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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

이호철 지음 | -
소시민

이호철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나(화자): 이북 농촌 출신의 청년으로 부산까지 내려와 제면소에서 일한다. 비판적 통찰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감상에 빠진다.

강 영감: 본래 동경 일교대학 출신의 지식인이던 그는 부인이 도망가자 부인을 찾으러 부산까지 내려온 인물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결국 죽는다.

천안댁: 순박한 여자였지만, 김씨에게 휘말려 남편을 버리고, 마침내 야간업소에까지 나가게 된다.

정씨: 남로당 간부 출신. 김씨의 상관으로 8명의 식솔을 둔 가장이다. 처음 제면소에서 일할 때는 정결한 삶의 자세를 견지한다. 하지만 그는 점차 현실의 완고함에 휘둘려 자신의 이념을 지키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진다.

신씨: 제면소 일꾼의 우두머리로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 별 말이 없는 그는 일제치하의 삶을 그리워한다.

곽씨: 허세가 강한 약삭빠른 성격의 소유자로 수시로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킨다. 결국 군대에 징집되어 전사한다.

김씨: 과거 정씨 밑에서 남로당 활동을 함께 한 인물. 성공에 대한 열망과 강한 생활력을 지닌 그는 후에 미 팔군 납품업자로까지 성장한다.

광석이 아저씨: 나와 동향사람인 그는 세상이 개판 같다며 국화빵 장수를 시작하나 나중엔 점포를 갖고 평범하게 살아간다.



제면소 사람들

이 무렵의 부산 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해먹던 사람이건 이곳으로만 밀려들면 어느새 소시민으로 타락해져 있게 마련이었는데, 더구나 아침, 저녁으로 부두 노동자들이 들끓고 있는 남포동 일대는 서민의 살갗을 짙게 느끼게 하였다.

남포동 선창가 일대 사람들이 북진과 함께 떠나는 와중에 나는 완월동 제면소에 들어간다. 그곳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차츰 제면소 일에 적응하며 산다. 어느 날 밤 제면소의 주인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그는 주인 마누라의 속병을 어떻게 고쳐 보라며 나를 자신의 마누라가 있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별로 아파 보이지 않는 주인 마누라 배를 쓸어주고 나온 나는 이 일이 이 집의 상례임을 알게 된다. 주인 마누라가 탈이 나면 꼭 일꾼 가운데서 가장 젊은이가 호출되는 것이었다. 허세가 강하고 약삭빠른 곽씨는 이 일로 나에게 무안을 주어 나와 가끔 충돌하곤 하였다.

주인에게는 술에 취해 밤늦게 들르는 형님이 있는데 어머니인 노파가 그 술주정을 받곤 했다. 형님이 그러니 제사는 당연히 동생인 주인댁에서 지냈는데 처음 제사 광경을 본 나는 평소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인 강 영감과 형님이 눈물을 흘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목격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씨라는 새 배달부가 들어온다. 강기가 있어 보이고 유식한 분위기가 있는 그는 주인과 일대일로 맞서려는 당찬 성격의 소유자로 항상 주인과 맞상대가 되는 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수완이 좋은 그를 주인도 어쩌지는 못한다.

제면소에서 같이 일하는 순진한 천안댁을 맘에 둔 곽씨는 특히 김씨에게 잘 해 준다. 하지만 천안댁은 이미 김씨에게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화장실에 갔다가 천안댁과 김씨의 은밀한 사정을 알게 된다. 그러나 김씨는 서로의 관계를 모른척 속이며 곽씨를 따라나선다. 그날 밤 천안댁이 찾아와 집을 떠나야겠다며 나에게 돈을 빌려간다.

늦게 돌아와 잠을 자려는 순간 주인 마누라가 나를 부른다. 이번에는 주인 마누라 옆에 가만히 누워만 있다가 돌아온다. 정씨가 하루는 나를 붙잡고 방직공에 다니는 외눈의 누이동생과 혼사를 제의한다. 나는 그의 제의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정씨와 나 사이에는 어색한 감정이 생긴다.

어느 날 곽씨는 나를 찾아와 자신의 천안댁에 향한 연모의 감정을 말하며 천안댁에게 편지를 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곽씨의 말에 나는 김씨와 천안댁의 관계를 말한다. 그러고 돌아온 그날 밤 강 영감이 자결을 한다. 강 영감은 본래 동경 일교대학 출신의 지식인으로 유식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부인이 도망가자 부인을 찾으러 부산까지 내려왔었다. 하지만 한번 떠난 부인을 찾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채 제면소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했다. 강 영감이 죽자 비로소 그를 아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강 영감의 초상 관계로 일꾼들이 두문불출하는 사이 김씨는 정씨의 단골을 가로채고 초량동의 제면소에 나가서 일당을 받고 일한다.

