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위험한 거울
김현식 지음 | 푸른역사
1. 갈등 : 한 남자와 한 여자D가 A를 처음 만난 것은 문화사의 뒤편에서였다. 문화사 강의를 끝내던 2년 전 겨울. 한 마디 말에 실리는 진지함, 순백함, 그 근저의 갈망. D와 A는 만났다. 강의 끝에서, 복도의 끝에서, 허허로움의 끝에서.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시작의 순백한 해원이었다. 겨울의 만남은 춘천댐의 맑은 여름으로 해를 넘겼다. 깊어진 사랑. 사랑의 절정에서 D는 A에게 시를 썼다.
우리 사랑엔 끝이란 없다. 갈망의 해원, 그 순백의 시작이 영원 회귀할 뿐이다.
D는 A와의 절대를 꿈꾸었다. 니체의 독수리처럼 일순간의 어지러움도 없이 사랑의 그 지고지순한 순간을 응시하고 싶었다. 그녀와의 사랑은 그 가능성의 시험장이었다.
무거움에 대한 가벼움의 승리. 영원에의 갈망으로 시작되어 순간에의 자각으로 끝나는 것.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순. 영원을 약속하지만 끝나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며, 불변을 맹세하지만 변치 않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사랑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참으로 사랑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을 꿈꾸게 만들고 동시에 그 꿈을 스스로 접게 만드는 가벼움의 술책은 아니더냐. 파리스와 헬렌, 레이안드로스와 헤로,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에네아스와 디도로 가득 찬 고대인들의 세계에서 사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으며, '세계의 파괴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열정에 가득 찬 사랑이란 그 얼마나 사악한 것이더냐!"
영원을 꿈꾸며 경계를 넘어선 자들의, 그러나 사랑의 가벼움에 절망하는 자들의 서글픈 분노.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그랬듯, 우린 우리가 꿈꾸는 절대의 갈망을 포기하지 않아요. 그 때문에 몰락하지도 않고요. 아벨라르의 기도문을 저에게도 보내줘요, 사랑해요."
2. 화두 : 또 한 남자와 또 한 여자두 달이 지난 지금 D는 새벽 향기를 맡으며 다리에 서 있다. 그 동안 그는 그들의 흔적을 샅샅이 뒤졌고, 그들이 주고받은 문구 하나하나를 검토했다. 텍스트로서의 인간 삶의 이 무한한 해석가능성. 그래서 D는 그들의 이야기를 역사이론 강의의 주 논제로 삼아버렸다. 변화하는 역사학의 살아 있는 체험을 위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감춰진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 그리고 그와 A의 영원 회귀적 사랑을 위해. 타고난 열정과 강인한 의지, 목표에 대한 가열찬 추진력과 자신의 신념에 대한 절대적 확신에 휩싸인 자들. 역사는 가끔 이런 자들을 선물한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자면, 소위 '절대를 꿈꾸는 자들'이다.
"나는 스스로를 이 세상에서 유일한 철학자인 듯 생각했고, 이제 더 이상 어떤 공격도 두 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자부했다네."
피에르 아벨라르, 지상에 대한 욕망과 천상으로의 욕구를 동시에 추구했던 자, 그는 채 서른이 되기 전 홀로 비상하여 변증법의 일인자였던 상파뉴의 기욤과 성서 해석의 최고 권위자인 리용의 안젤모마저 그에게 굴복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파고들어도 결코 알 수 없는, 그래서 그녀는 여자의 별이며, 남자의 꿈이다. 한 모금의 음이며, 한순간의 환상이다. 감추어져 있었더라면 그녀는 영원의 이데아였으리라. 그런데 육체의 아름다움이 문제였다. 그녀는 시작부터 이미 갈망의 아르카디아였다. 엘로이즈, 아벨라르의 완성을 위해 주어진 신의 마지막 일획. 이졸데보다 더한 열정을 베아트리체 이상의 절제로 감싸야 했던 사람. 그렇기에 너무나 인간적인 그리고 너무나 신적인 존재. 엘로이즈의 데뷔는 열 여섯 살 경이었다. 파리는 출렁거렸다. 그녀는 이미 한숨과 노래의 샘이었고, 갈망과 욕망의 실체였다.
