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의 후예
김동리 지음 | -
화랑의 후예
김동리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황진사: 궁핍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뼈대있는 집안의 자손, 즉 화랑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물.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한다. 그래서 대단히 희극적이다.
나: 이 글의 서술자. 조실부모하고 숙부의 집에서 산다. 한문의 소양이 상당하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 황 진사의 한심스런 언행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는 선량한 품성의 소유자.
숙부: 금광을 경영하면서 조선의 현실을 걱정하고 급기야는 감옥까지 간다.
숙모: 인자하고 덕이 많은 인물. 황 진사의 몰염치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황 진사에게 도움을 주려 고 노력한다.
관상소에서 첫 대면한 ‘조선의 심벌’ 황 진사
좌중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집중된 듯하였다. 바로 그 때였다. 나와 바로 마주 앉은 접신, 통령의 도인은 그 손톱 자국과도 같이 생긴 조그마한 새빨간 눈으로 몇 번 나의 얼굴을 흘낏흘낏 보고 나더니, “부모와는 일찍 이별할 상이야.” 불쑥 이렇게 외쳤다.
황진사(黃進士)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아침을 먹고 등산을 할 양으로 신발을 신노라니 윗방에서 숙부님이 부르셨다. “오늘 네, 날 따라가 볼래? 저 지리산에서 도인이 나와 사주와 관상을 보는데 아주 재미나단다.” “싫어요. 숙부님께서나 가슈.” 나는 단번에 거절하였다. “오늘은 특별히 한번 따라와 봐……. 무슨 사주관상 뵈는 게 재미나단 말이 아니라, 그런 데서도 배울 게 있느니……. 더구나 거기 모여드는 인물들이란 그대로 '조선의 심벌'들이야.” “조선의 심벌요?” 나는 반쯤 웃는 얼굴로 이렇게 물은즉, 숙부님도 따라 웃으며, “그렇지, 심벌이지.” 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의 심벌'이란 말에 마음이 솔깃해진 나는 등산하려던 신발을 끄르기 시작했다. 파고다 공원 뒤, 번거롭지 않은 길가 ‘중앙여관’이란 곳에 접신, 통령의 간판을 내건 관상소가 있고 여기에 손님을 기다리는 ‘도인’이 있다. 방안에는 술이 묻고 때에 절은 옷을 입고, 볼에 살이 빠진 불쌍한 정객, 불평을 늘어놓는 지사며 문학가, 철학가, 실업가, 회사원, 금광쟁이 등 많은 사람들이 방구석 여기저기서 뒹굴고 있었다. 나는 무슨 아편굴 속에 들어온 것 같아 몹시 불쾌했다. 얼른 나가자고 눈짓을 하였을 때, 숙부는 오히려 이러한 나의 신호를 묵살하고 좌중에게 나를 소개시키셨다. 바로 이때 거무추레한 두루마기에 얼굴이 누르퉁퉁한, 나이 한 육십 가량 된 영감 하나가 방구석에서 육효를 뽑다 말고 얼굴을 돌리며 살아갈 지모(智謀)가 나지 않아서 육효를 뽑고 있다고 하면서 삼촌 곁에 앉았다. 이 사람이 황진사였다. 둘은 이미 알고 있는 사이인 것 같았다. 완장선생(숙부)과는 막역지간이라고 하였다.
좌중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 것 같았는데, 바로 그때 도인이 나의 얼굴을 흘낏 보더니 “부모와는 일찍 이별할 상이야.” 불쑥 이렇게 외쳤다. “형제도 많지 않고, 초년은 퍽 고독해야.”하고, 또 양 눈썹 사이가 명료하고 얼굴이 수려하니 학문에 이름이 있으리라 하고, 코끝과 광대뼈가 나무랄 데 없어서 가슴 속에 왕성한 운세가 있으리라 하고, 끝으로 비록 부모가 없더라도 부모에 못지않은 삼촌이 계셔서 나의 입신 출세에 큰 도움이 되리라 하였다.
나는 좀 쑥스러워서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숙부님과 나를 따라 관상소를 나온 황진사는 때묻은 모자를 벗어쥐고 여러 번 절을 하고는 공원으로 들어가버렸다. 해는 벌써 정오다.
