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색
최찬식 지음 | -
추월색(秋月色)
최찬식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이정임: 어린 시절 맺은 정혼을 지키고자,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가출까지 불사한 대담한 처녀. 가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여자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마침내 정혼자 영창을 만나 소원을 성취하게 된다.
김영창: 정임의 정혼자. 아버지 김승지가 초산 군수로 내려가 있을 때 민란을 만나, 부모를 잃고 어떤 영국인의 구원을 받았다. 영국에서 문학을 전공하여 대학을 졸업, 소설을 쓰고 있다. 일본에 왔다가 우연히 정임을 만나 결혼하고, 잃은 줄 알았던 부모까지 만나 행복을 맛본다.
강한영: 대구 부잣집 아들로 방탕한 생활 끝에 일본으로 도망 와 억지 유학을 하고 있는 인물. 정임을 만난 후 연모하는 마음을 품어 청혼을 하고, 거절당하자 폭력으로 정임을 범하려 한다.
이시종: 정임의 아버지. 개혁 세력에 동조하다가 벼슬자리에서 물러난다. 구습을 타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정임의 정혼자 영창이 행방불명되자 정임을 다른 데 결혼시키려 한다.
김승지: 영창의 아버지. 호인(好人)이지만 관리로서는 무능한 인물이다. 초산 군수로 지내던 도중 아전들의 부패를 통제하지 못해 민요(民擾)를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중국 마적단의 일원이 된다. 후일 아들과 기적적인 해후를 한다.
달밤의 상야(上野) 공원을 흔든 비명
밝고 밝은 그 달빛에 동경 상야공원이 일폭 월세계(月世界)를 이루었으니… 밤은 어느 때나 되었는지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다 헤어져 가고 적적한 공원에 월색만 교결한데 그 월색 안고 브릿지 관월교 석난간에 의지하여 오똑 서 있는 사람은 일개 청년 여학생이더라.
막 가을비가 그쳐 티끌 한 점 없는 밤하늘에 밝은 달이 떴다. 가을의 달빛, 추월색(秋月色)이 맑아, 저마다 달구경하러 나서게 되는 밤이다. 동경 상야 공원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가 밤이 깊었는지 어느덧 흩어졌는데, 공원 한편에는 아직도 18~9세쯤 된 여학생 하나가 넋을 놓고 무슨 생각엔가 잠겨 있다. 달빛이 무색하리만치 고운 얼굴이다.
공원에 사람이라곤 여학생 혼자인가 했는데, 난데없이 노래소리가 들리더니 웬 청년 하나가 걸어왔다. 파나마 모자를 눌러쓰고 금테안경을 코에 걸고, 단장을 휘두르며 여송연을 피우는데 반쯤 취한 듯한 걸음걸이다. 청년은 여학생 앞에 멈춰서더니 반갑게 인사를 했다. 왜 보기가 어려웠냐는 둥, 어디가 아팠냐는 둥 하더니 자기 하숙집 주인인 산본(山本) 노파에게 들은 말이 없냐고 물어왔다.
여학생은 들은 체 만 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지만, 청년은 집요하게 여학생에게 말을 걸면서 산본 노파를 통해 결혼을 청했다고 밝혔다. 여학생이 단연히 거절하는데도 추근추근 여학생의 손목을 잡아채고, 입을 맞추려고 달려들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여학생이 기 죽는 기색 없이 준엄하게 청년을 꾸짖자, 청년은 왼손으로 여학생의 가슴을 움켜잡은 채로 오른손으로는 단도를 꺼내 위협했다.
“요년아 너 이렇게 악지 부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상소리까지 서슴지 않았다. 여학생이 끝끝내 “죽고 죽고 또 죽고 만번 죽을지라도 너같이 개 같은 놈에게 실절(失節)은 아니하겠다”고 버티자, 청년은 마침내 여학생의 가슴에 단도를 내리꽂았다.
