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꺼래이

백신애 지음 | -
꺼래이

백신애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순 이: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 국경을 넘다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겪지만, 극도의 비참함 속에서도 굳건한 의지를 잃지 않는 여성.

할아버지: 하나뿐인 아들의 시신을 찾아 국경을 넘지만, 체포되어 시베리아 벌판의 냉혹한 찬바람에 시달리다 추방 길에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된다.



순이 식구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가고

끌려갔습니다. 순이(順伊)들은 끌려갔습니다. 마치 병든 거러지 떼와도 같이…. 굵은 주먹만큼한 돌맹이를 꼭꼭 짜 박은 울퉁불퉁하고도 딱딱한 들길 위로…. 오랜 감금(監禁)의 생활에 울고 있느라고 세월이 얼마나 갔는지는 몰랐으나 여러 가지를 미루어 생각컨대 아마도 동짓달 그믐께나 되는가 합니다.

고국을 떠날 때는 겹저고리에 홑속옷을 입고 왔었으므로 아직까지 그 때 그 모양대로이니 나날이 길어가는 시베리아의 냉혹한 바람에 몸뚱아리는 얼어 터진 지가 오래이었습니다. 순이의 늙으신 할아버지, 순이의 어머니, 그리고 순이와 그외 젊은 사나이 두 사람, 중국 쿨니 한 사람, 도합 여섯 사람이 끌려가는 일행이었습니다.

뾰족삿게를 쓰고 기다란 빨도를 입은 군인 두 사람이 총 끝에다 날카로운 창을 꿰어 들고 앞뒤로 서서 뚜벅뚜벅 순이들을 몰아갔습니다. 몸뚱아리들은 군데군데 얼어 터져 물이 흐르는데 이따금 뿌리는 눈보라조차 사정없이 휘갈려 몰려가는 신세를 더욱 애끊게 하였습니다. 칼날같이 선뜻하고 고추같이 매운 묵직한 무게있는 바람결이 엷은 옷을 뚫고 마음대로 온몸을 에어내었습니다. 모든 감각을 잊어버리고 마치 로봇같이 어디를 향하여 가는 길인지 죽음의 길인지 삶의 길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얼어빠지려는 혼(魂)만이 가물가물 눈을 뜨고 엎어지며 자빠지며 총대에 휘몰려 쩔름쩔름 걸어갔습니다.

“슈다!” 하면 이편 길로, “뚜다!” 하면 저편 길로, 군인의 총 끝을 따라 희미한 삶을 안고 자꾸자꾸 걸었습니다. 길가에 오고 가는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애련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어린아이들은 제 어머니의 팔에 매어달리며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러나 순이들은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나도 고국 있을 그 어느 때 순사에게 묶여 가는 죄인을 바라보고 무섭고 가엾어서 저렇게 서 있었더니…….’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나기는 했습니다마는 얼굴을 가리며 모양 없이 웅크린 팔짐을 펴고 걷기에는 너무나 꽁꽁 언 몸뚱이였으며 너무나 억울한 그 때였습니다. 그저 순이들은 바람맞이에서 까물거리는 등불을 두 손으로 보호하듯 냉각해진 몸뚱아리 속에서 까물거리는 한 개의 ‘삶’이란 그것만을 단단히 안고 무인광야를 가듯 웅크러질 대로 웅크리고 눈물 콧물 흘려가며 쩔름쩔름 걸어갔습니다.

걷고 걷고 또 걸어 얼마나 걸었는지 순이의 일행은 거리를 떠나 파도치는 바닷가에 닿았습니다. 어떻게 된 셈판인지 순이의 일행은 커다란 기선 위에 끌려 올라갔습니다. 어느 사이에 기선은 육지를 떠나 만경창파 위에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아이구 아빠! 우리 아빠!” “순이 아버지, 아이고 아이고, 순이 아버지.” “순이 애비 어디 있니? 순이 애비….” 순이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서로 목을 얼싸안고 일제히 소리쳐 울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지고 두 귀가 꽉 먹어지며 자꾸자꾸 소리쳐 불렀습니다. “여봅쇼, 울지들 마오. 얼어 죽는 판에 눈물은 왜 흘려요.”

젊은 사나이 두 사람은 순이들의 울음을 막으려고 애썼으나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순이의 할아버지는 그대로 털썩 갑판 위에 주저앉아 작대기 든 손으로 쾅쾅 갑판을 두들기며 곤두박질하였습니다. “여보시오, 우리 아버지가 저기서 죽었어요.” 순이도 발을 구르며 소리쳤습니다. “죽은 아들의 뼈를 찾으러 온 우리를 무슨 죄로 이 모양이란 말이오.” 할아버지는 자기의 하나 아들이 죽어 백골이 되어 누워 있다는 XXX란 곳을 바라보며 곤두박질을 그칠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러나 기선은 사정없이 육지와 멀어지며 차차 만경창파 위에서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한 떼의 물결이 ‘철썩’하며 갑판 위에 내려 덮이며 기선은 나무 잎사귀처럼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일행은 생명의 최후를 느끼며 일제히 바람 의지가 될 만한 곳으로 달려가 한 뭉치가 되었습니다.