지금까지 아벨라르는 지혜에 대한 자신의 충성서약에 충실했다. 그는 그 어떤 여인과의 육체적 정신적 교류도 허용하지 않았다. 히폴리투스가 아르테미스의 동정의 연인이듯 그는 아테네의 순결한 애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이전 일이며 과거사일 뿐이었다. 엘로이즈를 대면한 후 그는 아프로디테의 투사가 된다. 그리고 지난날 학문의 전장에서 그러했듯이 이제는 또 다른 전장터에서 치밀한 전략과 가열찬 의지로 행군해 나갔다. 승리의 정오를 위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그 어떤 여인도 내 사랑으로 명예롭게 됨을 결코 거절 못 한다네."
그는 '자신의 높은 명성과 그리고 극히 뛰어난 외모'로 인한 손쉬운 성공을 확신했다. 더구나 '여성으로서는 드문' '뛰어난 지식과 학문에 대한 열정'을 지닌 그녀인데 어찌 그와의 만남을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이외에도 당신은 모든 여성의 혼을 당장에 매료시키는 두 가지 특별한 재능을 지니셨지 요. 당신은 많은 사랑의 시어와 노래를 남기셨지요. 가사와 선율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당신의 시곡들은 널리 애송되었고 그 때문에 당신의 이름은 만인의 입에서 예찬되었지요. 여성들은 어떠했는지요. 그들은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한숨짓지 않았던가요. 당신의 시곡 들은 대부분 우리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었지요. 참으로 당신의 성년기는 내면과 외면의 모든 아름다움으로 장식되어 있었지요."
그러나 아벨라르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절대가 되어야 했고, 삼촌인 풀베르가 거절 못 할 미끼를 던졌다. 원하는 만큼 돈을 줄 테니 그의 집에서 하숙하게 해 달라는 부탁이 그것이었다. 풀베르는 쉽게 넘어왔다. 더구나 그녀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퇴색한 아벨라르의 강의는 특히 그의 제자들에게는 그가 사랑의 열병에 걸렸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밀실의 사랑은 이제 문밖으로 새어나갔고, 사람들의 입에선 엘로이즈의 이름이 물결쳤다.
만남, 사랑, 임신, 도피 그리고 출산. 한 줄로 연결된 숨가쁜 사건들. 열 여섯 한 해는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래도 엘로이즈는 후회하지 않았다. 이 열 여섯 한 해가 그녀의 전부였기에. 그러나 풀베르는 '격심한 충격과 치욕감'으로 거의 광인이 되었다. 아벨라르는 그녀를 아르장테유 수녀원에 머물게 했고, 도피사실을 알게 되자 풀베르는 분노의 기화점으로 치달았다. 풀베르는 아벨라르의 소재를 탐문했고 그의 하인 한 명도 매수했다. 그는 에우메니데스(복수의 여신)를 급파했다. 그리곤 '세상을 경악시킨 잔인하고도 야만스런 보복'을 감행했다. 아벨라르의 성기를 잘라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아벨라르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상처의 통증보다는 수치감', '육체적 고통보다는 정신적 치욕'이었다. 방금 전까지 누리고 있던 그의 명성이 한순간에 얼마나 간단히 사라졌으며 그의 명예가 그처럼 완전히 무너져 내렸는가. 죄를 범한 신체의 바로 그 부분으로 보상한다는 것은 얼마나 정당한 신의 심판인가. 자존심이 하늘에 닿았던 아벨라르. 그는 곤혹과 치욕감에 젖어 성 드니 수도원의 울타리로 숨어버렸다. 최대의 고통은 엘로이즈의 몫이었다. 그녀에게 닿은 것은 먹구름의 동천이었다. 혼절의 비탄.
"오오, 내 고귀한 남편. 저와 결혼하기엔 너무 위대한 님. 당신의 고귀한 머리를 떨구게 만드는 게 제 운명이었나요. 이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세요. 그리고 보아주세요. 내 즐 거이 바치는 이 보석을."
물 속에서 엘로이즈가 겨우겨우 이어간 말은 코르넬리아의 저 비장한 애가였다. 그녀는 제단으로 나아가 주교로부터 베일을 받고 서원한다. 저주받은 카인처럼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녀야했던 아벨라르. 그에게 닥친 비난과 박해의 격렬한 태풍은 한층 더 거세어졌다. 그는 신앙의 정통성마저 의심받았고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저술한 책들을 불 속에 던져 넣어야 했다.
"만약 주께서 나를 적들의 손에 넘기셨을 때는 내 시체가 어디에서 장사지내졌든 그 시체 를 당신들의 묘지로 옮겨줄 것을 부탁하오."
