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
정비석 지음 | -
자유부인
정비석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장태연: 소장파 한글학자로 대학교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인물로 한때 제자에게 연정을 품기도 하지만 곧 회개하고 충실한 가장의 품위를 회복한다.
오선영: 장태연의 아내. 허영심에 사로잡힌 여인으로, 옆집의 젊은 대학생에게 춤을 배우고 양장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점점 가정에서 벗어나는 ‘자유부인’의 행로를 밟는다.
오병헌: 오선영의 오빠이며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정치모리배로 결국 선거에서 낙선하고 만다.
오명옥: 오선영의 조카딸. 자유주의 사상에 젖어 있는 처녀로, 신춘호와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신춘호: 오선영의 옆집에서 하숙하는 대학생. 인생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한량 같은 인물이다. 오명옥과 사귀면서도 그녀의 고모인 오선영을 춤으로 유혹한다.
백광진: 사업자금 제공을 미끼로 여인들을 농락하는 사기꾼.
한태석: 이월선의 남편으로 오선영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지만 부인에게 꼼짝 못한다.
최윤주: 오선영의 동창으로 이혼녀. 백광진의 사기행각에 걸려들어 모든 것을 잃는다.
박은미: 미군부대에 다니면서 장 교수에게 한글강습을 받는 인물. 장 교수의 제자인 원효삼과 결혼한다. 이월선: 기생출신의 유한마담으로 한태석의 부인. 오선영이 일하는 파리양행 주인.
변화의 바람
지금으로부터 칠십여 년 전에 노라라는 여성은 자식과 남편을 버리고 인형의 집을 나왔다. 그 당시에는 그것도 하나의 혁명이었다. 성인군자 같던 장태연 교수는 건넛집 처녀의 아름다운 종아리에 가슴이 설레었고, 현모양처이던 마누라는 가정에 불만을 품고 담배도 피워보고 입술도 허락해가면서 옆집 대학생에게서 춤을 배우고 있다. 모두가 혁명인 것이다.
한글에 관한 일이라면 1단짜리 신문기사에도 천하가 뒤집히는 듯한 중대성을 느끼는 장태연 교수는 철자법간소화에 대한 문교당국의 담화읽기에 여념이 없다. 장교수의 아내인 오선영은 남편보다 일곱 살 아래인 서른 다섯이지만 서른 안팎으로밖에 안 보이는 정열적인 외모를 지녔다. 그녀는 마침 동창회인 화교회가 있는 날이라며 남편의 양해를 구한다. 화교회는 각계 지도자적 입장에 있는 부인들과 실업계의 중진 부인들만 모이는 동창모임이다. 남편의 승낙을 받은 뒤 한껏 차리고 나온 오선영은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옆집 대학생 신춘호를 만났다. 신춘호는 오선영에게 젊어 보인다고 치켜세워주며 같이 길을 나섰다. 가던 중 동창 최윤주를 만나 함께 호화로운 화교회장에 도착한다. 회원들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면서 오선영이 느끼는 것은 가난의 비애였다. 그녀는 남편의 무능을 원망하며 한숨을 내쉰다.
국회의원인 오병헌은 차기선거를 위해서 지역구에 중학교를 세우고자, 지역유지들을 모아놓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동창회 모임 후 오빠네 집에 들른 오선영은 그런 오빠와 올케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화교회장에서 오빠의 후원자인 한태석의 부인이 화장품가게를 운영하고 현재 대리 운영자를 구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오선영은 선뜻 자신이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선영은 친정 오빠의 집에 들러, 가게 운영에 대해 오빠와 상의를 하다 마침 놀러온 한태석을 만나 쉽게 허락을 얻어냈다. 친정을 나오다가 오선영은 우연히 조카딸 오명옥과 신춘호가 연애하는 사이임을 알게 된다. 귀갓길에 오선영은 신춘호를 만나고 무료 댄스강습을 제안 받는다. 허영심 많은 선영은 선뜻 댄스 강습을 허락한다.
한편, 미군부대 타이피스트로 두 집 건너 사는 박은미는 오선영이 부탁한 화장품을 들고 찾아왔다 가 장 교수를 만나자 미군 부대 여자들을 위해서 한글 강습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 장 교수는 젊은 여자가 한글에 관심을 갖는 데 호감을 느낀다. 선영은 취직을 위해서 집에서 일할 아이를 구해오고, 남편에게 부업으로 취직을 하겠다고 말하며 마침내 허락을 얻어낸다. 마침 레코드 소리가 들려오자 선영은 댄스를 배우려고 옆집에 신춘호를 찾아간다. 노골적인 신춘호의 유혹을 받아들이면서 오선영은 춤에 열중하기 시작한다.
