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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거리

오정희 지음 | -
중국인 거리

오정희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나: 소설의 주인공이자 서술자. 전쟁 직후 이사 간 도시에서 보낸 초등학교 3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삶을 회고적으로 서술한다.

치옥이: '나'의 친한 친구. 아버지의 부상으로 중도에 학업을 중단하고 미용실 보조가 된다. 의붓엄마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양공주인 매기언니의 삶을 부러워한다.

어머니: 마치 아이를 낳는 일이 삶의 전부인 양, 끊임없이 아이를 낳는다.

매기언니: 치옥이네 집에 세 들어 사는 양공주. 흑인 병사와 동거를 하면서 미국 갈 꿈에 부풀지만, 결국 흑인 병사에 의해 죽는다.



항만 도시인 인천에서의 새로운 삶

우리 가족이 이 도시로 이사를 온 것은 지난해 봄이었다……. 해안촌 혹은 중국인 거리라고도 불리어지는 우리 동네는 겨우내 북풍이 실어나르는 탄가루로 그늘지고, 거무죽죽한 공기 속에 해는 낮달처럼 희미하게 걸려 있었다.

‘나’와 ‘나’의 가족들-할머니, 엄마, 아빠, 오빠, 언니, 네 살짜리 동생, 젖먹이 동생-은 전쟁이 끝난 직후, 아버지가 취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담배잎 장사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친구의 소개로 인천 석유 소매업소의 소장직으로 취직을 하게 되어 인천으로 이사했다. 소들을 도살장에 부려놓고 돌아오는 트럭편에 짐을 꾸린 식구들은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면서, 가는 도중에 잠깐 내려 오줌을 누기도 하고, 초소에서 검문을 받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낯선 이 고장으로 이사를 왔다.

‘나’는 피난지인 시골에서 이사 갈 도회지의 모습을 오색의 비누방울이나 먼 나라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같이 화려한 곳으로 상상했지만, 이사 온 동네가 ‘조그만 베란다가 붙은, 같은 모양의 목조 이층집들이 늘어 선’ 초라하고 지저분한 마을이라는 사실을 알고 매우 실망했다. 그러나 이 마을의 언덕 위에 늘어선 이상한 구조의 이층집들-큰 덩치에 비해 지붕의 물매가 싸고 용마루가 밭아서 이상하게 눈에 설고 불균형해 뵈는 양식의 집들-과 굳게 닫힌 덧창 중 하나가 열리며 나타난 젊은 남자의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 이상한 기대감과 묘한 혼돈의 감정이 생겼다.

새로 이사 온 동네는 석탄을 싣고 온 화차와 제분공장이 있는 항만도시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제분공장 마당에 널려 있는 밀을 훔쳐서 껌처럼 씹기도 하고, 석탄을 싣고 온 화차의 바퀴 사이로 기어들어가 이가 벌어진 문짝 틈에서 조개탄을 훔쳐내어 선창의 간이음식점에서 가락국수, 만두, 찐빵 등의 음식과 바꿔먹기도 했다. 이처럼 이 도시는 아이들에게는 호기심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동네이지만, 어른들에게는 탄가루 때문에 빨래조차 제대로 널 수 없는 ‘못 살 동네’였다. 게다가 무너진 건물을 부수고 새로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하는 해인초 끓이는 역한 냄새가 온종일 진동하는 마을이었다.



