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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사와 T교수

유진오 지음 | -
김강사의 약점을 소문내는 T교수김만필은 처음 서는 교단이라 실수하지 않으려고 밤늦도록 기초 독일어 발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연습해 보았다. 아침에 교원실은 요란스러웠다. 선생님들은 웃으며 의미없는 말을 끝없이 나누었다. 원래 말수가 적은 김만필은 조용히 신문실로 들어가 독일 신문을 펴들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T교수가 나타나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T교수는 학생들이 젊은 선생을 시험하니까 잘 하라고 조언을 했다. 김만필은 일부러 귀띔해 주는 T교수가 몹시 고마웠다.



T교수가 뚱뚱한 몸을 흔들며 나갔다. 김만필이 문화비판 회원이었던 것이 알려지면 불이익을 당할 것은 뻔하였다. 또 교장이 N교수와 알고 지낸 H과장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강의를 주었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T교수의 친절은 믿음직했다. 김만필은 T교수의 조언도 있고 해서 학생을 몹시 경계했으나 학생들은 예상보다 얌전했다. 질문을 하면 원수를 만난 듯 경계했으나 학생들은 오히려 호기심과 동정을 보냈다.



수업이 끝나자 T교수는 교단의 감상을 친절히 물어주었다. 김만필은 학생들의 테스트에 합격을 했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T교수는 흥분하면서 스즈키와 야마다, 김흥규라는 학생을 주의하라고 했다. 김만필은 신참에게 하는 조언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면서 T교수의 눈에 비친 미움을 보았다. 마침 급사가 와서 T교수가 교무계로 갔다. 김만필은 T교수의 인격상 결함 탓인지, 자신이 책상물림의 티를 못 벗은 탓인지 의아해하며 몹시 우울해했다. 그러면서 그는 T가 열변을 토한 스즈키란 학생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문학사 김만필(金萬弼)은 동경제국대학 독일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그는 학생 때 문화비판회의 멤버로 적지 않은 단련의 경력을 가졌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년 반 동안 실업자로 지내는 쓰라린 고통을 맛보았지만 아직도 책상물림의 도련님 티가 나는 청년이었다.



김만필이 탄 택시가 S전문학교 교문을 들어서 본관 현관 앞에 서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2학기 개학날인 오늘은 일년 반의 실업자 생활을 청산하고 전문학교의 강사로 새로 취임하는 날이었다. 그는 물어물어 교장실을 찾아갔다. 며칠 전 교장의 사택을 찾아갔을 때 교장은 김만필을 몹시 친절하게 대했다. 김만필은 그 때 교장을 시골집 행랑아범 대하듯 몹시 만만해했는데 지금 교장실에서 교장을 만나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거기다 교장은 전날과 달리 딴판으로 빳빳했다.



