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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촌장 기행

김주영 지음 | -
외촌장 기행

김주영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분옥: 매춘부 출신으로 온갖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여인. 야바위꾼 사내와 숨바꼭질 사랑 놀음을 한다.

야바위꾼: 이제는 시골 사람들에게도 먹히지 않는 야바위꾼 노릇을 하며, 사글세라도 살림을 차리자는 분옥과 옥신각신의 게임을 벌인다.

나(민세철): 수행으로 장터에 왔다가 분옥과 야바위꾼의 말을 엿듣고, 분옥을 만나 분옥의 유혹으로 그녀와 동행하지만 이내 야바위꾼 사내에게 추적당한다. 그리고 두 남녀 관계를 흥 미롭게 주시한다.



여인숙에서 여자와 만나다

깡마른 여인숙 여인이 안내해 준 방을 들어가기 전에 나는 조그만 마루에 앉았다. 여인숙 오른편에 있는 수수밭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메케한 지린내가 풍겨왔다.

“쪽마루가 있고 쪽마루 끝에 굴뚝이 비스듬히 서 있었고 그 굴뚝 아래 버캐가 허옇게 낀 오줌장군(오줌통)이 또한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밤중에 일어난 숙박객들이 구태여 마당 건너편에 있는 화장실까지 갈 것 없이 쪽마루를 밟고 끝으로 나가서 바지를 헐면 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난감한 기분이 되었다. 여인숙이 지저분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 산골에는 여인숙이 두 군데밖에 없었고 이미 찾아갔던 곳에서는 손님이 차서 이 여인숙에 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방에 선뜻 들어서기가 싫었다. 해가 지자면 서너 시간은 있어야 했고 그래서 다시 장거리로나 나갈까 하는데 오줌장군이 놓여 있는 끝방 쪽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양 떠는 여자의 혀 짧은 소리는 말하고 있었다. 사글세라도 얻어 살림을 차리고 싶다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대꾸를 하지 않던 남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돈이 있어야 방을 얻을 것이며,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집요하게 살림을 차리고 싶다면서 “이번 파수에 한탕 한다면서?” “나두 된장 보글보글 끓여놓고 벽시계 쳐다보며 밤 깊은 줄 모르고 자기 좀 기다려 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했다. 그러던 둘은 갑작스럽게 관계를 갖는 것이었다.

우연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된 나는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나는 엉덩이를 미적거려서 소리나지 않게 그 방문 앞에서 쪽마루 저켠으로 비켜나 앉았다. 대낮에 방안에서 그 짓들을 벌이는 남녀들이란 뻔한 것들이지만 남자는 시골 장터로 돌아다니면서 야바위판(속임수 노름판)을 벌려 속임수로 돈을 챙기는 유랑배란 것을 알았고 여자는 그런 사람과 동거하고 있는 처지였다. 이제 시골 사람들도 야바위판에 속아 넘어갈 리 만무하고 그래서 일찌감치 여인숙으로 자리잡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신통한 것은 사내로 지금이 어떤 시댄데 아직도 그 케케묵은 야바위판을 가지고 살아가려는 것일까가 나는 너무도 궁금했다. 남을 속일 줄 아는 손재주를 가졌다면 다른 재주를 계발하든지 아니면 절묘한 속임수를 계발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할 텐데 분명 실성한 녀석이거나 바보가 아닌가. 그런데도 사랑하는 계집까지 끼고 다닐 수 있다니 나는 문득 호기심이 솟아올랐다. 별다른 일도 없었고 오늘밤 여기서 쉬고 내일 떠나면 그만인 나는 파장으로 치닫는 장터거리로 나가는 것도 시큰둥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그 사내를 한 번 보고 싶었다. 다만 막연한 호기심으로 사내의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집요하게 나를 잡아끌었으므로 30분 이상이나 그 쪽마루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때, 그 방의 문이 열렸다. 여자였다. 그 여자는 담배를 물고 깊게 들이마시더니 시선이 마주친 나에게 엷은 미소를 흘렸다. 의미심장한 웃음도 아니었는데 나는 그녀를 따라 빙긋 웃어 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내심으로 그 남자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여자를 보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남자를 그토록 사랑하고, 세상의 모든 유부녀들이 지겨워하는 기다림을 소원하며 야바위통을 짊어지고 다니는 멍청한 녀석을 사랑해서 기다리고 싶어하는 그 여자를 구경했으면 했는지도 몰랐다. 그때 여자가 문득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여자는 툇마루에서 내려와 슬리퍼 같은 것을 끌고 내 앞에 와 서 있었다. 그녀의 양쪽 엄지발가락에는 이미 색이 바랜 매니큐어가 칠이 벗겨진 채로 발려 있었다. 그 벗겨진 매니큐어가 그 여자의 피곤을 대변하고 있었다.



