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벽
이청준 지음 | -
소문의 벽(壁)
이청준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박 준: 이 소설의 주인공. 소설가이며 현재는 정신병원에 입원중이다. 본명은 박준일. 어렸을 적의 체험에 의해 전짓불과 진술행위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나 : 이 소설의 서술자. 한 종합지의 편집장이며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의식과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우연히 박준을 만나 그를 이해한다.
김박사: 박준의 정신 담당의. 의사로서의 소명감을 갖춘 합리적인 인물이나 박준의 독특한 사고나 문제 의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치료 방식만을 강요하여 박준을 실제로 미치게 만든다. 안 형‘나’가 다니는 잡지사의 문학 담당. 자신의 편집관에 의해 박준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나타낸다. 박준의 소설을 일부러 잡지에 싣지 않으며 그것을 용기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자기 창의력이나 독자에 대한 책임을 포기해 버린 채 잡지를 만들어 가자면 그것처럼 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면 또 그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 종합잡지의 편집장으로, 요새 내 일에 지독한 회의를 느끼고 있다. 편집자에게는 필자 못지 않게 창의력과 독자에 대한 책임의식이 뒤따르는데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려하면 그만큼 어려운 일도 드물다. 반대로 그것들을 포기하면 일은 매우 쉬워지나 일에 있어서의 책임감은 만족할 수 없다. 달마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마감에 맞춰 책을 만들어내자면 편집자의 책임이나 창의력은 무시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고 그렇게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어느날 한 남자가 불쑥 내 앞을 막아섰다. 사내 하나가 후다닥 골목 어귀로 뛰어들더니 두말없이 나의 등덜미를 부여잡고는 애걸을 하기 시작했다. “제발 형씨, 그렇게 노려보지만 말고 날 좀 도와달란 말이오. 난 지금 쫓기고 있는 몸이오.”
술이 취한 나는 얼떨결에 웬지 낯설지 않은 그를 나의 하숙방으로 데려온다. 나의 방 안에서 사내는 도리어 나를 경계하며 자신이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피곤한 나머지 긴장하여 앉아 있는 그를 놔 둔 채 잠이 들어버린다. 그와 한 방에서 자면서 나는 그의 희한한 습관을 경험하는데 그것은 전깃불을 켠 채로 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밤새 자면서 그와 몇 차례 불을 껐다 켜는 실랑이를 벌였다.
이튿날 새벽 그는 내가 잠에서 깨기도 전에 사라져버리고 나는 집 근처의 정신병원에 찾아가 그가 간밤에 그 병원을 탈출한 환자이며 이름이 ‘박준일’이라는 것을 듣는다. 그의 이름을 듣는 동시에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소설가 ‘박준’이라는 것을 알았다.
‘박준’은 한두 해 전만 해도 한창 정력적으로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던 젊은 소설가로, 이전에 나와 직접적인 대면은 없었으나 내가 다니는 출판사에 소설을 자발적으로 투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결코 작품세계를 수용할 수 없었던 담당편집자 ‘안 형’이 ‘공연한 말썽이 생길까봐’란 핑계를 대며 책상 속으로 밀어넣었다.
정말로 미친 증세와 미쳐보이고 싶은 증세
“도대체 그 환자의 증세라는 게 어떤 것이었는데요?”
“뭐랄까, 무슨 진술 공포증이라고 할까요. 도대체 자기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질 않았어요. 그리고 까닭없이 불안해하고 사람을 두려워했지요. 의사인 나까지도 말입니다.”
