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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지음 | -


이효석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퇴학을 당하고 고향에 내려와 있다. 매일 들판에서 지내며 자연의 정취에 취해 있는 인물. 옥분이나 문수를 만나면서 자연과 사회에 대한 동경과 갈등을 드러낸다.

옥분: 득추에게 파혼을 당한 상태다. 나와 스스럼없이 관계를 맺기도 하는데, 후에 문수와도 관계를 맺은 것으로 드러난다.

문수: 일요일이면 들판에서 나와 만나 독서토론도 하고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주고받는다. 들판 즉 자연에 물러나 있는 나를 사회와 연결시켜 주는 인물이다. 후에 학교에서 퇴학당해 어디론가 끌려간다.



찬란한 초록 들판에서의 매일

학교를 퇴학 맞고 처음으로 도회를 쫓겨 내려왔을 때에 첫걸음으로 찾은 곳은 일갓집도 아니요, 동무집도 아니요, 실로 이 들이었다. (중략) 고향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면서도 그리운 것은 더 많이 들판과 시냇물이다.

들은 온통 초록으로 덮여 한 조각의 흙빛도 찾아볼 수 없다. 초록의 바다인 것이다. 그곳은 마치 옷 입고 치장한 여인과도 같다. 흙빛에서 초록빛으로. 땅은 어디서 어느 때 그렇게 많은 물감을 먹었길래 봄이 되면 한꺼번에 그것을 이렇게 지천으로 뱉어놓을까. 이 우주 비밀의 약품, 그것은 결국 알 바 없을까.

사람의 지혜란 결국 신비의 테두리를 뱅뱅 돌 뿐이요, 조화의 속의 속은 언제까지나 열리지 않는 판도라의 상자인 듯싶다. 초록풀에 덮인 땅 속의 뜻은 초록 옷을 입은 여자의 마음과도 같이 엿볼 수 없는 저 건너 세상이다.

꽃다지, 질경이, 민들레……. 가지가지 풋나물을 뜯어먹으면 몸이 초록으로 물들 것 같다. 물들어야 될 것 같다. 물들어야 옳을 것 같다. 물들지 않음이 거짓말이다. 물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언제까지든지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으면 나중에는 현기증이 나며 눈이 빠질 듯싶다. 반나절 동안 두려움 없이 하늘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있는 사람이란 세상에서도 가장 착한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가장 용기 있는 악한이어야 한다. 그렇게도 푸른 하늘은 거룩하다.

이처럼 봄의 자연에 대한 예찬에 젖어 있던 나는 그러한 예찬에 젖어 있는 자신의 상황을 둘러본다. 나는 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졌는지 모른다고 고백하면서 지금은 그것이 자신의 마음속에 한 그릇의 밥, 한 권의 책과 똑같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사람은 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에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자신이 자연을 예찬하는 이유를 생각한다. “자연과 벗하게 됨은 생활에서의 퇴각을 의미하는 것일까. 식물적 애정은 반드시 동물적 열정이 진한 곳에 오는 것일까. 학교를 쫓기고 서울을 물러오게 된 까닭으로 자연을 사랑하게 된 것일까” 결국 나는 신념에 목숨을 바치는 영웅이라고 인간 이상이 아닌 것과 같이 들을 사랑하는 졸부라고 인간 이하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한다.이제 고향 마을 사람들도 나에게 “해동지 늪에 붕어떼 많던가?” 하는 식으로 들의 소식을 묻는다. 나는 책을 외듯이 벌판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외고 있었던 까닭이다. 마음속에는 들의 지도가 세밀히 박혀 있고 사철의 변화가 표같이 적혀 있었다.

나는 학교를 퇴학맞고 곧 들판을 찾아들었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사람보다는 산천과 벌판을 반가워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의 들판 생활은 시작되었다.



허랑한 봄날 옥분과의 만남, 둑 위에서 문수와의 하루

눈앞에 떨어지는 그의 민출한 자태가 가슴속에 새겨진다. 검은 치마폭 밑으로 드러난 불그레한 늠츳한 두 다리 ――자작나무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헐벗기 때문에 한결 빛나는 것――세상에도 가지고 싶은 탐나는 것이다.