여자와 여인숙을 나서다

“어디서 오셨어요?” 그런데 여자의 질문이 생경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면서 친구에게 가벼운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격의없는 그녀의 방자하고 너무나 태연한 언동에 나는 문득 굳어 버렸다. “얼었군요?” “예?” “얼 것 없어요. 그냥 물어본 것이니까요.”

여자는 내 마음을 아는 양 금방 굳어버린 나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러나 대답도 듣지 않고 바삐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담배를 한 대 다 피웠을 때 그녀는 한 팔에 핸드백을 걸치고 빤질하게 윤이 나는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술 한 잔 안 살래요? 하는 그 표정이 너무나 뻔뻔스러워서 부담이 없었고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해서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그 여자는 원시적 체취 이외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아 오히려 어설픈 예의나 지식 따위로 어설프게 무장이 된 나를 아주 깔아뭉개고 있는 판국이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그녀는 저만치 길바닥에서 나를 눈짓으로 독촉하고 있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나를 유혹한다거나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거나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녀는 걱정하는 나에게 “사내는 한밤중이나 깰 거”라고 안심을 시키고 객지에서 나나 그녀나 남의 눈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대담하게 말했다.



여자와 술을 마시다

“이런 여자와 내가 낯선 시골 장터가 대포집에 앉아서 술을 마시게 되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는 제법 절제된 생활규범 속에서 살아간다고 자부하고 있었고, 적어도 어울린다는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모양이나 혹은 그렇지 못하고, 부자연스럽고, 거북한 것이 어떤 모습이란 것쯤은 나대로의 계산에 의해서 측정되어 왔었고 나는 그런 식으로 치밀하게 측정된 계산 위에서 생활해 왔었기에 오늘날까지 대과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인 여자를 부른 그녀는 턱으로 나를 가리켜 술과 안주를 시키게 했고 막걸리와 파전이 금방 날라져 오자 한 잔을 꿀꺽 들이키고 파전을 집었다. 다른 인상을 풍긴다는 내 말에 그녀는 ‘6개월 전만 했어도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거짓말을 태연하게 했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거짓말이 무척이나 그녀에게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옛날 속에 그런 과거가 숨어 있었다는 충격적인 감정으로 “아! 그랬었군요.”했다. 대답하고 나는 목판 아래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나는 눈자위에 일순 눈물이 솟아나는 것을 의식했다.

“울고 있네?”하더니 알려준 적이 없는데 ‘이름을 잊어먹었다’고 해서 ‘민세철’이라고 하니까 옛날 애인 이름이 ‘박순철’이었음을 얘기했다. “헤어졌군요?” 했더니 “헤어져요? 유식하게 구네. 헤어지는 게 도대체 뭐예요? 한쪽이 차고 한쪽이 채이는 게 헤어지는 거 아녜요? 난 유식한 놈들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 싫더라.”고 내뱉었다. 세상을 알아버린 듯한 그녀의 모습은 누추하거나 서먹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 잔을 연거푸 마신 그녀는 갑자기 일어서면서 “우리 나가요.”했다.



여자의 도피행의 공모자가 되다

술집을 나와서 눈짓으로 합의를 본 나와 그녀는 석벽과 마주하고 나란히 뻗어 있는 방축을 걷기 시작했다. ‘그래, 이 여자는 지금 여인숙에서 자고 있는 남자를 떠나고 있을 게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에서 어떤 결정적인 단서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나는 대뜸 그녀에게 넘겨 짚었다.

“떠나려는 것이지요 여기서?”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어딘 줄 알고 아가씨와 같이 간단 말인가요, 아가씨.” “내 이름은 분옥이예요.”

