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들
최일남 지음 | -
서울 사람들
최일남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후 사글세방을 얻어 중학생 과외도 하고 프린트 가게의 임시 고용원으로 필경을 도와주기도 하며 대학을 마침. 건축설계사무소 운영.
김성달: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후 가정교사로 학비를 벌어 대학을 마쳤고 졸업 후에도 가정교사를 했을 정도로 힘겹게 살아 옴. 국영 기업체의 비서실장.
윤경수: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후 태권도도장 사범의 조수를 하며 학비를 벌어 대학을 힘들게 졸업한 인물. 고등학교 교사.
최진철: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후 노상에서 싸구려 책을 팔고, 사설 댄스 강습소에서 유한 마담들에게 춤을 가르쳐 번 돈으로 겨우 대학을 마침, 을지로에서 TV 가게 운영.
갑작스럽게 떠나는 3박 4일의 여행
내가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두 시 십이 분이 조금 지나서였다. 오늘사말로 회사에 바쁜 일이 있어서, 여느 토요일보다 조금 늦게 회사를 나온 후 단골로 다니는 중국집에 들러 후닥닥 자장면을 먹어치우곤 이내 택시를 몰았다. 그랬는데도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한 일행은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회사를 나와 서둘러 시외버스터미널에 왔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칠팔 분이 남아 있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함께 하기로 한 일행은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거나 장소를 잘못 알았나 하는 걱정이 잠깐 들기도 했다. 약속장소로 정한 이 곳이 서울에도 몇 군데 없는 시외버스 터미널이고 약속을 단단히 했기 때문에 일이 틀어질 리는 없으리라 싶으면서도 혹시 한두 사람이 갑작스런 사정으로 못 나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내 짐은 담배 몇 갑과 양말 따위 간단한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주먹만한 배낭이다. 일행의 여행 계획은 삼박 사일이었다. 그 정도 기간의 여행이라면 꽤나 큰 여행가방을 들고 가야 제격일 텐데 작은 손가방만을 들고 온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일행은 가능하면 그냥 빈손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한 것이다. 오늘 여행을 떠나기로 한 네 사람은 고등학교 동기 동창들이고, 고향도 나이도 엇비슷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온 후 대학은 서로 달랐지만 모두 형편이 시원치 않아 어렵게 대학을 마쳤다는 점은 일치했다. 김성달은 가정교사를 하여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국영기업체의 비서실장으로 있고, 윤경수는 태권도 도장 사범의 조수로 일하며 학비를 벌어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며, 최진철은 길바닥에 가스등을 켜고 싸구려 책을 팔고, 댄스 강습소에서 번 돈으로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을지로에서 TV가게를 벌이고 있다. 나도 사글세방을 얻어 중학생 과외도 하고 프린트 가게의 임시 고용원으로 필경을 도와주기도 하며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네 명은 한동안 왕래가 뜸하다가 한 칠팔 년 전부터 다시 자주 교우를 가졌다. 아내까지 대동한 모임이 있기도 했지만, 제법 먼 여행을 떠난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번 여행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어느 날 저녁, 자주 드나드는 생맥주 집에서 최진철이 불쑥 언제 날을 잡아 여행이라도 갔다오자는 제안을 했다. 의외로 윤경수와 김성달이 금방 동의를 하고 나섰다. 지금쯤 시골에서는 추수도 끝나 좋을 거라며 나도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동의했다. 최진철이 이런 일은 기왕 얘기가 나왔을 때 결정을 보아야 한다며 다그쳐 약속을 정하는 바람에 오늘 여행이 이뤄졌다. 그날 몇 가지 원칙도 정했는데, 우선 목적지를 정하지 말 것, 가장 멀리 가는 버스를 탈 것, 빈 몸으로 갈 것 등이었다. 소위 여행의 목적은 다만 며칠이라도 도시를 떠나 자연의 품에 안겨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치약과 칫솔도 돌소금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넷은 한결같이 시골 출신이고 그 속에서 뼈가 굵었는데도 부모를 서울로 모셔오고 해서 이미 고향에는 아무 근거가 없어 고향과는 거의 인연을 끊고 살아온 처지였다. 오늘의 여행은 구차하나마 서울바닥에서 자리를 잡고 잠시 숨을 돌려보는 고갯마루에 서서 생활에 휴식을 가져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자연의 맛과 멋을 찾아 떠나는 설레임
버스 안의 손님들이 그렇게 힐끔힐끔 쳐다보거나 말거나 우리 일행은 쉴새없이 지껄여 댔다. 마침 버스 창 밖으론 누런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참 좋다. 황금의 파도가 넘실거리는구나. 그런데 늬네들 어렸을 때 논에서 새보던 기억 나니? 학교만 갔다오면 어찌나 새보러 나가라고 몰아세우던지.”