쇠똥 위에 개똥 눈 것을 약이라며 가져오는 몰염치
“거, 쇠똥 위에 개똥 눈 겐데 아주 며, 며, 명약이유.” 한다. 나는 그의 말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해 있으려니까, “허어, 어떻게 귀중한 약인데 그랴!” 하며, 그 물이 도는 두 눈에 독기를 띠고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민망해서 “대개 어떤 병에 쓰는 게죠?” 하고 물은즉, “아, 거야 만병에 좋은걸, 뭐.” 하고 나를 흘겨보고 나서, “거 어떻게 소중한 약이라구……. 필요할 때는 대, 대갓집에서도 못 구해서들 쩔쩔매는 겐데, 괘니…….” 그는 목을 내두르며 무척 억울한 듯한 시늉을 하였다.
가을이 깊었다. 삼촌은 금광일로 집에는 잘 계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황진사가 헛기침을 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 ‘조선의 심벌’이라 소개받아서인지 처음 보았을 때처럼 그렇게 불쾌하거나 우울하지도 않고, 그보다도 다시 보게 된 것이 나는 오히려 반가웠다.
완장어른 안 계시냐고 물어온다. 소리는 전날보다 더욱 어눌하게 들렸다. 그리고 더러워진 두루마기, 그 밖으로 누런 털실이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몹시 추워보였다. 숙부님이 수일 내로는 못 오신다는 말을 듣고 저으기 실망하는 눈치다. 그때 황진사의 입 속에서 육중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잠깐 들어오시라는 나의 말이 안 들렸는지 그는 두루마기 속에서 무엇을 찾는 듯이 더듬더니 “거, 쇠똥 위에 개똥 눈 겐데 아주 며, 며, 명약이유.”한다.
나는 그의 말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해 있으려니까, “허어, 어떻게 귀중한 약인데 그랴!” 하며, 그 물이 도는 두 눈에 독기를 띠고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민망해서 “대개 어떤 병에 쓰는 게죠?” 하고 물으니, “아, 거야 만병에 좋은걸, 뭐.”하고 나를 흘겨보고 나서, “거 어떻게 소중한 약이라구……. 필요할 때는 대, 대갓집에서도 못 구해서들 쩔쩔매는 겐데, 괘니…….” 그는 목을 내두르며 무척 억울한 듯한 시늉을 하였다.
이렇게 한참 문밖에 있으려니까 숙모님이 밖에서 무엇을 하느냐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때 황진사는 남은 밥이 없느냐고 물어온다. 입가에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질하는 모양은 좀 전 흙가루를 내놓으며 당당할 때와는 아주 딴판이다. 나는 나의 점심밥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밥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고 찌개그릇을 긁더니 이내 숟가락을 놓자마자 모자를 쓰고 일어나 나가버렸다. 아까 하던 만병통치약 이야기는 아주 잊어버린 듯이 다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사흘째 되던 날 황진사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책상을 어깨에 멘 친구와 함께. 황진사는 이 책상을 사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하자 그는 헐값이니 사두라는 것이다. 그래도 시큰둥한 나의 표정을 보더니 50전에서 20전, 급기야는 10전 만이라도 빌려 달라고 애걸이다. 황진사는 그날 밥을 먹은 후로 밥을 먹지 못해 친구를 찾아갔는데 이 친구도 돈이 없어서 책상을 내주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팔러 온 것이었다. 한 오 분 뒤 20전을 마련해 가지고 나왔을 때 그들은 무수히 절을 하고는 책상을 도로 메고 가버렸다.
문벌의식과 허풍만 있는 황진사
“일 오너라 -----.” 하는 소리가 마치 ‘사람 살리우’하는 소리같이 바람결에 싸여 들어왔다. 나가보니 황 진사가 연방 손으로 콧물을 닦고 서있는 것이다. 나는 대체 얼어죽지나 않았나 하고 궁금해하던 차라, 이렇게 다시 본 것이 진정 반가웠다.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다. 숙부는 몇 번 집에 다녀가시고 관상소 출입도 더러 한 듯했다. 그 뒤 황진사는 보이지 않았다. 삼촌을 통하여 황 진사가 놀라운 양반집 후손으로 그 자신도 진사노릇을 하고, 자기 문벌에 대한 자존심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진사’라는 호칭은 관상소를 출입하는 장난꾼들이 붙여주었고, 그 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반은 조롱을 섞어가며 부르던 것이 굳어져서 진사행세를 하기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어느 몹시 추운 날. 나는 온종일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이때 마침 황진사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 “일 오너라 -----.” 하는 소리가 마치 ‘사람 살리우’하는 소리같이 바람결에 싸여 들어왔다. 나가보니 황 진사가 연방 손으로 콧물을 닦고 서있는 것이다. 나는 대체 얼어죽지나 않았나 하고 궁금해하던 차라, 이렇게 다시 본 것이 진정 반가웠다.
