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아다다
계용묵 지음 | -
백치 아다다
계용묵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아다다 선천적으로 천치에 가까운데도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해 말썽을 일으킨다. 땅을 가지고 시집 을 가서 사랑받았으나 남편이 돈을 벌면서 학대를 당한다.김초시 아다다의 아버지. 아다다의 행동을 경계시키려 진심으로 대하는 수롱이를 멀리하게 한다.어머니 아다다를 동정하기 보다 애물단지로 여겨 실수를 할 때마다 매섭게 때린다.
수롱 시집에서 쫓겨난 벙어리지만 자신과는 신분 차이가 나는 아다다에게 속을 태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불행의 이름 ‘아다다’
질그릇이 땅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는데,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키지도 않은 된장을 퍼담으려다 아다다가 질그릇을 깼던 것이다. 어머니 박씨는 부엌에 쥐가 들었나 하고 샛문을 열어 봤다. 그런데 거기에는 쥐가 아니라 아다다가 장독대 밑 한켠에 입을 헤 벌리고 넙적 엎어져, 두 다리만을 힘없이 버르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쪽으로 한 발쯤 나가선 깨어진 동이 조각이 너저분하게 된장 속에 묻혀있었다.
“아이구테나!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년이 동애를 또 잡았구나! 이년아! 너더러 된장 푸래든! 푸래?“어머니는 딸이 어딘가 다쳤는지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파하는 데도 동정심보다 깨어진 동이만이 아까워 보였다. “어 어마! 아다아다 아다 아다다…….” 모닥불을 뒤집어쓰는 듯한 끔찍한 어머니의 음성을 또다시 듣게 된 아다다는 겁에 질려 얼굴이 시퍼래지며 넘어진 연유를 말해 용서를 빌려고 하지만 말이 되지 않아 안타까워했다.
아다다는 벙어리였던 것이다. 말을 하렬 때에는 한다는 것이, 아다다 소리만이 연거푸 나왔다. 어찌어찌 가다가 말이 한마디씩 제법 되어 나오는 적도 있었으나, 그것은 쉬운 말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이것을 조롱삼아 ‘확실’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누구나 그를 ‘아다다’라고 불렀다. 이게 자연히 이름으로 굳어져, 그 부모까지 그렇게 부르게 됐거니와, 그 자신조차도 ‘아다다!’하고 부르면 마땅히 이름인 듯 대답을 했다.
어머니는 아다다에게 시집에 못 가면 어디로든지 가서 죽으라고 욕을 하며 날카롭게 흘겨보며 성큼 문턱을 넘어섰다. 아다다는 어머니의 손길이 또 자기의 머리채를 감아 쥐리라 생각하고 몸을 겨우 뒤채 일어서서 절룩절룩 굴뚝 모퉁이로 피하며 어쩔 줄 모르고 일변 고개를 좌우로 둘러 살피며 아연하게도, “아다 어 어마! 아다 어마! 아다다다다다!” 하고 부르짖는다. 다시는 일을 아니 저지르겠다는 듯이, 그리고 한번만 용서해 달라는 듯이. 그러나 기어이 쫓아간 어머니는, “이년! 어서 뒈데라. 뒈디기 싫건 시집으로 당장 가거라. 못 가간?” 하면 주먹을 귀 뒤에 넌지시 얼메고 마주 선다. 그리고 한 순간 주먹이 떨어지고 그 주먹은 어느새 끌채(머리채)를 감아 쥐고 갈지자로 흔들어댔다.
“아다 어어 어마! 아 아고 어 어마!” 아다다는 떨며 빌며 손을 모았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한 번 손을 댄 어머니는 그저 죽어 싸다는 듯이 자꾸만 흔들어 댔다. 그러니 그렇지 않아도 가꾸지 못한 텁수룩한 머리는 물결처럼 흔들리며 구름같이 피어나선 얼크러진다. 그래도 아다다는 그저 빌 뿐이요, 조금도 반항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거의 날마다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항해봤자, 그것은 도리어 매를 사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집에 일이 아무리 밀려도 나 모르는 체 손 싸매고 들어앉았으면 오히려 이런 봉변은 안당할 것이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치에 가까운 그의 성격은 무엇이든 힘에 부치는 노력을 해야 만족을 얻는 듯했다. 시키건, 안 시키건, 헐하나, 힘차나, 가리는 법이 없이 해야 될 일로 눈에 띄기만 하면 몸을 아끼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집안의 모든 고된 일은 실로 아다다가 혼자서 다 해치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갑지 않았다. 둔한 지혜로 뼈가 부러지도록 몸을 돌보지 않고, 거의 모험에 가까운 짓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 따르는 실수가 되레 일을 저질러 그릇 같은 것을 깨먹는 일이 거의 날마다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는 참례를 하지 않아도 행랑에서 다 해줄 일을 쓸데없이 맡아선 일을 저질러 놓고 어머니에게 매일 같이 매를 맞았던 것이다.
