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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

이광수 지음 | -
단종애사(端宗哀史)

이광수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세종대왕(世宗大王) 조선의 임금이며 한글을 창제했다. 집현전 학사들을 아껴 신숙주, 성삼문, 정인지 등에게 어린 손자(단종)의 앞날을 염려한 고명을 내린다.

문종대왕(文宗大王): 세종의 장남, 단종의 아버지며, 수양대군(세조)의 형으로 효성이 지극하다. 병약하면서도 항상 학문을 닦고 강론하기를 좋아하며, 아버지 세종이 죽은 후 지 극한 효심으로 3년상을 치르고 곧 병을 얻어 어린 아들을 부탁하고 숨을 거둔다.

단 종(端宗): 문종의 아들로 비운의 왕. 천애의 고아로, 열다섯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정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그저 놀기 좋아하고 착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은 인물로, 숙부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수양대군(首陽大君): 세종의 둘째 아들로 잡기에 뛰어나고 행동이 민첩하며 권력욕이 있다. 안평대군 등 숙적을 제거하고 단종의 선위로 왕위(세조)에 오른다. 권력욕에 비해 다소 우유부단한 성품도 지니고 있다. 금성대군의 반정 도모를 계기로 조카인 단종을 죽인다.

안평대군(安平大君): 세종의 셋째 아들로 풍채와 문장과 글씨로 일세를 진동한 인물이다. 권력보다는 풍류와 학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람들을 많이 사귀어 인심을 얻지만, 계유정란 후 역모의 수괴라 하여 강화로 귀양을 갔다가, 누명을 쓴 채, 사약을 받아 죽는 다.

금성대군(錦城大君): 단종의 숙부며, 수양대군(세조)의 친동생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직선적인 면이있다. 한남군, 영풍군 등과 함께 역모를 꾸몄다 하여 순흥부로 귀양을 갔다가 청주 옥에서 죽음을 맞는다.

혜빈 양씨(惠嬪楊氏): 본래 천한집 딸로서 인물이 아름답고 영리하여 왕(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한남군과 영풍군의 어머니로 단종에게 젖을 먹였다. 성삼문 등의 병자원옥에 연 루되어 죽음을 당한다.

신숙주(申淑舟): 젊은 시절 집현전 학사로 입직 중에 세종의 고명을 받은 신하이다. 키와 눈이 작으며, 겉으로는 서글서글한 체하면서도 속으로는 이해 타산을 분명히 한다. 수양 대군이 명나라 고면사로 떠나면서 데리고 간 것이 인연이 되어 그의 왕위 찬탈을 도우며, 수양대군을 왕위에 앉히는 데에 앞장선다.

성삼문(成三問): 집현전 학사로 입직하다가 세종의 고명을 받게 된 신하이다. 키가 크고 눈이 크고 눈초리가 봉의 눈이며, 서글서글하나 아무렇게나 하는 점이 있으되 의심이 없고 통이 크다. 수양대군이 정란을 일으키고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 성승을 비롯하여 유응부, 박팽년, 하위지, 이개, 기건, 김질 등과 세조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한명회의 지략과 김질의 배반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모진 고문 끝에 죽음을 맞는다.

박팽년(朴彭年): 집현전 학사로 세종의 고명을 받은 신하이다. 성격이 신중하고 점잖은 인물이며,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뒤 성삼문 등과 단종을 복위하려고 하나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다.

김 질(金-): 당시 세도가인 정창손의 사위로 성삼문 등과 교류하던 인물이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분개하여 그를 제거하는 데에 앞장섰다가, 정창손과 함께 역모를 고자질하고 만다. 성삼문의 호의로 목숨을 건지고 후에 공신 대접까지 받는다.

정인지(鄭麟趾): 호는 학역재(學易齋). 문종의 좌필선이었으며, 간사한 외모에 비해 모략과 수완이 있고 교제를 잘했으나 덕이 재보다 부족하다는 말을 흔히 들었다. 수양이 고면사로 명나라에 가도록 도와 준 인연으로 왕위 찬탈을 돕는다. 계유정란의 성공 후 명예욕에 눈이 멀어 안평대군을 죽게 하고 마침내 단종의 선위를 이끌어낸다.

김종서(金宗瑞): 호는 절재(節齋). 몸은 비록 작고 몽톡하지만 두만강가의 야인들을 벌벌 떨게 할 정도로 기백이 뛰어난 인물이다. 문종이 승하하고 나서 어린 단종을 보호하며 정권을 휘어잡지만 수양대군에게 제거 당한다. 무인이라기보다는 다정다감한 늙은 정승으로 느껴지는 인물이다.

권 람(權擥): 고려조의 명대부(名大夫)며, 조선 개국의 주역인 권근의 손자로 자는 정경(正卿)이다. 살이 없고 흰 얼굴에 영채 있는 눈을 가졌다. 머리가 비상했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수양대군과 사귀면서 신세를 지자 한명회를 천거해 일약 공신의 반열에까지 오른다.