시절은 만물을 허랑하게 만드는 듯하다. 짐승은 드러내놓고 모든 것을 들의 품 속에 맡긴다. 새풀 숲에서 나는 새 둥우리를 발견한다. 둥우리 안에는 아직 까지 않은 알이 너덧 알 들어 있다. 그곳은 창조의 보금자리였다. 나는 그 보금자리를 행여 어지럽힐까 손가락 하나 대기를 주저하며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조용히 그곳을 물러나온다.

그러다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맹랑한 풍경이 눈에 띈 까닭이다. 개울녘 풀밭에서 한 자웅의 개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하늘을 겁내지 않고 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람의 눈을 꺼리는 법 없이 자웅은 터놓고 마음의 자유를 표현했다. 부끄러운 것은 오히려 나였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대중없이 오랫동안 그 요절할 광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광경을 성내서는 비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보고 있는 동안 어디서인지 자웅의 개들을 향해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킬킬킬킬’ 웃음소리가 나며 다시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나 외에 누군가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돌멩이가 날아들더니 아래편 숲 속에서 사람 그림자가 뛰어나왔다. 옥분이었다.

나도 놀라고 옥분도 놀랐다. 옥분은 별안간 웃음을 뚝 그치고 삽시간에 검붉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눈알이 땅을 향하고 한편 손이 어쩔 줄 몰라 행주치마를 의미없이 꼬깃거렸다. 나는 당황한 옥분을 위로하기 위해 관대한 웃음을 웃으며 “빌어먹을 짐승들” 하고 자웅의 개들을 책망하며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갑작스럽게 옥분의 파혼을 들먹였다. “득추 녀석쯤이 너를 싫달 법 있니. 주제넘은 녀석!” 옥분의 가세가 빈한한 것에 파혼한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옥분은 나의 동정어린 마음을 알면서도 시침을 뗀다. 그런 옥분의 마음씨가 오히려 은연중 마음에 당긴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아름답다, 탐난다.

일요일엔 오래간만에 문수와 함께 둑 위에서 하루를 보냈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둑에 오르면 마음이 활짝 열리는 듯이 시원했다. 문수는 빌려갔던 몇 권의 책을 돌려주고 표해 두었던 몇 구절의 뜻을 물었다. 나는 그에게 하루의 선배였다. 공부를 마치고 문수와 이러저러한 잡담을 나누었다. 문수는 “학교가 점점 틀려가는 모양이다.” “책 읽는 것까지 들키었네. 자네 책도 뺏길 뻔했어.” 하는 식의 궁박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가 다하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연설을 해 보기도 했다. 연설은 훌륭한 공부 이외의 또 다른 단련이었다. 아무리 자유로운 말을 외쳐도 거기에서만은 ‘중지’를 당하는 법이 없었다. 문수와 보내는 날은 다시없이 즐거운 날이었다.



옥분과 하룻밤 인연

우연히 욕을 당하게 된 몸동아리를 훑어보며 나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별안간 옥분의 몸이 ―― 향기가 눈앞에 흘러왔다. 비밀을 가진 나의 몸이 다시 돌아보이며 한동안 부끄러운 생각이 쉽게 꺼지지 않았다.

과수원 철망 너머로 엿보이는 철 늦은 딸기를 볼 때마다 나는 건강한 식욕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탐나는 열매에 눈독을 보내며 나는 그다지 가책과 반성 없이 철망을 넘어 들어갔다. 나는 몇 해 동안 완전히 야취(들의 초록빛, 자연스런 아름다움)의 성격을 얻은 것이다. 흐뭇한 송이를 정신없이 따서 입에 넣어본다. 그러나 입의 감동이 눈의 감동보다 못하다. 과수원의 양딸기보다 벌판에 지천으로 열려 있는 들딸기가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철망을 넘어 나왔다.

그러다 옥분과 부딪혔다. 개천 둑에서의 기묘한 만남 후 두번째의 공교로운 만남이었다. 마음이 헐하게 놓이면서 그녀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게 됐다. 확실히 전날의 기묘한 만남이 마음을 방긋이 열어 놓은 것 같았다.

나는 떨리는 그녀의 팔을 붙들고 풀밭을 지나 버드나무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입술은 딸기보다도 더 붉었다. 확실히 그녀는 딸기 이상의 유혹이었다. 딸기를 훔치러 철망을 넘을 때와 똑같이 가슴이 후둑후둑 떨렸다. 옥분은 굳이 거역하지 않았다. 양딸기 맛이 아니요, 확실히 들딸기 맛이었다. 마음이 흐뭇이 찼다.