교장이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을 서너 번 울리자 옆방 문으로 뚱뚱한 모닝을 입은 친구가 허리를 굽실대며 들어왔다. 교장이 뚱뚱한 친구에게 종이조각을 가져오라고 했다. 교장이 김만필의 사령서를 주자 그는 공손히 받아들고 허리를 굽혔다. 그가 허리를 다 펴기도 전에 교장은 그의 머리 위에 대고 말을 퍼부었다. 학교의 직원이 되었으니 학교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조선 사람을 교원으로 쓰는 것은 처음이니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김만필은 뚱뚱한 친구가 했듯이 거의 반사적으로 허리를 굽혀 대답했다. 교장이 뚱뚱한 친구를 T라고 소개하자 T는 아주 친절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김만필은 지금까지 그를 향하던 경멸의 눈을 거두고 도리어 황송해서 공손한 T에게 한층 더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T교수는 김만필을 교무실로 안내했다. 김만필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취임식은 개학식이 끝난 뒤 간단하게 있었다. 위엄있게 보이기 위해 눈에 살기를 띈 교장이 김만필을 동경제국대학 출신의 보기 드문 수재라고 소개했다. 김만필은 수백 명 학생들의 경례를 받자 정신이 아찔해 착잡한 심정으로 과거와 현재를 생각했다. 대학시절 문화비판회의 멤버로 활동한 일, 졸업 후 취업을 위해 평상시 멸시하던 N교수를 찾아갔던 일, N교수에게서 소개장을 받던 일, 서울에서 신문사에 독일 좌익문학운동을 소개했던 일, H과장의 소개로 작년 가을 S전문학교 교장을 찾던 일이 떠올랐다. 모두 모순된 일이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계급의 수많은 인격과 자신이 가진 인격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취임식이 끝나고 강당을 나올 때 T교수가 김만필 옆으로 다가오면서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김만필은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김만필은 T교수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T교수가 배우는 조선말과 김만필과의 사이에 무슨 연락이 있단 말인가? T교수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김만필에게 친밀의 감정을 표시하기 위한 것 같았으나 김만필은 무슨 말이 또 나올는지 몰라 슬그머니 겁이 나는 것 이었다.어색한 신참 김강사와 지나치게 친절한 T교수1906 5월 13일 한성부 북부 가회방 제동계 명현 12통 12반에서 아버지 유치형과 어머니 밀양 박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0 천자문을 떼고 한글 공부를 시작한다. 일어와 산술 공부를 부친의 지도로 집에서 마친다. 1913 폐위돼 있던 순종 황제에게 '축 성수무강'이란 붓글씨를 바쳐 지필묵을 하사받는다. 부친을 따라 유길준의 병문안을 간다. 이 때의 기록이 나중의 『창랑정기』의 밑거름이 된다. 1914 제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다.

1919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한다. 성진순과 결혼한다. 절친한 문학친구 이재학을 만나 훗날 함께 시잡지 「십자가」를 간행하게 된다.

1924 경성제일고보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경성제대 입학을 준비하면서 일본 학생과 조선 학생이 공동으로 치른 '제1회 대학 예과 고등학교 입학 모의시험'에서 수석한다. 1925 훗날 남로당의 거물이 되는 수재형의 이강국, 노력형의 최용달, 박문규와 이희승, 이효석 등의 친구를 만난다. 대학예과 학생회 잡지 「청량」창간을 주도한다.

1926 예과를 마치고 법문학부 법학과로 입학한다. 좌경적인 일본인 교수가 조건부로 붙은 '경제 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처 성진순이 요절했다.

1927 「조선지광」에 「복수」, 「스리」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파악」, 「갑수의 연애」, 「피로연」 등을 발표한다.

1928 박복례와 재혼한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문제로 고민한다. 그를 회유하기 위해 학교측은 판 사 자리 등을 제안하지만 모두 거절한다.

1929 경성제대 수석으로 졸업한다. 형법연구실 조수로 일한다. 졸업생들과 학술잡지 「신흥」 발 간한다. 여름에는 최용달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당시의 일본 사상계의 주류들과 함께 논쟁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돌아온다.

1930 장녀 효숙이 출생했다. 이지휘란 필명으로 당시 운동에 대해 전반적인 상황과 문제점을 정 리해서「년간조선사회운동개관」을「동아일보」에 발표한다. 만주를 여행하고 돌아와「마 적」, 「귀향」, 「송군남매와 나」 등의 작품을 발표한다. KAPF로부터 가입하라는 권고를 받았으나 거절한다.

1931 법철학연구실 조수로 옮긴다. 예과에서 '법학통론'이란 과목으로 강사를 시작한다. 9월에 이강국, 최용달, 박문규, 김광진과 함께 '조선사회사정연구소'를 설립하고 공동으로 『조선 사회운동사』를 집필한다(해방 이후에 분실되었다). 「형」, 「밤중에 거니는 자」, 「상해 의 기억」 등을 발표한다.

1932 장남 광이 출생한다. 인촌 김성수가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면서 법과 강사로 출강한다. 6월 새벽에 '조선사회사정연구소'가 수색당하고 자료들과 함께 연행된다. 유진오는 곧 풀려나나 연구소는 비밀결사 혐의로 폐문당한다.

