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김동리 지음 | -
바위
김동리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술이 아버지: 가난한 농부. 문둥이 아내에 대한 연민으로 괴로워하지만 결국 아내를 버리고 만다.
여인(술이엄마): 천형을 얻어 가족과 어쩔 수 없이 헤어지지만 아들과의 재회를 소망하며 불행한 삶을 견딘다. 소설의 주인공
술이: 문둥이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길 소망했던 아들
문둥이 여인의 소망
읍내에서 가까운 큰 다리(인도교) 밑 모래밭 위에는 한 떼의 병신과 거지와 문둥이들이 웅숭그리고 있다. 그러나 병신과 거지들은 윗머리에, 문둥이들은 아랫머리에, 각각 떨어져 자리잡고 있다.
늙은 거지들과 병든 이들만의 신음소리만이 가득한 다리 밑, 나병 든 사람들은 모두 잡아간다는 소식에 문둥이들의 마음은 스산하기만 하다. 기러기가 울고 가을은 깊어만 가는데 다리 밑 거지들과 병자들의 생활은 언제나 고통 속에 계속되기만 하는 것이다. 내일의 양식조차 보장할 수 없는 그들에겐 어떡하면 지금의 배고픔만을 면할 수 있을까, 또 앞으로 닥쳐올 추위는 어떻게 견딜까 하는 속된 걱정만이 앞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불행할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사무치는 법. 한 늙은 문둥이가 혼잣말처럼 내뱉은 ‘가족들 구경’이란 말은 한 여인의 가슴을 흠칫 놀라게 한다.
이들 중 제일 신참인 이 ‘여인’의 머리 속엔 아까부터 자신의 몹쓸 병으로 인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들 술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나를 잊어뿌리지는 안했지러.’ 여인은 설마 아들이 자신을 잊지는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자신이 병에 걸리기 전 얼마나 성실했던 아들인가, 아들은 문둥병에 걸린 어미 때문에 장가가려고 피땀 흘려 모은 새경을 고스란히 자신의 병수발에 쏟아붓기까지 하였다.
그녀는 다리 밑을 떠나 아픈 몸을 겨우 이끌고 어디론가 홀린 듯 걸음을 옮긴다. 병으로 인해 온전한 걸음을 걸을 수 없는 그녀가 다리를 건너 어둠 속을 응시하며 나아가는 곳은 건너편 산기슭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찾아간 산기슭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며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여인은 바위에 올라가 손돌을 찾아 손에 꼭 쥔다. 그리고 그 손돌로 열심히 바위를 문지르기 시작한다. 손돌이란 바위를 가는 차돌멩이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 돌로 바위를 문지르다 이것이 붙으면 소원이 성취되는 것이라고, 그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전설이 깃든 바위에 올라 온 힘을 다해 바위를 문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위를 갈면서 그녀는 단 하나의 소망만을 절실히 빌고 또 빈다. 그 소망이란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나병을 고쳐달라거나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아 달라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녀의 소망은 다만 자신의 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던 아들을 다시 한번 만나보는 것이다. 이 소박한 소원을 빌기 위해 문둥이 여인은 끼니도 거른 채 정성껏 손돌을 바위에 갈고 또 간다. ‘천지신명 우리 신주님 아들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왜 하필 자신이 이 같은 천형을 겪어야만 하는지, 왜 동네사람들과 남편이 자신을 버렸는지 원망조차 하지 않는다.
천형(天刑)을 얻은 채
여인이 예 살던 동네를 떠나 온 것은 그 해 봄이었다. 그 때까지는 동네 뒤에 외따로 지어진 움막 속에서 혼자 지내왔던 것이다.
이 ‘여인’에게도 한때 가족이 있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밭을 가지고 있었던 남편과 남의 집 머슴살이로 전전하지만 꼬박꼬박 새경을 모으는 성실한 아들 술이가 있었다. 아들 술이는 남의집살이를 하면서도 목돈을 모아 장가를 가려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던 성실한 청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미가 천형이라는 그 무서운 문둥병을 앓게 될 줄이야.