한명회(韓明澮): 권람의 추천으로 수양대군을 도와 국권을 찬탈하게 한 주역으로 자는 자준(子濬)이다. 칠삭동이이며 용모가 괴상하게 생겼고, 양심 없이 재물과 주색을 탐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수양대군과의 첫 대면에서 천명을 운운하여 수양대군의 마음을 움직이고, 김종서를 처단하는 계략을 꾸며낸다. 이후 단종을 사사하도록 정국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허 후(許詡): 효성이 지극하다는 명성이 높은 인물이다. 이 때문에 죽음을 면하지만 계유정란에 대해 반대했다. 정인지가 안평대군을 죽여야 한다는 청을 드리고자 할 때, 성삼문 등이 반대할 것을 청하자 목숨을 걸고 정인지와 정면대결한다.

송현수(宋玹壽): 단종의 장인이며, 중전 송씨의 아버지이다. 돈령부판사라는 미미한 직급을 지녔던 인물로 소신이 없고 결단력이 약한 성격이다. 단종이 왕위를 선위한 후에도 갈팡질팡하지 못하다가, 병자원옥 이후에 세조에 의해 제거된다.





용들의 죽음으로 술렁이는 왕조



마치 내 속에 들어와서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다 살핀 뒤에 내가 할 말을 대신 하여 주는 것과 같이 마음에 꼭 맞았다. 더구나 수양대군 자기가 상주가 되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원형리정이란 명회의 말이 이치에는 닿지 아니하면서도 마음에 맞았다.

지금부터 490년전, 조선을 가장 사랑하시던 세종대왕 23년 7월 23일 동궁이 거처하던 자선당에서 큰 슬픔의 주인이 될 아기가 탄생한다. 세종대왕은 입직하던 학사 신숙주와 정인지를 보며 어린 손자를 부탁한다. 동궁은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 세종을 하늘같이 모셨다. 그의 밑으로 후일 세조대왕이 되는 수양대군, 풍채와 문장과 글씨로 일세를 진동한 안평대군, 금성대군, 영응대군 등 8대군 2공주, 10군 2옹주가 있었다. 세종대왕은 수양대군이 너무 날래고 날뛰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항상 소매 넓은 웃옷과 가랑이 넓은 바지를 입혔다. 안평대군은 주색을 즐겼으며, 금성대군은 사리에 밝고 의리가 있으며, 영응대군은 얌전했다. 아기를 낳은 현덕빈 권씨는 열네 살에 양제로 들어와 양원으로 봉해진 사람이었다. 세종대왕은 아기가 태어난 날 조회 후에 황희, 황보인, 김종서, 정분, 정인지 다섯 사람을 불러 아기의 후사를 부탁했다. 아기의 어머니 세자빈은 하루만에 아기를 혜빈 양씨에게 부탁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얼마 후 세종대왕이 승하하고, 3년상을 치른 뒤 문종대왕이 왕위에 올랐지만 석 달만에 그 역시 승하하여 열 두 살의 나이에 어린 아기가 왕위에 올랐다. 살아있는 동안 문종대왕은 임금이 게으르면 안 된다며 병약한 몸을 이끌고 강론을 하거나 신하들과 학문을 닦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원래 문종은 젊었을 때에 휘빈 김씨를 좋아했으나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로 인해 폐빈이 되었고, 순빈과 수칙 양씨를 거쳐 양원 권씨를 맞아들였던 것이다.

수양대군은 왕이 문약한 것과 아우인 안평대군의 명망이 크게 떨치는 것을 미워했다. 왕이 연회를 베풀어 함께 즐기는 가운데에서도 수양과 안평대군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불꽃이 이는 듯했다. 왕은 그런 두 사람과 중신들을 모아 두고 어린 세자에게 그들을 아버지의 친구처럼 대하라고 명한 뒤, 장래를 부탁하는 언약을 했다. 그 얼마 뒤 왕은 중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탁하오.’ 한마디만 남긴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육십이 가까운 양녕대군은 어린 왕의 승계가 걱정스러웠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을 번갈아 떠올렸다. 일을 일으킨다면 그건 수양대군일 터였다. 믿을 것은 절재 김종서밖에 없었다.

문종대왕이 승하할 때, 수양대군에게는 한마디 고명도 하지 않았는데, 수양은 그것이 분하기만 했다. 이때, 권근의 손자인 권람이 찾아와 천명이 그런 걸 어찌하겠느냐며 수양의 심사를 뒤집는다. 수양은 그를 붙잡고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은근히 물어보는데 권람은 모략 있는 사람으로 한명회를 추천하고 끌어들일 사람으로 정인지를 추천한다.

