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쑈리 킴

송병수 지음 | -
쑈리 킴

송병수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쑈리 킴: 똘만이 출신의 전쟁 고아. 일선 미군 부대 근처에서 미군들을 따링 누나에게 붙여주는 일을 하면서 움막 생활을 한다. 전쟁으로 세상 물정을 일찌감치 경험한 조숙한 아이지만 ‘저 산 넘어 햇님’을 노래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따링 누나: 미군들에게 몸을 팔며 살아가는 양공주. 쑈리 킴과 움막에서 친형제처럼 산다. 매일같이 몸을 팔지만 달라를 모아 새로운 삶을 계획한다. 그러나 매독에 걸려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결국 미군헌병대에 끌려가고 만다.

딱부리: 쑈리 킴과 같이 똘만이 출신의 전쟁 고아. 미군부대의 밥띠기, 빨래꾼, 이발사. 쑈리와 같이 소매치기, 거지노릇, 고아원 생활을 거쳐 기지촌으로 흘러들어와 미군 부대 캡틴의 하우스 보이 노릇을 한다.

쩔뚝이:미군부대의 이발사. 군에 가기 싫어 미군 부대의 이발사가 되어 도둑질을 일삼다가 양키 총에 맞아 절뚝발이가 되었다. 그는 따링 누나와 함께 사는 쑈리를 자주 놀리고 누나가 모은 달러를 탐낸다. 결국 따링 누나를 헌병대에 고자질하고 누나가 잡혀간 사이 달러를 훔치려다 쑈리와 딱부리에게 얻어맞는다.



이방인지대와 전쟁 피해자들의 삶

쑈리는 매일 양키 부대에 가는 길에 언덕 위에 오면 으레 나무에다 돌멩이를 던져 그날 하루 ‘재수보기’를 해 봐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세 번 던져 한번도 정통으로 맞지 않았다. 아마 오늘은 재수 옴붙은 날인가보다.

쑈리 킴의 본성은 김이다. 미군들은 김이라는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꼬맹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쑈리 킴이라고 부른다. 쑈리 킴은 일선지구 미군들이 득실거리는 부대 가까이에서 양공주 따링 누나와 같이 움막 '전에 중공군의 참호였던 땅구덩이'에서 산다. 쑈리는 매일같이 미군부대에 들어가 미군들을 따링 누나에게 붙여주는 일을 한다. 그에게는 몇 사람의 단골 손님도 있다. 오늘도 그는 재수보기를 하고 미군부대로 향한다. 언덕 아래 넓은 골짝에 양키 부대 캠프들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다. 쑈리가 늘 찾아가는 곳은 쫄대기 양키들이 있는 곳이다. 거기에는 밥띠기 '쿠크' 빨래꾼 '세탁부' 이발쟁이 찔뚝이랑 몇몇 한국 사람도 있지만, 쑈리는 그들보다 양키들하고 더 친했다. 거기 쫄대기 양키들은 몇 사람만 빼놓고는 모두 몇 번씩 따링 누나하고 붙어먹은 일이 있어 아무 때고 쑈리가 가기만 하면 ‘웰컴 쑈리 킴’이다. 뚱뚱보 싸징이나 검문소의 엠피 같은 깍정이놈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양키라면 한국 사람들보다 모두 좋았다. 그들이 먹다 남은 닭다리나 초콜렛 부스러기 따위를 얻어먹는 맛에서가 아니라 양키들이 어른답지 않게 말발굽쇠 던지기랑 화약터치기랑 어떤 놀이든 버젓이 한몫 붙여 주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울서 똘만이 노릇을 할 때 고작 파카 만년필이나 론손 라이타를 날쳐다가 왕초 몰래 똘만이들끼리 팔아먹던 재미나, 피엑스 앞에서 깔치들에게 매달려 한푼 달라고 생떼를 쓰다가 옷자락에 타마그를 슬쩍 발라 주던 그때의 재미 따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집이라곤 통 없는 일선 지구 산골이지만, 진작 서울서 이곳에 오길 참 잘한 것이다. 여기서 양키들에게 양갈보나 붙여 주고 그럭저럭 얼려 지내다가 딱부리처럼 하우스 보이라도 되기만 하면 그땐 팔자 고치는 것이다.

