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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

최서해 지음 | -
홍염(紅焰)

최서해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문서방: 주인공. 간도로 이주하여 중국인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인이다.

문서방의 처: 딸 용례를 인가에게 빼앗긴 후 홧증으로 병들어 죽는다.

인가: 중국인 지주. 탐욕스럽고 악독한 인물이다.



지주 인가를 찾아가는 문서방

겨울은 이 가난한---백두산 서북편 서간도 한 귀퉁이에 있는 이 가난한 촌락 빼허[白河]에도 찾아들었다. 겨울이 찾아들면 조그만 강을 앞에 끼고 큰산을 등진 빼허는 쓸쓸히 눈 속에 묻히어서 차디찬 좁은 하늘을 치어다보게 된다. 눈보라는 북국의 특색이다. 빼허의 겨울에도 그러한 특색이 있다. 이것이 빼허의 생령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오늘도 눈보라가 친다. 북극의 얼음 세계나 거쳐오는 듯한 차디찬 바람이 우하고 몰려오는 때면 산봉우리와 엉성한 가지 끝에 쌓였던 눈들이 한꺼번에 휘날려서 이 좁은 산골은 뿌연 눈안개 속에 들게 된다. 어떤 때는 강골 바람에 빙판에 덮였던 눈이 산봉우리로 불리게 된다. 이렇게 교대적으로 산봉우리의 눈이 들로 내리고 빙판의 눈이 산봉우리로 올리달려서 서로 엇바뀌는 때면 그런대로 관계치 않으나, 하뉘[天風]와 강바람이 한꺼번에 불어서 강으로부터 올리다른 눈과 봉우리로부터 내리다른 눈이 서로 부딪치고 어울어지게 되면 눈보라와 바람 소리에 빼허의 좁은 골짜기는 터질 듯한 동요를 받는다.

등진 산과 앞으로 낀 강 사이에 게딱지처럼 끼어 있는 것이 이 빼허의 촌락이다. 통틀어서 다섯 호밖에 되지 않는 집이나마 밭을 따라서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모두 커단 나무를 찍어다가 우물정(井)자로 틀을 짜 지은 집인데 여기 사람들은 이것을 '귀틀집'이라 한다. 지붕은 대개 좃짚이요, 혹은 나무 껍질로도 이었다. 그 꼴은 마치 우리 내지(간도서는 조선을 내지라 한다)의 거름집(堆肥舍)과 같다. 심하게 말하는 이는 도야지굴과 같다고 한다. 이것이 남부여대로 서간도 산골을 찾아들어서 사는 조선 사람의 집들이다. 빼허의 집들은 그러한 좋은 표본이다.

험악한 강산 세찬 바람과 뿌연 눈보라 속에 게딱지처럼 붙어서 위태스럽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 모든 집에도 어느 때든----공도가 위대한 공도(公道)가 어그러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꼭 한때는 따뜻한 봄볕이 지내리라. 그러나 이렇게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우짖으면 그 어설궂은 집 속에 의지 없이 들어백인 사람들은 자기네로도 알 수 없는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게 된다.

이렇게 몹시 춥고 두려운 날 아침에 문 서방은 집을 나섰다. 산산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뿌연 상투에 휘휘 거둬감고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인 위에 까맣게 그으른 대패밥 모자를 끈달아 썼다. 부대처럼 툭툭한 토수래(베실을 삶아서 짠 것이다) 바지저고리는 언제 입은 것인지 뚫어지고 흙투성이 되었는데 바람에 무겁게 흩날린다."문 서뱅이 발써 갔소?" 문 서방은 짚신에 들막을 단단히 하고 마당에 내려서려다가 부르는 소리에 머리를 돌렸다. 펄쩍 문을 열면서 때가 찌덕찌덕한 늙은 얼굴을 내미는 것은 한 관청(韓官廳---관청은 직함)이었다. "왜 그러시우?" 경기 말씨가 그저 남아 있는 문 서방은 한발로 마당을 밟고 한발로 흙마루를 밟은 채 한 관청을 보았다. "엑, 바름두……저, 엑 흑……" 한 관청은 몰아치는 바람이 아츠러운지 연방 흑흑 느끼면서, "저, 일절 욕을 마오! 그게……엑, 워쩐 바름이 이런구. 그게 되놈인데, 부모두 모르는 되놈(胡人) 인데……" 하는 양은 경험 있는 늙은 사람의 말을 깊이 들으라는 어조이다. "나는 또 무슨 말씀이라구! 아 그늠이 이번두 그러면 그저 둔단 말이요?" 문 서방의 소리는 좀 분개하였다.