그때, 어디선가 “이 놈아, 이 놈아” 하면서 쫓아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중산모자 쓰고 프록코트를 입은 청년이다. 여학생을 찔렀던 사람은 깜짝 놀라 달아나고, 뒤에 나타난 청년은 여학생 몸에 박힌 칼을 빼 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이때 공원 순찰을 돌던 순사가 등장했다. 순사는 수상한 소리를 듣고 현장을 찾아 온 셈인데, 도착해 보니 여학생 하나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고 곁에 어떤 사람이 칼을 손에 든 채 서 있다. 살인 현장을 목격했다고 생각한 순사는 청년을 체포했다. 정작 여학생을 찌른 사람은 달아나 버리고, 여학생을 구한 청년이 억울하게 체포된 것이다. 그렇지만 여학생은 의식불명인 채로다.
동경 유학생 정임의 사연
그 여학생은 조선 사람이요 이름은 이정임인데 이시종 ○○의 딸이라… 그 이시종의 옆집에 사는 김승지 ○○는 이시종의 죽마고우일 뿐 아니라 서로 지기하는 친구인데 그 김승지도 역시 늙도록 아들이 없어 슬퍼하다가 정임이 낳던 해에 관옥 같은 남자를 낳으니 위없이 기뻐하여 이름을 영창이라 하고 더할 것 없이 귀하게 기르는 터이라.
서울 살던 정임이 어떻게 동경 유학생이 되어 상야 공원에서 봉변을 당하기에 이르렀는가? 정임은 시종 벼슬을 지낸 이 모(某)의 딸로 서울 교동에서 살고 있었다. 옆집에는 이시종의 절친한 친구 김승지가 살고 있었는데, 그 아들 영창이 마침 정임과 동갑이었으므로 어려서부터 친하게 자라났다. 친형제나 쌍둥이처럼 자라면서 서로 마음이 맞아, 글도 같이 읽고 좋은 물건도 같이 나누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 정임과 영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두 집 아버지들은 어느 날 정혼(定婚)의 언약을 맺기로 약속했다.
정임과 영창이 일곱 살 나던 해의 일이었다. 영창이 이 소식을 듣고 “이애 정임아 나는 너한테로 장가가고 너는 나한테로 시집온다더라”고 일러주자 정임은 장가며 시집이며 하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영창은 나름대로 “장가는 내가 너하고 절하는 것이오 시집은 네가 우리 집에 와서 사는 것이라더라”고 설명해 주고, 이 말을 들은 정임은 자기가 갈 것 없이 영창이 자기 집에 와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혼이니 결혼이니 하는 말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임과 영창은 그저 나날이 더욱 정답게, 천진한 마음으로 지낼 뿐이다.
두 아이가 열 살 나던 해, 영창의 아버지 김승지가 평안북도 초산에 군수로 부임하게 됐다. 이시종은 가족은 두고 혼자만 가라고 권하지만, 김승지는 두 집 살림을 꾸려나갈 정도로 형편이 넉넉치 못하다면서 가족과 함께 갈 것을 결심했다. 기차로 인천까지 가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길이다. 정임은 남대문 정거장까지 영창을 배웅 나와, 자기 사진을 손에 쥐어주고 사진 뒤에는 ‘경성 중부 교동 33번지’라고 주소를 적어주면서 “통호수를 잊어 버리거든 3×3=9만 생각하여라”고 일러줬다.
마침내 영창이 탄 기차가 떠나 버리자, 정임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에 돌아와 밤낮 없이 영창을 기다린다. 계속 편지를 주고받고, 맛있는 것이 생겨도 영창의 생각이요 좋은 것이 있어도 영창에게 보낼 생각뿐이다.