양키들이 먹다 남는 것만 얻어도 쑈리는 같이 있는 따링 누나하고 둘이서 실컷 먹고 쓰고 남을 것이지만 그따위 찌꺼기나 얻어먹는 데데한 짓은 안한다. 그저 하루에 한두 놈씩 뒷구멍으로 슬쩍 꾀내어 따링 누나에게 붙여주기만 하면 된다. 이따금 재수좋게 전방에서 처음 온 양키가 걸려들기만 하면 그건 숫제 노다지나 다름없다. 처음 색시 맛을 들여놓으면 한 보름 동안은 ‘쑈리 킴 캄앙….’하며 몸이 달아 줄줄 따라 다니게 마련이다. 그런 놈을 슬금슬금 잘 구워삶기만 하면 그냥 박하사탕이랑 레이션이랑 마구 생긴다.

요새는 모두 따링 누나에게 맛을 볼 만큼 다 봐 놨고 또 웬만큼 약아질 때도 돼 놔서 꽤 인색해졌지만 그래도 하루에 어수룩한 놈 하나씩만 잘 주무르면 달러 다섯 장은 고스란히 떨어지는 것이다. '오늘은 단골 양키라도 꽤내야지.'생각하는 동안에 쑈리는 부대 앞에 이르렀다.



“저 산 너머 햇님이 숨바꼭질 할 때에“

캠프마다 조용하다. 마당에 차가 없는 걸 보니 또 물건을 싣고 전방에 가서 저녁때가 됐는데도 아직들 안 돌아온 모양이다. 드럼통을 세워 만든 정문 앞에 보초병 혼자 하품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하모니카를 잘 부는 뾰죽코가 보초다.

뾰죽코는 혼자 심심했던 판에 너 잘 왔다는 듯 ‘쑈리 킴’하고 어깨를 쓸어 주며 청하지도 않은 담배까지 준다. 이게 다 따링 누나에게 꿍꿍잇셈이 있어 제딴엔 한턱쓰는 것일 게다. 마침 첫째 캠프에서 떠들썩하기에 가보니 따링 누나의 단골 손님인 놉보와 한국말 잘하는 떠버리, 그리고 딱부리놈은 언제 왔는지 셋이 얼려 지 아이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판이다. 그들은 쑈리를 잡아 끌어다가 다짜고짜로 술병을 안긴다. 이렇게 억지로 마시라는 데는 딱 질색이다. 딱뿌리가 날름날름 위스키를 마시며 머지 않아 캡틴 따라 미국에 간다고 야불댄다. 요게 어쩌다가 하우스보이가 됐다고 멋을 부리며 함부로 뻐기는 게 참 얄밉다.

자식이 제나 내나 다 같은 똘만이면서 뭐 잘났다고 요렇게 거만한지 모르겠다. 똘만이적 생각을 해서라도 이러진 못할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곳에 데리고 와서 자식 팔자만 고쳐준 게 여간 분한 게 아니다.

그는 열 네 살이지만 제 나이값에도 못 가는 얼뱅이다. 피난 나오다 잃어버린 제 아버지 이름도 모른다. 똘만이적에는 돈 못 벌어온다고 청계천 다리 밑 왕초한테 지독히 얻어맞으면서도 아예 도망칠 생각도 못했던 겁보였다. 그때 쑈리가 겁보였던 딱부리를 데리고 뺑소니를 쳤고 재수없게 교통순경에게 붙잡혀 청량리 고아원에 가서 보름 동안 골탕먹은 것도 알고 보면 못난 딱부리 때문이었다. 너무나 배가 고파 고아원에서 도망치려 할 때 딱부리는 혼자 가지 말라고 울먹울먹하는 꼴이 가엾어서 같이 도망쳐 준 것이다. 마침 지나가는 양키 트럭에 올라타 도착한 곳이 바로 일선 지구인 이곳이다.

이 곳에 와서 양키하고 친하게 된 것도 다 쑈리 덕분이었다. 여기 와서 얼마 동안 쫄대기 양키들하고 얼려 그렁저렁 같이 얻어먹고 지내는 판에 어찌어찌하다가 쑈리는 서울서 돈벌러 왔다는 양갈보 따링 누나를 만나 같이 있게 됐고, 딱부리는 마침 캡틴 눈에 들어 하우스보이가 된 것이다.

