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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이상 지음 | -
날개

이상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나 :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이다. 33번지 유곽에서 아내에게 기생하며 살고 있다. 아내가 외출하 면 아내의 방으로 건너와 아내의 속옷이나 화장품 등을 가지고 노는 유아적인 인물이다. 어느 날 돈의 쾌감을 알고 싶어 외출을 시도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겪게 된다.

아내 : 내객을 맞이하여 돈을 버는 매춘부. 나를 사육하듯 대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외출했던 나 가 감기에 걸리자 나에게 한 달 동안이나 아스피린이라 속이며 수면제인 아달린을 먹인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의 ‘에필로그’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봉과 미망인――세상의 하고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 ‘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독이 되오? 굿 빠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인 나는 유쾌하다. 그런 내겐 연애까지도 유쾌하다.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리 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고 나는 그 위에 위트와 역설을 바둑포석처럼 늘어놓는다.

나는 여인과 생활을 설계한다. 여인은 연애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 본 일이 있는 일종의 정신분일자이다. 나는 그런 여인의 반만을 받아들이는 생활을 설계한다. 더욱이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린다. 나는 아마 인생의 모든 것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 된 모양이다.

그대는 때로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해 보기도 하고 자신을 위조해 보기도 하시오.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인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인 듯싶소.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전도된 세계 속에서의 유아적이고 자폐적인 나의 일상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 해지면서 나가 버린다.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윗방이 즉 내 방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볕 드는 방이 아내 방이요 볕 안 드는 방이 내 방이오 하고 아내와 나 둘이 중에 누가 정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평이 없다.

33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곳은 해가 들지 않는다. 그곳 사람들은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침침한 방에서 낮잠을 잔다. 그들이 밤에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조용한 것은 낮뿐이다. 전등불이 켜진 뒤의 그곳은 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저물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그곳에 사는 18가구에는 방마다 백인당이니 길상당이니 하는 문패가 달려 있다. 내 방 미닫이 위 한곁에도 아내의 명함이 붙어 있다.

나는 그곳 사람 누구와도 놀지 않는다.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아내의 낯을 보아 좋지 않을 것만 같아서이다. 그만큼 나는 아내를 소중히 여긴다. 내가 아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이곳 33번지 18가구 가운데서 내 아내가 제일 작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내는 한 떨기 꽃과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아름다운 꽃에 매달려 사는 거북살스러운 존재이다.

나는 어데까지든지 내 방이 마음에 들었다. 내 몸과 마음에 맞는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처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나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나와 아내의 방은 장지로 나뉘어 있다. 그것은 마치 나의 운명의 상징과도 같았다. 아내의 방에는 해가 들지만 나의 방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나는 불평이 없다.

나는 아내가 외출하면 아내의 방으로 건너와서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거나 거울을 가지고 놀거나 아내의 화장품을 가지고 논다. 아내의 방은 늘 화려하였다. 내 방이 벽에 못 한 개 꽂히지 않은 소박한 것인 반대로 아내 방에는 천장 밑으로 쫙 돌려 못이 박히고 못마다 화려한 아내의 치마와 저고리가 걸렸다. 그렇건만 나에게는 옷이 없었다. 아내는 내게 옷을 주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양복 한 벌과 자리옷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해가 지면 나는 나의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낮잠을 잔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제목 하나를 골라서 연구를 한다. 나는 좀 축축한 이불 속에서 참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한잠 자고 일어나면 그것들은 온 데 간 데가 없다. 나는 한 벌 신경과 같은 존재였다.

나는 나의 이불 속의 사색 생활에서도 적극적인 것을 궁리하는 법이 없다. 만일 내가 그런 좀 적극적인 것을 궁리해 내었을 경우에 나는 반드시 아내와 의논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아내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이다. 나는 꾸지람이 무서웠다기보다는 성가셨다. 내가 제법 한 사람의 사회인의 자격으로 일을 해 보는 것도 아내에게 사설 듣는 것도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로 왔다. 생활이 스스로 왔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내객을 맞이하는 아내, 나에게 돈을 주는 아내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그 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또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불 속의 연구로는 알 길이 없었다. 쾌감, 쾌감, 하고 나는 뜻밖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 흥미를 느꼈다.

아내는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 열한 시쯤 하는 아내의 첫 번 세수는 좀 간단하다. 그러나 저녁 일곱 시쯤 하는 두번째 세수는 손이 많이 간다. 아내는 낮에보다 밤에 더 좋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낮에도 외출을 하고 밤에도 외출을 하였다.

