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촌
강경애 지음 | -
지하촌
강경애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칠성: 어려서 걸린 병을 치료 못해 불구가 된 인물. 옆집에 사는 소경 큰년이를 좋아하지만 아무에게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다.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에 울분을 안고 있으며 큰년이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고심한다.
칠성모: 병신인 칠성이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아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혼자 힘으로 생계를 이을 수가 없어 칠성이가 동냥을 하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한다.
큰년이: 앞을 못 보는 착한 소녀. 그렇지만 보통 사람 못지 않게 야무지게 일을 잘한다. 빈곤한 집안 형편으로 읍내 부잣집에 아들을 낳아줄 첩으로 팔려간다
불구자 칠성이의 비극적 현실
바자에 호박 넌출이 엉키었고 그 위에 벌들이 팔팔 날았다. 어떻게 만날까, 그는 무심히 발가락을 쥐고 아픔을 느꼈다. 서늘한 바람이 그의 볼 위에 흘러내렸다. 그는 안타까웠다. 지금 이 발끝이 아픈 것보다도 어딘가 모르게 또 아픈 것을 느낀다.
해는 서산 위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다. 칠성이는 오늘도 동냥자루를 비스듬히 어깨에 메고 비틀비틀 이 동리 앞을 지났다. 밑 뚫어진 밀짚모자를 연신 내려쓰나, 이마는 따갑고 땀방울이 흐르고 먼지가 연기같이 끼어, 그의 코밑이 매워 견딜 수 없다.
동리서 놀던 애들은 칠성이를 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칠성이는 저놈의 자식들 또 만나는구나 하면서 속히 걸었지만 애들은 그의 옷자락을 툭툭 잡아당겼다. 한 놈이 동냥자루를 툭 잡아채니 애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욕을 하면 애들은 더 흥미가 나서 달라붙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만히 서 있었다. 칠성이는 두 팔을 번쩍 들고 부르르 떨면서 머리를 비틀비틀 꼬다가 한 발 지척 내디디곤 했다. 애들은 이 흉내를 내고 마침내는 쇠똥을 얼굴에까지 묻힌다. “이 이놈들.” 겨우 한마디 내놓고 무섭게 눈을 떴다. 아이들은 정말로 무섭게 보았든지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칠성이는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듯 분한 마음이 들었다. 난 왜 병신이 되어 그놈의 새끼들한테까지 놀림을 받나 생각하면서 풀대를 쭉 뽑아보았다.
큰년이는 눈이 멀고도 사는데, 난 그보다야 훨씬 낫지. 보드라운 풀열매를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곱게 감은 튼, 큰년이가 천천히 떠오른다. 곁에 놓인 동냥자루를 보면서 오늘 얻어 온 것 중에서 제일 맛있고 좋은 것을 큰년이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산모퉁이를 돌아 동네 앞까지 왔을 때 칠운이가 아기를 업고 쪼르르 달려온다. 칠성이 곁으로 다가온 칠운이는 동냥자루를 덥석 쥐어 무엇을 얻어 왔는지 알려고 하였다. 칠성이는 얼른 동냥자루를 옮기고 주춤 뒤로 물러서자 칠운이가 침을 꿀떡 넘기며 새까만 손을 내밀었다. 칠성이가 휙 돌아서자 칠운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져서 형을 바라보지만 큰년이 생각에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동네는 어둠에 싸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나 칠성이를 부르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나무를 한 짐 이고 오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왜 이리 늦었느냐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집에 와서 방으로 들어온 칠성이는 동냥자루를 가만히 쏟았다. 성냥갑 따로, 쌀과 과자 부스러기 따로 골라 놓고 문득 큰년이를 생각했다. 손에 땀이 나도록 쥐고 있는 돈을 펴서 한 푼 한 푼 세어보다가 이것으로 큰년이의 옷감를 끊어다 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만 해도 그는 가슴이 뛰었다.
