이그역에서 내렸다. 일행은 드 용 호텔(De Jong Hotel)이라는 간판이 붙은 3층짜리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2층에 있는 방 중 작은 방 하나를 이상설이 혼자 쓰고, 조금 큰 방에 이준과 이위종이 같이 묵기로 했다. 잠시 후 방으로 돌아가는데 이준의 얼굴에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는 듯한 안색이 감돌았다. 그 모습을 눈치챈 이상설이 물어봤다.“이검사님,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예, 제가 계속 생각해온 일이 하나 있는데 선뜻 말하기가 좀 주저됐었습니다만 아무래도 더 이상은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듯하니, 이제는 두 분께 의논을 드려야겠습니다.”세 사람은 이상설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세 사람 중에 직위가 가장 높은 분은 대감이십니다. 그래서 폐하께서는 대감을 정사로 임명하셨지요. 그런데 제가 대감께 정말 큰 실례를 범해야겠습니다.”이준의 심각한 태도에 다른 두 사람은 침묵을 지켰다.

“비록 대감께서 정사이시고 영어도 할 줄 아신다고는 하나 여기 이참서관(이위종)만큼 능숙하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이곳 구라파(유럽)에서 외교관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가 아니라 불어라고 합니다. 잘은 몰라도 외교에는 현장에서의 즉각적이고 능수능란한 대응이 필요할 텐데, 대감과 저는 그럴 만한 외교 경험도 없고 언어 능력도 부족합니다. 반면 이참서관은 오랜 외국 생활과 공관 생활을 통해 그 모든 것을 갖추었습니다.”“하지만 저는 이제 갓 스무 살을 넘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어린 저를 서양인들이 어떻게 믿겠습니까?”이준이 할 말을 짐작한 이위종이 선수를 쳤다.

“그 점도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소. 대감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앞으로 외국인들에게 우리 특사단의 대표는 이참서관이라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참서관을 만난 지는 이제 불과 20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사람이라면 황제폐하의 뜻을 가감 없이 열국에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이참서관은 광평대군(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의 후손으로 왕족이라 할 수 있고, 부인 또한 아라사 귀족 가문의 영애입니다. 우리는 대외적으로 이참서관이 대한제국의 왕자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 둘은 왕자를 수행하는 신하가 되겠지요. 일국의 왕자가 외교사절로 왔다고 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 또한 크게 쏠릴 터이니 대한제국의 입장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만국평화회의장소인 리더잘에 도착한 세 사람은 중재분과회의 회의장으로 갔다. 중재분과회의는 국제 분쟁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를 토론했다. 회의장 입구에서 이위종은 광무황제폐하의 친서를 제출하면서 회의 참가를 요청했다.“대한제국은 참가국 명단에 없고, 좌석도 배치돼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1902년 2월 16일에 만국평화회의에 참가신청을 냈고, 제1차 회의 때 채택된 육전법규관계에 관한 조약 등 2개 조약에 이미 가입한 회원국이오. 또 1905년 9월 26일에는 러시아 짜르께서 보내신 초청장을 받은 사실이 있소. 여기 그 초청장이 있지 않소이까?”“그 초청장은 예비 초청장으로 이에 답신한 국가들은 참가국 명단에 포함시켰지만, 대한제국은 참가 여부에 대해 아무런 답신을 하지 않았으므로 최종 명단 작성 시 참가국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확인한 바로, 대한제국은 그 이후에 일본의 피보호국이 되어 외교관을 박탈당했으므로 설사 초청장에 답신을 했다 하더라도 현행 만국공법상 참가 자격을 가질 수 없습니다.”“아니, 그건 그렇지 않소. 일본이 주장하는 조약은 만국공법상 무효인 조약이오!”

이준이 발끈하여 접수 직원에게 법률 강의를 하려고 하자 이상설이 말렸다.

“결국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라사의 협력 없이는 회의장에 들어가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제 어떤 일부터 할까요?”이준이 말했다. “제가 본국에서 재판을 받을 때 신문의 도움을 매우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의 주장이 정당함을 언론에 호소하여 그들의 지지를 얻는다면 보도를 통해 우리나라의 입장을 접하게 되는 사람들도 자연 우리에게 호감을 갖고 우리 편이 될 것입니다. 언론이야말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원군입니다. 그리하여 국제 여론이 환기되고 열국이 우리를 지지하게 되면 아라사와 화란도 우리의 참가를 허용하는 데 주저함이 훨씬 덜할 것입니다.”

