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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이대

하근찬 지음 | -
수난이대

하근찬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박만도: 아버지. 일제 시대에 징용으로 끌려가서 한 쪽 팔을 잃었다. 불구가 된 아들을 꿋꿋하게 받아들이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인물이다.

박진수: 3대 독자인 귀한 아들. 6.25전쟁에 참전해서 한 쪽 다리를 잃고 귀향한다.





기쁨의 시작,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깻바람이 날 일이다.

박만도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올라갔다. 그는 쉴 생각도 없이 뛰어가려니 가슴이 다 뻐근했다. 그러나 힘든 줄도 몰랐다. 고갯마루에 오르니 들 건너로 바라다 보이는 기차역에서는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기적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들은 점심때나 되야 도착한다고 했으니 아직 시간은 많이 있었다. 내리막 길은 아무 것도 아니어서 마치 굴러가듯 걸어갔다. 반갑고 기대되는 아들과의 만남의 순간은 점점 가까워지는 듯 했고 들뜬 마음에 몸도 가벼워졌다.

잽싼 걸음으로 걸어가면서 만도는 왼쪽 조기 주머니에 꽂힌 자신의 소맷자락을 내려다보았다. 꽂힌 소맷부리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정말로 그는 아들의 부상이 염려스러웠다. ‘나처럼 팔뚝 하나가 몽땅 달아날 지경이었다면 그 엄살스러운 놈이 견뎌냈을라고’ 혼잣말을 지껄이지만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가셔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쫓는 듯 오히려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다. 재빨리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너른 들판을 지나 개천 둑에 와서야 겨우 걸음을 멈췄다.

한 숨 돌리고 볼 일도 해결할 작정이었다. 만도는 물 기슭에 내려가서 거울처럼 맑은 수면 위로 오줌을 갈겼다. 그리고 외나무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넜다. 그러자 언젠가 한 겨울에 술에 취해 냇물에 빠졌던 기억이 슬며시 일어났다.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덜덜 떨었던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났다. 물에 흠뻑 젖은 채 팔 하나 없는 육신을 그대로 남에게 드러낼 수는 없었다.

개천을 지나 논두렁을 지나 한 참 후에 읍에 도착했다. 그는 단골인 주막에 들러 주모와 농지거리라도 할 까 하다가 정거장 반대쪽으로 향했다. 진수가 돌아오는데 입에 맞는 찬거리라도 사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고등어라도 한 손 사야지 하고 장을 찾아갔다. 고기전에서 무엇을 살까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결국 고등어 한 손을 샀다.

만도는 한 손에 고등어를 쥐고 있으려니 겨드랑이가 간질거렸다. 정거장 대합실에 들어서니 시계는 2시 20분이었다. 고장난 시계에 놀란 만도는 맞은 편에 앉은 양복장이에게 시간을 물어보았다. 10시 40분이라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안심한 만도는 궐련을 한 개피 물고 불을 댕겼다. 만도는 이렇게 정거장 대합실에 와서 앉아 있으면 항상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등골에 써늘한 기운이 스쳐 내렸다.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아픔과 상실

섬에다가 비행장을 닦는 것이었다. 모기에게 물려 혹이 된 자리를 벅벅 긁으며,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무릅쓰고,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산을 허물어 내고, 흙을 나르고 하기란, 고향에서 농사일에 뼈가 굳어진 몸에도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만도가 고향을 떠났던 십 이삼년 전에도 바로 이 정거장에서 백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었다. 만도 역시 이 무리에 끼어서 그들을 싣고 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어디로 어떻게 왜 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기차를 탈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바로 징용에 끌려가는 사람들이었다. ‘북해도 탄광으로 가느니’ ‘남양 군도로 가느니’ 하며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만도는 하늘 아래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배포로 아무렇지도 않은 채 앉아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아픈 것은 벚나무 아래에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마누라 때문이었다. 플랫폼에 들어서니 마누라는 눈물을 닦고 있었고 그도 역시 코끝이 찡해졌다. 이별은 이렇게 담담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어쨌든 만도는 기차가 출발하자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되는 것 같았다. 평생 본 적이 없는 큰 배를 사흘이나 타고나서야 하선할 수 있었다. 더러는 배멀미로 고생도 했지만 만도는 먹을 것도 잘 먹으며 그런 대로 잘 자며 견뎌냈다. 그러나 불타는 듯한 황혼에 도착한 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노역과 숨막히는 더위, 그리고 잠자리만한 모기떼였다.