그동안 친구집에서 지냈고 완장선생을 못 뵌 것이 죄송해 이렇게 찾아왔단다. 나는 흰떡을 사다 숯불에 구워서 그에게 대접을 하고 내 할 일을 마저 하고 있는데 그는 언 것, 구운 것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허겁지겁 집어먹었다. 그런 후 배가 불러 신이 났는지 시경(詩經)을 목청 뽑아 읊조리면서, 성인도 실수를 한다느니 공자가 왜 음탕한 것을 시경에 놓았는지 알 수 없다는 식으로 자기자랑 비슷한 말을 한다. 그래도 내가 모른 체하고 내 할 일만 하자 이제는 두루마기자락을 젖히고 책 한 권과 솔잎 한 줌을 꺼낸다. 무슨 책이냐고 묻자, 지략의 조종이오 조화의 근본인 주역이라고 한다. 나는 관상소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지략이 생각나지 않아 육효를 뽑아보았다’ 한 것을 들은 일이 있어서 그가 얼마나 지략과 조화를 부려보고 싶어하는 위인인가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략과 조화가 겨우 ‘쇠똥 위에 개똥 눈’ 흙가루 약과, 친구에게 책상을 들리고 다니는 것쯤인가 하고 생각할 때,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나왔다.
좋은 규수가 있으니 장가를 들지 않겠느냐고 그는 여러 차례 나를 졸랐다. '좋은 규수'가 어딨느냐고 물으면, 단번에 친구의 딸이라며 무슨 승지, 무슨 자작 등 대갓집 따위를 꼽았다. 색시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냐고 하면 매양 자기의 누르퉁퉁하게 부은 얼굴을 가리키며 이렇게 아주 유복스럽게 생겼다고 한다. 내가 웃으며, 색시가 일재 선생 같아서야 좀 재미 적다고 하면, “아, 일등 규수라는데 그랴.”하고 화를 내었다. “그렇지만 너무 육중해서야.”하면, “아, 거기 식록이 들었는걸 그랴. 아, 오죽해 일등 규수라는데 그래도 못 믿어서 그랴.” 하고 기를 썼다.
돈이 없다면서도 과부장가는 가기 싫은 황진사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황 진사의 닫힌 입 가장자리에 미미한 경련이 일어나며, 힘없이 두 무르팍 위에 놓인 그의 두 손은 불불불 떨리고 있었다. …… “당찮은 말씀유 ……. 흥, 과, 과부라니 당치 않은 말씀을 ……” …… “황후암 육대 종손이유.”
가끔 황진사는 나에게 혈육이 없는 것을 한탄했다. 명가 종손으로서 자손이 없는 것은 하늘이 무심해서라고 하였다. 언젠가는 숙모님이 황 진사에게 어느 규수가 마음에 드느냐고 물으니 “하나는 열아홉 살이고 하나는 갓 스물인데, 열아홉짜리는 성이 오씨고, 갓 스물짜리는 윤씨”라 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황진사를 평소 딱하게 여겨오던 숙모님이 중매를 들게 되었다. 숙부님도 찬성하였다. 숙모는 황진사에게 젊고 돈 있는 색시가 있는데 장가를 들라고 권했다. 황진사는 돈이 없어서 힘들지 않느냐고 하면서도 얼굴에는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규수 나이와 집안사정을 묻는 황진사는 이미 입이 벌어져 침을 흘리고 있었으며 눈에는 광채를 띠고 있었다. 덩달아 신명이 난 숙모는 과부라고는 하나 삼십이 안 되었으니 잘 되었다며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과부라는 말을 들은 황진사의 얼굴빛이 확 변하고 말았다.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황진사의 닫힌 입 가장자리에 미미한 경련이 일어나며, 힘없이 두 무르팍 위에 놓인 그의 두 손은 불불불 떨리고 있었다. …… “당찮은 말씀유 ……. 흥, 과, 과부라니 당치 않은 말씀을 ……” …… “황후암 육대 종손이유” 숙부와 숙모는 무안하고 한편 황당하여 미안하다, 농담이다 하면서 황진사에게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 조상이 대체 신라적 화랑이구랴!
