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계곡
손소희 지음 | -
태양의 계곡
손소희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이정아: 방랑적인 성격의 소유자. 한 사람에게 존경과 애정을 다 바칠 수 없음을 알고 남자들 사이를 방황하다가 결국 한 남자와 결혼하여 정착한다.
이지희: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성. 남편과 사별하여 추억과 자성 속에서만 살다가 재혼하지만 그마저 장질부사로 떠나보내는 비운의 여인
이준호: 정아의 오빠이자 지희의 남편
석은: 지희를 사이에 두고 준호와 삼각관계에 놓이나 결국 정아를 사랑하게 된다.
한철휘: 정아의 여학교 시절 문학강좌 선생으로 그녀와 열애에 빠진다. 동란 이후 찾아간 정아와 하룻밤을 보낸다.
문상태: 속임수로 정아의 순결을 빼앗는다.
박진길: 약국주인으로 란다방 마담과 내연의 관계지만 정아에게 빠져 청혼까지 한다.
1장
정아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데 어쩌면 그처럼 인생이 대해서 너그러울 수 있을까? 그러나 난 생각같이 인생이 너그러울 수는 없어요. 다시 말하면 단순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복잡하냐고 정아가 따지고 들기라도 한다면 아마 나는 대답할 수 없을 거예요. 나의 체내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모세관이 피부 속을 얼기설기 흐르고 있는 그 속속들이 복잡하고 험난한 나의 인생도 함께 흐르고 있는 것이지도 몰라요.
시누이와 올케 사이인 정아와 지희는 피난지인 부산에서 함께 살게 된다. 지희의 남편인 준호의 요절로, 그리고 학교 부임지 관계로 시댁 식구가 피난 온 부산에서 시누이인 정아와 한방을 쓰게 된 것이다. 지희는 정아의 과거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옛 서클 동료였던 석은과 선을 주선하지만 오히려 그의 구애편지를 받고 당황해한다. 이 편지로 인해 정아는 지희에 대한 석은의 오래된 감정을 알게 되고 지희의 과거를 궁금히 여긴다. 정아의 질문에 지희는 과거 준호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지희는 대학 때 문학서클에서 준호를 만나게 되었고, 꽃을 받은 답례로 그의 하숙방을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 책을 종종 빌려다 보았다. 대학강사인 준호는 1년 뒤 서클에 들어온 의대생 석은과 자주 어울려 다녔고, 어느 날 둘이서 지희 집에 찾아와 지희를 사이에 두고 다투는 듯 하더니 이내 미모의 서클 동료 최영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더라는 것이다. 이후 혼란스러워 하던 지희는 책을 돌려 달라는 준호의 간단한 편지와 석은의 열렬한 구애편지를 동시에 받는다. 석은 부모와 안면이 있던 지희 부모는 석은의 편지를 읽고 그와 만나는 것을 반대하며 지희의 혼사문제를 서두른다. 집에서 고른 신랑감 최준과의 선을 앞둔 상태에서 지희는 둘이서 등산을 하면서 만나자는 그의 제의를 받지만 거절한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준호의 책을 돌려주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한 지희는 약한 사람은 잡아먹힌다며 달려드는 준호에게 붙잡혀 무서움에 그만 눈물을 흘렸고, 용서해달라는 그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의 집을 나섰다고 털어놓는다.
한편 동란 1년 전 여고 졸업반 시절 정아는 한철휘의 문학강좌를 듣고 그와 열애에 빠졌다가 동란으로 그와 헤어진다. 이후 부산으로 피난 내려 온 그녀는 문상태의 사기에 걸려 순결을 잃은 뒤 여러 남자들을 전전하는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밤 늦도록 지희와 준호의 추억을 들은 정아는 마음 속의 한철휘를 찾아 대구에 가기로 결심한다.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정아는 수면제를 사 가지고 돈줄인 문상태를 찾아간다. 함께 호텔에 투숙한 정아는 분위기를 맞춰가며 그에게 수면제를 탄 수프를 먹이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시내로 도망친 다음 그로부터 받았던 목걸이를 팔아서 기차에 몸을 싣는다.
