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조명희 지음 | -
낙동강
조명희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박성운: 낙동강 어부의 손자요, 농부의 아들. 농업학교를 마치고 독립운동을 하다 징역살이를 한다. 출옥 후 사회주의자로 변신해 투쟁하다 일제에 연행된 후 위독한 병을 얻어 풀려난다.
로 사: 미천한 신분인 수육업을 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지식인 여성. 박성운을 만나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한다.
식민지 조국의 상징 낙동강
낙동강 칠백 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몸에 뭉쳐서 바다로 향하여 나간다. 강을 따라 바둑판 같은 들이 바다를 향하여 아득하게 열려 있고 그 넓은 들 품안에는 무덤무덤의 마을이 여기저기 안겨 있다. 이 강과 이 들과 거기에 사는 인간 - 강은 길이길이 흘렀으며, 인간도 길이길이 살아왔다. 이 강과 이 인간, 지금 그는 서로 영원히 떨어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인가?
봄마다 봄마다
불어 내리는 낙동강물
구포벌에 이르러
넘쳐넘쳐 흐르네 -
흐르네 - 에 - 헤 - 야.
철렁철렁 넘친 물
들로 벌로 퍼지면
만 목숨 만만 목숨의
젖이 된다네 -
젖이 된다네 - 에 - 헤 - 야
이 벌이 열리고 -
이 강물이 흐를 제
그 시절부터
이 젖 먹고 자라 왔네
자라 왔네 - 에 - 헤 - 야
천 년을 산, 만 년을 산
낙동강! 낙동강!
하늘가에 간들
꿈에나 잊을쏘냐 -
잊힐쏘냐 - 아 - 하 -야
어느 해 이른 봄에 이 땅을 하직하고 빨리 서북간도로 몰려가는 한 떼의 무리가 마지막 이 강을 건널 제, 그네들 틈에 같이 끼여 가는 한 청년이 있어 뱃전을 두드리며 구슬프게 이 노래를 불러서, 가뜩이나 슬퍼하는 이사꾼들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하였다 한다.
과연, 그네는 뭇 강아지 떼같이 이 땅 어머니의 젖꼭지에 매달려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러나 그 젖꼭지는 벌써 자기네 것이 아니기 시작한 지도 오래였다. 그러던 터에 엎친 데 덮친다고 난데없는 이리떼 같은 무리가 닥쳐와서 물어 박지르며 빼앗아 먹게 되었다.
인제는 한 모금의 젖이라도 입으로 들어가기 어렵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이 땅에서 표박하여 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을 우리는 잠깐 생각해보자. 이네의 조상이 처음으로 이 강에 고기를 낚고, 이 벌에 곡식과 열매를 딸 때부터 세지도 못할 긴 세월을 오래오래 두고 그네는 참으로 자유로웠다. 서로서로 노래 부르며, 서로서로 일하였을 것이다. 남쪽 벌도 자기네 것이요, 북쪽 벌도 자기네 것이었다. 동쪽도 자기네 것이요, 서쪽도 자기네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한 바퀴 굴렀다. 놀고먹는 계급이 생기고, 일하여 먹여 주는 계급이 생겼다. 다스리는 계급이 생기고 다스려지는 계급이 생겼다. 그로부터 임자 없던 벌판에 임자가 생기고 주림을 모르던 백성이 굶주려 가기 시작했다. 하늘에 햇빛도 고운 줄을 몰라 가게 되고, 낙동강의 맑은 물도 맑은 줄을 몰라 가게 되었다. 천 년이다 오천 년이다 이 기나긴 세월을 불평의 평화 속에서 아무 소리 없이 내려왔다. 그네는 이 불평을 불평으로 생각지 아니하게까지 되었다. 흐린 날씨를 참으로 맑은 날씨인 줄 알 듯이. 그러나 역사는 또 한 바퀴 구르려고 한다. 소낙비 앞잡이 바람이다. 깃발이 날리었다. 갑오 동학이다. 을미 운동이다. 그 뒤에 이 땅에는 아니, 이 반도에는 한 괴물이 배회한다. 마치 나래 치고 다니는 독수리같이. 그 괴물은 곧 사회주의다. 그것이 지나치는 곳마다 기어가는 암나비 궁둥이에 수 없는 알이 쏟아지는 셈으로 또한 알을 쏟아 놓고 간다. 청년운동, 농민운동, 형평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오천 년을 두고 흘러가는 날씨가 인제는 먹장구름에 싸여 간다. 폭풍우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 그 비 뒤에는 어떠한 날씨가 올 것은 뻔히 알 노릇이다.