딱부리가 뻐기지만 요만큼도 부러울 것 없다. 따링 누나에게 맡겨 둔 달러를 몇 장 달래서 서울에 연락가는 양키에게 주면 딱부리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얼마든 사다 줄 것이다. 그렇잖아도 쑈리는 서울 가는 양키가 있으면 부탁할 셈이다.

불독은 만나기만 하면 제발 색시를 붙여 달라고 조르기 일쑤다. 놈은 이 부대의 여남은 있는 검둥이 중에 제일 못생긴 검둥이다. 놈이 양돼지같이 두북실 살만 찐데다가 상판이란 게 생겨먹기를 두툼한 입술이 삐죽이 나오고 눈두덩이 툭 튀어나온 것이.

불독은 쑈리를 가까이 부르더니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 주머니에서 십 달러짜리 두 장을 꺼내 뵈며 은근히 지껄인다. 이 돈을 줄 테니 오늘밤 색씨에게 가자는 말일 것이다. 이십 달러면 여느 양키한테 한번 받는 돈의 네 곱이나 되지만 따링 누나가 이 검둥이만은 딱 질색이다. 어느 날 그를 움막에 들여놓고 밖에서 미군 M.P가 오지 않나 망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따링 누나가 ‘에그머니...’하며 다 죽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다른 양키들 같으면 따링 누나는 턱없이 호호대며 ‘하바하바’ 소리나 한다. 그런데 그때는 명 끊어지는 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놈이 돌아간 다음에도 누나는 널부러진 채 입만 딱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쉰 다음 ‘다시는 그놈의 검둥이 녀석은 데려오지 마라’고 한숨을 내리쉬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쑈리 킴은 고개를 돌리고 ‘노우’를 했다.

그러자 불독은 차고 있던 시계를 꺼내어 그의 팔목에 감아 준다. 쑈리 킴은 그 야광 시계를 본래 지독히 가지고 싶어했다. 이번에는 ‘노우’ 하기가 싫다. 쑈리는 시계를 찬 채 불독에게 애매하나마 그저 씩 웃어 보이고는 곧 떠버리의 캠프로 다시 들어간다.

떠버리랑 놉보랑 한창 술이 취해가지고 여러 장의 사진을 돌려보며 왁작거리고 있는 판이었다. 쑈리는 고동 '스위치'를 틀어 어린이 시간의 음악을 듣는다. 바늘을 맞추자 ‘저 산 너머 햇님이 숨박꼭질 할 때….’가 나온다. 이건 절로 신이 난다. 바로 어린이 노래 공부 시간이다. 쑈리는 선생님 '라디오'가 하는 대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나중엔 놉보와 떠버리까지 따라 불러 한참 신나게 목청을 뽑았다.

한참 신이 난 판에 불독이 그 생긴 꼴에다 제법 옷을 말끔히 갈아입고 가자고 한다. 시계를 도로 주며 싫다고 했다. 도로 주기는 서운하지만 다신 데려오지 말라는 따링 누나의 명을 어길 수도 없거니와 우선 노래를 마저 배우고 싶다. 그러자 불독은 대뜸 통사발 같은 눈을 부라리더니 시계를 내동댕이쳐 버린다. 그리고는 주먹을 날려 쑈리 킴의 볼때기를 갈긴다. 딱부리가 빨리 달아나라고 잡아 흔드는 바람에 허둥지둥 밖으로 쫓겨 나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오늘 같이 재수없는 날은 일찌감치 집에 가서 따링 누나에게 이야기를 듣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면서 쑈리는 집으로 향한다.

막 정문을 나서는데 저쪽 한국인 캠프에서 쩔뚝이가 그늘 부르며 나타난다. 그는 부대 내의 이발소에서 먹고 사는 이발사다. 그리고 G.I들이 잘못 쏜 총알에 맞아서 다리를 쩔뚝거린다. 그래서 쩔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놈은 쑈리 킴을 보자, 한다는 소리가 양갈보하고 돈을 나눠 먹는다고 돈을 바꾸자고 말한다.따링 누나의 슬픔과 꿈

언덕 위에 거진 올라오니까 밑에서 딱부리와 놉보가 ‘같이 가자’고 소리치며 따라 올라온다. 아마 놉보가 지랄하는 불독놈을 한 대 안기고 오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놉보는 따링 누나의 단골손님이니까 아무 때고 생각나면 오는 거지만, 딱부리놈은 뭣하러 따라오는지 모르겠다.

