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花)의 혈(血)
이해조 지음 | -
화(花)의 혈(血)
이해조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선초: 전라도 장성군의 아름다운 기생. 글씨와 가무, 절개에 있어 이름이 나 모든 사람이 그를 한번 꺾어보고자 한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시찰에게 몸을 망치고는 자결하여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 이시찰에게 복수하기 위해 동생 모란의 몸을 잠시 빌리기도 한다.
이도사: 선초를 차지하기 위해 고관대작에게 동학란을 핑계대고 삼남시찰사라는 직책을 부여받아 횡포를 부리는 관리
모란: 선초의 동생. 선초의 죽음 이후 기생의 자질을 드러내며 서울의 기생이 되어 선초의 복수를 도와준다. 좋은 남자를 만나 살림을 차리고 구걸하러온 이시찰에게 면박을 준다.
장성군 제일의 여색
천하에 보고 볼수록 어여쁜 것은 향기로운 꽃이라 꽃이 한번 피면 십 년 백 년 천 년 만 년을 이울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고 고운 색채를 한결같이 띠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앉아 있는 여자가 있으니, 그녀는 전라남도 장성군 채호방의 딸로, 채호방이 나이 사십 넘어 그 고을 퇴기 춘홍을 얻어 천행으로 큰딸 선초와 작은 딸 모란을 낳았는데, 바로 큰딸 선초다. 모란이는 아직 어리지만, 선초는 꽃 같은 얼굴과 달 같은 태도가 한곳도 범연한 데가 없는 일색이다. 날 때부터 총명하며, 영리하고, 재질이 뛰어난 여자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십삼도 중 전라도 여색이 제일이지만 그 중에서 장성군 여색이 제일이란다. 장성군에는 꼭 하나씩만 명기가 나는데, 선초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 채호방이 선초의 인물이 뛰어나 그냥 버리기 아까우니 열세 살에 기생 명부에 올린 것이다.
선초는 글씨, 가무, 음률 모두에 능통하므로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한번만 봤으면 할 정도이다. 15세가 넘어 연회에서 남자들이 자신을 막 대하자 선초는 춘향이와 이도령을 떠올리며, 인물도 뛰어나며 총명하며, 자기와 나이가 같은 남자와 꽃다운 인연을 맺어 평생 같이 살고 싶다는 각오를 한다. 그러면서 겉에는 여자 옷이지만 안에는 남복을 입고 창피한 일을 방비하려 한다.
그 이후로 아무리 관직이 높은 자라도 단호히 거절한다. 이 소문이 서울까지 전파되어, 인물은 양귀비도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인데 그 동네 부자들 어느 누구도 그녀를 손에 넣치 못했다는 말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나돌고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한번 꺾어 봤으면 하게 된다.
서울에 이도사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양반이 자기 하나뿐인 체, 언변도 자기 하나뿐인 체하고, 배움도 자기 하나뿐인 체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속에는 엉큼한 욕심이 들어앉아서 세력 있는 재상 집에를 출입하여 처음에는 재랑초사가 되고, 나중에는 도사로 출두한다. 그는 호색한으로 선초의 소문을 듣고 어떻게 해봤으면 좋겠다고 흑심을 품었다.
며칠을 전전반측하는데, 어느날 한 사람이 찾아와 충청남북도가 동학으로 인해 난리인데, 자기 가족은 모두 피해를 입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이도사는 빙글 웃으면서 분주히 옷을 입고 남문안 창골 근처로 쏜살같이 가더니 몇 시간 후에는 낙동 등지로 분주히 다니기 시작한다.
얼마 후 관보에 삼남시찰사라는 직책이 하나 새로 생겼다는 소식이 실린다. 이 직책은 이도사가 신대신과 신장신이라는 두 대감 집을 들락날락 하면서 얻어낸 자리인 것이다. 신대신은 동학난이야 진위대 몇 부대만 보내면 진정될 것이라면서 아무 걱정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러자 이도사는 백성이 무슨 죄가 있어 총칼로 진압을 하려 하느냐면서 반대를 한다. 이번 동학난은 각도 지방관들이 백성의 기름과 피를 빨아먹을 줄만 알지 사랑할 줄 몰라서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삼도시찰사를 만들어 올바른 관리는 포상을 하고 악덕한 관리는 죄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시찰사 자리를 얻은 것이다.
꽃을 꺾으려는 흉계
두 신씨의 굉장한 운동으로 이도사 욕심껏 성사가 되어 관보에 성명이 게재되니 즉시 치행을 하여 삼남으로 내려가는데, 그 행색을 언론하면 중도 아니요, 속한이도 아니러라. 마패를 가졌으니 옛날 어사 일반이라.