경덕궁직 한명회는 벼슬은 미미하지만 재물을 탐하고 주색잡기에 능하다는 것으로 송도에서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잉태한 지 일곱 달만에 태어났으며 생김새가 괴물 같았으나 재주도 있고 엉큼스러웠다. 권람과는 매우 가까운 사이로 일생을 관중과 포석으로 자처했다. 권람이 수양대군과 친분이 있는 것을 안 한명회는 상감이 승하한 후에 자신을 수양대군에게 천거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양정, 유수, 임운 등과 사귀었는데, 셋 모두 골격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였으며 대개 사람께나 죽이고 숨어다니는 신세였다. 그들은 한명회를 떠받들고 시중을 들었는데, 한명회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명부록에 항상 적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명회에게 서울로 올라오라는 수양대군의 명이 떨어진다. 수양대군 궁으로 간 한명회는 수양의 내심을 떠보는 말을 하고 수양대군이 망설이는 것 같자 바로 나오려고 한다. 수양대군은 황급히 그를 붙잡고 계책을 물었다. 한명회는 불평객들을 불러모아 힘을 기르라고 말한다. 그 후로 한명회와 수양대군 권람 등은 수시로 만나 비밀스러운 논의를 하곤 했다.



계유정란, 수양대군의 피비린내나는 권력 획득의 수순

수양대군의 칼이 늙은 궁녀를 범하려 할 때에 왕은 황망히 수양대군의 칼 든 팔에 매어 달리시며, “숙부, 날 살리오!” 하고 소리를 내어 울으시었다. 수양대군은 왕의 우는 얼굴을 굽어보았다. 비록 심히 숙성하신 왕이라 하더라도 우는 얼굴은 더욱이 어리시게 보이었다. 수양대군은 피 묻은 칼을 옷자락으로 씻어 칼집에 넣었다.

그러는 동안 조정에서는 새로이 임금이 등극했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 명나라에 보낼 고면사(사신)에 대한 논의가 벌어진다. 한편, 기건은 왕의 친척들이 함부로 궁에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해 금분경안을 내놓는데, 이를 괘씸히 여긴 수양대군은 한명회의 지략으로 없던 일로 돌리게 함으로써 조정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고면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조정 대신들은 서로 눈치만 본다. 어린 왕은 내심 누님의 남편인 남녕위 정종을 보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데, 수양대군이 나서서 자신이 다녀오겠다고 말한다. 이때 정인지가 나서서 남녕위 정종은 불가하다고 말함으로써 수양대군이 고면사로 다녀오게 된다. 그로 인해 수양대군의 세력은 한층 강해졌다.

자하골 수양대군 궁 후원에는 천하의 잡놈들과 팔도 망나니들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무예께나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수양대군 궁은 평상시와 다르게 술렁댔다. 수양대군이 정난을 일으키기로 작정한 날이었다. 황보인, 김종서 등은 이전부터 수양대군의 행동을 의심하여 무슨 일이 있으면 수양을 처치하기로 의논까지 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를 안 수양은 불시에 일을 벌이기로 했다. 그 첫 목표는 김종서였다. 자신만만한 홍윤성이 먼저 나서서 두만강가의 호랑이로 불리는 김종서를 방문하지만 뜻밖에 김종서의 손자에게 따귀를 얻어맞는다. 김종서는 호인답게 홍윤성의 힘이 대단한 것을 알고 살려보내고는 두만강 야인(野人)의 딸 야화를 부른다. 이때 수양대군이 그의 집을 방문한다. 느닷없는 방문에 김종서는 친히 나아가 그를 맞이한다.

수양대군은 사모의 뿔이 부러졌다는 핑계로 아들 승규를 집안으로 들여보내고는 편지 한 장을 건넨다. 환한 달빛에 그가 편지를 읽자 수신호를 받은 임운이 철여의(쇠 몽둥이 끝에 사슬을 연결하여 무쇠를 단 무기)를 뽑아 번개같이 김종서의 뒤통수를 내려갈겼다. 머리가 갈라져 붉은 피를 쏟으며 김종서는 “나으리, 이런 법이 없소” 한마디를 하고는 거꾸러졌다. 사모뿔을 들고 나오던 승규는 칼싸움 끝에 양정의 칼에 쓰러지고 만다. 수양대군은 곧바로 마침 누님인 경혜공주의 생일을 맞아 영양위궁으로 가 있는 왕에게 말을 달렸다. 그는 무사들로 하여금 궁 주위를 경계하도록 해놓고는 황보인과 김종서가 안평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모반을 일으켰다고 알렸다. 어린 왕은 그럴 리가 없다고 의심하고, 내시 김연과 한숭도 수양대군의 말이 거짓일 것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자 수양대군은 두 내시를 단칼에 베어버리고, 무서움에 겁이 질린 왕은 살려달라며 울며 매달린다. 그런 모습을 측은하게 내려다보던 수양대군은 명패를 내어 모든 백관을 부르라 했다.