휴식의 장소를 찾아내는 것, 아니 살아갈 장소를 찾아내는 것조차 거부되었던 사람. 쇠약해진 그는 마침내 1142년 4월 21일, 어렵게 찾아낸 안식처, 성 마르셀의 클뤼니수도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온종일 온 일생동안 아벨라르를 기다려온 엘로이즈. 아르디종 강가에서 만난 뒤 십 몇 년 만이던가. 그래도 이제 그들은 헤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수녀원에 매장하고 그의 무덤을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갈망했던 그의 곁에 누울 수 있었다.
3. 역사 : 오늘을 적시는 '지난 겨울에 내린 눈'
1강 - "그래도 지구는 돈다"천년 전의 이야기.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D는 격렬한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들의 열망을 부활시키고, 그들의 한숨을 재생하고파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역사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더냐. 퇴색한 잿빛이 황금빛 녹색으로 부활되는 것. 역사가의 작업실은 밀폐된 부검실이 아니라 부활제의 떠들썩한 광장이며, 상상력의 분주한 장터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교차하는 소란스런 저잣거리에서 역사가는 두 겹의 땅 밑을 파고들어 프란체스카의 우수와 만나고 세 층의 하늘을 날아올라 쿠치니아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러할까. '혼신의 열정으로 영 육의 끈을 묶은 신부와 수녀의 사랑 이야기?' '중세를 뒤흔든 금지된 사랑?' D는 의심스러웠다. 그는 단편적인 흔적 뒤에 감춰진 진실에 도달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은 정녕 D의 Speculum Mentis(정신의 거울)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의 사랑을 거울에 비추었고, 그가 만들어 온 역사학의 의미와 방법 등을 반추하도록 만들었다. D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역사의 진정한 가치와 왜 그들을 보아야 했던가를. 그러나 그는 몰랐으리라. 역사가 얼마나 위험한 거울인가를.
2강 - 객체의 관점에서 본 역사: 사상의 역사인간이란 참으로 경이로운 존재입니다. 역사는 인간들이 언어, 음표, 색채, 몸짓 등의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객관적으로 표현해 놓은 개인적, 주관적 삶의 전시장이고, 따라서 역사가는 언어적 인공물은 물론 비언어적 인공물까지도 자신의 탐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사건들입니다. 요컨대 과거에 일어난 인간의 잡다한 행위들 가운데, 전문 역사가 집단에 의해 그 가치와 전문성이 검증된(검증될 수 있는) 과거사만이 역사학의 탐구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비단 역사학의 연구는 사건의 외면을 서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역사가의 종착점은 사건의 내면인 바 그 같은 행위를 유발시킨 '일련의 컨트롤 메커니즘(콜링우드에 따르면 '절대 전제', 르 고프에 따르면 '망탈리테', 그리고 단턴과 기어츠등의 개념을 빌자면 '문화')'이야말로 역사가의 궁극적인 탐구대상인 것입니다.
3강 - 주체의 관점에서 본 역사 : 재연의 역사역사학의 진정한 탐구대상이 사건의 내면이라면, 역사가는 어떻게 이를 알 수 있을 까요. 어떤 방법을 통해 과거인의 행동이 지닌 의미를 해독해 낼 수 있을까요. 세부적인 차이점을 무시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사고실험(Thout Experiment)', 콜링우드에 따르면 '재연(Re-enactment)'입니다. 요컨대 역사가는 자신의 정신 속에서 행위자들의 역사적 지평을 재구성하고 그들의 사고과정을 재사고함으로써 그들이 취한 행동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 행위자들의 삶 속에 자신을 투사하고 그들이 생각했던 바를 재사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역사적 상상력을 이용한 '사이 메우기(Interpolation)'입니다. 다시 말해 역사가는 자료가 말하는 바를 수동적으로 반복하거나 단순 시각적 비평에 머물지 않고 역사가의 상상력을 이용하여 자료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 적극적으로 메워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이 메우기가 자의적이고, 주관적이며, 비합리적 방법에 의존한다면 역사는 사이비 지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재연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추론의 과정입니다. 역사가는 자신의 정신 속에서 이루어진 질문과 대답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게 됩니다. 동료 역사가는 이를 자신의 정신세계 속에서 재연해 봄으로써 그가 도달한 결론에 동일하게 도달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결론의 정당성 여부를 검토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4강 - 목표의 관점에서 본 역사 : 자기 인식의 역사우리는 삶의 무게에 눌린 최초의 인간이 아닙니다. 더욱이 우주를 짊어진 유일한 인간도 아닙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류는 언제나 문제에 직면했고,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인간은 이를 해결하고자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우리의 생은 한 마디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수수께끼를 해결해야 하는 '주만지 게임'입니다. 우리들 삶은 그것의 해결여부와 해결방식에 따라 직조됩니다. 타인들의 살아온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데자뷰. 오늘날 우리가 죽음의 문제로 괴로워하고 사랑의 문제로 고민한다면 그들도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희구하고 그 실현방법을 찾기 위해 애쓴다면 그들도 그러했습니다.
