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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지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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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박동혁: 고등농림학교 출신의 브나로드 운동가. 재학 중 농촌계몽운동에 참가한 뒤 고향인 한곡리로 내려가 농촌계몽 사업에 헌신한다. 농우회를 조직하고 친일 지주 강기천과 충돌하고 형무소에 갇혀 애인이자 동지였던 영신의 임종도 보지 못하지만 농촌운동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채영신: 동혁의 애인이자 동지. 기독교청년회 농촌사업부 특파원 자격으로 청석골에 내려가 농촌활동에 헌신한다. 부녀회를 조직하고 한글강습소를 운영하다 경찰에 끌려가고 결국 과로로 쓰러진다.
강기천: 한곡리의 지주이자 고리대급업자이며 면협의원, 금융조합 감사, 학교비평의원. 그는 면장의지시를 받고, 장리를 놓는데 편의를 얻어 재산을 늘리는 간접적인 효과를 얻고자 ‘진흥회’를 결성하여 박동혁에 맞선다.
김건배: 박동혁과 의형제 사이. 전 사립학교 교원이며 00사건의 주동자로 2년 동안 옥살이를 한 계몽운동가. 동혁과 같이 농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강기천에게 매수당한다.
개량주의적 농촌계몽운동에 대한 비판
가을 학기가 되자, 00일보사에서 주최하는 학생 계몽운동에 참가하였던 대원들이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각처에서 모여든 대원들을 위로하는 다과회가 그 신문사 누상에서 열린 것이다.
취주악대에 의해 쌍두취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식장은 전 조선의 방방곡곡으로 흩어져서 한여름 동안 땀을 흘려가며 활동한 남녀 대원들의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흥분되어 있다. 사회자인 신문사 편집국장이 학생들의 동족애와 문맹을 퇴치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으로 운동이 성공하였다고 치하하고, 문자계몽운동이 개시된 이래 최고의 성과를 거둔 00고등 농림학교의 박동혁을 소개한다. 박동혁은 자신의 고향 한곡리에서 3년 동안 방학 때마다 한글강습을 하여 얻은 성과를 보고한다.
이어서 그는 매우 심각한 문제제기를 한다. 이 기회에 전 조선의 농촌, 어촌, 산촌으로 방방곡곡에 파고들어 가서 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그들이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점, 60~70년 전 러시아의 청년들이 부르짖던 브나로드(민중 속으로)를 지금 와서야 주장하는 것은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 높직이 앉아서 민중을 관찰하거나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태도를 버리고 조선 사람이 스스로 다시 살아나기 위한 기초공사를 해야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즉 문자계몽에 그치지 말고 농민들 생활의 근본문제를 해결해주려고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희망과 정신과 용기를 가져다주는 것이며, 계몽운동의 사명은 농민들의 정신이 통일되도록 지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신문사측의 입장에 저촉되는 것으로서 사회자의 제재를 받았다.
이때 채영신은 계몽대의 운동이 동혁이 제시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거드는데, 이를 계기로 동혁과 영신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영신은 00여자 신학교 학생이다. 그녀는 여자기독교연합회의 총무 백현경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영신 자신도 그녀를 숭배하고 있다. 백현경은 조선에서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이 유명하며 구미 각국을 시찰하고 돌아와서는 강연과 저술을 하고 농촌운동에 뜻을 둔 청년남녀의 모임을 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문화주택을 짓고 서양식 문화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다.
동혁은 영신의 소개로 백현경이 주도하는 농촌 청년남녀의 모임에 참석하였다가 그녀의 운동노선을 비판한다. 동혁은 농촌운동가의 자세가 실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실천궁행의 정신이 영신을 감동시킨다. 영신은 동혁이 다과회에서 한 연설과 백현경에 대한 비판을 듣고 이제까지의 자신을 뉘우치게 되었다.
영신은 학업을 중단하고 아주 농촌에 뛰어 들어 농촌활동에 헌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동혁 또한 다 쓰러져 가는 우리의 고향을 붙들기 위한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서, 일을 하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자고 권유한다. 그리하여 두 남녀는 의기투합을 이루고 각자의 지역으로 내려가 농촌활동에 투신하기에 이른다.
한곡리의 농촌 사업과 사랑의 로맨스
날이 가물어서 동리마다 소동이 대단하다. 정월 대보름날은 하루종일 진눈깨비가 휘뿌려서, 송아지 한 마리를 태우는 윷놀이판에 헤살을 놀았었고, 모처럼 풍물을 차리고 나선 두레꾼들을 찬비 맞은 족제비 꼴을 만들더니, 그 뒤로 석 달째 접어든 오늘까지 비 한 방울 구경을 못하였다.
