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최인훈 지음 | -
▣ 독서 나침반 Ⅰ최인훈은 전후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하나로서, 작품들을 통하여 한국인의 삶의 궤적을 20세기 세계사의 진폭 속에 위치시키면서 동시에 인간 존재의 본질 규명에 주력해온 폭넓은 사유를 보여준 바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광장』은 1960년에 발표된 이래로 지금까지 여러 세대를 거쳐 읽혀온 작품으로서,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과 지적 모험을 자극하는 '현재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 작품은 분단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넓게는 한국문학사, 좁게는 한국소설사에서 큰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다. 물론 『광장』이전이나 이후에도 남북의 분단 상황과 좌우 이데올로기를 다룬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편향된 시각으로 분단문제에 접근한 이 작품들을 엄밀한 의미에서 분단문학이라고 평가하기 힘들다.
최인훈은 이 작품에서 북한의 공산주의 이념과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대해서 냉철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깊이 있는 비판과 성찰을 보여준다. 분단 현실에 대한 이러한 냉철하고도 균형 있는 성찰은 이념의 본질과 진정한 삶의 행복과 관련해 오늘날까지도 소중한 통찰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항(二項)대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제3의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지만, 기실 이러한 절망감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절실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히 인간성을 말살하는 이념의 횡포에 대한 성찰에 지나지 않는다면, 명시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쓴 대부분의 이념소설이 그렇듯이 한국소설사에서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삶의 일회성에 대한 첨예한 인식이나 개인과 사회의 긴장과 갈등, 인간 자유의 문제 등과 같은 실존주의적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또한 『광장』은 '이명준'이라는, 한국소설사에 보기 드문 관념적 주인공을 창조하였으면서도 인간의 내면심리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통하여 4.19 혁명 이후의 한국 소설이 전후(戰後)소설의 관념적 경향에서 벗어나 내면 공간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이룩할 수 있도록 한 중요한 전기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로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사랑'이 언급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광장』은 『광장을 읽는 일곱 가지 방법』이라는 비평서가 출간될 정도로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되는 작품인데, 이러한 소설의 열린 구조는 이 작품을 비롯하여 최인훈 소설의 '현재성'을 담보해주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처음 발표된 이래로 무려 여섯 번의 개작과정을 거쳐 다듬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언어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개작과정에 대한 관찰을 통해 작가의 수정 및 첨삭 작업이 작품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작품 감상의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 대한 독서를 출발점으로 이른바 '분단문학' 전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거나 또는 작가가 1994년에 발표한 '화두'를 읽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독서체험이 될 것이다.(박성창 서울대 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독서나침반 Ⅱ<1> 이 소설은 처음 발표된 이래로 무려 여섯 번의 개작과정을 거쳐 다듬어졌다. 이 소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자신의 대표작에 대한 미련스러운 자부라든가 젊은 시절의 고뇌에 대한 무력한 향수 때문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그의 사유와 행위, 고민과 선택이 바로 지금의 이 시대의 것으로의 '현재화'라고 주장함으로써, 한 세대 전의 것에 대한 그의 애정의 근원을 밝힌다. 그 '현재성'이 그의 한 작품에 대해 끈질긴 생명력을 끊임없이 부여할 이유가 된다. 예컨대 그는 <1989년판을 위한 머리말>에서 이렇게 쓴다:
이 작품의 첫 발표로부터는 30년, 소설 속의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날로부터는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겪은 운명의 성격 탓으로 나는 이 주인공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주인공이 살았던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정치적 구조 속에 여전 히 필자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준은 그가 살았던 고장의 모습이 40년 후에 이러리 라고 생각하였을까 -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당자가 아니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 만, 아마 현실의 결과보다는 훨씬 낙관적인 전망을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중략) 40년이 지난 다음에 지금 같은 상태라고는 다시금 짐작하지 못한 것이 아 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요컨대 이명준이나 그의 작가와 독자들은 마찬가지로 "유보 없는 꿈과 희망에 휩싸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오늘의 우리는 이명준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대와 같은 현실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진실을, 작가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끈질긴 개작 혹은 수정작업과, 그의 한 세대 전의 인식에 대한 자신감은 서로 어긋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럼에도 그렇지는 않다. 그는 자신의 개작의 성격을 이렇게 밝힌다:
"그런데 작품의 말을 다듬고 하는 것은 작품 전체의 보편적 질감의 문제지 그 내용에 대한 논란과는 관계가 없는 거죠. 물론 내용을 다소 손본 것도 있는데, 특히 소설의 마 지막에 죽음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려 한 것 같은 경우가 그렇죠. 그러나 보통 개작이라 는 말의 통념으로 볼 수 있는 대폭적인 고침은 아니었어요. 즉 내가 처음에 가지고 있 던 비전은 별로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죠."
그의 끊임없는 수정이라는 참으로 애정 어린 작업은 자신의 비전에 대한 재검토가 아니라 그 비전이 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원하는 작가의 집요한 정신의 드러냄이었을 뿐이다.
