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식
이제하 지음 | -
초식
이제하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서광삼: 아버지. 직업이 얼음 도매 운반인. 식구들의 힐난에도 아랑곳없이 국회의원 선거에 세 번째 출마를 선언한다. 출마를 선언하고 나면 채식을 하는 기묘한 습관이 있다.
조문제(趙文濟): 호 숙당(淑堂), 중학교 한문 선생, 부친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인물이다.
모친: 교회의 권사. 아버지의 출마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최씨: 보따리 장수. 부친의 죽마고우. 합동 유세장에서 결정적인 난동을 일으키는 장본인이다
채식, 힘겨운 세상에 맞서기
세 번째 출마를 위해 부친이 채식(菜食)을 시작하자 미구에, 우리집은 예의 그 선거 참모들로 또 붐비기 시작하였다.
아버지가 세 번째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다시 채식에 들어가자, 아버지의 선거 참모를 자청하는 삼촌, 숙모, 외할머니, 오촌 당숙들과 친척의 친척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부친의 선거전의 승패에 충심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었으며, 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같은 것을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 선거때 모두 한꺼번에 집에 들이닥쳐 있는 것 없는 것 죄 먹어치우고, 온 집안의 벽지엔 낙서를 새겨 넣고, ‘서광삼 무표’라는 개표 방송을 들으며 통곡을 했다.
그리고는 부친의 유일한 유세 도구인 자전거마저 망가뜨리고서야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충동적으로 뛰어들어 같이 판을 벌이는 무수한 군중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부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상이 만든 한 바탕 난장판에 뛰어들어 자기들의 식성을 채우고자 하는 굶주린 대중들이었다.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당선이 틀림없으며, 못해도 3위 이상은 되지 않겠느냐고 떠들었다. 부친은 첫 번 출마에서는 뒤에서 두 번째, 두 번째는 꼴찌로 낙선을 했었다.
내가 소학 4년 때, 첫 출마를 했는데, 그때 부친은 등받이를 떼어버린 얼음 운반용 자전거에 도시락 두 개와 ‘서광삼 기호 1번’이란 깃발 하나를 매달고 첫 유세에 나섰다. 텅 빈 부두의 바람받이 창고 앞 공터 저쪽을 향하여 시국의 절박함을 부르짖었다. 핸드볼을 하던 노동자의 새까만 아이들 몇 만이 이쪽을 바라보다 곧 도망쳐 버렸다. 체면 불구하고 부친이 출마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이 속해 있으면서 그렇게나 미워하던 한 세계가 머지않아 붕괴하리라는 희미한 예감의 공포 앞에 떨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부친은 나름대로 붕괴하는 한 세계의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부친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숙당 조문제 선생의 말을 빌면 부친의 출마는 부친이 젊었을 때 글깨나 좀 읽었다는 탓이며, 모든 난점은 흐르는 세월이 심판해 준다는 것이었다. 조문제 선생은 중학교 한문 선생으로 시의 언덕바지에 살고 있었다.
국회의원에 대한 꿈이나 그 준비라 할 수 있는 ‘채식’ 같은 방법은 성경의 구약「다니엘서」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다니엘서」는 학대받는 어느 민족의 이중삼중인 설움의 메시지다.
부친은 그 자신만이 아는 그 무엇인가를 믿고 있는 듯은 했지만 부친 자신 평생 절이나 교회를 다닌 적도 없고, 집안에 종교에 관계되는 물건도 당신 눈앞에서는 두지 않았으므로 부친이「다니엘」을 읽었으리라는 추측이 쉽게 되진 않지만 부친은 유세장에서 ‘다니엘’의 절규와 꼭 같은 말, “나를 사자 아가리에 처넣어보시오 ! 펄펄 끓는 불 속에 나를 콱 던져보시오 ! 내한테 어디 평생 풀만 먹여보시오 ! 끄떡도 안 할 것이오.”라고 소리 지르곤 했다.
