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을 꿈꾸는 아이들 그들의 한의대 이야기
김태균 지음 | 북라인
한의대는 의대나 치대와 같이 학제가 예과 2년과 본과 4년으로 되어 있다. 한의예과에 입학해서 별 탈 없이 2년만 지나면 저절로 본과, 즉 한의학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예과와 본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예과에서는 본과에 올라가기 위한 준비 과정의 성격이 짙다. 그래서 예과에서는 한의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본과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배운다. 그리고 예과에서는 교양과 전공 수업을 함께 듣지만 본과에서는 모든 과목이 전공 필수 과목들이다. 당연히 본과로 올라가면 수강 신청과 같은 거추장스러운 일은 안 해도 된다. 학교에서 알아서 시간표를 짜 주고, 학생들은 그 시간표에만 따르면 된다.
예과 때는 주 강의실이 있어서 전공 강의는 대부분 그곳에서 한 학번이 함께 듣지만 교양 수업은 제각기 흩어져 따로 듣는다. 하지만 본과에서는 한 학번이 같은 강의실에서 정해진 시간표대로 하루 종일 같은 수업을 듣는다. 또 특이하게 본과에서는 다른 과에는 없는 30분간의 점심 시간이 있다. 주 5일 동안 40시간 정도의 수업을 받으니 따로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 정해진 점심 시간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재빠르게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점심 시간의 식당은 학생들로 항상 복잡하다.
아무튼 본과에 올라오니 모든 게 낯설었다. 낯선 과목, 낯선 교수님, 그리고 낯선 선배들…. 이런 어리벙벙한 본과 새내기들을 위해서 선배들은 많은 배려를 해준다. 우선 3월 개강 후 한달 동안 모든 본과생들은 이름표를 달고 다닌다. 선배들의 얼굴과 이름, 학년을 빨리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또 본과 1학년들에게 선배들의 쪽지가 전달된다. 이 쪽지들은 학년별로 모아서 본과 1학년 강의실에 붙여지는데 그 내용을 보면 본과 생활은 이렇게 해야 한다에서부터 △△식당의 밥이 제일 맛있다는 등의 생존(?) 관련 노하우까지 다양하다. 수십 년의 임상과 교육 경험이 녹아 있는 노(老) 교수님의 특강도 있다.대학생이라서 좋은 점의 하나는 방학이 길다는 것이다. '맹자'의 선전포고, 알쏭달쏭한 음양오행을 무기로 하는 '한의학 개론'의 기습 그리고 의외의 공격력으로 학생들을 당황하게 하는 교양 과목들의 융단 폭격을 맞아 '유급'이라는 항복 깃발을 흔드는 일 없이 무사히 전투를 마치고 첫 여름 방학을 맞은 내 심정은 그야말로 두근두근 그 자체였다. 1학기 동안 배운 것 복습하기, 선배들이 추천해 준 책 읽기, 『맹자』이외의 사서인 『대학』,『중용』,『논어』공부하기, 여자 친구 사귀기, 여행 등등이 1995년 내 다이어리에 적힌 여름 방학 계획들이다. 이 중에서 실제로 그 해 여름에 해 본 것은 선배들이 추천해 준 책 몇 권 읽은 것과 『대학』,『중용』을 공부한 것이 전부였다. 아, 여행은 여름 농촌 활동에 참여하면서 전남 고흥에 다녀온 것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당시에 나는 운전면허 취득과 여름 농촌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다. 보통 의료 봉사 동아리에서는 장기 의료 봉사를 가게 되는데 나는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냥 놀았는데 그렇게 첫 여름 방학을 보내고 난 나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 1997년 여름 방학에는 장기 의료 봉사에 다녀왔다.
연합 의료 봉사 동아리 원더스에 가입하여 잊지 못할 신입생 환영회도 겪었지만 예과 1학년 때 나의 관심은 아픈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의 별에 있었다. 당시의 나는 아마추어 천문 관측 동아리에서 밤새 별을 보고 하나하나 별자리를 알아가는 기쁨에 푸욱 빠져 있었다. 이렇게 이름뿐인 유령 회원으로 지내던 내가 처음으로 의료 봉사를 가게 된 것은 1995년 10월이었다.
