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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길

이태준 지음 | -
밤길

이태준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황서방: 심성이 착하고 세상살이에 다소 어두운 하층민이다. 삶에 대한 의욕은 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식을 땅에 묻어야 하는 무기력한 인물이다.

권서방: 황 서방과 함께 일하는 하층민으로 황 서방과 마찬가지로 심성은 착한 인물이다. 황 서방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그저 함께 아이를 묻으러 다닌다.



두 사람, 황 서방과 권 서방

계집애는 큰게 둘이지만, 아들로는 첫아이를 올해 얻었다. 황 서방은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딸애들 때와 달리 부쩍 났다. 어떻게 돈 십 원이나 마련되면 가을부터는 군밤장사라도 해 볼 예산으로, 주인나리한테 사정사정해서 처자식만 맡겨놓고 인천으로 내려 온 것이다.

황 서방은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가을부터는 군밤 장사라고 해볼 심산으로 인천으로 내려와 목수 일을 한다. 월미도 끝에 용궁각인가, 수궁각인가는 열나흘 째 줄곧 내리는 비로 보이지 않는다. 삼십 간이 넘는 큰 집을 짓는데, 암기와만이라도 덮은 것이 다행이나 목수들은 토역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미쟁이들은 날들기만 기다린다.

집주인은 으레 하루 한번씩 와보고는 황 서방과 권 서방더러만 조심성이 없이 곰팡이를 문대고 다녀서 집을 더럽힌다고 중얼거리고는 이놈의 하늘이 영영 물커져 버릴려나 하고는 입맛을 다신다. 그러면 황 서방과 권 서방은 입을 삐죽하여 집주인의 뒷모양을 비웃고 안방으로 들어가 가마니쪽 위에 눕는다. 사실 날이 들길 기다리는 사람은 모간꾼인 황 서방과 권 서방보다 더한 사람이 없다.

권 서방은 집도 권속도 없이 떠도는 홀애비이지만, 황 서방은 서울 수표다리께 행랑살이나마 아내도 자식도 있다. 그는 올해 첫 아들을 낳고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주인나리한테 사정사정해서 처자식만 맡겨놓고 인천으로 내려온 것이다. 와서 한 보름 동안은 품삯을 받는 대로 먹어 없앴다. 냉면, 콩국, 순대국, 호떡……, 버는 족족 써가지고는 목돈을 만질 것 같지 않다. 정신을 바짝 차려 돈을 모을라치니 장마가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주인에게 선고까로 하루 사십 전씩을 얻어서 연명하는 처지가 되었다.

새벽에 잠만 깨면 귀부터 드는데, 빗소리는 어제나 다름없다. 권 서방은 오간인가 사간인가를 떼며 화투 하나 칠 줄 모른다고 황 서방에게 핀잔을 준다. 그것을 보며 황 서방은 제 여편네 생각을 한다. 황 서방의 아내도 화투를 못한다고 핀잔이었던 것이다. 황 서방은 돈도 못 벌면서 생홀애비 노릇만 하는 것이 청승맞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며칠 전에 부친 편지 생각을 하며 아내가 받아보았을지 궁금해한다. 황 서방의 아내는 그보다 열 네살이나 어렸다. 두 사람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밖에서 비 맞는 지우산(기름바른 종이로 만든 우산) 소리가 난다.아내의 가출, 주인 나리의 내방

이런 무도한 년놈이 있나? 개돼지만도 못한 것이지 제 새끼를 셋이나, 그것두 겨우 백일 지난 걸 놔두구 달아나는 년이야 워낙 개만도 못한 년이지만, 애비되는 녀석까지, 아무리 제 여편네가 달아난 줄은 모른다 쳐도, 밤낮 아이만 끼구 앉아 이마대기에 분칠만 하는 년이 안일을 뭘 그리 칠칠히 해내며 또 시킬 일은 무어 그리 있다고…….

소란스런 소리가 들여 황 서방이 일어나 보니 파나마(파나마 섬유로 된 모자)에 금테 안경을 쓴, 시뿌옇게 살진 양복쟁이다. 황 서방이 부리나케 뛰어가 인사를 하는데 상대는 우산을 놓기가 바쁘게 황 서방의 뺨을 때리고는 멱살을 잡는다. 영문도 모른 채 우선 맞기부터 하는 황 서방을 보고는 권 서방이 나서며 소리를 지르자, 양복쟁이는 멱살을 놓고 마룻널 포개넣은 데로 가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문다.