“우리 병원 환자들 중엔 진짜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많아요.……그 환자의 경우는 달라요. 정말로 미친 증세에서가 아니라 미쳐보이고 싶은 증세였지요. 말하자면 그런 노이로제의 일종이지요.” 그를 담당한 정신과의 ‘김 박사’는 첫인상부터 매우 정중하고 신뢰감이 느껴지며 자신감 있는 여유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김 박사에 의하면 박준은 진술행위를 병적으로 기피하여 억지로 한 얘기들도 확인해 보면 모두 거짓말이었고 실제로 미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의식 밑바닥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원인에 의한 정신적 갈등에서 온 의사병증(병이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는 것), 즉 노이로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박준은 미친 사람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잡지사로 돌아와서 다른 잡지사 친구들까지 연락해 박준의 소식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근래에 박준의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얘기하자 모두가 박준이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나는 서랍 속에 있던 박준의 소설을 읽는데 『괴상한 버릇』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설의 주인공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에게 무슨 꾸중들을 일이 있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닥칠 기미가 있으면 광 속 같은 데서 잠이 들어버린 척하는 것인데 그 모양이 죽은 사람 같다. 즉 죽은 사람을 흉내내는 것이다. 그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고 더욱 심해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도 그는 긴장이나 피로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더욱 자주 가사의 잠을 자고 그 시간도 더욱더 길어졌다. 하루는 그가 밖에서 기분이 몹시 우울해져 들어와 다시 가사의 잠을 시작하고 그런 그에게 그의 아내는 속이 상해서 무심하게 “저런 꼴로 늘 죽어 눕기가 소원이람 차라리 정말로 한 번 죽어 보기라도 하라지.” 하고 중얼거린다. 그는 정말로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영영 깨어나지 않는다.
소설가의 소설을 묵혀두는 편집자와 환자의 입으로 증세를 확인하려는 의사
“이 소설 안 되겠어요. 그냥 내보냈다가는 공연히 말썽이 생길 것 같군요. 좀 놔두고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요.”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취향이나 문학이념이 용납할 수 없는 동업자들에게는 여간해서 지면배당을 해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한 작가와 편집자의 문학적인 주장이 서로 달라 있을 경우, 편집자는 그처럼 철저하게 자기 의도만을 주장할 권리가 있을까.처음 읽어본 박준의 소설이 기대와 딴판이기는 하지만 그 소설을 여태까지 내보내지 않는 안 형의 태도가 나는 더욱 어리둥절하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편집자와 필자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편집자나 필자는 근본적으로 자기진술을 업으로 삼으며 서로 동의하는 공동의 이념을 위해서 그 진술이 이루어진다. 편집자는 편집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필자(작가)는 글(작품)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념을 피력한다. 물론 그 둘이 괴리될 때 작품의 발표에 있어서 결정권을 쥔 편집자의 의도가 우선하기는 하겠지만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입장이 다양해질 수 있는 문학에 있어서는 편집자가 자신의 권리를 좀더 양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특히 박준에게 가혹한 안 형의 독선적인 처사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퇴근 후 다시 술을 마시고 귀가한 나는 박준이 다시 하숙방에 찾아와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그는 어둠 속에서 나를 기다렸는데 나는 그에 대해 내가 알게 된 사실들을 숨기지 않고 달래가며 그를 다시 그가 빠져 나왔던 병원으로 데려갔다. 나의 말 도중에 불안기와 경계심, 공포감으로 감정의 추이를 보이던 박준은 시무룩하게 기가 죽은 모습으로 병원에 끌려갔다. “환자에게 자기진술을 계속하게 하는 것, 그 자체가 일종의 치료행위란 말입니다. 환자의 비밀은 어차피 환자 자신의 입으로 말해져야해요. 그리고 난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되리라 믿고 있구요.”
그 밤에 병원에서 나는 다시 김 박사와 만나는데 김 박사는 환자의 강박관념이 훨씬 구체화되어 누군가로부터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불안의 요인으로부터 출발해 이젠 자기 병을 일부러 과장하고 싶어하는 데로까지 증세가 발전되어 간 것을 보여준다고 진단한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그 환자가 박준이라는 젊은 소설가임을 김 박사에게 밝히며(이전까지 김 박사는 박준의 신상명세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었다) 그의 가족과 연락이 될 때까지 그의 임시보호자가 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김 박사는 환자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계속 면담이나 자기 진술을 통해 그를 치료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다 혹시 진술을 얻기도 전에 그가 진짜 미쳐버리면 어떻게 하나, 소설을 통해 그의 병인을 알아내 치료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나의 걱정 섞인 의견에 대해 김 박사는 노이로제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자기진술이며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이므로 효과적일 수 없고, 환자의 비밀은 환자 자신이 직접 입으로 말해야 함을 사명감과 확신에 차서 단언했다. “작가가 어떤 소재를 만나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은 그 작가가 자기의 시대양심에 얼마나 투철해 있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지어주는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박준의 소설은 바로 그런 점에서 저의 기대를 외면해버렸어요.”
