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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월야

이태준 지음 | -
사상의 월야

이태준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송빈: 망명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린 나이에 잃고 철원의 친척집에 얹혀 살다 배움을 위해 친척집을 뛰쳐나오는 소년. 원산에서 객주집 사환을 하고 약을 팔며 고학을 한다. 몸을 의탁해 있는 부잣집의 외동딸 은주를 사랑하게 되지만 끝내 좌절하고 학교에서 동맹파업을 주도한 탓에 퇴학을 당해 혼자 일본 유학을 떠난다.

할머니: 송빈의 외할머니. 일찍 부모를 여읜 송빈을 보살피며 그의 능력과 재주에 신뢰를 아끼지 않는다.

은주: 송빈의 오촌인 윤수 아저씨의 먼 친척 뻘인 소녀. 자신의 집에 살고 있는 송빈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신분 차이와 집안의 강압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일 선: 송빈과 같이 휘문고보에 다니는 동급생. 송빈의 연애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물심양면으로 송빈을 돕는다. 송빈과 함께 동맹파업을 주도하다 정학을 받는다.



달빛 아래 항구에서

‘사람은 왜 죽나? 아버지는 정말 죽었을가? 오늘 땅 속에 묻은 그 관이란 것 속에는 정말 아버지가 들어 있었을가? 그럼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나? 산소에 가 제사를 자꾸 지내면 연기처럼…….’

섬 하나 없는 바다 끝에서 고운 촛불 피듯 솟아오른 달은 삽시간에 물위로 떠오르는데, 항상 즐겁게 달구경을 하던 가족들은 오늘 저녁만은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고 울기만 했다. 어린 송빈의 아버지가 죽어 묻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송빈이는 지금 여섯 살,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 곳은 두만강 건너 러시아 땅인 해삼위의 해안에 있는 작은 어촌이다. 이 곳에서는 조선 사람들과 ‘마우재’로 불리는 러시아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이 낯선 땅에서 송빈의 아버지는 식구들과 어린 송빈이를 두고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아버지는 원래 철원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인 용담 이씨네의 아들이었지만, 개화당에 들었다가 역적으로 몰려 가족을 이끌고 이국땅까지 망명을 왔다가 객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 어린 송빈은 외할머니와 어머니, 누나인 송옥이 왜 그토록 슬피 우는지, 아버지의 죽음이 이제 자신에게 어떤 설움으로 돌아올지 도무지 깨닫지를 못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룬 송빈의 가족은 즉시로 아버지의 시신을 꾸려 배를 타고 해삼위를 떠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도가 거칠어지고, 그 와중에 만삭의 어머니는 배 안에서 산기가 동했다. 선실 속에서 기어이 양수가 터지고, 멀미로 시체처럼 누웠던 외할머니는 그래도 어머니는 어머니라 늘어진 몸을 추스려 딸의 해산구원을 했다.

난리 끝에 송빈의 여동생이 될 유복녀를 어머니는 낳았다. 외할머니는 아비도 없이 태어난 핏덩이인 외손녀가 애물단지로 여겨졌다. 오랜 남편의 병 수발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딸 걱정이 앞섰다. 먹지도 못해 건강이 안 좋은 산모가 젖도 없이 유모도 없이 아이를 살리려다가 필시 그 어미에게 골병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아팠지만 갓 태어난 자식을 기를 재간이 없으니 바다에 버리자고 했다. 하지만 산모의 귀에 자식을 바다에 넣어 버리자는 자기 어머니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새 딸의 울음소리와 파도소리만 들릴 뿐. 결국 그녀는 머슴인 정서방에게 애 아버지의 넋에게 ‘순산이라 말하라’고 이르고는 유해조차 편안치 못할 남편과 이름 지어줄 사람도 없이 태어나버린 막내딸에 대한 연민으로 목이 맸다.

악몽 같던 밤이 지나고 동이 트면서부터 비도 개고 바람도 한풀 꺾이기 시작하자, 송빈의 가족은 산모의 건강을 우려해 원래 목적하던 청진에 못 미친 함경북도의 배기미(梨津)란 곳에 배를 댔다. 배기미는 작은 동네여서 몸을 뉘일 만한 객주집도 하나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민심이 순박해서, 마을 사람들은 산모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저희 일처럼 그의 가족이 쉴 곳을 주선해 줬다. 그들의 인정 덕에 송빈 일가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두 집에 방 한 간씩 두 칸을 얻어 지친 몸을 눕혔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와서 첫 항구 배기미에서 결국 삼칠일을 보냈다. 송빈의 어머니도 날마다 미역국을 달게 먹고 건강을 회복했고 딸의 이름을 바다에서 낳았다 해서 해옥(海玉)으로 손수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 속에선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걱정이 꿈에서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왕 조선땅에 돌아온 김이니 일가친척들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를 먼저 고민해 보았지만, 집 한 칸 남겨두지 못하고 부쳐먹을 땅 한 마지기 없으니 과연 누가 반겨줄 것인가를 생각하며 다시금 절망했다. 결국 그녀는 아이들의 기를 꺾지 말고 길러 달라던 남편의 유언을 상기하며, ‘빌어먹을 바엔 차라리 낯모르는 데서나 빌어먹자!’는 결심으로 배기미에 남을 생각을 굳혔다.