물도 음식도 기후도 맞지 않았다. 게다가 병까지 돌아서 일하다가 그대로 넘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만도는 아침, 저녁으로 약간의 설사만 했을 뿐 그런 대로 지냈다. 그럭저럭 고된 일도 몸에 배어갔지만 어떻게 해도 참을 수 없는 것은 극성스레 달려드는 모기떼였다.

사람들은 그처럼 험난해 보였던 산 사이에 비행장을 만들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계속되는 고역으로 마치 불가능할 것 같았던 비행장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비행장이 완공 된 이후에도 더 고된 일이 계속되었다. 하면 할수록 벅찬 일들이 떨어졌다.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되자 일은 밤중까지 계속되었다. 산허리를 뚫어서 비행기를 집어넣는 굴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모든 시설을 다 굴속으로 옮겨야 했다. 다이너마이트 터뜨리는 소리가 온 산을 울렸다. 연합군의 공습은 점점 심해져서 작업 중에 손을 놓아야 하는 때가 많아졌다. 때로는 공습 사이렌을 듣지 못해서 계속 일을 하기도 했다.

가장 큰 위험은 사이렌이 울리기도 전에 공습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바로 그런 때에 만도가 한 쪽 팔뚝을 잃게 되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굴 속에서 바위를 허물고 있었다. 바위틈에 구멍을 뚫고 다이너마이트를 장치하고 한 사람만이 남아 불을 당겼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만도가 불을 당길 차례였다. 모두 밖으로 나간 후에 그는 성냥을 꺼냈다. 그런데 웬 일인지 기분이 꺼림칙했다. 게다가 모기에게 물린 자리도 심하게 가려웠다. 그날 따라 성냥을 네 개나 그어대서야 겨우 심지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바깥으로 막 나서려는 때였다.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귓전을 갈겼다. 만도는 정신이 아찔했다.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달려드는 비행기에 놀라 굴 안으로 도로 달려들었다. 굴 바닥에 납작 엎드린 바로 그 순간이었다. 꽝! 다이너마이트가 터진 것이었다. 만도가 구부렸던 몸을 펴고 어렴풋이 눈을 떠보니 손가락이 시퍼렇게 굳어버린 팔뚝 하나가 굴 속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만도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절단 수술이 끝난 후였다.



아들인 진수는 다리 병신이 되어 오고

“아부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만도는 깜짝 놀라며,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만도의 두 눈은 무섭도록 크게 떠지고 입은 딱 벌어졌다. 틀림없는 아들이었으나, 옛날과 같은 진수는 아니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지팡이를 끼고 서 있는데, 스쳐가는 바람결에 한쪽 바짓가랑이가 펄럭거리는 것이 아닌가.