강 영감의 시신을 옮긴 2시간 후 모던한 차림의 모녀가 찾아오는데 그들은 강 영감의 마누라와 딸이었다. 그 부인은 돈 뭉치를 꺼내들며 정씨에게 장례를 부탁한다. 그 순간 딸은 웃음을 터뜨리는데 그 모습에 나는 끌렸다. 이때부터 나는 그녀와 연애를 할 것을 작정한다. 입관절차가 끝나고 모녀가 돌아가기 직전 먼저 나온 딸에게 다가간 나는 강 영감이 일교대학을 나온 사실을 듣게 된다. 나는 다급하게 약속을 정하여 그녀에게 말하고 나서는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와 버린다.



망해 가는 세상

어차피 사회 전체의 격동 속에서는 종래의 형태로 있던 사회 각 계층의 단위는 그 단위의 성격을 잃어버리고 한 수렁 속에 잠겨서 격한 소용돌이 속에 휘어들어 탁류를 이루게 마련이었다.

이튿날 약속대로 강 영감의 딸을 만난 나는 정작 마음 속으론 후회를 했지만 여고 삼학년인 매리는 오히려 의붓아버지가 더 아버지 같다며 생부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나는 강 영감이 보도연맹에 있다가 바보가 되었고, 몇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술에 빠진 사이 매리와 그 부인이 부산으로 도망 왔던 사정을 듣게 된다.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 갑자기 그녀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순진한 나는 그만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돌아온 얼마 후 날라리는 초량 제면소의 단골들을 김씨에게 뺏겼다는 것을 알린다. 김씨는 강 영감의 장례 관계로 정씨가 일을 할 수 없어서 잠시 단골들을 돌렸고, 다시 돌아오는 약조를 했다고 주인에게 변명한다.

주인 부부는 부산에 차츰 퍼지기 시작한 평양냉면 때문에 국수가 안 나간다며 직원들을 타박한다. 이 무렵 주인의 외출이 잦아졌고, 주인 마누라의 건강은 악화되었으며, 곽씨가 주인 마누라를 누님이라 부르며 주인 방을 제방 드나들 듯이 왕래한다. 곽씨는 점차 도도해져 천안댁에 대한 짝사랑도 어느새 단념하고 있었다. 신씨는 곽씨를 대하는 태도가 차츰 불안정해져갔고, 김씨와 정씨 사이는 눈에 띄게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정씨는 나에게 김씨에 대해 묻지만 대답도 듣지 않고, 이 바닥에선 누구나 별수 없다며 그는 조만간 부르주아가 될 거라고 말한다. 나에 대해 무관심 척 한 그에게 술김에 항의를 해 보지만 별 말이 없다. 이튿날 곽씨는 고향에 갔다가 5일만에 아비와 짐꾼을 앞세우고 돌아온다. 결국 일꾼들 방에까지 몰린 시골 아범은 곧 돌아간다.

초저녁, 천안댁이 나를 찾아와 내일 모레 육군병원에서 퇴원할 남편이 찾아온다며, 김씨에게서 몹쓸 병이 옮았다고 털어놓는다. 이틀 후 과연 남편이 찾아왔는데 그 동안에 야윈 체구 때문인지 천안댁과는 꼭 오랍누이와도 같이 보였다. 천안댁의 간청에 둘만 있는 뒷방으로 간 나는 술에 취해 들어온 김씨가 천안댁과 그의 남편에게 행패를 부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어이가 없었다. 결국 천안댁의 남편은 꺼칠한 얼굴로 다음 날 떠나고 천안댁은 애처롭게 울기만 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정씨는 차라리 그 자리에 자기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자주 오던 젊은 동회 서기가 일꾼 하나를 천 원에 달라고 하여 결국 내가 뽑혀 가게 되었다. 일꾼으로 가던 중 나는 동향 사람인 광석이 아저씨를 만난다. 빨갱이 처단하라며, 고향에서 기세 등등했던 그는 그새 초라해져 있었다. 그런 그와 술에 취해서 시간을 죽이면서 일도 하지 않은 채 있다가 매리를 찾아서 교회로 간다. 그녀는 나에게 임신했다고 했지만 내가 별 반응이 없자 그냥 넘어갔다.

집에 도착하니 푸닥거리가 한창이었다. 주인 마누라의 병으로 이틀째 푸닥거리를 하는 무녀는 강 영감의 혼령과 그 사이 일선에서 죽은 천안댁의 남편 혼령을 번갈아 감당하기 버거운 기색이었다. 무녀가 천안댁을 돌아보며 불쌍하다며 푸닥거리를 하고 있던 중 김씨가 들어오자 복숭아 나뭇가지로 그를 후려친다. 피하던 김씨는 천안댁을 이끌고 밖으로 나와 버린다.