바자에 호박 넌출이 엉키었고 그 위에 벌들이 팔팔 날았다. 어떻게 만날까, 그는 무심히 발가락을 쥐고 아픔을 느꼈다. 서늘한 바람이 그의 볼 위에 흘러내렸다. 그는 안타까웠다. 지금 이 발끝이 아픈 것보다도 어딘가 모르게 또 아픈 것을 느낀다.
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가 샛문 밖에 서 있는 것을 알았다. 문을 잠그고 있었던 칠성이는 왜 문을 걸었냐는 어머니의 말에 미운 생각이 든다. 과자를 달라거나 돈을 달래려고 문을 잡아 흔드는 것 같아서. “난, 난 안 먹어!” 꽥 소리치는 칠성이 말에 어머니의 음성은 가늘어지고 기운이 없어진다. 온 몸이 가려운 듯 하여 벽에다 몸을 비비니 어떤 시원한 기분이 느껴져 부지중에 몸을 다시 비비고 나니 숨이 차고 등가죽이 벗어져 아팠다. 몸을 움직이니 안 아픈 곳이 없다. 손 끝에 가시가 박혔는지 따끔거리고 팔뚝이 쓰라리고 아까 다친 발가락이 새삼 쑤시고 아프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니, 뒤뜰은 햇빛이 가득하였고 집안을 둘러보니 어머니와 칠운이, 갓난아이도 보이지 않는다. 칠성이는 큰년이네 바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늘은 무사히 꼭 만나야 할 터인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무심히 그의 팔을 들여다보았다. 맥없이 늘어진 팔목은 뼈도 살도 없고, 오직 누렇다 못해서 푸른 빛이 도는 가죽만이 있을 뿐이었다.
거미줄에서 빛나는 저 이슬방울들이 참으로 약이 되었으면 하면서, 그는 조심히 거미줄을 잡아당겼다. 팔은 맥을 잃고 자꾸만 떨리어 거미줄을 잡을 수도 없었고 이슬방울이 후두두 떨어진다. 떨어지는 이슬방울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의 손에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에이, 비 빌어먹을 것!”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칠성이는 이렇게 소리치고 하늘을 노려보았다. 한참 이러고 있을 때 자박자박하는 신발 소리에 가만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큰년이다.
무거운 빨래 함지를 든 큰년이는 쿵 내려놓고 일어난다. 눈은 자는 듯 했고 어찌 보면 뜬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칠성이는 숨이 턱턱 막혀서 견딜 수 없다. 칠성이는 손이라도 쑥 내밀어 큰년이 손을 덥석 잡아 보고 싶었으나 몸은 움찔 뒷걸음질치며 온 전신이 풀풀 떨리기만 했다. 큰년이가 바삭바삭 빨래 너는 소리가 귀에 들릴 때 가슴엔 새새끼 같은 것이 팔딱거리고 귀가 우석우석 울고 눈은 캄캄했다. 큰년이 소리가 멀리 들릴 때 몸을 움직여 바라보니 큰년이는 벌써 빈 함지를 들고 부엌문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소리라도 쳐서 큰년이를 멈추게 하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마음속의 사랑 큰년이와 칠성이의 울분
하기야 큰년이가 어디 나면서부터 눈 멀었다니, 위선 나도 네 살 때에 홍역을 하고 난 담에 경풍이라는 병에 걸리어 이런 병신이 되었다는데, 하는 어머니가 항상 외던 말이 생각되었다. “성아, 나 사탕 좀……” 돌아보니, 칠운이가 아기를 업고 부엌문으로 나온다. 그는 도둑질이나 하다가 들킨 것처럼 무안해서 얼른 바자 곁을 떠났다. 칠운이는 저를 다우쳐 형이 저리도 급히 오는 것으로 알고 부엌으로 달아나다가 살짝 돌아보고 또 이리 온다.
