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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본실의 청개구리

염상섭 지음 | -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나(X) 소설의 주인공. 권태와 피곤에 지쳐 있는 지식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생물시간에 보았던 해부당한 청개구리를 기억한다. 이 기억에서 도망치듯이 여행을 떠나 김창억을 만난다.김창억 3원 50전에 양옥 3층집을 지은 장본인. 천재적인 머리와 섬세한 성격경을 가졌으나 계속되 는 불운으로 끝내는 미치광이가 된다. H 나에게 여행을 제안한 친구. 나를 끌고 여행길에 오르기도 하고, 내 고집에 끌려 일정을 미 루기도 한다. Y 남포에 사는 나와 H의 친구. 매사에 진지한 나를 곧잘 놀린다. 함께 김창억을 방문한 후 그 에게 생긴 일을 편지로 전해 준다. A Y의 친구. 남포를 떠날 때 부친과 헤어지고 우리와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해부된 개구리에 대한 기억과 남포로의 여행



개구리를 해부하여 가지고 더운 김이 모락모락나는 오장을 차례차례로 끌어내서…. "자, 여러분, 이래도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시오." 하고 뾰족한 바늘 끝으로 여기저기를 콕콕 찌르는 대로 오장을 빼앗긴 개구리는 진저리를 치면서 사지에 못박힌 채 벌떡벌떡 고민하 는 모양이었다.

삶이 권태롭다. 불규칙한 생활 때문인지 몸에는 알코올과 니코틴이 독한 냄새를 내뿜고 동네 산책만 해도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그러면서도 신경만은 곤두서서 며칠째 계속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불을 끄고 누운 머리 속에는 계속해서 중학교 2학년 때 생물 실험실에서 개구리를 해부하던 형상이 떠오른다. 8년이나 된 그 인상이 요사이 새삼스럽게 생각나다니. 아무리 잊으려고 애를 써도 안 된다. 새파란 메스, 오물오물하는 심장과 폐, 바늘 끝, 조그만 전율…. 유리창 밑에서 메스의 강렬한 반사광이 눈동자를 찌르는 것 같아 눈을 꼭 감아도 눈썹 밑이 부셨다. 그럴 때마다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둔 면도칼에 조바심이 났다. 남포로 가기 전날에는 그 증세가 더욱 심했다. 메스, 면도, 메스….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기도 했다. 잊으려 할수록 괴이한 매력과 유혹은 절정에 달했다. "내가 미쳤나? 아니, 미치려는 징조인가?" 제풀에 겁이 났다. 이불을 차 버리고 일어나 성냥통을 찾아 양초에 불을 켜 들고 서랍을 열었다. 휴지통 같은 서랍 속에서 면도를 찾아 외면하고 창밖의 뜰로 내던졌다. 그러나 역시 잠들지는 못했다. 방을 나가고 싶었다. 몇 개월 전부터 계획만 하던 여행을 생각했다. 정차하지 않고 굳세게 달리는 기차로 영원히 달리고 싶었다.

그 이튿날 H가 와서 평양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 기차를 탈 호기심에 끌려 덮어놓고 동의했으나 인제 정말 떠날 때가 되어서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중을 모르는 상태에서 H에게 끌려 남대문역까지 나왔다. 표를 사서 입장하다가 검역 증명서가 없다고 H가 개찰구를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안 가겠다고 서 있던 줄을 벗어났다. H는 마음대로 하라며 혼자서 출장 주사실로 가다가 다시 와서는 나를 끌고 갔다. 어쩔 수 없이 주사를 맞고 플랫폼으로 들어가서 차에 올라탔다. 강렬한 위스키의 힘과 격심한 전신의 동요, 기차의 속력과 주사 맞은 곳의 통증으로 메스에 대한 생각도 잊고 잤다. 동이 틀 무렵 우리는 평양역에 도착했다.

