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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황대권 지음 | 도솔출판사
야생초 편지

황대권 글․그림

도솔/2002년 10월/287쪽/8,500원



1. 안동교도소에서 1(92~93년)

며느리밑씻개 - 며느리년 똥 눌 때나 걸려들지

오늘 그린 이 풀꽃의 이름이 뭔지 아니? 줄기와 잎 뒷면에 가시가 촘촘히 나 있어 덩굴로 자라면서 쉽게 다른 물건을 잡아당길 수 있다. 덩굴이 달의 덩굴이나 박주가리 덩굴처럼 몇 미터씩 뻗는 것은 아니고, 기껏해야 2미터 정도? 마디마디마다 둥그런 잎턱이 달려 있어 마치 에이프런을 둘러 입은 여중생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나는 가시가 돋친 식물은 싫어하지만 이 꽃만큼은 왠지 자꾸 보듬어 주고 싶고, 정이 가는구나. 잎턱도 귀엽지만 앙증스럽게 난 꽃 때문인 것 같아. 꽃이 활짝 피면 꽃 끝이 분홍색으로 발그레한 작은 꽃 서너 개가 조그마한 꽃대에 한꺼번에 달린단다. 몇 달 전 사회참관 나갔을 때 임하댐 언저리에서 발견해서 한 포기 뽑아와 옮겨 심은 것이지.

그만 설명하고 이름이나 가르쳐 달라고? 며느리밑씻개. 이름이 좀 숭칙하다구? 어쩌겠니? 우리 조상님들이 그렇게 붙인 걸. 도감을 들춰보면 며느리 자(字) 붙는 풀 이름이 이것 말고도 세 가지나 더 있더구나. 며느리배꼽, 며느리주머니, 며느리밥풀. 그런데 아무리 뒤져보아도 시어머니 자(字) 붙은 풀 이름은 없는 거야. 이는 필시 시어미나 시어미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붙인 이름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으로 시어미와 며느리 사이의 불편한 관계가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 것처럼 이 꽃도 그 모양을 살펴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만도 하다. 즉, 하루는 시어미가 밭을 매다가 갑자기 뒤가 마려워 밭두렁 근처에 주저앉아 일을 보았겄다. 일을 마치고 뒷마무리를 하려고 옆에 뻗어 나 있는 애호박잎을 덥석 잡아 뜯었는데, 아얏! 하고 따가워서 손을 펴보니 이와 같이 생긴 놈이 호박잎과 함께 잡힌 거야. 뒤처리를 다 끝낸 시어미가 속으로 꿍얼거리며 하는 말이 “저 놈의 풀이 꼴 보기 싫은 며느리년 똥 눌 때에나 걸려들지 하필이면….” 해서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경상북도 안동군 풍산읍 상리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네 그려.

어때, 그럴듯하니? 그리고 이 그림은 내가 도감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운동시간에 종이를 들고 나가 화단 곁에 쭈그리고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직접 보고 그린 것이다. 노고를 좀 치하해주길 바란다.

제비꽃 - 어릴 적 오랑캐꽃이라 불렀던

제비꽃은 한번 뿌리를 내리면 같은 자리에서 해마다 꽃을 피우는 다년생 야초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데다 꽃도 예쁘고 나물로 해먹을 수 있어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지.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오랑캐꽃(제비꽃의 다른 이름)이라는 이름은 그 옛날에 이 꽃이 필 무렵인 춘궁기만 되면 중국 변방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와서 그리되었다 하는구나. 아니, 어쩌면 오랑캐에게 양식을 다 빼앗겨 버리고 나물로나마 연명하려고 들판을 헤매다 마주친 꽃인지도 모르지. 꽃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런 이름 뒤에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을 거다.

제비꽃은 워낙에 품종이 많아서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꽃은 비슷해도 이파리가 제각각인 것이 신기할 정도다.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변종은 봄이 되면 제일 먼저 길거리 화단을 장식하는 팬지이다. 우리말로 삼색제비꽃이라고 하지. 나도 원예부에서 이태 연속 팬지를 길러 보았는데 몸통에 비해 터무니없이 큰 꽃잎은 그 색깔이 오묘하기 짝이 없다.

