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제국 2
윤상일 지음 | 지상사
보이지 않는 제국 2
윤상일 지음
지상사 / 2010년 8월 / 302쪽 / 12,000원
공룡에게 싸움을 걸다요제프는 중국 산시 성 린퉁 현 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진시황릉 위에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언뜻 보디가드처럼 보이는 떡 벌어진 어깨의 대머리 사내가 서 있었다. 요제프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볼트만이었다. 서안 시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요제프는 피곤한지 눈을 감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볼트만. 말해 보시오.” 한참 만에 요제프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프로페서. 프로페서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니지만 장미은행 건으로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장미은행 건? 볼트만 군, 그건 이미 다 끝난 일인데 아직도 문제가 남았소?” 요제프는 장미은행이라는 말이 거슬리는지 눈을 번쩍 뜨고 볼트만을 바라보았다. 순간 볼트만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프로페서. 언젠가 말씀드렸던 그 태극로펌에서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볼트만은 쉽게 핵심을 얘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미은행을 다시 언급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처리가 깔끔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태극로펌이라면 최강이 다비드 앤 솔로몬과 합병할 때 떨어져 나간 강동현이라는 자가 새로 만든 로펌 말이오?” 볼트만은 요제프가 강동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데 다시 한 번 놀랐다.“그런데 태극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거지?” 요제프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아, 예. 프로세서.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한데 태극에서 장미은행 인수 계약이 무효라면서 그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볼트만도 이제는 머뭇거리지 않고 본론을 얘기했다.“장미은행 인수가 무효라는 자료? 허허. 그깟 변호사도 몇 안 되는 로펌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그래. 태극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보았소?”“예, 달리 자료가 없으니까 아무래도 장미은행 인수 자금의 흐름을 쫓고 있는 것 같습니다.”“인수 자금의 흐름이라면?”
“예, 프로페서. 주식시장에서 해외로 송금된 자금을 추적하는 것 같습니다.” 볼트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가장 완곡하게 표현했다.“그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소? 설사 일부 자금이 한국 시장에서 조달되었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소? 볼트만 군, 그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거요. 그 문제는 우리가 나서기 전에 한국 정부에서 알아서 정리해 줄 거요.”요제프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볼트만은 이 같은 요제프의 반응에 일단 안도의 숨을 쉬었다. “볼트만 군.”“예, 프로페서.” 요제프의 나직한 부름에 볼트만은 다시 긴장했다.
“지난번 얘기했던 학회 조직은 어떻게 되었소? 이제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때가 되지 않았소? 그리고 만약 태극이 장미은행 인수 자금을 추적한다면 그 방법이야 뻔하지 않겠소? 볼트만 군은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거든 조직을 본격적으로 가동해서 그 계보를 하루빨리 파악하시오. 한국에서 그 계보만 장악한다면 태극은 어떤 자료도 얻지 못할 것이오.”요제프가 볼트만에게 지시한 사항이란 한국에 컴퓨터보안학회를 조직하고 각종 경연 대회를 개최하여 소위 한국의 컴퓨터 천재들의 계보를 파악하고 관리하라는 것이었다.“예, 알겠습니다. 프로페서.”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허드슨과 잭슨에게 얘기해서 한국 정부가 나서도록 하세요. 또 알렉스와 상의해서 태극을 묶을 수 있는 당근도 마련해 보시오. 무조건 못하게만 하면 반발이 크지 않겠소? 젊은 친구들에게는 적당한 보상을 주어 키우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언젠가 유용하게 쓸 데가 있을 거요.”요제프가 말한 허드슨은 주한 미국 대사이고 잭슨은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의장이었다. 볼트만은 요제프가 이미 다른 경로로 태극로펌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고 그 대응책도 미리 생각해 두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진땀이 흘렀다.
독침을 쏘다테헤란로에 있는 트라이엄프 빌딩 13층에 자리 잡은 충무 파이낸스 사무실. 바로 얼마 전 장미은행 사건으로 재정부 재경국장을 사직한 서창민이 설립한 사모펀드 사무실이었다. 강동현은 재정부에 근무하는 선배를 통해 서창민을 소개 받았다. 회의실로 안내된 강동현이 기다린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노크 소리와 함께 서창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손 선배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태극로펌 대표이시지요?”강동현도 일어서서 인사하며 서창민과 악수를 했다.
“장미은행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서창민은 바로 핵심을 짚고 나섰다. 아마도 오랜 관료 생활에서 쌓은 경험 때문일 것이었다.