가져간 논 마지기로 사랑 받았던 시댁살이
시집을 보내기 전에도 그 버릇은 지금이나 다름없어 벙어리인데 행동까지 그래서 잘 아는 인근에서는 그를 얻어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열아홉 고개를 넘기도록 내버려뒀다가 속을 태우다 못해 깃부(지참금)로 논 한 섬지기를 처넣어 똥 치듯 치워버렸는데, 그만 5년만에 다시 쫓겨와 시집에는 아예 갈 생각도 아니 하고 매일같이 심화를 올렸다.
그래서 어머니는 역겨운 마음에 아다다가 실수를 할 때마다 주릿대를 내리고 참례를 말라건만 그는 참는다는 것이 그 당시뿐이요, 남이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속이 쏘는 듯이 슬그머니 나와서 곁을 슬슬 돌다가는 손을 대고 만다.
바로 사흘 전엔가도 무명 김을 할 때 활짝 단 솥뚜껑을 마련 없이 맨손으로 열다가 뜨거움을 참지 못해 뒤집어 엎는 바람에 그만 자배기를 깨뜨려서 욕과 매를 한바탕 겪었다. 그런데도 어제 저녁 행랑 색시더러 오늘은 묵은 된장을 옮겨담아야겠다고 이르는 말을 어느결에 들었던지 아다다는 아침밥을 먹자마자 어느새 나가 혼자 된장을 퍼나르다가 그만 또 실수를 한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아다다에게 시집에 가라고 윽박지르거나 죽으라고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나서 아다다는 참을 수 없는 매를 맞든지 머리채를 잡혀 곤욕을 치렀다. 움켜쥔 머리를 힘차게 휙 두르며 밀치는 바람에 손에 감겼던 머리카락이 끊어지는지 빠지는지 뭉텅 묻어나며 아다다는 비칠비칠 서너 걸음 물러났다. 그래도 아다다는 어머니를 원망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다 어마! 아다 어마! 아다 아다!” 하고, 다시 달려들듯 눈을 흘기고 섰는 어머니를 향해 눈물 글썽한 눈을 꿈벅 한 번 감아 보이고, 그리고 북쪽을 손가락질해, 어머니의 말대로 시집으로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어라도 버리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이며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고 허청허청 대문 밖으로 나갔다.
나오기는 나왔으나 갈 곳이 없는 아다다는 마당 어귀를 돌아서서는 발걸음을 더 내딛지 못하고 우뚝 섰다. 시집으로 간다고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의 매는 어머니의 매보다 무섭다. 그러면 다시 집으로 들어가나? 이번에도 매가 떨어질 것 같다. 어디로 가야 하나? 갈 곳 없는 갈 곳을 생각해보자니 눈물만 나왔다. 아다다는 오 년 전 그 시집이 참을 수 없이 그리웠다.
추울세라, 더울세라, 힘이 들까, 고단할까, 알뜰살뜰히 어루만져주던 시부모, 밤이면 품속에 꼭 껴안아 피로를 풀어 주던 남편. 아! 얼마나 시집에서는 자기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던 것인가?
참으로, 아다다가 처음 시집을 가서 5년 동안 온 집안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벙어리라는 조건이 마음에 꼭 들지는 않았어도, 돈으로 아내를 사지 않고는 얻어 볼 수 없는 처지였던 스물여덟 살의 남편은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세였으므로, 아내를 얻는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벙어리나마 일생을 먹을 것까지 갖고 온다는 데 귀가 번쩍 띄어 그 자리를 빼앗길까 두렵게 혼사를 치렀던 것이다.
아다다로 인해 먹고 살게 되자 시집에서는 아다다를 안 위할 수 없었다. 또한 아다다는 못하는 일없이 일 잘하고,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조금도 말썽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생활고가 주는 어려움에 쓸데없이 서로 눈독을 짓고 불쾌한 말만 끊일 새 없이 오가던 가족은 일시에 봄비를 맞는 동산같이 화락한 웃음꽃을 피우게 됐다.
원래 바른 사람이 못되는 아다다에게 실수가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로 인해 밥을 먹게 된 시집에서는 조금도 역겹게 안 여겼고, 되레 위로를 하고 허물을 감춰주려 했다. 참으로 친정과는 다른 대우를 받으며 행복하게 지내던 시절이었다.