양복쟁이는 황 서방네 주인나리였다. 자초지종은 간단했다. 황 서방의 처가 달아난 것이다. 아홉 살짜리, 여섯 살짜리 두 계집애와 백일 겨우 지낸 아들애까지 내버려두고 주인집 은수저 네 벌과 빨래 한 보퉁이까지 가지고 나가선 무소식이란 것이다. 문제는 젖먹이 애였다. 어미젖을 못 먹게 되자 설사를 하고, 팔다리가 비비 틀려서 볼 수가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어린애 송장까지 쳐야 할 처지에서 황 서방의 편지가 온 것이다.

황 서방이 인천에 가 있는 것을 알게 된 주인 나리님은 큰 계집애한테 젖먹이를 업히고, 작은 계집애한테는 보퉁이를 들려서 끌고 내려왔다. 황 서방은 무슨 꿈인지 모르겠다. 나리님을 따라 정거장으로 나오자 두 딸년이 오르르 떨고 바깥을 내다보다가 울음을 터뜨린다. 황 서방이 아이를 받아 안자 빈 포대기처럼 무게가 없이 비린내만 훅 끼친다.



진퇴양난에 처한 황 서방

아무 것도 와닿는 것이 없어 그러는지, 그 옴직거림조차 힘이 들어 그러는지, 이내 다시 잠잠해진다. 죽었나 해서 코에 손을 대어 본다. 애비 손에서 담뱃내를 느낀 듯 킥킥 재채기를 한다. 그러더니, 그 서슬에 모기 소리만큼 애앵애앵 보채 본다. 그리고는 다시 까부라진다.

아이를 던져주고 나리님이 가버리자 황 서방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는데, 한참이나 앓는 아이를 들여다보던 권 서방은 살긴 틀렸다고 한마디 한다. 그 말에 참고 참던, 누구한테 대들어야 할지 모르던 분통이 터진다. 권 서방은 그래도 의원에게 보여야하지 않겠느냐고 달랜다. 그 바람에 황 서방은 앓는 애를 바짝 품안에 붙이고 나리님이 주고 간 지우산을 받고 병원을 찾았다. 아이를 받지 않아 네 번째 찾아간 병원에서 겨우 진찰을 받는데, 의사는 간호부에게만 무어라 지껄이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미 안 될 것을 안 황 서방은 한이나 없게 약을 달라고 하지만, 간호부는 왜 진작 데려오지 않았느냐며 오늘밤을 못 넘길 것이라고만 한다. 황 서방은 다시는 울 줄도 모르는 아이를 안고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호떡을 먹이지만, 아이는 이내 게워버린다. 딸년들에게 아내에 대한 몇 가지를 물어보지만 달아났다는 사실만 분명해질 뿐이다. 밤이 깊어가자 사방이 캄캄해지고 빗소리에 실낱같은 숨소리는 있는지 없는지 분별할 도리가 없다. 이때 권 서방은 새 집을 짓는데 어린아이가 죽는 것이 안되었다는 말을 한다. 그 말에 황 서방은 발끈 화를 내고 죽는 애를 끌고 어디로 나가느냐고 반문한다. 두 사람 사이에 언쟁이 일고, 권 서방은 “자네라면 방을 꾸미기도 전에 남의 자식부터 죽어나가면 좋겠느냐”고 말한다. 이에 질세라 황 서방이 “자네라면 죽는 애를 데리고 나가겠느냐”고 반문하자 권 서방은 그러겠노라 한다. 황 서방은 같이 없는 놈끼리 너무 한다고 말한다.



비 쏟아지는 길에서의 방황

“여기 팝시다” / “여긴 돌 아니여?” / “파믄 흙 나오겠지.”

황 서방은 돌각담에 아이 시체를 안고 앉았고, 권서방은 삽으로 구덩이를 판다. 턱턱 돌이 두드러지고, 돌을 뽑으면 우물처럼 물이 철철 고인다.