이방인들 - 중국인과 미국인 - 에 대한 호기심

우리는 그들과 전혀 접촉이 없었음에도, 언덕 위의 이층집,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없는 상상과 호기심의 효모였다.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 가장 먼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바로 중국인 거리이다. ‘나’는 일곱번째 아이를 밴 어머니의 뒤집힌 속을 달래 주기 위해 아침마다 학교에 가기 전에 양재기를 들고 부두로 가는 도중에 중국인 거리를 지나치거나, 혹은 일주일에 한 번 돼지고기 반 근을 사기 위해 중국인 거리의 푸줏간을 직접 가면서 이들의 어둡고 우울한 삶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을 ‘더러운 아편쟁이들’이라거나 ‘뙈놈들’이라고 욕하는 어른들과 달리 ‘나’는 이들을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비하면서도 아련한 존재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중국인이 ‘나’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면, 치옥이네 집에 세들어 사는 양공주 매기언니와 동거하는 미국인 흑인병사는 두려움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나’는 아침마다 함께 학교에 가기 위해 치옥이네 집에 들렀는데, ‘나’는 치옥이의 방에 가기 위해 매기언니의 방을 지나가면서 언제나 검둥이와 매기언니의 모습을 엿보았다. 그 모습은 나에게 우울하고 두려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매기언니와 검둥이가 없는 저녁이면 ‘나’는 치옥이와 곧잘 미제 물건들이 가득한 매기언니의 방에서 ‘초록색의 액체’(술)를 마시며 놀았다. 그러면서 ‘나’와 치옥이는 비스켓, 사탕, 향수, 화장품, 진주 목걸이, 유리알 브로우치 등의 화려한 미제 물건에 이끌렸는데, 이 때문에 치옥이는 커서 양갈보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술을 마시고 어지러워서 바깥을 내다보다가 ‘나’는 이사온 첫날 새벽에 보았던 젊은 중국인 남자를 다시 보았다. 그러자 ‘나’는 이상하게도 알지 못할 슬픔을 느꼈다. ‘나’는 치옥이와 매기언니의 딸인 제니-다섯 살이 되어도 말도 못하고 숟갈질도 못하는 백인 혼혈아-를 인형처럼 데리고 놀기도 하고, 가끔씩 자신이 의붓자식이어서 마음대로 나가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치옥이에게 우리 엄마가 계모라며 거짓말도 했다. 이처럼 ‘나’는 아이가 ‘여자의 벌거벗은 두 다리 짬에서 비명을 지르며 나온다’는 사실조차 이미 알아버린 조숙한 아이였기 때문에 나의 삶에 대해 막연하나마 슬픔과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매기언니와 할머니의 죽음

나는 턱을 달달 털어대며 치옥이의 집 이층 시커멓게 열린 매기언니의 방과 런닝셔츠 바람으로 베란다의 난간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검둥이를 보았다. … 위에서 던져버렸다는군.

어느날 오빠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과 ‘나’는 지아이(GI)들이 부대 안의 테니스 코트에 모여 칼던지기를 하는 것을 훔쳐보았다. 동심원이 그려진 과녘을 향해 칼던지기를 하던 병사 중 하나가 갑자기 발의 방향을 바꾸어 우리 있는 쪽을 향해 칼을 던졌다. 백인병사가 던진 칼은 다행히 우리를 피해 지나가던 고양이를 맞혔지만, ‘나’는 너무 놀라 오줌을 싸고 말다. 오빠는 갑자기 고양이를 집어든 채 도망가기 시작하고 덩달아 다른 아이들도 오빠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미군부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와서야 비로소 죽은 고양이를 땅에 던진 오빠는 고양이의 가슴에 꽂힌 칼을 빼어 풀섶에 피를 닦은 후 찰칵 날을 숨겨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 오빠는 막대기 끝에 고양이를 매단 채 중국인 거리를 지나 부두까지 걸어가서 방죽 아래로 떨어뜨렸다. 이때 ‘나’는 또다시 이 모든 광경을 알 수 없는 눈길로 바라보는 중국인 남자를 보았다. 집으로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수채 구멍 앞에 쭈그리고 앉아 구역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여자의 동물적인 삶을 동정했다. 그날 밤 ‘나’는 마악 젖망울이 생기기 시작한 젖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된 어느날 밤, 매기언니는 흑인병사에 의해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었다. 술에 취해 매기언니를 베란다에서 밀어서 죽여버린 검둥이는 엠피를 따라 지프차에 실려 떠났다. 이틀 후 매기언니의 동생이 매기언니의 짐을 모조리 실어가면서 제니만을 남겨 놓고 떠났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매기언니의 딸 제니를 성당의 고아원으로 보내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나’는 더 이상 아침마다 치옥이의 방까지 가지 않고, 대신 길에서 큰 소리로 치옥이를 불러 함께 학교에 갔다.