이번에도 부친은 가족들에게 출마를 선언하면서 밥상에 놓인 도미구이 접시를 밀어놓고, 시금치 접시에 젓가락을 갖다댔다. 그것이 신호였다. 누이와 나는 또 홍역을 치르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고통스러웠던 것은 낙선 뒤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이 아니라 주위의 반응에는 아랑곳없이 여전히 늠름하고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부친의 배짱에 있었다. 부친은 그 어떤 상황에도 고고한 모습을 보였으며, 서너 달의 채식으로 얼굴엔 홍조가 돌고 눈은 반짝였다. 그 누구도 부친을 얼음 도매 운반인이라고 얕잡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새벽마다 역으로 유세를 하러 달려간다 한들 이상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모친은 애매한 태도를 보였는데, 오히려 아버지의 출마로 주눅이 든 것 같았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종교 문제로 항상 다투었지만 이러한 어머니의 애매한 태도 또한 할머니가 싫어한 것은 분명했다.
찢어진 선서벽보와 아버지의 채식중단
날뛰는 주객전도의 광란 속에서 머지않아 합동유세의 날이 오고, 거기서 일어난 뜻밖의 작은 사건 - 부친의 최씨와의 해후 - 으로 이 양양하던 입후보자는 허리가 반으로 접혀, 드디어 백팔십도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기묘한 사태가 벌어지고야 만다.
날씨가 맑은 일요일, 부친과 나는 모든 친척 참모들을 남겨두고 출발했다. 부친과 나는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달렸다. 부친은 할 수 있는 한 힘껏, 멀리멀리 달아났다. 바다의 끄트머리에 멈추었다. 거기서 우리는 몇 시간이고 경치를 감상했고, 썰물 뒤에 바위 틈서리에 매달려 있는 해삼 새끼 몇 마리를 보았다. 부친은 그 해삼을 보며 ‘굉장하다’고 감탄했고, 뭔가 영감을 얻은 듯이 얼굴에는 거듭 낙선해도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듯한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등록의 까다로움, 무소속의 굴욕, 사꾸라의 모략, 도야지 같은 관리 나부랭이들의 추잡 등 많은 하찮은 사건이 유세기간 동안 일어났고, 틈만 나면 부친은 바다로 도망쳤다. 부친에게 물은 굴욕과 용기, 자존심을 모두 씻어주고 세워주는 커다란 손이었다. 고비로 접어들자 선거는 협잡, 중상모략, 테러 등 난장판이 되어갔다.
합동유세장에서 부친의 죽마고우인 최씨가 옷보따리를 펼쳐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부친은 그를 보자 표정이 굳어졌고, 최씨 또한 계면쩍은 듯했다. 부친은 고개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는데, 얼마 안가 다시 최씨에게로 와 물건값을 물어 보았다. 그러자 최씨는 자신의 물건이 진짜 구제품이 아니라 가짜라고 우기기 시작했고 부친은 ‘진짜이며 괜찮다’고 또한 우겨대기 시작했다. 부친으로부터 모욕을 받은 최씨는 유세 도중 돌팔매질을 했다. 돌이 부친 곁에 앉아 있던 입후보자를 맞추자, 부친은 연단을 내려와 그를 향해 내달렸다. 둘은 한참이나 쫓고 쫓기고 하다가 마지막에 둘 다 퍼질러앉아 둘만이 아는 여자 얘기를 하는 듯했다.
최씨는 부친에게 그 여자가 죽기 전 자기보고 ‘당신뿐이라고’ 했다고 하면서 셔츠를 열어 가슴의 상처를 내보였다. 그러자 부친은 이를 갈고는 고개를 떨구었고, 최씨는 유유히 사라져갔다. 돌아오는 길에 부친은 자신의 선거 벽보를 찢어 버렸고 이후 채식을 중단하였다. 부친이 채식을 폐하자 친척 참모들은 왕성한 육식성을 드러냈다. 그것은 계면쩍다기보다 더러운 광경이었다. 부친은 광속에 자전거를 처박아둔 채 운신을 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물어뜯어 쓴 풀 초(草)자의 의미
부친은 62세였다. 보름 남짓을 앞에 둔 선거일이 빨리빨리 지나갔다. 서광삼 무표, 서광삼 무표, 서광삼 무표 … 그 동안 단 하루, 부친은 밖을 나갔을 뿐이다.
부친은 나를 데리고 걸어서 변두리 언덕 위에 있던 도살장에 갔다. 부친은 ‘서광삼 기호 3번’의 플래카드 광목을 어깨에 두르고는 도수장 정문을 두드려 주인을 찾고는 주인 앞에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부친이 말하는 도중에 주인은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부친으로서는 육식성을 지닌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고기를 공급하는 도수장의 주인을 설득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한 식경이 지난 뒤 부친은 다시 문을 두드렸으나 문은 열리는가 하더니 곧 닫혀 버렸다.