왕의 부름을 받고 들어오던 이양, 조극관 등은 참혹하게 죽음을 맞는다. 황보인은 아닌 밤중에 왕의 부름을 받자 심상치 않게 여기고, 가지 말라는 것도 뿌리친 채 영양위궁에 들어서다가 죽음을 맞는다. 이 과정에서 허후와 정인지 간에 미미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마침내 수양대군의 살육전이 끝나고,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왕은 수양대군에게 영의정 이조판서 병조판서 겸 내외 병마도통사라는 전무후무한 겸직을 내린다.



권력 유지를 위한 정리 작업

성삼문은 이번 수양대군의 소위 정란에 의분을 금하지 못하나 일개 승지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내일은 안평대군을 죽이기 위하여 좌의정 정인지가 솔백관계한단 말을 듣고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하여 그 아버지 승의 허락을 얻어가지고 평소부터 믿던 집현전 친구들을 모아 명일에 할 대책을 토론하기로 하였다.

이튿날 정인지는 집현전에서 교서를 내리도록 하고, 이때 입직 중이던 유성원이 교서를 짓고는 집에 돌아가 통곡했다. 수양대군이 교서를 받자 백관들은 너도나도 수양대군에게 아첨을 떠는데, 한쪽에 있던 허후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다. 공을 차지하고 싶었던 이계전은 이 사실을 수양대군에게 고자질하고, 수양은 크게 화를 내지만 차마 그를 죽이지는 않았다.

한편, 임운의 철여의에 얻어맞았던 김종서는 완전히 죽지 않아 궁에 들어가겠노라고 버티다가 자식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른다. 날이 밝기도 전에 들이닥친 이홍상은 아직 죽지 않은 김종서의 목을 자르고 부녀자들을 폭행하는 참극을 벌인다. 정란이 끝나자 수양대군은 차마 형제간에 죽일 수는 없어서 안평대군을 아들 우직과 함께 강화로 귀양보내지만 후일이 두려운 정인지 등은 안평대군을 죽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이때 이 소식을 들은 성삼문은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시회를 빙자로 박팽년, 하위지, 유성원, 이개, 이석형, 기건 등을 청했다. 이 자리에서 김질은 아침 조회에 정인지가 안평대군을 죽이라는 말을 할 때 모두들 나서서 그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하자는 제안을 한다. 이에 감정이 격한 이개, 성삼문 등은 김질의 말에 찬동하고, 하위지는 그래도 재상 중에서 누군가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며 의논을 한다. 논의 끝에 그들은 허후를 앞장세우기로 하여 그 뜻을 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신숙주의 집에 들른다. 신숙주는 혹시 변절한 것이 아니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쩔쩔맨다.

이튿날 허후는 정인지의 말에 반대하고, 고민거리가 생긴 수양대군은 왕에게 묻지도 않고 안평대군을 죽여버리고 만다. 이렇게 해서 정란 후의 상황을 수습한 수양대군은 실추된 명성을 회복하는 데에 온 힘을 쏟기 시작했다. 그는 거상 중임에도 판돈녕 부사 송현수의 딸을 어린 왕의 배필로 정해 왕실을 안정시키고, 안평대군의 여당이라 하여 정분, 허후, 우직을 마저 죽인 후에 앞으로는 더이상 정난과 관련된 말을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어린 단종의 선위와 마침내 이룬 수양대군의 왕위 등극

“마마, 내가 왕위를 버리고 일개 농부가 된다면 마마는 어찌하려오?” 하고 왕은 더욱 잠이 달아나시는 모양으로 왕후께 농담삼아 말씀하신다. “상감께서 농부가 되옵시면 소인은 지어미가 되지 아니하오리까……. 그런데 왜 그러한 흉한 말씀을 하옵시는지.” 왕후는 심히 염려되는 모양이다.

해가 바뀌어 을해년이 되자 수양대군은 왕의 자리를 차지할 결심을 했다. 말로는 왕이 성년이 되면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욕심이 그렇지 못하고 부인과 권람, 한명회 등도 그러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는 우선 혜빈 양씨에게 궁중 출입을 못하게 하고 어린 왕을 도와줄 만한 사람들을 가두거나 떼어내어 왕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못하도록 만들고, 사람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끌어들일 수 있는 인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건, 권절, 조상치 등은 수양대군의 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궁에 고립되다시피한 왕은 친인척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열 여섯밖에 되지 않은 얼굴이 삼십이나 넘은 사람처럼 보였고, 눈치를 보는 데나 마음을 쓰는 데서 겉늙은이처럼 되고 말았다. 아버지 문종대왕의 제삿날 그는 슬픔이 복받쳐 소매가 젖도록 울어 주위 사람들조차 눈물을 흘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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