1년쯤 지난 어느 날, 영창에게 보낼 옷을 싸고 있는데 이시종이 들어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초산에서 민요(民擾)가 일어나 김승지 일가가 행방불명되었다는 것이다. 부인도 깜짝 놀라고, 정임은 얼굴빛이 창백해지면서 구슬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이시종이 사정을 자세히 알아보러 초산으로 떠나겠다면서 여장을 꾸리고 있는데, 어디서 “불이야 불이야”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시종 집 굴뚝에서 불이 난 것이다. 순검과 헌병이 달려오고 소방대까지 출동했지만, 불을 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시종 집은 완전히 다 타 버리고, 이웃해 있는 김승지 집까지 타 버렸다. 갑자기 봉변을 당한 이시종 일가는 급히 자하동에 집을 사서 이사를 하고, 그럭저럭 1주일이 지나서야 이시종은 초산을 향해 떠났다. 그렇지만 초산 인근을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김승지 소식은 알 수 없고, 그저 초산 군수가 글만 좋아하고 술만 먹는 사이 간교한 아전들이 제 마음대로 정사(政事)를 처리하다 민요가 일어난 것이라는 풍문을 들었을 뿐이다. 게다가 초산에 가 있는 사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이시종은 관직에서 해임됐다. 갑오개혁이 실패로 돌아가고 수구파들이 권력을 잡던 참이라, 개혁파인 이시종이 공격을 당했던 셈이다.
이후 이시종은 다시 벼슬에 나갈 생각 없이 집에서 정임을 가르치며 소일을 했다. 정임은 「소학」을 배우면서 적적하게 지내는데, 영창 생각은 사라지질 않아 갖고 놀던 장난감을 보아도 영창의 생각이요, 「소학」 열녀(烈女) 편을 읽을 때마다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 정임의 나이 어느새 열다섯이 되었다. 이시종이 회갑을 맞은 때이기도 하여, 회갑연을 벌인 저녁 손님들이 돌아간 후 이시종 내외는 사위 맞을 궁리를 했다.
마침 정임의 외삼촌이 마땅한 혼처가 있다고 하면서 옥동 박과장의 셋째 아들을 추천했다. 지금 17세로 중학교 3학년이요, 문벌이 훌륭하고 가세도 넉넉할 뿐더러 당자 역시 용모와 재주가 모두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시종은 “나는 양반도 취하지 않고 부자도 취하지 않고 다만 당자 하나만 고르네”라면서 당자가 훌륭하다는 추천에 따라 혼사를 결정지었다. 한창 사주단자가 오가고 결혼 준비에 분주한 참인데, 정임은 홀로 “부모가 나를 이왕 영창에게 허락하셨으니 나는 죽어 백골이 되어도 영창의 아내이라”고 다짐했다.
정임은 마침내 부모 앞에 자기 속마음을 토로하고 말았다. 비록 영창이 행방불명되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은 영창과 맺은 정혼 약속을 평생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이시종은 무섭게 화를 내면서 정임을 꾸짖었다. 손찌검 한번 아니하던 딸을 여기저기 함부로 쥐어박고, 상소리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이다. 예단을 받지도 않았고 초례를 지낸 것도 아닌데 ‘열녀 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 운운하다니 방정맞기 이를 데 없다고 했다. 이시종이야 원래 구습을 개혁할 생각이 있어 설령 자기 딸이 정말 과부가 되었을지라도 재혼을 주선할 판인데, 어린 시절에 한 사소한 약속으로 딸의 앞길을 가로막을 생각은 없는 것이다. 정임이 생각에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고 여기지만, 이시종은 딸의 장래를 생각해 결혼 준비를 강행했다. 혼사는 어느덧 하루 앞으로 닥쳐왔다.
건넌방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하던 정임은, 집에서 도망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몰래 열쇠를 빼내 금고에서 돈을 꺼내고, 편지 한 장을 써 놓은 후 남대문 정거장에 나가 동경까지 가는 연락차표를 샀다. 부산까지 기차로 가고, 부산에서 연락선 타고 일본 하관(下關)으로 가고, 거기서 다시 동경까지 기차로 가는 표이다. 정임은 부산까지는 무사히 왔으나 부산에서 부두 가는 길을 찾지 못해 주저주저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지만 모두 분홍적삼에 옥색 모시치마를 입은 정임의 행색을 이상한 듯 쳐다볼 뿐이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 하나가 나서 자기가 부두에 가는 길이라며 길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정임은 별 염려 없이 그 사람을 따라가지만, 실상 그는 색주가 서방으로 기차 타고 내려올 색주가감을 기다리던 차였다. 애매한 정임이 대신 걸려든 것이다.
