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문학동네 / 2011년 6월 / 234쪽 / 11,000원딱부리는 초등학교 오학년 일학기까지 다니다 말았고, 엄마가 시장에서 노점 행상을 해서 산동네의 쪽방 한 칸 월세와 세끼 밥을 해결할 수가 있었다. 산동네의 또래 아이들과 골목에서 빈둥거리다가 주위가 어두컴컴해질 무렵에 딱부리가 엄마의 장사 터로 가보니 다른 여자들은 노점을 정리하고 있었고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우리 엄마 어디 갔어요?
엄마 바람났나보다, 깔깔.
그는 아줌마가 가르쳐주는 대로 먹자골목으로 달려갔다. 생선 굽는 냄새와 순댓국 끓이는 냄새가 가득한 골목으로 들어서서 양쪽의 식당 안을 살피며 오르내리다가 엄마가 어떤 남자와 마주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남자는 등을 돌리고 있어서 누군지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군복 야전재킷을 걸치고 푸른색 운동모자를 쓰고 있었다. 딱부리가 우물쭈물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엄마가 먼저 알아보고 손짓했다. 많이 컸구나. 아장아장 걸어다니든 게 엊그제 일 같은데……
인사해라. 느이 아빠 친구야.
딱부리는 고개만 꾸뻑해 보이고는 엄마 옆에 앉아서 맞은편의 남자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눈도 부리부리하고 코도 도톰해서 인상은 괜찮았는데, 눈 아래에서부터 왼쪽 뺨을 거의 덮을 정도로 푸르고 큰 점이 있었다. 어디서 보았더라. 아, 맞다! 푸르고 붉은 외투를 걸치고 얼굴의 절반은 하얗고 절반은 새파란 길쯤한 턱의 아수라 백작이 아닌가. 대마왕 헬 박사의 오른팔로 언제나 정의의 마징가에게 깨지면서도 비열한 음모를 꾸미는 악당. 딱부리는 어쩐지 전의에 불타올라서 주먹을 불끈 쥐고 그를 노려보았다.판잣집이지만 월세 없는 내 집 생기지, 하루 벌이는 여기의 세 배쯤 되지, 이런 일터를 요즘 세상에 어디 가서 찾겠나 말야.남자가 하던 얘기를 계속했고 엄마는 솔깃한 표정으로 상반신을 그에게로 숙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얘 아빠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오빠가 등록만 시켜준다면야 무슨 일을 못 하겠어요.
식탁 위에 두 주먹을 올려놓고 노려보는 딱부리에게 힐끗 눈길을 보내더니 남자가 물었다.
너 몇살이냐?
딱부리가 차마 열여섯이라고 말할 수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엄마가 대신 말했다.
열네 살이요.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과장해서 입을 벌려 보였다.
아니, 이렇게 덩치가 큰데 겨우 열네 살밖에 안 먹었다고? 누가 물어보면 열여섯 살이라고 그래라.내 친구들은 모두 열여섯 살배기들인데……
좋아 좋아, 그러면 중졸은 되겠다야. 좌우지간 자기가 일선에서 정식 등록해서 일하고, 얘도 이선에서 분류하는 일을 거들면 둘이서 남들 곱절은 벌 거란 말야. 엄마는 집에 돌아가서도 마음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눈치였다.
마침 방을 빼달라고 해서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잘되었다. 일자리도 생기고 살 곳도 내준다니까 이제 한숨 돌리겠구나.
딱부리네 아버지와 엄마는 보육원에서 함께 자랐다고 했다. 아버지가 먼저 뛰쳐나와서 도시를 이리저리 쏘다니더니 구청마다 조직이 시작된 근로대에 들어갔고, 비록 고물상으로 크진 못했지만 폐품 수집을 하는 작은 구역의 책임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딱부리가 학교를 때려치우던 해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사실은 아버지가 사라지고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학교를 그만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아이는 전에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어서 어디 후리가리에 걸렸겠지 하며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보름 가까이 기다렸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근로대에서 일하던 젊은이가 엄마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아버지가 교육대에 끌려갔다고 했다. 새로운 장군이 집권을 하고 나서 사회를 정화한다고, 폭력배와 전과자, 불량배는 물론이고 몸에 문신을 새겨 보통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거나 주위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놈들은 연령의 노소를 불문하고 잡아다가 일정기간 재교육하여 새사람을 만들어 내보낸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졌고, 그들은 각 지역 군부대에 설치된 교육대에서 갱생교육중이라고 했다. 전에도 딱부리네 식구가 떵떵거리며 살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배곯는 걱정은 없었는데, 이제 엄마와 그는 하루 세 끼를 벌어먹느라고 온종일 뛰어다녀야 했다.