4.19가 터졌을 때, 부친은 여전히 네 번째 출마를 생각한 듯했다. 그런데 4.19 당시 데모대의 앞장에 서서 경찰서장의 따귀를 갈기러 간 사람이 부친이라는 소문은 잘 못된 것이었다. 그 사람은 조문제 선생이었다. 그는 따귀 한 번으로 모든 진상을 파악하고 맥이 빠져 버린 듯했다. 그 길로 낚시질을 가버렸던 것이다.
60년 4.19가 터진 뒤 부친은 의심쩍은 듯이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닷새가 지난 날 저녁에 나를 데리고 3년 전 갔던 도수장으로 다시 갔다. 주인이 나오자 부친은 품에서 광목 한 폭을 꺼내 땅에 펴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더니 손가락 하나를 물어 끊고 광목 위에 풀 초(草)자를 썼다.
그때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했는지 뭐라고 했는지 알 수 없고 기억도 없지만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부친이 그것을 들어 보이자, 주인은 한참 바라보다가 곧 들어가 버렸다. 부친은 만족한 듯 내게 웃음을 보였다. 그 뒤부터 부친은 가끔 그곳을 찾아가 건물 주위를 배회하곤 했다. 그런데 부친과 나는 그 곳을 다니면서 한 번도 무슨 소리를 듣지 못했으며, 드나드는 사람도, 한 마리의 소도 보지를 못했다. 부친도 궁금하긴 한 것 같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부친은 남의 업을 엿보는 것이 좋지 않다라고 자위하기도 하고, 짐승을 잡는 것을 부끄러워 그럴 것이다라고 나름대로 추측도 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른 것이었다. 진짜 도살자인 포수와 소를 죽이는 사람의 경우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소를 찌를 때, 그 사람은 소와 운명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5.16 쿠데타와 도살의 현장
4.19의 여파로 집안에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4.19가 지난 뒤 석달이 넘도록 친척들은 돌아가지 않고, 서로간에 불화만이 가득했다. 집은 더러워지고 자전거는 아주 망가져 버렸다. 그 모든 분쟁은 모두가 4.19 탓으로 보였다. 그들은 4.19를 단지 새로운 선거 대목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척들이 돌아가자 우리 식구들은 두문불출했고, 부친은 그새 노쇠해 있었다.
61년 5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한 사나흘 뒤, 한 무리의 군중과 도수장 주인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도수장 주인은 소 한 마리를 부친에 보였다. 부친과 그 사람은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도수장 주인은 부친에게 ‘서선생, 혁명입니다’라고 외치며 황소 한 마리를 잔치에 기꺼이 내놓음을 알렸다.
옛 공민학교 자리였던 운동장에 잔치가 벌어졌다. 가마솥이 걸리고, 냄비와 술과 칼과 바께쓰(양동이)가 준비되었다. 이러한 소동 속에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피에 굶주인, 왕성한 육식성을 지닌 대중들, 강자의 논리에 철저히 기울어져 있는, 그 논리가 습성화되어 있는 다수들이 벌이는 한 판이 불러오는 들뜸 같은 것일 터이다. 군중을 야릇한 흥분으로 몰아가는, 피의 희생에 전율하면서도 거기에서 강한 힘의 논리를 체득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그 속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도수장 주인이 아마 그 같은 것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찬탄하는 군중에 둘러싸여 운동장까지 걸어 내려올 때의 그의 침묵과 느린 걸음걸이, 나는 그가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가 사람들에 의해 묶이고 큰 도끼가 주인에게 전해졌다. 주인은 정확하게 도끼를 내리쳤다. 훌륭한 도살자는 두 번을 내리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 내장 속의 천성적인 도살자가 그렇게 절규하고 명령하는 바이다. 관중의 전심전령이 질타하고 발을 굴렀다. ‘표를 뺏기지 마라.’ ‘방해하는 놈은 죽여라.’ 짐승은 죽음을 맞이했고, 그가 섰을 때 우리는 환멸을 느꼈다.