어사와 같은 직책이므로 아주 구차한 행색으로 암행을 해야 할 터이지만, 네 사람이 드는 가마를 타고 수많은 종을 앞뒤로 세우고 자리보와 요강, 침 뱉는 그릇 등 모든 것을 챙겨서 굉장한 여세로 ‘시찰 내려간다’는 소리를 높이 떠들며 내려간다.
이렇게 내려가니 각 고을 수령들이 칙사 대접이나 다름없이 환대한다. 이시찰은 바로 장성으로 내려가 선초를 만나보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기생 작첩부터 한다는 소문을 들을까봐 우선 재물을 챙기기 위해 충청도로 내려간다.
이시찰이 부패관리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편이 되어 재물에만 눈이 어두우니 민심은 더욱 나빠져 곳곳에서 폭도들이 들고일어난다. 이시찰은 이에 당황하여 신대신이 내려오자 거짓말로 꾸며댄다. 자신이 내려온 이후로 모든 수령들이 정신을 가다듬어 올바른 정치를 펼치고 있고, 폭도에 참여했던 양민들도 속속 귀순해 오고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원래부터 부랑한 무리들이 있어 귀순하지 않고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으니 그들은 아무리해도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감히 베어버려야 한다고 수작한다.
신대신의 허락을 받아 이시찰은 진위대를 모아 동학에 관련이 있다 하면 조사 여부 없이 모조리 잡아 죽여 버린다. 이 중에 임씨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임씨는 원래 이시찰과 한 동네에서 죽마고우로 자라난 사람이다. 임씨의 집이 넉넉한데 비해 이시찰의 집은 매우 가난하여 임씨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나 다름없이 이시찰을 돌봐주고 먹여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임씨를 잡아 가두자, 그 어머니가 이시찰을 직접 만나 애원을 한다. 그러나 이시찰은 과거의 은인을 매몰차게 물리치고 임씨 먼저 총살시킨다. 그러자 임씨의 원통한 귀신이 공중으로 불끈 솟으며 이시찰의 머리 위로 빙빙 돌아다닌다. 밤이면 그 귀신이 나타났다.“이놈이 시찰아 나 하나 죽는 날 우리집 식구가 함몰을 하였다, 우리집 세 식구가 어디까지든지 너를 쫓아 다니면서 그 앙화 받는 것을 보고야 말겠다.” 그리하여 이시찰은 밤마다 등촉을 밝히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허둥지둥 다른 지방으로 떠나가 버리게 된다.
이제는 경상도를 돌아다니면서 동학을 박멸한다 하면서 인명을 파리 죽이듯 하며 재물을 잔뜩 긁어모은다. 그리고는 당장 장성군으로 들어간다. 대강 사무를 처리한 후에 심복을 시켜 본관 사또에게 선초를 부를 것을 지시한다. 다음날 연회를 차리고 선초를 불러왔다. 이시찰은 선초를 보자마자 정신이 아뜩해진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체면을 차리면서 네가 정절을 지킨다니 기특하다면서 연회가 끝난 후에 글 이야기나 하게 자기 처소로 오라고 한다.
선초가 보기에 이시찰이 점잖은 학자 같고 말을 격조 있게 하는고로 자기에게 음흉한 생각이야 품을 리 만무하다면서 이시찰 처소로 들어간다. 이시찰은 은근히 자기와 연을 맺으면 어떻겠느냐면서 아직도 자신이 젊은 사람 못지 않게 근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옆으로 오라고 재촉한다. 선초는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거짓으로 배가 아프다 하고 집으로 도망온다.
이시찰은 선초가 돌아간 이후로 병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물으면서 자기에게 오라고 해도 계속 아프다면서 거절하자 부하를 시켜 상황을 알아보게 한다. 선초가 연극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시찰은 분해하면서 당장에 채호방 식구를 모조리 잡아다가 물고령을 내리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까닭에 다른 꾀를 생각해낸다.
이때 심복이 들어와 충청도 경상도 동학의 잔당들이 복수를 위해 수천 명이 작당을 하여 병기를 가지고 장성군으로 들어온다는 첩보를 알린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이시찰은 신도 못 신고 버선발로 도망을 간다. 전북 순창 고부 흥덕 등지로 도망을 다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바로 장성으로 돌아온다.