아내에게 직업이 있었던가?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내에게는 내객이 많다. 그런 날이면 나는 온종일 내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야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우울해 하였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돈을 준다. 나는 그것을 무엇에 써야 할지 몰라서 늘 머리맡에 던져두고 한 것이 어느 결에 모여서 꽤 많아졌다. 이것을 본 아내가 금고처럼 생긴 벙어리를 사다주었다.

아내에게 내객이 있는 날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아내에게는 왜 늘 돈이 있나를 연구한다. 나는 우선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에 착수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 그것을 알아내지 못한다. 끝내 알아내지 못하려나보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른 일이 없다. 나는 늘 웃방에서 혼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나는 닭이나 강아지처럼 말없이 주는 모이를 넙죽넙죽 받아먹기는 했으나 내심 야속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 나는 안색이 여지없이 창백해 가면서 말라 들어갔다.

아내가 쓰는 돈은 내객이 놓고 가는 것임을 나는 깨닫는다. 그러면 내객은 왜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나, 왜 아내는 그것을 받아야 하나.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아내에게 물어 본 일이 없다. 그것은 대개 귀찮기도 하려니와 나는 한잠 자고 일어나면 이것도 저것도 다 깨끗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내 머리맡에는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놓고 간 은화가 전등불에 흐릿하게 빛나고 있다. 금고형 벙어리 속에는 은화가 얼마나 모였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쳐들어 보지는 않는다. 그저 아무런 의욕도 기원도 없이 그 단추구녕처럼 생긴 틈사구니로 은화를 떨어뜨릴 뿐이다. 아내가 왜 내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도 역시 풀 수 없는 의문이다.

어느날 나는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버렸다. 그때 벙어리 속에는 몇 푼이나 들어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은화들이 꽤 들어있었다. 벙어리도 돈도 사실 아내에게 필요한 것이지 내게는 애초부터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내 아내 방으로 그것을 가져다 둘까 생각했으나 그 즈음에는 아내의 내객이 원체 많아 내가 아내 방에 가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변소에 갖다 버린 것이다.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아내의 꾸지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아무 말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돈은 돈대로 여전히 내 머리맡에 놓고 갔다. 내 머리맡에는 어느덧 은화가 꽤 많이 모였다. 나는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모두 일종의 쾌감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문제에 흥미를 느낀다. 나는 그 쾌감이라는 것의 유무를 체험하고 싶어한다.



거리로 나선 나, 돈으로 아내를 사는 나

나는 지난 밤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 돈 5원을 아내 손에 쥐어 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내객들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아내의 밤 외출을 틈타 밖으로 나온다. 나는 거리에서 잊어버리지 않고 가지고 나온 은화를 지폐로 바꾼다. 오원이나 된다. 나는 거리를 쏘다닌다. 오래간만에 보는 거리는 경이에 가까울 정도로 내 신경을 흥분시키지만 나는 이내 피곤해진다. 늦도록 지향없이 거리를 헤매었다. 그러나 돈은 한푼도 쓰지 않았다. 나는 돈을 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나는 피로를 견디기 어려워 집으로 돌아온다. 내 방으로 가려면 아내의 방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하고 아내에게 내객이 있을까 염려되어 미닫이 앞에서 기침을 해 본다. 미닫이가 열리면서 아내의 얼굴과 그 등뒤에 낯설은 남자의 얼굴이 이쪽을 내다본다. 나는 모른 체 아내의 방을 통과하여 내 방으로 들어온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엇보다도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외출한 것을 후회하였다. 아랫방에서는 아내와 남자가 내 귀에는 들리지 않을 만치 옅은 소리로 소곤거리는 기척이 들려왔다. 이윽고 아내와 내객이 밖으로 나간다. 아내는 오늘과 같이 어떤 사람과 결코 소곤거리는 법이 없었다. 나는 무슨 곡절이 있는 듯싶어 서운했으나 이내 잠이 들었다.

나는 몹시 흔들렸다. 아내가 잠든 나를 흔든 것이다. 아내의 얼굴엔 노기가 떠 있었다. 아내는 곧 자기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불 속에서 아내에게 사죄하였다. 그것은 네 오해라고……. 너무 피곤해서 자정 전인 줄 미처 몰랐노라고. 나는 속으로 그저 머리맡에 있는 돈을 써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외출의 이유를 변명한다.