1933 2녀 충숙이 출생한다. 보성전문 전임강사가 된다. 몇 편의 평론을 발표했다. 1934 부친이 별세했다. 「행로」를 발표한다.

1938 보성전문 교수가 된다. 모친이 별세했다. 「창랑정기」, 「어떤 부처」, 「수난의 기록」을 발표한다.

1939 보성전문 법과 과장이 된다. 「나비」와 「가을」을 발표했다. 유일한 장편소설 「화상보」 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한다. 『유진오단편집』을 학예사에서 출간했다. 김동리 와 신세대 논쟁을 벌였다.

1940 5월까지 「화상보」 연재를 했다.

1941 2남 완이 출생한다. 졸업생 직장 이탈 사건으로 학교를 대표해서 북경에 사죄하려 간다. 김 성수를 대신해서 장덕수 등과 함께 보성전문학교의 일에 전력한다. 유진오는 학교의 척식과 과장직을 맡다가 해방 직전에 사임한다.

1942 제1회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석한다.

1943 제2회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석한다.

1945 보성전문 교수와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를 겸직하고 교육심의위원이 된다.

1948 대한민국 헌법기초위원과 초대 법제처장을 역임한다.

1949 고려대학교 대학원장, 고등고시위원, 교육위워회위원 등으로 활약한다.

1954 아내 박복례가 사망한다.

1956 이용재와 재혼한다. 학술원 회원이 된다.

1959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았다.

1962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1966 민중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다.

1967 신민당 대표위원을 지내고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에 출마하여 당선된다.

1968 신민당 총재로 취임한다.

1970 병으로 신민당 총재직을 사임한다.

1987 87세로 영결했다.김만필 동경제국대학 독일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 H과장의 소개로 S전문학교 강사 가 되지만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된다.

T 교수 S전문학교 일본인 교수. 김만필에게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하나 뒤에서는 약점을 이용해 그 의 파멸을 조종한다. 전형적인 식민지 교육의 앞잡이로 위선적인 인물.

H과장 조선에 와 있는 평민적이고 친절한 일본 관리인. 김만필을 S전문학교에 취직시켜준 장본인 이다. T교수의 술수로 김만필을 오해한다.

교 장 H과장의 밑에서 꼼짝 못하는 겉과 속이 추한 인물. H과장의 명령에 따라서 김만필을 강사로 취직시킨다. 조선 지식인에 대해서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스즈끼가 간 후 김만필은 우울해졌다. S전문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강박관념에 쪼들리는 듯했다. 그는 점점 더 말을 하기 싫어져 교장도, T교수도, H과장까지도 영영 찾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T교수는 가끔 스스로 김만필을 찾아와 말을 붙였다. 교장은 가을 이후 겨우 두서너 번 마주쳐 간단히 인사할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차차 학교 분위기를 파악했다. 학교 안에는 교장과 T교수의 일파와 T교수가 조심하라고 한 C강사와 물리학의 S교수 일파가 대립하고 있는 듯 했다. 김만필은 어느 편에도 가담할 자격이 없었으나 교장과 T교수에 대한 반감으로 슬며시 C를 동정했다.



어느 날 김만필은 T교수와 마주쳤다. T교수는 연말이니 과자상자를 사들고 교장에게 인사를 가라고 했다. 김만필은 할 말이 없어 비뚤어진 웃음으로 대답했다. T교수가 대체 무슨 동기로 그런 말을 했는지, 조롱인지, 친절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T의 말로 보아 교장이 자신에 대해 몹시 불쾌하게 생각함을 짐작했다.