한곡리 자작농의 아들인 박동혁은 고등 농림학교를 중퇴하고 계몽운동에 뜻을 두고 고향에 내려온다. 한곡리에는 전 사립학교 교원이며 00사건의 주동자로 2년 동안 옥살이를 한 경력이 있는 동혁의 죽마고우 건배가 동혁보다 몇 년 전에 야학을 개설하였고 동혁도 재학 중 3년 동안 방학마다 한글강습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 두 사람은 어렸을 적 싸움도 많이 했지만 뜻이 맞는 막역한 동지였다.
동혁을 선두로 건배를 비롯한 총 12명의 한곡리 청년의 모임이 ‘농우회’다. 농우회가 중심이 되어 한곡리에 조기회, 이용조합, 이발조합, 단연단주 운동을 전개하며, 농우회의 독자적인 사업으로 공동답을 경영하고 토론 모임인 일요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가뭄이 계속되어 흉년이 들 조짐을 보이자 마을의 노인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동혁의 아버지 박첨지는 아들이 공동답에만 매달린다고 나무란다. 그런 상황에서 영신의 편지가 온다. 그동안 운동에 대한 의견 교환과 사업 보고의 편지를 꼬박꼬박 교환했으나 이번에는 신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동혁은 적잖이 놀란다. 동혁의 사업도 견문하고 의논할 일이 있어 방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비가 오고 영신이 방문한다. 다음날 기상 나팔소리가 울리자 50여 명이나 되는 조기회원들이 모여 체조를 하고 애향가를 부른다. 모두들 영신을 극진히 대접하고 동혁은 영신에게 한곡리의 농촌사업을 설명해준다. 공동 사업의 이익금을 적립하여 회관 지을 계획을 말한다. 그러면서 돈을 저축하는 것은 반드시 회관 하나를 짓기 위한 것이 아니라 희망을 회복하고, 단결심을 획득하며, 공동 노동의 유쾌함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 주된 이유라 한다. 영신은 농우회 회원끼리만 모이는 일요회에도 방청하고 청석골에서 자신이 벌인 농촌활동을 소개한다. 그리고 영신은 건배의 아내를 회장격으로 추진해서 ‘한곡리 부인근로회’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앞으로 유지해 나아갈 방법까지 세워 소상히 일러준다. 동혁이 붙잡는 바람에 이틀을 더 묵었으나 영신은 누구에게나 발표하지 못할 고민을 가슴속에 감추고 있었다. 사실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동혁과 의논하려 일부러 한곡리에 찾아온 것이다. 저 혼자로서는 해결지을 수 없는 일생에 가장 중대한 문제와 부딪쳤기 때문이다.
이제나저제나 동혁을 기다리다가 영신은 백사장으로 나간다. 외로운 그림자를 이끌며 손풍금을 뜯으면서 애련한 유행 창가를 부르며 어머니와 고향을 떠올린다. 이제까지 참고 눌러왔던 청춘의 오뇌에 괴로워하며, 일과 사랑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해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그 때 동혁이 찾아와 애상적인 기분은 이내 안개처럼 사라진다. 영신은 동혁에게 자신의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자신은 동해안의 작은 어촌에서 태어났으며, 고향에는 60이 된 홀어머니가 아직도 광주리 장사를 하여 생계를 꾸리고 있다는 것, 또 보통학교 다닐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정해주신 약혼자 김정근이 있다는 것을 밝힌다.
김정근은 금융조합 직원으로서 그저 월급이나 절약을 해서 한 달에 한번 씩 꼬박 저금을 했다가 그걸로 결혼 비용을 쓰고 돈이 좀 모이면 장변이라도 놔서 잡화상이나 하나 내고서 생활의 안정을 얻자는 것이 고작인 인물이다. 또 돈을 모아 가지고 모든 걸 사야만 하고 결국은 모든 걸 돈이 지배하고 해결을 짓는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라고 여긴다. 영신은 김정근의 이런 면모를 저라는 개인 이외에 사회도 있고 민족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결국 영신은 김정근과의 파혼을 일찌감치 생각하고 있었고, 지금은 동혁을 사랑하고 있지만, 영신은 일이냐 사랑이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영신은 동혁에게 연애를 하는데 소모되는 정력이나 결혼생활을 하느라고 허비되는 시간을 온통 농촌사업에다 바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농촌사업이나 계몽운동에 아주 희생하려고 하느님께 맹세까지 했다고 강조하면서 미개한 나라에 와서 별별 고생을 다 해가면서 우매한 백성을 깨우쳐 주기 위해 오십이 넘도록 독신 생활을 하고 있는 미스 빌링스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결국 영신은 동혁의 청혼을 3년 뒤로 기약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영신은 사랑과 시간을 얻고 청석골로 돌아간다. 그리고 김정근에겐 이상이 맞지 않아 결코 행복할 수 없으니 단념해 달라고 최후의 통첩을 띄운다.