한 시간 동안을 초조해 하던 나는 장지를 열고 비철비철 아내의 방으로 달려간다. 내게는 거의 의식이 없었다. 나는 아내의 이불 위에 엎어지면서 돈 오 원을 아내 손에 쥐어주었다. 이튿날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아내 방 아내 이불 속에 있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온다. 나는 지난 밤 일을 생각해 본다. 돈 오 원을 아내의 손에 쥐어주고 넘어졌을 때의 쾌감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가 없다. 내객이 돈을 놓고 가는 쾌감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쾌감을 알아낸 듯싶었다.

오늘밤에도 외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나는 오 원을 한꺼번에 아내에게 준 것과 벙어리를 변소에 버린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던 중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이 원을 발견하고는 다시 거리로 나선다. 지향없이 거리를 방황하면서 어서 자정이 지나가 주길 바랐다.경성역 시계가 확실히 자성이 지난 것을 본 뒤에 나는 집을 향했다. 그날은 대문에서 아내와 아내의 남자가 이야기하고 섰는 것을 만났다. 나는 모른 체하고 두 사람 곁을 지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아내도 들어왔다. 나는 아내의 방으로 가서 돈 이 원을 아내 손에 쥐어주고 그 날도 아내의 방에서 잤다. 나는 이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 다시 내 방으로 가서 낮잠을 잤다. 그리고는 다시 아내의 방으로 불려가 아내와 저녁을 먹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나는 어느덧 오늘밤에도 외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오늘은 외출하여도 나중에 올 기쁨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화가 나서 이불을 쓰고 뒹굴고 있었다.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야속하고 슬펐다. 그런 나에게 아내가 돈을 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정다운 목소리로 내 귀에다 오늘일랑 어제보다도 좀 더 늦게 들어와도 좋다고 속삭인다.

나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경성역 대합실 한곁 티룸에 들렀다. 나는 거기서 잘 끓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열한 시가 지나 문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그곳을 나왔다. 어디 가서 자정을 넘길까.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선선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옷이 젖기 시작하더니 속속들이 스며들었다. 비를 맞아가면서도 견딜 수 있는 데까지 시간을 보내려 하였으나 오한이 나고 이가 부딪혔다. 견딜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는 내객이 있었다. 너무 추워 얼떨결에 노크하는 것을 잊고 아내의 방에 들어선 나는 보면 아내가 좀 덜 좋아할 것을 그만 보고 말았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튿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제법 근심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감기가 들었다. 아내는 내 머리를 짚어보며 약을 먹어야지 한다. 그리고는 따듯한 물에 하얀 알약 네 개를 준다. 쌉싸름 한 것이 짐작 같아서는 아스피린인가 싶다. 나는 다시 이불을 쓰고 단번에 그냥 죽은 것처럼 잠이 들어버렸다.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 부부, 비상에 대한 욕망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가 아내가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나는 여러 날을 앓았다. 앓는 동안에도 끊이지 않고 그 알약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 감기도 나았다. 그러나 입맛은 여전히 소태처럼 썼다. 나는 차츰 외출하고 싶은 생각이 났지만 외출하지 말라는 아내의 말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이나 낮이나 잤다.

아마 한 달을 그렇게 지냈나보다. 나는 거울을 좀 보려고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 아내의 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오래간만에 돋보기장난도 하고 거울장난도 했다. 아내의 베개를 내려 베고 편안히 누워보기도 했다. 그러다 이상스러운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최면약 아달린갑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내의 화장대 밑에서 발견하고 그것이 흡사 아스피린처럼 생겼다고 느꼈다. 나는 그것을 열어보았다. 똑 네 개가 비었다. 나는 오늘 아침 네 개의 아스피린을 먹었다.

나는 잤다.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나는 졸려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아내는 내게 아스피린을 주었다. 내가 잠이 든 동안에 이웃에 불이 난 일이 있다. 그때에도 나는 자느라고 몰랐다. 나는 이렇게 잤다. 나는 아스피린으로 알고 그럼 한 달 동안을 두고 아달린을 먹어 온 것이다.

별안간 아뜩하더니 하마터라면 나는 까무러칠 뻔하였다. 나는 그 아달린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산을 찾아 올라갔다. 인간 세상에 아무 것도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산에는 벤치가 있었다. 나는 거기에 앉아 아스피린과 아달린에 대해 연구하다가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가져온 아달린을 먹고 벤치 위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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