돈이 생기자 아다다를 구박하기 시작한 남편
그러나 그날은 안타깝게도 다시 못 올 영원한 꿈속에 흘러가고 말았다. 해를 거듭하며 생활의 밑바닥에 깔아 놓았던 한 섬지기라는 거름이 차츰 그들을 여유한 생활로 이끌어, 몇백 원이란 돈이 눈앞에 굴게 되니, 까닭 없이 남편 되는 사람은 벙어리로서의 아내가 미워졌다.
남편은 아다다가 조그만 실수만 해도 눈을 흘겼다. 그리고 매를 내렸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들어오는 복을 차버리는 짓이라고 타이르지만 아들은 듣지 않았다. 그래서 부자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이럴 때마다 아버지에게는 감히 하고 싶은 행동을 못 하는 아들은 그 분을 아내에게로 돌리기가 일쑤였다. “이년, 보기 싫다! 네 집으로 가거라.” 그리고, 다음에 따르는 것은 매였다. 그러나 아다다는 참으며 아내로서의, 그리고 며느리로서의 임무를 다했다. 시부모는 그런 아다다를 더 귀하게 생각했다. 남편은 아다다가 아버지에게는 움직일 수 없는 며느리인 것을 깨닫고 가정에 불만을 품었다. 그래서 한 해의 농사로 거둔 것을 몽땅 팔아 집을 떠나 마음의 위안을 찾아 돌다 주색으로 돈을 탕진하고 동무들과 물거품같이 밀려 안동현으로 건너갔다.
그래서 이 투기적인 도시에서 뒹굴며 노동의 힘으로 밑천을 얻어선 ‘양화’와 ‘은떼루’에 투기해 황금을 꿈꾼 것이 기적적으로 맞기 시작해 이태 만에 이만 원에 가까운 돈을 손에 쥐게 됐다. 그래서 완전한 아내의 알뜰한 사랑에 굶주렸던 그는 돈에 따르는 무수한 여자 가운데서 흡족한 상대를 마음대로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새로운 살림을 꿈꾸면서 새로 집을 짓는 동시에 아다다를 더욱 가혹하게 학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그 아버지도 명민하고 인자하며 남부끄럽지 않은 버젓한 새며느리에게 마음이 쏠려, 이미 생활에 걱정이 없게 되자 더 이상 아다다를 돌아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시부모의 눈에서까지 벗어나게 된 아다다는 남편의 매를 견디다 못해 집으로 쫓겨오게 되었던 것이니, 생각만 해도 매 자리가 아픈 그 시집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찾아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로 가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이 세상에서는 수롱이네 집밖에 또 찾아갈 곳이 없었다.
아다다에 대한 수롱의 사랑
수롱은 부모 동생조차 없이 자란 삼십이 넘은 총각으로, 누구보다도 자기를 사랑해 준다고 믿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쫓겨날 때마다 그를 찾아가선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수롱은 벌써 1년 전부터 아다다를 꾀어왔다. 시집에서까지 쫓겨난 벙어리였으나, 김초시의 딸이라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뜻있는 마음을 건네볼 길 없어 속을 태워 가며 눈치만 봐 왔던 수롱이가 베풀었던 동정이 마침내, 아다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집에 있으면 어머니의 욕과 매, 밖에 나오면 뭇사람들의 놀림, 그러나 수롱이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따라다닐 때에도 남 아니 말려주는 것을 그는 말려 주고, 그리고 매에 터질 듯한 심정을 풀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다다는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수롱을 생각해 왔는데, 얼마 전부터는 찾아다니게까지 되어 동네의 눈치에도 오른지 이미 오래됐다. 그러나 아다다의 집에서도 그 아버지만이 지체를 따져 까다롭게 아다다의 행동을 경계하는 듯했다. 그 반면 아다다의 어머니는 도리어 수롱이와 배가 맞아서 아다다가 자기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고, 어디로든지 달아났으면 하고 바랐다. 그것을 눈치챈 수롱이는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까지 내어놓다시피 아다다를 사귀어 왔다.