윤경수가 다음으로 도착했다. 둘은 서로의 간편한 옷매무새를 보고 웃었다. 잠시 후 김성달과 최진철이 도착했는데, 김성달은 빈손이고 최진철은 신발주머니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여행을 떠난다는 들뜬 기분도 작용했겠지만, 피차의 용모는 낯선 이질감을 안겨 주었다.
먼 곳으로 떠나는 버스는 많았다. 요금이 비싼 곳이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일 거라고 결정을 내리고 버스를 탔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버스 안은 붐볐다. 네 명은 강원도와 충청도의 경계쯤 되는 곳에 네 시간 가량 걸려서 도착했다. 오늘 안으로 가급적이면 더 깊숙한 곳으로 가기로 합의가 됐다. 일행은 미지의 설레임 같은 것에 들떠 높은 톤으로 떠들어댔다. 사실 서울에서의 잦은 약속도 꼭 하나쯤은 늦거나 불참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나흘 동안의 긴 여행에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퍽 희한한 일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가능하다 치더라도 다음 이틀은 빠지기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당장 급한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빠지는 경우도 아니고 놀러가는 데 쉰다는 것이 더더욱 그렇다. 그것이 서울 살림이다. 윤경수는 교감에게 갑자기 집안에 복잡한 일이 생겼다고 얼버무렸다고 하고 김성달과 최진철도 각기 사정을 털어놓는다. 나도 이 여행을 위해 밀린 일을 야근을 해서 해치워야만 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네 사람을 힐끔거리고 쳐다보았다. 서울 외곽의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시외버스에 오르게 되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먼길에 시달려야 한다는 자세를 취하며 앉자마자 눈을 감거나 하는데 이들의 모습은 왠지 그들에게 이질감을 주어 자꾸 그들의 시선을 받았다. 그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거나 말거나 일행은 쉼 없이 지껄여댔다. 김성달은 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보며 황금의 파도가 출렁거리느니 하며 어렸을 적 새몰이를 하던 기억을 되새겼고 윤경수, 최진철은 깡통 달아 흔들며 몰던 참새떼도 두어 번 후에는 속지도 않았다는 것과 요즈음은 수렵 금지령 덕에 다시 극성이라고 말을 받았다. 또한 참새들이 벌레를 잡아주기 때문에 농가에 피해를 주는 것만은 아니라도 했다. 일행의 나이는 삼십대의 후반에 들어섰지만 마치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시시덕대며 추억들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다가 어느 정도의 여유가 되면 인생의 길에서 허리를 펴고 과거를 더듬어 보는 휴식을 가지게 되는데 그때 고향을 돌아보는 법이라고 생각한 나는, 일행이 여행을 결정하던 날 어렸을 때 먹던 입맛을 떠올렸다는 것도 되새겼다.
우거지국에 뜨물이나 된장을 풀고 풋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어먹던 맛과 간갈치나 간고등어의 머리를 바짝 구워 씹어 먹던 맛이 어찌나 고소했는지, 새우젓에 간장만 있어도 밥맛은 꿀맛이었다는 것 등을 주고 받았으며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서울 생활과는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영 그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빈속에 술을 마시면 속이 버릴 것을 염려하여 고기를 먼저 먹고 맥주를 마시던 네 명은 풀떼죽, 호박떡, 호박잎 쌈, 고춧잎 버무린 것 등이 얼마나 맛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하루에도 칠팔 잔씩 마시는 커피를 이번 여행에서는 안 마시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김성달의 이야기로 절정을 이뤘다.
여행을 가서 오랫동안 잃고 지냈던 자연의 미각을 찾고 단공기와 그런 저런 정경에 몸을 담그자고 맹세했다. 다만 고향이라고 못 밖을 것 없이 네 명의 고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만약에 고향 쪽으로 가게 되면 이런 저런 관계에 얽히게 되어 당초에 예상한 바와 달리 일이 틀어질 것을 염려해서였다.
십 년만에 다시 찾은 옛 시절의 추억
“그렇군.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미각이 그 동안 얼마나 잡스럽게 변했는가를 알 수 있지. 누가 들으면 그까짓 입맛 하나 가지고 뭐 그리 대단치도 않게 후라이를 까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흥, 그게 다 촌에서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이 맛 모르지. 가을 무의 이 시원한 맛.” 우리는 희멀건 무국 한 대접씩을 놓고 입에 침이 마르게 감격했다.