남포행을 기다리면서 나는 평양을 돌아다니다가 돌아가겠으니 H에게 혼자 남포로 가서 Y를 만나라고 하고 훌쩍 나와 버렸다. H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나왔다. 우리는 부벽루로 갔다. 대동강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려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 때 마침 이쪽으로 가까이 오는 사람이 있었다. 하얀 얼굴에 장발이 등에까지 내리덮고 있었다. 그는 오만함인지 무관심인지 모를 태도로 우리 위쪽으로 가더니 양치질을 하고는 대동문을 향해 가버렸다. 그 장발객을 조소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진정한 행복은 저런 생활에 있는 것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부벽루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다가 현판 옆에 사람들이 새겨놓은 성명을 보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부벽루를 나왔다. 성벽을 따라서 걷다가 졸음이 와서 잠시 신문지를 펴고 드러누웠다. 삼십 분쯤 지나 H가 흔들어 깨우고는 웃으면서 무슨 꿈을 꾸었느냐고 물었다. "죽는 꿈, 미인의 손에." 나는 아무 고통 없이 죽는 경험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현대인은 모두 「죽음의 승리」에 나오는 졸지오와 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했다. 수건으로 목을 매고 방에 누웠는데 어떤 손이 나타나 그 수건을 좌우로 졸라대더라는 꿈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어째서 그 손이 여자의 손이라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남포에 도착하니 Y는 A와 함께 방금 만나고 온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간단히 그의 질문에 대답하고서 졸립다고 눕는 나를 보고 Y는 표주박은 어쨌느냐고 물었다. "여기까지 가지고 오긴 왔지!" 내가 먹다 남은 위스키 병을 내놓으니 일동은 모두 웃었다. 영문을 모르는 A가 표주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X군의 인생관이자 X 자신이라고 대답하는 친구들에게 맞서 나는 서울의 어떤 상점에서 유리 정종병을 사 왔는데 그것이 표주박 모양이라서 그 뒤로 여럿이 놀린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 끝에 이곳에 3원 50전에 삼층집을 지은 '대건축가'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3원 50전에? 하하하, 미친 사람인 게로군?" H가 웃었다. A는 나에게 무슨 이유로 술을 먹는가 물었다. 취하려고 먹는다는 내 말에 다시 알코올의 힘을 빌지 않아도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었다. "알코올 이상의 효과? 광증(狂症)이냐, 신념이냐. 이 두 가지밖에 없을 것이오." 술을 마시면서도 A 와 Y는 계속해서 삼층집 주인의 말과 몸짓을 흉내냈다. 약간 취기가 오른 나도 평양으로 나가는 길에 삼층집을 구경하고 싶었다. "우리 구경가볼까?" "아직 다섯 시가 못 되었군…. 그러나 강연을 못할 걸" 이렇게 해서 네 청년은 삼층집으로 가기 위해 번잡해지는 큰길로 걸어 나왔다.

광인 김창억과의 만남



"예수꾼도 무식한 놈만 모였나 봅디다. 그러나 아맹이란 무엇이요. 맹자 같은 만고의 웅 변가더러 버버리라고 아맹(啞孟)이라 하니 그런 무식한 말이 아 어디 있단 말이오! 나 를…, 나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할 지경이면 아면(我免)이라고 해야 옳지 않습니까."

삼층집으로 가면서 Y에게 그것을 지은 사람이 원래 보통학교 선생님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지난 봄에 서너 달 감옥에 들어갔다 온 후부터 정신이 이상해졌으며, 처 역시 어떤 이유인지 함께 살지 않는다고 한다. 거리를 빠져 나와 벌판에 이르자 이층 유곽이 보였다. 그 옆에 있는 원두막 같은 것이 바로 그 집이었다. 그 주인은 우리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더니 돌아앉아서 무엇인지를 두드리고 있었다. A가 인사를 했는데도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Y가 강의를 들으러 왔다고 하자 그제서야 돌아보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중학교 실험실의 생물선생이 따라온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유 없이 숭엄한 느낌이 들어 나는 무심결에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서울서 일부러 손님이 오셨는데 강연을 하시구려." 주인은 서울 손님이란 말에 귀가 뜨였는지 우리를 향해 돌아앉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남포 사는 김창억이외다." "선생님! 용하시외다그래…. 이름도 아니 잊으시고…. 하하하." 스토브도 들여놓고 술잔이나 나누도록 해야겠다고 이층을 가리켜 인사치레를 하자 세 사람은 모두 웃었다. 김창억은 웃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외면을 하였다. 나는 이 사람이 미쳤다고 해야 할지 크게 깨달아 해탈한 철학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술 한잔 없어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술은 먹지 않는다고 Y가 말했다. 그러자 그가 강연을 시작했다.

"예수꾼도 무식한 놈만 모였나 봅디다. 그러나 아맹이란 무엇이요. 맹자 같은 만고의 웅변가더러 버버리라고 아맹(啞孟)이라 하니 그런 무식한 말이 아 어디 있단 말이오! 나를 …, 나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할 지경이면 아면(我免)이라고 해야 옳지 않습니까." 모두들 웃었지만 나는 그가 비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강연을 계속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 이름을 동서친목회라고 했고 자신이 회장이긴 하나 각국의 분쟁을 순찰할 감독관이 없다며 걱정했다.