4. 해석 : 아벨라르 그리고 또 다른 아벨라르
한 명의 아벨라르과거의 목소리가 소중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통과 슬픔의 매서운 절정에서도 '힘에의 의지'를 부여받으며, 그럼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향해 담대히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회랑을 달려 빛을 맞는 자의 모습. 산산이 부서져 박히는 빛, 빛, 빛. 빛은 A였고, 빛은 아벨라르였고, 빛은 엘로이즈였다. 그래, 이것이었어. 기도문의 비밀이란. 황홀한 부활. 연결된 조각들의 눈부신 포옹. 이 초록의 티 없는 환희는. D는 그래서 달려온 회랑이 서럽지 않았다. 어둠이란 빛으로 소생할 무정형의 꿈틀거림이 아니던가. 그는 확신을 위해 의심의 극을 치달렸었다. 사상의 연단을 위해 '극지'와 '적도의 열기'를 동시에 시험했었다. 아프락사스의 세계. 그러나 이제 그는 알 수 있었고, 전해주고 싶었다. A의 간곡한 열망으로 맛보는 눈부신 정오, 부활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세계를.
또 한 명의 아벨라르아벨라르가 자기 중심적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자기 희생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아벨라르의 그같은 교만과 이기심도 엘로이즈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하얗게 증발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자신의 아내가 된 자신의 유일한 여자를 수녀원에 던져놓고 문자 한 번 안 날린 무언의 시간들. 하지만 그가 그녀를 잊어서가 아니라 엘로이즈를 돌볼 수 없을 만큼 견디기 힘든 어둠 속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라면 어떠할까요. 해답은 그의 '참회록', 사람들이 흔히 '아벨라르의 수난사'라고 부르는 편지 속에 있습니다.
오랜 침묵 뒤의 첫 작품, 친구의 불행을 위로하기 위해 쓰여진 '아벨라르의 수난사'는 실상 그의 참회록입니다. 참회자는 지난날 순간 순간의 일들을 낱낱이 고백하고 회개하는 바 수난사에서의 아벨라르는 감추고 싶은 사실들을 숨김없이 밝히며, 자신의 삶을 타락-처벌-구원이라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반성합니다. 그리고 전능한 신의 오묘한 섭리를 가슴으로 시인하며, 그분의 자비와 사랑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깁니다. 그렇다면 그 공백의 음울한 기간 동안 아벨라르는 극심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그는 그 시기에 참된 신앙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혹독한 시련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 참혹한 사건 이전의 아벨라르는 분명히 가슴으로 신을 껴안은 자가 아니었습니다.
'수녀원에서의 정사'가 보여주듯 그는 공허한 입술로 신을 찬미했을 뿐입니다. 가증스런 자. 신을 탐구했고 신을 운운하기에 그만큼 더 미워지는 존재. 그러나 치욕의 사건은 그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그는 오욕과 수치의 절정에서 자신의 지식과 삶을 뼈아프게 반추합니다. 나는 무엇이었던가, 신을 믿는다면서 나는 무엇을 했던가, 신을 가르치는 내가 그분을 욕보이고 능멸하지 않았던가, 거세는 나의 방종과 교만, 가증과 위선에 대한 정당한 처벌은 아니더냐. 아벨라르의 가슴엔 정녕 오욕과 회한, 자조와 자학의 폭풍우가 몰아쳤을 것입니다. 가파른 절지. 이별의 긴 여백에서 아벨라르는 삶과 사상의 방향을 재설정하기 위한 벼랑의 끝에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산산이 부서져 찬란히 부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긴 침묵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는 완전히 신에게 귀의한 아벨라르. 그가 정념에 가득 찬 엘로이즈의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떠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