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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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조세희(1942~ )
1980년대 사회상을 반영하는 글 발표. 소외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
'노가바' '해전사' '아미자', 그리고 '난쏘공'
1980년대 대학생들은 이 작품을 ‘난쏘공’이라고 불렀다. 공장노동자와 도시빈민 등 소외계층의 피폐한 삶을 다룬 12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된 『난쏘공』에 가장 먼저 관심을 표명한 것은 문학도가 아닌 사회과학도들이었다. 『난쏘공』은 1980년대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 『아미자』(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등과 함께 대학 새내기들의 ‘시각교정용 필독서’로 꼽혔다. 하지만 『난쏘공』이 80년대 내내 젊은이들에게 시대를 읽는 교과서의 하나였을 때, 정작 조세희는 자신의 언어를 찾지 못해 침묵했다. ‘말이 10개라면 그 중에 5~6개밖에 쓸 수 없었던’ 5공화국의 억압적 분위기 아래서 그가 더 이상 쓸 수 있는 글은 없었다. 작가는 다시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회의 속에 침잠했다.
‘말이 10개라면 그 중에 5~6개밖에 쓸 수 없었던’ 5공화국의 억압적 분위기 아래서 그가 더 이상 쓸 수 있는 글은 없었다. 작가는 다시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회의 속에 침잠했다. 그 사이에 소설집 『시간여행』과 사진에세이집 『침묵의 뿌리』 등 단 세 권의 작품집을 낸 것이 30여 년을 ‘작가’로 생활한 조세희 문학 이력의 전부이다. 그런 가운데 그가 선택했던 것이 사진이다. 1979년 사북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는 사진 찍는 친구들에게 제발 그 기록을 남기라고 쫓아다니며 부탁했다. 아무도 그의 말을 안 듣자 홧김에 카메라를 한 대 사들고 필름을 끼운 뒤 현장으로 들어갔다. 『사진의 첫걸음』이란 얄팍한 책 한 권으로 사진찍기와 만들기를 사흘만에 깨우친 뒤였다. 이때의 작업은 후에 『침묵의 뿌리』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았다.
1997년 계간 「당대비평」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다시금 세상을 향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작가 박완서가 그를 두고 ‘너무 맑은 물’에 비유했듯이, 조세희의 글들은 여전히 ‘현실의 탁류’와 분명한 경계선을 긋고 있다.
"20세기를 우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 보냈다. 백 년 동안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이 헤어졌고,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죽었다. 선은 악에 졌다. 독재와 전제를 포함한 지난 백 년은 악인들의 세기였다. 이렇게 무지하고 잔인하고 욕심 많고 이타적이지 못한 자들이 마음놓고 무리지어 번영을 누렸던 적은 역사에 없었다." 「당대비평」 창간사의 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조세희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난쏘공’의 난장이가 꿈꿨듯이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네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리는’ 세계,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 줄기에까지 머물게 하는’ 그런 세계가 조세희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조세희의 『난쏘공』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 원래 맞춤법으로 보면 표준어는 '난장이'가 아니라 '난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말할 때는 거의 대부분의 평론가들조차 '난장이'라고 적는다. 조세희의 『난쏘공』이 남긴 흔적이다.
아직도, 아니 지금도 우리는 난장이와 조세희를 말한다
조세희는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3세에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돛대없는 장선」으로 등단했으나 “소설가로서의 한계를 느껴” 창작활동을 중단하고 10년 동안 침묵기를 갖는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체제가 들어서고 개발독재가 절정에 이른 1975년, 작가는 침묵을 끝내고 「문학과지성」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을 시작한다. 당시 잡지사에 다니던 그는 직장 부근 다방에서 소설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 「뫼비우스의 띠」를 필두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을 잇달아 발표했고,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어냈다.