***
대도시의 동쪽 구역에서 그는 엄마와 함께 쓰레기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들이 밀렸다가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고 강변도로에서 벗어나 개천보다 넓은 샛강을 끼고 비포장도로에 들어섰다. 저물녘의 샛강 가에는 키 큰 억새가 바람에 출렁거려서 갑자기 멀고먼 낯선 땅에 당도한 것 같았다. 전조등을 켜기 시작한 트럭의 앞뒤를 먼지가 구름처럼 휘감았다. 아늑한 불빛이 보이던 마을과는 반대방향으로 길이 휘어지면서 트럭은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출발지였던 동 구역 쓰레기수집소에서 쓰레기를 가득 실은 화물칸의 이곳저곳에 비집고 올라앉은 사람들은 아이와 엄마 말고도 남자 셋과 아낙네들이 더 있었다. 모두 적당한 크기의 비닐을 깔고 앉거나 아랫도리에 휘감고 화물칸 난간을 꼭 움켜쥐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쓰레기 한가운데 앉아 있었으므로 본격적으로 풍겨오기 시작한 야릇한 냄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트럭이 비탈길을 따라 올라 제법 너른 빈터에 멈추자 강력한 냄새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것은 분뇨라든가 시궁창 냄새라든가 상한 음식물이나 된장 간장을 끓이고 졸이는 그런 모든 냄새가 합쳐진 듯한, 견딜 수 없는 냄새였다.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얼굴과 팔뚝에 그리고 옷자락에 달라붙고 날아다니며, 특히 입술 언저리와 눈가에 대담하게 눌러앉아 차갑고 끈끈한 촉수를 내미는 것들은 파리 떼였다.시간들 없어요. 빨리들 내리쇼.
운전수가 차창을 열고 뒤돌아보며 재촉했다. 사람들은 각자 가지고 온 물건과 보따리를 서로 주고받으며 쓰레깃더미 위에서 조심조심 내려갔다. 아수라 아저씨는 이불짐을 가뿐하게 어깨에 얹고 비닐가방을 한 손에 들고는 앞장서서 걸었고, 엄마와 딱부리는 단출한 살림이 들어 있는 함지를 마주 들고 그를 쫓아갔다. 트럭들이 엔진소리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올라가는 쓰레기언덕 아래편에 자울자울 조는 듯한 불빛들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불빛을 담고 있던 물체들이 제각기 모양이 다른 판잣집 오두막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쳇, 나는 또 시골동네로 이사 가는 줄 알았잖아.
아들이 투덜거리자 엄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란다.
사람은 무슨…… 썩은 내에 파리에 쓰레기 천지로구만.
딱부리가 퉁명스럽게 내뱉었고 엄마는 짐짓 명랑하게 말했다.
그 물건들이 모두 돈이 된다잖아.
부스럭거리고 웅성대는 소리와 함께 세 남자가 번갈아 잡동사니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끌고 나타났다. 모두 쓰레기장에서 골라온 것들이었다. 길이가 각기 다른 각목이며, 수산시장에서 나온 생선상자들과 비닐 조각들, 포장마차에서 쓰던 각양각색의 천막들, 비닐하우스에서 쓰던 검정색 부직포, 무늬가 제각각인 비닐장판 등속이었다. 갑자기 집터 주위는 부산스러운 작업장으로 변했고, 같은 구역의 오두막들에서도 하나둘 사람들이 몰려나와 일손을 돕기 시작했다. 아수라 아저씨가 총지휘를 했는데, 먼저 기둥감이 될 각목들을 같은 길이로 자르거나 덧붙여서 세운 다음 엇대어서 버팀목을 만들었다. 장도리로 생선상자들을 분해해서 판자를 준비해놓고는 얼기설기 벽을 박아나갔다. 널판자 안쪽에 비닐을 대고 스티로폼을 붙이고, 안쪽 벽에는 골판지를 촘촘히 박았다. 맨땅에 비닐을 펼치고, 그 위에 스티로폼을 깐 다음 지함을 풀어헤친 골판지를 한번 더 깔고 맨 위에 비닐장판을 깔아주었다. 지붕은 판자 위에 스티로폼을 얹은 다음 골판지를 덮고, 그 위에 다시 부직포와 비닐장판을 덮고는 날아가지 않도록 각목을 줄지어 박아 고정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장마차의 텐트 자락을 지붕에 둘러치자 네 평짜리 오두막이 완성되었다.
***
딱부리는 주변에서 웅성대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도 그냥 웅크리고 누워 있는데, 엄마가 사정없이 이불을 들치며 일으켰다.이거 전부 반장 아저씨가 장만해준 거야. 서둘러라!
