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일등병 오디세이

이규형 지음 | 서울도쿄
1장 오디세이를 꿈꾸며



김지훈 일병의 별명은 '오디세이'이다. 군대야말로 '젊은 시절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모험과 낭만과 스릴의 장'이라고 굳게 믿고 오디세이를 꿈꾸며 입대한 스무 살 청춘이다. 작가 지망 영화학도로서 기지가 넘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으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금 소대의 병사들이 침을 겔겔겔 흘리며 흥분하고 있는 건 순전히 지훈의 솜씨다. ... 전투 소대원들은 지훈을 끔찍하게 좋아한다. 왜 지훈이 그렇게 인기가 있는가. 그 인기비 결이라야 간단하다. 군대 영화에다가 5분에 한 번씩 다른 한국 영화의 야한 장면을 삽입 (?)하면 되는 거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들이 모여 사는 곳, 이성보다는 감성과 본능에 예민해 질 것을 강요하는 곳, 이러한 군대 조직에서 성(性)에 대한 탈출구는 입심 좋은 후임병의 성적 경험담을 듣거나, 포르노 테이프를 돌려보는 것이 고작이다. 지훈은 탁월한 편집 실력 덕분에 자신의 전투 소대뿐 아니라 인접한 보안대, 수색대에서도 인기가 높았으며, 이를 계기로 이민기 병장과 인연을 맺게 된다.

보안대 소속 배 병장의 계급은 실제로는 지훈보다 낮다. 그러나 보안대의 성격상 외부에서는 병장 계급장을 거짓으로 달고 있는 것이다. 지훈의 소대에서 한창 포르노 영화가 상영 중일 때, 보안대 배 병장은 자신의 부대로 출장(?)을 나오지 않은 지훈에게 화풀이를 하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 군대의 생리상 화풀이는 곧바로 구타로 이어지게 된다.

"이 쫄따구 새끼가 보안대를 개좆으로 봐." 거의 샌드백 쳐대듯 주먹질이 연속으로 날아 온다. 머리, 가슴, 어깨에 퍽퍽 소리가 나며 찌끈찌끈 통증이 온다.

끝발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배 마이가리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있는 지훈을 구해준 것은 바로 빛나는 공수부대 레인저 마크를 가슴에 달고 나타난 이민기 병장이었다. 짙은 눈썹에 눈빛이 번쩍이고 콧날이 날카로운 미남형의 그 남자는 등장부터 지훈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병장의 자연스러운 허풍은 보안대 배 병장의 도도함을 압도하기에 충분했고, 위기에 처한 지훈을 구해주었다. 지훈은 시내에 나가서 차 한 잔 하자는 이민기 병장을 무엇엔가 홀린 듯 따라나서게 되었고, 앞으로 이 만남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운명의 모험이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지훈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내는 정말 알 수 없는 면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전방지역을 통과할 때 거쳐 온 헌병초소와 위병초소에서 다른 사병들이 그에게 경례를 깍듯이 부치는 광경도 그렇거니와 계급장마저 붙어있지 않은 사제 가죽 잠바 차림새까지 너무도 자신만만한 그의 말과 행동은 사뭇 낯설면서도 호감이 가게 만드는 그런 사내였던 것이다.

그가 지훈을 데리고 들어간 곳은 예스터데이라는 레코드점이었다. 주인인 듯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빼어난 미모의 윤희가 민기와 지훈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듣는 음질 좋은 음악소리와 커피 향기가 어우러진 그곳은 대학가의 카페를 연상시켰다. 지훈은 그들과 감명 깊게 본 영화, 어릴 적 펜팔로 사귄 군인 아저씨, 월남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히 친해지기 시작했고, 연인 사이인 이민기와 장윤희 사이에서 자기가 군대에 입대할 때 가지고 있던 원대한 꿈과 이상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았다.

"자의건 타의건 오디세이는 집을 떠나 20년간이나 상상도 할 수 없는 모험과 낭만의 대항 해를 하지 않습니까? 전 한국군대야 말로 오디세이 같은 모험을 맛볼 수 있는 청춘의 장 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대가 아니면 체험하지 못하는 웃음과 눈물, 아픔과 사건들... 그런 이야기들을 잘 어렌지해서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겁니다."