놉보와 딱부리는 언덕 위에 올라오자 대뜸 허리에 찬 칼을 뽑더니 고목나무에다 던지기 시작한다. 놉보는 영락없이 맞히지만 딱부리도 제법 솜씨가 여간 아니다. 다른 내기라면 자신이 있지만 이 칼던지기만은 딱부리놈 당할 수가 없어 재미없다. 쑈리는 먼저 언덕을 내려갔다. 놉보와 딱부리도 따라 내려온다.

쑈리는 휘파람을 불면서 따링 누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누나가 나오자 놉보가 움막으로 들어간다. 늘 그렇듯이 쑈리 킴은 엠피가 오나 망이나 보고 이 통에 담배나 피우면서 놉보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딱부리놈은 포장 새로 움막 안을 훔쳐보며 몸을 비비꼰다. 함참 그러더니 나중엔 얼굴에 빨개진 눈을 껌벅거리며 입맛을 쩝쩝 다신다.

그리고는 놉보가 나오자 그를 부대로 먼저 보낸다. 그리고는 딱부리가 움막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달려드는 딱부리를 따링 누나는 귀빰을 올려붙인다. 그러자 그는 덤벼들면서 따링 누나의 머리끄덩이를 마구 잡아채는 것이다. 쑈리 킴은 딱부리의 꽁무니를 한 대 내질렀다. 그가 한 대 얻어맞고는 한참 동안 째리고 보려보더니 비실비실 달아난다.

따링 누나는 한참 넋빠진 사람처럼 멀거니 쳐다보더니 별안간 미쳤는지 쑈리 킴에게 화풀이를 한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 퍽 엎드려 흐느껴 운다. 이제까지 따링 누나가 그렇게 화를 낸 일도 없었고 그렇게 우는 것도 처음 본 쑈리는 맥도 없이 슬프기만 했다. 얼마 동안 울고 난 뒤 따링 누나는 이제 서울 가서 둘이만 같이 살자고 쑈리 킴을 달래 준다. 따링 누나가 그전처럼 쑈리를 두 팔로 꼬옥 껴안아 준다. 그래도 쑈리 킴은 얼마라도 마냥 울고만 싶었다.

쑈리 킴은 알록달록한 꽃밭인지, 파란 잔디밭인지 그런 곳에서 따링 누나하고 ‘저 산 너머 햇님’을 신나게 부르는 꿈을 또 꾸었다. 그러나 눈을 떠보니 땅구덩이다.



끌려가는 따링 누나와 쑈리 킴의 분노

해가 높이 떠올라 있다. 반쯤 제쳐 놓은 포장 새로 내리쬐는 햇살이 눈이 부시다. 따링 누나는 벌써 일어나 조반을 마련해 놓고 쑈리가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감자통조림과 젤리를 몇 개씩 조반이랍시고 먹었다. 뱃속은 든든한데 목구멍이 달짝텁텁하다. 이럴 때는 입안이 화해지는 쿠울 담배를 피웠으면 좋지만 따링 누나가 담배는 못 피우게 하니까 대신 박하껌이라도 한 개 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따링 누나는 입술에 칠도 안하고 머리도 안 빗은 걸 보아 오늘은 양키를 받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어쩌면 양키한테 잘 옮는다는 국제 무어라든가 하는 못된 병이 또 걸렸는지도 모른다. 쑈리 킴은 걱정을 한다. 몇 달 전에도 이 모양이더니 병을 고친다던가 뭐 뱃속의 애를 뗀다던가 하고 혼자 서울로 간 일이 있었다.

