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夜壺)
하근찬 지음 | -
야호(夜壺)
하근찬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갑 례: 홍싯골 윤생원네 맏딸. 애인 영칠이가 징용에 끌려가고, 자신도 정신대에 끌려갈 처지에 놓이자 정태석과 급박한 결혼식을 올리고 만다.
영 칠: 매사에 거칠 것 없이 당당하게 행동하지만 갑례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징용에 끌려갔다 돌아온 후 갑례가 딴 곳으로 시집을 가버린 사실을 알자 방황한다. 다른 여자에게 장가를 간 후에도 갑례를 못 잊어하며 찾아간다. 인민군에 강제로 입대한 후 도망쳐 갑례와 야반도주하지만 험난한 인생의 연속이다.
태 석: 갑례의 본 남편. 갑례와 결혼 한 후 부인을 아끼지만 징병영장이 나와 일본군에 입대한다. 해방 후에도 남북이 분단돼 귀향을 못하다 10년만에 반공포로로 풀려나 고향에 돌아온다. 그러나 갑례가 이미 영칠이와 살고 있는 상태였다. 갑례를 다시 받아들이기 위해 두 번이나 찾아간다.
윤생원: 갑례의 아버지. 홍싯골의 어른으로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다. 일본 식민지시대와 전쟁을 겪으면서도 홍싯골을 지킨다. 태석과 갑례의 관계를 유지시키려 노력하며 영칠이를 탐탁찮게 생각한다.
홍싯골의 평화로운 풍경과 공출, 그리고 징용
활동사진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활동사진이 들어온다는 소문은 다른 어떤 소문보다 빨랐다. 마치 바람을 타고 퍼지듯이 면내의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번져 나갔다.
면내에서도 아주 후미진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홍싯골에도 활동사진 소문은 흘러들어왔다. 홍싯골은 온통 감나무로 덮여 있는 마을이다. 동네뿐 아니라, 둘레의 산기슭도 감나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이름이 ‘홍싯골’이 된 것도 그래서였다.
갑례와 분임이도 활동사진을 구경하러 면내 학교를 향했다. 운동장 한쪽 가에 영사막이 마련되어 있었다. 입장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좌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운동장이 그대로 활동사진관이며 극장인 셈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 앉아 있는 군중 속에서 영칠이는 갑례를 찾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신파가 시작되자 갑례는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조심 구경꾼들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영칠이도 살짝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갑례는 그늘을 밟으며 교사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었다. 영칠이도 살금살금 그늘을 밟아갔다.
둘은 소변이 마려웠던 것이다.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갑례가 치마를 걷어붙이며 앉았다. 영칠이는 찔끔 웃으며 얼른 얼굴을 숨겼다. 이내 물소리가 들려왔다. 영칠이는 저도 얼른 고의춤을 풀어헤쳤다. 줄줄줄 교사의 벽에 대고 볼일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쪽의 물소리도 이쪽의 흐르는 소리도 도무지 그칠 줄을 몰랐다.
볼일을 끝낸 영칠이가 달려들어 덥석 갑례의 두 어깨를 안아버렸다. 그리고 얼굴을 갖다가 갑례의 검은 머리에 마구 문질러댔다. 갑례도 마냥 싫은 얼굴은 아니었다. 영칠이는 조끼 주머니에서 종이에 싼 것을 불쑥 꺼내어 갑례의 손에 쥐어주었다. 수를 짜는 색실을 갑례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렇게 갑례와 영칠이의 사랑은 싹텄다.
활동사진이 들어온 이후 마을에는 놋그릇 공출이 시작됐다. 1943년은 일본이 한참 대동아전쟁 중이어서 대포알과 총알을 만드는 데 쓰이는 놋그릇을 공출해간 것이다. 홍싯골 윤생원은 활동사진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좋지 않은 조짐이라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촌구석에 처박혀 사는 우리들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고, 일부러 찾아와서 공짜로 그런 것을 구경시켜 주겠느냐고, 그 뒤에는 다 꿍꿍이 수작이 도사리고 있는 법이라고, 담뱃대를 뻑뻑 빨아댔었다. 그리고는 놋그릇 공출이 시작됐다.