제비꽃이 자라는 것을 관찰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씨를 맺는 방식이다. 내가 이놈을 처음 우리 화단에 옮겨 온 것을 꽃이 막 질 무렵이었다. 이상하게 씨도 맺지 않고 그냥 시들어 버리더라구.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에 걸쳐 계속 꽃몽오리 비슷한 것이 이파리 사이에서 올라오더니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씨앗을 만들어내는 거야. 나는 처음에 이놈들이 내가 사방에 갇혀 있는 사이에 얼른 꽃을 피우고 씨를 맺은 것으로 알았단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애초부터 씨방이 땅에서 올라오는 거야. 참 희한하데. 나중에 알아보니 이런 것을 자가수정이라고 하더군. 제비꽃이 이런 방식을 취하게 된 것은 아직 벌, 나비가 활동하기도 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대나. 하긴 곁에 이성이 없으면 스스로 해결해야지….

제비꽃은 향기가 좋아 향수와 염료의 원료로 쓰이는가 하면, 약초로서 관절염, 불면증, 변비 등에 잘 듣고, 살균작용이 강해 부스럼이나 타박상에 이파리를 짓찧어 상처에 바르면 잘 낫는다 한다. 특히 생손 앓는 데는 직방이라나.

제비꽃을 모듬야초무침에 넣으면 보라색 꽃이 구미를 당긴다. 밥 먹을 때 꽃을 하나 따서 밥숟갈 위에 얹어 먹으니 향긋한 게 이색적인 맛이 나더구나. 대부분 사람들이 나물하면 야초의 잎과 줄기만을 떠올리지만 사실 꽃까지 먹을 수 있는 야초들이 많다. 나는 나물을 할 때 꽃이 보이면 웬만한 것은 다 따다 넣어서 무쳐 먹는다. 특히 샐러드를 만들 때 넣으면 독특한 향기를 즐길 수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호박꽃이다. 호박꽃이 피기 전 뾰족하게 생긴 꽃망울을 따다가 호박잎과 함께 쪄서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이렇게 찐 호박꽃을 서너 송이 하얀 접시에 담아 된장그릇과 함께 상에 놓아 보아라. 얼마나 보기에 좋다구. 밖에 나가면 해 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각종 꽃을 따서 꽃 샐러드를 한번 만들어 먹는 것이다. 멋질 것 같지 않니?



2. 안동교도소에서 2(94년)

강도와 교도관

날씨가 무덥다. 며칠 사이에 오이랑 호박이 많이 컸다. 특히 오이 하나는 팔뚝만 한 게 보기만 해도 탐스럽게 생겼다. 씨받이로 쓰기 위해 행여 일반수들이 따갈까 봐 호박잎으로 싸서 위장해 두었단다. 키우는 자식 있으면 다 걱정하기 마련인가 보다. 매일 나가서 오이랑 호박 개수 세는 내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아마 놀부가 매일같이 곳간 문 열어 놓고 점검하는 기분이 이랬을 것이다.

이왕 웃음이 나왔으니 오늘 사방복도에서 겪은 재미있는 일을 하나 적어 볼까? 저녁 배식이 시작되기 전 고즈넉한 오후였지. 방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사방 소지(일본말로 사동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가 새로 갈렸는지 담당 교도관의 취조심문 비슷한 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교도관 : 야, 너 뭐로 들어왔냐?

강 도 : 강도요.

교도관 : 너 칼 들었냐?

강 도 : 예. 하지만 칼 쓰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교도관 : 야, 너 만약 집주인이 겁도 없이 “찔러, 찔러”하면 어떻게 할 거야?

강 도 : 찔러야죠.

교도관 : 야, 만약 우리 집에 강도가 들었다 하자. 이때 안 다치고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고?(아마도 교도관은 당사자로부터 어떤 노하우를 알아내고 싶었나 보다.)강 도 : 말하기 전에 알아서 갖다 바치면 되죠.

교도관 : 에잇, 이 날강도야!(말소리와 동시에 머리통을 후려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문밖에서 들여오는 이 개그 아닌 개그를 듣고 배를 움켜잡고 방바닥을 몇 번이나 굴렀단다. 여기서 살다 보면 이런 촌철살인의 코미디가 때때로 걸려든다. 누가 각본을 짠 것도 아니고, 누굴 웃기려고 일부러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웃기는 상황이 연출된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 이담에 사회에 나가 얘기책을 만들면 잘 팔리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먹기 마련. 오늘은 우연히 편지를 쓰기 직전에 상황이 연출되는 바람에 이렇게 기록할 수 있었단다.

