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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

채만식 지음 | -
탁류(濁流)

채만식 지음




저 자 채만식(1902~1950)

식민지시대 최고의 사실주의 작가. 풍자 소설가.



‘백퍼센트의 신경질’이라 불렸던 완벽주의자

채만식은 유년시절 평탄하고 유복한 삶을 살았다. 근검한 아버지 덕분에 제법 중농 소리를 듣는 소지주의 아들이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버릇이 있었는데, 평소 음식과 잠자리에 까다로운 결벽증이 그것이다. 남의 집에 가서도 밥을 먹을 때는 숟가락을 닦아 사용하거나 앉아서 얘기하는 도중에 몇 번이고 엉덩이 밑을 쓰다듬어 먼지를 털고 몸매를 추스르곤 했다. 이러한 결벽증은 이후 문학적 결벽성으로까지 이어져 창작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모든 작품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만들고서야 만족했다. 이런 그를 가리켜 안회남은 ‘백퍼센트의 신경질’이라 불렀을 정도다.

어린 시절, 그는 집에 독서당을 만들고 형들과 한문을 배울 만큼 부족함 없는 생활을 했다. 유달리 옛날 이야기를 좋아했고 독서광이었기에 『춘향전』이나 『구운몽』 『수호전』 『삼국지』 등 고전소설은 물론, 『추월색』이나 『장한몽』 같은 신소설들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그가 소설가의 길을 가게 된 것도 이러한 독서체험이 바탕이 된다.

그러나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 부모의 강권으로 은선흥과 결혼하면서, 그의 평탄한 삶은 깨지기 시작했다. 애정이 없는 결혼은 오래지 않아 금이 갔고 평생을 이혼도 하지 않은 채 별거생활을 했다. 인습과 전통을 거역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 사이에서 갈등했던 작가, 그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문학작품에 표출했다.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할 무렵 집안도 동시에 몰락하기 시작했다. 수리조합이 생긴다는 소문을 믿고 헐값에 논과 밭을 넘긴 아버지의 뒤이은 사업과 잇따른 실패, 또 맏형의 방탕한 생활로 가산은 밑바닥나고 만다. 이후 그는 가난으로부터 한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채만식은 1924년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지만, 이듬해 동아일보사로 직장을 옮긴다. 그렇지만 그것도 1년만에 그만두고 1931년 개벽사에 입사할 때까지 실직자 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이때의 생활을 “뻣뻣하고 물기 없는 생활”이었으며, “물질의 안정과 정의 위무(慰撫)에서 버림받은”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는 1936년에 숙명여고를 나온 신여성 김영숙과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부인과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안정된 가정을 꾸미려 했다. 하지만 친구에게 돈을 빌려 광산사업을 했던 형이 실패함으로써 그는 안양과 고향 임피 등으로 잦은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원고료 수입만으로 자신의 가족은 물론 형의 식구들까지 책임져야만 했기 때문에 생활은 가난을 면치 못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건강까지 악화되어 결국 죽음에 이른다.

뛰어난 현실 묘사와 풍자의 작가

채만식의 호는 백릉(白菱) 또는 채옹(采翁), 1902년 전북 옥구군 임피면에서 태어났다. 부족함이 없는 유복한 유년기와 수학기를 보냈지만,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하던 때부터 가난은 수족처럼 붙어다녔다. 중앙고보를 졸업한 그는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 대학 부속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고 축구선수로 활약하는 등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보내지만, 동경 대지진으로 조선인학살이 이루어지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해야만 했다.

귀국 후 그는 1924년 이광수의 추천을 받아 「조선문단」 3호에 「세 길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첫발을 내민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처녀작은 아니다. 이보다 앞서 중편 분량의 『과도기』를 썼는데, 한성도서에 출판을 의뢰했으나 나오지 못하고 1973년 유작으로 발표됐다. 등단 이후 그는 부지런히 창작활동을 했으나, 이 시기의 작품은 대체로 단순한 이야기 수준의 작품에 머문다. 그러나 그 뒤, 『화물자동차』 등의 현실비판 의식이 들어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카프작가들로부터 ‘동반자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함일돈이 「산동이」, 「앙탈」 등을 부르주아적인 작품으로 평가하면서부터 벌어진 현인 이갑기 등과의 논쟁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문학태도를 분명히 한다.

