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유재용 지음 | -
관계
유재용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이만복(나): 지금까지 많은 일자리를 옮겨 다닌, 지금은 일자리가 없어 빈둥대는 젊은이. 복덕방 영감의 소개로 장현삼의 시중을 드는 일을 하게 된다.
장현삼: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자. 재산은 넉넉하여 집안에서 자기의 시중을 들어줄 사람을 고용하여 거의 집에서만 지낸다.
나만큼 일자리를 많이 옮겨 다닌 사람도 드물 것이다
장현삼 씨를 처음 대했을 때 이 사람이 이제부터 내가 섬겨야 할 상전이라는 실감이 생겨나지 않았다.
가진 것 없고, 변변한 학력도 없이 살다보니 수없이 많은 일자를 옮겨 다녔다. 그러다보니 이상한 일, 어처구니없는 일, 엉뚱한 일을 적지 않게 겪었다. 장현삼 씨 집에 들어가서 겪은 일도 그랬다. 장현삼 씨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은 그해 여름 일자리를 잃고 빈둥대던 중 동네 복덕방 영감의 소개로 인해서였다. 복덕방 영감이 내가 딱해 보였는지 나를 불러 세워서 장현삼 씨네 일자리를 권유했다. 놀고먹는 것보다 다만 며칠이라도 돈 될 만한 일이 있으면 해보겠느냐는 것이다. 영감은 며칠 동안이라지만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잘만 하면 몇 년이라도 붙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 나를 꼬드겼다.
일이란 두 다리 못 쓰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그 사람 시중을 들어주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집에 들어갔던 사람들 치고 오래도록 붙어 있었던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영감도 그 이유는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시키는 일 고분고분 잘하고 그저 꾹 참고 지내는 일이라면 자신이 있었기에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장현삼 씨 집에 들어갔다. 나는 일자리를 많이 옮겨 다니긴 했지만 내가 스스로 그만둔 적은 없었다. 또한 상전의 노여움으로 인해 쫓겨난 적은 더욱이나 없었다. 나는 건강과 참을성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처음 만난 장현삼 씨는 가냘픈 모습이었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음에도 힘겨워 보일 만큼 연약해 보였다. 그래서 상전으로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나는 그 목소리로 인해 그가 ‘상전 노릇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상전이란 이왕이면 아랫사람 입장에서 볼 때, 우러러 보이는 쪽이 낫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나가라’고 할 때까지 있겠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장현삼 씨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장현삼 씨는 내가 과연 첫 월급을 받을 때까지 붙어 있을까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는데, 그때 그의 눈빛은 싸늘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의 눈빛에 나는 주눅이 들었고, 그러자 나는 나보다 먼저 이 집에 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왜 나간 것일까.’ ‘스스로 나간 것일까,’ ‘아니면 쫓겨난 것일까.’ 장현삼 씨는 계속 마치 나와 내기를 해보겠다는 듯 내가 붙어 있을지 두고 보자는 말을 한다. 싸늘한 눈빛을 여전히 한 채. 그것은 분명히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있음을 암시했다. 그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이겨내면 생각보다 오래 붙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집안에는 장현삼 씨와 나, 그리고 가정부가 있었는데, 가정부 역시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밤에 잘 때까지 장현삼 씨의 팔다리 노릇을 해야 했다. 그는 다리를 못 썼는데, 팔 또한 그리 세지 못해 거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그는 삼십도 안 된 젊은 사람인데도 새벽잠이 없었다. 나는 그동안 남의 밑에서 일하다보니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는데 그는 그보다 한 시간 가량이나 더 일찍 일어나 나를 호출했다. 그러면 나는 그의 방으로 건너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그의 지시를 기다렸다. 배설을 하도록 요강에 앉히고, 그 일이 끝나면 정원을 산책하도록 옷을 갈아 입히고 바깥으로 옮겨주어야 한다. 옥외용 바퀴의자에 그를 옮겨 앉힌다. 그가 산책을 할 동안 나는 정원에 물을 주고 청소를 했다. 