환자들을 접수하는 일로 첫 봉사를 시작했는데 환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단지 흰 가운을 입었다는 이유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이것저것 물어 봐서 참으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에 환자들이 뭘 물어도 시원스럽게 대답하면서 침도 놓고 처방도 내리던 선배들의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다. 이렇게 의료봉사와 첫 인연을 맺은 나는 1997년 여름, 드디어 일주일간의 장기 의료 봉사를 가게 되었다.
여름 장기 의료 봉사의 시작은 '공포의 상자 나르기'. 의료 봉사에 필요한 도구나 약재들이 가득 들어 있는 커다란 나무 상자가 몇 개 있는데 이 상자를 나르는 일은 주로 신입 남학생들이 하게 된다. 나는 1997년 여름 봉사가 처음이라서 이때 상자를 날랐는데 정말 무거워서 허리 빠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도 선배들은 구경만 하면서 "걱정 마. 허리 다치면 내가 침 놔 줄게."하고 격려 아닌 격려를 하는 것이었다.
짐을 다 나르고 나면 진료소를 꾸미고 진료소가 설치된 다음날부터는 바로 진료가 시작되는데 한 달 에 한 번 하는 월초 봉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환자가 많았다. 보통 월초 봉사에서는 40∼60명 정도의 환자들이 찾아오는데 장기 봉사에서는 하루에 150명 정도의 환자는 보통이고, 많을 때는 200명도 넘는 환자들이 한방 진료를 받기 위해 진료소를 찾는다. 이때도 신입생의 역할이 중요하다. 신입생들은 환자들을 순서대로 진료소에 들여보내는 일을 하는데 조금만 순서가 틀려도 대기 중인 환자들 사이에서 항의가 빗발친다.
정신없이 환자들을 진료하고 안내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저녁때가 된다. 저녁에는 매일매일 그 날의 주제를 정해서 시간을 보낸다. 원더스의 경우 각 과별(원더스는 의과, 치과, 한의과, 간호과의 연합 동아리다) 연극 대결, 내려치기(원더스만의 독특한 행사로 학년별로 나란히 앉아서 제일 윗 선배가 한 잔 마시면 그 다음 학년은 두 잔, 그 다음은 넉 잔, 그 다음은 여덟 잔, 그 다음은 열여섯 잔…하는 방식으로 술을 마신다. 졸업을 앞둔 선배가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원더스를 떠나는 심정과 봉사 활동에 대한 충고를 하고, 학년별로 단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체육대회 등의 일정이 진행되는데 육체적으로 몹시 힘든 여름 장기 봉사가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 것은 이런 행사들 덕분이기도 하다.
진료 일정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1박 2일 정도의 MT를 떠나는데 이때는 봉사 기간 동안 진료를 했던 본과 3, 4학년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밥과 반찬을 준비하고, 심지어 설거지까지 한다. 밑에서 잡일하느라 힘들었을 후배들을 위한 일종의 배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MT의 하이라이트는 미스, 미스터 원더스를 뽑는 일이다. 봉사 기간 동안 열심히 활동한 회원들 중 남녀 각각 한 명씩을 뽑아 모의 결혼식을 시키고,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선배들이 마련한 신혼 여행비와 함께 둘을 새벽까지 강제 추방시킨다. 둘이 새벽까지 뭘 하다 들어왔는지는 대해 여름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곤 했다. 1997년 여름, 내가 미스터 원더스에 뽑혔을 때는 아쉽게도 너무 많은 후보들이 출마하는 바람에 후보자 연설과 장기 자랑에 밤이 새버렸다. 결국 내가 뽑히긴 했지만 결혼식을 마치고 방에서 쫓겨났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 그 시간에 낯선 동네에서 순진한 남녀가 무얼 하겠는가? 결국 숙소가 있는 호텔 로비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아쉬웠던지….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 완전히 녹초가 돼서 일주일 동안은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다시는 의료 봉사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때도 있지만 다음해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의료 봉사를 떠나게 된다. 동기, 선배, 후배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추억이 있고, 나의 작은 수고로 인해 기뻐하는 환자 분들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본초(本草)란 한의학에서 약재로 쓰이는 모든 동식물과 광물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본초학 교과서에 나오는 본초는 대략 400가지 정도다. 본초학 수업 시간에는 이런 하나하나의 본초에 대한 기미(氣味 : 한약의 덥고 차가운 정도와 한약재의 맛), 귀경(歸經 : 그 약물이 인체의 어느 장부·경략에 주된 효능을 발휘하는가를 말한다), 효능, 주치, 금기 등을 배우고 시험을 친다. 본초학 실습은 본초학 시간에 배운 약재를 직접 보면서 그 약의 '기미형색질(氣味形色質 : 한약재의 성질을 알 수 있는 방법)을 느끼는 시간이다. 본초학 실습실에는 조별로 그 날 공부할 약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실습 전에 교수님이 그 약물들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신다. 맛을 보면 위험한 약물, 그냥 만지기만 해도 위험한 약물들에 대한 주의도 주신다. 한약으로 쓰이는 약물은 생강과 대추, 파와 같이 음식물의 재료로도 쓰이는 비교적 안전한 것부터 대황(大黃 : 아주 차가운 성질의 약물로서 인체의 열을 제거하는 데 쓰이는 약물)이나 부자(附子 : 아주 뜨거운 성질의 약물로서 몸이 아주 차가울 때 사용)와 같은 한의사의 정확한 진단이 아니면 쓰기 힘든 위험한 약물까지 다양하다.