그는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게 칠십년대는 파괴와 거짓희망, 모멸, 폭압의 시대였다”고 말했다. 그가 한 사람의 작가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이 드러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경제적 핍박자들이 모여사는 재개발 지역동네에 가 집이 헐리면 당장 거리에 나앉아야 되는 세입자 가족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데 철거반들이 철퇴로 대문과 시멘트담을 쳐부수고 들어왔습니다. 철거반들과 싸우고 돌아와 작은 노트 한 권을 사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이제는 현대 한국문학의 고전이 돼버린 12개의 연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렇게 태어났다. 현실과 미학의 뛰어난 결합으로 평가받은 이 작품집으로 조세희는 1979년 제15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광주도 그의 화두였다. 그는 91년 광주문제를 다룬 장편 「하얀저고리」를 계간지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그후 9년째 미완으로 남겨두고 있다. 1995년 11월에는 프랑스의 파리에 가서 모든 공공 부문 교통 수단이 일제히 멈추어 버린 노동자 총파업을 지켜본다. 그곳에서 그는 ‘권력의 폭거에 저항하며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본다. 1997년에는 진보적 계간지 「당대비평」의 편집인을 맡는다. 1999년 3월부터 경희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로 임용돼 대학원생들에게 '한국현대문학사상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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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Summary철거민 촌에 사는 난장이네 집에 어느 날 ‘철거 계고장’이 날아온다.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지기는 했으나, 아파트로 들어갈 돈이 없다. 입주권을 팔아야 하는 형편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입주권이 팔리고 집이 헐리는 중에 아버지 난장이와 영희가 행방불명된다. 그들을 기다리다 남은 가족이 딴 곳으로 이주해 간 사이에, 영희는 입주권을 산 사내를 따라가 그의 아파트에 머물다가, 그가 잠든 틈을 타 그를 약에 취하게 하고서 돈과 자기네 입주권을 훔쳐 아파트 입주 신고를 한다. 그리고 평소 난장이 아버지에게 잘 대해주던 옆동네 아주머니인 신애를 만나 그의 가족들의 소식을 듣는다.
행방 불명이 되었던 아버지는 벽돌공장 굴뚝 속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남은 가족들은 성남으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가 죽은 후 살기 위해 난장이 아들딸은 은강시로 이사가 은강그룹 계열사에 취직한다. 하지만 멀리 서울에서 살면서 근로자들에게 일한 만큼 대우를 해주지 않고 막대한 이윤을 취하는 회사의 높은 사람들에게 점점 분노를 느끼고, 마침내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는 은강그룹의 경영주를 죽이러 서울에 올라가는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등장인물
난장이(김불이): 키 백십칠 센티미터에 몸무게 삼십이 킬로그램인 난쟁이.
가족들을 부양하는 데 힘겨운 생을 살아가다 공장 굴뚝 아래로 떨어져 죽은 채 발견된다.
영수: 난장이의 장남. 아버지가 죽은 후 은강시 공장에서 노조활동을 한다.
영호: 난장이의 둘째 아들. 공장의 직공으로 가정의 생계에 도움을 주었으나 나중에 공장에서 쫓 겨난다. 은강시 전기 공장에서 일을 한다.
영희: 난쟁이의 딸. 철거촌 매매 브로커를 따라가서 처녀성을 잃고 대신에 집문서를 훔쳐서 돌아온다.
어머니: 난쟁이의 아내. 가난한 살림을 이끌어가는 성실한 주부.
지섭: 자신이 직접 노동현장에 참여하여 노동자가 되는 활동적인 대학생. 진실한 동료로 난장이의 편에 서며, 난장이나 큰아들 영수에게 정신적 교화력을 가지고 있다.
신애: 『난쏘공』 시리즈 중 「칼날」, 「육교 위에서」 등에 등장하는 중년의 여성. 난장이와 이웃해 살며 그를 따뜻하게 대하는 인물이다.
윤호: 지섭이 가정교사로 있었던 집의 학생.류의 사람들을 동정한다.
경훈: 은강그룹 경영주의 셋째 아들. 『난쏘공』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 기』에서 영수의 재판을 지켜본다. 철저하게 경영자의 입장에서 편견으로 노동자를 대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수학 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고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잠시 후 한 학생이 일어나 대답했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은 놀람의 소리를 냈다. 그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묻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고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저희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 답은 틀렸다.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 두 가지의 답을 연달아 제시하고 교사는 분필을 들고 돌아섰다. 그는 칠판 위에다 뫼비우스의 띠라고 썼다. 제군이 이미 교과서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기 바란다. 면에는 안과 겉이 있다. 그런데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것을 한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 된다. 이것이 제군이 교과서를 통해 잘 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여기서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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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네 집은 개천변 방죽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무허가 건물에 있었다. 주소지는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 난장이네 집 근처에 벽돌공장 굴뚝이 있었다. 난장이네 집 조각마루 끝에는 재개발 사업 구역 및 고지대 건물 철거 지시라는 제목의 철거 계고장이 놓여 있었다. 거기 적힌 대로 곧 난장이네 집은 철거될 것이었다.