눈을 몰아치는 바람은 또 몹시 마당으로 몰아들었다. 그 판에 문 서방은 바람을 등지고 돌아서고 한관청의 머리는 창틀 안으로 자라목처럼 움츠려 들었다. "글쎄 이 늙은 거 말을 듣소! 그늠이 제 가새비(장인)를 잘 알겠소? 흥……" 한 관청은 함경도 사투리로 뇌이면서 다시 머리를 내밀었다. "염려 마슈! 좋게 하죠." 문 서방은 더 들을 말 없다는 듯이 바람을 안고 휙 돌아섰다. "그새 무슨 일이나 없을까?"

밭 가운데로 눈을 헤치면서 나가던 문 서방은 주춤하고 돌아다보면서 혼자 뇌였다. 눈보라 때문에 눈도 뜰 수 없거니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되어서 집은커녕 산도 보이지 않았다. "그새 무슨 일이 날라구!" 그는 또 이렇게 혼자 뇌이고 저고리 섶을 단단히 여미면서 강가로 내려가다가 발을 돌려서 언덕길로 올라섰다. 강얼음을 타고 가는 것이 빠르지만 바람이 심하면 빙판에서 걷기가 거북하여 언덕길을 취하였다. 하도 다니던 길이니 짐작으로 걷지 눈에 묻히어서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언덕길에 올라서니 바람은 더욱 심하였다. 우와---하고 가슴을 쳐서 뒤로 휘딱 자빠질 것은 고사하고 눈발에 아츠럽게 낯을 치어서 눈도 뜰 수 없고 숨도 바로 쉴 수 없었다. 뻣뻣하여 가는 사지에 억지로 힘을 주어 가면서 이를 악물고 두 마루턱이나 넘어서 달리소 강가에 이르니 가슴에서는 잔나비가 뛰노는 것 같고 등골에는 땀이 흘렀다. 그는 서리가 뿌연 수염을 씻으면서 빙판을 건너갔다. 빙판에는 개가죽모자 개가죽바지에 커단 울레(신)를 신은 중국 파리(썰매)꾼들이 기다란 채쭉을 휘휘 두르면서, "뚜---어, 뚜---어, 딱딱."하고 말을 몰아간다. "꺼울리 날취(저 조선 거지 어디 가나)?"중국 파리꾼들은 문 서방을 보면서 욕을 하였으나 문 서방은 허둥허둥 빙판을 걸어서 높다란 바위 모퉁이를 지나 언덕에 올라섰다.

여기가 문 서방이 목적하고 온 달리소라는 땅이다. 이 땅 주인은 인(殷)가라는 중국 사람인데 그 인가는 문 서방의 사위이다. 저편 밭 가운데 굵은 나무로 울타리를 한 것이 인가의 집이다 그 밖으로 오륙 호나 되는 게딱지 같은 귀틀집은 지팡살이(小作人)하는 조선 사람들의 집이다. 문 서방은 바위 모퉁이를 돌아 언덕에 오르니 산이 서북을 가리어서 바람이 좀 잠즉하여 좀 푸근한 느낌을 받았으나, 점점 인가----사위의 집 용마루가 보이고 울타리가 보이고 그 좌우의 같은 조선 사람의 집이 보이니 스스로 다리가 움츠러지면서 걸음이 떠지었다.

"엑 더러운 놈! 되놈(胡人)에게 딸 팔아먹는 놈!" 그것은 자기 스스로 한 일은 아니지만 어디선지 이런 소리가 귀청을 징징 치는 것 같은 동시에 개기름이 번지르하여 핏발이 올올한 눈을 흉악하게 굴리는 인가----사위의 꼴이 언뜩 눈앞에 떠올라서 그는 발끝을 돌릴까 말까 하고 주저하였다. 그러다가도, "여보 용녜(딸의 이름)가 왔소? 용녜 좀 데려다 주구려." 하고 죽어가는 아내의 애원하던 소리가 귓가에 울려서 다시 앞을 향하였다.

