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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을 꿈꾸는 아이들 그들의 한의대 이야기

김태균 지음 | 북라인
입학 전야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얼굴이 일그러져 당시 약국에서 처방해 준 영양제를 많이 먹어도 낫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가 나를 한의원에 데려가 얼굴에 침을 맞고, 쓴 한약과 노란 금박 종이에 싸인 우황청심환을 먹으면서 내 얼굴은 점점 정상으로 돌아왔다. 구안와사 증상이 거의 사라질 때쯤 우리 집은 인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자연스레 그 한의원에 갈 일도 없어졌지만 그 당시의 한의원과 한의사 할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내 마음에 막연한 동경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후로 수업 시간에 장래 희망을 이야기할 때가 오거나 주위 어른들이 "너 이담에 크면 뭐가 될래?"라고 물으면 자연스럽게 "저는 이담에 크면 한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내게 '한의사'는 그저 흰 수염 기르고 침을 놓고 쓴 한약을 주는 의사 선생님이었다.

막연한 동경에 불과하던 한의사의 꿈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것은 중학교 때 소설 『동의보감』이었다.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한의사와 한의학에 대한 동경을 조금씩 구체화시켜 갔다. 한동안 이 책은 이 땅의 많은 중고생들에게 한의사를 꿈꾸게 한 큰 원동력 중의 하나였다. 또 하나 한의사의 꿈을 키우는 데 영향을 준 것은 드라마 <동의보감>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한의사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또 한의학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막연히 '허준과 같은 명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보통의 사춘기 소년에 불과했다. 중3 말이 되어서야 한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한의대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서울대에는 한의대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정도로 정말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라는 것도 없었고, 더욱이 지금의 '장차 한의사가 되고픈 사람들'과 같은 동호회는 상상도 못했다. 경희대 한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친구들과 한의학을 과학화해야 한다는 둥, 인삼의 효능만 과학적으로 입증해도 노벨 의학상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둥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들만 하였다. 고등학교 때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보약을 짓기 위해 한의원을 여러 번 찾았었고, 진찰 중에 한의대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웃으면서 힘내라고 격려해 주시던 한의사 선배님들도 있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는 어린 시절의 꿈인 '한의사'의 길로 다가가고 있었다.

예과 생활



한의대에서의 첫 수업




2월 말이 되면 대개의 한의대는 새내기 새로 배움터, 일명 새터라고 불리는 예비 모임 성격의 MT를 가게 된다. 물론 가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가는 편이 여러 모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훗날 한의대에 가게 되면 꼭 참가하라고 권하고 싶다. 새터에 가면 선배와 동기들을 많이 만나고 친해지게 되는데 십중팔구 "넌 왜 한의대에 왔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나도 많이 들었고, 또 나 역시 후배들에게 많이 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오게 된다. 대략 3박 4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새터를 마치게 되면 '아, 나도 이제 정식으로 한의학을 배우는 구나!'라는 기대감에 부풀게 된다.

하지만 기대에 부푼 첫날 수업은 대부분 설렘으로 시작해서 당혹감으로 끝난다. 내 경우 첫날 첫 수업은 '한의학 개론'이라는 과목이었다. 한의학의 기본 이론에 관한 기초 지식을 『한의학 개론』이라는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배우는 과목이라는 교수님의 기본 설명이 끝나고, '음양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두 시간 정도 수업을 들었는데 내가 평소 무협 소설을 많이 읽고 음양에 대해서도 어설픈 지식이나마 있어서인지 흥미로웠다.