그는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 탁월한 작가적 역량을 발휘한다. 『레디메이드인생』, 『치숙』, 「천하태평춘」을 「조광」에 발표하는 등 일련의 풍자소설을 발표하는 한편,『탁류』와 같은 당시대의 현실을 잘 드러낸 작품들을 써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던 1930년대 후반의 상황하에서 그만큼 현실에 대한 관심과 비판을 보여준 작가는 드물다. 그러나 1938년 불온사상혐의를 받고 일경에 피검되었다가 조선문인협회에 협조한다는 묵계 아래 가까스로 풀려난 후, 비록 생계를 잇기 위한 방편이었다고는 하지만 친일적인 글을 써서 작가로서의 오점을 남겼다. 해방 후 그는 이때의 사실들을 『민족의 죄인』이라는 글을 써서 반성하고 있다.

해방 후에도 그의 창작열은 식지 않았다. 「미스터 방」을 비롯하여, 중편 「도야지」, 「논 이야기」 등의 작품을 통해 그는 당시의 혼란한 사회상을 풍자하고 야유한다. 하지만 그의 평생을 따라다닌 가난은 여전했고, 몸을 돌보지 않는 창작생활로 결국 건강을 크게 해쳐 49세의 젊은 나이로 폐결핵에 걸려 병사한다. 그의 개성이 드러나는 수필을 보면 지독한 가난으로 늘 힘든 생활을 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뛰어난 유머감각의 소유자이며 풍자문학의 대가임을 알 수 있다.


Short Summary

금강의 끝 군산의 미두장(쌀 시장)에서 투기꾼 노릇을 하며 연명하는 정주사 일가가 있다. 그의 딸 초봉이는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열 덕에 여학교를 마치고 아버지의 고향 친구인 박제호의 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약제사의 꿈을 키우며 산다. 그녀는 자기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의사의 꿈을 키우는 마음씨 착한 병원 조수 남승재를 좋아한다. 하지만 초봉의 부모는 돈 욕심에 눈이 멀어, 고객의 돈을 몰래 빼돌리고 난봉질을 일삼는 은행가 고태수에게 속아 초봉을 그에게 시집보낸다. 그러나 결혼하자마자 태수는 예전에 하숙을 하면서 정을 통했던 한참봉댁 마누라를 다시 만나는데,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장형보의 밀고로 한참봉에게 맞아 죽게 된다. 이틈에 형보는 초봉을 욕보인다. 초봉은 서울로 가서 새 삶을 살려고 하지만, 도중에 박제호에게 속아 그의 첩이 된다. 하지만 안정된 생활도 잠시뿐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애를 가진 초봉은…….탁류(濁流)

채만식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초봉이: 정주사의 맏딸. 고태수에게 시집가나 열흘만에 과부가 되고, 박제호의 첩이 되지만 그에게도 버림받는다. 결국 곱사등이 장형보와 살다 그를 죽이는 비극의 주인공.

계봉이: 정주사의 둘째 딸, 언니와는 달리 자기 주장이 강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언니가 좋아했던 남승재와 결혼을 약속한다.

남승재: 병원 조수 노릇을 하며 이웃의 불행을 잘 보살피는 마음씨 착한 인물, 초봉이를 좋아했으나 초봉이가 떠나간 뒤 그의 동생과 사랑한다.

정주사: 정씨 집 무능한 가장. 어려서 한문을 공부하고 신학문까지 배웠으나 군서기 노릇을 하다 밀려나 군산까지 와서 미두꾼에서 다시 ‘하바꾼’으로 전락한다.

장형보: 고태수에게 빌붙어 생활하다 그를 밀고하는 곱사등이. 초봉이를 강제로 욕보이고 결국은 초봉이를 차지하나 결국은 그녀의 손에 최후를 맞는다.

박제호: 군산서 약방을 하다 서울에 올라와 초봉이를 첩으로 삼은 수완 좋은 인물. 형보가 나타나자 핑계김에 초봉이를 버린다.

고태수: 은행원. 고객의 돈을 빼돌리고 술과 여자에 탐닉하다 초봉과 결혼하나 형보의 밀고로 한참봉의 마누라와의 불륜이 들통나 한참봉에게 맞아죽는다.



군산 미두장의 풍경과 그 주변 사람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市街地) 하나가 올라앉았다.