"이게 문 서뱅이! 또 딸집을 찾아 가옵느마?" 머리를 수굿하고 걷던 문 서방은 불의의 모욕이나 받는 듯이 어깨를 툭 떨어뜨리면서 머리를 들었다. 그것은 길 옆에서 도야지 우리를 치던 지팡살이꾼의 한 사람이었다. "네! 아아니……" 문 서방은 대답도 아니요 변명도 아닌 이러한 말을 하고는 얼른얼른 인가의 집으로 향하였다. 온 동리가 모두 나서서 자기의 뒤를 비웃는 듯해서 곁눈질도 못하였다. 여기는 서북이 가리어서 빼허처럼 바람이 심하지 않았다. 흐릿하나마 볕도 엷게 흘렀다.



소작료 체납으로 지주에게 딸을 빼앗김

"여보! 저 인가가 또 오는구려!" 가을볕이 쨍쨍한 마당에서 깨를 떨던 아내는 남편 문 서방을 보면서 근심스럽게 말하였다. "오면 어쩌누? 와도 하는 수 없지!" 뒤줏간 앞에서 옥수수 껍질을 바르던 문 서방은 기탄없이 말하였다. "엑 그 단련을 또 어찌 받겠소?" 아내의 찌푸린 낯은 스스로 흐리었다. "참 되놈이란 오랑캐……" "여보 여기 왔소." 문 서방의 높은 소리를 주의시키던 아내는 뒤줏간 저편을 보면서, "아, 오셨소?" 하고 어색한 웃음을 웃었다.

"예 왔소? 장구재(주인) 있소?" 지주 인가는 어설픈 웃음을 지으면서 마당에 들어서다가 뒤줏간 앞에 앉은 문 서방을 보더니, "응 저기 있소!" 하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그 앞에 가 수캐처럼 쭈그리고 앉았다. 서천에 기운 태양은 인가의 이마에 번지르르 흘렀다. "어디 갔다 오슈?" 문 서방은 의연히 옥수수를 바르면서 하기 싫은 말처럼 힘없이 끄집어내었다.

"문 서방! 그래 오레두 비들(빚을) 못 가프겠소?" 인가는 문 서방 말과는 딴전을 치면서 담뱃대를 쌈지에 넣는다. "허허 어제두 말했지만 글쎄 곡식이 안된 거 어떡하오?" "안 돼! 안 돼! 곡시기 자르되고 모 되구 내가 아르오? 오늘은 받아가지구야 가겠소!" 인가는 담배를 피우면서 버티려는 수작인지 땅에 펑덩 드러앉았다. "내년에는 꼭 갚아드릴께 올만 참아 주오! 장구재(주인)도 알지만 흉년이 되어서 되지두 않은 이것(곡식)을 모두 드리면 우리는 어떻게 겨울을 나라구 응?……자 내년에는 꼭, 하하……" 인가를 보면서 넋없는 웃음을 치는 문 서방의 눈에는 애원하는 빛이 흘렀다. "안되우! 안돼! 퉁퉁(모두)디 주! 우리두 많이 부족이오."