정해진 순서임에도 나는 그의 지시가 있어야 움직였다. 그런 나를 보고 그는 기계 같다고 쏘아붙였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아침 산책이 끝나면 그를 집안으로 옮겨 세면대에 앉히고, 세면이 끝나면 식탁에 앉힌다. 모든 것은 장현삼 씨에게 편리하도록 손질이 잘 되어 있다. 식사가 끝나면 관장을 해서 변을 본다. 관장액을 주사하고, 그 뒤를 처리하는 것 또한 나의 몫이다. 그는 물을 항상 많이 먹는데도 관장을 해야 한다. 자면서도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물을 항상 많이 섭취한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그는 안락의자에 앉아 정원을 내다보고, 그 사이 나는 가정부 박씨의 일을 도와준다. 점심을 먹고 나면 나는 그를 목욕시켜 줘야 한다. 목욕이 끝나면 장현삼 씨는 다시 마루 창가의 안락의자에 파묻혀 책을 보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장현삼 씨는 새벽잠이 없는 대신 초저녁잠은 많았는데, 저녁을 먹고 한 시간쯤 정원에 있다가 곧 잠자리에 든다. 나는 다른 방에서 자면서 그의 호출에 대비해야 한다. 내 방에는 버저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용무가 생기면 장현삼 씨는 그의 방 침대 머리맡 벽에 있는 단추를 누른다. 그러면 내 방 버저가 울고 난 곧 그의 방으로 가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는 자면서 땀을 많이 흘리는데, 그때 잘못하면 탈수현상과 혼수상태로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물을 많이 마신다. 그래서 자면서 여러 번 소변 때문에 나를 호출한다. 그때마다 나는 가서 소변을 누이고 요강을 씻고, 소독비누로 손을 씻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수분을 섭취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새벽에 여러 번 깨는 것도 그러나 나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여러 상전들을 모셨던 경력으로 인해 생긴 적응력 때문인지 나는 언제든지 새로 잠이 들 수 있었다. 나보다 먼저 이 집에 왔다가 며칠 견디지 못하고 나간 사람 중에는 새벽의 이 호출을 견뎌내지 못해 나간 사람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첫 달치 월급 봉투를 내밀며 장현삼 씨는 “나를 다시 보아야겠다”고 하면서 그동안 자기의 팔다리 노릇을 잘해 주었다고 노고를 치하해 주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미덥지 않은 듯 두 번째 월급을 내가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의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내가 다시 한번 나가라고 할 때까지 있겠다고 다짐을 하자 그는 월급으로 적금을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나는 응낙을 하였다. 그의 얼굴에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아스무레한 미소가 어렸지만 그 미소가 사라진 뒤에도 그때의 그 싸늘한 눈빛은 뿜어 나오지 않았다.
장현삼 씨와의 이상한 인연
장현삼 씨는 내게 한결 다정하게 굴었다. 일을 시키며 하는 말 이외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와 더불어 나누었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확실히 이제는 장현삼 씨가 어느 정도 나를 믿는 것 같았다. 장현삼 씨는 이런 말도 했다. 자기와 나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의 처지와 반대였을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전생에서는 내가 자기의 튼튼한 다리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는. 나는 건성으로 받아들였는데, 그는 몽롱한 눈을 한 채 전생에 자기와 나는 아예 한 사람이었는데, 그 한 사람 속에 들어있던 두 마음이 따로 몸을 얻어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하였다.
두 번째 월급이 적금될 때는 여름이 끝나갈 때였는데, 그때쯤에는 새벽 호출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장현삼 씨와 나는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나의 왕성한 식욕을 보면서 장현삼 씨는 부러워했다. 어느 날 그는 닭을 고아 놓으라고 하더니 자기는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서는 나더러 다 먹어 보라고 했다. 내가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자 마치 자기가 먹은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는 내가 먹을 때 마치 자기가 먹는 듯이 맛도 느껴지고 배도 불러오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이었다.