땅굴 찾는 수색대 소속인 이민기 병장은 지훈에게 자신의 부대로 전출 올 것을 요구했다. 이민기는 은근히 지훈을 환영하는 눈치였고, 지훈 역시 호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달콤한 연대 정훈병을 포기하고 첩첩산중에 텐트를 티고 벌벌 떨면서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지훈도 나름대로 지난 6개월 동안 불안에 떨었었다. 피에 젖은 늑대 떼들에게 내팽개쳐진 지난 6개월이었다.

2장 이등병 항해일지



지훈은 애초부터 따스한 후방에서 편한 보직으로 허송 세월을 보내는 군대생활을 원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훈련소 생활은 거의 수학여행 온 기분이었다. 글을 써보겠다고 작정한 지훈에게 있어 군대란 곳은 전쟁문학과 군대문학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조교들에게 얻어맞는 것도 사실 중학교 때 야구부에서 빠따 맞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라고 마음먹으니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웠다.

지훈은 훈련소 시절부터 하루하루의 경험과 기억, 감정 등을 쪽지에 꼼꼼히 적어 수통에 보관했다. 그 쪽지들은 제대 후 자신의 시나리오를 완성시켜 줄 소중한 기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병들과 사뭇 다른 지훈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던 신병교육대 소대장은(그의 별명은 슈퍼맨이다.) 지훈이 자신과 고교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우연찮게 지훈의 수통 속에 보관된 메모쪽지를 읽게 된다. 이를 계기로 둘은 상관과 부하 이상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다. 신교대에 남지 않겠느냐는 소대장의 배려를 정중히 거절한 지훈은 수퍼맨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그토록 바라던 야전 대대로 배치를 받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 육군 조직 중 최하 조직인 소총 소대에 배치된 지훈의 자대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피범벅' 소대라는 명칭에 걸맞게 매일 밤 얼차려와 구타가 자행되는 군대다운 곳(?)이었다.

상병들의 구타는 그 세기와 정도가 갈수록 악랄해져서 이 시키들과 최소한 1년을 같이 살 아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했다... "입 꽉 다물어!" 지훈이 입을 다물자 사정없이 오른 주먹, 왼 주먹으로 아구창이 날아왔다."

그러던 지훈은 연대본부 정훈병으로 전출을 감으로써, 험난했던 6개월간의 피범벅 소대 생활을 마무리하고 대신 영사기를 들고 이곳 저곳에 위문 상영을 해주는 새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전출이다. 전출. 중대장실에서 들었는데 연대본부 발령이야. 아까 연대 정훈관이 직접 연락 해왔어. 너 짜아식 풀리는구나." 풀리긴. 기껏 소대 생활에 익숙해져 맛이 들어가는 판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쯤에서 소댈 떠나는 게 뭐 그리 싫지도 않았다. 또 새로 운 경험, 새로운 항해라 생각한다면...

그런데 이민기라는 사람의 등장으로 지훈은 또 다시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의 항해를 고려하게 된다.

3장 호텔 코코넛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훈은 이제부터 수색대원이다.



사단 찝차는 민간인 통제구역 안 전방 초소를 지나고 있었다. 지훈은 이민기 병장과 뒷좌 석에 앉은 채 침묵을 지켰다. 이 병장은 아까 연대본부에서 지훈 보고 조용히 보고만 있 으라고 눈을 찡긋했다.

이민기 병장은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지훈을 자신의 부대로 데리고 온 것 같았다. 소령 계급의 과장과 마주친 이민기는 넉살좋은 너스레로 지훈을 데려가겠다고 통보했다. 지훈은 이민기 병장을 따라 전방 초소를 지나 숲이 이어지고 한쪽에 철조망이 쳐진 산 속으로 들어갔다. 해골마크에 '지뢰'라고 쓰여 있는 삼각형 모양의 지뢰 표지만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이민기 병장은 자신이 이 지역 지역사령관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도록 했고, 지훈 역시 이제부터 자신의 항해일지에 이 병장을 아빠라고 기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사람이 산길을 꽤나 올라갔을 때 갑자기 언덕이 평평해졌다. 그리고는 저 멀리 들판 뗏장을 떠다가 잔디로 덮은 커다란 벙커가 나타났다. 그 벙커가 이제부터 지훈이 새롭게 적응해야 할 집이다. 그 벙커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한 사람은 수색대 마크와 공수 견장이 어울리지 않게 얍삽하게 생긴 상병이었다. 건들건들거리는 폼, 말투가 한눈에 봐도 닳고 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차갑고 무뚝뚝한 근육질의 호텔 주방장 차림을 한 투 스타 계급의 사내였다. 지훈은 도대체 뭐가 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지역 사령관에다 투 스타 주방장에 양아치 상병까지. 신기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연대 장교 식당에서도 보기 어려운 품격 있는 접시들과 숟가락, 포크, 나이프, 그리고 커다란 새우튀김에 칠리 양념 소스를 얹은 요리에서 술까지, 지훈은 짧은 시간에 새로운 것을 너무 많이 경험하고 있었다.