병 보석으로 풀려난 박성운의 귀향
이른 겨울의 어두운 밤, 멀리 바다로 통한 낙동강 어귀에는 고기잡이 불이 근심스러이 졸고 있고, 강기슭에는 찬 물결의 울리는 소리가 높아질 때다. 방금 차에서 내린 일행은 배를 기다리느라고 강 언덕 위에 옹기종기 등불에 얼비쳐 모여 섰다. 그 가운데에는 청년회원, 형평사원, 여성동맹원, 소작인조합 사람, 사회운동단체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동저고리 바람에 헌모자 비스듬히 쓰고 보따리 든 촌사람, 검정 두루마기, 흰 두루마기, 구지레한 양복, 혹은 루바시카 입은 사람, 재킷 깃 위에 짧은 머리털이 다팔다팔하는 단발랑(斷髮娘), 혹은 그대로 틀어 얹은 신여성, 인력거 위에 앉은 병인, 그들은 ○○감옥의 미결수로 있다가 병이 위중한 까닭으로 보석 출옥하는 박성운이란 사람을 고대 차에서 받아서 인력거에 실어 가지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과연, 들리는 말과 같이 지독했구먼. 그같이 억대호 같던 사람이 저렇게 될 때야 여간 지독한 형벌을 하였겠니, 에라 이 몹쓸놈들.” 이 정거장에 마중을 나와서야 비로소 병인을 본 듯한 사람의 말이다. “그래 가지고도 죽으면 병이 나서 죽었다 하겠지.” 누가 받는 말이다. “그러면, 와 바로 병원을 갈 일이지, 곧장 이리 온단 말고?” “내사 모른다. 병인 당자가 한사라고 이리 온닥 하니.” “이기 와 이리 배가 더디노?” “아, 인자 저기 뱃머리 돌렸다. 곧 올락 한다.” 한 사람이 저쪽 강기슭을 바라보며 지껄인다. 인력거 위의 병인을 쳐다보며, “늬, 춥지 않나?” “괜찮다. 내 안 춥다.” “아니, 늬 춥거든, 외투 하나 더 주까?” “언제. 아니다 괜찮다.” 병인의 병든 목소리의 대답이다. “보소, 배 좀 빨리 저어 오소.” 강 저편에서 뱃머리를 인제 겨우 돌려서 저어 오는 뱃사공을 보고 소리를 친다.
“예 -” 사이 뜨게 울려오는 소리다. 배를 저어 오다가 다시 멈추고 섰다. “저 뭘하고 있노?” “각중에 담배를 피워 무는 모양이로꾸나. 에라, 이 문둥아.“ 여러 사람의 웃음은 와그르 쏟아졌다. 배는 왔다. 인력거 탄 사람이 먼저다. “보소. 늬 인력거. 사람 탄 채 그대로 배에 오를 수 있는가?” 한 사람이 인력거꾼보고 묻는 말이다. “어찌 그럴 수 있능기오.” “아니다, 내사 내리겠다.” 병인은 인력거에서 내리며 부축되어 배에 올랐다. 일행이 오르자 배는 삐걱삐걱하는 노 젓는 소리와 수라수라 하는 물 젓는 소리를 내며 저쪽 기슭을 바라보고 나아간다. 뱃전에 앉은 병인은 등불빛에 보아도 얼굴이 참혹하게도 야위어졌음을 알 수 있다.