안 형의 방법 속에서 박준을 변호하고 싶었다. 나는 절대로 박준이 독자를 속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현실적인 압박요인이 아주 무시되고 있었던 것도 아니며 독자들이 그의 기묘한 습성에 동의만을 하지도 않을 것이라 했다.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한 나는 아침부터 안 형과 박준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 안 형은 박준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그 기이하고 슬픈 습성을 선택하도록 강요한 현실의 압박요인들이 제시되지 않아 독자들의 관심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현실에서 벗어나 엉뚱한 데로 끌려가고 그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는 되지도 않은 작품을 곧잘 칭찬하고 나서는 자들에 의해 준동(안 형이 ‘공연한 말썽’으로 여기는 부분)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즉 박준이 무의미한 한 개인의 비밀 쪽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고가서 자기시대의 요구를 배반하고 소재해석과 작품완성에 다같이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그러한 자신의 편집관에 의한 편집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고집을 용기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내가 반론하자 안 형은 진짜 비겁한 잡지인들로서 작품이나 작가의 시대관엔 동의를 하면서도 (정치적 상황 등에 의한) 말썽이 두려워 발표를 꺼리고 있는 경우나, 자기의 기호나 편집관에 의한 취사선택이 소문이나 말썽이 두려워서인 것처럼, 공연한 엄살로 필자를 협박하려 드는 사기꾼까지 횡행하는 세태를 얘기하며, 박준도 그러한 시류 때문에 피해를 당한 적이 있음을 시사한다. 박준의 소설이 R사에서 연재되다가 중단된 적이 었었다는 것이다.
오후에 나는 R사로 달려가 박준이 찾아가지 않은 박준의 원고를 얻어왔다. 김 박사의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태도에서 독선의 냄새가 풍겨나와 오히려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었던 나는 박준을 다시 김 박사에게 맡긴 것에 대해서도 후회되었다. 박준의 소설을 통해 그의 병인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어찌보면 박준의 치료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나 자신의 견딜 수 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의 해소를 위해서였다.
R사에서 얻어 온 소설의 제목은 『벌거벗은 사장님』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어떤 기업체의 말단직원들의 통근차를 끄는 운전수인데 어느 날 사장님이 느닷없이 자기 차를 운전하도록 명령한다. 그는 걱정한다. 사장차를 끄는 운전수들이 예외없이 얼마 안 가 사장차 운전수 자리는 물론이고 회사에서 아예 쫓겨나가기 때문이다. 운전수들이 쫓겨나갔어도 한 번도 그 이유가 밝혀진 일은 없었는데 어떻게 조치가 취해진 것인지 도대체 불평 같은 걸 남긴 일이 없었다. 단지 ‘몰라도 좋을 일을 알아버린 죄’라고 모를 소리만을 남기고 무력하게 회사를 떠나들 가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기만은 회사를 쫓겨나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사장차를 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젊은 사장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골로 차를 몰게 하며 ‘오늘밤 일은 절대로 아는 척하지 말고 잊어버리라’고 명령한다. 골짜기의 어떤 집 앞에 차를 세우게 한 다음 사장은 운전수를 이상한 창고 같은 방 속에 가두고 혼자 집 안으로 사라진다. 사방이 밀폐되어 있는 그 방에서 주인공은 방안에 자기와 같은 운전수들이 여럿 더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 사장이 사라져들어간 집 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해괴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 집에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룻밤 사이에 한꺼번에 즐길 수 있도록 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고, 그 집 문을 들어선 사람은 한결같이 나체가 되어 은밀하고 교묘하게 꾸며져 있어 바깥에서는 눈치조차 챌 수 없게 장치되어 있는, 그 집 안의 모든 것을 원껏 즐긴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비로소 이유를 깨달았다. 이유는 몰라야 할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실수인데 그 자신의 조심성과는 상관없이 어차피 그가 저지를 수밖에 없는 실수인 셈이다. 운전수는 이전의 운전수들이 그 비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즉 사장과의 약속을 깨고 비밀을 발설했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쫓겨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자신은 결코 이 비밀을 발설하지 않으리라 다시 다짐했다. 그러나 말하고 싶은 것을 계속 참는 고통과 자신이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운전수는 신경과민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감시자로만 여겨져 의심하고 주의력이 결핍된 주인공은 결국 운전수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회사를 쫓겨나고 만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처음부터 모르고 있는 사람은 답답하지나 않을 것이었다. 그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고통스럽다.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일이었던가.
