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
염상섭 지음 | -
▣ 독서 나침반 l - 개관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三代)』는 한 가족의 3세대에 걸친 가족사적(家族史的)인 이야기를 토대로 대한제국 말에서부터 식민지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의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이 식민지시대 문학의 사실주의적 성과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한 가족 내의 세대 변화를 주축으로 그들이 가지는 계층적인 유대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삼대』의 중심축에 해당하는 조씨 일가에서 맨 앞자리에는 조부 조의관이 서 있다. 그는 주자학의 명분론에 집착하고 있는 봉건주의자로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많은 재산을 이용하여 벼슬을 사고 집안의 족보를 거짓으로 다시 꾸미고 보잘것없는 가계를 명문거족의 후예로 가장한다. 그리고 조선 사회의 붕괴나 일제의 침략과 같은 역사의 격변에 대해 별다른 의식을 가지지 못한 채, 개인의 입신양명과 가문의 영예를 최대의 가치로 내세운다.
조의관의 아들인 조상훈은 국가 상실의 시대에 사회에 나오게 된 새로운 계층에 속하는 인물로서 외국 유학을 통해 근대적 문명에 대한 이해와 서구적 교양을 갖추게 되었지만, 자기 이상을 실현해 나아갈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다. 그의 이상주의적 태도는 그 지향성 자체가 지니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민족과 사회의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결여됨으로써 실천적인 구체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는 부친이 만들어 놓은 재산을 기반으로 하여 개인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기 안일만을 추구하는 위선적인 인격 파탄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조의관과 조상훈 사이에 일어나는 부자간의 대립과 갈등의 끝자리에 손자 조덕기가 위치하고 있다. 일본 유학생의 신분으로 그려지고 있는 조덕기는 할아버지인 조의관으로부터 상당한 기대를 얻고 있다. 조덕기는 조부의 강권으로 학생 신분이지만 일찍 결혼했고, 전통적인 규범에도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그는 시대상의 변화에도 눈을 떠서 지식인 청년들이 벌이는 좌익운동에도 긍정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그는 조부에 대한 경외감과 부친에 대한 동정을 지니고 있으며, 자기 가문을 지키면서 명분 있는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자 한다. 그의 사회적인 위상은 그가 조부 조의관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허세에도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부친인 조상훈의 현실과 괴리된 이상주의적인 태도에도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소설 『삼대』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가족주의의 완고성과 식민지 현실의 폐쇄성은 조씨 일가의 마지막 세대에 해당하는 조덕기라는 인물의 형상을 통해 그 극복 방향이 어느 정도 암시된다. 조덕기는 조부와 부친이 각각 추구하고 있는 서로 다른 가치를 통합하고 세대 간의 갈등을 화해시킬 수 있는 합리적 현실주의자로서 식민지 상황의 비극성에 대한 인식에도 철저한 면모를 자랑한다. 그가 온건한 이념주의자로서 식민지 현실 문제에 대한 개량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의 주제의식의 지향점이 어디에 맞닿아 있는가를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글쓴이 - 권영민 서울대 교수)
▣ 독서나침반 Ⅱ
<염상섭의 작품세계>염상섭과 함께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작가인 김동인과의 비교ㆍ대조를 통해 염상섭의 작품 세계를 보다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염상섭(1897~1963)은 김동인과 더불어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흔히 김동인의 단편 「감자」와 그의 장편 『삼대』를 비교하는 가운데 그렇게 평가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 두 작품을 통해 1920년대 초 한국 근대문학의 미명을 실감할 수 있고, 사실주의 문학의 실체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감자」는 결정론적 비관주의에 입각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삼대』와는 그 지향성이 대조된다. 즉, 전자가 삶의 의미를 비관적으로 보는 눈에 의해 창조된 작품인 것에 반해, 후자는 어떤 주의나 사상, 가치관 내지 세계관등 일체의 선입관을 배제한 가운데 묘사된 전형적인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감자」를 리얼리즘 소설의 효시라고 한다면, 『삼대』는 리얼리즘의 전형을 완성한 한국적 리얼리즘의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삼대』만큼 어떤 선입관이나 주관적 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당시의 시대적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도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리얼리즘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한 유형은 「배따라기」「태형」「감자」로 이어지는 김동인의 작품세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세계문학사와 비교해 본다면, 발자크나 플로베르보다 졸라의 자연주의 계열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그것은 곧 인간은 유전적인 조건이나 시대적ㆍ사회적인 조건을 벗어날 수 없듯이 작품세계 역시 작가의 결정론적 원인들에 의해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결정론적 비관주의 성향의 문학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세계문학의 주류를 형성해 왔다. 결국, 1930년대의 김동인이 「광염 소나타」나 「광화사」 등을 통해 탐미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이 아니라 작품에서 보여주는 문학성ㆍ예술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학적ㆍ예술적 사실주의는 또 하나의 사실주의 유형으로 대표되는 염상섭의 작품세계를 잘 반영해 준다. 