김현은 이 소설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쓴 적이 있다: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였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밑으로부터의 혁명이 가능했던, 그리고 그를 위해 숱하게 고귀한 피를 흘려야 했던 4.19가 한편의 중편소설에 비견되다니! 그러나 한국 전쟁과 분단에 대한 우리 작가들의 인식의 진전 과정을 살피면서 결국 김현의 그 진술은 과장이 아니거나, 적어도『광장』의 출현 자체가 극히 돌올한(높이 솟아 우뚝한) 현상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그것은 돌올한 것이었다. 그 돌올함은, 50년대 전반에 걸쳐 6.25와 분단이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수난이었다는 의식, 전통적인 휴머니즘의 상실이었다는 정서적 반응의 문학적 양상에 대한 대담한 항명이었다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 후의 우리의 분단 문학사에서 더욱 첨예하게 나타난다.
『광장』에서 제기된 분단의 이념적인 주제들이 우리의 문학에서뿐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라도 다루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20년 이상의 시간을 바쳐야 했고, 주인공 이명준이 후반부에서 복무하게 되는 인민군이 작품에서 긍정적인 형상력을 얻는 데는 이병주의 『지리산』과 조정래의 『태백산맥』,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가 발표되는 80년대 중반까지 기다려야 했다. 더구나 이들의 그 군대는 인민군이 포기한 빨치산일 뿐이었다. 이명준이 월북하여 뛰어든 북한의 권력 내부에 대한 묘사는 아직까지 우리 문학에서 발견되지 않는 영역이다. 다만, 이문열의 『영웅시대』가 이 영역을 건드린 바는 있지만 그 건드림은 정면이 아니라 주인공 이동영의 낙오를 만들어내기 위한 부정적 장치였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제시한 남북문제에 관한 문학적 인식의 지평은 3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직 극복되지 못한 셈이다. 『광장』의 비전과 그 주제가 지닌 돌올함은 그래서 여전히, 그리고 더욱, 유효한 것이다.
<2>『광장』의 개작은, 김현이 이미 지적했듯이, 주인공 이명준의 생애에 대한 연대기적 모호성의 수정과, '갈매기'의 상징적 장치에 대한 의미의 변화로 크게 모여지고 있지만, 우선 우리가 주목할 그의 고침은 문장 표기 방법에서 보여진다. 기존 판본이 가지고 있던 전래의 국한문 혼용 표기를 대폭 한글말 표기법으로 바꾼 것이다. 그것은 가령 이렇다:
개인적인 상처를 건드린 실수를 사과하는 그런 태도에서 그들로서는 습관인지 모르나 퍽 지각 있는 사람의 능란한 몸짓이 얼핏 스쳤다. 선장이 잠시나마 어색한 기분을 가지 게 한 것을 명준은 미안스럽게 여겼다.
아픈 데를 건드린 실수를 비는 그런 품에 그들로서는 버릇인지 모르나 퍽 분별 있는 사 람의 능란한 몸짓이 얼핏 스친다. 선장을 잠시나마 거북하게 해서 안됐다.
이 예문은, 우리 토속어에 어원을 둔 한글말을, 고칠 수 있는껏 고쳐 보려는 작가의 섬세한 노력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컨대, '상처'를 '아픈 데'로, '태도'를 '품'으로, '사과하는'을 '비는'으로, '습관'을 '버릇'으로 어휘를 바꾸었고, 이 바꿈에 따라 함께 고쳐져야 할 것들을 고치게 된다. 그것은, 한글 문체로 고치는 데에 따라 옮기기 거북한 것들을 지우거나 다른 구절로 대체하는 것, 그래서 '개인적인'이 없어지고 '어색한 기분을 가지게'를 '거북하게 해서'로 바꾼 것이 그 하나이고, 과거형의 시제가 현재형으로 변화된 것이 그 두 번째이다.
<3> 『광장』의 주제가 제시하고 있는 이념의 영역에 관해서는, 그가 여전히 선진적이고 지금의 독자들에게 계몽적인 역할을 가하고 있다는 점은 적절한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광장』은 현재성 이상의 함의를 가진다. 남한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문학적 해부와 비판은 숱하게 보아왔지만 『광장』에서 다루는 듯한 북한의 권력 내부에 대한 솔직하면서도 진지한 해명과 이의는 거의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최인훈의 뛰어난 점은, 두 개의 대립적인 이념 체계들에 대해 그가 동시에 비판적이고 그것들의 우리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의 현실화에 마찬가지로 비판적이었다는 그의 공정한 사고법에 관해서이다. 그는 60년대의 통념적인 지적 풍토에 젖어 북한의 이념과 현실을 반인간적으로 보지도 않았으며 오늘의 급진적인 사유들처럼 그것들을 환상적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의 소설에서 '광장'은 매우 중요한 비중을 가진다. '광장을 끝내 찾을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기 위한 율리시스적 방황이 이명준이 『광장』에서 기록하는 고난스러운 이력이다. 그는 이남에서와 마찬가지로 '때묻지 않은 광장'이라고 믿어 찾아간 이북에서도 그 질문을 제기했고, 환상으로 그려보는 이국 땅 인도에서의 '평범한 현자'적인 삶에서도 그 대답을 얻어낼 수 없었다. 그의 질문이 순수하고 원천적인 것이기에 그의 방황은 결코 끝낼 수가 없는 것이고 지상에서는 그 선택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율리시스처럼 고향 땅으로 상륙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의 바다에서 투신은, 달리 어떻게 해석되든, 작가가 자주 쓰는 말처럼 '운명적'이다.