황 서방은 한참 잠잠하다가 코를 훌쩍거리는 것이 우는 꼴이다. 황 서방은 성냥을 그어 어린애를 들여다보다가 성냥개비가 다 붙기도 전에 던져버린다. 그러더니 권 서방을 깨워서는 아무래도 죽을 자식인데 남한테 못할 짓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권 서방은 삽을 찾아 들고 황 서방한테 아이를 안고 나서라고 한다. 아무대로나 가다가 죽으면 묻자는 것이다.

두 사람은 주안 쪽을 향해 걷는데 바람이 세차게 분다. 황 서방은 우산을 뒤집히지 않으려 바람을 따라 빙그르 돌고, 그러면 비는 아이 얼굴에 흠뻑 쏟아진다. 권 서방이 성냥을 그어대면 얼굴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우산은 뒤집혀서 갈기갈기 찢어지고 만다.

십여 리를 걸어가도 아이는 죽지 않고, 황 서방은 왜 얼른 죽지 않느냐고 푸념이다. 다시 한 오리쯤 가다가 황 서방은 우뚝 서서 이젠 묻어도 되려나 보다고 말한다. 아이를 묻으러 밭 두덩에 올라서다가 황 서방은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리고 만다. 권 서방은 구덩이를 파기 시작하는데 쏟아지는 비 때문에 돌을 뽑으면 우물처럼 물이 철철 고인다. 황 서방까지 나서니 이내 서너 자 깊이로 구덩이가 생겨난다. 황 서방은 통곡을 하고 애비 손으로 제 새끼를 이런 물구덩이에 넣을 것이 측은해, 권 서방이 아이 시체를 안으러 간다.



황 서방의 절규

“으흐흐…… 이리구 삶 뭘 허는 게여? 목석만두 못한 애비지 뭐여? 저것 원술 누가 갚어…… 이년을, 내 젖통일 썩둑 짤러다 묻어줄 테다.”

죽은 줄만 알고 아이를 안아 올리던 권 서방은 머리칼이 곤두선다. 꼴깍꼴깍 아이의 입은 무엇을 토하는지 비리지근한 냄새가 나고, 이 소리를 들은 황 서방도 놀란다. 아이는 아직 목숨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파리새끼만도 못한 목숨이 질기다며 황 서방은 아이를 구덩이 둔덕에 털썩 놓아버린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개구리, 맹꽁이, 날짐승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세번째 들여다보았을 때, 아이는 틀림없이 죽은 것 같았다. 황 서방은 아이를 묻고,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리고 절름거리며 권 서방의 뒤를 따라 한길로 내려왔다.황 서방은 아이 무덤 쪽을 쳐다보며 멍청히 서서는 여기가 어디쯤인가를 묻는다. 권 서방은 고무신 한 짝이 아깝다며 엉뚱한 소리를 한다. 황 서방은 권 서방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권 서방이 쫓아와 붙들자 “내 이년을 그예 찾아 한 구덩이에 처박구 말 테여” 하며 절규한다. 황 서방은 그만 길 가운데 철벅 주저앉아 버린다. 하늘은 그저 먹장이요, 빗소리 속에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뿐이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이 소설은 1940년「문장」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작가 이태준의 순수 서정의 세계와 궁핍한 현실 인식의 세계를 함께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분위기로 만들어 낸 비극적 운명의 세계

「밤길」의 이야기 구조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행랑살이를 하다가 첫 아들을 낳고 돈을 벌러 인천에 내려온 황 서방이 아내의 가출로 인해 죽어가는 아이를 묻고 만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이야기 속에는 이태준 소설의 단편 미학이 농축되어 있다. 우선, 비극적인 이야기 구조를 보다 완성시키기 위해 작가는 작품 속에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밤’과 ‘길’의 조합이 그것이다. ‘밤’은 이태준이 자신의 작품에 자주 활용하고 있는 시간적 배경인데, 어둠은 인간에게 본질적인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설정된 것이다. ‘밤’은 죽음을 포함하고 암시하는 시간으로서 인간을 거대한 운명의 힘으로 억압하고 억누르는 대상이다. 따라서 ‘밤’은 비극을 초래하고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황 서방은 어둠 속에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조차 하지 못한 채 방황함으로써 그가 처한 비극적 현실 앞에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마는 인물로 그려진다.