송빈의 가족은 배기미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소청거리로 거처를 옮겼다. 배기미는 순전히 어촌이라 고기잡이를 모르고선 살 수 없는 이유도 있지만 소청거리에는 큰길이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여 돌림서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송빈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호구를 위해 음식점을 시작했는데, 이 곳 사람들은 만두나 밀칼국수, 떡국은 해먹을 줄 모르는 지라 그 음식점은 ‘강원도집’으로 불리며 그럭저럭 생계를 붙들 수 있게 해줬다.

형편이 피자 송빈은 서당을 나갈 수 있게 됐지만, 정작 그는 서당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곁을 떠나기도 싫고, 말투가 달라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학업의 성과는 늦어지고, 어머니의 걱정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걱정은 기우였다. 어느 날 송빈은 어른도 감탄할 글을 지어 어머니를 놀래켰다. 그 후로는 서당 공부에도 차차 정을 붙이기 시작 했다.

하지만 이 행복 역시도 오래 가지 못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점점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자리보전하는 날이 잦아지던 어머니는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안 빗고 누워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일어나 단장을 곱게 하고는 송빈을 아버지의 산소로 데려갔다.

동그스름한 바다를 향한 석물 하나 없는 외로운 무덤, 어머니는 아들의 시와 상을 봉분 앞에 가지런히 놓게 하고 절을 시키시었다. 잔디와 모새에 손바닥이 따끔따끔 하였으나 그런 것을 참는 것이 아버님의 혼령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 같았다. 절을 마치고 나니 어머니는 이내 얼굴을 바다 쪽으로 돌리시었다. 속으로 우시는 것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병이 악화되어 경성의 자혜병원에 입원하고, ‘강원도집’의 분주한 일손은 동네의 과년한 처녀들이 거들게 됐다. 송빈의 어머니는 한달 만에 돌아왔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아 눈발이 날릴 무렵에는 아예 자리보전을 하고 말았다. 그러다 그녀는 눈이 장마처럼 쏟아지던 날 기어이 눈을 감고 말았다. 동네 노인들은 송빈 더러 자꾸 곡을 하라고 재촉했지만, 송빈은 아버지의 죽음을 대할 때처럼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다시 계절이 바뀌고, ‘강원도집’의 영업은 여전히 분주했지만, 할머니의 기력은 점점 떨어지고 떡치고 돼지 잡는 일을 언제까지 부탁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이제 아홉 살 먹은 송빈을 장가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신부감은 열 일곱 먹은 서분네 였다. 그러나 송빈의 외할머니는 혼자 결정할 일이 못됨을 알고 송빈의 문중에 편지를 띄웠다. 오래지 않아 철원의 문중에서 일가 한 분이 찾아왔다.



산자락에 울리는 새벽 나팔 소리

할머니는 또 소리꺼정 내어 우신 듯, 목까지 쉬이신 음성이었다. “너이 오촌 한 분이 오셨다. 들어가 절해라.” 들어가니 두 사람이었다. 아랫묵에 앉은이가 젊었는데 그이에게 먼저 절을 시킨다. 웃묵에 앉은 이에게까지 절을 하고 나니까, 아랫묵에 앉은 이가 담뱃대를 놓으며, 손목을 이끌었다. “아이들은 잠깐이구나. 너 나 모르겠니?”

송빈이네를 찾아온 문중 어른은 바로 아버지의 삼촌의 아들, 그러니까 송빈이에게는 당숙이 되는 분이었다. 송빈이는 저를 찾아온 당숙이 반갑기보다, 새빨갛고 알록달록한 그이의 담뱃대에 더 관심이 갔다. 송빈이네는 곧 집과 세간을 팔고 떠날 준비를 했다. 송빈은 서당 선생님께 하직 술을 따라 드리면서도 좋은 배를 타고 고향에 가 신식 학교를 다닐 생각에 마냥 즐겁기만 했다.