그런데 윤생원의 부인이자, 갑례의 어머니인 입실댁에게는 유독 아끼는 화접 무늬 놋요강이 있었다. 입실댁은 이 ‘꽃요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입실댁이가 열 일곱 살에 이 윤생원에게 시집을 올 때 입실댁이의 노모는 그 요강을 예단(禮緞) 상자 속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이 꽃요강은 나도 우리 어메한테 물려받은 긴데, 이바굴 들으니……”하고, 그 꽃요강의 유래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입실댁이의 외할머니의 아버지 되는 선조 한 분이 딸만 다섯을 두었다 한다. 그런데 그 딸들이 하나하나 시집을 가면 가는 족족 다 잘 끝을 보지 못하고, 소박을 맞거나 청상(靑孀)이 되거나, 아니면 단명하거나 했다는 것이다. 넷째딸까지 다 그렇게 실패를 본 노인은 막내딸만은 그런 액운을 면하게 하는 도리가 없을까 탄식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사랑에 과객이 들었다. 알고 보니 놋갓장이였다. 노인은 그 놋갓장이와 하룻밤을 지내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눈 끝에 박복한 자기 딸들 이야기를 하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랬더니 그 놋갓장이는 잠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그게 다 남녀의 음양이 맞지 않아 그런 것이라고 하며, 시집보낼 때 요강에 꽃과 나비를 무늬놓아 가지고 보내보라고, 그러면 아마 액막이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막내딸, 즉 입실댁이의 외할머니는 그 꽃요강을 가지고 시집을 갔다는 것이다. 그래그런지 모르지만, 아무튼 아들딸 많이 낳고 잘 끝을 보았다는 것이다. 입실댁이는 머지않아 갑례가 시집을 가게 되면 소중히 그 꽃요강을 물려줄 참이었다. 그래서 윤생원의 꽃요강과 놋그릇, 유기 등을 마을 감나무 밭 가운데 파묻었다.
홍싯골에는 꺼꾸리라는 명물이 있다. 꺼꾸리는 어느 몹시 흉년든 해 혈혈단신으로 홍싯골에 흘러들어온 성도 이름도 없는 아이였다. 그는 이 집 저 집 부엌강아지처럼 굴러다니며 자랐다. 한해 한해 지내다 보니 그는 조금 모자란 반편이었다. 물구나무서기를 잘해서 꺼꾸리인 그는 서른이 된 지금까지 홍싯골을 오가며 마을일을 거들며 살고 있었다. 활동사진 소문이나, 유기공출, 혹은 징용에 관한 소문을 면에서 물고 오는 것도 항상 꺼꾸리였다.
일전의 유기공출은 처음 일이었으나 징용은 몇 차례 겪은 터였다. 너댓 사람이 이미 북해도나 만주로 끌려가 탄광 같은 데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 또 두 사람에게 징용통지서가 나왔다고 해서 크게 놀랄 것은 없었다.
징용통지서는 갑례의 오빠 두원이와 영칠이에게 날아왔다. 홍싯골이 들썩했고 친구 사이인 영칠과 두원이는 매일 술판을 벌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두원이는 이미 결혼해 부인 순례를 두고 있지만 영칠이는 사랑하는 갑례를 두고 떠나야 하는 처지다. 영칠이는 이대로 떠나기에는 너무도 억울해 떠나기 며칠 전 몰래 갑례를 찾아가 불러낸다.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감나무 숲에서 마주한다. 그 때 영칠이는 갑례를 불끈 끌어안으며 그 덧니를 향해 뜨겁게 다가갔다. 훅 - 술내가 육박해 오자 갑례는 찡그리며 고개를 틀려고 애를 썼다. 서로 관계를 맺은 후 갑례가 훌쩍훌쩍 느껴울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이때 영칠이는 갑례에게 다그쳤다. “나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댄대이. 어디로 시집가만 안댄대이.” “시집은 무슨 시집을 가, 얄궂대이.” 영칠이와 두원이가 떠나는 날 아침은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오던 즈음, 홍싯골은 또 다시 파문에 휩싸인다. 여자 공출 소문이 나돈 것이다. ‘테이신타이’라고 하는 ‘정신대’를 각 마을마다 배당해 끌고가는 것이다. 여자들의 징용인 셈이다. 그런데 홍싯골에서는 ‘윤갑례’와 ‘최분임’이름으로 종이가 한 장씩 날아왔다. 윤생원은 갑례를 정신대에서 빼내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지만 허사였다. 결국 정신대가 출발하는 날 갑례와 분임은 안개 낀 아침에 마을을 떠나 면사무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날 새벽 갑례는 일본군인들에게 몸을 대주기 위해 정신대를 모집했다는 사실을 알고 기차에 오르기 바로 전 탈출해 집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한다. 윤생원과 입실댁이는 갑례를 평촌에 있는 고모집으로 빼돌리고 갑례의 혼례를 서두른다. 정신대는 미혼자를 대상으로 했기에 서둘러 갑례의 혼례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 윤생원의 생각이었다. 평촌 정씨 문중의 종가집 외아들인 태석과 갑례의 혼례는 양가가 서두르는 바람에 일사천리로 처리되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태석이네도 그저 덮어놓고 좋다는 식으로 혼인을 서둘렀다.