그 때 중국 쿨니는 메고 왔던 보퉁이 속에서 이불 한 개를 꺼내어 둘러쓰려 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젊은 사나이 한 사람이 날랜 곰같이 달려들어 그 이불을 뺏어 순이의 할아버지를 둘러 주려고 했습니다. 중국 쿨니는 멍하니 잠깐 섰더니 갑자기 얼굴에 꿈틀꿈틀 경련을 일으키며 누런 이빨을 내어놓고 벙어리 울음같이 시작도 끝도 분별없는 소리로 “으어….” 하고 울었습니다. 그 눈에서 떨어지는 굵다란 눈물 방울인지 내려 덮치는 물결 방울인지 바람결에 물방울 한 개가 순이의 뺨을 때려 붙였습니다. “아이구 우리를 데리고 온 군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구인지 이렇게 말하였으므로 일행은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과연 군인 두 사람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모두들 추우니까 선실 안으로 들어간 게로군. 빌어먹을 자식들.” 하고 젊은 사나이는 혀를 찼습니다. 그 말을 듣자 순이는 벌떡 일어나 “우리도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 테니 선실 안으로 들어갑시다.” “안 됩니다. 들어오라고도 않는데 공연히 들어갔다, 봉변 당하면 어찌하게.” 하고 젊은 사나이는 손을 흔들며 반대했습니다. “봉변은 무슨 오라질 봉변이에요. 이러다가 죽느니보다 낫겠지요. 점잔과 체면을 차릴 때입니까?” 순이는 발악을 하듯 외쳤습니다. “쿨니에게 이불 빼앗을 때는 예사이고 선실 안에 들어가는 것은 부끄럽단 말이오? 나는 죽음을 바라 그대로 있기는 싫어요. 봉변을 주면 힘 자라는 데까지 싸워 보지요.”

순이는 그대로 있자는 젊은이들이 얄밉고 성이 났습니다. 자기들의 무력함을 한탄만 하고 앉았는 무리들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순이는 기어이 혼자 선실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기선은 연해 출렁거리며 이따금 흰 물결이 철썩 내려 덮치곤 하였습니다. 일행의 옷은 물결에 젖고 젖은 옷깃은 얼음이 되어 꼿꼿하게 나뭇가지처럼 되었습니다.

선실로 내려가는 층층대를 순이는 굴러 떨어지는 공과 같이 내려갔습니다. 선실 안에는 훈훈한 공기가 꽉 차 있어 순이는 얼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다가 한 옆에 걸터앉아 있는 군인 두 사람을 찾아내었습니다. 순이는 번개같이 달려가 군인의 어깨를 잡아 젖히며 “우리는 죽으란 말이오?”하고 분노에 떨리는 소리고 물었습니다.군인은 놀란 듯이 잠깐 바라본 후 웃는 얼굴을 지으며 제 나라 말로 “모두 이리 내려오너라.” 라고 말했습니다. 순이는 선실 안의 사람들이 웃는 소리를 귀 밖으로 들으며 다시 갑판 위로 올라갔습니다.

풍랑은 사나울 대로 사나와 잠시라도 훈훈한 공기를 쏘인 순이의 창자를 휘둘러 몸에 중심을 잡고 한 발자국도 내어 디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순이는 일행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아주 얼음덩이가 된 이불자락에 머리를 감추고 모두 죽었는지 살았는지 움직이지도 않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이는 “모두 이리 오시오.” 하고 소리쳤습니다마는 풍랑 소리에 그의 음성은 안타깝게도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순이는 더 소리칠 용기가 없어 일행을 향하여 한 자국 내어놓자, 사나운 바람결이 몹쓸 장난꾼같이 보드라운 순이의 몸뚱이를 갑판 위에 때려 누이고 말았습니다. 다시 일어나려고 발악을 하는 그의 귀에 중국 쿨니의 울음소리가 야공성 같이 울려왔습니다.



수용소에 갇힌 순이와 추방을 기다리는 꺼래이들

이윽한 후 군인 한 사람이 갑판 위로 올라와 본 후 순이를 일으키고 여러 사람도 데리고 선실로 내려왔습니다. 선실 안에 앉았던 사람들은 일행의 모양을 바라보며 모두 찌글찌글 웃었습니다. 병든 문둥 환자의 모양이 그만큼 흉할는지, 얼고 얼어 푸르고 붉은 데다 검게 탄 얼굴로 콧물을 흘리며 엉금엉금 층층대를 내려서는 여섯 사람의 모양을 보고 우습지 않을 리 누가 있겠습니까.