2장
나는 나의 꿈을 깨치지 위하여 동란의 사 년 동안 엄연히 이어온 한줄기의 싱싱한 생명의 가지를 베어 내쳐야 할 단계에 있는 것이다. 한줄기의 싱싱한 생명의 가지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지극히 부드러운 대명사를 외며 나의 정신의 주추로 삼았던 사람과의 정신적인 교섭을 의미한다. 사실 내가 그처럼 급히 대구행을 서두른 것도 나의 맘속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뿌리를 박고 있는 한철휘라는 인간을 나의 성장한 눈으로 바라다보고 싶은 급작스런 충격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구에 도착한 정아는 한철휘를 만나지만 예전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여관에 투숙한 두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며 달라진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예전의 아껴주던 정신적 교섭은 없었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다음 날 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정아는 외박에 대한 부모의 꾸지람이 두려워 밖으로 뛰쳐나온다. 오갈 데 없이 방황하던 그녀는 이전 목걸이를 처분하게 도와준 약국주인 박진길을 만나게 된다. 그와 돌아다니다 결국 그의 집까지 오게 된 정아는 갈 곳이 없었던 까닭에 결국 그와 함께 며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아는 그가 수면제를 구입한 것을 문상태에게 일러바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들은 정아는 그가 무서워져서 그 집에서 나오고, 그러다 우연히 지희를 만난다. 지희는 정아의 귀가를 재촉했고 결국 정아는 집으로 돌아간다.
3장
인간의 욕망이 협조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 간단하고도 명백한 이치를 오랫동안 등한시하고 있는 게 불찰이었어. 그간 내가 지희에게 바란 것은 존재로 지희 자신이 타고난 아름다운 감정이 나에게 쏟아지기를 희망하는 한편 나 이외의 존재로 지희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어리석은 착각이었어. 스스로 자신의 심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내가 독립된 자시의 우주에서 살고 있는 지희에게 지희의 세계를 움직이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희 동정을 구걸하고 있던 거야.
다시 함께 누운 정아와 지희는 이전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지희는 준호에게 붙잡힌 그 사건 이후 그를 피하고 싶었으나 동란이 일어난 날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고 한다. 함께 다방에 들어가 어색한 분위기로 앉아 있던 준호와 지희 앞에 어디선가 최영실이 다가와 석은을 찾는다고 전해달라며 지나갔다고 한다. 지희는 집 사정상 군에 입대하여 군의관으로 복무 중인 석은의 소식을 준호로부터 듣는다. 동란이 일어난 날이자 지희와 준호가 우연히 만난 그날 준호는 정아의 하숙집을 찾아와 집으로 내려가라고 한다. 정아는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한철휘의 말에 만족하며 그와 헤어져 집으로 가게 된다. 다음날 오후 지희를 다시 찾은 준호는 피난 행렬로 길이 막혀 떠날 수 없던 지희네를 도와 군용 트럭을 알선해준다. 덕분에 지희네는 서울을 떠날 수 있었지만 준호 자신은 서울에 남았다는 것이다.
이튿날 정아는 학교로 출근한 지희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집에 오리라는 다짐을 하며 길을 나선다. 박진길을 찾아간 정아는 지희와의 약속도 잊고 그와 함께 밤을 보낸다. 다음날, 죄스러운 마음과 석은을 시험해 볼 요량으로 석은을 찾아간 정아는 지희와 그를 이어주려고 한다. 석은은 지희에 관해 묻더니 자연스럽지 않은 만남은 불필요하며, 자신의 편지는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 것일 뿐 그 이상도 아니라는 담담한 말을 듣는다. 무안해진 정아는 그와 헤어져 지희를 만나기 위해 학교로 간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던 지희를 만난 정아는 지희를 찾으러 나온 미술교사를 의혹의 눈으로 바라본다.
4~5장
환도 준비를 위해 서울로 갔던 정아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환도에 대한 정아와 지희의 생각을 묻는다. 정아는 지희가 서울보다는 부산에 남아서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얘기를 끝내고 나온 지희와 정아는 영화를 본다며 길을 나서다 우연히 정아의 친구인 강중령을 만나서 동행하게 된다. 정아는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으나 그는 친절히 두 사람을 대한다. 강중령과 헤어져 집에 돌아온 그녀들은 이전 얘기를 계속하다 정아는 동란 때 준호가 당한 수난을 듣게 된다.