학생들은 약물을 이리저리 만져 보기도 하고, 위험한 약물이 아니면 먹어도 보고, 냄새도 맡아 보는 등 인간의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 그리고 각 약물에 대해 알아 낸 모든 정보를 실습 책에 그림과 글로 남겨 둔다. 교과서에 적힌 약물의 맛과 자신의 혀로 직접 느낀 약물의 맛이 같은지 다른지 약물의 크기와 색깔은 어떤지, 어떻게 하면 이 약물을 다른 약물과 혼동하지 않고 잘 감별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적어 둔다. 실습이 끝날 때면 모두 작은 지퍼백에 그 날의 약재를 조금씩 나누어 담는다. 본초학 실습 시험은 약재를 보고 감별해야 하는 것이므로 약물을 개인적으로 챙겨 두었다가 틈틈이 공부하기 위해서다.
본초학 실습도 시험을 치는 데 2분 안에 주어진 두 개의 약재를 보고 그 약재가 무엇인지를 알아낸 다음 그 약재에 해당하는 약성가를 적어야 한다. 약성가라는 것은 한 약물의 성질을 노래 형식으로 만든 열네 자의 한자 문장이다. 이런 방식으로 한 번에 대략 70∼100개 정도의 약재를 가지고 시험을 친다. 본초학 실습 시험을 흔히 '땡시'라고 하는데 정해진 좌석에 앉아서 땡 하는 소리가 나면 두 종류의 약재를 보고 감별해서 약성가를 적는데 정해진 2분이 지나면 다시 땡 하는 종소리가 들린다. 시간 내에 자신 있게 감별하고 약성가를 적은 후 다음 종소리를 기다린다면 몰라도 답안지가 하얀 상태라면 땡 하는 종소리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종소리가 나면 다음 좌석으로 자리를 이동해야 한다. 앞좌석에서 비운 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도 할 수 없다. 다 잊고 새 출발을 하는 수밖에.예과를 마치고 본과에 올라가면 비로소 본격적으로 한의학을 배우게 된다. 예과 때의 한의학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이었다면 본과 때의 한의학은 다분히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예과 때 배우는 한의학 개론이나 의학 한문, 황제내경 등의 과목은 배운다고 해서 당장 침을 놓거나 약을 지을 수 있는 과목들이 아니지만 본과 때 배우는 본초학이나 경혈학, 침구학, 방제학 등의 과목은 배우는 즉시 바로 써먹을 수도 있는 과목들이다. 이런 과목들 중에서 본과 1학년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본초학'이다. 이 과목은 한의학에서 치료에 사용되는 각종 약재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교과서에 나온 약재의 효능과 주의점 등을 배울 뿐만 이날 교수님의 생생한 임상 적용 사례를 들을 수 있어서 인기가 높다.