주인은 여전히 외출이 잦았고 주인 마누라는 점차 건강을 회복한다. 정씨는 처음의 호기는 없어지고 쇠잔하게 메말라가며 말수도 적어졌다. 이런 정씨를 대하는 곽씨는 갈수록 불손해져 갔고 심지어 나까지도 그렇게 대해 언젠가 혼을 내주어야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차가 온 것을 계기로 곽씨와 나는 드디어 싸움을 벌여 그의 기를 꺾어 버렸다. 곽씨는 싸움에 진 이후 모든 이의 혐오와 경멸을 받는데다가 군경합동심문에 걸려 그 동안 모은 돈을 뇌물로 내놓게 된다. 상복을 입은 천안댁은 그간의 사건도 있고, 김씨가 살집을 마련했다며 이 집을 나간다고 말한다. 나는 김씨를 만나 같이 술자리를 한다. 그는 정씨가 자신의 상관이었으니 잘 부탁한다며 자신이 떠날 것이라 얘기한다. 김씨는 나와 강 영감의 딸과의 관계를 걱정하며 정씨에게 나중에 주라고 돈 20만원을 건넨다.

그런 와중에 나를 보는 주인 마누라의 눈길이 더욱 노골화 되어갔고, 집안 사람들은 다들 제각기 돌아다녔고 매리마저 뜸해졌다. 뒷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어느 날 저녁, 주인 마누라가 찾아와 이 집을 나가라고 협박하고 이따 만나자고 한다. 주인 마누라와 택시를 타고 멀리 나온 나는 달려드는 그녀를 거부하지 못하고 이제부터 세상이 정말 망해간다고 생각한다. 고향에 돌아가는 체하는 천안댁을 배웅하고, 일요일 오후 정씨 집을 방문한 나는 인생이 허망하다는 그의 말에 혹시 환상에 잡혀 있지 않은 지 묻는다. 잠시 후 누이동생이 주안상을 차려 오는데 외눈박이인 그녀의 외모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청순해 보이는 그녀에게 마음이 끌린다. 술집 작부 태생의 서출이란 그녀의 내력을 이야기하며 취한 정씨를 누이동생은 측은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정옥의 죽음

집단으로서의 규범에 반항을 할 수 있을 때 사람은 뜨거운 정열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런 규범을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 개개인은 무의미하게 부풀어오른다. 그리고 이때 더 못 견디고, 별의별 난무가 시작된다.

김씨가 월말에 제면소를 그만둘 것이라는 사실을 통보한 어느 날 오후, 주인 마누라는 물건을 산다며 나를 데리고 나간다. 어두워져 주인 마누라와 헤어진 나는 이 일에 대해 얘기하고자 매리를 찾아가지만 뜻밖에 매리의 반응은 냉담했고, 나는 그날 이후 그녀를 만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제면소로 돌아오다 김씨와 일꾼들 모두와 함께 이별의 술추렴을 위해 몰려간다. 김씨는 천안댁과의 사이를 고백하고 조만간 정치에 관여할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정씨의 동참을 권유하던 김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겠다고 한다.

다음 날 앓아 누운 정씨를 김씨와 내가 문병을 간다. 가는 도중 김씨는 바에 나가는 천안댁 소식을 전해 주고는 자신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런 소리 지껄인다고 쌍놈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겠지만 쌍놈이 안 되면 대관절 어짜겠다는 거고? 어짤 끼여? 내 원 참, 대관절 어찌 됐다는 거고? 별의별 쌍놈의 짓 다 해서라도 돈만 벌면, 그날부터 양반도 될 수 있능기라. 그래서, 그래서 그게 어찌 됐다는 거고?”라고 막무가내로 떠들며 이제부터 정씨를 경멸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누운 정씨는 미안하다며 누이동생을 나에게 보낸다. 누이동생은 김씨가 준 돈 20만원을 다시 김씨에게 돌려주라며 건네 준다. 그런 그녀가 애처로워 보듬어 줄려던 나는 예기치 않게 그녀의 자세한 내력을 듣게 된다. 정씨가 오라버니가 아닌 삼촌일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술집 작부가 아들과 아비 모두를 상대했던 것이 드러나 아들이 러시아로 떠났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나도 앓아 눕게 되고, 주인 마누라의 병간호를 받게 된다. 불심검문에 걸린 곽씨는 매번 잡혀갔으나 번번이 김씨가 빼준다. 나도 병이 차차 나아졌고 정씨 누이동생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무렵 광석이 아저씨는 국화빵 장사를 시작했다. 나는 피난이 아닌 인생 경험 삼아 잠시 나온 것 같은 아저씨를 보며 이렇게 사는 부산이 현실 같지 않게 느낀다.