아기도 칠성이에게 손을 내민다. 아기의 조 머리엔 종기가 났고 거기에는 언제나 진물이 마를 사이가 없다. 또 가늘고 노란 머리카락이 엉겨 달라붙었고 파리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아기는 가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쥐어 당기고 종기 딱지를 떼어 오물오물 먹고 있다. 칠운이 역시 옷이 없어 잠방이만 입어서 등은 햇볕에 타다 못해 허옇게 꺼풀이 일고 있었다. 동생들의 이런 모습을 본 칠성이는 눈에 불이 확확 일어났다. 눈을 돌려 벽을 바라보자 문득 옷감이 첩첩이 쌓인 읍의 상점이 생각났다.
칠운이는 “난 그럼, 아기 안 보겠다야, 씨.” 하고선 아기를 내려놓고 달아난다. 칠성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파리가 우글거리는 곳을 보니 밥그릇이 눈에 띄었다. 언제나 어머니는 밥바리에 보를 덮어놓고 김매러 가는 것이다. 보를 들어보니 국에는 파리가 둥둥 떠다니고 밥바리에 붙었던 수많은 파리떼는 기겁을 해서 달아났다. 파리를 건져내고 밥을 푹 떠서 입에 넣었다. 밥이란 도토리뿐으로 밥알은 어쩌다가 씹히곤 했다. 씹히는 밥알은 부드럽고 풀기가 있으며 그 맛이 달큼해서 기침을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맛은 잠깐이고 도토리가 씹히면 쓰디쓴 맛으로 변한다. 그래서 도토리를 잘 씹지 않고 우물우물해서 얼른 삼키려고 하면 그만큼 더 넘어가지 않고 쓴 물을 뿌리며 혀끝에 넘나들었다.
아기는 언제 울음을 그쳤는지 오빠를 멀거니 쳐다보다 눈을 밥그릇에 돌리고 또 오빠의 눈치를 살핀다. 칠성이는 듣기 싫은 울음을 그친 것이 대견해 얼른 밥알을 골라 넣어주었다. 아기는 조그만 손으로 밥알을 쥐어 먹다가 성이 차지 않아서 납작 엎드려 밥알을 쫄쫄 핥아먹고는 또 멀거니 오빠를 쳐다본다. 이번에는 도토리를 주었다. 아기는 웬일인지 도토리를 쥐고는 손으로 조모락조모락 만지기만 하고 먹지는 않는다. 칠성이는 도토리를 분간해서 안 먹는 아이가 어쩐지 미운 생각이 들어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는 입을 비죽비죽하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우, 울겠지.”
칠성이는 발길로 아기를 찼다. 칠성이가 재차 차려고 달려드니 아기는 코만 풀찐풀찐하면서 울음소리를 뚝 끊었다. 그러나 그 눈엔 눈물이 샘솟듯 흐른다. 칠성이는 모른 척하고 돌아앉아 밥만 퍼먹다가 캑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기는 언제 도토리를 먹었는지 캑캑 하고 게워 놓는다. 침에 섞여 나온 도토리는 조금도 씹히지 않은 그대로였고 그 빛이 약간 붉은 기를 띤 것을 보아 피가 묻어 나오는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찰나에 칠성이는 입에 문 도토리가 모래알 같아 씹을 수 없고, 쓴 내가 콧구멍 깊이 칵 올려 받쳐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아기를 번쩍 들어 문 밖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뼈만 남은 아기의 볼기를 짝 올려붙이니 얼굴이 새카매지면서 느껴 운다. 문득 갈자리 속의 과자를 생각하고 그것을 남김없이 꺼내다가 아기 앞에 팽개치고 뒤뜰로 나와버렸다.