오늘은 양키 부대에 가서 식당놈을 잘 구워삶아 생계란과 칠면조 넓적다리 같은 맛있는 걸 많이 얻어다가 누나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따링 누나가 부탁한 마이신이라는 약도 오늘은 꼭 얻어와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이신을 얻어오겠다고 하면서 쑈리는 움막을 나와 언덕으로 올라갔다. 휘파람으로 ‘저 산 너머 햇님’을 그럴싸하게 부르면서 오늘도 재수보기를 하기 위해 돌멩이 세 개를 골랐다. 재수보기를 하다가 쑈리 킴은 깜짝 놀란다. 저 아래 땅구덩이 앞 밭고랑에 어느 틈에 엠피차가 와 있는 것이다. 빨리 되돌아가 따링 누나에게 알리려고 쑈리는 언덕 아래로 뛰어내려가며 휘파람을 두 번씩이나 불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쑈리가 언덕 아래로 내려왔을 땐 벌써 엠피들이 땅구덩이에서 따링 누나를 잡아내어 차 있는 곳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쑈리는 누나를 부르면서 따라간다. 따링 누나는 차에 올라타며 마주 소리친다. 구덩이에 있는 팔 백 달러 뭉치를 꼭 가지고 서울 피엑스 앞에서 만나자고 소리친다. 그리고는 더 무슨 말인지 차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쑈리는 누나를 목이 터져라고 부르지만 소용이 없다. 참 기막힌 노릇이라고 쑈리는 생각한다.

쑈리 킴은 서러운 것인지, 분한 것인지 눈물도 안 나온다. 아마도 어제 약이 오른 딱부리놈의 짓이라고 생각해 본다. 캡틴에게 고자질한 것이리라. 쑈리는 주먹을 불끈 움켜쥔 채 내처 부대로 달렸다.



쑈리의 복수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박한 소망

부대 마당에서 마침 딱부리놈이 양키들하고 공받기를 하고 있다. 자식 공받는 거나 던지는 거나 무척 서투르다. 하여튼 자식이 있어 잘됐다. 그러나 재수가 없자니까 하필 오늘은 불독이 정문에 떡 버티고 서 있다. 놈은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모양이다.

쑈리가 들어가려니까 불독은 심통사납게 노려보더니 가라고 소리치며 칼빈총을 찰가닥 재어 겨누는 것이다. 오늘 따라 놈의 부라리는 눈이 더욱 무섭다. 오늘은 섣불리 굴다간 정말 놈의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곳에선 양키가 한국 사람 하나 둘쯤은 쏴 죽여도 그만이다. 요전에도 캠프에 웬 한국 사람이 얼씬거리는 것을 보초가 쏴 죽였지만 얼렁뚱땅 쓱싹 해치우고는 누구 하나 아랑곳하지 않았었다.

쑈리 킴은 언덕 쪽으로 피해가며 그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욕을 했다. 그리고 딱부리에게 빨리 나오라고 악을 쓰면서 주먹질을 했다. 쫓아온 딱부리의 멱살을 움켜쥐고 언덕 위까지 끌고 올라간다. 한참 욕을 하다가 어쩌면 딱부리의 짓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저 아래 아까 엠피가 왔던 곳으로부터 쩔뚝이가 땅구덩이로 가는 게 보였다. 쩔뚝이는 서슴지 않고 땅구덩이로 들어간다. 쑈리 킴은 저도 모르게 소리치며 쫓아내려간다. 딱부리도 뒤따라 내려왔다.쩔뚝이는 구덩이에서 뮛을 움켜쥐고 나오며 쑈리를 보자 씽긋 웃는다. 따링 누나가 꼭 가지고 오라던 그 팔 백 달러 뭉치를 움켜쥐고 있었다. 쑈리가 왜 훔쳐가느냐고 하면서 앞을 가로막자, 쩔뚝이는 양키 물건이라고 하면서 달아나려고 한다. 쑈리는 욕을 하며 쩔뚝이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그랬더니 놈은 눈을 부릅뜨며 주먹으로 쑈리를 내지르고는 절뚝거리며 달아난다. 얻어맞은 코에서 금세 피가 주르르 쏟아져 쑈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옆에서 보고만 있던 딱부리가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주며 같이 패주자고 한다. 쑈리는 정말 둘이 덤벼 쩔뚝이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분명히 쩔뚝이가 엠피에게 따링 누나를 잡아가라고 고자질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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