금강의 끝 군산의 미두장(쌀 시장)에서 쌀 투기를 하는 정주사는 젊은 하바꾼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다. 밑천 없이 쌀을 사고 팔다 싸움이 붙은 것이다. 사람들은 말릴 생각은 안하고 구경만 하는데 마침 군산은행 당좌계에 있는 고태수가 싸움을 겨우 말렸다.

정주사는 서천 땅에서 한문과 신학문을 배우고 군서기 노릇을 하다 결국은 밀려나 이곳 군산으로 이주했지만 점점 몰락을 거듭해 미두꾼의 신세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식구는 스물 한 살 먹은 맏딸 초봉이와, 열 일곱 살의 작은 딸 계봉이, 그리고 큰아들과, 여섯 살 막내아들, 그리고 아내 유씨까지 모두 여섯이다. 그의 딸들은 마누라 유씨의 교육열 덕으로 여학교를 다녔으나, 가장인 정주사가 벌어들이는 것은 살림의 십분의 일도 안 된다. 정주사는 ‘입만 가졌지 수족이 없는’ ‘인간 기념물’인 셈이다. 그는 할 일없이 이곳 저곳을 배회하다 탑삭부리 한참봉네 싸전에 들러 주인과 장기를 두고, 한참봉의 젊은 마누라 김씨는 정주사의 맏딸 초봉이의 중매를 서겠다고 나섰다.

정주사의 맏딸 초봉이는 세거리 바른편 귀퉁이에 있는 양약국 제중당을 혼자 지키고 있다. 약국 주인 박제호는 말대가리 같이 길다란 얼굴에 대머리, 입담 좋은 구변을 가진 인물로 초봉이를 무척 예뻐했다. 초봉이가 약국에 나오고부터 약과 그 밖의 물건들이 다 잘 팔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제호는 정주사의 오랜 고향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관계나 저런 타산 말고라도 예쁜 초봉이를 제호는 좋아했다.

초봉이는 집안의 떨어진 양식 걱정을 하며 끼니를 자주 걸렀다. 그때 기생인 행화가 우유를 사러 들어왔다. 초봉이는 기생답지 않게 순박한 행화의 인상이 맘에 들었다. 가게 안에서 제호의 아낙인 윤희가 나와 한바탕 성깔을 부렸다. 십 년 전, 제약회사에 다니던 제호는 여자전문학교에 다니던 윤희와 연애를 해, 본처와 이혼하고 결혼한 사이다. 하지만 곧 사랑이 식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부부다. 그런 판에 초봉이가 점원 겸 사무원으로 약국에 나오고부터 더욱 신경질이 늘었다. 향수를 주문하는 고태수의 전화에 이어 남승재의 전화가 오자 윤희는 자기 남편의 전화인 줄 오해하고 전화통에 대고 신경질을 부렸다. 초봉이는 윤희에게 대들고 싶었지만 앞날이 걱정되어 참고 말았다. 원래 성격이 자신의 속에 있는 말을 시원하게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수그러들고 눈물이 앞서는 탓이다. 심부름꾼 아이의 놀림을 받으면서 말끔한 고태수를 떠올린 초봉은 그를 남승재와 비교했다. 하지만 승재의 듬직한 모습과 맑은 눈을 생각하고는 마음을 안심시켰다. 승재는 자신의 집에 하숙을 하는 병원 조수로, 이미 반 넘게 의사시험을 통과해 곧 제대로 된 의사가 될 참이다.

약국에 돌아온 박제호는 좋은 일이 생겼다며 초봉이를 잡고 수선을 떨었다. 약국을 팔고 제약사를 차려 지배인이 되어 서울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초봉에게 서울로 같이 가자고 슬쩍 꼬드겼다.

물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제호는 삶의 위안이 되는 초봉이를 데려가고 싶었다. 그녀도 승재와 떨어지게 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약제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서울로 가고 싶었다. 한편 한참봉의 시전을 나온 정주사는 김씨의 중매 얘기로 들떴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딸 일이 잘 풀리면 신랑 편에서 혼수비용을 다 대고 자신의 장사밑천까지 보태주는 꿈을 꿔본다.

정주사는 문득 아이들이 밥을 굶고 있으리라 짐작하고 집안에 들어서는데, 밥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져 나왔다. 초봉이가 제호에게 십 원을 미리 받아 밥을 짓는 것이다. 저녁을 먹자 막내둥이 병주가 어리광을 부렸지만 정주사 내외는 초봉이가 서울 가는 문제로 티격태격 싸움이 붙었다. 정주사는 다 큰 딸을 혼인도 시키지 않고 서울 보내는 것이 마땅찮았다. 곧이어 승재가 돌아왔다. 초봉이의 활달한 동생 계봉이는 숭늉 심부름을 시키는 언니를 놀리며 승재를 맞았다.