한참만에 방에 들어오니 방안은 단 가마 속 같다. 아기는 손을 깔고 봉당에 엎드려 잠들었고 게워 놓은 자리엔 쉬파리가 날개 없는 듯이 벌벌 기고 있으며 아기 머리와 빠끔히 벌린 잎에는 잔파리, 왕파리가 아글바글했다. 과자! 놀라 둘러보니 부스러기도 볼 수 없다. 아기가 다 먹을 수 없고 칠운이가 들어왔던 것이라 생각될 때 좀 남기고 줄 것을 후회가 인다. 칠운이를 실컷 때리고 싶었다.
발길로 아기를 차고 칠운이를 찾아 나섰다. 칠운이는 벌써 형을 보고서 달아난다. 칠운이는 조밭으로 들어갔는지 보이도 않는다. 버드나무에 기대서서 그는 큰년이네 집 쪽을 바라보았다. 저절로 그의 눈이 큰년이네 집에 멈추고 또 큰년이를 만나 볼 마음으로 가득하다. 지금 혼자 있을 텐데 가 볼까, 그러다 누가 있으면……있기는 누가 있어, 김 매러 다 갔을 텐데…….
신발 소리에 그는 돌아보았다. 개똥 어머니가 어떤 여인을 무겁게 업고 숨이 차서 온다. 전 같으면 농담을 건넬 터인데 울상을 하고 잠잠히 지나친다. 맘대로라면 얼른 가서 개똥 어머니에게 어찌 된 곡절인지 묻겠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점점 더 비틀거리기만 하고 앞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는 화를 더럭 내고 몸짓만 하다가 팍 거꾸러졌다.
큰년이네 굴뚝에는 연기가 흐른다. 아기 울음소리에 머리를 돌렸다. 봉당에서 피똥을 누느라 병든 고양이 꼴을 한 그런 아기를 낳을 바엔 차라리 진자리에서 눌러 죽여버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동네 여인들은 왜 그런 병신만을 낳을까. 어쩐지 이상하다. 하기야 큰년이가 어디 나면서부터 눈 멀었다니, 위선 나도 네 살 때에 홍역을 하고 난 담에 경풍이라는 병에 걸리어 이런 병신이 되었다는데, 하는 어머니가 항상 외던 말이 생각되었다.
칠성이가 병신이 된 내력은 기구하다. 어머니는 앓고 있는 어린 칠성이를 업고 눈 속에 푹푹 빠지면서 읍의 병원을 갔다는 것이다. 의사는 보지도 못한 채 어머니는 난로도 없는 곳에서 한 식경이나 서 있다가 진찰실 문을 열었더니 의사는 거칠게 눈을 뜨더니 밖에 나가 있으라는 뜻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해가 지도록 기다리는데 나중에 심부름하는 애가 나와서 손가락만한 병을 주고 어서 가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후 칠성이는 몸이 마비되고 말았다.
약만 먹으면 내 병도, 큰년이 병도 나을까. 어쩌다 좋은 약만 쓰면 나도 남처럼 다리 팔을 제대로 놀리고 해서 동냥도 하러 다니지 않고 내 손으로 김도 매고 또 산에서 나무도 쾅쾅 찍어 오고 애새끼들한테서 놀림도 받지 않고……. 그의 가슴은 울적해졌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고 제발 이 손을 조금만이라도 놀려서 어머니가 하는 나무를 내가 할 수 있으면 하였다. 어머니가 나무를 무겁게 이고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 것을 보아도 무심하게 넘겨왔지만 이 순간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큰년이네 집에 찾아온 낯선 손님
“글쎄, 살지도 못할 것이 왜 태어나서 어미만 죽을 경을 치게 하겠니. 이제 가보니 큰년네 아기는 죽었더구나. 잘 되기는 했더라만…… 에그 불쌍하지. 얼마나 밭고랑을 타고 헤매이었는지, 아기 머리는 그냥 흙투성이라더구나. 그게 살면 또 병신이나 되지 뭘 하겠니. 눈에 귀에 흙이 잔뜩 들었더구나, 아이구 죽기를 잘했지, 잘했지!”