"여기 X군은 어떨까요?" Y가 나를 추천했다. 내가 동서친목회의 취지를 묻자 그는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 것은 물질만능주의 때문이라고 하면서 사람의 도리를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을 비판했다. 사람의 마음이 욕심으로 더럽혀져서 서로 싸우는 이때, 동서가 친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그러면 금강산에는 언제 들어가시지요?" A가 놀렸다. 그는 금강산의 옥좌를 이미 다 꾸려놓았다고 하면서 성씨 중에는 김씨가 제일 좋은 성이며, 하느님께서 너는 김가이니 금강산에 들어가 옥좌에 올라앉아 세계 평화에 힘쓰라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다시 무슨 생각으로 삼층집을 지었느냐고 물었다. 중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서양사람들의 집을 보고 조선사람이라고 그렇게 팔자 좋게 못 살라는 법이 어디있겠냐 싶어 짓기 시작했다고 했다. 서양인들이 얼마나 아첨이 심한가를 말하면서 그는 거친 주먹을 쳐들었다. 그 때 그의 눈에는 이상한 광채가 돌고 얼굴은 경련으로 뒤틀렸다. 서양인들이 쓰는 스토브도 자신이 직접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조선이 있고 조선글이 있어도 한문이나 서양놈들의 혀 꼬부라진 말을 해야 사람의 구실을 하는 쌍놈의 세상이 아닙니까." 그는 말을 할 때마다 나의 동의를 얻으려는 것처럼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늘 천(天)이나 따 지(地), 쇠 금(金)이 사실은 하늘 대, 땅 야, 사람구슬 금이라고 읽어야 제대로 된 것이라고도 했다. 말 끝에 그는 자신의 아내가 안씨라고 했다. "참 안씨는 어디 가셨나요?" 내가 호기심이 나서 물었다. 그는 몸을 꼬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보'를 부르다가 나갔나보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유곽을 가리키면서 거기가 본래 자신의 집이라고 했다. 웃고 조롱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창억은 피로해졌는지 가만히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인제 가볼까." 누군가가 힘없이 말했다. 우리는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울타리 밑까지 왔던 나는 다시 몸을 돌려 그에게 가서 남은 위스키와 사과 두 개를 주었다. 그는 웃으면서 받고, 나와서 인사했다. 친구들은 내가 모자를 공손히 벗어들고 강연을 듣고 섰는 모습을 조롱했지만 나는 힘없이 웃었다.

A는 잠깐 우리와 헤어졌다가 평양행 열차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부친에게 선언을 하고 영원히 다른 곳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에게 부럽다는 말을 하고 나는 서울에 있는 P군에게 엽서를 썼다. 김창억은 자유인이며, 그를 만나 매우 놀랐다는 것, 그는 가마에서 잠들 때까지 타고 있는 현대인의 오뇌이며, 우리의 욕망을 홀로 구현한 승리자라고 썼다. "나는 암만하여도 남의 일같이 생각할 수 없습디다. 지금 나는 울고 있소. 모든 세포가 환희와 오뇌 사이에서 뛰놀다가 기절할 만큼 기뻐서…."

비운의 사내, 김창억



피로, 앙분, 분노, 낙심, 비탄,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공포, 불안…. 인간의 고통이란 고통은 노도(怒濤)와 같이 일시에 치밀어 와서 껍질만 남은 그를 삶아 죽이려는 듯이 덤 벼들었다. 옴폭 패인 눈을 감고 벽을 향하여 드러누운 그의 조막만한 얼굴은 납으로 만든 데드마스크와 같았다.

북국의 철학자이자 남포의 달인인 김창억은 이 지방에 소문난 오입쟁이인 아버지와 평생을 수심과 병에 시달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열여섯 살에 한성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3학년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갑자기 돌아가신 후 공부를 그만두었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으로는 토지 약간과 덩그런 집 한 채가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도 그 해를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그는 아내가 통곡하는 것도 불쾌하게 생각했으며 이 세상에는 자신과 같은 설움을 가지고 울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독서와 통곡으로 시간을 보냈다.