불현듯 마음속의 사람에게 한 표를 던져볼까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면, 유권자인 그대는 그런 망상을 버리고 그냥 귀를 기울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거기엔 신물나는 우국지정의 똑같은 연설을 일년 열두 달 외쳐대는 한 사나이가 역 앞 광장에 있음을 느낄 것이다. 도수장 주인은 시의 명물이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세상과 맞서는 방법 ‘채식’
1997년 출판사 문학동네에서는 『이제하 소설 전집』을 발간했다. 그 첫째 권의 제목이『초식』이다. 이제하의 첫 번째 소설집이 바로『초식』이었다. 이렇게 『초식』은 그의 초기작이면서도 대표작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작품이다. 1974년 『초식』은 현대 문학상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수상을 거부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래저래 『초식』은 문제작임에 분명하다. 더러운 정치판을 빼닮은 문단에의 환멸이 수상 소감을 쓸 수 없게 그를 작동시켰고 결국 수상을 거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수상 거부의 사연, 어쩌면 그것은『초식』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그것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부친과 그를 둘러싼 세계와의 갈등을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 둘러싼 세계라는 것은 부친 당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들, ‘그들의’ 세상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부친의 가족도 예외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 나는 그저 단순한 관찰자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부친의 몰락과 그 한계를 냉정하게 목도하고 우리에게 전달한다. 나는 부친을 둘러싼 세계에 적극적인 가담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다. 그것 역시 부친의 세계가 가지는 한계에 다름 아닐 것이다.
평범한 얼음 도매 운반인이던 부친은 어느 날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하여 줄곧 세 번에 걸친 출마를 감행한다. 그것은 가족들에게는 고역이요, 친척들에게는 하나의 이벤트와도 같다. 친척들의 모습은 소설 후반부, 소를 잡는 장면에서의 무수한 군중들과 닮아 있다. 그들은 결국 한통속이다. 부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있어 경계나 편가름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부친과 나머지 사람들과의 경계가 있을 뿐이다.
평범했던 부친이 왜 출마를 결심하였을까? 여기에 대해 분명한 답은 물론 제시되지 않는다. 그저 관찰자인 나의 막연한 짐작이 있을 뿐이다. 나는 부친의 출마에 대해 부친이 속해 있었고 그 자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한 세계의 붕괴에 대한 예감이 주는 공포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것에 대한 내용은 결국 아버지가 택한 채식과 연결해서 헤아릴 수밖에 없다.
‘채식’은 아버지가 세상과 맞서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결국 아버지를 둘러싼 세계는 ‘육식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아버지가 속해 있었던 그러나 미워했던 세계란 육식의 방식이 통용되는 세계다.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정당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 세계, 육식의 방식이 통용되는 시대란 아버지의 말을 빌면 ‘어려운 시대요, 더러운 시대’인 것이다. 그러한 시대의 붕괴는 필연이어야 하지만 그 붕괴는 또한 공포를 가져온다. 무엇이 그 다음에 도래할 것인가에 대한 공포는 그 공포를 넘어서는 의지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그 의지를 키우는 방식, 그것은 이전의 세계가 지니고 있었던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 부친이 택한 방식은 육식에 맞서는 채식이다. 마치 다니엘이 모든 박해와 모함 속에서 채식으로 의지를 단련하였듯이, 그는 자신의 의지를 굳세게 하고, 모든 부조리와 타락과 혼돈에 맞서는 방식이 채식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채식을 하면서 부친은 세상과 맞선다. 부친이 맞선 세상, 선거판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선거판을 묘사하는 부분에 나의 비판과 냉소, 그 속에 숨어 있는 분노를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곧 작가의 비판이요, 냉소이며, 분노라 할 것이다. ‘등록의 까다로움, 무소속의 굴욕, 사꾸라의 모략, 도야지 같은 관리 나부랭이들의 추잡, 유세 기간 동안에 일어난 그 많은 하찮은 사건들을 어떻게 일일이 열거하랴. 그대들이 겪고 느낀 바 그대로다’라는 부분이나 ‘헤일 수도 없는 협잡, 수많은 중상모략, 그리고 테러들을 낱낱이 고발할 의무를 나는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짐승-이라고 어느 누가 짖어대도 신은 노여워하지 않았으리라. 그들은 한마디로, 씹어놓은 똥이다’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선거판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과 분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