‘길’은 공간적 배경으로 인생과 삶의 세계를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걸어온 운명의 시간을 의미하며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여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의 운명과 삶을 의미하는 ‘길’이 ‘밤’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작중 인물이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음을 암시한다. 시간과 공간은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분명한 조건이 된다. 따라서 이 작품에 설정된 분위기는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비극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 역시 비극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다. 「밤길」에서 줄곧 내리는 비는 밤과 어둠, 비극적 현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며 독자에게 연민과 슬픔의 정서를 무리 없이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 작품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지는 개구리와 맹꽁이의 무관심한 듯한 울음소리다. 이것들은 그저 자연의 소리다. 따라서 감정과 감상이 작용하지 않는다. 황 서방의 비극적인 슬픔에 대해서 그것들은 아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냉정함은 황 서방의 비극을 더욱더 고조시키고 그가 겪는 고통을 몇 곱절 배가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인물의 분노로 표현되는 중도적 세계관

「밤길」은 비극적인 운명과 현실이 압도적인 분위기로 설정된 상태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비극성이 기본 정조로 설정되어 있다. 황 서방은 첫 아들을 낳고 희망에 들떠 월미도로 내려온 인물이다. 그에게 첫 아들은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희망과 의욕을 상징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그의 꿈은 자신보다 어린 아내의 가출로 깨어진다.

그가 희망적인 인물이 아님은 부랑 노동자라는 사실에 이미 어느 정도 암시되어 있다. 부랑 노동자는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집 한 칸 없이 남의 집 행랑살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나, 서울에서 인천까지 내려와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 등은 그가 어딘가에 확고하게 정착하지 못한 인물임을 암시한다.

그에게 안정적인 희망은 다분히 비현실적이고 순간적일 뿐이다. 어린 아들이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는 결말 구조는 이러한 황 서방의 처지와 한계를 명확히 증명한다. 황 서방은 애초부터 비극적 운명 속에 놓여 있으며, 그의 비극이 개선 없이 현실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현실 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

이태준은 어려움에 처한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희망을 찾아간다는 교양 소설적인 구성을 과감하게 거부함으로써 현실을 특정한 이념 속에서 바라보지 않는 중도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태준이 활동할 당시에는 카프라는 문학 이념이 유행처럼 번져 있을 때였다. 카프는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세상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두 계급으로 나누고 착취와 억압을 받는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을 타파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따라서 이들은 현실의 비극의 원인은 사회적인 모순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문학 작품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준은 이러한 논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현실에서 패배한 채 체념하거나 좌절하는 도피주의적 세계관을 지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품의 말미에서 황 서방이 외치는 한 마디, 분노에 찬 저주는 현실과 맞서보려는 도전까지 포함한다. 물론 이것이 보다 적극적이고 실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가 가진 중도적 세계관을 짐작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작품 속에서 황 서방은 매우 순수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인물의 이러한 순진성은 그가 맞이하게 될 비극을 보다 두드러지게 하는 요소가 된다. 작가 이태준은 황 서방이 지닌 순수함을 결코 옹호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순진하고 어리숙하기 때문에 스스로 비극을 초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설정한다.

새로 지은 집에서 시체를 내보낼 수 없다는 순진함과 간호원의 한마디에 돌아서고 마는 어리숙함 등은 그가 어두운 밤길로 내보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 작품에서 황 서방은 바보형 인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비극을 스스로 초래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한편, 그러한 순진성 때문에 독자들에게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가치의 세계는 황 서방에 대해서 전혀 연민도 비판도 가하지 않으려는 냉철한 서술로 완성되고 있다.

냉철한 관찰 속에 깃들인 궁핍한 현실 인식

「밤길」은 1930년대 시대상황을 바라보았던 이태준의 현실인식이 엿보이는 여타의 작품과는 구별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혹독한 시대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1930년대 말부터 일제는 세계 제패를 꿈꾸며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의․식․주의 모든 기본적 삶의 토대들을 착취당했다. 민중들의 삶은 궁핍할 대로 궁핍해져서 비참하게 생존해야만 했다. 황 서방의 순수함을 ‘흰색’에 비유할 때, 그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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