정임은 이렇듯 불법적인 행위를 밖에 알리면 무슨 조치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악도 쓰고 소리도 질러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뭇매뿐이다. 골방에 갇혀 사흘을 보낸 후에야 문틈에서 부러진 칼을 하나 발견하고 문살을 오려내 밖에 걸린 고리를 벗기고 색주가 집에서 벗어났다. 상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생각해 보니 이 봉변을 당한 것도 의복을 잘못 차린 까닭인 듯하다.
정임은 상점에서 일본 옷을 사서 입고, 머리도 일본식으로 쪽을 찐 후 연락선을 탔다. 동경에 도착해서는 인력거를 타고 손짓발짓으로 여관을 찾아 거처를 정했다. 이어 여관 주인에게 일본말을 배우는데, 워낙 총명한 터이라 일곱 달만에 완벽하게 언어를 깨치고 여자 대학에 입학을 했다. 시험 볼 때마다 백 점이요, 해마다 최우등이라 학교에서도 정임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다.
어느 날인가는 학교에서 여관으로 돌아와 보니 여학생 하나가 ‘여학생 일요강습회’라는 모임을 창립한다는 취지서를 갖고 기다리고 있다. 여학생들이 일요일마다 모여 학문을 강습하자는 모임이였다. 정임은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하고 모임 장소에 갔다.
여학생 수십 명이 모여 창립총회를 열고 임원을 선정하니, 정임이 회장으로, 산본영자라는 일본인이 서기로 뽑혔다. 회장 정임의 주재로 창립총회를 마무리하려는 참인데, 조선 유학생이라는 강한영이 산본영자의 소개를 받아 등장, 금화 1백원을 기부했다. 강한영은 재무 촉탁으로 초빙되어 일요일마다 강습회에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정임을 만나면 지극히 반가와하고 정답게 구는 품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산본영자의 어머니라는 노파가 때때로 정임을 찾아오기 시작해, 여자의 평생 신세는 어떤 남편을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을 한참 늘어놓고는 돌아가곤 했다.
5년 세월이 흘러 정임이 대학을 졸업하는 날이 되었다. 졸업식장에서 정임의 칭찬이 빗발치듯 했지만, 근심 첩첩한 정임은 칭찬마저 별로 기쁘지 않았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여관으로 돌아와 난간에 의지해서 먼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바로 이때 산본 노파가 찾아왔다. 노파는 정임의 재주며 미모를 칭찬하다가, 이윽고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강한영이 자기 집에 하숙을 정하고 3년을 있었으니, 인물 좋고 대학 법률과를 졸업한 데다 집은 대구의 부호요, 외입 한번 하지 않는 얌전한 신사라는 것이다. 영창과의 정혼 약속을 지키겠다고 가출까지 불사한 정임의 귀에 이런 말이 들릴 리 없다.
정임은 어렸을 때부터 달리 마음먹은 데가 있다고 거절하고, 고국에 돌아가 부모를 공양하며 여자 교육에나 힘쓸 계획으로 귀국 행장을 차렸다. 그러나 달 돋아오는 풍경이 하도 좋기에 상야 공원으로 산보를 나섰던 길에 불의의 횡액을 당한 것이다.