애인을 두고 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말에 어딜 가든 사내가 찾아올 거라는 대꾸를 한 분옥은 나에게 동행하자고 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걷다 보니 두 시간 이상을 걷었고 호젓한 산길을 둘이서만 걷게 되자 나와의 거리를 좁히던 그녀가 팔짱을 끼었다. 그녀의 살갗에서 느껴지는 욕정을 나는 물리치기 어려웠다. 나는 그녀의 이상한 행동이 전혀 싫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서 정사를 치뤘다. 그녀와 정사를 치루고 나자 나는 비로소 그녀와의 이 어설픈 동행에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낼 조짐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도로가 갈라지는 지점인 산자락 아랫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발견했다. 정사를 나누었던 곳에서 삼십 분의 거리에 있었던 그 집은 한 노파가 구멍가게를 보고 있었고 안채는 따로 있었다. 가게에 딸린 방 하나를 얻었으나 노파는 주저하고 있었다. “냉골인데 어떡하나들.”하더니 불을 땠고 저녁 밥상을 들고 들어와서는 “색시가 참하구만….”했다. 그러나 그녀가 “어머, 할머니, 전 이분의 색시가 아녜요.” 하고 반격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의 단호한 태도가 의외였고 예상했던 묵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노파 역시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훈육이 못된 계집이 말이 많으면 한 동네에 시아비가 아홉이 된다.” 노파의 이 말에 나는 문득 노파와 그녀는 처음으로 만나는 사이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묻고 몇 살인지를 묻자 “스물넷요. 저도 할머니가 되려면 아직 멀었죠?” “할머니 되고 싶나?” “그럼요. 그쯤 되어야 한 동네에 시아비를 아홉쯤 두겠죠.”하고 주고받는 것을 보면서 또 내 예감은 빗나갔다.

불을 끄고 누운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지만 우리는 잠들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그녀 또한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아니 내 예감으로는 그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몰랐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내일 아침이 되어도 이 여자는 역시 나를 따라가겠다고 나설 것인가. 그런 생각 중에 바람결을 타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자동차 소리는 우리들이 묵고 있는 세거리 앞에 멎었다. 사내들의 말소리가 들려 오더니 구멍가게 쪽을 겨냥해서 걸어오는 발자욱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는 다시 가던 길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투박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바위꾼 사내에게 꼬리를 잡히다

“아지마씨, 아시다시피 그 년 또 이 집에 와 있지요?” “와 있긴 하지만….” “동행이 있다는 거야 알고 왔습니다. 쪼까 들어가봐도 좋겠지요잉?”

노파가 우리들의 방을 알려주는 것도 의외였지만 방문을 열고 성냥불을 그어 대고 방안에 누운 우리를 발견한 야바위꾼의 반응도 의외였다. 그는 흡사 화장실에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던 것이다. “멀리 간 줄 알았더니 여기까지 왔네.”하며 뒤에 같이 따라온 사내는 야바위꾼 어깨 너머로 주섬주섬 이불을 제치고 일어나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야바위꾼은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서더니 전등의 스위치를 켰다. 방 안이 대낮같이 밝아졌다. 야바위꾼은 그녀 쪽으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방 한가운데 풀썩 주저앉았다. 담배갑 속에서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노형은 뉘시오? 자신 있오?” 나는 그의 질문의 핵을 가늠해 낼 수 없었다. 그 질문은 구태여 내 이름 따위를 묻자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 있냐고 물었던 말뜻은 전혀 황당한 것이었다.

“당신 자신 있다면 이 계집을 당신에게 넘겨주죠. 이 계집애 내버리지 않고 끝끝내 데불고 살겠오? 허기야 이렇게 묻는 내가 바보지만.” 여자가 여기까지 온 것은 그녀의 자유였음을 강조하며 강경하게 나갔더니 “햐. 이 새끼 더럽게 유식한 척 하네. 야. 이 여자가 이 여자가 어떤 여잔 줄 알기나 혀? 너 같은 촌놈은 하루 아침에 해장꺼리여 알겠어? 이것에게 잘못 걸렸다간 패가망신하기 일쑤여. 나같이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떠돌이니깐 이런 계집을 꿰차고 다녀도 망신할 것도 없고 망할 것도 없지만 너같이 근본 있는 놈은 곱다시 당한다 이게여? 알겠어?”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그녀가 “우리 술 한잔 해.”하자 돌아가자느니, 사글세방을 못 얻는 주제라느니 사내와 그녀의 옥신각신 말다툼이 이어지고 그 사이에 있는 내가 못마땅했던지 같이 온 사내 시걸이에게 나를 끌어 내라는 사내의 말에 몸짓 좋은 시걸에게 나는 밖으로 드잡이를 당해 내동댕이쳐졌다. 그런 난장판에도 노파는 내다보는 법이 없었다. 나를 내팽개치고 세 사람은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창피를 당하고 난 뒤라 나는 새벽같이 떠났어야 했는데 어쩐지 그녀와 두 사내의 거동이 궁금했고, 어젯밤 일 역시 네 사람밖에 모르는 일이므로 창피랄 것도 없었다. 그들의 행동이 신기했던 것은 이튿날 아침 잠이 깬 그들이 완벽하게 내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그들은 우물가에 앉아 세수를 하고 있는 나를 낯선 사람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가 내가 비워준 세숫대야를 받아 질서정연하게 차례대로 세수를 끝내는 것이었다. 노파 역시 어젯밤 일은 묻지도 않았다.