계몽운동가 채영신의 헌신적 활동과 고난
“자 이젠 일이다! 일을 하는 것밖에 없다! 앞으로 3년이란 세월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지 위해서라도, 힘껏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고 그 몸을 스스로 채찍질하였다. 일주일 동안 한곡리에서 자극도 컷거니와 동혁이와 약혼을 한 것으로 말미암아 여간 큰 충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영신은 청석골에 돌아온 뒤에도 며칠 동안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그때까지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 반면 건강은 아주 회복되어 이내 농촌 사업에 열중한다. 그녀는 기독교청년연합회 농촌사업부의 특파격으로 경기도 두메 산골 청석골로 내려와 여자 기독연합회 기독 지부에서 백현경을 거쳐서 오는 생활비 겸 사업보조비를 받아서 활동하고 있다. 영신은 한글강습소를 운영하고 부녀자 친목계와 청년회를 조직하고 야학을 개설하며 의료활동도 했다. 또 이따금은 재판장 역할까지도 하게 된다.
영신의 활동 중 한글 강습은 가장 의미 있고 성적이 좋은 사업이다. 예배당을 빌려 한글강습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학생이 거의 13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성황이며 학원을 짓기 위해 기부금을 모금하고 있다. 그러나 주재소가 예배당이 좁고 낡아 위험하니 학생을 80명 이외에는 한 사람도 더 받지 말라는 것과 기부금을 내라고 돌아다니며 강제하면 법률에 저촉된다는 주의를 받게 된다.
영신은 여러 가지 변명도 하고 사정을 말해보았으나 지키지 않으면 강습소를 폐쇄시키겠다는 협박까지 받고 물러난다. 학생을 50여 명이나 쫓아내야 하는 사정에 영신은 무척이나 괴로웠다. 영신은 학생들에게 집이 좁아서 80명밖에는 더 가르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과 올 가을에 새 집을 지으면 꼭 잊어버리지 않고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시 부를 것이라고 빌다시피 말하지만 학생들은 끝까지 매달린다. 쫓겨난 학생들이 야트막한 담에 머리만 내밀고 담안을 넘겨다보는 광경을 목격하고 영신은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떼어 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턱에다 버티어 놓고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고 커다랗게 썼다.
영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바삐 학원을 짓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한글 강습을 청년들에게 맡기고 ‘청석학원 기성회 회원 방명부’를 만들어 가지고 다시 기부금을 모으러 다닌다. 아무리 애써도 하루에 이삼십 원 밖에 거치지 않는다. 강습소가 폐쇄당할 뻔했다는 것과 기부금을 모집하러 다닌다는 소식을 영신의 편지로 안 동혁은 건강을 조심하라고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로 영신은 한층 용기를 얻고 분발한다.
모금이 제대로 되지 않자 영신은 기부금 액수까지 적어 놓고는 내지 않는 근처 동리의 밥술이나 먹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찾아다닌다. 영신은 흑석리 제일 가는 부자 한낭청의 환갑 잔치에 찾아가 기부금을 독촉한다. 그러나 주재소로 끌려가 일주일 동안 구류를 살게 된다.
하지만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나 농우회관을 완성한다. 회원들끼리 거의 3년 동안이나 농사를 지어 모은 것과 술 담배를 끊는 대신으로 다달이 얼마씩 저금한 것, 또 돼지를 치고 이용조합을 해서 남은 것을 저리로 놓은 것을 걷어 마련한 돈 등 자력으로 지은 것이다. 그들은 회관 한 채를 짓는데 단결의 힘이 얼마나 크다는 것과 노력만 하면 그 결과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비로소 체험했다.
하지만 농우회관을 짓게 된 뒤부터 가뜩이나 시기심이 많은 기천이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동혁을 만나자고 한다. 한곡리의 지주이자 고리대금 업자이며, 면협의원, 금융조합 감사, 학교 비평의원이기도 한 강기천이 면장의 지시를 받고 ‘진흥회’를 만들려고 한다. 농우회원들의 작업을 방해하려고 골몰하는 강기천은 농우회관을 매수하려고 꾀를 내지만 동혁의 강경한 태도에 한 발짝 물러선다.