사회인 선영
가정부인이 취직했다는 것은 사회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사회는 가정처럼 무풍지대는 아니다. 사회에는 유혹도 있고 경쟁도 있으리라. 오선영 여사가 자유부인으로서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처결해 나아가는가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역량에 달려 있는 문제였다.
선영은 올케의 추천장을 들고 종로에 있는 파리양행의 주인 이월선 여사를 찾아간다. 예전 유한마담 출신인 이월선이 갑자기 남편인 한태석과의 관계를 묻자 오선영은 이내 불쾌한 감정을 갖는다. 파리양행은 그리 큰 가게는 아니었으나 외래품만 취급하는 고급상점이다. 오선영의 일은 주인을 대신하여 직원들을 감독하고 그날 매상고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자기 세상을 만난 듯이 오선영은 사업수완을 발휘해서 가게매상을 올려놓는다.
어느날 무역회사 사장 명함을 가진 백광진이 나타나 고액의 고급화장품을 산다. 이후 백광진은 사업자금을 제공하겠다며 선영에게 접근한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자, 가게에는 한태석이 기다리고 있다가 오선영에게 화장품을 사서 맡기며, 차 한 잔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가게의 근황을 물어보며 선영의 의견을 묻는다. 선영은 양품업까지 겸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한태석은 흔쾌히 동의하면서 부인을 설득하겠다고 말하며 선영에 대한 호감을 내비쳤다.
한편 수업을 마친 장 교수는 박은미와 전화를 한 후 종로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전당포에 예물시계를 맡기고 돈을 마련한 장 교수는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장소에 나갔다. 저녁을 먹고 박은미가 마련한 초대권을 가지고 미국 공보원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관람한 뒤, 슬쩍 은미의 마음을 떠보며 가슴 설레 한다. 차를 마시고 은미와 동행하던 장 교수는 아내의 오빠인 오병헌을 만나자 당황하여 아내에게 고자질하지 않기를 빈다.
처남과 함께 집에 도착한 장 교수는 처남으로부터 중학교 교장직을 제의 받지만, 그것이 재선을 위한 선거용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선영은 옆집에서 레코드 소리가 들려오자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몰래 신춘호의 방에 들어간다. 선영은 신춘호와 춤을 추면서 신춘호의 남성미에 점차 끌리고 쉽게 입술을 허락했다. 한편 선영이 열심히 춤을 배우고 있는 동안 장 교수는 낮에 만난 은미의 환상에 사로잡혔다.
다음날 선영은 가게에 앉아 한태석이 맡긴 화장품을 보면서 그가 다시 나타나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어느날 이월선 여사는 선영에게 사업문제를 상의하면서 남편 한태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가게에 돌아온 오선영은 백광진에게서 만나자는 편지를 받지만 쉽게 넘어가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약속을 어길 작정을 한다. 그 사이에 최윤주가 찾아와 화교회의 임시모임 때 열릴 댄스파티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파티에는 반드시 애인을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야기 끝에 최윤주는 자신은 이혼녀이기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도와달라고 말한다. 이때 최윤주의 정부인 백광진은 최윤주가 오선영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저녁약속을 취소한다. 선영은 생각과는 달리 약속이 취소돼 우울해 하고 있는데 마침 한태석이 가게에 들어왔다. 백광진이 두고간 명함을 보며 한태석과 얘기하던 오선영은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부인하지 못했다. 그에게 댄스 파티에 대해 얘기하고 선영은 한태석과 동행할 것을 결심한다.
한글강습회로 귀가가 늦는 남편을 기다리던 선영은 대담하게 신춘호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신춘호와 춤을 췄다. 아이들이 걱정을 하자 그녀는 오히려 엄포를 놓으며 아버지에게 발설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마침 장 교수가 들어오고 선영은 아이들이 원해서 전축을 빌려왔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다음날 큰 아이가 장 교수에게 그 일을 고자질한다. 오선영의 행각에 놀란 장 교수는 아내를 걱정하지만 별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는 곧 박은미 생각에 빠져들었다.