아다다는 제 집처럼 서슴치 않고 달려오자마자 수롱이네 집 문을 벌컥 열었다. “아, 아다다!” 수롱은 의외에 벌떡 일어섰다. “너 또 울었구나!” 울었다는 것이 창피하긴 했으나, 숨길 처지가 아니었다. 가슴 속에 꽉찬 호소할 길 없는 설움은 수롱이의 따뜻한 위로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방안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쫓겨난 이유를 언제나처럼 낱낱이 말했다. “그러기 이젠 아야, 다시는 집으로 가지 말구 나하구 둘이서 살아, 응?”그리고 수롱은 의미 있는 웃음을 벙긋벙긋 웃어가며 아다다의 등을 척척 두드려 달랬다.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 아다다를 자기 것을 영원히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에 불탔던 것이다. 그러나 아다다는, “아다 무 무서! 아바 무 무서! 아다아다다다!” 하고, 그렇게 한다면 큰일난다는 듯이 눈을 동그렇게 뜬다. 집에서 학대를 받고 있느니보다 수롱의 사랑 밑에서 살았으면 오죽 행복하랴! 다시 집으로는 안 들어가리라는 생각이 없었던 바도 아니었지만, 정작 이런 말을 들으니, 뭔지 차마 허락하지 못할 것이 있는 것 같고 눈을 부릅뜨고 수롱이한테 다니지 말라는 아버지의 이르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더듬어보면 어머니의 매는 아버지의 그 눈총보다도 몇 배나 더 두렵고 견딜 수 없는 아픈 것이었다. 그래서 그러마고 대답을 못하고 거절한 것이 금세 후회스러웠다. “안 그래? 무서울 게 뭐야. 이젠 아야 집으루 가지 말구 나하구 있어, 응?” “응, 아다 이 있어, 아다 아다.” 하고, 아다다는 다시 있자는 수롱이의 말이 나오길 기다렸던 듯이, 그리고 살 길을 이제 찾았다는 듯, 한숨과 같이 빙긋 웃으며 있겠다는 뜻을 정확히 하기 위해 고개를 주억이며 혓바닥을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단단히 다짐을 받고 난 수롱이는 은근히 솟아나는 미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벙어리인 아다다가 흡족할 이치는 없었지만, 돈으로 사지 아니하고는 아내라는 것을 얻어 볼 수 없는 처지였다. 그저 생기는 아내는 벙어리였어도 족했다.
그
저 자기 하는 일이나 돕고 아들 딸이나 낳아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아내를 얻으려고 십여 년 동안을 불피풍우 품을 팔아 궤 속에 꽁꽁 묶어 둔 일백오십원이란 돈이 지금에 와서는, 아내 하나를 얻기에 그리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장가를 들지 아니하고 아다다를 꼬여 온 이유는 돈을 남겨서 그 돈으로 살림 밑천을 만들어 가정의 마루를 얹자는 생각에서였다. 이제 그 계획이 성공에 가까워 오자 자기도 남과 같이 가정을 이뤄보게 되나 하니 바라지도 못했던 인생의 행복이 자기에게도 이제 찾아오는 것 같았다.
“우리 아다다.” 수롱이는 아다다의 등에 손을 얹으며 빙그레 웃었다. “아다 아다.” 아다다도 만족한 듯이 히쭉 입이 벌어졌다.
수롱과의 행복한 삶을 위협하는 돈
그날 밤을 수롱의 품안에서 자고 난 아다다는 이미 수롱의 아내되기에 수줍음조차 잊었다. 아니, 집에서 자기를 받들어 들인다 해도 수롱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을만큼 마음이 굳어졌다. 수롱이가 주는 사랑은 이 세상에서는 더 찾을 수 없는 행복이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행복을 위해 이 자리에 그대로 박혀서는 누릴 수 없는 것이 남은 근심이었다. 수롱이와 같이 살자면, 첫째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요, 동네 사람도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이것은 수롱이도 짐짓 근심이었다. 밤이 깊도록 의논을 했지만 동네를 피해 낯모르는 곳으로 감쪽같이 달아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예식 없는 가약을 그들은 서로 맹세하고 그날 새벽으로 그 마을을 떠나, ‘신미도’라는 섬으로 흘러가서, 그곳에 정착했다.
그래서 있는 돈으로 어떻게 밭뙈기를 사서 조 같은 것이나 심어 겨울의 땔감과 양식을 대고 짬짬이 조개나 굴, 낙지, 이런 것들을 캐어 그날그날을 살아가면 그것이 더할 수 없는 행복일 것만 같았다. 아내를 얻은 지금, 수롱은 비록 적은 땅이나마 가져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거니와, 또는 그만한 소유를 가지는 것이 자기에게 향한 아다다의 마음을 더욱 굳게 하는 데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 밭을 한 뙈기 사자, 그래두 농살 지어야 사람 사는 것 같디. 내가 던답을 살라구 묶어 둔 돈이 있거든.” 하고 수롱이는 보라는 듯 실겅 위에 얹힌 석유통 궤 속에서 지전뭉치를 뒤져내더니, 손끝에다 침을 발라 가며 펄럭펄럭 세어 보였다. 그러나 돈을 본 아다다는 어쩐지 갑자기 화기가 줄어들었다. 수롱이는 그것이 이상했다. 돈을 보면 기꺼워할 줄 알았던 아다다가 도리어 화기를 잃은 것이다. 수롱은 아다다가 적은 돈에 실망한 것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