문둥병을 치료할 변변한 약도 없던 그 시절, 전염을 두려워한 마을 사람들이 술이 어미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그 후로 그녀는 마을에서 쫓겨나 동네 뒤쪽에 허름한 움막을 짓고 그 곳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움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얼마동안은 그런 대로 살 만했다. 남편과 아들은 그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좋다는 약과 음식은 모두 구해가며 애를 쓴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병은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아들은 지금까지 푼푼이 모았던 새경을 모두 어미의 약값으로 탕진하고 얼마 안 남은 돈마
저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도박과 노름으로 탕진해 버린다. 무엇보다 아들인 술이를 괴롭히는 것은 문둥이 아들이라는 동네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이었다. 결국 술이는 집을 나와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들을 잃은 그녀의 남편은 점점 난폭해진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듯 남편은 이제 그녀에게 먹을 것 하나 제대로 챙겨 주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술이 취하는 날이면 움막을 찾아와 빨리 죽으라는 독설과 함께 그녀를 폭행하는 것이다. “이 빌어묵을 놈의 원수야, 그만 자빠져 주라문.” 남편의 욕설과 폭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하루는 남편이 찰떡뭉치를 들고 움막을 찾아온다. ‘여인’에게 한동안 그녀를 찾지 않은 남편에 대한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찰떡을 먹으려는 순간, 일그러진 그녀의 낯은 더욱 창백해진다. 떡 위에 묻혀진 비상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럴 바에야’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비상이 든 떡을 말없이 받아먹는다. 그녀에겐 더이상 병을 준 하늘이나 자신을 죽이려 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조차 일지 않는다. 그녀는 더이상 고단한 삶을 이어나갈 여력이 남아 있질 않았다. 그녀는 마치 자신 앞에 놓여진 불행한 운명에 무릎 꿇듯 담담히 비상이 든 떡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그 순간 닭 울음소리와 함께 떠나간 아들 술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이었다. ‘아들을 만나야지.’ 술이에 대한 그리움은 이미 목구멍까지 넘어갔던 비상이 든 떡을 토하게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이지만 이제 그녀에게도 해야할 일이, 그리고 이뤄야 할 삶의 목표와 희망이 생긴 것이었다.
복바위의 영검
동네를 떠난 여인은, 발길이 닿는 대로 낯선 거리와 동네를 날이날마다 헤매어 다녔다. 그녀가 이렇게 무거운 다리를 이끌며 날이날마다 거리와 동네를 헤매는 것은 그냥 먹을 것을 빌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도 혹시나 아들을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쪽이 더 많은 자리를 그녀의 마음속에서 차지하고 있었다.
결국 여인은 정든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나 하물며 살을 맞대고 살았던 남편조차 여인이 마을에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이 마을 저 마을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하지만 여인이 동네를 떠돌아다니는 것은 먹을 것과 잠자리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떠돌아다니다가 혹여 아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그녀는 병을 얻고 난 후 사방을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을 버린 남편이나 그밖에 모든 세상 인연에 대해 초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들인 술이에 대한 그리움은 병이 깊어질 수록 더해만 가는 것이었다. 그녀가 정들었던 고향 마을을 떠난 후 방랑생활을 계속하면서도 길마재 밑 산기슭을 쉽게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길마재 밑 산기슭에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복바위(원바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같은 병의 환자로부터 이 바위의 영검과 위치를 알게 되었는데 복바위를 손돌로 갈다가 그것이 바위에 붙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바위와 가까운 다리 밑을 그녀의 거처로 삼는다.