달이 밝은 저녁, 송빈 가족이 떠나기 전날, 서당을 그만 둔 송빈은 누나 동무들 축에 끼어 숨바꼭질을 하며 놀고 있었다. 술래가 되어 한참 동무들을 찾느라 정신없는 송빈의 눈에 문득 달덩이같은 얼굴을 한 서분냬가 보였다. 서분네는 아이들 모르게 송빈이를 끌고 낟가리 더미 틈에 끼여 앉아 송빈을 껴안으며 저녁마다 밤하늘의 달을 쳐다 보겠노라며 울먹였다.

다음날, 송빈이는 부모님의 산소에 들러 절을 하고 이별이 아쉬워 흐느끼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한 채 화통에서 허연 김을 내뿜으며 고동소리를 힘차게 내뿜는 배를 타고 배기미를 떠났다. 윤선의 갑판 위에서, 송빈은 멀어져가다 결국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산소를 생각하며 그제야 눈물을 뿌렸다.

배는 7일만에 원산에 닿았고, 그들은 다시 기차를 타고 철원의 오촌댁에 도착했다. 마치 병신을 대하듯 한 동정을 귓전으로 흘리며 송빈은 그 집의 뜰아랫방 까무룩한 등잔불 아래서 눕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아버지의 고향이지만 송빈에게는 낯설기만 한 곳이어서 차라리 소청거리가 집으로 느껴졌다.

송빈은 새벽녘에 “땃 따다다 땃 따다다…….”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어디서 울리는지 모를 나팔 소리였다. 이 소리가 나자마자 안마루 쪽에서 형님뻘 되는 이 집 오촌의 맏아들이 각반을 치고 목총을 들고 뛰쳐나갔다.

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에서 총을 맨 사람들이 백 명도 넘게 솔밭으로 뛰어올라갔다. 송빈은 처음에 웬 난리가 났을까하고 가슴을 졸였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문중에서 세운 ‘사립봉명학교’의 군대훈련이었다. 용담에 있는 이 학교는 사서삼경 외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타넘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문중 어른들이 사랑채 한 간에 두었던 서당을 이십 여 간이나 증축하고 밭을 운동장으로 닦아 만든 신식 학교였다. 수학, 지리, 역사, 체조를 배우고 아침마다 목총으로 군대 훈련도 하는 이 학교를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송빈은, 안협의 ‘모시울’이라는 곳에서 온 또 다른 오촌의 손에 이끌려 할머니, 누이와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됐다. 그러나 모시울에서의 생활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학교는커녕 서당도 없는 이곳에서 아이들의 일과는 새 잡는 것과 나무하는 일이 전부였고, 오촌댁의 딸인 정선이의 구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어느날 걸레와 타구를 부시러 개울로 나온 송빈은 그를 만나러 먼길을 온 할머니를 마났다. 둘은 눈물로 뒤범벅이 됐다. 할머니는 뒤숭숭한 꿈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눈길을 뚫고 송빈을 찾아온 것이었다. 불어터진 송빈의 손에 아버지의 유품인 복숭아 연적을 쥐어준 할머니는, 책도 없고 글방도 없는 모시울에 송빈을 박아두는 것이 못내 가슴아파 오촌에게 송빈을 데려가겠다고 말을 건넸다. 그러나 오촌의 간곡한 만류에 이는 끝내 무산되고, 그나마 다음해 초가을에 오촌이 염병으로 죽자 정선의 구박은 훨씬 심해지고 송빈은 더욱 외로움만 깊어 갔다.

그러던 송빈에게 드디어 구원의 빛이 비쳤다. 다시 모시울을 찾은 할머니가 이번에는 기어코 송빈을 데려가겠노라 우겨서 허락을 맡은 것이었다. 모시울을 나온 송빈은 용담 웃골에 사는 팔이 불편한 오촌댁에 다시금 몸을 의탁했는데, 다행히 이 오촌은 정이 많은 분이라 봄부터 학교에 다니라 권하며 손수 산술과 언문을 가르쳐줬다. 그의 배려 덕분에 송빈은 다음해 봉명학교 이학년에 입학하게 됐다. 남들처럼 새벽 나팔 소리를 들으며 목총을 휘두르게 됐다.

하지만 송빈을 따라다니는 가난의 그림자는 여전했다. 남들이 모두 즐거워하는 추석에도 또래의 친구들은 죄다 추석빔을 뽐내지만 송빈의 옷은 빨지도 못한 넝마였다. 우울한 송빈은 혼자 산길을 오르고, 거기서 연분홍 저고리에 옥색 치마를 입은 예쁜 소녀를 만났지만 그 흥분도 잠깐, 거지인 또아리 영감에게까지 동정을 받는 자신의 신세에 한없이 슬퍼졌다.