만찬이 끝나고 포만감에 취해있을 때 아빠는 지훈을 벙커 지하로 데리고 갔다. 지훈이 본 내무실의 풍경은 보통 군인들 내무반과 많이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점은 군대 관물대와 총 놓는 곳이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한쪽에 보이는 나뭇장에다 한꺼번에 때려 박은 것 같았다. 아마 곤조 있는 사관이 점호를 취한다면 이곳은 개박살이 날 것이 확실했다.

아빠가 헤드폰을 벗으며 지훈에게 써보라고 했다. "써 봐." 지훈이 쓴 헤드폰에서는 특별 한 소리가 안 나고 쏴아 하는 밋밋한 소리만 났다. "평양애들 땅굴 파는 소리 안 들려?" 권 상병 하는 말을 듣고 나니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감이 잡혔다. 요 몇 년 전 우리 사 회를 발칵 뒤집었던 땅굴을 잡는 부대다.

권 상병은 지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의기 양양하게 땅굴이 하나 뚫리면 남한에는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지훈의 교육관임을 자칭하면서 아빠(이민기 병장)와 강 장군(강대남 병장)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민기 병장은 서울대학교 출신으로서 사단은 물론, 군단 음어 측정대회와 암호 측정대회에서 언제나 1등을 차지하는 명석한 두뇌는 물론 사람을 후려 잡는 마력까지 지닌 최고의 군인이라고 했다. 또한 강대남 병장은 웃거나 우는 보습을 아무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표정의 터프가이라고 했다. 무표정이라 강 장군에게 어울리는 단어이다. 지훈이 그날 정상에 서서 본 광경은 장관이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휴전선 철책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위에는 철책과 선전문구가, 아래에는 땅굴이 지나가는 그 곳에 지훈은 서 있었다.

다음 날 지훈은 아빠가 설계한 듯한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 여기저기 메모와 낙서가 곁들여진 교회 건물과 학교 건물의 수채화 조경도 같이 걸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지훈을 보고 아빠는 웃으며 다가와 이곳에서 하루를 보낸 소감을 물었다.

"저기 말이죠, 진짜 좋습니다. 난 어제 여기 앉아 식사할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마당에 야자수만 드리워져 있으면 여긴 군대가 아니고 파라다이스가 아닌가 하구요..."

아빠는 야자수라는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빠는 정말 못 말리는 군인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야자수 나무를 만들어 심을 계획을 세웠다. 지훈의 말로 시작한 야자수 나무 사건을 강 장군과 권 통빡에게 전달하자 그들 역시 하나도 놀라지 않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땅부터 파기 시작했다. 아빠는 야자수 나무 도면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도면이 완성되자 그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무좀약과 양주를 가지고 인접 소대로 내려가 선임하사를 구슬리기 시작했고 가볍게 야자나무의 기둥을 구할 수 있었다. 지훈은 강 장군과 함께 콘크리트를 비비면서 모두들 또라이가 아닌가 생각했다. 야자수 말을 한 놈이나 그걸 당장 만드는 사람들이나. 그러나 야자수 이파리의 나무가 하늘을 향해 똑바로 섰을 때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호텔 코코넛의 완성이다.

황혼의 하늘은 아름다웠다. 그림자를 드리운 채 흔들리는 야자수를 보면서 이파리의 배경 이 모두 진짜 같은 기분을 느꼈다. (...) 지훈은 지난 군대 생활 기간 중 〈호텔 코코 넛〉이 최고 히트작이라고 생각했다.

군인에게 있어 첫 휴가는 설레임 그 자체이다. 떨어져 있던 사람들과의 만남, 한동안 잊었던 자유로의 회귀,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지훈은 이번 특박이 그의 항해일지에 바치는 시간이라 맘먹고 나왔다. 그러나 자신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는 일은 싱겁게 끝이 났고, 오히려 민지숙이라는 아가씨를 만났다는 데에 이번 휴가의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부산행 열차에서 만난 '코코'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는 지훈에게 첫사랑 이후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해준 장본인이었다. 자신의 고교 때 사진을 건네며 부끄럽게 고백하고 뒤돌아 가버리는 코코의 뒷모습을 지훈은 마음에 간직한 채 부대로 돌아온다.