예의 아저씨를 찾아가려는 참에 정씨가 누이동생 정옥이가 아프다며 나에게서 돈을 빌려간다. 정옥의 꿈을 꾸다 일어난 나는, 시집가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자 신씨는 놀라며 그것은 누군가가 죽는 꿈이라고 해몽한다. 그래서인지 새벽부터 이상한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한낮이 되도록 정씨가 나타나지 않자 나는 걱정이 되어서 그의 집에 찾아간다. 다행히 간밤의 고비를 넘긴 그녀와 잠시 얘길 나눈다. 다소 들떠 있는 정씨와 마주 앉은 나는 김씨가 우동 공장도 집어치우고 쓰레기 처리회사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는다. 정씨는 나와 정옥이가 친해진 것이 대견스러워 처음부터 들떠 있었고 결혼을 예견하는 모양이었다.

중이 들렸다가 사라진 그때 정옥은 숨을 거두고 만다. 완월동 집에 돌아온 나는 사람들에게 정옥의 죽음을 알리고 돈을 들고 다시 정씨의 집으로 가 조촐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탁류

모든 것은 그저 소용돌이였고, 불안전한 임시의 성격을 지녔고, 뜨내기 부유층조차도 고독하고 불안한 밤잠을 자야 했다. 사회적 무정부상태는 사회 내의 도처에 큰 아가리를 뚫어 놓았고, 이러한 공동은 금시 탁류에 찬 잡것으로 들이차고 있었다.

강 영감 마누라의 밀수 소식을 전해들었어도 완월동 제면소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에 젖어 살고 있다. 김씨는 여전히 두문불출이고 주인 마누라는 주인이 잘 해 주는 것을 보고 부인 노릇에 충실해지고 있었다. 정옥이가 죽은 뒤 정씨는 더욱 의욕을 잃어 갔고 신씨와 왜정시대 이야기를 하며 자주 어울렸다. 신씨는 그때를 누구보다도 소상히 잘 기억하고 있었고 그것을 오히려 미화하고 있었다. 씁쓸해진 내가 밖에 나가 있자 정씨가 따라 나와서 술을 한 잔 하자고 하면서 정옥의 유품인 도장을 건네 준다.

방에 먼저 돌아온 정씨를 기다리다 돌아온 나는 김씨가 새로 데려온 절름발이 청년 언국이를 만난다. 사흘 후에 공교롭게도 곽씨가 잡혀갔다. 식모아이와 난투를 벌인 곽씨가 훈련소에 끌려가게 되어 곽씨의 빈자리를 언국이가 대신하게 되었다. 새 기계 일은 언국이에게 인계하고 나는 곽씨가 하던 일을 이어받았는데 쉬운 일이라 언국이를 자주 도와주었다. 그러나 언국은 고새 본색을 드러내어 요령을 피웠고 일은 엉망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결국 김씨가 이 일을 중재하고 이 집을 나선다. 김씨가 떠난 이틀 후 천안댁이 나를 찾아왔다. 도회지 여자같이 변한 천안댁은 김씨 본부인이 찾아와 행패 부린 사연과 고향에 들린 사연을 늘어놓는다. 그러던 그녀는 주인 마누라 일을 말하며 자신은 어떠냐며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마침 찾아온 김씨와 만나게 된다.

언국이도 이제 제 일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고 정씨 역시 일을 열심히 하며, 언국이와 나는 자주 어울려 다녔다. 신씨가 주인 마누라와의 일을 잘 알지도 모른다고 천안댁이 말한 이후 어쩐지 그를 피하게 된다. 언국이는 정씨만이 친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광석이 아저씨는 국화빵 장수에서 어느덧 작은 점포의 주인이 되어 예전에 늘 하던 “개판!“이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아저씨는 점포에서 이제 번듯한 잡화상을 차리고 언국이와 나에게 술을 사지만 언국이는 촌사람이 살맛 난 꼴이 보기 싫은 지 다시는 가지 않았다. 그러자 아저씨가 찾아와 날 부탁한다고 주인댁에 여러 번 얘기를 한다. 이 꼴을 본 언국이는 별안간 부자가 되어 예전에 나보다 못 살던 그가 자랑할 데가 없어 여기에 온 것이라며 분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역시 그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고, 그 역시 진짜로 발을 끓었다.

정국이 뒤숭숭해지자 이 일에 가장 관심 많은 날라리는 신명나서 떠들고 모두 그의 말에 흥미를 갖는다. 국회와 이승만의 갈등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은 날라리의 말을 듣고만 있다. 정씨는 “누구 편이냐?”라는 질문에 아무 편도 아니라는 대답을 하고, 그와 동시에 주인집 노파가 곽씨가 죽었다는 것을 알려온다. 곽씨의 죽음은 별 반응 없이 조용히 지나갔고 오직 노파만이 서럽게 울었다. 술 취한 주인 집 형이 들어와 주사를 부리다 신씨를 찾아 곽씨의 제를 올려주자고 제안하지만 이내 곧 쓰러져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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