기차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만도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옆에 놓아두었던 고등어를 들었다. 그런데 기적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가슴도 역시 불안으로 떨려왔다. 만도는 바짝 긴장한 채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는데도 아들 진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물결 속에서 저 쪽 출구로 절룩거리며 나가는 상이군인이 있었으나 만도는 그에게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릴 사람은 모두 내렸는가 보다. 이제 미처 차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만이 플랫폼을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만도는 자꾸만 가슴이 떨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자신을 불러 돌아보니 아들인 진수가 서 있었다. 그런데 진수는 전쟁터로 갈 때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채 머쓱하게 아버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만도는 눈앞이 노래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만도는 반가운 마음도 기쁜 마음도 아니었다.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만도의 입에서는 당황스런 마음에 모진 말들이 튀어나왔다. 왜 이런 꼴이냐고 따져 묻는 듯한 말이 저절로 나왔다. 기다렸던 시간 동안 느꼈던 즐겁고 들뜬 마음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진수의 두 눈에서는 어느 결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할 말을 잃은 만도는 훌쩍거리며 물코를 들이마셨다. 부자 사이에는 다정한 몸짓도 기쁨의 인사도 없었다. 진수의 부상은 부자 사이에 갑자기 엉뚱한 불화를 일으켰다. '가자'는 말을 무뚝뚝하게 던지면서 만도는 험상궂은 얼굴로 앞장을 섰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만도의 뒤를 진수가 절름절름 따라갔다. 그러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진수가 부지런히 걷는 성한 사람의 걸음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뒤지기 시작한 것이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들리지 않을 만큼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진수는 목구멍에 왈칵 차 오르는 서러움을 꾹 참느라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두 개의 지팡이와 한 개의 다리를 부지런히 놀렸다.



술을 들이키며 화를 삭이는 만도

기역자판 앞에 가서 쭈그리고 앉기가 바쁘게,

“빨리 빨리.”

재촉을 하였다.

“핫다나, 어지간히도 바쁜가배.”

“빨리 꼬빼기로 한 사발 달라니까구마.”



앞서서 걸어가던 만도는 주막에 이르자 비로소 뒤를 돌아보았다. 처져서 따라오던 진수는 나무 밑에서 오줌을 누고 있었다. 지팡이를 내던진 채 외다리로 서서 볼 일을 보려니 그 모습이 을씨년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바라보는 만도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꼬락서니하군. ‘으음!’하는 신음을 삼키며 술방 앞으로 가서 방문을 벌컥 열어제쳤다. 만도는 술을 내놓으라고 이를 잡고 있던 주모를 닥달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누가 잘못한 것인지 만도는 괜스레 화가 나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술방 여편네가 아양을 떨었지만 도무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마 이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이 술방에 들어서기는 처음이었다. 전후 사정 모르는 여편네가 해실해실 웃음을 날렸지만 만도는 대꾸 없이 술만 들이켰다.

술방 여편네가 건네주는 술을 연거푸 석 잔을 들이키고 나니 금세 눈두덩이 달아오르고 귓불이 발갛게 익어갔다. 술기가 얼큰하게 돌자 그제야 좀 속이 풀려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진수는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거의 다 와 가고 있었다. 만도는 여편네에게 참기름 친 국수를 말아달라고 해서 진수에게 국수를 먹으라고 권했다. 아들을 향한 살뜰하고 애련한 마음이 차오르는 듯했다. 만도는 진수가 국물에 말은 국수를 훌훌 불어가며 먹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궁금증이 일은 술방 여편네가 아들이냐고 물어보자, 만도는 고개만 끄덕거릴 뿐 좋은 기색을 하지는 않았다. 진수는 국수를 다 먹고 난 후 만도의 더 먹으라는 권유를 사양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을 업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다

“이래 가지고 우째 살까 싶습니더.”

“…”

“나 봐라. 팔뚝이 하나 없어도 잘만 안 사나. 남 봄에 좀 덜 좋아서 그렇지, 살기사 왜 못 살아.”“차라리 아부지같이 팔이 하나 없는 편이 낫겠어예. 다리가 없어놓니, 첫째 걸어댕기기에 불편해서 똑 죽겠심더.”“야야. 안 그렇다. 걸어댕기기만 하면 뭐하노, 손을 지대로 놀려야 일이 뜻대로 되지.”