한편 영신은 한곡리에서 농우회관을 지었다는 소식에 자극을 받아 큰 학원을 짓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나, 기부금을 걷지 못하게 되면서 추석날을 이용해 시골 구석에서는 처음인 학예회를 개최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학예회를 개최하는 날 청석골 부인친목계에서 그동안 모은 돈 전부를 기부금으로 낸다. 그것에 용기를 얻은 영신은 몸소 학원 건축에 앞장선다. 두 달 후 청석학원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낙성식을 기해 동혁을 초청한다. 그러나 영신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는다. 급히 고향으로 향하는데 김정근이 마중을 나와 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것은 정근의 속임수였음이 밝혀지자 영신은 정근에게 자신은 동혁과 약혼했다는 것을 알리고 개인주의를 버리라고 충고한다.
한편, 동혁은 영신에게 가는 차비를 변통하지 못해 걱정이고 영신은 동혁이 오지 않자 안전부절 못한다. 하지만 어렵게 차비를 구한 동혁은 영신과 감격의 재회를 한다. 영신은 살이 찢기고 뼈가 깎이도록 고생한 것을 무언중에 호소하는 눈물을 흘린다. 동혁은 영신이 시작한 사업의 엄청난 규모에 놀란다. 그러나 영신은 학원 개원식 도중 연설을 하다 그동안 누적된 피로로 쓰러지고 만다. 급성맹장염이었던 것이다. 동혁은 영신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지극 정성으로 간호한다. 동혁은 한곡리 사정이 걱정되나 영신을 뿌리치고 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동혁은 영신을 간호하는 동안 농촌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토론하고, 영신에게 이번 기회에 해외에 나가 공부를 더 해 보기를 권고한다.
동혁의 실질적인 농촌 운동과 영신의 유학
동혁은 어느날 아침 아래와 같은 아우의 급한 편지를 받고 한곡리로 돌아왔다. 사업이 첫째고 연애는 둘째 셋째라고 하시던 형님이 여태 돌아오시지를 않으니 대체 웬일이지요? 그동안 집에는 별고가 없지만 강기천이가 형님 안 계신 동안 회원들을 농락해 가지고 우리 회관을 뺏어 들려고 하니 이 편지 받으시는 대로 즉시 오세요. 건배 씨는 벌써 여러 날째 종적을 감추고 말았으니.
동혁은 영신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한곡리로 돌아왔다. 그동안 강기천이 농우회 회원이 되고 기천에게 매수를 당한 건배는 이른바 합법적으로 기천이를 회장으로까지 떠받들어 주고 어디론가 피신했다는 자세한 경과를 동화로부터 듣는다. 동혁은 영신에게 오래 있었던 것을 몇 번이나 후회한다. 동혁은 이번 기회에 표면적인 문화운동에서 실질적인 경제운동으로 운동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건배의 배신을 믿지 않았던 동혁은 건배가 기천의 주선으로 군청의 서기가 된 사실을 확인하고 놀란다. 동혁은 회원의 집을 호별 방문하여 우선 그동안 농우회가 모은 돈으로 강기천의 빚을 갚자고 설득한다. 자기 동생이 돈을 훔쳐 달아나 서울로 쫓아간 기천의 소식을 들은 동혁은 그가 내려오기 전날까지 돈을 마련한다. 기천을 찾아간 동혁은 마을 사람들의 빚을 한꺼번에 갚는 대신 이자를 변제해 줄 것을 요구하고 그의 승낙을 받아내고야 만다. 동혁은 2단계 방법을 생각하기에 골몰한다. 빚을 깨끗이 청산하고도 60원이 남아서 그것을 밑천으로 새로이 소비조합을 만들 예산을 세웠다.
한편 영신은 퇴원하고 청석골로 돌아온다. 퇴원을 한 후 달포를 누웠다 일어나 보니 학원 일은 청년들만 맡겨 놓아서 뒤죽박죽이었다. 부인들의 모임도 자치를 해 나가려면 이삼 년 동안은 열심히 지도를 해주어야만 할 것 같아 영신은 더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번 기회에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겠다고 결심한다. 그 일을 상의하고 싶어 동혁에게 한 번 와 달라고 편지를 띄운다. 한편, 기천은 두 달째나 누워 있었다. 기생을 두고 싸움이 벌어져 큰 봉변을 당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