그 다음 수업은 '맹자'. 조사 빼고는 전부 한자인 책이 나타났다. 편집도 우리에게는 낯선 옛 서적의 세로쓰기 형식. 한의대니 한자를 공부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막상 책을 펴게 되면 대부분은 당황하게 된다.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간단히 소개를 끝낸 교수님은 낭랑한 목소리로 "맹자∼ 견∼ 양혜왕 하신대∼ 왕왈수불원천리이래하시니…."하면서 책을 읽어 가셨다. 서당 훈장님 같은 특이한 낭독방식에 여기저기서 당황해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한의대에 들어올 정도면 눈치도 제법 빨라서 바로 분위기 파악하고 교수님을 흉내내어 낭독한다. 그렇더라도 한자를 모르니 교수님이 읽어 주실 때 얼른 책에 음을 달아 놓지 않으면 우물우물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때 국어, 영어, 수학 그리고 과학만 공부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맹자를 술술 읽을 수 있겠는가. 이로써 나를 포함한 120명의 95학번 신입생들은 한의대생이라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인 한자와의 험난한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업 방식 외에도 한의대에 처음 입학하게 되면 낯선 것이 또 있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신입생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나사(나이든 사람들)라고 부른다. 나사로 불리기 위해서는 사수 이상이 되어야 한다. 나사 구성원은 참으로 화려하다. 박사 학위자도 많고, 그 좋다는 서울대 출신도 제법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온 사람들이라 그 전공도 각양각색이다. 입학 후 첫 수업에서의 설렘과 당혹스러움, 저녁 신입생 소개식에서의 술 파티와 함께 나의 한의대 생활은 시작되었다.

너희가 음양오행을 아느냐?



한의대에 들어와 한문에 차츰 익숙해지면 본격적으로 한의학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바로 음양오행에 관한 부분일 것이다. 음양오행. 사실 이 용어는 한의학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동양 철학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개념이고, 동양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음직한 용어이다. 내가 음양오행이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때였고, 한의학 개론 시간에 정식으로 음양오행을 접하게 되었다. 한의학 개론 수업은 교과서보다는 교수님의 설명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들으면 알 것 같기도 한데 막상 적용하려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각종 비유와 추상적인 관념의 나열 속에서 차츰 음양오행의 언어에 '익숙'해지면 어리석게도 자기가 음양오행을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나 역시 그 착각 속에 사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지만 이런 사람들도 실력 있는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금방 그 착각은 사라지게 된다. 또 이 때쯤 되면 예과생들의 대화도 조금은 한의대생다운 면모를 띠게 된다.

"야, 저기 흙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봐라. 저것이 목극토 아니겠냐?" "찬 성질의 맥주와 뜨거운 성질의 소주를 섞어야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거야. 자, 마셔!" 이것은 단지 자신이 한의대생임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음양오행의 개념을 깨닫기 위해 발버둥치는 노력의 단편인 것이다. 한의대에 들어오면 선배들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배워온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 방식은 버리고, 직관과 추상을 중요시하는 한의학적 사고 방식을 익혀야 해." 한의대 예과 생활은 바로 이 한의학적 사고방식의 체득을 위한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음양오행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이 사고 방식을 체득해야만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름대로의 사고 방식을 통해 음양오행의 관문을 돌파하는 과정이 훗날 어떤 한의사가 될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첫 번째 잣대가 되는 것 같다. 똑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각자의 소양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는 것처럼 똑같이 음양오행을 접해도 그 개념을 얼마만큼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는 각자의 노력에 달린 것이다.

음양오행을 이해하고 한의학적 사고를 체득하기 위해 나는 한의학 개론 시간에 끊임없이 교수님에게 질문을 했고, 선배들이 추천해 준 책들을 읽고, 『한의학 개론』을 혼자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동양 철학 스터디를 통해 선배들의 의견을 듣고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렴풋하게나마 개념을 잡았다. 물론 그 개념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조금씩 확실해진다.

저를 시험에 들게 마옵소서!



한의대와 같은 의과 대학에는 유급 제도가 있다. 전 과목의 평균이 70점(한의대와 같은 의료 계열은 다른 학과와는 달리 100점 만점으로 점수가 계산된다)이 안 되거나 한 과목이라도 60점을 넘지 못하면 진급하지 못하고 후배들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것은 아주 끔찍한 일이다. 초·중·고등학교 때까지는 시험을 못 쳐도 부모님에게 야단맞는 정도로 끝나지만 한의대에서는 시험을 못 치면 재시와 삼시라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고, 이마저 통과하지 못하면 유급의 쓴잔을 맛보게 된다. '지금까지 잘 해왔는데 설마 유급을 당할까?'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의대 생활을 조금만 해 보면 유급의 공포가 남의 일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된다.