“네, 서 대표님. 대표님 말씀대로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시켜 왔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이제는 제일 중요한 마무리 단계에 와 있습니다.”“그래요? 장미은행을 되찾기 위한 프로젝트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요? 참 흥미 있는 얘기군요.”“물론 대표님은 장미은행을 되찾는다는 얘기가 황당하게 들릴 겁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장미은행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은 저희 로펌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다만 그 마무리 작업은 대표님과 같이했으면 하는 겁니다.”“마무리 작업이요? 마무리 작업은 뭐고 어떻게 공동으로 한다는 겁니까?” 서창민은 강동현을 흥미 있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쩌면 황당한 얘기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었다.“저희 로펌에서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제대로 가동된다면 퍼시픽 파이낸스에서는 장미은행을 서둘러 재매각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때 대표님의 도움이 필요한데, 바로 대표님이 운영하는 충무펀드가 장미은행을 인수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퍼시픽 파이낸스에서 장미은행을 재매각해요?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또 재매각한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이나 조건이 여간 까다롭지 않을 텐데 우리 펀드가 인수한다는 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서창민은 다시금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요. 정상적인 재매각이라면 당연히 그렇지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퍼시픽 파이낸스가 무조건 장미은행을 재매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다는 겁니다. 또 재매각 상대도 대표님의 펀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대표님께서는 장미은행을 인수하는 데 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하자가 없도록 준비해 주시면 되는 겁니다.” 강동현은 작지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서창민을 설득했다. “좋습니다. 강 변호사님 말씀대로 퍼시픽 파이낸스가 장미은행을 재매각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서창민은 결심한 듯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두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대표님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 현행법으로는 은행을 인수하려면 인수자가 금융기관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대표님께서 먼저 적당한 규모의 지방은행을 인수한 뒤 그 은행으로 하여금 장미은행을 인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흠, 지방은행을 인수해서 그 은행으로 하여금 장미은행을 인수하도록 한다? 그 재미있는 발상이군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셈이 되겠군요. 그리고 강 변호사님 말씀대로라면 장미은행 재매각 가격도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맞습니까?” “예, 바로 보셨습니다. 장미은행 재매각 시 가격은 원래 인수 가격에서 많아 봐야 20~30% 플러스되는 정도에 그칠 것입니다. 처음부터 헐값에 가져갔으니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재매각하게 할 수는 없지요.”“그래요?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우리 한번 해봅시다.”
결국, 공룡이 토했다3월 2일 오전11시. 세종로 프레스 센터 19층.
태극로펌의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오늘 기자회견의 주인공 역할은 송판국 변호사가 맡기로 했다. 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에게 보도 자료를 나누어 주자 갑자기 회견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퍼시픽 파이낸스의 장미은행 인수 계약은 무효’ 보도 자료의 제목이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장미은행 인수 계약의 법적 하자와 그 대책’에 관한 태극로펌의 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송판국 변호사는 기자들 앞에서 더욱 당당하고 여유가 있었다. “재작년 12월, 국내 굴지의 금융기관이 국제적인 사모펀드에 헐값에 넘어가는 수치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지요. 바로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장미은행이 퍼시픽 파이낸스에 인수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장미은행 인수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의혹들이 많았던 점 기자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설, 주가조작설, 정치적 뒷거래, 국제 사모펀드와 핫머니의 공격, 국제적인 거물급 인사들의 외압설 등등 온갖 소문이 돌았고 결국 장미은행은 시가의 절반도 안 되는 헐값에 금융기관인지 여부도 불확실한 퍼시픽 파이낸스에 넘어갔습니다. 그동안 태극로펌은 인수 계약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한 자료 수집과 장미은행 인수 계약에 대한 면밀한 법적 검토 끝에 장미은행 인수는 국제 사모펀드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주가 조작에 의한 위법한 계약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우리는 장미은행 인수가 사기 행위에 의한 명백한 위법 행위임을 입증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이미 확보하였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부터 장미은행을 되찾기 위한 모든 법적 절차를 시작할 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협조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송판국은 준비한 회견 내용을 시종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난상토론태극로펌에서 기자회견을 한 다음 날, 강동현은 최강 솔로몬의 박두현으로부터 뜻밖의 메시지를 전달 받았다. 장미은행을 인수한 사모펀드의 막후 실력자가 강동현과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막후 실력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고 사안이 사안인 만큼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의 비밀 회동 제의였다. 강동현은 장미은행 사건이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음을 직감했다. 막후 실력자라고 하는 것을 보면 최강 앤 솔로몬의 알렉스 변호사와는 다른 차원의 인물임이 분명했다. 혹시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 강동현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보면 그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일 뿐만 아니라 웬만한 국가원수는 우습게 볼 정도의 막강한 파워를 가진 인물임에 틀림없었다.