UN군이 진격하던 어느 날 최영실이 찾아와 안심하라는 준호의 편지를 지희네에 주고 갔다는 것이다. 사흘 뒤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서 최영실의 집에 찾아간 지희는 보안대에서 숨어있던 준호와 영실, 오빠 최준까지 끌고 갔다가 그녀만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득 준호의 장서가 생각나 그의 하숙방을 찾은 그녀는 놀랍게도 준호와 그곳에서 재회하게 되었다는 것. 준호는 보안대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고 지희를 생각해서 목숨을 걸고 그곳을 탈출했다는 그간의 고초와 경위를 듣는다. 그리고 그날 지희 아버지는 부역에 나갔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튿날 댄서가 되기로 결심한 정아는 은행원인 한상은을 찾아 댄스홀을 찾지만 그가 이미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된다. 한상은과 마신 술 냄새를 빼기 위해 혼자 다방을 찾은 정아는 우연히 석은과 재회하고 그와 술을 더 마시고 방파제로 나간다. 그녀는 그곳에서 석은의 내연의 처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듣는다. 석은은 그녀에 대한 어머니의 불인정과 자신의 처지를 짐스러워 한다. 어떤 말을 해줄 수 없던 정아는 석은과 헤어져 박진길의 집을 찾지만 그가 데리고 온 여자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정아는 석은이 자주 가는 다방에 홀로 앉자 차를 마시다가 석은을 만난다. 담배를 권하며 술친구나 하자는 석은의 말에 정아는 그의 뺨을 치지만 이내 후회한다. 어색해진 석은과 다방을 나선 정아는 박진길과 마주친다. 석은은 조용히 물러나 말씀을 나누라며 걸음을 옮긴다. 박진길의 질문에 정아는 제발 떨어지라고 하지만 박진길은 반드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겠다고 한다. 그런 그의 말을 뒤로 정아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6장
나에게 선악과를 권한 사람은 박진길 씨가 아니다. 물론 한철휘 씨도 아니다. 그리고 문상태도 아니다. 그것은 동란이다. 육․이오 동란이다. 동란은 오빠의 죽음을 가져왔고 나에게 이브로서의 형벌을 지게끔 하였다. 이브의 형벌이란 바로 나 같은 경우를 말하는 것이리라.
집에 있던 정아는 만나자는 석은과 박진길의 편지를 동시에 받지만 석은을 사랑하는 그녀는 박진길을 만나지 않는다. 정아는 지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죽는 날의 준호 이야기를 듣는다.
준호가 탈출한 뒤 두 사람은 바로 결혼했지만 준호는 곧 고문과 탈출의 휴유증으로 심한 고통을 받게 된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나날을 보내던 지희는 여느 때와 다르게 음식을 찾는 준호의 모습에 반가워 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어 곧 병실을 나온다. 그 사이에 그는 운명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 정아와 선을 본 직후 보낸 석은의 편지에 대한 지희의 감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그것은 석은과 지희 모두 감정을 정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석은이 만나자는 편지를 떠올리며 다방에 나간 정아는 석은과 재회한다. 그는 댄스홀로 그녀를 데려가서 거칠게 다루고, 몸이 불편한 정아는 결국 그곳에 쓰러지고 만다. 깨어난 정아는 석은으로부터 임신 사실을 확인 받는다. 궁금해하는 석은의 질문을 피해 추상적으로만 대답하던 그녀는 먼저 나와 길을 걷는다. 그녀의 뒤를 쫓아 나온 석은은 내일 다시 만나자며 정아의 답을 재촉한다. 다음날 정아는 박진길의 약국으로 찾아가 중절수술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의 능글거림이 혐오스러워 약국을 나온 그녀는 다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석은과 박진길을 만난다. 험악한 분위기를 의식한 정아는 석은을 보호하기 위해 박진길을 데리고 백운대로 간다. 그곳에서 박진길은 정아의 모든 과거를 불문하겠다며 청혼을 한다. 혼란스러워진 정아는 그가 잠시 나간 사이 그의 신분증과 현금을 들고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가 중절 수술을 받고 돌아온다.
7장
서울로 떠나기 전날 석은과 만난 정아는 내일 서울로 환도한다고 전한다. 석은은 정아와 헤어지지 말자며 손을 붙잡지만 그녀는 흘러가는 시간처럼 자연스럽게 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오후 지희와 만난 정아는 뜻밖에도 지희가 동료인 미술선생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정아는 지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언니는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한다.
이튿날 서울로 가던 중 강중령을 우연히 만난 정아는 서울에서 만나자는 그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인다. 서울에서 강중령과 재회한 정아는 갑작스런 그의 청혼을 받는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고,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하나씩 알아가자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후 정아는 부산에 부대가 있어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강중령을 대신해서 결혼 준비를 착실하게 해 나간다.