일행의 몸이 녹기 시작하자 시간은 얼마나 지났는지 기선은 어느 조그만 항구에 닿았습니다. 쌓아 둔 짐뭉치에 기대 누운 순이의 할아버지는 뼈끝까지 추움이 사무쳤음인지 한결같이 떨며 끙끙 앓기만 하고 순이의 어머니는 수건을 폭 내려쓰고 팔짱을 낀 채 역시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내리는 모양이구료.” 젊은 사나이가 순이의 곁에 오며 말했습니다. 순이는 그곳에서 또 다시 내릴 생각을 하니 다시 그 차가운 바람결이 연상되어 금방 기절할 것같이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러는 중에 군인이 일어서 순이의 할아버지를 총대로 툭툭 치며 무엇이라고 말했습니다. “안돼요. 여기서 내릴 수는 없오. 이 추운 데 노인을 어떻게….” 순이는 군인의 총대를 밀치며 말했습니다. 군인은 신들신들 웃으며 일어나라는 듯이 발을 굴렀습니다.

“아무래도 죽을 판이면 우리는 또 추운 데로 나갈 수 없소.” 하고 할아버지를 가리워 앉으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군인이 한 번 어깨를 움쭉해 보이며 무엇이라 한참 지껄대니까 선실 안에 가득한 그 나라 사람들은 순이를 바라보며 혹은 웃고 혹은 가엾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고, 서로 고개를 끄떡이며 중얼중얼 했습니다. 순이는 그들의 중얼거리는 말소리에서 “꺼래이, 꺼래이….” 하는 가장 귀익은 단어가 화살같이 두 귀에 꽂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꺼래이’라는 것은 고려(高麗)라는 말이니 조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꺼래이’라는 그 귀익고 그리운 소리가 그 때의 순이들에게는 끝없는 분노를 자아내는 말 같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웃음거리가 되어 있는 것이로구나. 추움에 못 이겨. 또 아무 죄도 없이 죽음의 길인지 삶의 길인지도 모르고 무슨 까닭에 꾸벅꾸벅 그들의 명령대로만 따르겠느냐.”라고 순이는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과 군인들은 순이를 무지몰식한 야만인, 그리고 무력하고도 불쌍한 인간들의 표본으로만 보았음인지 웃고 떠들고 ‘꺼래이…’만을 연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웃으며 무엇이라 중얼거리기만 하던 군인 한 사람이 갑자기 정색을 지으며 총대로 순이의 옆구리를 꾹 찌르고 한 손으로 기다랗게 땋아 내린 머리채를 거머잡고 “쓰카래….” 라고 소리쳤습니다. 이것을 본 순이 어머니는 벌떡 군인의 턱 밑에 솟아 일어서며 지금가지 눌러 두었던 분통이 툭 퉁기듯이 군인의 멱살을 잡으려 했습니다. “여보십시오, 공연히 그러지 마시오. 당신이 여기서 발악을 하면 공연히 우리까지 봉변을 하게 됩니다.”하고 젊은 사나이는 순이의 어머니를 말렸습니다. 군인들이 그 당장에 자기들의 취한 태도를 얼른 생각해 내지 못하여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는 것을 보자 순이는 히스테리 같은 웃음으로 꽉 입안을 깨물며 눈물이 글썽글썽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아버지의 뼈를 찾지는 못했으나 아버지의 영혼은 고국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공연히 남의 땅 사람과 발악을 하면 무엇합니까…….”

순이도 울고 할아버지, 어미니 모두 주루룩 눈물을 흘리며 그 조그마한 항구에 내렸습니다. 일행 여섯 사람은 또 다시 군인을 따라 이윽히 걸어가다가 붉은 기를 꽂은 XXX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 이르니 군인 복색을 한 중국인 같은 사람이 일행을 맞았습니다. 같이 온 군인은 그곳 군인에게 일행을 맡기고 따뜻해 보이는 벽돌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순이들은 이제까지 언어를 통하지 못하여 안타깝던 설운 생각이 일시에 폭발되어 그 중국 사람 같은 군인의 곁에 따라갔습니다.