오선영은 가게 일을 끝내고 신춘호와 25시 다방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댄스장으로 갔다. 선영은 댄스장에서 조카인 명옥을 만났다. 명옥은 자유주의자로 신춘호와 잘 어울렸다. 선영은 이런 명옥이 신춘호와 춤추는 장면을 질투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선영이 댄스장에서 춤을 추고 있을 때, 장 교수는 박은미를 만나 저녁을 먹으며 댄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은미는 자신의 약혼자이자 박 교수의 제자인 원효삼의 성적을 올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완고한 장 교수는 그것만은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파리양행이 양품점을 겸하게 된 어느날 선영은 백광진으로부터 외상으로 물건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다소의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선영은 그에게 물건을 보냈다. 이를 지켜보던 미스 윤은 미스 김이 이월선의 스파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오래간만에 집에 일찍 들어온 선영은 박은미의 애인인 원효삼의 방문을 맞았다. 그는 장 교수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선영에게 선물상자를 주며 성적을 올려달라는 부탁과 곧 은미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단순한 과자상자인 줄 알았던 선물상자에는 삼만 원이 들어있었다. 마침 들어온 남편에게 선영은 원효삼이 왔던 사실을 알리고 그가 박은미와 결혼할 것이라는 것과 과자상자를 주고 갔다는 말을 전한다. 장 교수는 박은미에게 들은 말도 있고 해서 불쾌하게 과자상자를 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선영을 책망했다. 하지만 선영은 남편의 책망은 무시하고 그 돈으로 투피스를 맞추고, 남편 몰래 원효삼의 성적을 30점에서 80점으로 고쳐놓는다.
최윤주와 묘한 경쟁심리를 갖고 있는 선영은 윤주의 핸드백을 보고 잠시 백광진과의 관계를 의심했다. 윤주에게 새로 만든 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선영은 계에 가입하라는 윤주의 제의에 솔깃해졌다. 또 윤주가 명동에서 수예점을 할 예정이라는 말에 선영은 백광진에게 전화를 걸어 사업자금에 대해 물었다. 그 무렵 선영을 만나고 온 윤주는 백광진의 사무실에서 사업진척 상황을 묻고는 세관 압수품 경매건에 대한 투자제의를 받았다. 이 모든 것이 백광진의 사기임을 모르는 최윤주는 오히려 그에게 일이 잘 되도록 부탁까지 했다. 백광진과의 불만스런 통화에 불안해진 선영은 그에게 환심을 사려고 궁리를 하던 차에 선거 자금을 빌리러 온 올케의 방문을 받았다. 선거자금을 거절한 선영은 윤주가 말한 계에 대해 새롭게 생각했다.
어느날 파리양행을 방문한 한태석은 선영을 데리고 거리로 나왔다. 두 사람이 거리를 활보하는데 이내 미스 김에게 들키고 말았다. 선영은 미스 김의 고자질이 걱정되었지만 언젠가는 한태석을 꼭 유혹하리라고 다짐했다.
한글강습을 한 지 석 달이 된 장 교수는 아리송한 박은미의 태도를 떠올리며 집으로 갔다. 그리고 남편에 대해서 무관심한 채 화장에만 열중하는 아내에게 불만스런 시선을 던졌다. 선영은 낮에 만난 신춘호와의 약속을 위해 밤 화장을 하고 남편 몰래 신춘호의 집으로 갔다. 신춘호는 노골적으로 선영을 유혹한다. 선영은 신춘호의 유혹이 싫지 않았지만 때 맞춰 자신을 찾으러 온 아이들에 의해 순간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갔다.
허영 무한
장태연 교수가 마누라 단속에 조금만 엄격했던들 오선영 여사가 그처럼 허영의 날개를 펴지는 못했으리라. 장태연씨는 어디까지나 선량한 대학교수였기 때문에 시대에 순응하여 마누라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리고 오선영 여사는 자유를 얻음와 동시에 가정을 배반하고 남편의 무능을 비웃게 되었다.
백광진이 어느날 사업자금을 빌미로 파리양행에 들렀다. 그는 선영의 계 가입 여부를 묻더니 친구 선거비용을 청탁했다. 선영이 핑계를 둘러대며 거절하자 그는 곧 단념을 하고 일전의 외상값을 20만원 짜리 수표로 굳이 갚겠다고 하며 수표를 건넸다. 선영은 내심 불안했지만 14만원의 거스름 돈을 파리양행 발행의 수표로 건네줬다. 그와 점심을 먹고 돌아온 선영은 가게에 온 최윤주를 만났다. 윤주는 다시 한번 계 가입을 제안하고 선영은 이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계모임 장소인 해동관에 나가기 전 선영은 유행하는 나일론 옷감의 옷도 한 벌 장만하고 파리양행의 공금 이만 오천 원도 횡령해 나갔다. 계모임에서 돌아온 선영은 백광진의 수표가 부도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놀라 주인인 이월선 여사가 모르게 장부를 조작했다.