그는 처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비롯해서, 148편의 단편과 28편의 장편 및 100여 편의 평론을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염상섭적인 유형의 사실주의 수법으로 성공한 작품이 바로 『삼대』이다. 그런데 한 가지 기묘한 것은 이미 60여 년 전에 발표한 한자어 투성이의 신문 연재소설이 오늘날 발표되고 있는 그 어떤 소설보다 신선미가 넘친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뛰어난 문장력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춘원 이광수의 소설 『무정』이나 『흙』,『사랑』과 비교해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위에서 예시한 춘원의 작품들이야말로 당시의 독자를 사로잡은 베스트 셀러였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90년대의 오늘에 이르러 춘원의 소설을 읽고 신선미를 느낄 독자가 과연 있을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독자로 하여금 신선미를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문학적 의미생산성이다. 그것은 바로 소설의 내용이 일정한 틀 속에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독자로 하여금 문제 의식을 갖게 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의미생산성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기능이야말로 소설 작품의 문학적 표현이자 예술성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단순히 재미로 읽는 독자이든 비평적 안목을 가진 독자이든지 간에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단 한 줄의 독후감이라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삼대』의 문학적 표현태들이 불러일으킨 의미생산성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염상섭의 표현태(작품)가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말은, 적어도 김동인의 경우와는 정반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김동인의 경우에는 작가 자신의 문학적 재능으로 작품(문학성)을 창조한다고 보았는 데 반해, 염상섭의 경우에는 작가와는 무관하게 독자 자신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의미(문학성)을 창출해 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자의 경우에는 작가 자신이 의미 생산의 주체가 되었으나, 후자의 경우에는 의미 생산의 주체가 독자에게로 넘어간 셈이다. 이러한 문학성ㆍ예술성의 주체 변화야말로 20세기 문학이론의 변혁이요 문학관ㆍ예술관의 일대 변화에 다름 아닌 것이지만, 한국 근대소설에 있어서는 김동인과 염상섭의 문학세계가 그 변화의 양극을 현실적,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등장인물>
1) 덕기를 중심으로 한 가족을 이루는 인물군 조의관 --- 부인 --- 수원집 (서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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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훈).....상훈 --- 부인 --- 홍경애(첩), 김의경(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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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덕희)...덕기 -- 덕기 처
2) 김병화를 중심으로 한 시대적 이념을 보여주는 인물군(부)혁명가--(모)전여교사 (부)교역자--(모) (부)애국지사--(모)
↓ ↓ ↓
필순 ------------ 김병화....(장훈) ---- 홍경애--조상훈
(피혁) ↓
딸
3)매당집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인물군 매당집....(최참봉)...수원집 --- 조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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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훈 --- 김의경
『삼대(三代)』덕기가 내일 가지고 갈 새 금침을 아범을 시켜 꾸리게 하고 있을 때, 조부가 '대가리 꼴 하고..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거야. 친구라고 찾어 온다는 것이 왜 모두 그 따위 뿐이냐?'라고 지칭한 병화가 찾아온다. 중학에서 졸업할 때까지 1~2등을 다투던 사이었던 덕기와 병화는 일년에 한 두 번 방학 때만 만나는, 말끝마다 서로 비꼬는 수작을 하면서도 한 번 노해 본 일 없는 친구 사이었다. 이 둘은, 이지적이라는 점에서 흡사하지만, 덕기는 부유한 집 자식이고 해사하게 생긴 얼굴 모습과 같이 명쾌한 인상이라는 점에 비해 병화는 거무튀튀하고 유들유들한 맛이 있느니만큼 남에게 좀처럼 머리를 숙이지 않는 고집이 있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덕기 역시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명랑하지 못한 성미이나, 본디 냉소적이었던 병화는 곤궁했던 근 2~3년간 보다 냉소적으로 변했다.
병화의 인도로 둘은 '정체는 모르겠지마는 놀라 자빠질 미인이, 조촐한 미인이 둘'이나 있는 바쿠스라는 요리집에 가게 된다. 덕기는 '있는 사람의 통성으로 자기에게 좀 고분고분하게 굴어주었으면' 하는 병화가 자신을 '부르주아'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리는 것이 밉살맞았지만, 병화가 느낄 상대적 빈곤감을 떠올리며 병화를 비난하지 않았다. 덕기의 고상한 취향에 맞지 않는 그 술집에는, 얼굴판이 좀 검은 편이었으나 어디인지 교육 있는 여자 같고, 맑은 눈 속이라든지 인사성 있는 미소를 띈 입술을 빼뚜름히 꼭 다문 표정이 몹시 이지적인 듯 보이는 술집 여주인이 있었다. 그녀는 해끄무레하고 예쁘장스러운 똑똑한 청년으로 보이는 덕기가 '어느 부잣집 아기거니'하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얕잡아 보는 마음이 들었으나, 예사롭지 않은 병화의 친구라는 점 때문에 호기심을 더욱 가지게 되었다. '마르크스 보이'인 듯한 덕기를 본 여주인은 왠지 일본 사람인 지방 오판사의 맏딸인 '마르크스 걸' 정자를 떠올리게 된다.