또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어머니의 배는 나날이 불러갔다. 그러던 어느날 정정했던 할머니가 빨래를 하다가 쓰러졌다. 시집 온 지 석 달만에 여동생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자식 한 번 낳아 보지 못한 채, ‘나’의 어머니를 의붓딸로 삼아 평생을 의탁해 온 할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진 뒤부터는 매기언니의 딸인 제니처럼 다시 아기가 되어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어머니의 제안으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동생인 작은할머니와 그 사이에 낳은 자식들과 살고 있는 시골에 보내드렸지만, 결국 두 계절만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가 정리한 할머니의 골동품들-동강난 비취 반지와 녹슨 버클, 몇 닢 백동전-을 손수건에 싸서 공원에 있는 장군의 동상에서부터 숲 쪽으로 할머니의 나이 수인 예순 다섯 걸음을 걸어 숲의 다섯번째 오리나무 밑에 깊이 묻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의 유품이 된 골동품들을 묻었던 자리로 다시 가보았다. ‘나’는 그 물건들을 다시 묻은 뒤, 예전처럼 걸음 수를 세면서 동상으로 가지만 이제는 예순 걸음만에 닿을 수 있었다. ‘나’는 자신이 육체적으로 성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만, 그러한 깨달음은 왠지 모를 슬픔으로 남았다.



중국인 남자와의 만남

나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 뒤 종이뭉치를 끌렀다. 속에 든 것은 중국인들이 명절 때 먹는 세 가지 색의 물감을 들인 빵과, 용이 장식된 엄지손가락만한 등이었다.

다시 봄이 되고 ‘나’는 6학년이 되었다. ‘나’는 일 년 동안 키가 한 뼘이나 자랐고, 언니가 쓰던 장미가 수 놓인 옥스퍼드천의 가방을 들을 수 있었다. 여전히 화차에서 석탄을 훔치고 밤이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다녔지만, 때때로 골방에 틀어박혀 대본소에서 빌려온 연애소설을 읽기도 했다.

제분공장에 다니던 치옥이의 아버지가 공장에서 사고로 다리를 잘린 후부터 이제 치옥이는 학교 대신 삼거리에 있는 미용실에서 일을 했다. ‘나’는 매일 학교를 오가는 길에 미장원에서 작아진 스웨터를 끌어당겨 바지허리 위로 드러나는 맨살을 가리면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칼을 쓸고 있는 치옥이를 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늘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나’를 지켜보던 중국인 남자에게 종이꾸러미를 선물로 받았다. 그 속에는 세 가지 색의 물감을 들인 빵, 용이 장식된 엄지손가락만한 등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금이 가서 쓰지 않는 빈 항아리 속에 넣었다. 그 날 안방에서는 어머니가 산고(産苦)의 비명을 지르는 동안, ‘나’는 벽장 속에 몰래 숨어 들어가 차라리 '죽여줘'라고 부르짖는 어머니의 비명과 언제부터인가 울리기 시작한 종소리를 들으며 죽음과도 같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여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거미줄처럼 온몸을 끈끈하게 죄고 있는 후덥덥한 열기를, 그 열기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초조(初潮)였다. (본문 중에서)

어머니가 난산 끝에 여덟 번째 아이를 낳은 순간, ‘나’도 낮잠에서 깨어났는데, 그 순간 ‘나’는 어두운 벽장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었다. 피가 만져졌다. 내가 초조(初潮:첫 생리)를 시작한 것이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모성에 대한 거부의식과 여성 성장의 의미

