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당
정비석 지음 | -
성황당
정비석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순이: 14살 때 현보에게 시집와 그녀를 탐내는 두 남자의 유혹에도 현보만을 바라본다. 성황당을 정성을 다해 모시면 모든 일이 잘 된다고 믿는 순박한 여자.
현보: 순이와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산골 숯지기. 김주사의 고발로 경찰에 체포된다.
김주사: 돈 많고, 심술도 많은 마을의 산림 간수. 현보를 도벌죄로 고발한 사이 순이를 차지하려 하나 칠성이에게 혼이 난다.
칠성: 탄광에서 일하는 현보의 친구. 유부녀인 순이에게 마음을 둔다. 현보가 체포당해 없는 틈을 타 순이를 옷으로 유혹하여 도망가려고 한다.
신발과 댕기 사오기만 기다리던 순이
순이는 시집올 때에 성황당 앞에서 배례하고 배필이 되기로 맹세한 것을 새삼스러이 행복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순이는 이 세상 모든 재앙과 영광은 성황님께서 주시는 줄로만 믿는다.
순이는 장에 간 남편 현보가 신발과 댕기를 사가지고 빨리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새로 산 붉은 댕기와 신발을 신고 단오날 마을로 내려가 그네를 뛸 생각만 해도 순이는 금방이라도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신새벽에 남편 현보가 집을 나설 때 순이는 일찍 돌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현보는 댕기는 사서 뭘 하느냐며, 그럴 돈이 있으면 술이나 마시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아침 일을 생각한 순이는 성황당에 남편이 신발과 댕기를 사오기를 축수하고 나서 댕기와 고무신을 사오지 않으면 사생결단으로 싸우리라 다짐한다. 순이는 저녁이 되자 조급한 마음에 부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현보는 오지 않았다. 순이는 불안한 마음에 가쁜 숨을 쉬며 현보를 마중하러 시오리 고개에 올랐다.
그때 저편에서 술에 취해 흥어리 타령을 하며 오는 현보의 노래가 들렸다. 순간 순이는 댕기와 고무신의 꿈이 깨어진 것으로 생각하니 화가 났다. 순이는 길가에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현보를 노려보았다. 현보는 그대로 지나치려다 순이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어깨를 붙잡으려는 현보를 뿌리치며 순이는 신발을 사왔느냐고 쏘아붙인다. 뜻밖에 현보는 신발을 사왔고 그 바람에, 순이는 금방 감정이 풀리며 그가 반갑기만 했다. 순이와 현보는 날이 저문 줄도 모르고 풀밭에 주저앉아 새로 산 고무신을 신어 본다. 현보는 순이의 허리를 껴안았다. 순간 술 냄새가 풍겨왔다. 순이는 고무신을 사다준 현보가 고마워 성난 범처럼 덤벼드는 현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순이는 그날 밤이 새도록 자지 않고 신만 신었다 벗었다 했다. 순이가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가 성황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타이르던 것을 기억하며 순이는 지금 고무신을 신게 된 것도 틀림없는 성황님의 은덕이라고 믿었다.
나물 캐고 나무 하며 행복했던 현보와 순이
온갖 나무를 키워주고 온갖 풀을 키워 주는 것이 산이 아니더냐? 현보를 낳아 준 것도 산이었고. 현보를 먹여살리는 것도 산이었고, 현보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돌아간 곳도 역시 산이 아니더냐? 현보는 산 없는 곳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순이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신을 또 한번 신어보고는 밖으로 이리저리 다니다 성황당에 가 공손히 돌을 던졌다. 순이는 돌을 던질 때가 가장 행복했다. 합장 배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현보가 일어나 숯가마로 일하러 나가려는 채비를 한다. 순이는 현보를 보고 성황님을 뵙고 가라며 돌을 모아 준다. 현보는 그런 순이를 보며 열 네 살에 자기에게 시집와서 4년이 지나 제법 아내꼴이 박힌 순이를 보며 행복해 했다. 현보에게는 이 천마령과 순이만이 천하의 모든 것이었다. 현보를 낳아준 것도 산이며 현보의 어머니가 죽은 곳도 역시 산이었다. 현보는 산을 떠나선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었다. 순이와 산 없는 곳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사이에 현보는 숯가마에 도착했다. 숯가마 속에는 그저께 모아둔 나무들이 그대로 있었다. 현보는 옆에 쌓여 있는 불나무(火木)를 도끼로 패기 시작했다. 현보의 장작패는 소리가 온 산에 울렸다. 장작을 패던 현보는 조반을 들고 올 순이를 기다렸다. 패던 장작을 마저 패고 허리를 펴며 일어서니 순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현보는 순이가 싸온 강낭밥 두 그릇과 산나물을 먹고 마지막으로 삶은 감자를 먹었다. 조반을 먹고나자 현보는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산 속으로 들어가고, 순이는 숯가마에 불을 때고 나물을 뜯으러 나섰다. 한나절이 되자 날은 점점 무더워지고 아궁이의 불을 되살리던 순이의 얼굴은 달아오르고 전신에 땀이 흘렀다. 웃통과 젖가슴 사이로 땀방울이 줄줄 흘렀다. 순이는 나무를 듬뿍 지피고 나서는 개울가로 내려가 옷을 벗어 바위 위에 내던지고 첨벙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순이를 탐하는 김주사
순이를 눈에 걸고 있는 사람이 둘이 있었다. 하나는 김주사이고, 또 한 사람은 산너머 광산에서 일하는 칠성이였다.