그전가지만 해도 한약이란 한의사의 진찰 후에 한의원에서 지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본초학 강의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더 이상 한의원을 찾지 않는 한의대생이 늘어난다. 즉 자가 진단에 이은 자가 처방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안 좋거나 주위에 환자가 있는 경우 더욱 실력 발휘를 해보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데 문제는 그 실력이라는 게 별로 인정할 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나도 실력을 쥐뿔도 없으면서 약을 짓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여 부모님에게 약을 몇 번 지어 드렸다. 하지만 의외로 약효가 없어서 실망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작용이 생기지 않은 것만 해도 정말 다행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책에 나온 대로 하면 다 낫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깨진 것은 본과 2학년에 들어와서 '방제학' 과목을 배우면서부터였다.
방제학은 본초학을 통해 익힌 약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약물의 조합인 '처방'을 공부하는 과목이다. 이 방제학을 통해 나는 단순히 약물들의 나열만으로는 약효를 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고, 약물의 구성에서도 각각의 특성을 고려한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병이 책에 나온 대로 처방한다고 낫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방제학을 배우고 난 후 단순히 처방을 쓰는 일에서부터 고민이 시작되었고, 처방이 완성된 다음에는 약물을 가감하는 일이 더 큰 고민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고민고민해서 지은 약이 별 효과가 없을 때는 허탈하기까지 했다.
사실 이런 고민은 거의 모든 한의대생이 한 번쯤, 아니 사람에 따라서는 수십 번도 넘게 겪게 되는데 시간이 흐르면 저마다 해법을 찾게 된다. 누구는 사상의학에서, 누구는 상한론에서, 또 누구는 동의보감에서…. 저마다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차츰 '한의사'가 되어 간다. 그 시행착오를 꿋꿋이 견디어 낸 우리 한의대생의 가족(!)들이 있었기에 다들 한의사가 될 수 있었음은 당연하다.
나 역시 시행 착오를 겪었고, 그런 시행착오의 늪에서 나를 구해 준 것은 『방약합편(方藥合編)』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동의보감』의 요약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병증에 적합한 처방과 경우에 따른 약물의 가감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고 있어서 약을 짓고자 하는 한의대생에게 큰 지침이 되어 주었다. 한의대생치고 이 책 한 권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책은 유명하고, 심지어 이런 말도 있다. "한의대에 들어와서 6년간 이것저것 죽어라 공부하지만 졸업할 때는 『방약합편』한 권 들고 나간다."
내가 『방약합편』에서 벗어나 혼자 힘으로 약을 짓게 된 것은 본과 3학년 때였다. 그해 여름 방학을 맞아 나는 학기 중에 공부하느라고 수척해진 내 몸을 스스로 추스르기 위해 '보약'을 지어 먹어야겠다고 결심하여 『방약합편』을 비롯해 각종 서적을 뒤적였지만 당시의 내 증상과 부합되는 처방이 없었다. 나는 혼자 흰 종이를 펴 놓고 예전에 처음 처방을 구성할 때처럼 이리저리 고민을 했다. 달라진 점이라면 예전과 달리 아는 것이 좀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한의학적 사고의 깊이도 조금은 깊어졌고, 무엇보다도 진단의 정확도가 높아져 있었다.
그렇게 처방을 만들고 약을 지어 먹었는데 식욕이 엄청나게 왕성해져 체중도 많이 늘었다. 그후 본과 3학년 2학기의 힘든 나날을 거치면서 살은 다시 빠졌지만 그 해 여름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감을 얻은 뒤로는 『방약합편』은 참고만 하고 약을 늘 스스로 고민하면서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처방을 쓰는 일에, 그리고 침을 놓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한의대생이 한의사로 변모하는 과정인 것 같다.한의대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 보니 한의대와 한의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피부로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하다 내가 한의대생이라는 말을 하면 "좋은 데 다니시는군요."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한의사가 돈을 잘 버는 직업으로 인식되고 해마다 한의대의 합격선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의대생들은 한의대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불행히도 대부분의 한의대생들은 한의대의 현실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 우리 나라의 열악한 교육 현실을 고려한다손 치더라도 한의대의 현실은 열악한 편이다.
우선 열한 개의 한의대 중 경희대를 제외한 나머지 열 개의 대학은 각 시, 도에 하나씩 있다. 얼핏 보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지방의 한의대는 서울의 대학가와 달리 대부분 다른 대학과 따로 뚝 하니 떨어져 있다. 그리고 한의대가 있는 대부분의 대학은 다른 과와의 격차가 너무 크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