하지만 이 같은 소문은 이미 세상에 퍼져 있어 이를 듣고 소원을 빌기 위해 찾아온 이들로 바위는 항상 붐볐다. 제각기 불행을 안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복바위에 올라 손돌로 바위를 갈면서 자신의 소원을 빌었다. ‘아기를 가지지 못한 사람, 몹쓸 병이 든 사람, 남편의 소식을 모르는 사람, 너무 가난해서 자식을 성취시키지 못한 사람’ 등 별의별 불행을 가진 사람들이 바위를 갈면서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여인은 남들처럼 마음놓고 바위에 올라 자신의 소원을 빌 수 없었다. 몹쓸 병을 앓고 있는 그녀가 영험한 바위에 가까이 가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밝은 때는 피하고 사람이 드문 어둔 밤을 이용해 바위에 올라야만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바위를 갈고 있지 않을 때는 항상 바위는 그녀의 차지였다. 그녀는 바위가 비는 날이면 하루고 이틀이고 식음을 전폐한 채 바위에 매달렸다. 복바위가 그녀가 머무는 다리 밑과 가깝기도 했지만 그만큼 아들과 만나야겠다는 소망이 컸기 때문이다.
잊지 못할 아들과의 상봉
그렇게 이레째 되던 날 새벽이었다. 손돌이 붙었던 것이다. 여러 날 동안 거의 굶다시피 한 위에 밤새움을 해서 허기가 졌기 때문이었는지. 돌이 바위의 작은 요철면에 걸렸는지, 그녀의 손에서는 돌이 바위에 붙은 거라고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여러 날 동안 굶다시피 하여 바위를 간 끝에 그녀의 기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손돌이 바위에 붙은 것이었다. 손돌이 정말 바위에 붙었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다음날 그녀는 거짓말처럼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만나게 된다. 구걸을 하러 시장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아들과 맞부딪치게 되었던 것이다.
혼잡한 시장을 떠나 호젓한 산길에 나란히 앉은 어미와 아들은 서로 반가움을 금치 못한다. 둘은 서로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간단한 안부만을 물어볼 뿐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잇지 못한다. 아들은 아비인 ‘여인’의 남편 또한 고향마을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하고 그를 찾아보려 한다는 말을 한다. 여인은 이 같은 말을 하는 아들이 그렇게 든든하게 여겨질 수가 없다. 또 술이는 돈을 벌면 꼭 다시 찾아와 함께 살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한다.
하지만 어느덧 짧은 만남은 아쉽게 끝나고 그들은 또다시 헤어져야만 할 시간이 되었다. 여인은 헤어지면서 자신이 사는 곳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다. 행여 아들에게 짐이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인에게는 이렇게 헤어져도 복바위만 갈고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자신도 모르게 밀려들었던 것이다. 또한 평소에 아들을 만나면 부탁하려 했던 움막이야기도 꺼내놓질 못한다. 만약 움막을 장만하지 못한다면 병든 그녀는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살 곳도 마련해 두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 석냥 반(칠십전)을 모두 꺼내 어미의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떠도는 신세인 그도 자신의 거처를 알려주지 못한다. 아들은 어미의 소재 또한 물을 수도 없다. 술이는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술이는 어미가 사는 곳이 다리밑 어디께쯤이라고 짐작만 할 뿐 꼭 다시 만나리라 다짐만을 뒤로 한 채 어미를 두고 또다시 정처없는 길을 떠난다.