마스크 안에서 웅얼대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자챙이 콧등에 닿을 정도로 푹 내려왔고 군화는 발이 앞뒤로 놀 만큼 컸지만, 딱부리는 오늘부터 어른과 맞먹는 일꾼이 된다는 생각에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엄마와 똑같은 고무장갑까지 끼고 한 손에 쇠스랑을 쥐었다. 오두막 앞에 멜빵 달린 기다란 광주리 두 개가 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같은 차림새의 수집꾼들이 빽빽하게 밀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너른 공터에서부터 걸음을 다투듯이 바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거대한 언덕은 온통 갖가지 쓰레깃더미로 이루어져 있었다. 걷는 동안에도 발이 푹푹 빠지거나 걸리기도 했고, 뭔가 붙어서 따라오다가 발을 흔들면 떨어져나갔다. 언덕 위에 올라서자 강변도로가 보였고 꽃섬으로 휘어드는 다릿목에는 전조등을 켠 트럭들이 줄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불빛 속으로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는 게 보였다. 각 구청 소속의 구역장들이 제각기 자기 패거리들을 불러대는 소리로 떠들썩했다.자자, 이열 횡대! 꾸물거릴 시간 없어요.
아수라 반장은 새벽 다섯 시에서 아침 아홉시까지가 제일 바쁜 알짜배기 작업 시간이라고 말했는데, 그다음 작업은 정오경에서 저녁 무렵까지니까 거의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근로대 사람들은 구역별로 무리를 지어 자기네 구청 번호를 앞유리에 붙인 청소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 선 이들은 권리금을 내고 일선으로 등록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모두 알짜 폐품을 추려내고 난 뒤에 이선 사람들이 남은 것들을 다시 추려내기 마련이었다. 아수라는 엄마 옆에 붙어서서 연신 주의를 주었다.뭐든지 먼저 찍는 사람 거란 말야. 플라스틱 용기들, 비닐은 얇은 건 나중이구 장판지나 천막이나 두꺼운 게 먼저, 고철은 무조건 다 쓸어담아, 유리두 병이 먼저구, 폐지 넝마는 천이나 옷가지나 성한 게 아니면 종이가 먼저라구.아수라가 딱부리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너는 이선이지만 엄마 뒤에서 따라붙었다가 엄마가 미처 못본 걸 찍고, 엄마 바구니가 차면 뒤에 갖다 쌓아둬라.청소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벽 이른 시간에 도착하는 쓰레기는 대개 중심가나 상업지구의 것들이어서 알짜가 많다고 했다. 주택가와 아파트 동네의 것들은 정오 무렵부터 몰려오고 주변 공사장이나 공장지대의 것들은 오후에 도착한다. 헤드라이트를 훤하게 켠 트럭들이 천천히 언덕길로 올라왔고, 먼지 속에 새카맣게 뭉쳐서 날아다니는 파리떼가 보였다. 작업 개시!
사십여 명의 수집꾼들이 어른 키보다 높이 솟아오른 오물더미 속으로 한꺼번에 뛰어들었다.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엄마는 옆사람을 따라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쓰레깃더미의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갔고 딱부리도 바짝 따라붙었다. 아수라가 엄마 옆으로 따라붙더니 먼저 찌그러진 플라스틱 물통을 집어 바구니에 던져주었다. 딱부리는 엄마가 집어낸 물건들과 함께 뒷전에서 반장이 일러주던 말을 잊지 않고 요구르트 병이며, 화장품 용기들, 바가지나 세숫대야 깨진 것들, 깡통, 유리병 따위를 집어서 바구니에 던졌다. 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동이 터왔다. 쓰레기들은 더럽고 볼썽사나워 보였고 매캐하고 비릿하고 숨이 막히고 코가 쌔하고 구역질나고 무엇보다도 낯설었다. 하나씩 쥐어보면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던 물건들이었는데도 떨어져 나온 아기 인형의 다리처럼 어쩐지 무서운 데가 있었다.
***
딱부리는 자기보다 세 살 어린 아수라 반장의 아들과 알게 된다. 머리 절반이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쭈글쭈글해서 별명이 땜통인 이 바보아이는 그에게 꽃섬 아이들의 삶을 말해준다. 꽃섬 쓰레기장의 아이들도 부모님을 도와서 쓰레기 수집 일을 도와야 했다. 그들은 학교조차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교회에 간간히 출석하는 것이 전부였다.