<4> '광장' 뿐만이 아니라 '사랑' 역시 『광장』의 중요한 화두이다. 이전의 판본과 전집판 개작본간의 차이를 섬세하게 고찰한 김현은, 소설의 서두에서부터 이명준의 뱃길에 끈질기게 따라 날아오면서 그의 죽음의 자리에까지 함께하는 갈매기가 만들어주는 표상을, 이명준이 사랑하는 여자 은혜와 그녀가 그와의 사이에 잉태하고 있던 딸로 작가가 구체화시켰음을 밝혀내고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 이전의 판본에서 이명준의 죽음은 중립국에서도 별로 보람 있는 삶을 찾을 수 없으리 라는 것을 깨달은 자의 죽음이지만, 전집판에서의 이명준의 죽음은 정말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투철하게 깨달은 자의 자기가 사랑한 여자와의 합일, 작자의 표현을 빌 리면 '무덤 속에서 몸을 푼 여자의 용기'에 해당하는 행위인 것이다.
무엇보다 『광장』의 사랑이 가장 훌륭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은, 그 사랑이 구체적인 인간을 향해 열려 있는 사랑이고 이데올로기와 그 현실적 체제를 넘어서는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영미와 다른, 능동적이고 본연스런 은혜의 사랑과의 차이이다. 은혜의 그 사랑이 이명준을 이데올로기의 성벽으로부터 자유스럽게 만들어주었고 그의 추상적 세계 접근을 구체화시켜주었으며, 삶 자체를 사랑하는 것을 의무로 삼도록 했고, 그래서 최인훈으로 하여금 『광장』을 다시 쓰게 만들었다. 그 개작은, 어떤 이념도, 어떤 이상도 사랑이 기초되지 않는 한 그것들은 인간의 적일뿐이라는 최인훈의 결론을 유인한다:
"나라면 이런 내각 명령을 내겠어. 무릇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삶을 사랑하는 의 무를 진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적이며, 자본가의 개이며, 제국주의자의 스파이다. 누구를 묻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이름으로 사형에 처한다, 이렇게 말이야."
▣『광장』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중국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간다. 석방 포로 이명준은, 오른편에 곧장 갑판으로 통한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가, 배 뒤쪽 난간에 가서, 거기 기대어 선다.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켜댔으나 바람에 이내 꺼지고 하여, 몇 번이나 그르친 끝에,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오른팔로 얼굴을 가리고 간신히 당긴다. 그때다. 또 그 눈이다. 배가 떠나고부터 가끔 나타나는 허깨비다. 누군가 엿보고 있다가는, 명준이 휙 돌아보면, 쑥, 숨어버린다. 헛것인 줄 알게 되고서도 줄곧 멈추지 않는 허깨비이다. 이번에는 그 눈은, 뱃간으로 들어가는 문 안쪽에서 이쪽을 지켜보다가, 명준이 고개를 들자 쑥 숨어버린다. 얼굴이 없는 눈이다. 그때마다 그래온 것처럼, 이번에도 잊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문득 무언가를 잊었다는 것을 깨달은 느낌이다.
이 배의 선원들은, 이 배의 그들 석방자들에 대한 눈치에는, 어느 나름의 은근히 알아준다는 대목이 있다. 그 대목인즉 그들 석방자들이 제 나라 어느 한 쪽도 마다하고, 낯선 땅을 살 곳으로 골랐다는 데서 제 나라에서 쫓긴 수난자 같은 모습을 저희들대로 그려낸 탓인 모양이다. "어때요 느낌이? 기대, 두려움?"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없어요." 명준은 고개를 젓는다. 선장은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훅 뿜어내면서 가볍게 웃는다. "허긴,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야, 자기 나라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고 생판 다른 나라로 가 살겠다는 그 일이 말이지. 부모나 가까운 핏줄이라든지, 아무도 없소?" "있어요." "누구? 어머니?" "아니." "애인은?"
명준은 얼굴이 그렇게 알리도록 금시 해쓱해진다. 선장은 당황한 듯이 오른 손 인지를 세우고 고개를 까딱해 보이면서, "미안, 미안." 아픈 데를 건드린 실수를 비는 그런 품에 그들로서는 버릇인지 모르나 퍽 분별 있는 사람의 능란한 몸짓이 얼핏 스친다. 먼 옛날 그의 초라한 삶에도 그래도 무겁다고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이 다가올 때가 떠올랐다. 애인은? 그 말이 아직 이토록 깊고 힘센 울림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애인이 있으면 이렇게 다른 나라로 가겠다고 나설 리가 있습니까?" 명준은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