부친의 삼년상을 마치던 해 그는 다소 기력을 회복해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리고 동료들과 어울리며 술맛도 알게 되었다. 다음 해에는 딸 영희를 얻어 제법 안정되는 듯 할 때 다시 아내가 겨우 젖 떨어진 아이를 두고 시부모 뒤를 따라갔다. 그래서 김창억은 비탄에 빠져 방황했다. 반 년쯤 떠돌다가 다시 서재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리고 몇 개월 뒤에 다시 아내를 맞이했다. 금슬은 좋았으나 젊고 정열적인 아내는 귀여우면서도 무서워서 될 수 있는 대로 피하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5,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김창억은 학교의 10회 개교기념식에서 근속상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마치 운명이 그를 시기라도 하는 듯이 그는 바로 기념식 한 달 전에 불의의 사건으로 수감된다. 사 개월 후에 감옥을 나올 때 그의 신경은 바늘 끝같이 예민해졌다. 그리고 출옥하던 날 자신의 아내는 보이지 않고 60이 넘은 백부만 와 있었다. 한 달 전부터 아내는 면회를 하러 오지 않았지만 그는 딸 영희가 아프기 때문에 못 온다는 백부의 말을 믿고 있는 터였다. 궁금한 마음을 억누르며 백부가 이끄는 대로 백부의 집으로 먼저 갔다. 거기에서 아프다던 딸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를 맞았다. "어머니는? 어머니 어디 갔어…."

김창억은 백부가 보낸 약도 먹지 않고 서재에 틀어박혀 지냈다. 매일 아침 세수하러 나오던 것도 그만두고 방으로 갖다주는 식사만 하면서 누구하고도 말하지 않았다. 하루는 백부가 찾아왔는데 그는 부인을 부르며 술 좀 받아오라고 했다. 또 영희 엄마가 어젯밤에 와서 사진을 불살라 달라고 했다는 말도 한다. 무엇인가를 찾는 창억의 뒷모습을 보다가 백부는 방문을 닫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서는 웃는 소리가 들리고 김창억의 손에는 두 조각이 난 사진이 있었다.

그 이튿날 모처럼 세수를 하러 나온 그의 수염에는 먼지가 앉아 있었고 붉은 눈에는 이상한 광채가 돌아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리고 고모에게 영희 엄마가 올 테니 맛있는 것을 해 주라는 말을 했다. 날이 더워지면서 그의 병세는 나날이 더해갔다. 8월 중순이 되어서는 매일 아침만 먹으면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누가 미행을 하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가 슬그머니 나가는 바람에 아무도 그가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몰랐다. 그는 유곽 뒤에 있는 조그만 산 위에 하루종일 드러누워 있을 뿐이었다. 그를 본 사람들은 김모가 미쳤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 후로부터는 매일 엄중하게 감시를 해서 그가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며칠 동안 얌전하게 집에 머무는 척 하던 김창억은 감시가 누그러지는 기미를 타서 또다시 집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었다.

3원 50전에 지은 삼층집



만일 이 때에 누가 와서 '너의 계획은 이러저러하고 너의 포부는 약차약차하니 고대하나 가엾은 일이지만 그것은 한 꿈에 불과하다.'고 설파하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는 경악하여 실망한 나머지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하였을지도 모른다.

반 달을 두고 찾다 못해 경찰서에 수색원을 제출한 지 며칠 뒤, 김창억은 밤중에 연통에서 기어나온 것처럼 새까매져서 훌쩍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음날 걸신들린 듯이 아침밥을 먹고 나갔고 백부는 유곽 뒤의 산에서 그를 발견했다.

처음에 김창억이 집을 나갈 때는 자신의 고향을 영원히 떠나 깃들일 곳을 찾으려 했다. 그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구걸하면서 평양부근까지 갔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이 바뀌어 남포로 향해 갔다. 그의 마음에 쏙 드는 곳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자기 서재로 가기 위해 영원히 안식하라고 하느님이 택하신 곳, 유곽 뒷산으로 기어들었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일체의 접촉을 끊고 매일 유곽 뒷산에서 드러누워 지냈다.

하루는 어두워서야 들어오리라고 생각한 그가 의외로 점심때도 안 되어 집에 들어오더니 자기 방에서 이부자리 같은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가슴이 덜렁하던 고모는 "그거 어디로 가져가니?"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영희 어머니 데려오려고 저기 한 채 지었어…." 또 히히히 웃으며 김창억은 또다시 살금살금 들어오더니 시렁 위에 얹어 놓은 병풍이며 웃간에 놓았던 붉은 농짝을 들고 나갔다. 이때껏 비 한 번 들어보지 않던 그가 무거운 농짝에다가 병풍까지 가지고 나가는 것을 방문에 기대어 보고 있던 고모는 입을 딱 벌리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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