“보소, 배 부리는 양반. 뱃소리나 한마디 하소, 예?” “각중에 이 사람, 소리는 왜 하라꼬?” 옆에 앉은 친구의 말이다. “내 듣고 싶다…… 내 살아서 마지막으로 이 강을 건너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에라 이 백주 짬 없는 소리만 탕탕…….” “아니다, 내 참 듣고 싶다. 보소, 배 부리는 양반, 한마디 아니 하겠소?” “언제, 내사 소리할 줄 아능기오.” “아, 누가 소리해 줄 사람이 없능가?……아, 로사! 참 소리하소, 의……내가 지은 노래하소.” 옆에 앉은 단발랑을 조른다. “노래하라꼬?” “응, ‘봄마다 봄마다’해라, 의.” “봄마다 봄마다 불어 내리는 낙동강물 구포벌에 이르러 넘쳐 넘쳐흐르네 흐르네 - 에 - 헤 - 야. …………”
경상도의 독특한 지방색을 띤 민요(民謠) ‘닐리리 조’에다가 약간 창가 조를 섞은 그 노래는 강개하고도 굳센 맛이 있다. 여성의 음색으로서는 핏기가 과하고 음률로서는 선(線)이 좀 굵다고 할 만한, 그러나 맑은 로사의 육성은 바람에 흔들리는 강물결의 소리를 누르고 밤하늘에 구슬프게 떠돌았다. 하늘의 별들도 무엇을 느낀 듯이 눈을 끔벅끔벅하는 것 같았다. 지금 이 배에 오른 사람들이 서북간도 이사꾼들은 비록 아니었지마는 새삼스러이 가슴이 울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 노래 제삼절을 마칠 때에 박성운은 몹시 히스테리컬하여진 모양으로 핏대를 올려 가지고 합창을 한다. “천년을 산 만년을 산 낙동강! 낙동강! 하늘가에 간들 꿈에나 잊을쏘냐 잊힐쏘냐 - 아 - 하 - 야.“ 노래는 끝났다. 성운은 거진 미친 사람 모양으로 날뛰며, 바른팔 소매를 걷어 들고 강물에다 잠그며, 팔에 물을 적셔 보기도 하며, 손으로 물을 만지기도 하고 끼얹어 보기도 한다. 옆사람이 보기에 딱하던지,
“이 사람, 큰일났구먼. 이 병인이 지금 이 모양에, 팔을 찬물에다 정구고 하니, 어쩌잔 말꼬.” “내사 이래 죽어도 좋다. 늬 너무 걱정 마라.” “늬 미쳤구나…… 백죄……” 그럴 수록에 병인은 더 날뛰며 옆에 앉은 여자에게 고개를 돌려, “로사! 늬 팔 걷어라. 내 팔하고 같이 이 물에 정궈 보자, 의.” 여자의 손을 잡아다가 잡은 채 그대로 물에다 잠그며 물을 저어 본다. “내가 해외에 가서 다섯 해 동안을 떠돌아다니는 동안에도, 강이라는 것이 생각날 때마다 낙동강을 잊어본 적은 없었다…… 낙동강이 생각날 때마다, 내가 이 낙동강의 어부의 손자요, 농부의 아들임을 잊어 본 적도 없었다…… 따라서, 조선이란 것도.”
두 사람의 손이 힘없이 그대로 뱃전 너머 물 위에 축 처져 있을 뿐이다. 그는 다시 눈앞의 수면을 바라다보며 혼잣말로, “그 언제인가 가을에 내가 송화강(松花江)을 건널 적에, 이 낙동강을 생각하고 울은 적도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나간 사람 같고 보면, 비록 만 리 밖을 나가 산다 하더라도 그같이 상심이 될 리 없으련마는…….”