영칠과의 이별 후 태석과 결혼하는 갑례
혼례식이 시작된 것은 해가 거의 중천에 왔을 무렵이었다. 사모관대로 차린 신랑이 목안(木雁)을 들고 나타나자 마당을 메우고 서서 떠들어대던 구경꾼들이 조용해졌다. 담 너머로는 큰아기들이 다투어 목을 뽑아올리고 있었다.
갑례에게 시가(媤家)는 모든 것이 서먹서먹하고 얼떨떨한 곳이었다. 시아버지 정참봉은 점잖은 노인이었다. 우선 수염 분량부터 친정아버지보다 많고 윤기가 흘렀으며, 글도 꽤나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역시 친정부모에 비길 성질이 못 됐다. 이렇게 서먹서먹하고 얼떨떨한 가운데 갑례의 시집살이는 시작됐다. 그러면서도 갑례는 가끔 영칠이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이곳 평촌은 바로 영칠의 외가가 있는 지방이기도 했던 것이다.
갑례는 점차 신랑 태석에게 매료당해 간다. 갑례가 남몰래 구역질을 하기 시작한 것은 시집온 지 불과 두 달도 못되어서였다. 갑례가 임신했다는 것을 안 태석이는 몹시 멋적고 쑥스러웠으나, 싫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갑례를 끔찍이 위하는 것이었다. 갑례의 배가 남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도 몇 달 뒤의 일이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엔 제법 아랫배가 도도록했다. 그런데 갑례의 귀에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태석이는 씨를 받아 놓아서 안심이지”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태석이 앞으로 징병영장이 날아온 것이다. 갑례는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자기가 이 집에 시집을 온 것은 군대에 나갈 아들의 종자(種子)나 받으러 온 것이란 말인가. 이 집의 자손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무엇에 속은 것만 같았다. 남편 태석이 떠나던 날 갑례는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비벼댔다. 혼자 아기를 낳아서 키울 생각을 하니 별안간 설움이 복받쳤다. 복례는 울었다. 그렇게 태석은 떠났다.
갑례의 집에는 마서방이라는 머슴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픔이 있었다. 몹시 흉년이 든 해 여편네를 잃어버리고 아들도 잃어버린 것이다. 가을이 끝나면 마음을 걷잡지 못하고 어디론지 떠나가는 마서방의 그 남다른 버릇은 그때부터 비롯됐다. 이런 마서방이 갑례를 위해주며 딸같이 대해주는 것이었다. 갑례는 마서방에게 시댁식구들과는 다른 따뜻함을 느끼곤 했다. 갑례가 해산하러 친정길에 오를 때 따라나선 것도 마서방이었다. 마서방은 홍싯골에 들어오는 초입에서 꺼꾸리를 만났다. 여기서 갑례는 마서방과 꺼꾸리가 예사관계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갑례가 진통을 시작한 것은 친정에 온 지 열흘 가까이 지나서의 일이었다. 갑례는 오랜 초산의 진통 끝에 아들 상용이를 낳았다. 그해 여름 윤생원은 이미 갑례가 아들까지 낳은 상황에서 주재소 구류간에 끌려가 고초를 겪는다. 딸을 정신대에 보내지 않고 빼돌려 시집을 보냈다는 것이 죄목이다. 모진 고문을 당하는 와중에 주재소 분위기가 갑자기 변했다. 해방이 된 것이다. 위기절명의 순간에서 해방을 맞은 윤생원의 감회는 남달랐다. 해방이 됐다는 소문은 한낮 여름 햇볕 아래서도 순식간에 마을에서 마을로 물결쳐 나갔다. 그것은 뜨거운 파도 같은 것이었고, 또 커다란 소용돌이와 같은 것이었다. 활동사진이 들어왔다는 그런 소문과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만세” “만세”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 만만세”. 홍싯골에도 여느 마을 못지 않게 농악이 구성지고 멋들어지게 울려댔고 술도 풍성풍성하게 마셔댔으며, 만세도 목이 터져라고들 불러댔다. 누구보다도 신이 나는 것은 꺼꾸리였다. 해방이 무엇인지, 대한독립이 무슨 말인지 알 턱이 없는 그였지만, 오히려 단순하고 뜨거운 피는 그런 반편이에게 더 흐르고 있는 모양인지, 온통 신명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징용 갔던 사람, 마을을 떠났던 사람도 하나 둘씩 돌아왔다. 만주 가 있던 난봉꾼 최서방이 가장 먼저 돌아왔고, 다음으로 갑례 오빠 두원이가 돌아왔다. 갑례도 행여 남편 태석이가 돌아오나 해서 읍내로 나갔다가 뜻밖에도 징용에서 돌아오는 영칠이를 만났다. 영칠이는 갑례가 이미 결혼해 아들 상용이를 안고 있는 것에 분노하고, 갑례는 피하듯 도망쳐 다시 평촌으로 돌아왔다.