아들이 떠난 후 술이 어미는 또다시 복바위를 정성껏 갈기 시작했다. 복바위의 영험함이 또다시 아들을 만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바위를 갈면 언제든 다시 만날 줄 알았던 아들을 ‘여인’은 이후 다시는 만나질 못한다. 그녀는 전에 만났을 때 자신이 살던 곳이나 확실히 가르쳐 줄 걸, 아니면 술이의 소재를 확실히 물어둘 걸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녀에게 기댈 곳이라곤 복바위 밖에 없었다. 그녀가 마지막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복바위를 갈고 또 가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고삐가 길면 잡힌다고’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바위를 갈던 ‘여인’은 마을의 동장 아들에게 들키고 만다. “안 내려가믄 끌어내룰 거다이.” 동장 아들을 비롯한 마을의 젊은이들은 병든 그녀의 몸에 새끼줄을 걸고 그녀를 바위에서 떼어내어 길거리에 질질 끌고 다닌다. ‘여인’의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정신을 잃을 무렵에야 그녀는 풀려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마치 더러운 오물이나 붙어 있었던 것처럼 바위를 씻고 또 씻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같은 봉변을 당하고도 결코 삶의 끈을 놓으려하지 않는다. 그녀는 아들이 준 돈을 가지고 움막을 짓는다. 그녀는 산기슭에 자리잡은 남의 밭 한 구석을 몰래 차지하여 움막을 짓고 이 곳에서 겨울을 나리라 작정을 하였다. 그녀에겐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어느덧 밭주인은 어떻게 알았는지 움막 밖에서 불을 지르겠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쳐댔다. “오늘이라도 댕강 뜯어 내지 않으면 불을 놔버릴 거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여인은 언제든 밭 임자가 나타나 어렵게 지은 움막을 불태울까 두려워 움막을 떠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양식이 떨어지고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장터로 나가는 길에 여인은 복바위 앞에 선다. 복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녀는 전에 당했던 봉변 이후로 바위에 오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오를 수 없는 바위가 더욱 숭고하고 신령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시장에 당도한 여인은 아픈 다리와 허기진 배를 이끌고 평소 자주 구걸하던 식당을 찾아간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간 식당엔 마침 평소에 자신을 동정하던 안주인이 자리를 비운 후였다. 여인은 일이 꼬이길 시작했다고 생각하며 다른 곳으로 구걸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장을 모두 돌고 난 이후에도 그녀의 바가지엔 겨우 ‘식은 밥 두어 덩이와 먹다 남긴 콩나물과 김치, 그리고는 두부 조각, 조깃대가리, 북어꽁지 따위’가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주었던, 움막을 짓고 남은 돈이 생각났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묵을 한 모 산다. 마치 마지막 식사를 차리는 사람처럼. 그리고 천천히 장을 나와 아들과 눈물의 재회를 했던 그 산길을 찾아간다.
그녀는 그곳에서 전에 아들과 만났던 일을 회상하며 바가지의 것을 먹기 시작했다. 여인이 바가지의 것을 다 먹고 움막으로 돌아올 때쯤엔 이미 저녁놀이 온 천지를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힘든 걸음을 옮겨 장승배기 마을 앞을 지나 바위가 있는 산기슭을 향하여 나아갔다. 하지만 바위 앞 다리를 건널 때쯤 그녀는 어지러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바위에 올랐다 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당한 봉변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허기진 배에 갑자기 먹을 것이 들어가서인지 그녀는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바위를 안고
바위 위로는 싸늘한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이 이 바위 곁에 모이었다. 그들은 모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더러운 게 하필 예서 죽었노." "문둥이가 복바위를 안고 죽었네." "아까운 바위를 ……." 바위 위의 여인의 얼굴엔 눈물이 번질번질 말라 있었다.
그녀가 장으로 먹을 것을 구걸하러 잠시 움막을 비운 사이 밭 임자가 나타나 움막에 불을 질러버린 것이었다. 활활 불타오르는 움막을 보고 그녀는 더이상 나아갈 힘이 없음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바위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쓰러지면서도 바위를 끌어안았다. 이제 불행했던 자신의 삶을 걷어가 달라는 듯이.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바위를 안은 채 그녀는 죽음을 맞이했다.
이튿날 아침 역마을 사람들이 복바위 곁에 모였다. “더러운 게 하필 이 위에서 죽었노.” “문둥이가 복바위를 안고 죽었다이.” “아까운 바윈데……” 그들은 모두 얼굴을 찡그리거나 침을 뱉으며 말했다. 여인의 검은 얼굴엔 눈물이 번질번질 말라 있었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운명에 순응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작품
‘바위’의 주인공인 술이 엄마는 천형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버린 남편은 물론 큰 잘못도 없는 자신에게 문둥병이란 치명적 병을 준 하늘에게조차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견 바보스럽게까지 보이기도 하는데 그녀의 이 같은 운명순응적 태도는 작가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