일행이 탄 버스가 시에 도착한 것은 저녁 6시 무렵이었다. 거리는 벌써 어둑했고 일행은 모두 적당히 피로했지만, 더 먼 곳으로 가자는 말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리로 가는 막차가 떠나려던 참이어서 모두 두말 없이 그 차에 올랐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차츰 정작지가 가까워옴에 따라 약간의 설레임, 낯선 마을에 대한 호기심은 더해갔다. 어차피 이번 여행은 너무 무계획하고 당돌한 것이어서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도전해보고 싶은 충동도 동시에 생겼다. 버스가 멈추고 다른 승객들과 함께 내렸다. 동네는 밤눈에도 산에 가려진 산골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오싹한 냉기 같은 것이 온몸을 엄습해왔다. 이 동네까지 들어오는 버스는 아침에 한 번 저녁에 두 번, 하루에 세 번뿐이라고 했다.
김성달은 낭패한 얼굴이 되어 여인숙도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자, 윤경수나 최진철도 지금까지의 흥분에 비해 심란한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최진철이 활기 있게 외쳤다. 버스가 들어오는 마을이니까 여기도 안되고 다음 마을까지 더 가서 덮어놓고 이장집을 찾아가서 사정을 해보자는 말에 마치 우리는 신들린 사람처럼 밤길을 십리나 더 걸었다. 결국 외딴 마을에 이르러 지나는 농부에게 이장댁을 물었다. 농부집에 있던 여자는 일행을 뜯어보더니 마지못해 이장댁을 일러주었다. 이장은 일행을 퍽 경계하며 어디서 무슨 일로 왔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김성달이 나서고 또 우리의 뜻이 전달되었어도 이장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혹은 세상에 별 이상한 사람들도 다 있다는 듯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이 때 최진철이 사례를 할 터이니 방 하나 사흘만 내주면 된다고, 자기 소개는 물론이고 나와 윤경수 직업까지 소개를 하자 이장은 마음을 좀 놓는 듯했다. 이장은 방을 하나 치워줄 터이니 하룻밤 묵고 차츰 생각을 좀 해보자고 결국 승낙을 했다. 우리는 우선 저녁밥을 부탁했다. 찬이 마땅치 않다고 염려하던 이장에게 김치나 우거지국만 있으면 바랄 것이 없다고 우리는 진심으로 당부했다.
그런 당부를 하면서 왜 우리가 이런 꼴을 사서하는지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도 짜증스런 눈치를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돌아갈 보금자리가 있고 이런 고생이야 겨우 삼사일인데 하는 여유에서 오는 일종의 즐거움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대충 씻고 호롱불 밑에서 쉬고 있을 때 저녁상이 들어왔다. 진짜 반찬은 김치와 우거지국 무말랭이 버무린 것뿐이었다. 우리는 막걸이와 함께 허겁지겁 먹었다. 최진철은 십여년 전에 먹던 맛을 여기서 찾았노라고 허세만은 아닌 것 같은 말을 했다. 나머지 세 사람도 맞장구를 쳤다. 그날 밤 우리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렸을 적 고향에서 지내던 이야기로 밤이 깊은 줄 몰랐다. 국민학교 5․6학년 때 나무를 한 짐씩 지고 다녔던 기억, 김성달과 윤경수가 나무하러 다니던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최진철은 고등학교 때 모 여고에 다녔던 여자아이가 벌써 중년부인이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외에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결국 그날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는 촌놈이고 언젠가는 다시 농촌에 묻혀 살고 싶다는 류의 이야기들이었다. 거짓말 같게도 십여 년만에 재현해보는 청소년 시절의 분위기로 마음들이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일행 중 누군가가 이런 소중한 기회는 오래오래 잊지 말자고 허세만은 아닌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을 때 모두가 제법 진지한 표정이 되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주인에게 부탁해서 돌소금으로 이를 닦았다. 소금이 입안에서 몰리고 이가 잘 닦이지는 않았지만 옛날 시골에서의 일을 생각하며 소금이 묻은 이를 벌린 채 서로 웃었다. 이장이 찬이 없다며 들여온 밥상은 시퍼런 무총김치, 깎두기, 무국 정말 간단한 밥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음식을 먹기 위해 일부러 여기에 왔다고 되려 미안해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윤경수가 국물을 먹더니 무릎을 치고 화학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옛날 그 맛이 바로 이것이라고 감탄했다. 우리는 희멀건 무국을 놓고 감격했지만 거기에는 자기 나름의 기쁨을 얻으려는 가식적인 위력이 더해진 것 같기도 했다.