저녁, 달맞이를 나온 사람들 중에서 송빈은 낮에 만난 연분홍 저고리의 소녀를 다시 보았다. 그 아이의 이름이 은주이고 먼 친척뻘인 윤수 아저씨의 누님의 딸인데 추석이라 내려온 서울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송빈은 삼 학년 여름 방학 때 은주를 다시 만나게 됐다. 둘은 함께 개울에서 고기를 잡으며 정이 들지만 은주 외할머니의 푸대접에 마음이 상했다.

그후 오래지 않아 누나인 송옥이가 시집을 가게 됐다. 송빈은 서울에서 공부한다는 매부될 사람의 금단추 번쩍이는 교복을 보고 자신도 서울로 공부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송빈이 이런 결심을 하게 되는 데에는, 완고한 학감 선생으로 인해 자신이 다니는 봉명학교가 갈수록 시대에 뒤처지고 있었던 까닭도 있었다. 더불어 송빈은 새로 온 일어교사의 여러 연설을 듣고 이등박문의 ‘사나이 뜻이 서서……’로 시작하는 한시를 읊으며 미래의 꿈을 쌓아갔다.

졸업식 날이 되어 송빈은 우등상을 받고 졸업생 답사도 했지만, 어머니가 없다는 설움을 이날 비로소 한없이 느꼈다. 그후 송빈은 읍내의 간이 농업 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러나 학교생활은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용담과 읍 사이를 걸어 통학하던 송빈은 어느 날 웃골 작은어머니가 북어를 사오라고 주신 돈 육십전을 들고 서울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말았다.



방랑, 원산으로 서울로

나중에 알았지만 그 윤생원은 작년 봄에 송빈이 만큼 큰 아들을 돌림병으로 잃었다는 것이었다. 송빈이는 또, ‘슬픈 일을 당해본 사람이라야 슬픈 사람을 동정할 줄 아는 것이로구나!’ 깨달았다. ‘나도 인제부터 슬픈 사람을 동정하자.’

서울로 향했던 송빈의 발걸음은 원산에서 멎을 수밖에 없었다. 차비가 부족했던 까닭도 있었지만, 과거에 아버지가 감리 벼슬을 했던 고을이 원산이라는 사실이 기억났다. 저도 모를 이끌림과 자신의 부모가 여러 사람에게 빚을 주었다는 소청이 원산에서 멀지 않은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향수도 잠시 송빈은 밥 한 끼 사먹을 돈이 없어 무작정 여인숙에서 공짜밥을 먹다 주인에게 덜미가 잡혔다. 순사에게 끌려가 혼찌검을 당하기 직전, 송빈은 자기를 예쁘게 본 윤생원이란 사람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도움으로 ‘물산 객주’라는 곳에 사환으로 소개됐다. 윤생원의 친절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송빈은 윤생원의 친절을 본받아서 남을 도우며 살고자 마음먹었지만, 사람도 여러가지라 자신이 돕고자 하는 사람들은 번번이 저를 골탕만 먹였다. 세상의 비정함을 알게 된 송빈은 소청으로 가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빚을 기대하느니 ‘물산 객주’에서 힘써 벌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달 밝은 저녁에 드디어 할머니가 송빈을 찾아왔다. 송빈이 소청으로 갔으리라 생각하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그를 찾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곧 송빈과 함께 기거하며 녹두 빈대떡을 팔아 송빈의 공부 밑천에 보태려 애를 썼다. 이 잠깐의 행복한 시간 동안 송빈은 짬짬이 정거장의 대합실에서 소설을 읽으며 문학의 꿈을 키웠다.

어느 날 그런 송빈에게 멀리 윤수 아저씨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왔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며 중국 안동현에 있으니 함께 갈 생각이 있으면 곧 건너오라는 것이었다. 송빈은 할머니를 다시 철원으로 내려보내고 부랴부랴 안동현으로 향했지만, 그를 맞는 것은 윤수 아저씨가 빚 때문에 도망왔다 잡혀갔다는 허망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작정 윤수 아저씨를 기다려 보았지만, 송빈은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먹지도 않을 배를 남 주기 아까워 발로 밟아버리는 야박한 인심이었다.

결국 송빈은 윤수 아저씨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서울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하지만 다시 공짜로 배를 타려다 사공에게 덜미를 잡히게 됐다. 하지만 여기서도 마음씨 좋은 배 주인의 호의로 선창의 허드렛일을 하며 겨울을 나게 됐다. 겨울과 봄을 보내고, 송빈은 그동안 엿장사를 해서 번 돈을 노자로 마련하고 마침내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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