그 뒤로 장현삼 씨는 별식을 만들게 하거나 음식을 시켜서 자기는 거의 먹지도 않고 나더러 먹어 보라고 해놓고서는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불러 하는 것이었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보노라면 자기가 나의 몸 속으로 들어가 한 몸이 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음식뿐만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텔레비전에서 자전거 경주를 보더니 자기도 자전거를 타고 싶다면서 나더러 자전거를 사오게 해서 자전거를 배우게 했다. 자동차 운전이 배우고 싶을 때도 나는 그와 함께 운전 학원에 가서 그 대신 운전을 배우기도 했다.
장현삼이란 수렁에 빠진 나
그렇게 해가 가고 새봄이 돌아와 무르익어 가는 어느 날 장현삼 씨가 불쑥 말을 꺼내 놓았다. “만복 씨, 여자 선 한번 봐 주시오.”
그 이듬해 봄 어느 날 그는 나더러 여자 선을 봐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물론 내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장현삼이라는 이름으로 그 대신 나가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부탁이라면 나가겠다고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장현삼 씨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나를 데리고 시내로 나가 최고급 양복과 최고급 구두를 맞추게 하더니 와이셔츠, 넥타이, 혁대 따위를 모두 최고급으로 고르게 했다. 그렇게 말끔하게 차려입은 나는 장현삼 씨를 대신해 선보는 자리에 나가게 됐다. 그는 그 자리에 따라와 떨어진 자리에서 나름대로 여자의 선을 보는 것 같았다. 여자는 예뻤으나 나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멀리 떨어져 보고 있는 장현삼 씨의 판단에 달린 것이었다. 기실 선보는 당사자는 내가 아니라 장현삼 씨였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장현삼 씨를 대신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여자에게 장현삼이라는 이름과 그의 나이, 신분으로 소개되었지만 뒷일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만큼 일을 그저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선 본 지 한 달만에 약혼식까지 치르게 되고 그 약혼식마저 내가 대신하게 되었을 때 나는 겁이 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현삼 씨는 나보고 여기서 그만두게 되면 더 복잡해진다고 나를 설득했고, 나는 약혼식에 신랑으로 참석했다. 그제서야 나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선물로 받은 예물 시계도 장현삼 씨는 내가 받은 것이므로 내가 가져야 한다고 하면서 내가 차길 원했다. 나는 떨렸으나 그는 나보고 겁내지 말고 그를 대신할 때는 내가 이만복이 아니라 장현삼이라고 생각하라고 하면서 자기의 눈을 보라고 하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내 몸이 그의 몸 속으로 빠져 들어가 하나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는 눈을 감았다.
한 달 뒤 나는 그 여자와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 여행을 떠났으며 그 여자와 살을 섞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이만복이 아니라 장현삼이라고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다.
결혼 생활은 일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 사이 아들이 하나 태어났다. 당연히 그 아이의 성은 장씨가 되었고, 그가 이름을 지었다. 내 아들이 아니라 장현삼 씨의 아들이었다. 아이를 낳은 지 석 달만에 여자는 산후 조리를 못해 죽었다. 그녀가 죽어서야 나는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깊은 감옥에 있던 나를 그녀가 구해 줬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편지 한 장, 모든 것이 예비된 음모와 계획이었다
어느 날 장현삼 씨가 말했다.
“시골에 있는 우리 선산을 돌아봐 주었으면 하오.”
그러던 어느 날 장현삼 씨는 나보고 자신의 선산을 둘러보고 오는 길에 여행도 하라고 한 달간의 휴가를 주었다. 아이에겐 유모가 있었고 장현삼 씨를 돌보아 줄 사람도 있었기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 그런데 한 달 뒤 돌아와보니 장현삼 씨는 이사를 가고 없었다. 그 대신 그동안 월급으로 부어오던 적금 통장과 집을 내 앞으로 등기 이전했다는 편지가 남아 있었다. 외로움이 치밀어 올랐다. 아들도 몹시 그리웠다. 찾고자 한다면 어려울 것은 없겠지만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타인의 삶에 대한 욕망’
이 작품은 1980년 「한국문학」에 발표되었다. 그해 유재용은 이 작품으로 제4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유재용의 문학 세계를 이루는 본류는 월남 실향민의 삶을 다룬 작품이라는게 일반적인 논의다.「누님의 초상」을 비롯하여 「고목」,「사양(斜陽)의 그늘」,「내 우상 쓰러지다」등의 작품들이 그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관계』는 독특한 작품이라고 할 만도 하다.『관계』에서 보이는 ‘타인의 삶에 대한 욕망’이라는 주제가 다른 작품에서도 보이는데, 작가 유재용의 또 다른 문학적 관심이 집약돼 있다.