꺾은 꽃을 버리다
하루는 문밖에서 누가 와서 찾거늘 신지무의하고 나아갔는데 졸지에 무지한 역졸배가 우루루 달려 들어 채호방의 멱살을 치켜 잡고 이 뺨 저 뺨 사정없이 치며 꽁무니에서 빨래줄같은 삼시위로 오리를 쑥 빼어 채호방의 두 손목을 끊어지거라하고 잔뜩 잘라매더니 덜미를 턱턱 집어 앞세우고 가는지라.
이시찰은 채호방을 붙잡아 놓고는 동학과 관련이 있다면서 빨리 사실대로 말하라고 득달을 한다. 채호방이 금시초문이라면서 무죄를 주장하자 관청에서 발악한다고 매질을 가한 후 옥에 가둬버린다. 이 소식을 들은 선초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어미 춘홍에게 신문고라도 두드려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춘홍은 이 일이 본관 사또나 관찰사와 관계된 일이 아니라 이시찰이 우리를 미워하여 그런 것이라면서 소용없다고 한다. 그러나 춘홍은 이왕 기생이 되었으면 유난스럽게 굴지 말고 기생처럼 살았으면 아버지가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선초를 탓한다.
이때 춘홍이 집에 자주 다니던 관비가 와서 모레 채호방을 죽인다는 소식을 전달한다. 관비는 자기 동생이 이시찰의 심복과 잘 아는 사이니 자세히 알아보겠다고 하고 간다. 그리고 얼마 후에 돌아와 선초가 이시찰의 명을 받들게 되면 채호방이 풀려날 것이라고 한다.
선초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결심한다. 이런 의향을 전하자 채호방은 풀려 나지만, 나중에 채호방이 선초가 희생하여 자신이 풀려난 것을 알게되자 노발대발한다. 자식을 팔아 자기 목숨을 이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대세는 뒤집을 수 없게 되고 채호방은 슬그머니 현실을 받아들인다.
선초는 자신의 몸을 허락할 수 있지만 나중에라도 증거가 될 만한 약조를 써주면 응하겠다고 이시찰에게 전갈한다. 이시찰을 옳다구나 하면서 써주겠다고 하고 어깨춤을 추면서 선초의 집으로 찾아온다. 이시찰은 선초와 마주 앉아 흥분한 기분에 술을 주량 이상 퍼마시고 선초의 손목을 잡아끈다. 그러자 선초는 정색을 하면서 부부가 되는 이 마당에 앞으로 부부의 맹세를 하겠다는 증거를 남기라고 한다. 이시찰은 당장 종이에 써주고, 선초는 이것을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한다.
다음 날 새벽 이시찰이 깨어 선초에게 어제 쓴 계약서를 잠시만 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직 도장을 찍지 않았으니 관청에 가서 찍어가지고 곧 보내준다고 약조한다. 선초는 총명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여자라 조금의 의심도 없이 계약서를 내어 준다.
이시찰은 계약서를 받아들고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간다. 이시찰은 돌아가서는 계약서에 도장 찍어 보내기를 기다려라,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울 것이다 하고는 이튿날 한마디 없이 전라북도로 가버린다.
죽음으로 보여주는 여인의 절개
순전한 천진으로 자기 마음 믿듯하는 선초는 이시찰 돌아간 뒤로 이때나 계약서를 보낼까 눈이 감도록 기다리는데 어언간 해가 지도록 소식이 없으니 심중에 심히 의아하던지 저의 부모를 향하여 소경력 사정을 고하며.
선초가 제 아비에게 이시찰이 계약서를 가지고 가서는 보내주지 않는다고 하자 채호방은 너를 속이느라고 그런건데 아직도 그놈을 기다리냐고 빨리 포기하라고 한다. 그래도 선초가 포기하지 않자 하인을 보내 알아보게 한다. 이시찰이 전라북도로 도망가듯이 떠났다는 말을 들은 선초는 아마 바쁜 일이 있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날을 기다려도 이시찰이 오지를 않자 만약 그가 약조를 저버린다면 자신은 살아 있지 못할 것이라 한다. 이럴 때 이시찰로부터 편지가 온다. 선초가 편지를 펴보자 거기에서 지폐 몇 장이 떨어진다. 편지 내용을 읽은 선초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지면서 편지는 찢어 버리고 지폐 십 원은 다시 갖다주라고 한다. 그리곤 아무 일 없는 낯빛으로 부모의 침소에 가 인사를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와 문을 꼭 닫고 새 의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몰래 준비해두었던 밤톨만한 아편을 삼켜버린다.