산이 초록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전방의 봄은 언제 왔다 갔는지 모르게 가버리고 성급한 여름은 어느새 초소 벙커 안의 권 상병을 누드 차림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훈 자신도 잊고 있던 생일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강 장군은 또다시 요리사 복장으로 나타나 테이블에 흰 테이블보를 깐다. 지훈은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주고 챙겨주는 식구들이 너무 고마워 가슴이 찡하다. 근무를 서던 지훈이 3번 발톱 쪽에서 발자국 소리를 감지하고 아빠에게 보고를 했다. 보급 인원의 소리일 수도 있고, 영농을 하는 민간인이 전화선을 잘라먹고 있는 소리일 수도 있다. 소대원들이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다가 모두들 뒤집어졌다. 떼거지로 나타난 일단의 무리는 소대장, 선임하사 수준이 아닌 중령, 대령 등의 고급장교였다. 복장상태와 내무반 상태가 엉망인 이곳을 보고 제일 난처해 호통을 친 사람은 바로 이 곳 대대장이었다. 모두들 영창에 집어넣겠다고 소리치는 대대장의 목소리가 누그러진 것은 사단 참모장이 아빠와 스스럼없이 안부를 묻고 있는 모습을 본 후였다.

참모장 아저씨는 <호텔 코코넛> 간판과 레스토랑을 보면서 재미있는 듯 계속 껄껄거렸다. "역시 뭔가 틀리군. 자네는. 어이! 대대장! 우리 여기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 먹고 가 지!" 대대장에게 명령조로 소리치고 나서 참모장은 아빠를 돌아보면서 또 자상하게 물었 다. "영업하나?"

사실 참모장은 수색대 과장의 추천을 받아 이민기 병장도 만나볼 생각으로 겸사겸사 들렀던 것이다. 사실 이민기 병장은 참모장 아들, 딸들의 과외 선생님으로써 대학에 합격시킨 이후 참모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호텔 코코넛은 이렇게 이민기라는 인간을 중심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참모장 일행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인접 소대로부터 전해 듣지 못한 것은 삐삐선(군용 전화선)이 어디에선가 또 절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권 상병과 지훈은 엄청난 무게의 군용 전화 케이블깡을 등에 짊어지고 단선된 곳을 찾아 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선된 곳을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선이 모자라는 것이 문제였다. 모자라는 선을 해결하는 방법은 어쩔 수 없이 지뢰표시 지역을 통과하는 것뿐이다. 두 사람은 강대남 병장의 불호령이 두려운 나머지 한숨을 내쉬며 지뢰밭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뢰에 대한 감각은 무뎌져 갔다. 제자리에 서서 담뱃불을 붙이던 지훈의 얼굴이 사색이 된 것은 무심결에 내려다본 발 밑에 수없이 널려있는 지뢰를 발견한 후였다. 그제야 두려움을 느낀 지훈은 당황하여 그 지역을 이탈하기 시작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권 상병이 지훈 쪽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와이어가 끊어지는 듯한 퉁 하는 소리가 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지훈아, 임마! 야 새끼야. 나 밟았어!" 지훈의 얼굴이 차갑게 얼어붙는 데 반해 권 통빡 의 얼굴은 울상으로 찌글찌글해진다.

혼자서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지훈은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권 상병을 뒤로 한 채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산을 뛰어내려갔고, 이윽고 공병대 대원들을 이끌고 되돌아왔다. 그러나 권 상병의 발 밑을 살피던 공병대원은 허무하다는 듯이 권 통빡을 밀쳤다. 권 상병이 밟고 있는 것은 지뢰가 아니라 6.25때 버린 녹슨 깡통이었던 것이다. 대대장의 눈밖에 나있던 '호텔 코코넛' 대원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난데없는 군기 교육대 신세를 지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좁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곳 군기 교육 교관은 다름 아닌 사회에 있었을 때 함께 조직생활을 했던 강 장군의 부하, 개고기였다. 그 덕분에 싱거운 군기 교육대를 퇴소한 지훈에게 또 다른 임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D.M.Z 수색 작전이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