아주 캄캄해서야 어머니는 돌아왔다. 어머니는 어디 아프냐고 칠성이에게 물었다.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눕는 칠성이에게 “어디가 아픈 모양인데, 말을 해야지 잡놈 같으니라고” 이 말을 남기고 나갔다. 한참 후 어머니는 푸성귀 국에다 밥을 말아 가지고 와서 아들을 일으켰다.
하루 종일 김매기에 몸이 고달팠겠고 더구나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려기에 몸이 지쳤으련만 또 아기에게 시달림을 받는 어머니가 어딘지 모르게 미웠다. 자지도 않는 아이가 미워서 칠성이가 소리를 꽥 지르자 아이는 젖꼭지를 문 채 울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눈물이 겉으로 흘러서 아이의 타는 목을 축여 주었으면 가슴이 이다지도 쓰리지 않으련만 하였다. “글쎄, 살지도 못할 것이 왜 태어나서 어미만 죽을 경을 치게 하겠니. 이제 가보니 큰년네 아기는 죽었더구나. 잘 되기는 했더라만…… 에그 불쌍하지. 얼마나 밭고랑을 타고 헤매이었는지, 아기 머리는 그냥 흙투성이라더구나. 그게 살면 또 병신이나 되지 뭘 하겠니. 눈에 귀에 흙이 잔뜩 들었더구나, 아이구 죽기를 잘했지, 잘했지!”
어머니는 흥분이 되어 이렇게 중얼거렸고 칠성이도 가슴이 답답해 숨을 크게 쉬었다. 큰년이 어머니는 내일 또 김매러 가겠다고 했다. 칠성이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그 다음 날로 보리마당질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 때 무언가 묵직하게 매어 달리는 듯해서 좀 만져 보았으나 참고 있다가 소변보면서 보니 주먹 같은 살덩이가 축 늘어져 있었다. 겁이 났지만 누구한테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오늘날까지 들어갈 줄 모르고 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그 살덩이 때문에 여름에는 더 덥고 고약스런 악취가 나고 겨울에는 항상 몸살이 오는 듯 오삭오삭 추웠다.
칠성이 어머니는 큰년이네 집에 손님이 왔다 갔다는 말을 했다. 읍에서 돈 푼 꽤나 있는 이가 후손을 이 때까지 못 보아서 첩을 여남은도 넘게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후손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해 큰년이 말을 들은 그 사내가 펄쩍 뛰었는데 하필, 오늘 같은 날 왔다가 그냥 갔다는 말도 덧붙였다. 칠성이는 “눈먼 것을 얻어다 뭐를 해!” 퉁명스레 내쳤다. 칠성이 가슴은 지금 질투의 불길로 꽉 찼고, 누구든지 큰년이만 다친다면 사생 결단하리라 생각하였더니 머리에 열이 오르고 다리에 팔이 떨리었다.
“그 그래, 시 시집 가기로 했나?” 칠성이 말에 어머니는 어쩐지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계집이 그리우려니 하는 불쌍한 마음이 들고 아들의 장래가 걱정도 되었다. 들어가 자라는 어머니 말을 뒷전으로 넘기고 칠성이는 되는 대로 걸었다. 별들이 너무나도 빛났고 별빛이 눈가에 흐르자 눈물이 핑그르르 돌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들어가자는 어머니의 기운 없는 음성이 들렸다. 칠성의 잠겼던 어떤 원한이 일어나려고 하였다. 칠성이의 손을 붙드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힘에 부쳤다.
“날 보고 네 동생들을 봐라.”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며 아들을 달래려고 했다. 이튿날 일부러 늦게 일어난 칠성이는 오늘은 기어코 큰년이를 만나 무슨 말이든지 하리라 다짐했다. 옷을 이 모양을 하고 가, 하고 스스로를 굽어보니 쇠똥 자국이 여기저기 있고, 군데군데 헤졌다. 한편으로 눈이 멀었는데 이게 보이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