딱부리와 엄마가 꽃섬에 들어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엄마가 처음에 딱부리를 달래느라고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라고 했지만, 이곳은 분명 사람들이 쓰다 남아서 또는 싫증이 나서 아니면 못쓰게 된 물건들을 버리는 쓰레기장이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도시에서 내몰리고 버려진 인간들이었다. 이곳에 온 뒤로 딱부리는 종종 산동네의 오래된 골목을 그리워하곤 했다. 오불꼬불 사방으로 뚫린 비좁은 비탈길에 갖가지 모양으로 땜질한 시멘트 블록 담장에다 더러운 털북숭이 개들이 흘레를 붙고 있거나, 연탄재가 널려 있거나 라면봉지가 날아다니던 골목에서 몇 번이나 길을 잃고 오르락내리락하던 것이며…… 그렇기는 하여도 딱부리는 이곳을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아수라와는 웬수지간이 되기로 정해져 있었던 모양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 때문이었다. 꽃섬에서 그들 모자가 권리금 한 푼 내지 않고 폐품수집으로 돈 벌며 살게 된 것도 반장 아저씨의 도움이 컸으니까 딱부리는 고분고분 말도 잘 듣고 아버지라고까지 부르지는 못해도 삼촌이라고 부를 수는 있었을 것이다. 딱부리가 새벽에 문득 잠을 깨니 어딘가 이상했다. 그의 곁에 있는 게 엄마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등 뒤에 찰싹 붙어서 쌔근거리며 자고 있는 것은 아이의 작은 몸집이었다. 딱부리가 팔꿈치로 툭툭 건드리자 녀석이 뭐라고 잠꼬대를 하면서 뒤로 돌아누웠다. 아니, 땜통 자식이 왜 우리 방에 와서 자는 거야. 딱부리는 첫날 땜통이 느네 엄마와 울 아부지가 붙어먹을지도 모른다고 쌍소리를 지껄였을 때부터 엄마를 지켜야한다고 결심 하고 있었다. 딱부리는 하마터면 아빠 목소리를 흉내내어 외칠 뻔했다. 이 쌍노무 연놈들을 쳐죽여야지! 어둠속을 더듬어 부엌살림이 놓인 출입구 옆의 상자에서 식칼을 집어 들고는 옆방 문을 열었다. 방안은 바깥보다 캄캄했다.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이 번쩍했고, 나직하지만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었다.누구야? 너 이 새끼 .
딱부리는 눈이 부셔서 한손을 쳐들어 빛을 가리며 물러섰다. 손전등을 켜든 아수라가 벌거벗은 채로 일어나 그를 잡으려고 팔을 뻗으며 달려들었고 딱부리는 뒷걸음질쳐서 밖으로 튕겨져나왔다. 아수라가 팬티 바람으로 문 앞에 서서 딱부리를 손전등으로 훑어내렸다.어쭈, 이 새끼 칼 들었네!
누가 왔어요?
안쪽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딱부리는 칼을 내던지고 오두막동네 길로 내달았다. 정신없이 내달려서 마을 끝 언덕 위로 올라가, 거기서 강변도로를 내려다보며 동이 틀 때까지 앉아 있었다. 눈치로 자란 세월이라 딱부리도 이 동네 어른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다. 여기 아이들은 제 부모의 일인데도 남의 말 하듯이 킬킬대며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다른 동네에서라면 쌍코피가 터지는 싸움이 일어날 만했는데도 서로 실실 웃으며 욕설이나 주고받다가 말았다. 싸움질도 했지만 화해도 잘했고 남녀가 서로 어우러져서 함께 몇 달 살다가 상대를 바꾸기도 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과는 또 다른 세상에서 저희끼리 살아가고 있었다.
***
땜통은 딱부리를 섬의 서북쪽 외진 억새들판 근처 집에 사는 신접한 여자인 빼빼 엄마,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인 만물상 할아버지에게로 데리고 간다. 빼빼 엄마는 시내에서 버려진 개들을 데려다 키우기 때문에 지어진 별명이다. 땜통은 딱부리에게 그는 꽃섬에 김서방네라고 부르는 혼령들이 있다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꽃섬의 비밀을 알려준다. 물론, 딱부리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 딱부리는 그곳에서 옛날 꽃섬에 살았던 한 가족인 김서방네의 혼령들을 정말로 볼 수 있게 된다.
땜통은 말없이 오른쪽을 손가락질했다. 딱부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억새가 출렁이는 강변의 서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는 무엇인가를 보았다. 푸른 불빛이 하나, 둘, 그리고 서너 점 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불빛들은 빠르게 움직이기도 하고 멈추기도 했다가 강변을 따라서 차츰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뭇, 하면서 사라졌다. 땜통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일어나서 딱부리에게 말했다.형아, 봤지?
응, 하면서 딱부리도 침을 삼켰다. 이제야 땜통이 거짓말로 꾸며낸 얘기가 아니란 걸 알았던 것이다. 무슨 벌레 같지는 않았는데 불 한 점이 제법 커보였고, 움직임이 요란하지 않았다. 일렁일렁하는 게 천천히 무슨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