비밀 회동 제의를 받은 지 3일이 지난 토요일 오후, 태극로펌 회의실에는 K2프로젝트에 참여한 태극로펌의 모든 변호사들이 모였다.“여러분, 이제 다들 모이셨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지난 1년여 동안 우리 태극로펌은 장미은행을 되찾기 위한 K2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어 지난번 기자회견에 이어 이제 민ㆍ형사 등 모든 법적 절차를 개시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장미은행을 인수한 사모펀드의 막후 실력자로부터 비공개 회동 제의가 들어온 것입니다. 이 회동 제의의 배경과 진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퍼시픽 파이낸스의 입장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우리 로펌의 최종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오늘 회의를 갖게 된 것입니다.”“자, 그럼 지금까지 진행된 K2프로젝트의 내용은 지난번 기자회견을 통해 정리된 것으로 보고 그 후의 법적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송 변호사가 설명해 주세요.” 예정된 대로 이진규 고문이 토론을 진행했다. “현재 확보한 증거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시오?” 이진규는 나지막하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저희는 저쪽의 선물, 옵션과 주가조작을 통한 거액의 차익 실현, 해외 송금과 조세 피난처를 통한 자금 세탁과 그 자금의 국내 유입 과정 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이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메일도 확보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몇 가지 정황 증거가 있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강동현은 변호사들을 둘러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저쪽의 실질적인 오너가 비밀 회동을 제의한 이유는 둘 중 하나겠지요. 장미은행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최후통첩이거나. 모종의 거래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만약 선전포고를 위한 최후통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소?”“그건 말도 안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까짓 최후통첩에 물러나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죽기 살기로 한판 붙어야지요.” 송판국이 전의를 불태우듯 주먹을 쥐며 말했다.“그렇다면 저쪽에서 어떤 형태로든 협상을 하자고 나오면 어떻게 하시겠소?”
“어떤 협상 카드를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렇지요. 그래서 이 자리에서 상대의 예상되는 협상안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안을 미리 논의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제가 대충 상대방이 제시할 수 있는 몇 가지 카드를 정리해 봤습니다.” 평소 치밀한 성격의 배금호가 입을 열었다. “첫째, 태극로펌이 장미은행 사건을 법정으로 가져가지 않고 잘 마무리해 준다면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금전을 제시하거나 상당한 일거리를 보장해 주겠다고 하는 제안입니다. 둘째, 장미은행 구조 조정과 정상화 과정에 최강 솔로몬과 함께 태극로펌도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제안입니다. 이밖에 퍼시픽 파이낸스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국내외 정ㆍ재계 인사나 청와대와 재정부 등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압력을 행사하게 할 수도 있고 또 한 가지는 퍼시픽 파이낸스 쪽에서 법적 다툼을 계속하기보다는 적당한 이익을 남기고 빨리 장미은행을 제3자에게 매각하고 손을 털어 버리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이 제가 정리한 경우의 수들입니다.”그때 뒷줄에 앉아 있던 표재호 변호사가 손을 들며 말했다. “협상에서는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가 협상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선배 변호사님들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저쪽이 먼저 협상 제의를 했기 때문에 저쪽에서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올지 그것만을 예상하고, 거기에 대한 방어 전략에만 중점을 두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협상 제의는 저쪽에서 했다고 하더라도 협상안을 우리가 만들고 협상 과정도 우리가 주도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지금까지 우리가 확보한 증거 자료들을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우리가 협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다들 표재호 변호사의 신선한 제안에 정신이 번쩍 든 표정이었다. “역시, 젊은 기예가 대단하군요. 바로 그겁니다. 협상에서는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가 승패의 관건입니다. 강 대표, 지금까지 나온 의견들도 잘 취합하고 지금 표 변호사가 얘기한 대로 태극로펌의 협상안도 만들어 협상을 주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세요.” 이진규 역시 표재호의 제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운명적 해후하얏트 호텔 스위트룸. 놀만 요제프가 묵고 있는 방으로 안내된 강동현은 손과 등에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태극로펌의 변호사들이 오랫동안 명운을 걸고 준비한 K2프로젝트의 성패가 바로 오늘 이 순간에 달린 것이었다. 놀만 요제프! 그가 강동현과 이미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사람임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이 정말 인연일까. 놀만 요제프! 그는 강동현의 조부인 강준이 구해 준 미군 장교 다니엘 요제프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강동현은 안내된 응접실에 혼자 남게 되자 조용히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요제프가 조용히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요제프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제프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악수를 청했다.“반갑습니다. 프로페서 요제프. 강동현입니다.” 강동현도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악수했다.
“역시 한국의 가을 날씨는 판타스틱합니다. 한국인들은 정말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제프는 강동현에게 앉을 것을 권하며 한국의 날씨를 추켜세웠다.
강동현은 요제프가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정말 의외였다.
두 사람이 날씨와 한글에 대한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룸서비스로 음료가 준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