이 말이 떨어지자, 좌중은 호흡조차 은근히 끊어지는 듯이 정숙하였다. 로사는 들었던 고개가 아래로 떨어지며 저편의 손이 얼굴로 올라갔다. 성운의 눈에서도 한 방울의 굵은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동안 물소리만 높았다. 로사는 뱃전에 늘어져 있던 바른손으로 사나이의 언 손을 꼭 잡아당기며, “인제 그만둡시다, 의.” 이 말끝 악센트의 감칠맛이란 것도 경상도 여자의 쓰는 말 가운데에도 가장 귀염성이 드는 말투였다. 그는 그의 손에 묻은 물을 손수건으로 씻어 주며 걷었던 소매를 내려준다. 배는 저쪽 언덕에 가 닿았다. 일행은 배에서 내리자, 먼저 병인을 인력거 위에다 싣고는 건너마을을 향하여 어둠을 뚫고 움직여 나갔다.
그의 말과 같이, 박성운은 과연 낙동강 어부의 손자요,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고기잡이로 일생을 보냈고 그의 아버지는 농사꾼으로 일생을 보냈다. 자기네 무식이 한이 되어 그 아들이나 발전을 시켜 볼 양으로 그리하였던지, 남 하는 시세에 쫓아 그대로 해보느라고 그리하였던지, 남의 논밭을 빌려 농사를 지어 구차한 살림을 하여 나가면서도, 어쨌든 그 아들을 가르쳐 놓았다. 서당으로, 보통학교로, 도립 간이농업학교로…….
그가 농업학교를 마치고 나서, 군청 농업 조수로도 한두 해를 있었다. 그럴 때에 자기 집에서는 자기 아들이 무슨 큰 벼슬이나 한 것같이 여기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아들 자랑하기가 일이었었다. 그러할 것 같으면 동네 사람들은 또한 못내 부러워하며, 자기네 아들들도 하루바삐 어서 가르쳐 내놀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독립운동이 폭발하였다. 그는 단연히 결심하고 다니던 것을 헌신짝같이 집어던지고는,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일 마당에 나서고 보니 그는 열렬한 투사였다. 그때쯤은 누구나 예사지만 그도 또한 일년 반 동안이나 철창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치르고 집이라고 나와보니 그 동안에 자기 모친은 돌아가고, 늙은 아버지는 집도 없게 되어 자기 딸(성운의 자씨)에게 가서 얹혀 있게 되었다. 마침 그 해에도 이곳에서 살 수가 없게 되어 서북간도로 떠나가는 이사꾼이 부쩍 늘 판이다. 그들 부자도 그 이사꾼들 틈에 끼어 멀리 고향을 등지고 떠나가게 되었다.
서간도로 가보니, 거기도 또한 편안히 살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 나라의 관헌의 압박, 횡포는 여간이 아니었다. 그들 부자도 남과 한가지 이리저리 떠돌았다. 떠돌다가 그야말로 이역 타향에서 늙은 아버지조차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뒤에 그는 남북 만주, 노령, 북경, 상해 등지에 돌아다니며, 시종이 일관하게 독립운동에 노력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다섯 해의 세월이 갔다. 모든 운동이 다 침체하고 쇠퇴하여 갈 판이다. 그는 다시 발길을 돌려 고국으로 향했다. 그가 조선으로 들어올 무렵에, 그의 사상상에는 큰 전환이 생겼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때껏 열렬하던 민족주의자가 변하여 사회주의자로 되었다는 말이다.
무쇠 같은 시퍼런 의지로 일궈낸 사회운동
그가 갓 서울로 와서, 일을 하려 하였으나, 그도 뜻과 같이 못 하였다. 그것은 이 땅에 있는 사회운동단체란 것이 일에는 힘을 아니 쓰고, 아무 주의주장에 틀림도 없이, 공연히 파벌을 만들어 가지고, 동지끼리 다투기만 일삼는 판이다. 그는 자기와 뜻이 같은 사람끼리 어울려 양방의 타협운동도 일으켰으나 아무 효과도 없었고, 여론을 일으켜 보기도 하였으나, 파쟁에 눈이 뻘건 사람들의 귀에는 그도 크게 울리지 못하였다. 그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며, “이 파벌이란 시기가 오면 자연히 파멸될 때가 있으리라.” 고 예언같이 말을 하여 던지고서는, 자기 출생지인 경상도로 와서 남조선 일대를 망라하여 사회운동단체를 만들어서 정당한 운동에만 힘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는 자기 고향인 낙동강 하류 연안지방의 한 부분을 떼어 맡아서 일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땅의 사정을 보아, “대중 속으로!” 하고 부르짖었다.