주름잎 -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저 작은 꽃을 피워 내기 위하여

黙內雷. 묵내뢰. 얼마 전 서예를 하는 한 친구가 이와 같은 글씨를 써서 보내왔기에 요즘은 이 글씨를 벽에 붙여 놓고 묵상하는 일이 잦다. 무슨 뜻인고 하니 겉으론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속으론 우레와 같다고. 그러고 보니 어느 책에서 읽은 이와 비슷한 우화 하나가 생각나는구나. 늘 평화로운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분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선생님은 정말 행복하시겠습니다.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하고 물어올 때마다 그분은 “저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는 물 아래에서 얼마나 열심히 두 발을 움직여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대답했다나.

아마 이것은 보통 사람들 중에서도 수준이 꽤 높은 사람의 경우일 거다. 많은 사람들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도 겉으론 태연한 척으로 사는 경우가 많지. 그런데 이 척에도 급수가 있다. 가장 하급은 내부의 감정을 아름답게만 보이려고 하는 아첨꾼들이고, 중급은 무조건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막는 데 급급한 자들이지. 고급은? 글쎄, 내부의 복잡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기에 앞서 자신에게나 상대에게나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순화시키려 노력하는 사람이 아닐까? 오리의 평화로움은 아마도 이성의 여과장치와는 관계없이 그저 본성에 충실한 관계로 보여진다. 그런 오리를 대단히 복잡한 감성체계인 사람과 맞대는 것은 조금 무리이기는 하지만 현상과 내면의 차이와 그 관계성을 시각적으로 일어주는 탁월한 비유라 하겠다. 이에 비해 지극히 추상적인 중국 문자로 표현한 黙內雷는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평화란 절대적 평온, 정지, 무사,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부단히 움직이고 사고하는 ‘동적평형(動的平衡)’ 상태라는 것이지. 사회가 평화롭다, 두 사람 사이가 평화롭다고 할 적에는 내부적으로 부단히 교류가 이루어지고 대화가 진행되어 신진대사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 꽃은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운동장 한구석에 있는 듯 마는 듯 피었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수년 동안 도통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많이 피어서 어디 군락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꼭 잊을 만하면 풀 섶 언저리에 한두 그루씩 심심하게 피어 있더라구. 남의 눈을 전혀 끌지 않으면서도 잊을 만하면 얼굴을 내미는 꽃. 이름이 뭔고 하니 주름잎이라고 한다. 그 밖에 고추풀, 선담배풀이라고도 하는데 아마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부르는 모양이다.

화단 구석에 수줍은 듯 얌전히 피어 있는 주름잎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묵내뢰를 떠올린다.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저 작은 꽃을 피워 내기 위하여, 화단 구석의 내밀한 공간 속에 의젓하게 자리하기 위하여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주름잎의 내면을 그려 본다.



3. 안동교도소에서 3(94)

왕고들빼기 - 야생초의 왕

이 풀은 정말 야생초의 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야생초의 모든 조건을 탁월하게 갖추고 있는 데다 덩지 또한 크기 때문이다. 먼저 크기를 보자. 비슷하게 생긴 고들빼기는 아무리 커야 40센티를 넘지 못하는 데 비해 이놈은 토질만 좋으면 2미터까지 큰다. 이 안에서는 토질도 안 좋은 데다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만지는 바람에 기껏 1미터 정도밖에 안 크지만 산자락이나 들판에 홀로 자라는 것들은 죽죽 잘 자란단다. 작년에 갔던 임하댐에서는 어찌나 잘 자랐는지 모두들 2미터 안팎이었다.

둘째로, 야생초는 그 모양이 야성적이라야 볼 맛이 난다. 잎 가장자리가 죽죽 날카롭게 찢어진 게 시원스럽지 않니? 신기한 것은 잎 모양이 기본적으로는 대칭적이지만 한 그루에 달린 수십 장의 잎을 다 살펴보아도 제대로 된 대칭꼴을 찾기는 정말 힘들 정도로 제멋대로 생겨 먹었단다. 야성미의 극치라 할 만하지.

셋째로, 야생초는 번식력이 좋아야 한다. 이 놈은 키가 큰 만큼 꽃도 엄청나게 피우는 편이다. 이파리의 와일드함에 비해 꽃은 아주 소박하고 정밀한 느낌을 준다. 이놈들이 수정을 끝내고 꽃이 다 말라 떨어진 뒤에 벌이는 낙하산 쇼는 정말 볼 만하다. 바람 부는 날이면 운동장 한구석은 왕고들빼기씨를 물고 있는 하얀 솜털들로 더부룩하니까.