***



국제써클은 일종의 프레스클럽이었다. 그곳에서는 매일 언론인들의 모임이 있었고, 언론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나 인물에 대한 강연회가 열리곤 했다. 작금의 가장 큰 화제는 대한제국의 특사들이었다.7월 8일 저녁, 특사 세 사람은 국제써클이 있는 큰길가 3층짜리 벽돌 건물에 도착했다. 이위종이 앞장서서 초인종을 누르자 사람이 마중 나와 그들을 안내했다. 주최측의 시각에서 볼 때 오늘 공식적으로 초청받은 사람은 대한제국의 젊은 왕자 이위종이었다.“요즘 헤이그의 가장 큰 화젯거리는 바로 대한제국의 특사들이 회의 참석을 거부당한 것이 과연 옳은가에 관한 논의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는 그 화제의 인물을 모셨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대한제국의 프린스 이를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스테드의 소개말에 뒤이어 이위종이 단상에 올랐다.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 대한제국의 특사들을 초청해 주신 각국의 언론인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스테드 씨께서 적절하게 지적해 주신 것처럼 제 조국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의 무력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분의 궁금증을 한 가지 풀어드리겠습니다. 우리들은 대한제국 황제폐하의 특사가 분명함에도 일본인들은 우리가 특사를 참칭한다고 하면서 우리 황제폐하께서도 우리를 특사로 보낸 사실을 부인하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일본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궁금하시지요?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우리 황제폐하께서는 아마도 우리가 폐하의 특사라는 사실을 부인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폐하의 특사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 폐하께서는 일본인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으신 지 이미 10년이 넘으셨습니다. 1895년에는 황후폐하께서 일본인들에게 살해당하셨고, 1896년에는 일본인들의 위협이 극에 달해 황제폐하께서 궁궐을 나와 러시아 공사관에 1년 동안 머무신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번에 폐하께서 진실을 말씀하지 못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인들로부터 생명의 위협 아니면 적어도 퇴위 위협을 받고 계심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이니, 이는 베드로가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때와 마찬가지 상황에 처하셨기 때문입니다.그럼 이제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1904년에 발발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 당시 일본은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면서, 이 전쟁은 일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극동의 평화를 지키고, 특히 대한제국의 독립과 주권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일본은 항상 일본이 전쟁을 벌이는 것은 전세계 국가들의 통상무역의 자유와 문명의 보존을 위해서라고 주장해 왔으므로 우리 대한제국은 일본의 약속을 믿고 일본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하는 등 다방면에 걸친 편의를 봐주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일본은 숨겨뒀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1905년의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해 11월 15일, 일본은 기마병, 보병, 포병 등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우리나라의 수도 한성과 황제폐하께서 계시는 궁궐을 포위하며 무력을 시위한 후 우리 황제폐하를 알현한 자리에서 우리가 을사늑약이라고 부르는 문서의 체결을 강요했습니다.그 조약은 ‘1. 한국의 모든 외교권은 일본에 이양한다. 2. 한국 정부는 일본을 통하지 않고는 외국과 어떠한 조약도 체결할 수 없다. 3. 한성에 일본의 통감부를 설치한다. 4. 일본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한국의 관리직에 일본인을 임명한다’는 내용입니다.어떻습니까? 이게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정상적으로 체결될 수 있는 조약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일본 대신 이토는 이 조약의 체결을 계속 강요하였지만 우리 황제폐하와 대신들은 그런 조약을 체결하느니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겠다고 하면서 목숨을 걸고 저항하였습니다. 그렇게 이틀을 저항했습니다만 일본인들의 위협은 점점 강해졌고 대신들의 마음은 점차 약해져 대신들은 결국 일본의 무력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체결된 조약이 어떻게 유효한 조약일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우리 황제폐하께서는 이 조약을 재가하지 않으셨으므로 조약이 유효하다는 일본의 주장은 명백히 엉터리입니다.그런데도 일본은 이 조약이 원만하고 우호적으로 체결됐다는 위선적인 주장을 하고 있으니, 이는 입으로는 형제애를 이야기하면서 손은 그 형제의 주머니를 훔치는 행위로서 백주의 날강도보다도 비열한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은 입으로는 평화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관총의 위협을 받는 사람이 평화를 느낄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한국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우리 세 사람이 황제폐하의 특사가 되어 멀고먼 헤이그까지 온 이유는 우리 조국의 독립을 평화적으로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평화적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우리 조국과 백성의 자유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가 좌절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 하나로 뭉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본인들의 무자비하고 비인도적인 침략이 종언을 고할 때까지 최후의 한 사람이 남더라도 저항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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