강중령과 약혼을 한 정아는 그 소식을 부산에 있는 지희에게 편지로 알리는 한편, 란 다방을 찾아가서 알리려고 하다가 우연히 박진길을 그곳에서 만난다. 마침 함께 갔던 강중령은 박진길의 능글거림을 못 참고 주먹다짐을 벌이지만 정아와 별 탈 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군에 복귀한 강중령을 보내고 홀로 된 정아는 어쩐지 이게 정말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다방에서 차를 마시다 석은과 만난다. 석은은 이제는 정말로 정아를 놓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미 그것은 흘러간 물이라고 생각하는 정아는 정중히 그와 헤어진다. 드디어 강중령과 결혼식을 올리게 된 정아는 점차 생활의 안정을 찾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신문기사에서 란 다방 마담의 자살 소식을 들은 정아는 이전의 박진길과의 행각을 생각하며 혼자 외로워했을 마담을 생각한다.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던 정아는 불행히도 장질부사로 남편을 잃은 지희의 소식을 듣는다.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쓰러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지희의 편지에 정아는 우는 자는 복이 있으리니 웃음을 얻으리라는 구절과 함께 어쩌면 언니의 과거는 착오였는지 모른다면 태양이 있는 한 언니의 새로운 출발은 가능하다며 답신을 보낸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작품세계
시누이와 올케 사이인 정아와 지희라는 두 여성이 등장하는 『태양의 계곡』은 1957년 5월부터 1959년 8월까지 「현대문학」에 연재된 손소희의 장편소설이다. 1959년 현대문학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된 이 작품은 두 번이나 남편과 사별하여 추억과 자성 속에 사는 여인과 한 사람에게 존경과 애정을 다 바칠 수 없음을 알고 남자들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혼하여 정착하는 여인의 성격과 운명을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전쟁의 상황 속에서 시누이와 올케인 두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성격과 행동, 그리고 운명을 대조하여 보여준 작품이다. 지적인 지희와 방랑적인 정아를 두 축으로 하여 서로 엇갈리는 남성들과의 사랑과 인정에 얽힌 인간 비극을 그리고 있으며, 특히 여성의 심리를 잘 묘사하여 전형화하고 있다.
지희의 삶과 성격에서 보듯이 어둡고 긴 터널과 같은 우수를 그녀의 작품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우수에 찬 그의 소설은 당혹스러움마저 느끼게 한다. 그 어두운 터널을 힘들여 빠져 나오면, 대개의 독자들은 찬란한 빛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나 거기에 있는 것은 밝고 부드러운 빛이 아닌 무겁고 장중한 그리고 스러져 가는 붉은 황혼처럼 슬프고 환상적인 빛이다.
『태양의 계곡』이 쓰여진 이 시기는 피난기의 문학으로 「이라기(梨羅記)」 등과 같이 일본, 만주 등을 배경으로 한 일제하의 민족의식과 남녀의 애정과 그 고민상을 드라마틱하게 다룬 초기 경향과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여성 심리를 지적으로 추구하여 성격적인 패턴을 제시하고 세태를 반영하거나, 남성의 존재를 시니컬하게 풍자하면서 그 내면을 파고들어 인간의 행동과 성격이 다각적으로 분석된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불협화음」 「닳아진 나사」 「거리의 비가」 「창포 필 무렵」 등의 단편과 장편 『태양의 계곡』이 있다.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 즉, 후기의 작품은 장편으로 기울어지고 광복과 6․25라는 한국의 현실과 젊은이들의 애정윤리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단편 「그날의 햇빛은」으로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고, 장편소설 『계절풍』, 『태양의 시』, 『남풍』, 『에덴의 유역』, 『원색의 계절』 등을 잇따라 발표해서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했다. 이때의 작품들은 질과 양에서 원숙한 경지에 이른다. 소설의 일관된 작가적 수법은 정밀한 관찰과 인물 성격의 부각, 그리고 내성적인 인물의 심리를 서술하는 태도가 특히 두드러지며, 드라마틱한 구성주의보다도 세태적인 관심과 극히 성격 대조적인 플롯을 평범하게 다루면서 알찬 성격소설을 이룩하고 있다. 이렇듯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손소희의 작품은 한국문학사에서 임옥인(林玉仁), 최정희(崔貞熙)와 함께 여성수난의 주제를 심화시킨 작가로 초기의 감상적 차원에서 벗어나 차츰 무게 있는 리얼리즘의 세계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