봄이 되면 화단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미는데 처음에는 그냥 고들빼기나 씀바귀와 구분이 잘 안 된다. 다만 뽑아 보면 이놈은 꼭 알타리무 같은 동그란 뿌리를 갖고 있거든. 이때는 잎이 아직 갈라지기 전이라 씀바귀와 혼동하기 쉽다. 바로 이 무렵에 뽑아 먹는 왕고들빼기가 가장 맛이 좋다. 둥그런 뿌리하고 대여섯 장 달린 잎을 깨끗이 씻어 고추장에 비벼 먹으면 쌉싸름한 게 맛이 아주 상쾌하지. 아무튼 이놈의 발아력은 씀바귀나 고들빼기보단 못하지만 생명력은 대단히 끈질긴 놈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생장 도중 흰가루잎병에 잘 걸리는 것이다.

너도 짐작하듯이 이 안에서 내가 접할 수 있는 야생초는 아주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멋대로 정한 야생초의 왕이니 만일 밖에 나간다면 또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본 풀 중에 왕고들빼기만큼 야생초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풀은 별로 없었다. 끝으로 왕고들빼기의 잎은 ‘녹색’의 모든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내가 반한 것은 어쩌면 이 현란한 녹색인지도 모르겠다.



국화 없는 가을은 없다

아마도 국화가 없다면 가을도 없다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정말이지 국화가 빠진 이 땅의 풍경은 삭막 그 자체일 것이다. 가을 이맘 때 산과 들에 피는 야생 국화 종류는 모두 들국화라고 부른다. 국화과에 속하는 모든 식물을 들국화라 부르지는 않고, 어디까지나 국화 비슷한 것들, 즉 산국, 감국, 해국, 구절초…. 이런 것들을 모두 뭉뚱그려 들국화라고 부르는 거지.

이 중에서도 고아하고 상큼한 가을의 정취를 가장 멋들어지게 자아내는 것은 구절초가 아닌가 생각한다. 매년 음력 9월 9일에 꺾어다가 약으로 쓴다고 하여 구절초란 이름이 붙었다는데 만약 구절초가 이곳에 있다면 틀림없이 이 자리에 모셨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여기엔 없다.

지금 이 안에는 몇 년 전 사회참관 나갔다가 캐다 심은 산국이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사실 이 산국은 심기는 내가 심었지만 기르기는 우리 이성우 선생님이 기른 것이다. 첫해엔 뭔 꽃인지 잘 몰라서 자라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었지. 그랬더니 길이로만 마구 뻗더니 2미터가 넘게 자라더라구. 처음엔 이 선생님이나 나나 이것이 쑥 종류인 줄 알았다. 그랬는데 가을이 되자 탐스런 국화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산국일 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 해부터는 봄부터 촉치기를 해 주었지. 이 선생님께서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하면서 촉을 쳐주고 가지를 잡아 주고 하였더니 과연 올해는 멋들어진 작품이 되었다. 직경 1미터에 달하는 구형에 산국꽃이 빽빽이 들어박힌 ‘산국의 태양’이 만들어진 거야. 자연 상태로 내버려두었으면 기럭지로만 자라서 죄다 쓰러졌을 것이다.

산국은 우리가 화분에 심어 놓고 보는 노랑국화의 원형이라 볼 수 있다. 이 쬐그만 꽃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질 변화를 거듭하여 지금 우리가 보는 크고 탐스런 노랑국화가 된 것이다. 산국의 꽃 크기는 직경 2센티도 되지 않지만 향내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관상용 국화보다 한 열 배는 진할 거다. 향내가 독해서인지 국화차를 달여도 노랑국화보다 맛이 훨씬 독하고 쓰다. 작년엔 미처 다른 야생초차를 갈무리해 두질 못해 겨울 내내 국화차만을 달여 마셨지만 올해는 봄부터 제법 부산을 떤 덕분에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차를 골라서 달여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방안은 그렇지 않아도 책더미 때문에 비좁은데 갖가지 풀 말려 둔 것들로 인해 더욱 복잡하다.

그나저나 국화차는 참말로 몸에 좋다. 내가 지난 겨울 감기 한 번 앓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다 국화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본초강목』에 의하면 국화를 오래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쉬 늙지 않는다고 한다. 또 위장을 평안케 하고 오장을 돋우며 사지를 고르게 한다고 한다. 그 밖에도 감기, 두통, 현기증에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때? 너도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바람도 쐴 겸 아차산 자락에라도 놀러가서 산국이나 감국을 잔뜩 따다가 그늘에다 말려서는 겨울 내내 차나 달여 먹지 않겠니?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대접하면 더욱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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