오정희는 첫 작품집인 『불의 강』(1977)에서부터 일관되게 태아 살해, 영아 유기 등의 여성적 광기를 다루고 있는데, 「중국인 거리」는 『유년의 뜰』(두 편 모두 『유년의 뜰』1981에 실림)과 함께 여자아이의 성장과정을 통해 그러한 광기의 심리적 원천을 밝히는 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인 거리」는 한 여자아이가 여자로 성장하는 최초의 징표인 초조(생리)의 경험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유년기 여자아이의 육체적․심리적 변화를 다루고 있다. 즉 「중국인 거리」는 유년기의 성장과정에서 입은 어떤 치명적인 정신적 외상(트라우마) 때문에, 『불의 강』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 그처럼 원인 모를 광기에 휩싸여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젖망울 때문에 ‘홑이불의 스침에도 젖이 아파 가슴을 싸쥐며 돌아누워 앓’았던 주인공 ‘나’가 6학년이 된 어느 봄날 최초의 여성다움의 징표(임신 가능한 여성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인 초조를 겪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 이는 바로 유아기에서 성인 단계로 넘어갔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때 주인공이 자신의 여성다움을 느끼는 최초의 순간이 여덞 번째의 아이를 출산하는 어머니의 분만장면과 병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계속된 임신을 ‘동물적 삶’으로 규정하고, ‘또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머니는 죽게 될 것이다’라고 나름대로 확신했던 ‘나’에게 이제 가임기의 여성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초조가 그리 반가울 리는 없을 것이다. 아니 초조는 반갑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차라리 죽여줘’라는 비명처럼 죽음과도 같은 절망감만 안겨줄 것이다. 따라서 초조라는 자신의 잠재적 모성은 ‘나’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인 거리」에서 ‘나’의 육체적 성장은 모성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더불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극단적으로 분만을 죽음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나아가 여성의 삶 자체를 죽음으로 보는 태도로 확대해석할 수 있다. 이는 소설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죽음(어머니의 출산과정을 제의적 죽음이라고 볼 수도 있다)과 이에 대한 ‘나’의 태도를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중국인 거리」가 여자아이의 성장소설이라고 보는 근거는 또 있다. 할머니가 남긴 유물을 묻었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다시 꺼내보는 ‘나’는 그 유물에서 동상까지의 걸음수가 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육체적 성숙에 대한 자각이 현실로 나타나는 계기는 바로 중국인 남자와의 만남과 그로부터 받은 종이꾸러미이다. 소설에서 이 중국인 남자는 분명하게 묘사되지 않고 있다. 어쩌면 ‘나’의 환상이나 착각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로 소설 속에서 모호하게 묘사되는 이 중국인 남자는 기실 소설의 줄거리만 본다면 그다지 필요 없는 인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 여성이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이성적 파트너를 필요로 한다고 볼 때, 중국인 남자는 ‘나’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자각을 위해 필요한 이성적 짝으로 설정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나’가 중국인 남자에게 받은 종이꾸러미를 빈 항아리 속에 넣은 직후에야 비로소 초조의 경험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통해서 설득력을 갖는다.

이처럼 「중국인 거리」는 ‘나’가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을 자각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러한 여성으로서의 성장과정은 대단히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나’를 둘러싼 여성인물들의 죽음과 어머니의 계속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나’에게 여성으로서의 삶이 매우 불행할 것이라는 것, 특히 임신과 출산은 곧 죽음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정희의 초기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모성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바로 이러한 육체적․심리적 성장과정에서 겪게 된 상처에서 기인했을 것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중국인 거리」는 오정희 초기소설에 나타나는 여성적 광기의 심리적 원천과 모성 거부 의식, 여성 성장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매기언니’를 통해서 본 미국적 자본주의의 두 얼굴 - 성적 욕망과 죽음

「중국인 거리」에서 인천이라는 도시공간은 중국으로 상징되는 낡은 것과 미군 지아이(GI)로 상징되는 새로운 것이 혼재하면서 부딪히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나’에게 낭만적인 과거 역사와 미지의 존재로 간주되는 중국과 중국인의 이미지는 환상 속에 사라져가는 낡은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미국문화는 ‘나’에게 끊임없는 매혹의 원천을 제공한다. ‘나’는 양공주인 매기언니를 통해 미국을 경험하는데, 매기언니가 집에 없을 때 ‘나’는 친구 치옥이와 함께 번쩍거리는 미제 물건들을 만져보면서 황홀해한다. 동네 사람들의 초라하고 불결한 살림살이와는 반대로, 매기언니의 방은 ‘미제’로 불리는 번쩍거리는 새 물건들로 가득하다. 예쁘고 맛있는 미제 물건 때문에, 미국은 풍요와 새로움의 대명사처럼 간주되며, 여자아이들이 동경하는 삶의 공간이 된다. 그 때문에 치옥이는 ‘양갈보’가 되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 소설에서 미국문화의 화려함과 풍요로움은 여자이이들의 성적 욕망을 일깨우며 그것을 얻기 위해 일탈되고 타락한 여성의 삶을 동경의 대상으로까지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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