천륜이라는 것이 심상치 않은지 이때 잠들었다가 선초 우는소리를 듣는 듯 해 잠시 깬다. 이때 잠자던 선초의 동생 모란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주먹으로 땅을 치고 대성통곡한다. “에구 아버지 어머니 나는 속절없이 세상을 버렸소, 내가 이 원수를 갚지 못하면 어느 때든지 살이 썩지 못할 것이오, 각종 재주는 모두 모란이에게 전하여 주었으니 저의 죽은 것을 슬퍼하지 말고 모란이에게 재미를 보옵소서.” 채호방 내외가 깜짝 놀라 모란이를 흔들어 깨우자 모란이는 다시 이길로 이시찰의 원수를 갚으러 간다고 하며 이시찰에 대한 소문이 있으면 모두 자기가 한 일인 줄 알라고 한다. 다음날 채호방 내외는 선초의 자살 사실을 알게 된다. 방안에 떨어진 이시찰의 편지 조각을 주워 맞춰보니 그 사연은 이러했다. “백년해로 하고 싶었지만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여러 형편상 힘드니 보내는 돈 받아 분과 기름 사서 쓰고 잘 있으라.” 선초의 자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시찰을 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장례에 많은 사람이 참석한다.
포악한 관리에 대한 귀신들의 복수
여보 너무 마오 남의 적악을 너무 마오 점잖은 처지로 학자 문하에 출입을 하였다면서. 여보 나이갑이나 좀 하시오 귀밑에 털이 힛득힛득한 터에 나같이 어린아이에게 이다지 원통히 하여야 가할까요.
전에는 선초가 음률할 때마다 그리 가르쳐 주어도 모란은 금방 금방 잊어버리더니 어쩐 일인지 선초가 죽고나서는 음률 소리가 귀에 지잉하여 높고 얕고 되고 느린 가락을 모두 다 짐작할 수 있었다. 모란 어미는 모란에게 기생 같은 일은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모란은 언니처럼 갑자기 재주가 늘어난다. 그리고 선초 죽음 이후로 가뭄이 들기 시작하여 전 국토가 말라 가는데, 사람들은 선초의 원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모아서 제사를 지내준다.
이시찰은 꿈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 선초가 나타나 네 신세가 편안할 줄 아느냐, 내 혼이 머리 위로 주야장천 나타나 괴롭힐 것이라는 말을 하는 꿈이다. 이때 선초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사찰은 꿈과 연관지어 생각하면서 자신이 큰 잘못은 하지 않았지만 선초가 어느 정도 서운해 하는 것 같으니 제사에 가서 위로라도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제사에 참석하다.
제사 후에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해서 가물었던 대지를 흠뻑 적셔 놓는다. 이시찰은 자신이 선초의 무덤에 술을 따라 줬기 때문에 비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잠이 들면 선초가 나타나 울부짖는 바람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러고 있는데 서울에서 이시찰을 잡아간다. 국세를 중간에서 횡령한 죄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삼 년 동안을 재판한다. 옥중에서도 이시찰은 잠을 잘 수가 없어 괴롭고, 같은 방의 죄인들이 못살게 굴어 괴로운 처지가 된다. 이제는 선초 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동학으로 몰려 죽은 임씨 모자가 귀신으로 나타나 괴롭히기 시작한다. 어느날 이시찰의 자식들과 손자들, 마누라가 차례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편 모란이는 아버지 채호방이 극구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몰래 글도 배우고 소리도 배운다. 이제는 선초 못지 않은 실력을 갖추게 된다. 얼굴도 그지 없이 예쁘게 되더니 선초와 꼭 닮아 보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초가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해한다. 삼 년 만에 풀려난 이시찰. 처음엔 임씨를 포살한 것과 선초를 죽게 만들 것을 반성한다. 그러면서 여색을 일절 가까이하지 않고, 조심스런 행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마음속에서는 다시 엉큼한 생각이 피어난다.
풀려났으나 본가로는 갈 수가 없는 형편이다. 자식과 부인도 모조리 죽고, 재산도 모두 날려버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 버렸던 첩을 찾아가 의지한다. 하루는 어떤 친구의 연회에 가게 된다. 그 자리에는 온갖 고관들이 모두 나와 있다. 이름난 기생들도 와서 가무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어떤 기생이 자기 얼굴을 뚫어지게 본다. 분명히는 모르겠지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한입에 꼴딱 삼키고 싶은 마음에 좌불안석이다. 춤을 추던 그 기생이 이시찰 앞으로 쪼르르 달려 와서는 자신을 한동안 마주보고 있다. 자기 풍채가 훌륭해 기생이 마음에 들어하는구나 하고 이시찰은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기생이 신내리는 기생과 같이 소리 한마디를 버럭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