장터에서 여자를 다시 만나다

그날이 이곳의 장날이었다. 그때 내게 삐죽하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날 하루만이라도 이들을 관찰해 보자는 심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곧장 이곳을 뜨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장꾼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세 사람은 조반을 마친 후 득달같이 그 집에서 나갔다. 나를 내동댕이친 시걸이란 사내는 커다란 보퉁이 하나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두 시간쯤 나는 문밖을 나가지 않고 노파의 집에 앉아 있었다. 그때 장터 쪽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동해나 울산은 잣나무 그늘….” 그녀의 목소리였다. 나는 끌리듯 노랫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구멍가게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장터의 공터로 갔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두 사내는 사람들을 원을 그리며 앉도록 주선하고 있었다. 50여 명의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그녀가 노래를 그치자 야바위꾼 사내가 등에 북채를 짊어지고 공터 한가운데로 나왔다. 뭔가 보여달라고 독촉이 성화 같은 구경꾼들을 향해 야바위꾼은 손사래를 치며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그때 화장품통을 들고 구경꾼 사이를 비집고 다니던 그녀가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그녀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던 참이었다. “왜 왔죠?” 가파른 시선은 어젯밤 정사를 나눴던 사내에게 보내는 눈초리라고는 할 수 없었다. “분옥 씨 찾으러.” 왜 따라다니느냐를 가지고 말다툼을 벌이는 사이에 북채를 메고 있던 야바위꾼이 우리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그 당장 내 멱살을 뒤틀어 잡았다. “누구냔 말여, 이 새캬.” “당신은 누구요?”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남의 계집을 꼬신다며 멱살을 놓지 않는 사내와 “조용히 얘기하자.”고 하는 틈새에 구경꾼들 중 한 사람이 “여보시오, 약은 안 팔고 쌈만하고 치울거요?” 하니까 “약이 다 무어요. 잡놈의 새끼가 남의 계집 꼬셔내는 판에 약은 무슨 놈의 약이란다냐 그 다 헛것이랑게.”하고 대꾸했다.

약이 헛것이란 말에 흥분한 구경꾼 사내와 야바위꾼이 다투는 사이에 놓여난 나는 더 이상 그곳에 머뭇거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제 이후 지금까지 내가 한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서 내 자신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여귀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떠나야했다. 나는 드디어 내가 한 행동들이 너무나 무의미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가겟방 숙소로 돌아와서 나는 읍내 쪽으로 나가는 버스시간을 기다렸다. 버스시간은 아직 다섯 시간 이상이나 남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팔베개를 한 채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벽면을 타고 두런두런 지껄이기 시작하는 남녀의 말소리에 나는 어렴풋이 잠이 깨기 시작했다.

“자기, 정말로 날 배반하면 안돼, 알았지 자기?” “배반이 그렇게도 무섭냐? 싫어지면 헤어지고 신물나면 그만두는 거지. 전생에 무슨 원수가 두께로 져서 싫은 데도 붙어다녀야 하고 신물이 나도 쑤셔 박아야 한다는 거니? 너 날보구 걸핏하면 배반타령인데. 너야말로 뭇사내를 배반해온 건 생각 못혀? 하긴 남의 손톱 밑에 가시든 건 알고 제 등뙤기에 등창난 건 모른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서두.” “방 얻어 줄꺼야?” “한 탕하면 얻어 주지.” “차라리 시걸이처럼 약이나 팔아보면 어떨까?” “그것도 이젠 한 시절 갔어.” “그래두, 동업하자구 졸라봐.” “싫어, 사내 자식이 메시껍게 약장사가 뭐야. 그놈도 틀은 호랑이틀을 해 가지고 하는 짓은 족제비야, 약장사가 뭐야.” “야바위꾼은 호랑이틀인가 뭐.” “이게 왜 또 사람 간장을 박박 긁어대고 지랄이야.” “자기 너무너무 흥분 잘한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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