그 날 밤 김강사는 서양과자 한 상자를 샀다. 덮개에 교장 이름과 자신의 명함을 붙였다. 그러나 이런 짓까지 하면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창피한 마음과 이왕에 노염을 받았는데 과자상자를 가져다 준다고 무슨 소용이랴 하는 마음이 싸우고 있었다. 과자를 가져다 주면 등 뒤에서 T교수가 조소할 것 같았다. 또 그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이 다 그런데 자신의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받는 자의 인격의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김만필은 과자상자를 교장의 집에 가지고 갈 용기가 없었다. 가던 중 전차에서 내려 한참을 헤매다가 욕심쟁이로 일가 간에 따돌림을 당하는 아주머니에게 과자상자를 주었다. 아주머니는 영문도 모르는 뜻밖의 선물을 받아들었다.1930년대의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중첩된 인격현실과 자아, 물질과 정신, 위장과 진리, 부패와 정의의 대립 양상「김강사와 T교수」에서 김만필은 과거 경력을 속여가며 취업하는 지식인이다. 그는 일제하 대학시절 사상활동을 해서 낙인이 찍힌 자이며,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이기 때문에 편견 속에 살아가야 했던 자이다. 그는 학창시절에는 문화비판회의 한 멤버로 사회의 부패상을 비판하는 혈기에 찬 젊은이였지만 졸업 후에는 취직을 위해 평소에 멸시하던 교수를 찾아다녀야 했다. 교수의 소개장을 받고서도 한편으로는 신문사에 독일의 좌익운동을 소개하면서 사회 비판행위를 계속 이어나갔다. 이런 모순된 행동은 교장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김만필이 취업 전에 교장을 찾아갔을 때 교장은 김만필을 친절히 대했고, 김만필은 교장을 마치 행랑아범 대하듯 했다. 그러나 취업 후에는 교장은 김만필을 전과 아주 딴판으로 유세를 떨면서 대했고, 김만필은 일개 시간강사임을 자각하여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동경제국대학 출신의 수재가 졸업 후에도 일년 반이나 취직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사회가 실력인정 사회가 아님을 보여준다. 취업은 힘이 있는 누군가의 부탁과 명령이라는 줄을 타야만 가능했다. 김만필의 취업은 인생의 모순을 그대로 담지하고 있었다. 그는 지식계급이란 것이 사회에서 이중, 삼중, 아니 칠중, 팔중, 구중의 중첩된 인격을 갖도록 강제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식계급은 사회의 모순을 통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사회는 비판력과 통찰력을 가진 지식인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의 모순은 지식인에게 지식이 이끄는 정의의 충동을 억제하고 떳떳해야 하는 과거 행적을 숨기게 한다. 거대한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하지 않으면 무기력한 개인은 삶의 기반을 상실당하기 때문이다.



어떤 자는 수많은 인격 중에 자기의 정말 인격을 명확히 쥐고 있지만 어떤 자는 자기 자신의 수많은 인격에 혼란을 겪다가 어떤 것이 자기 것인지 모르게 되어 파멸하고 만다. 김만필은 그 때문에 취업을 하면서 대학시절 가지고 있는 자신의 진짜 인격을 저버리고 다른 인격을 중첩해 뒤집어 쓴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인격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내 갈등하고 만다. 세상에 아부하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자기의 세계관을 펼치지도 못 하고, 좌절해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현 모습이다.「김강사와 T교수」에는 두 개의 이중적 인격을 만난다. 하나는 앞서 설명한 김강사이고, 다른 하나는 T교수이다. 김강사는 취업을 위해 자신의 세계관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완전히 타협하지 못하고 고뇌하고 불안해하며 끝내는 적응하지 못해 파멸한다. 김강사는 학교에 취업한 후 점차 우울증에 시달리고 학교 교원들에 대한 대인기피증 증세를 나타낸다. 스즈키라는 학생이 진심으로 문학연구 그룹에 참가해 줄 것을 요청하러 찾아왔을 때도 본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후에 점점 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무엇에 쪼들리는 정신병자와 같은 일종의 강박관념에 마음의 위협을 받는다. 김강사의 심리적 불안은 본래의 자아와 현실에 괴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불안감은 완전히 자신을 위장하지 못한데서 온다.



김강사의 정신적 불안을 점점 가중시키는 것은 일본인 T교수이다. T교수는 식민지적인 악덕을 표상한다. 그는 과자상자를 가지고 다니며 아부하고 이간질하는 인물이다. 김강사에게는 친절하지만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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