"부족이 돼두 하는 수 없지. 글쎄 뻔히 보시면서 어떡하란 말이요? 휴---." "어째 어부소? 응 니디 어째 어부소! 응 니디 어째 어부소! 마리해! 울리 쌀리디, 울리 소금이디, 울 리 강냉이디…… 니디 입이(그는 입을 가리키면서)다 안 먹어? 어째 어부소, 응?" 인가는 낯빛이 거무락푸르락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문 서방은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이놈의 소작인 노릇을 면하여 볼까? 경기도에서도 소작인 생활 십 년에 겨죽만 먹다가 그것도 자유롭지 못하여 남부여대로 딸 하나 앞세우고 이 서간도로 찾아들었더니 여기서도 그네를 맞아 주는 것은 지팡살이(小作人)였다. 이름만 달랐지 역시 소작인이다. 들어오던 해는 풍년이었으나 늦게 들어와서 얼마 심지 못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흉년으로 말미암아 일 년내 꾸어먹은 것도 있거니와 소작료도 못 갚아서 인가에게 매까지 맞고 금년으로 미뤘더니 금년에도 흉년이 졌다. 다른 사람들도 빚을 지지 않은 바가 아니로되 유독이 문 서방을 조르는 것은 음흉한 인 서방의 가슴 속에 문 서방의 용례(금년 열 일곱)가 걸린 까닭이었다. 문 서방은 벌써 그 눈치를 알아채었으나 차마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인가의 욕심만 채우면 밭맥(1맥은 10일경=1일경은 약 천 평(坪})이나 단단히 생겨 한평생 기탄없을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무남독녀로 고이 기른 딸을 되놈에게 주기는 머리에 벼락이 내릴 것 같아서 죽으면 그저 굶어죽었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것 저런 것 생각할 때마다 도리어 내지(조선)---쪼들려도 나서 자란 자기 고향에서 쪼들리던 옛날이----삼 년 전의 그 옛날이 그리웠다. 그러나 그것도 한 꿈이었다. 그 꿈이 실현되기에는 그네의 경제적인 기초가 너무도 어줄이 없었다. 빈 마음만 흐르는 구름에 부쳐서 내지로 보낼 뿐이었다.

"어째서 대답이 어부소, 응? 그래 울리 비디디 안 가파? 창우니---빠피야(이놈 껍질 벗긴다)." 인가는 담뱃대를 꽁무니에 찌르면서 일어나 앉더니 팔을 걷는다. 그것을 본 문 서방 아내는 낯빛이 파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면서 이 편만 본다. 문 서방도 낯빛이 까맣게 죽었다. "자, 그러면 금년 농사는 온통 드리지요." 문 서방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렸다. 마치 종아리채를 든 초학 훈장의 앞에 엎드린 어린애의 소리처럼……. "부요우(싫어)…… 퉁퉁디…… 모모 모두 우리 가져가두 보미(옥수수) 쓰단(四石), 쌔옌(소금) 얼씨진(20斤), 쑈미(좁쌀) 디 빠단(八石) 디유아(있다)……니디 자리 알라있소! 그거 안줘?" 검붉은 인가의 뺨은 성난 두꺼비 배처럼 불떡불떡 하였다.

"나머지는 내년에 갚지요." 문 서방은 머리를 뚝 떨어뜨렸다. "슴마(무엇)? 창우니 빠피야!" 인가의 억센손이 문 서방을 잡았다. 문 서방은 가만히 받았다. 정신이 아찔하였다. "에구, 장구재……흑흑……장구재 ……제발 살려 줍쇼! 제발 살려 주시면 뼈를 팔아서라두 갚겠읍니다. 장구재 제발!" 문 서방의 아내는 부들부들 떨면서 인가의 팔에 매달렸다. 그의 애걸하는 소리는 벌써 울음에 떨렸다. "내 보미 워디 소금이 낼라! 아니 줬소? 아니 줬소? 어 어째니 줬소?" 인가의 주먹은 문 서방의 귓벽을 울렸다. "아이구!" 문 서방은 땅에 쓰러졌다.

"엑 에구……응응응……에구 장구재! 제발 제제……흑 제발 살려 줍소…….응." 쓰러지는 문 서방을 붙잡던 아내는 인가를 보면서 땅에 엎드려서 손을 비빈다. "이 상느므샛지(상놈의 자식)……니디 도포(아내) 워디(내가) 가져 가!" 하고 인가는 문 서방을 차더니 엎디어서 손이야 발이야 비는 문 서방의 아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니디 울리 집이 가! 오늘리부터 니디 울리 에미네(아내)!" "장구재……제발……아이구 응?……" "에구 엠마." 집안에서 바느질하던 용례가 내달았다. 인가는 문 서방의 아내를 사정없이 끌고 자기 집으로 향한다. "나를 잡아가라! 나를……" 쓰러졌던 문 서방은 인가의 팔을 잡았다. "타마나!" 하는 소리와 함께 인가의 발길에 문 서방은 거꾸러졌다. "아이구 어머니! 왜 울 어머니를 잡아가요? 응응……흑"