주막을 나선 두 부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이번에는 진수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만도가 따라가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서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아들의 구부정한 등을 바라보며 외팔이 아버지가 술에 취한 채 느릿느릿 따라갔다. 한 손에 처량하게 매달린 고등어가 달랑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술을 마신 만도는 뱃속이 끓었고 다리도 휘청거렸다. 그러나 기분 좋은 취기가 올라서 오히려 정신은 아른거리면서도 기분은 좋아졌다. 만도는 앞 서 가는 진수에게 어떻게 그 모양이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진수는 수류탄에 맞은 상처 부위가 썩어들어가서 절단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묻고 있는 아버지나 대답하는 아들 모두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진수는 이러한 몸뚱이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오히려 팔뚝이 하나 없는 게 나을 것이라는 말이 불쑥 나왔다. 만도는 단지 남 보기에 민망할 뿐이지 살아가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아들을 다독였다. 그러면서 만도는 집에서 할 일은 진수가 하고 자신은 밖의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진수에게 만도는 따스한 웃음을 보냈다. 아들의 부상이 가져 온 충격이 완화되고 있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만도는 이내 오줌이 마려웠다. 길가의 아무 곳이나 쭈그리고 앉아 고등어 묶음을 입에 물려고 하자 진수는 그것을 달라고 했다. 팔이 하나밖에 없으니 물건을 든 채 소변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수는 저만큼 떨어져서 아버지가 볼 일을 마칠 때까지 한 손에는 지팡이를 모아 쥐고 다른 손으로는 고등어를 들고 있었다. 볼 일을 다 본 만도는 얼른 고등어를 다시 받아들고 걸어갔다.

개천 둑에 이르렀다. 만도가 지난 겨울에 건너다 빠진 그 시냇물이다. 진수는 물 위에 놓여 있는 외나무 다리를 바라보자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시냇물 바닥이 모래톱이어서 지팡이를 짚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외나무다리는 도저히 건너갈 수가 없을 듯 했다. 진수는 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둑에 퍼지고 앉아서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기 시작했다. 이 때 아들이 하는 짓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만도는 진수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자신이 아들을 업고 냇물을 건너가자는 것이었다.

“진수야, 그만두고, 자아 업자.”하는 것이었다.

“업고 건느면 일이 다 되는 거 아니가. 자아, 이거 받아라.”

고등어 묶음을 진수 앞으로 민다.



진수는 난처해하면서도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만도는 등허리를 아들에게 들이밀고 하나밖에 없는 팔을 내밀면서 진수를 재촉했다.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양손에 하나씩 나눠지고 아버지의 등에 슬그머니 업혔다. 만도는 외팔을 돌려서 아들의 하나뿐인 다리를 꼭 안았다. 진수는 눈을 감고 고등어와 지팡이를 든 두 팔을 내밀어서 아버지의 굵은 목줄기를 부둥켜안았다. 만도는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일어나자 아랫도리가 후둘거렸지만 걸어갈 만했다. 그리고 만도는 외나무다리 위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다.

외팔이 아버지와 외다리 아들이 서로를 의지해서 힘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몸은 불편하고 무거웠지만 마음은 살풋 가벼워지고 있었다. 아들을 등에 업은 만도는 속으로 아직 새파랗게 젊은 아들놈의 신세를 한탄했고, 업힌 진수는 미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하고 중얼거렸다. 만도는 여전히 술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용하게 아들을 엎고 외나무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만도 부자의 엉성한 뒷모습을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시련 속에 존재하는 민중의 웃음

하근찬 소설은 어두운 전쟁과 혹독한 시련을 다루고 있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삶의 향기와도 같은 웃음이 담겨있다. 그의 소설에서 이러한 희극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작가가 낙관적이고 포용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에 대해서 혹자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 치열하지 못하다거나 삶의 전체를 진지하게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격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오히려 작가가 가진 문학적인 특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민중들의 순박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병행되는 유우머는 역설적으로 전쟁의 본질과 삶의 신랄함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웃음은 대상을 단순히 희화화하기보다는 이해와 포용을 바탕으로 하는 삶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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