덕기는, 목욕을 갔다던 술집 여급인 '놀라 자빠질 미인'이 홍경애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빨아먹을 수만 있다면 부자(중의적 표현)의 피를 다아 빨아먹겠는데."라는 이야기를 덕기에게 한 경애는, 사실상 덕기의 아버지인 조상훈과 과거에 내연의 관계에 있었던 여자였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술을 먹는다고 누구든지 타락하였다고 하겠지? 난 결단코 타락하지 않았어요! 설사 내가 타락하였드라도 그것이 남의 탓이라고 칭원을 하지는 않지만, 내가 타락하였다면 이 세상 연놈은 어떻게 하게요? 난 천당에 자리를 비워 놓았대도 가지 않겠지만……." 조상훈의 아들 덕기가 들으라는 듯 이야기하는 술집 여급으로 전락해버린 경애를 바라보며, 덕기는 복잡한 심경에 빠져든다.
경애가 있는 술집에서 술을 마신 다음 날, 졸음에 취해 있던 덕기는 어머니가 왔다는 이야기에 일어난다. 할아버지의 재취인 덕기의 서조모(수원집)는 덕기의 어머니보다도 다섯 살이 어렸고, 덕기의 서조모가 안방을 차지하자 덕기의 부모는 분가를 하였다. 할아버지 나이 70세에 고명딸 겸 막내딸을 낳았고, 덕기의 3살짜리 아들은 결국 4살짜리 할머니를 두게 된 것이다. 예수교를 믿는 덕기의 아버지는 제사 문제로 할아버지와 매년 충돌하고, 사실상 할아버지와 아버지 나아가 서조모와 덕기의 어머니간의 사이도 매우 좋지 못했다. 또한, 덕기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도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덕기 아버지는 사실상 어머니와 무관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내일 공부하러 떠나려 했던 덕기는, 조모의 제사를 지내고 떠나라는 할아버지 엄명에 며칠 더 묵게 되었고, 그는 의외에 만난 경애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가기가 좀 마음에 걸리던 차에 도리어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덕기는 모친만큼이나 경애는 물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아버지와 경애 사이의 소생(덕기의 누이동생)에 대해서도 가엾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병화의 집을 찾은 덕기는, 마치 김칫독을 거적으로 싸듯이 꺼멓게 썩은 거적으로 뺑 둘러싼 집이 병화의 하숙집이라는 사실에, 병화가 불쌍하다느니보다도 너무 무능한 것 같고 밉살맞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잉크와 신문들을 보며 '궁극에 달한 생활을 하면서도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주의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말하자면 수난자의 굳건한 정신이 있기 때문이려니' 하는 생각을 하며 병화가 가엾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가 준 오원으로 병화가 하숙비를 치르는 모습을 본 덕기는 약간의 뿌듯함과 민망함 등의 복합적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덕기와 병화는, 중학교 때 알게 된 사이지만 학교에 있을 때에 특별히 친한 친구 사이는 아니었다. 둘 모두의 부모가 교회의 교역자라는 것과 자기 자신들이 교회에 다닌다는 점으로 인해 어느 정도 친한 사이였던 것이다. 오히려 중학교를 떠난 이후에 각별한 사이로 발전하는데, 목회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병화의 아버지에 대해 반발하는 병화를 보며 덕기가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화는, 부친의 뜻을 어기고 노골적으로 반항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고집스러운 반항심을 부모에게 보였고 부모가 허락한 경성제국대학의 법문과가 아닌 와세다 전문부의 정경대에 입학하면서 부모는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었다. 이러한 연유로 곤궁해진 삶을 일년 여 이상 경험하면서 병화는 사상이나 기분이 더욱 과격해지기에 이른 것이다.
곤궁한 병화의 삶을 목도한 덕기가, "그러게 목사가 되었으면 좋지 않았느냐"라고 이야기하자 병화는 '오 원 받았던 것까지 손에 쥐었으면 내던지고 싶을 만큼의 불쾌감'을 경험한다. 발끈한 병화는, 교의를 아주 청산해 버리겠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고, 덕기는 병화를 붙든다. 이러던 차에, 하숙집 딸인 공장 노동자 필순을 만나게 되고, 덕기와 병화와 필순은 국수집에 가서 이야기를 나눈다. 필순은 자신의 곤궁한 삶을 여과 없이 덕기에게 이야기 하는 병화에게 얄미움을 느끼고, 덕기는 필순으로부터 가난하지만 똑똑한 여성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병화는 똑똑이라고 불리는 필순이 평소와 다르게 덕기 앞에서 긴장하고 있다고 느끼며 순진한 처녀 괜시리 마음의 동요를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갖는다. '필순을 여학교를 다니는 덕기의 여동생과 함께 살리며 공부를 시키는 것이 어떠하냐'는 병화의 농담에, 덕기는 그럴 수 있다는 진담으로 답한다.
덕기는, 어릴 적 동무였으나 아버지의 내연의 여자였던 경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경애는 아기(덕기의 누이동생)가 독감에 걸렸다면서 집에 같이 가서 아기를 한 번 봐 주기를 청하고, 덕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