목욕을 마치고 바위에 앉아있는데 천마령에 먹구름이 솟아올랐다. 순이는 숯가마에 나무를 지펴 넣어야겠다고 생각에 옷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런데 돌 위에 벗어둔 옷이 보이질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생각하고 혼자 안타까워하는데 저편 숲 속에서 커다란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순이는 아래를 가리며 언덕을 쳐다보니 산림간수 김주사가 웃으며 순이의 옷을 들어보였다. 순이는 속으로 욕을 했지만 밖으로 뱉을 순 없었다. 순이는 김주사에게 옷가지를 달라고 사정을 하지만 김주사는 순이를 오히려 놀렸다. 못 이기는 척 옷가지를 들고온 김주사는 순이의 벗은 몸을 훔쳐보며 음흉한 눈길을 보냈다. 순이는 서둘러 옷을 입고 숯가마로 뛰어가는데 뒤따라온 김주사는 순이에게 좋은 옷을 사주겠다며 순이를 희롱했다.
순이에게 마음을 둔 사람은 김주사 외에도 광산에서 일하는 칠성이가 있었다. 순이는 칠성이가 김주사보다 잘 생겨 오히려 맘에 드나 현보를 두고 그를 좋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나기가 내리자 순이와 김주사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했다. 이틈에 김주사는 순이를 또다시 유혹한다. 하지만 순이는 어림이 없다. 김주사는 이런 순이에게 산에 나무를 베는 현보가 징역가도 좋으냐고 협박했다. 순이는 김주사의 얼굴을 내갈기고 그를 피해 집으로 돌아온다. 김주사는 달아나는 그녀를 보며 보복을 결심했다.
이틀 후, 김주사와 읍내 순경이 현보를 잡으러 왔다. 순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잡혀가는 현보를 좇아 순사에게 현보가 언제쯤 나올지 물으니 순사는 ‘한 십 년 있다’며 웃는다. 순이는 십 년이란 말에 아득해지고 현보의 모습이 보이질 않자 울음보가 터져 통곡을 했다. 현보가 잡혀간 것은 하는 수 없는 일이고 이제 혼자 벌어먹어야 할 것을 생각한 순이는 숯가마로 가 장작을 패고, 산나물도 캐 모았다. 늦게까지 일을 하다 집에 와보니 김주사가 능청맞게 아랫목에서 자고 있다. 순이는 그가 미웠지만 현보를 생각해 못되게 굴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현보는 잡혀가고 김주사의 음흉한 생각을 들어주긴 싫었다. 김주사는 현보를 내보내주겠다고 순이를 꼬셨다. 순이는 점점 울화가 치밀었다. 그까짓 사내 하나쯤은 겁날 것 없었다. 김주사는 다시 수작을 부렸지만 순이는 잠자코 있었다. 순이는 밤이 늦어도 김주사가 가지 않자 집으로 가라고 쏘아붙였다. 김주사는 오히려 지분대며 자고 가야겠다고 한다. 그가 좀처럼 돌아갈 생각을 안 하자 밖으로 달아난 순이는 성황님께 현보가 속히 나오게 해달라고 빌며 돌을 던진다. 그러는 동안에 어둠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칠성이가 현보 잡혀갔다는 소리를 듣고 산너머에서 찾아온 것이다.