“여보십시오….” 순이는 그 군인이 행여나 조선 사람이었으면…하는 기대에 숨이 막힐 듯이 군인의 입술을 바라보았습니다. “왜 이러심둥?” 의외에도 그 군인은 조선사람, 즉 꺼래이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일행 중 중국 쿨니를 빼고는 모두 너무나 반갑고 기뻐서 “아이그… 당신 조선 사람이셔요?” 하고는 그 군인의 팔에 매어달리듯 둘러섰습니다. “네! 나는 고려 사람입꼬마.” 그 군인은 이렇게 대답하며 순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순이는 무슨 말을 먼저 해야 좋을지 몰랐으므로 잠깐 묵묵히 조선말 소리의 반가움을 어찌할 줄 몰라 했습니다. “저 젊은이 당신 남편이오?” 하고 군인은 아무 감동도 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순이에게 젊은 사나이 둘을 가리켰습니다. 그제야 순이는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처녀다운 감정을 느끼며 얼어붙은 얼굴에 잠깐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올시다. 이 애는 우리 딸이야요. 이 늙은이는 우리 시아버님이랍니다. 저 젊은이들과 중국 사람은 XXX에서 동행이 된 사람인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순이와 어머니는 지금까지 같이 온 젊은이들보다 자기들 세 사람을 어떻게 구원해 달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다 어데야요?” 순이만 자꾸 바라보는 군인에게 순이는 머뭇거리며 물었습니다.

“영기 말임둥? 영기는 XXXXXX라 합니!” “여보시오!” 곁에서 젊은 사나이가 가로질러 말을 건네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해삼 위에 있는…” 하고 말을 꺼내었으나 그 군인은 들은 체 아니하고 “어서 들어갑소, 영기 서서 말하는 것 아닙니!” 하며 일행을 몰아 마주 보이는 허물어져 가는 흰 벽돌집을 가리켰습니다. “여보시오. 우리를 또 감금한단 말이오? 우리 두 사람 콤뮤니스트입니다. 우리는 감금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두 젊은이는 버티었으나 군인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앞서 걸었습니다.

“여보시오 나으리, 우리 세 사람은 참 억울합니다. 나의 남편이 3년 전에 이 땅에 앉아 농사 터를 얻어 살았는데 지난봄에 병으로 죽었구료. 우리 세 사람은 고국서 이 소식을 듣고 셋이 목숨이 꾾어질지라도 남편의 해골을 찾아가려고 왔는데 XXX에서 그만 붙잡혀 한마디 사정 이야기도 하지 못한 채 몇 달을 갇혀 있다가 또 이렇게 여기까지 끌려왔습니다.”라고 순이 어머니는 군인에게 애걸을 하듯 빌었습니다. “여보시오 나으리, 이 늙은 몸이 죽기 전에 아들의 백골이나마 찾아다 우리 땅에 붇게 해주시오, 단지 하나뿐인 아들이요, 또 뒤이을 자신이라고는 이 딸년 하나뿐이니 이 일을 어찌하오.”순이의 할아버지도 숨이 막히며 애걸하였습니다. “당신 아들이 왜 영기 왔심둥?” 군인은 울며 떠는 노인을 차마 밀치지 못하여 발길을 멈추고 물었습니다.“네…후… 우리도 본래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네… 그런데 잘못되어 있던 토지는 다 남의 손에 가버리고 먹고 살 길은 없고 하여 3년 전에 내 아들이 이 나라에서 돈 없는 사람에게도 토지를 꼭 나누어준다는 말을 듣고 저 혼자 먼저 왔습지요. 우리 세 식구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고 우리를 불러들이기만 바랐더니 지난봄에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 오니….”

노인은 더 말을 계속할 수 없어 그대로 목이 메이고 말았습니다. 군인을 체면으로 고개만 끄덕이더니“영기서 말하면 안되옵니… 어서 들어갑소. 들어가서 말 듣겠으니….” 하고 다시 뚜벅뚜벅 걸어 흰 벽돌집 안에 들어갔습니다. 조금 들어가니 나무로 만든 두터운 문이 있는데, 그 문에는 참새들의 똥이 말라붙어 있어 먼지와 말똥 집수세 등이 지저분하게 깔려 있어 아무리 보아도 마구간이었습니다.집 외양은 흰 벽돌이나 그 집의 말못할 속치장이 일행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털커덕’하고 그 나무문이 열리자 그 안을 한 번 바라본 일행은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하였습니다.그 문안은 넓이 7,8평은 되어 보이는데, 놀라지 마십시오. 그 안에는 하얀 옷 입은 우리 꺼래이들이 ‘방이 터져라’고 차 있었습니다. “아이그머니 조선 사람들…” 순이의 세 식구는 자빠지듯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동무들, 방은 잉것 하나 뿐입꼬마. 비좁드라도 들어가 참소.” 맨 나중까지 들어가지 않고 버티고 섰는 젊은 사나이 한 사람의 등을 밀어 넣고 덜커덕 문을 잠그고 군인은 뚜벅뚜벅 가 버렸습니다.

순이들은 잠깐 정신을 차려 방안을 살펴보니 전날에는 부엌으로 쓰던 곳인지 한쪽 벽에 잇대어 솥 걸던 부뚜막 자리가 있고, 그 곁에 블리키 물통이 놓여 있으며 좁다란 송판을 엉금엉금 걸쳐 공중(公衆) 침대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 공중 침대 위에는 빽빽하게 백의 동포가 빨래상자의 상자 속같이 옹기종기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