“아, 내 조상께서는 모르고 지낸 윗대 조상을 근일에 와서 상고했구랴.”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나는 너무 어이없어 어리둥절해 있노라니 “왜 그루 어디 편찮우?” 한다. 괜찮으니 얼른 마저 이야기하라고 하니, “아, 이럴 수가 ……. 온, 내 조상이 대체 신라적 화랑이구랴!” 하고 혼자 감개해서 못 견디는 모양이었다.
해가 바뀌고 새해가 되었다. 숙부는 역시 금광일에 바빠 숙모님과 단둘이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황진사가 정월 초하룻날에 숙부님께 새해인사를 드리려고 방문했다. 목소리는 호기가 있었고, 두루마기는 빨아 입었고, 난데없이 시커먼 색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숙모님은 반가운 생각을 가지며 술상을 차려주셨다. 술을 두어 잔 들이키고 나서 군자끼리는 설을 이렇게 쇠야 한다며 무르팍을 쳤다. 그는 거의 한달 동안을 찾아왔다. 그 뒤 한철 동안 그는 발길을 끊고 나타나지 않았다. 봄을 지나 여름이 지나도록 나는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그러던 참에 숙부님이 대종교 사건으로 검거됐다. 나는 어느 절간에라도 들어가 더운 여름을 피하려했으나 포기하고 괴로운 여름을 지내야만 했다. 숙부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한번은 숙부님을 면회하고 광화문 앞 길거리에서 황진사를 만났다. 형편이 다소 나아졌는지 연록색 인조견조끼에 검은 유리안경을 썼다. 반가워하는 인사를 한 후 그는 무슨 중대한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이리 잠깐 오, 날 좀 보.’하고 나를 한 쪽 구석으로 불렀다. 나는 혹시 숙부의 피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나보다 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긴장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는 “아, 내 조상께서는 모르고 지낸 윗대 조상을 근일에 와서 상고했구랴.”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나는 너무 어이없어 어리둥절해 있노라니 “왜 그루 어디 편찮우?” 한다. 괜찮으니 얼른 마저 이야기하라고 하니, “아, 이럴 수가 ……. 온, 내 조상이 대체 신라적 화랑이구랴!” 하고 혼자 감개해서 못 견디는 모양이었다.
다시 두 달 후에 숙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오다가 필운동 앞길에서 황진사를 보았다. 앉은뱅이, 수족병신들, 중풍쟁이 등등에 둘러싸인 가운데 삐쩍 마른 두꺼비 한 마리와 흙빛 연고약을 앞에 두고 약을 쓰는 설명을 하는 위인이 있었다. 한참인가 약선전을 하던 그가 약의 효능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하여 옆에 앉았던 황진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가 소개하는 황진사는 조선에서 유명한 선생으로 두어 달 전부터 충치를 앓으셔서 병석에 누웠다가 이 약으로 말미암아 나아서 이렇게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순사가 왔다.
여기까지 보던 숙모님은 나에게 눈짓을 하시며 앞서 가셨다. 나도 숙모님 뒤를 좇아 한참 오다 돌아본즉, 아까 연설을 하던 작자는 빈 과자상자에 마른 두꺼비와 고약통을 담아 가슴에 안고, 황진사는 점잖게 두 손을 옆구리에 찌른 채 순사를 따라 건너편 파출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황진사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
소설 속에서 글을 써나가는 자를 서술자라 한다. 시점이란 서술자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와 관련된 것이다. 3인칭전지적작가시점은, 서술자가 소설 밖에 있으면서 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안다는 전제 아래 소설을 쓴다. 따라서 서술자는 각 인물들의 생각까지도 알고, 때로는 이런 것을 소설에 직접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 시점이 1인칭의 경우는 그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시점이 1인칭이면 서술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다. 따라서 다른 인물들의 생각은 전혀 알 수가 없고, 그들의 행동이나 대화를 통해서만 그 인물의 생각을 유추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화랑의 후예』는 1인칭관찰자시점이다. ‘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자, 이 소설을 쓰는 서술자다. 그리고 관찰자시점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황 진사, 숙모, 숙부를 관찰만 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화랑의 후예』를 읽는 묘미는 이러한 시점과 관련해서 생각할 때 더욱 도드라진다. 숙부 집에 책상을 팔기 위해 찾아온 이후 발길이 뜸하던 황 진사가 몹시 추운 어느날에 다시 찾아왔다. 그 부분을 소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밖에서 / “일 오너라 ------.” / 하는 소리가 마치 ‘사람 살리우’하는 소리같이 바람결에 싸여 들어왔다. 나가보니 황 진사가 연방 콧물을 닦고 서 있었다. … 이렇게 다시 보게 된 것이 진정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