난장이네 집은 바로 방죽가였다. 바람에 밀린 잔물결이 난장이네 마당 끝에 와 찰싹거렸다. 난장이는 그 마당에 앉아 낡은 그의 공구들을 손질하곤 했다. 절단기, 멍키 스패너, 플러그 렌치, 드라이버, 해머, 수도꼭지, 크고 작은 나사, T자관, U자관, 줄톱 등 모두 쇠로 된 이 공구들은 달빛 아래 서면 더욱 난장이를 닮아보였다. 난장이는 닳고 닳은 이 기계 부대를 짊어지고 일을 하러 다녔다. 난장이가 평생 해온 일은 채권매매, 칼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설치, 수도 고치기 같은 것이었다.
그런 난장이 옆에선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가 라디오를 고치고 있었다. 그는 라디오가 고장이 나 방송통신고교의 강의를 받지 못했다. 난장이의 딸 영희는 팬지꽃이 피어 있는 두어 뼘 꽃밭가에서 줄 끊어진 기타를 쳤다. 긴 머리를 약간 숙이고 기타를 치는 영희의 옆얼굴이 아주 예뻤다. 난장이의 부인은 인형집에서 일했다. 소녀 인형에 치마를 입히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종일 백 개의 인형에 백 벌의 치마를 지어 입히고 와 늦은 저녁밥을 지었다. 두 홉 보리쌀을 씻어 안쳐 끓이고 그 위에 여섯 개의 감자를 까넣었다. 난장이와 그의 식구들은 조각마루에 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그들은 보리밥과 삶은 감자를 먹고 검은 된장에 시든 고추를 찍어 먹었다.
난장이는 지섭에게 받은『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읽었다. 지섭은 개천 건너 밝고 깨끗한 주택가 삼층집에 살았다. 그는 그 집에 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가정교사였다. 난장이와 그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지섭은 난장이에게 달나라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에 의하면 달나라에 세워질 천문대에서 일할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그에게 달은 황금색의 별세계였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너무 끔찍하다. 지상에서는 시간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고, 약속과 맹세는 깨지고,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눈물도 보람없이 흘려야 하고, 마음은 억눌리고 희망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지상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이제 없다고 말했다.
왜? 난장이가 물었다. 지섭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난장이는 자신이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게 될 날을 기다렸다. 지섭이 그를 위해 미국 휴스턴에 있는 존슨 우주 센터에 편지를 냈으니, 그곳 관리인 로스씨가 답장을 보내올 것이다. 그가 할 일은 망원 렌즈를 지키는 일이다. 달에는 먼지가 없기 때문에 렌즈를 소제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렌즈를 지켜야 할 사람은 필요할 것이다. 아버지, 도대체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아요?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넌 이때까지 뭘 배웠니? 난장이는 지섭에게 말해서 쇠공을 쏘아올리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철거 계고장이 온 날, 난장이 부인은 아버지를 찾아보라고 아이들을 독촉했다. 영희는 아버지가 아까 아무 말 없이 나갔다고 말했다. 영수는 아버지가 보던 책을 읽고 있었다. 어머니의 불안한 음성이 높아졌다. 영호와 영희는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영수는 방죽가로 나가 곧장 하늘을 쳐다보았다. 벽돌공장 굴뚝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슬아슬한 굴뚝 맨 위에서 그는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었다.
달세계의 몰락과 난장이의 죽음
사람들은 그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다른 것은 잘못 보면서도 용케도 그것만은 옳게 보았다. 그의 신장은 백십칠 센티미터, 체중은 삼십이킬로그램의 난장이였다. 사람들은 신체적 결함이 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그가 늙는 것을 몰랐지만, 그는 이제 힘든 일을 할 기력이 없었다. 그는 삼 년 반 전에 서커스단 일을 해보겠다고 처음 보는 꼽추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난장이 부인과 아이들은 난장이 아버지를 성토했다. 난장이의 꿈은 깨졌고, 그는 다시 무거운 부대를 메고 일을 찾아가야 했다. 난장이 아들딸은 차례로 학교를 그만두고 영수와 영호는 인쇄공장에서, 영희는 빵집점원으로 죽어라 일해야 했다.
동사무소 바깥 게시판에는 아파트 입주절차와 아파트 입주를 포기할 경우 탈 수 있는 이주보조금 액수 등이 적혀 있었다. 무허가건물들의 철거시한일자가 다가왔다. 시에서 아파트를 지어놓았다 하지만 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아파트에 입주할 돈이 없었다. 동사무소 주위에는 주민들과 아파트 거간꾼들이 몰려 시장바닥과 같았다. 난장이 부인은 대문 기둥에 붙어 있는 알루미늄 표찰을 떼기 위해 식칼로 못을 뽑았다. 무허가건물 번호가 새겨진 이 표찰은 아파트 입주자격을 증명해주는 표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