그러나 후에 아무리 야취의 습관에 젖었기로 철망 너머 딸기를 딸 때와 같이 아무 가책도 반성도 없이 그럴 수 있었던가, 벌판서 장난치던 자웅의 짐승과 일반 아닌가, 그것이 바른 일이었는가 하는 한 줄기 곧은 생각이 뻗쳐올랐다.

며칠이 지나도 옥분과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수선한 마음을 씻어버릴 양으로 아침부터 그물을 들고 집을 나섰다. 고들매기나 후려볼까 하는 욕심이 생겨 산 속에 오목하게 둘러싸인 개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옷을 활짝 벗어붙이고 그물을 메고 물 속에 뛰어들었다. 어수선한 생각이 한결 덜해졌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 생각까지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사람의 사이란 그렇게 수월할까’ ‘책임문제는 생기지 않을까.’ 그날밤 옥분과의 인연이 어처구니없게 쉽사리 맺어진 것이 아무래도 의심쩍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물을 던져본다. 그물을 던질 때의 호흡이란 마치 활을 쏠 때의 느낌과 같이 미묘한 것이어서 통일된 정신과 긴장된 자세가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어수선한 생각을 떨치지 못한 채 그물을 던져서인지 그물을 던지고는 미끄러져 버렸다. 결국 소(沼)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면상과 어깻죽지에 몇 군데 상처가 생겼다. 다리에는 군데군데 멍이 들었다. 고들매기는 한 마리도 손에 쥐어 보지 못한 채 몸만 욕을 당했다.



문수의 정학과 문수와 옥분의 인연

문수는 기어코 학교를 쫓겨났다. (중략) 씨름을 해가는 동안에 우리는 힘에 대한 인식을 한층 새롭혀갔다. 조직의 힘도 장하거니와 그것을 꾸미는 한 사람의 힘이 크다면 더한층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문수는 기어코 학교를 쫓겨났다. 기한없는 정학처분이었으니 영영 몰려난 것과 같은 결과다. 차라리 시원하다고 문수는 거드름을 부렸으나 나는 그의 집 식구들에게 문수를 타락시켜 놓은 나쁜 놈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별 수 없이 나와 문수는 나날을 들과 벗하게 되었다. 나는 좋은 들의 동무를 얻은 셈이다. 풀밭에 서면 경주를 하고 시냇가에 서면 납작한 돌을 집어 물위에 수제비를 뜨기가 일쑤다. 팔이 축 처지게 되면 다시 기운을 내어 모래밭에 겨루고 서서 씨름을 했다.

힘! 무슨 힘이든 좋다. 씨름을 하는 동안에 우리는 힘에 대한 인식을 한층 새롭게 해갔다. 조직의 힘도 장하거니와 그것을 꾸미는 한 사람의 힘이 크다면 한층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씨름을 하면서도 나의 생각은 이러한 데 머물러 있다.

문수와 천렵을 나섰다. 벌판에 냄비를 걸고 뜬 고기를 끓이고 밥을 지었다. 먹을 것이 거의 준비가 되었을 때, 더운 판에 목욕을 들어갔다. 문수가 나의 상처를 보고 물었다. “어째 이 상처가 웬일인가?” 나는 뜨끔하면서 그때까지 완전히 잊고 있던 고들매기 사냥과 거기에 관련된 옥분과의 일이 생각났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옥분과의 곡절을 은연중 귀띔하여 주었다. 문수는 그 말을 듣고는 웃다가 웃음을 그치더니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옥분이――나도 그와는 남이 아니야.”

득추와 파혼된 후로부터 달뜬 마음이 허랑해진 모양이란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에게 이상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문수에게 노염과 질투를 느끼는 대신에 도리어 일종의 안심과 감사를 느끼는 것이었다. 괴롭던 책임이 모면된 것 같고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듯이 감정이 가벼워지고 엉겼던 마음이 풀렸다. 결국 옥분의 허랑한 태도가 마지막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자네가 버드나무 숲에서 만났다면 나는 풀밭에서 만났네.” 문수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들의 성격과 마술과도 같은 자연의 매력을 생각했다.

공포도 두려움도 없는 들의 밤, 공포를 만드는 사회

가졌던 동무를 잃었을 때의 고독이란 큰 것이다. 들에서 무료히 지내는 날이 많다. 심심 파적으로 옥분을 데려올까도 생각되나 여러 가지로 거리끼고 주체스런 일이다. 깨끗한 것이 좋을 것 같다. 별 수 없이 녀석이 하루라도 속히 나오기를 충심으로 바랄 뿐이다.