순이는 칠성이가 찾아와 준 것을 다행히 여겨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김주사는 순이가 웬 낯선 사내를 데리고 들어오자 당황한다. 칠성이는 방안의 김주사를 노려봤다. 두 사내 사이에는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고 언제 싸움이 일어날 지 모르는 긴장된 순간이 됐다. 김주사는 질식할 만한 긴장을 이겨 낼 수 없었는지 먼저 점잖게 말을 건다. 칠성이는 여자 혼자 있는 밤중에 산림간수가 무슨 일이 있어 들렸냐며 시비를 건다. 이윽고 둘 사이에는 싸움이 시작되고 서로가 욕을 하며 엎치락뒤치락 수라장이 됐다. 이어 비명이 들려왔지만 싸움 탓에 등잔불이 꺼져 순이는 그것이 누구의 비명인지 알 수 없었다. 순이는 어쩔 줄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며, 성황님께 쌈을 말려달라고 빌었다.
순이를 탐하는 칠성이
나 말이야, 순이! 그동안 한 삼 백 리 되는 곳에 도망을 갔드랬어! 그 자식 대가리를 깨뜨려 주었거든! 그래서 도망을 가기는 갔지만, 암만해도 순이 생각을 잊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 순이를 데리러 왔어!"
이 삼 일이 지나도 현보는 돌아오질 않았다. 칠성이는 지난 번 김주사와 싸운 후 나타나지 않았다. 순이는 낮이면 산나물을 하고, 밤이면 성황당에 치성을 드리면서 그날그날을 보냈다. 현보가 잡혀간 후 숯은 한 가마를 구웠을 뿐이었다. 순이는 일을 하다가도 현보 생각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순이는 현보도 결국엔 성황님 덕분에 나올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해가 저물자 까마귀가 순이네 집 위에서 울었다. 순이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성황당으로 달려가 오래도록 치성을 드렸다. 그리고 현보가 고무신을 사오던 날을 떠올리며 현보가 나오면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성황님께 빌었다.
순이는 문득 잠결에 여우소릴 들었다. 순이는 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우가 울 때에 그 입을 향한 곳에는 반드시 나쁜 일이 있다는 것이다. 순이는 일어나 어디서 여우가 우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알 수 없었다. 순이는 그
저 자신을 향해 우는 것만 같았다. 순이는 다시 성황님께 정성이 부족한 탓에 까마귀가 울고 여우가 짖는다 생각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빌고 또 빌었다. 하룻밤을 꼬박 치성을 드렸다. 다음날 아침 순이는 다시 마음이 맑아졌다. 순이는 집을 나서 숯가마로 가려는데 난데없는 까치 두 마리가 날아와 지붕 위에 앉았다. 순이는 기뻤다. 순이는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혹시나 현보가 오지 않나 언덕길을 내려다보곤 했다. 한낮이 되자 찌는 듯 더웠다. 순이는 웃통을 벗은 채 나물을 하다 말고 풀밭에 주저앉았다. 그때 칠성이가 나타났다. 순이는 반가웠다. 칠성이는 김주사를 때리고 삼 백 리나 되는 곳으로 도망쳤다가 순이를 잊을 수 없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칠성이는 순이에게 다가와 함께 도망을 가자고 했다. 순이는 저고리를 입으며 자기가 왜 칠성이를 따라가야 하는지 도로 물으며 현보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칠성이는 현보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것과 숯을 굽는 일도 이제 나라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앞으로 숯을 굽는 일이 어려워질 것이라 한다.
그리곤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순이를 꼬득인다. 순이는 그쯤이야 성황님께 빌면 모두 해결된다며 칠성이의 말을 받아넘긴다. 칠성이는 분홍 항라적삼과 수박색 목 메린스 치마로 순이를 유혹하며 같이 멀리 도망가자고 한다. 칠성이가 내민 옷을 보는 순간 순이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새로 사 놓은 고무신을 생각하면서 순이는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칠성이는 순이의 손을 잡아 끌었다. 순이는 가만히 웃기만 했다. 지금 순이에게는 칠성이가 현보와 꼭 같이 정답게 보였다.
그날 저물녘에 순이는 칠성이를 따라 먼길을 떠났다. 머리에는 붉은 댕기를 드리고, 게다가 분홍 항라적삼과 수박색 치마를 떨쳐입고, 횐 고무신까지 받쳐신고 나서니, 순이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리운 현보에게로
순이는 문득 천마령 안 골짜기 자기 집이 그리웠다. 오막살이일망정 고대광실 부럽지 않게 정다운 그 집이었다. 지금쯤은 앞산 뒷산에서 부엉이, 접동새가 울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삼십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여기부터가 싫었다. 순이는 고운 옷 입은 기쁨도 사라졌다. 그는 불현듯 현보가 그리웠다.