예과 1학년 때는 교양 과목이 많지만 예과 2학년 때부터는 생리학, 본초학, 양방생리, 해부학과 같은 전공 과목을 배우게 되어 예과 1학년과 달리 예과 2학년부터는 대부분이 전공 과목이고 교양 과목은 거의 없다. 따라서 예과 2학년부터 한의대 생활은 힘들어진다. 예과 1학년 때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예과 1학년 때의 타성에 젖어 있던 학생들은 더욱 힘들어한다. 그래서 그전까지 대학 생활의 여유와 낭만을 즐기던 친구들도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한의대 시험은 알고도 당한다."는 말이 있다. 시험에 나올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그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못 외우거나 정확히 외우지 못하고 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과 2학년 1학기에는 '약용식물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이 과목은 단지 식물의 기원과 학명, 약물명, 약용 부위 등을 외우면 되었다. 쉽게 들리겠지만 한 번 치르는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약물의 개수가 300∼400개 정도 되면 이건 인간의 힘으로 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양이 많아지면 저마다의 암기 유형이 나온다. 그 중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역시 말을 만들어가면서 외우는 방법이다. 야한 말, 말도 안 되는 말, 엽기적인 말, 친구나 교수님, 연예인을 인용한 말 등 사용 가능한 모든 단어를 동원해서 말을 만든다.

나는 내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대학생이라서 좋은 점의 하나는 방학이 길다는 것이다. '맹자'의 선전포고, 알쏭달쏭한 음양오행을 무기로 하는 '한의학 개론'의 기습 그리고 의외의 공격력으로 학생들을 당황하게 하는 교양 과목들의 융단 폭격을 맞아 '유급'이라는 항복 깃발을 흔드는 일 없이 무사히 전투를 마치고 첫 여름 방학을 맞은 내 심정은 그야말로 두근두근 그 자체였다. 1학기 동안 배운 것 복습하기, 선배들이 추천해 준 책 읽기, 『맹자』이외의 사서인 『대학』,『중용』,『논어』공부하기, 여자 친구 사귀기, 여행 등등이 1995년 내 다이어리에 적힌 여름 방학 계획들이다. 이 중에서 실제로 그 해 여름에 해 본 것은 선배들이 추천해 준 책 몇 권 읽은 것과 『대학』,『중용』을 공부한 것이 전부였다. 아, 여행은 여름 농촌 활동에 참여하면서 전남 고흥에 다녀온 것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당시에 나는 운전면허 취득과 여름 농촌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다. 보통 의료 봉사 동아리에서는 장기 의료 봉사를 가게 되는데 나는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냥 놀았는데 그렇게 첫 여름 방학을 보내고 난 나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 1997년 여름 방학에는 장기 의료 봉사에 다녀왔다.

연합 의료 봉사 동아리 원더스에 가입하여 잊지 못할 신입생 환영회도 겪었지만 예과 1학년 때 나의 관심은 아픈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의 별에 있었다. 당시의 나는 아마추어 천문 관측 동아리에서 밤새 별을 보고 하나하나 별자리를 알아가는 기쁨에 푸욱 빠져 있었다. 이렇게 이름뿐인 유령 회원으로 지내던 내가 처음으로 의료 봉사를 가게 된 것은 1995년 10월이었다.

환자들을 접수하는 일로 첫 봉사를 시작했는데 환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단지 흰 가운을 입었다는 이유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이것저것 물어 봐서 참으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에 환자들이 뭘 물어도 시원스럽게 대답하면서 침도 놓고 처방도 내리던 선배들의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다. 이렇게 의료봉사와 첫 인연을 맺은 나는 1997년 여름, 드디어 일주일간의 장기 의료 봉사를 가게 되었다.

여름 장기 의료 봉사의 시작은 '공포의 상자 나르기'. 의료 봉사에 필요한 도구나 약재들이 가득 들어 있는 커다란 나무 상자가 몇 개 있는데 이 상자를 나르는 일은 주로 신입 남학생들이 하게 된다. 나는 1997년 여름 봉사가 처음이라서 이때 상자를 날랐는데 정말 무거워서 허리 빠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도 선배들은 구경만 하면서 "걱정 마. 허리 다치면 내가 침 놔 줄게."하고 격려 아닌 격려를 하는 것이었다.