우리가 아무리 돈을 준다고는 하지만 생판 알지도 못하는 손님을 넷이나 집에서 재워주고 먹여주는 인심이 또 도시 같으면 어디에 있겠냐고 종일 그 집에서 뒹굴고 산책했다. 낮에 또 그런 반찬에 옥수수로 빚은 노란 막걸리를 마셨다. 점심 식사도 한바탕 너스레를 떨며 배가 불러오도록 마셔댔다. 저녁에도 아침과 비슷한 밥상과 술을 받았다. 주인의 찬이 변변치 않다는 말에 우리는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미안해했지만 아침이나 어젯밤처럼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마지못해 국물을 몇 술 떠 넣었을 뿐 모두 입이 당기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간밤에 마셨던 막걸이의 쉰 냄새가 목구멍에 오르고 돌소금으로 닦다가 생채기가 난 잇몸은 아려왔다.
남포불의 매케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이부자리에서는 퀘퀘한 냄새가 나며 그리 넓지 않는 들판에서 느꼈던 그 시원한 마음도 들판은 그냥 들판일 뿐 어떠한 감흥도 우리에게 가져다주지 않았다. 이제 일행은 그렇게 그리워하는 산천에 와서 파묻혔다 생각하니까 되려 갑갑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행은 서울서 떠나올 때의 마음과는 다르게 자신의 생활을 이곳으로 끌어 내릴까봐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얄팍한 감상의 깨달음과 자기 혐오
“커피 한 잔만 했으면 딱 좋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오늘 밤 텔레비전에서 쇼를 하는데 놓쳤군.”
“쇼뿐야? 프로레슬링도 있다구.”
윤경수와 최진철이 덩달아 화투를 팽개치고 길게 가로누우며 말했다. 우리들의 마음이 너무 일찍이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일행은 주인집에서 빌려온 화투로 섯다를 했으나 별로 신명을 느끼지 못했고, 커피가 지긋지긋하다고 했던 성달은 커피를 원하고 있었다. 윤경수와 최진철은 덩달아 TV에서 하는 쇼와 프로 레슬링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일행의 마음은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처음 우리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던 그 힘이 이렇게 쉽게 허물어지는 데 자기 혐오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사실 이들은 이번 길을 떠나면서 서로 간에 약간씩 추렴해서라도 야산 하나를 사두면 언젠가는 내려가지 않겠느냐는 약속까지 하고 온 터였으나, 현지에 와서는 아무도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일상에 묻혀 감추고 지내왔었던 고향을 향한 의지가 어느 날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고, 그래서 신나게 시골로 달려왔으며 가슴속에 간직했던 낯익고 신선한 경이로움을 즐기기에는 일행은 이미 너무 소시민적인 안일에 젖어 있었음을 확인한 꼴이 되고 말았다.
지금 이들은 단순히 먹고 자는 것에 대한 불편함뿐만 아니라 뭐라 말할 수 없는 지금까지 이들이 쌓아 온 생활과의 위화감과 같은 데서 온 것이었지만 결국은 이틀 밤을 보내면서 서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맥주, 술을 마시고 나면 냉장고에서 꺼내먹던 우유 한 잔, 김성달과 최진철은 막걸리 때문에 신트림만 난다면서 서울의 것들에 대해 그리워했다. 일행의 여행 여정은 3박 4일 이었기 때문에 이틀의 여정이 남아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은 사이에 다음날로 바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되었다.
다음날 일행은 첫 버스를 놓쳤다. 늦잠 때문이었다. 첫차는 이미 떠났다. 시간을 미리 알아두지 않은 게 낭패였다. 집안에 죽치고 앉아 있기가 답답해 동네 앞산으로 올라가기로 합의를 봤다. 동네 사람은 산이 꽤 높은 산이며 중간쯤에 조그마한 폭포가 있고, 화전민이 살기에 쉬어 올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들은 흥미가 없었지만 어쨌든 오르기로 했다. 숨이 헐떡거리도록 힘이 들었다. 그들의 얼굴은 파란 정맥이 얼굴에 드러난 정도였고, 어린 시절 노루새끼 같았던 잽싼 동작은 이미 사라져버린 후였고, 월급쟁이의 허우적거리는 창백함만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