칠성이는 순이를 재촉했다. 김주사에게 걸리면 큰일이기 때문에 밤을 택해 길을 떠났다. 순이는 가벼운 걸음으로 삼십 리 길은 가뿐히 걸었다. 그러나 천마령 고개를 넘고 들길로 들어서자 순이는 점점 불안해졌다. 순이는 풀밭에 주저앉아 쉬어가고 싶어 칠성이를 불러세웠다. 칠성이는 옷에 풀물이 배면 안 된다며 앉지 말라 했다. 순이는 장차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불안해졌다. 순이는 가는 곳에 산이 많은지, 노루나 꿩은 있는지, 부엉새랑 뻐꾸기가 있는지, 도라지와 고사리 같은 산나물이 있는지 칠성에게 물었다. 칠성은 산도 없고 들뿐이며 짐승이나 새는 물론 산나물도 없단다. 하지만 칠성이는 자신과 가는 곳은 더 좋으니 염려 말라며 순이를 달랜다. 하지만 순이는 점점 더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가는 곳이 아무리 좋다 해도, 산이 없고 나무가 없다면 그 허허벌판에서 무엇에 마음을 의지하며 살까?
순이는 고운 옷 입은 기쁨도 사라지고 불현듯 현보가 그리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마령과 현보를 떠나서는 살아갈 재미도 없거니와 살지도 못할 것 같았다. 더구나 죄를 지으면 성황님이 벌을 준다는데, 삼백 리가 멀다고 벌 못 주랴 싶었다. 순이는 걸음을 재촉하는 칠성이에게 뒤를 보고 가겠으니 먼저 앞서라고 말하곤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순이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순이는 얼른 치마와 저고리를 벗어 나뭇가지에 걸고 고무신을 든 채 오던 길을 되돌아서 달음질쳤다. 캄캄한 산길이지만 순이는 익숙하게 달렸다. 고개를 올라서서 굽어보니 순이의 집에는 빨간 불이 비쳤다. 순이는 순간 현보가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순이는 집을 향해 뛰어가며 ‘성황님’을 부르짖었다. 모든 것이 성황님 덕택으로 여겨졌다. 그때 방안에서 익숙한 현보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토속적인 삶의 건강성으로 대중적 호응
정비석의 초기 대표작인 『성황당』은 1937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 응모하여 당선된 단편소설이다. 작가 스스로 ‘원시적 자연 속에서 동화되는 인간의 순수함’이라고 했듯 이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동화를 통한 토속적 삶의 아름다움을 표출하고 있다. 정비석의 초기작품은 주로 토속적인 신앙에 바탕을 둔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삶의 건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 소설 역시 그러한 작가의 자연친화사상과 원시적 건강성을 주제로 한다.
이 작품은 자연적․토속적 생명력의 화신이라 할 주인공 순이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 삶의 근원에 접근한다. 당시 지식인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심리주의적 작품경향에 흥미를 잃고 있던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새로운 원시세계를 대하는 듯한 신선하고 약동하는 인상을 심어줬다. 이 소설이 창작된 1930년대 후반에는 이런 경향의 소설이 예외적인 것에 속했다. 이때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한층 가혹해지면서 현대인의 불안심리를 그린 모더니즘이 우세하던 때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정비석은 꾸밈없는 토속적 삶의 세계를 쉬운 필치로 보여줌으로써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인간의 원시적인 애정세계 아름답게 그려
『성황당』은 두메산골에서의 생활과 토속신앙, 성적 분위기를 조화시켜 인간의 원시적인 애정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에로스의 문제를 대담하게 끌어들임으로써 인간애욕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킨다. 애욕의 장면으로 천마재에서 남편인 현보와의 일, 나체로 김주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 칠성이와 야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세 장면 모두 자연과 함께 조화된 아름다운 원시의 세계에 가까운 묘사일 뿐 퇴폐적이거나 외설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애욕의 장면을 자연스럽게 드러냄으로써 자연주의, 원시주의에 대한 작가의 애착을 보여준다. 자연주의, 혹은 원시주의는 건강한 자연이 도시의 문명세계보다 훨씬 선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 짧은 단편에서 순이가 성황님께 비는 장면이 19번이나 나올 정도로 자신의 모든 운명을 토속적인 자연신에 의지하면서 살고, 부분 부분 묘사되는 내용에서, 주인공들의 삶은 자연의 일부로 그려진다. 그래서 소설의 결말에서도 주인공 순이는 첩첩산중의 그 터전으로 다시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