그가 처음으로, 자기 살던 옛마을을 찾아와 볼 때에 그의 심사는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다섯 해 전 떠날 때에는 백여 호 대촌이던 마을이 그 동안에 인가가 엄청나게 줄었다. 그 대신에 예전에는 보지도 못하던 크나큰 함석지붕집이 쓰러져 가는 초가집들을 멸시하고 위압하는 듯이 둥두렷이 가로 길게 놓여 있다. 그것은 묻지 않아도 동척 창고임을 알 수 있다. 예전에 중농이던 사람은 소농으로 떨어지고, 소농이던 사람은 소작농으로 떨어지고, 예전에 소작농이던 많은 사람들은 거의 다 풍비박산하여 나가게 되고 어렸을 때부터 정들었던 동무들도 하나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도회로, 서북간도로, 일본으로, 산지사방 흩어져갔다. 대대로 살아오던 자기네 집터에는 옛날의 흔적이라고는 주춧돌 하나 볼 수 없었고(그 터는 지금 창고 앞마당이 되었으므로) 다만 그 시절에 사립문 앞에 있던 해묵은 느티나무(槐木)만이 지금도 그저 그 넓은 마당 터에 홀로 우뚝 서 있을 뿐이다.
그는 쫓아가서, 어린아이 모양으로 그 나무 밑둥을 껴안고 맴을 돌아보았다 빰을 대어 보았다 하며 좋아서 또는 슬퍼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는 나무를 안은 채 눈을 감았다. 지나간 날의 생각이 실마리 같이 풀려 나갔다. 어렸을 때에 지금 하듯이 껴안고 맴돌기, 여름철에 꼭대기까지 기어올라가 매미 잡다가 대머리 벗겨진 할아버지에게 꾸지람당하던 일, 마을의 젊은이들이 그네를 매고 놀 때엔 자기도 그네를 뛰겠다고 성화 받치던 일, 앞집에 살던 순이란 계집아이와 같이 나무그늘 밑에서 소꿉질하고 놀 제 자기는 신랑이 되고 순이는 새악시가 되어 시집가고 장가가던 흉내를 내던 일, 그러다가 과연 소년 때에 이르러 그 순이란 새악시와 서로 사모하게 되던 일, 그 뒤에 또 그 순이가 팔려서 평양인가 서울로 가게 될 제, 어둔 밤, 남모르게 이 나무 뒤에 숨어서 서로 붙들고 울던 일, 이 모든 일이 다 생각에서 떠돌아 지나가자 그는 흐르륵 느껴지는 숨을 길게 한번 내쉬고는 눈을 딱 떴다.
“내가 이까짓 것을 지금 다 생각할 때가 아니다……에잇……째…….”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는 이때껏 하던 생각을 떨어 없애려는 듯이 휙 발길을 돌려 걸어 나갔다. 그는 원래 정(情)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근래에 그 감정을 의지로 누르려는 노력이 많은 터이다. ‘혁명가는 생무쇠쪽 같은 시퍼런 의지의 마음씨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그의 생활의 지표이다. 그러나 그의 감정은 가끔 의지의 굴레를 벗어나서 날뛸 때가 많았다. 그는 먼저 일할 프로그램을 세웠다. 선전, 조직, 투쟁, 이 세 가지로, 그리하여 그는 먼저 농촌야학을 설치하여 가지고 농민교양에 힘을 썼다. 그네와 감정을 같이할 양으로 벗어 부치고 들이덤비어 그네들 틈에 끼어 생 일도 하고, 농사 일터나, 사랑 구석에 모인 좌석에서나, 야학시간에서나, 기회가 있는 대로 교화에 전력을 썼다. 그 다음에는 소작조합을 만들어 지주, 더구나 대지주인 동척의 횡포와 착취에 대하여 대항운동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