다행히 정임은 크게 다친 데는 없었다. 찔린 상처는 별 것 아닌데, 너무 놀라 기절해 있었을 뿐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다. 곧바로 순사가 다가와 전날 공원에서 있었던 일을 물었다. 정임의 이름과 나이, 주소며 일본 온 까닭을 묻고 정임을 찌른 범인의 신원을 묻는다. 정임은 강한영이 범인이라고 답하고, 그저 여자 된 까닭에 몹쓸 경우를 당하였다고 한탄했다. 죽을 욕까지 보고 나니 영창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모두 쏟아냈으면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근심을 잊으려고 펼쳐든 신문에 김영창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읽어보니 자기가 칼에 찔린 사건인 것이 분명한데, 현장에서 김영창이라는 사람이 체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영국 문과대학 졸업생이라고도 나와 있다. 정임은 의아해하면서 기다리다가, 1주일 후 출두 명령을 받고 재판소로 나갔다.
영국에까지 흘러간 영창의 우여곡절
그 지경 당하는 영창의 마음에는 자기는 죽인대도 겁날 것 없으되 무죄한 부모가 참혹히 죽는 것이 비할 데 없이 통애한 생각에 ‘나도 압록강에나 가서 기어코 우리 부모 들어앉아 계신 뒤주라도 붙들고 죽으리라’ 하고… 밤새도록 가다가 어느 곳에 다다르니 위도 하늘 같고 아래도 하늘 같은 물빛이 보이는데 사면은 적적하고 넓고 넓은 만경창파에 총총한 별빛만 반짝반짝하며 오열한 여울소리가 슬피 조상하듯 할 뿐이오.
과연 영국 문과대학 졸업생이라는 이 김영창이 정임이 알고 있는 영창인가? 정임의 약혼자 영창은 과연 어찌된 걸까? 초산에서 민요가 일어나던 날, 영창은 정임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었다. 편지 읽기를 막 시작한 참인데, 밖에서 난데없이 우지끈 뚝딱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 함성도 들렸다. 밖을 내다보니 혹 봉두난발을 하고 혹 수건을 쓴 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들어와, 아전과 사령들을 함부로 때리면서 군수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군수 김승지 부부를 가운데 두고 자기들끼리 공론이 시끄러웠다. 태워 죽이자고도 하고 구덩이에 묻어 죽이자고도 하는 가운데, 학정(虐政)은 간교한 아전 탓이고 군수는 그저 무능했을 따름이니 내쫓기나 하자는 목소리가 우세했다. 민란이 일어났을 때 흔히 하듯이 짚으로 짚둥우리를 만들어 태워서 강에 띄워 버리자는 것이다. 짚둥우리 대신 뒤주를 쓰기로 결정하여, 김승지 부부는 속절없이 뒤주 속에 들어가 강물에 떠내려가게 되었다. 영창은 울면서 뒤주를 좇아 뛰어갔다. 관가를 점령한 무리는 영창의 비단옷을 뺏고 거지아이 옷을 대신 입혔을 뿐, 영창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다.
뒤주를 강에 띄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영창은, 뒤주라도 붙들고 죽겠다는 생각으로 일편단심 압록강을 찾아갔다. 그러나 막상 강가에 도착해 보니 뒤주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영창은 울며불며 통곡하다가 어디까지든 뒤주의 행방을 찾을 결심으로 계속 압록강가를 따라갔다. 그러다 여러 날 굶은 끝에 기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거의 정신을 잃고 있는 참인데, 누군가 영창을 쿡쿡 찌른다. 간신히 눈을 떠보니 도깨비 중에서도 상도깨비 같은 사람이 서 있다. 키는 장승 같고 옷은 시커멓고 코는 주먹만큼 큰데, 눈은 칠십리나 쑥 들어간 것 같다. 영창은 기운이 없어 그 사람을 멀거니 쳐다보기만 하는데, 그는 영창이 눈을 뜨는 걸 보더니 달려들어 먼저 물을 먹이고는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이 사람은 영국 문학박사 스미트, 자선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영창이 쓰러져 있었던 곳이 신의주 나루터인데, 이 사람은 동양 유람 중에 한국을 둘러보다가 영창을 발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