장태연 교수는 낙제생 명단에 원효삼이 빠진 것을 알자 이에 의의를 제기하나 곧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오후에는 오병헌이 찾아와 입후보 취지서와 친구 아들의 대입을 부탁하러 왔으나 장 교수는 모두 거절한다. 장 교수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발신인 이름이 없는 ‘고언생’이라는 편지를 받았다. 편지의 내용을 보니 아내를 단속하라는 내용이었다. 한동안 분노에 찼던 그는 중상모략일 것이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선영이가 새로 맞춘 양장을 입어보며 어떠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오선영은 부도수표 건으로 백광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백광진과 최윤주의 일을 알게 됐다. 더구나 미스 윤의 말로 확인까지 받자 그녀는 낙심했다. 명옥이 잠시 가게에 들르지만 선영은 더 부아가 났다. 잠시 후 가게에 들른 신춘호는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선영에게 선사 받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조용한 음식점에서 놀랍게도 선영은 어떤 여인과 함께 온 오빠를 보자 당황했다. 다시 거리로 나온 두 사람은 저녁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가게에 돌아온 선영은 부도를 염려하여 한태석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십만 원을 빌렸다. 그날 저녁 장 교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거리에 서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이내 아내를 의심한다. 장 교수는 이전의 편지사건도 있고 해서 선영에게 따지려 하나 선영은 교묘히 이를 피해갔다. 마지막 한글 강습을 끝낸 장 교수는 박은미로부터 원효삼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고 충격을 받았다.
모처럼 가족이 모여 식사를 마친 후 장 교수는 아이들에게 신경 쓸 것을 선영에게 당부하지만 선영은 계 핑계를 대며 외출준비를 했다. 신춘호와 선영의 조카 오명옥은 유학을 함께 떠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마침 둘은 유학수속을 끝내고 떠나기 전에 인사차 선영의 집을 찾아왔다. 깍듯한 신춘호의 태도가 못마땅한 선영은 차 한 잔을 산다며 화풀이할 기회를 찾았다. 그러나 ‘기분적이었다’는 신춘호의 말에 더 화가 날 뿐이었다. 거리를 헤매던 선영은 최윤주를 찾아가지만 백광진과 놀러간 것을 확인하고 돌아온다.
파리양행에 출근한 선영은 이월선이 왔다 간 사실을 알고 놀라지만, 별일은 없었다는 말에 안심을 했다. 미스 윤은 이월선이 남편과 선영을 의심하는 것 같다며 미스 김이 수상하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가게에 들른 최윤주는 일전의 댄스파티가 수정궁에서 내일 열린다며 애인을 데리고 오라고 말한다.
사면초가
어제까지는 당당한 대학교수의 부인이던 자기가 오늘은 거리를 방황하는 유랑녀의 신세가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기 집 안방과 남편과 자식들이 안타까이 그리워지며 눈에 눈물이 솟았다. 노예의 집이라고 생각했던 가정은 이제 알고 보니 노예의 집이 아니라 극락이었던 것이다.
댄스파티가 열리는 날 선영은 고전미가 풍기도록 치장을 하고 가게에 출근해 있다가 서울역에 나가 한태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가 도착한 것을 본 선영은 그에게 쪽지를 전달하고 가게로 돌아왔다. 중간에 백광진을 만나지만 일전의 부도수표건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월선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듣는다. 한태석이 약속장소에 드디어 나타나자 수정궁으로 그를 안내했다. 선영은 그곳에서 백광진을 다시 만나고 한태석으로부터 백광진이 유명한 협잡꾼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아홉 시가 넘어 밖으로 나온 한태석과 오선영은 한태석의 아지트로 가지만 이월선 여사에게 발각된다.
한편 그날밤 장 교수는 집으로 돌아와 엉망인 집을 돌아보며, 아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다. 다음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시각까지 아내가 돌아오지 않았다. 더구나 박은미의 결혼식 날이다 보니 장 교수는 아예 결강을 하고 아내를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전날 이월선 여사에서 발각돼 놀란 선영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쳐 나왔지만 통행금지 시간을 어겨 경찰서에 다음날 5시까지 있다가 풀려나왔다. 새벽에 갈 곳은 친정뿐이라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빠의 낙선으로 풍비박산이 난 친정을 나온 때는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분노에 가득 찬 장 교수가 선영을 노려보고 있었고, 급기야 말싸움 끝에 선영은 집밖으로 뛰쳐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