『관계』는 나, 즉 ‘이만복’과 ‘장현삼’과의, 제목 그대로 기묘한 관계가 다루어져 있다. 이만복은 추측컨대 집안 배경도 없고, 학력 또한 변변치 않으며 뚜렷한 기술도 지니지 못한 젊은이로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남 밑에서 일하는 데 이력이 붙어 있으며 따라서 순종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충분히 충직스러운 습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일자리를 자주 옮겨 다닌 이유도 그가 스스로 일자리를 바꾼 것이 아니라 상황이 부득이했을 뿐이었다. 그는 스스로 일자리를 옮긴 적도 없으며, 그의 말대로 상전에게 잘 못 보인 적도 없을 정도로 상전 모시는 일에는 충성스러우며 맡은 바 소임을 알뜰히 해내는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하반신을 못 쓰고 팔조차 힘이 없어 자유롭지 못한 장현삼을 모시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될 수 없다. 다 큰 어른의 용변을 치우고 항문에 관장액을 주사하고 목욕을 시키고 밤에 몇 번이나 깨야 하는 일은 그에게 그렇게 고역이 아닌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먼저 왔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그런 일 따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 또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들의 생계를 꾸려 나가는 일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은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만복에게 장현삼의 수족이 되어 돌보아주는 일을 제안했던 복덕방 영감은 이전에 그 누구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이 소설을 계속 읽게 만드는 동기이며, 따라서 거기에 이 소설의 핵심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만복은 장현삼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싸늘한 눈빛을 보면서 이전의 사람들이 왜 나갔는가에 대해 잠시 궁금해하는데, 그것은 장현삼이 그 눈빛 속에 뭔가 숨기고 있으며 또한 음모를 예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말 그대로 이만복이 궁금해하는 것은 잠시이며,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견디질 못한 이유를 그는 단지 새벽에 여러 번 깨어야만 하는 것 혹은 항문에 관장기를 꽂는 일 따위와 연결시켜 보는 정도에 머물 뿐이다.
이만복 이전의 사람들이 장현삼의 집에 들어와 처했던 상황과 이만복이 처한 상황 자체가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에 있어 이전 사람들과 이만복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차이란 어떤 상황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 상황을 이전 사람들은 거부했고 이만복은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 장현삼이 싸늘한 눈빛을 하고 있었던 이유는 이만복이란 사람이 자신이 만들어갈 상황, 즉 관계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나름의 의심과 탐색의 몸짓이었던 셈이다.
장현삼의 욕망 실현과 이만복의 수동적인 동조
장현삼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일거수 일투족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이다. 그런 장현삼이 건강한 타인의 삶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문제는 보통의 사람들, 굳이 장애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조건을 가진 타인들을 부러워하거나 그들이 자신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그들이었으면 하는 욕망을 느낀다. 그러한 욕망은 자신의 비교 대상이 되는 인물을 하나의 전범화하면서 주어진 자기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타인과 자기의 삶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일탈 현상이 발생하고, 급기야는 현실의 파국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둘의 차이는 타인의 삶과 자기의 삶의 분명한 경계 짓기에 있다. 즉 정확한 주체의 설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삶이 하나의 지향태로서 작용하고, 행동 주체가 타인이 아닌 ‘나’라는 것이 정확히 인식되고 표면화될 때, 그러한 욕망은 보다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계가 깨어지고, 행동 주체로서의 ‘나’가 소멸되고 타인의 삶이 ‘나’의 삶을 덮어버리게 되면 그것은 현실과 환상의 착란 현상을 발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