무더운 날이 계속됐다. 이런 때는 마을은 한층 지내기가 어렵고 역시 들이 한결 낫다. 나와 문수는 의논하고 하룻밤을 들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들의 밤은 두려운 것일까 하는 의문도 있었기 때문이다. 옥분도 데려다가 세 사람이 “들의 아들”이 되었으면 하는 문수의 의견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배척했다. 결국 그것은 나의 야성이 철저치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와 문수는 들 복판에서 해를 넘기고 어둡기를 기다리고 밤을 맞이했다. 불을 피우고 이야기했다. 별만이 깜박거리고 바닷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어둠은 깊고 넓고 무한했다. 창조 이전의 혼돈의 세계가 이러했을까 생각해 본다. 무한한 적막-지구의 자전 공전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공포-두려움이란 어디서 오는 감정일까. 그것은 어둠에서도 적막에서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일부러 두려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로 마음을 떠보았으나 새삼스러운 공포의 감정은 솟아나지 않았다.

서로 눈만 말똥거리다가 피곤하여 어느결엔지 잠이 들었다. 단잠을 깨었을 때는 아침해가 높은 후였다. 야영의 밤은 시원하였을 뿐이요, 공포의 새는 결국 잡지 못했다.

그러나 공포는 왔다. 그것은 들에서 온 것이 아니요 마을에서-사람에게서 왔다. 공포를 만드는 것은 자연이 아니요 사람의 사회인 듯싶다. 문수가 돌연 끌려간 것이다. 학교 사건의 뒷마무리였다. 이어 나도 들어가게 되었다. 문수와 관련되어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나는 사흘밤 지나 나왔으나 문수는 소식이 없다. 오랠 것 같았다.

가졌던 동무를 잃었을 때의 고독이란 큰 것이었다. 들에서 무료히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옥분을 데려올 생각도 하였으나 그냥 두었다. 별 수 없이 문수가 하루 속히 나오기를 바랐다. 나오거든 풋콩을 실컷 구워 먹이고 기름종개를 많이 떠먹이고 씨름해서 몸을 불려줄 작정이다. 들에는 도라지꽃이 피고 개나리꽃이 장하다. 시절이 무르녹았다. 발표지 :「신동아(新東亞)」1935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서정적 문체, 시(詩)처럼 쓰여진 소설 ‘들’

이효석의 문체는 소설가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서정적이다. 그런 효석을 두고 유진오는 "소설의 형식을 가지고 시를 읊은 작가"라고 했다. 그의 서정적인 문체는 소설 구석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특징 때문인지 효석의 소설은 어디까지가 소설이며, 어디까지가 수필인지, 또 어디까지가 시인지 분간하기 힘든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효석의 소설적 특징은 대상 앞에서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점이다. 특히 그 대상이 ‘자연’일 때는 더욱 그렇다. 소설의 줄거리가 전개되다가 별안간 자연의 정경에 몰입하여 자신이(화자=소설가) 자연 속에 용해된다. 결국 그의 서정적 문체는 자연을 풍경으로 제시하거나, 분석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연와 일치하려는 작가적 태도에서 기인한다.「들」은 그러한 문체적 특징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들」의 처음은 소설인지 시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초록 들판에 대한 서정적 예찬이 장황하게 펼쳐진다. 주어조차 생략되고 예찬하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조차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오직 봄의 자연 풍경에 대한 묘사적 예찬이 계속된다. 거기엔 소설 장르의 특징인 서술자의 목소리는 흔적조차 없다.

얀들얀들 나부끼는 초목의 양자는 부드럽게 솟는 음악. 줄기는 굵고 잎은 연한 멜로디의 마디마디이다. 부피 있는 대궁은 나팔소리요, 가는 가지는 거문고의 음률이라고도 할까. 알레그로가 지나고 안단테에 들어갔을 때의 감동――그것이 봄의 걸음이다. 풀 위에 누워 있으면 은근한 음악의 율동에 끌려 마음이 너볏너볏 나부낀다.

화려한 은유적 비유를 들어 봄의 초목을 묘사하고 있는 인용문은 이효석의 문체가 얼마나 서정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들」에서 보여지는 서정적 문체는 비단 작품의 서두에서만 있지 않다. ‘나’라는 인물의 들에서의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 전개과정도 그러한 문체적 특징을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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