짐을 다 나르고 나면 진료소를 꾸미고 진료소가 설치된 다음날부터는 바로 진료가 시작되는데 한 달 에 한 번 하는 월초 봉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환자가 많았다. 보통 월초 봉사에서는 40∼60명 정도의 환자들이 찾아오는데 장기 봉사에서는 하루에 150명 정도의 환자는 보통이고, 많을 때는 200명도 넘는 환자들이 한방 진료를 받기 위해 진료소를 찾는다. 이때도 신입생의 역할이 중요하다. 신입생들은 환자들을 순서대로 진료소에 들여보내는 일을 하는데 조금만 순서가 틀려도 대기 중인 환자들 사이에서 항의가 빗발친다.

정신없이 환자들을 진료하고 안내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저녁때가 된다. 저녁에는 매일매일 그 날의 주제를 정해서 시간을 보낸다. 원더스의 경우 각 과별(원더스는 의과, 치과, 한의과, 간호과의 연합 동아리다) 연극 대결, 내려치기(원더스만의 독특한 행사로 학년별로 나란히 앉아서 제일 윗 선배가 한 잔 마시면 그 다음 학년은 두 잔, 그 다음은 넉 잔, 그 다음은 여덟 잔, 그 다음은 열여섯 잔…하는 방식으로 술을 마신다. 졸업을 앞둔 선배가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원더스를 떠나는 심정과 봉사 활동에 대한 충고를 하고, 학년별로 단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체육대회 등의 일정이 진행되는데 육체적으로 몹시 힘든 여름 장기 봉사가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 것은 이런 행사들 덕분이기도 하다.

진료 일정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1박 2일 정도의 MT를 떠나는데 이때는 봉사 기간 동안 진료를 했던 본과 3, 4학년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밥과 반찬을 준비하고, 심지어 설거지까지 한다. 밑에서 잡일하느라 힘들었을 후배들을 위한 일종의 배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MT의 하이라이트는 미스, 미스터 원더스를 뽑는 일이다. 봉사 기간 동안 열심히 활동한 회원들 중 남녀 각각 한 명씩을 뽑아 모의 결혼식을 시키고,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선배들이 마련한 신혼 여행비와 함께 둘을 새벽까지 강제 추방시킨다. 둘이 새벽까지 뭘 하다 들어왔는지는 대해 여름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곤 했다. 1997년 여름, 내가 미스터 원더스에 뽑혔을 때는 아쉽게도 너무 많은 후보들이 출마하는 바람에 후보자 연설과 장기 자랑에 밤이 새버렸다. 결국 내가 뽑히긴 했지만 결혼식을 마치고 방에서 쫓겨났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 그 시간에 낯선 동네에서 순진한 남녀가 무얼 하겠는가? 결국 숙소가 있는 호텔 로비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아쉬웠던지….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 완전히 녹초가 돼서 일주일 동안은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다시는 의료 봉사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때도 있지만 다음해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의료 봉사를 떠나게 된다. 동기, 선배, 후배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추억이 있고, 나의 작은 수고로 인해 기뻐하는 환자 분들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과 생활



본과에 진입하다




한의대는 의대나 치대와 같이 학제가 예과 2년과 본과 4년으로 되어 있다. 한의예과에 입학해서 별 탈 없이 2년만 지나면 저절로 본과, 즉 한의학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예과와 본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예과에서는 본과에 올라가기 위한 준비 과정의 성격이 짙다. 그래서 예과에서는 한의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본과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배운다. 그리고 예과에서는 교양과 전공 수업을 함께 듣지만 본과에서는 모든 과목이 전공 필수 과목들이다. 당연히 본과로 올라가면 수강 신청과 같은 거추장스러운 일은 안 해도 된다. 학교에서 알아서 시간표를 짜 주고, 학생들은 그 시간표에만 따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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