홍싯골에 돌아온 영칠은 갑례를 못 잊어 술에 취하기만 하면 추태를 부렸다. 갑례는 자기 마누라라는 둥, 갑례가 낳은 아들이 자기 아들이라는 둥 제멋대로 뇌까리는 것이다. 심지어는 윤생원에게 장인어른이라고 말했다가 호되게 야단맞기까지 했다. 드디어 영칠이는 갑례를 만나러 평촌에까지 쳐들어갔다. 영칠이는 몰래 갑례를 만나 함께 도망치자고 했다. 그러나 이미 아들까지 낳고 남편 태석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갑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와중에 갑례의 어머니 입실댁이는 병으로 숨을 거두고 남편 태석은 해방이 되었는데도 돌아올 줄을 모른다. 갑례의 한숨은 쌓여만 가고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애달프다. 갑례는 종전보다 더욱 짙은 한숨과 눈물의 독수공방을 하는 몸이 됐다. 그런 허전하고 쓸쓸한 공방에서 상용이를 안고 지내는 갑례는 그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어느덧 자신을 자신이 달래는 체념이라는 것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었다. 남편이, 추측하는 대로 북지나나 만주 방면에 가 있었다면 어쩌면 이제 살아 있어도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몸이 돼버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서글픈 공방 윗목에는 그녀의 허전함과 쓸쓸함을 지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언제나 꽃요강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꽃요강도 주인처럼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불타는 정자나무와 전쟁
홍싯골의 분신과 같은 정자나무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 윤생원의 얘기에 의하면 아주 오래된 고목나무의 둥지 속에서 절로 불이 생기는 수가 있는데, 그러나 좀처럼 드문 일로, 시세의 이변을 알리는 흉조라는 것이었다. 아주 흉년이 들거나 큰 물난리가 나거나, 아니면 괴질이 돌아서 사람의 목숨을 수없이 앗아가거나 한다는 얘기였다.
홍싯골 마을 앞의 두 아름 가까이 되는 느티나무가 원인모를 불이나 타 버린다. 이 나무는 홍싯골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덩어리로 얽힌,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마을 사람들은 정자나무의 불과 함께 곳곳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에 불안해한다.
영칠이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장가를 들었다. 어머니가 혼자서 집안 치다꺼리를 해나가느라고 고생이 많으시다는 생각도 들어, 아따 모르겠다, 어머니 좋을 대로 하자 하고, 색시 선도 보지 않고 응낙을 해버렸다. 일종의 자포자기였다. 그후 3년 동안 영칠이는 아내와 무던히 으르렁거렸다. 영칠이의 아내는 보따리와 함께 친정으로 쫓겨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갑례의 남편은 해방된 지 5년이 지났는 데도 종무소식이다. 갑례는 거의 포기상태에 이르렀고 오직 상용이를 보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홍싯골 정자나무 앞에 정자를 짓는 공사가 한참일 때 난리가 터졌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전세는 기울어져 드디어 인민군이 내려왔다. 세상이 뒤집혔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빨갱이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홍싯골에 들어온 인민군은 의용군을 모집한다. 강압에 못이겨 제비뽑기에 의해 세 명의 젊은이가 떠났다. 바로 거기에 영칠이가 포함되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당장 그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었다. 집에 들러 옷이라도 갈아입을 틈도 주지 않았다. 분주소 사람은 어느 새 총을 벗겨 두 손으로 불끈 거머쥐었다. 일제 때, 징용으로 끌고 갈 때도, 테이신타이(정신대) 혹은 징병으로 끌고 갈 때도 며칠 전에 통지를 해서 준비를 하도록 여유를 주었는데, 이건 어디 들녘의 짐승이라도 잡아가듯이 숨돌릴 여유도 주지 않고 당장 몰아세우는 것이다. 영칠이를 비롯해 끌려온 의용군들은 폭격을 피해 밤에 강행군을 거듭해 낙동강 전쟁터에 이르렀다. 처음 전쟁터에서 시작한 일은 죽어서 나둥그러진 시체를 찾아 총을 비롯해서 수류탄․소총실탄 같은 것을 긁어모으는 것이었다. 이렇게 무장을 끝낸 부대가 최전방으로 이동하는 순간 영칠이는 미군이 폭격하는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한다. 영칠이는 홍싯골로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외가가 있는 평촌으로 몸을 피한다. 마음 한편에는 갑례가 있는 곳으로 피하자는 생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