용례는 어머니의 팔목을 잡은 중국인의 손을 물어뜯었다. 용례를 본 인가는 문 서방의 아내는 놓고 문 서방의 딸 용례를 잡았다. "이 개새끼야! 이것 놔라……응응 흑……아이구 아버지……엄마!" 억센 장정 인가에게 티끌같이 연연한 처녀는 몸부림을 하면서 발악을 하였다. "용례야! 아이구 우리 용례야!" "에이구 응……너를 이 땅에 데리구 와서 개 같은 놈에게……" 문 서방의 내외는 허둥지둥 달려갔다. 낯빛이 파랗게 질린 흰 옷 입은 사람들은 쭉 나와서 섰건마는 모두 시체같이 서 있을 뿐이었다. 여편네 몇몇은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었다.

의연히 제 걸음을 재촉하는 볕은 서산에 뉘엿뉘엿하였다. 앞강으로 올라오는 찬바람은 스르르 스쳐가는데 석양에 돌아가는 까마귀 울음은 의지 없는 사람의 넋을 호소하는 듯 처량하였다. "에구 용례야! 부모를 못 만나서 네 몸을 망치는구나! 에구 이놈의 돈 이 우리를 죽이는구나!" 문 서방 내외는 그 밤을 인가의 집 울타리 밖에서 새었다. 누구 하나 들여다보지도 않는데 인가의 집에서 내놓은 개들은 두 내외를 잡아먹을 듯이 짖으며 덤벼들었다. 이리하여 용례는 영영 인가의 손에 들어갔다. 며칠 후에 인가는 지금 문 서방이 있는 빼허에 땅날갈이나 있는 것을 문 서방에게 주어서 그리로 이사시켰다.

문 서방은 별별 욕과 애원을 하였으나 나중에 인가는 자기 집 일꾼들을 불러서 억지로 몰아내었다 이리하여 문 서방은 차마 생목숨을 끊기 어려워서 원수가 주는 땅을 파먹게 되었다. 그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그 뒤로 인가는 절대로 용례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어버이 되는 문 서방 내외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용례는 매일 밥도 안 먹고 어머니 아버지만 부르고 운다.' 하는 희미한 소식을 인가의 집에 가까이 드나드는 중국인들에게서 들을 때마다 문 서방은 가슴을 치고 그 아내는 피를 토하였다.

이리하여 문 서방의 아내는 늦은 여름부터 아주 병석에 드러누웠다. 그는 병석에서 매일 용례만 부르고 용례만 보여 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문 서방은 벌써 세 번이나 인가를 찾아가서 말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번까지 가면 네 번째다. 이번은 어떻게 성사가 되겠지? (간도에 있는 중국인들은 조선 여자를 빼앗아가든지 좋게 사가더라도 밖에 내보내지도 않고 그 부모에게까지 흔히 면회를 거절한다. 중국인은 의심이 많아서 그런다고 한다.)



딸을 만나러 갔다가 문전박대 당함

문 서방은 울긋불긋한 채필로 관운장과 장비를 무섭게 그려붙인 집 대문 앞에 섰다. 문밖에서 뼈다귀를 핥던 얼룩개 한 마리가 웡웡 짖으면서 달려들더니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개무리가 우하고 덤벼들었다. 어떤 놈은 으르렁 으르고, 어떤 놈은 뒷다리 사이에 바싹 끼면서 금방 물 듯이 송곳 같은 이빨을 악물었고, 어떤 놈은 대들었다가는 뒷걸음치고 뒷걸음을 쳤다가는 대어들면서 산천이 무너지게 짖고, 어떤 놈은 소리도 없이 코만 실룩실룩하면서 달려들었다. 그 여러 놈들이 문 서방을 가운데 넣고 죽 돌아서서 각각 제재주대로 날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개 때문에 대문 밖에서 기웃거리던 문 서방은 이 사면초가를 어떻게 막으면 좋을지 몰랐다. 이러는 판에 한 마리가 휙 들어와서 문 서방의 바짓가랭이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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