박준의 소설은 현대판 『임금님의 귀』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어떤 임금이 당나귀 귀처럼 커다란 귀를 가졌는데 그것을 비밀로 하기 위해 자신의 귀를 한 번 본 이발사를 모두 죽이고 그 중 용케 목숨을 건진 이발사는 임금님의 귀의 비밀을 말하지 못해 병이 들어 죽을 지경이 되었다. 궁여지책으로 그 이발사는 동구밖 대나무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대면서 자신의 병을 고치게 되는데 이후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밭에서는 이발사가 외쳤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이 울려나오므로 온 백성이 임금의 귀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옛 민화에서와 달리 박준의 소설 속에서는 ‘구원의 숲’이 없다. 사실을 알아버린 운전수는 끝내 고지의 대가를 그 자신이 치러내야 한다.
박준의 소설을 읽고 다시 병원을 찾아간 나에게 김 박사는 박준이 정전 중이었던 간밤에 손전등을 들고 나타난 간호원의 목을 졸랐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박준의 공포의 대상이 어둠이 아니라 전짓불임이 밝혀진다. 그가 전짓불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그의 소설을 연구해 볼 것을 권했다. “환자가 진짜 발작을 일으키도록 심한 공포감을 유발시킨 것은 어둠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 나타난 전지불이었단 말씀입니다. 환자에겐 그 어둠이라는 것이 늘 전지불을 연상시키고 있는 공포의 촉매물이었지요.” 하지만 김 박사는 내 말을 거부하고 “이젠 최소한 환자로 하여금 전지불의 내력을 포함한 모든 비밀을 털어놓게 할 최후의 방법이 찾아진 셈”이라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진짜로 미쳐버린 소설가
“그는 아마 처음부터 정신분열 증세가 숨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의 증세가 단순한 노이로제 증상만이 아니었으리란 말씀이예요.” “박준을 정말로 미치게 한 것은 박사님 당신이란 말입니다. …… 불행하게도 그가 피난처로 찾아온 병원이야말로 진짜 전짓불, 더욱더 무서운 전짓불의 추궁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단 말입니다. …… 박사님은 그 살인적인 사명감과 자신력으로 어젯밤 끝내 박준을 미치게 하고 말았어요.”
나는 수소문을 해서 노모와 누이동생뿐인 박준의 가족을 찾아가 그들에게 박준의 소식을 전하나 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잡지일은 내가 박준에 대해 정신이 팔려 있는 통에 엉망이 되어 있었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화장실에서 우연히 박준의 2년전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그의 전짓불에 대한 공포의 원형이 될 만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다. 박준이 어렸던 6.25 직후에 경찰인지 공비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집에 들이닥쳐 전짓불을 들이대고 누구의 편인지를 물어봤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혼자 눈이 부시도록 밝은 전짓불은 뒤에 가려진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데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어느 편에서건 무서운 복수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와 유사한 절망과 공포가 현재의 박준을 압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터뷰 중 박준은 자신이 지금 어떤 전짓불 아래서 진술하고 있는지 때때로 엄청난 공포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고백했다. 이 날 박준의 누이동생은 또 한편의 소설을 가지고 왔다. 박준이 집을 나가기 전에 자신이 미쳐버리기라도 하면 내다팔라고 맡겼다는 것이다. 나는 그 소설을 맡기로 했다. 그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