남승재, 그는 서울 태생으로 다섯 살에 고아가 된 것을 개업의가 거둬 길렀는데 재주가 많고 성실해,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병원 조수 노릇을 하며 의사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 개업의가 죽으면서 군산의 금호의원에 소개를 해 이곳으로 내려오게 됐다. 그는 틈틈이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해주는 마음 착한 청년이다. 또 초봉이를 좋아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를 못했다. 그런 승재에게 계봉이는 스스럼이 없다.



타락한 인간군상과 집안을 위한 초봉의 희생

조금치라도 관계나 관심을 가진 사람은 시장이라 부르고, 속한은 미두장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간판은 ‘군산미곡 취인소’라고 써 붙인 ○○도박장. 집이야 낡은 목재의 이층으로 헙수룩하니 보잘것없어도 이곳이 군산의 심장임에는 갈 데가 없다.

쌀을 사고 파느라 소란한 미두장에 태수의 친구이자 그의 일을 맡아보는 꼽추 형보는 쌀값이 곤두박질하자 은행으로 전화를 걸었다. 태수는 소절수(일종의 자기앞수표) 위조 등으로 고객의 돈을 몰래 빼돌려 술과 여자에 쏟아 붓다가, 그것을 벌충할 요량으로 쌀 전매에 나섰다가 그것마저 거의 다 날린 것이다. 그가 이렇게 빼돌린 금액은 자그만치 삼천 삼백 원이나 됐다. 그는 천여 석 추수를 하는 과부의 외아들에 전문학교를 나왔다고 소문이 났으나,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 가난한 과부의 외아들에다 은행 급사로 출발해 야학으로 상업학교를 나왔을 뿐이다. 그는 이 짓이 곧 탄로날 것 같은 불안 속에서도 “죽어버리면 그만이지”하며 되는 대로 살았다. 다만 초봉이와 결혼해서 단 하루라도 재미를 보는 것이 유일한 꿈이다.

그가 기생 행화의 집으로 가자 형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형보는 기괴한 모습을 한 꼽추다. 형보는 쌀 전매에서 만 원 정도를 더 빼돌려 달아나자고 태수를 꼬드겼지만, 태수는 숨어 지낼 일이 난감해 고개를 저었다. 사실 형보는 어떻게든 돈을 빼돌려 중국으로 도망가 금제품 밀수나, 계집장사, 혹은 술장사를 하는 꿍꿍이를 품고 있다. 하지만 태수가 함께 달아나는 것을 거절하자 언젠가 골탕을 먹이리라 생각했다.

태수는 하숙집인 탑삭부리 한참봉의 마누라와도 정을 통하는 사이였다. 한참봉의 마누라 김씨는 나이보다 젊은 데다 자식이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 보기를 소원했다. 그러던 중 스스럼없이 귀여워하던 고태수와 결국 정분이 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이를 갖지 못한 그녀는 일을 수습할 계획을 하고 있던 차에 초봉이를 좋아하는 태수의 맘을 알게 됐다. 질투가 피어올랐지만 마침내 그녀는 마음을 돌려 먹었다.

한편 승재는 먹곰보네 어린애가 다 죽어간다는 명님이의 기별에 왕진을 갔다. 아이는 곧 죽을 것 같은데, 경장이는 경만 읽고 있다. 아이가 숨을 거두자 아이 엄마는 주사나 침이라도 놔 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나 손을 봐주면 생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많아 승재는 거절을 했다. 그는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 명님이의 병을 고쳐준 이후로, 퇴근 이후에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고쳐주는 ‘자그마한 사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음날 먹곰보가 승재를 찾아와 치료를 해주지 않아 자식을 잃었다고 행패를 부렸다. 계봉이와 명님이, 그의 아버지 양서방, 정주사까지 가세해 그를 쫓은 후에도 계봉은 분을 이기지 못했다.

초봉이의 서울행을 놓고 모녀가 서두르는 사이 정주사는 한참봉 마누라의 중매에 솔깃했다. 미심쩍은 바도 없지 않았으나, 혼수장만은 물론 장사밑천까지 대줄 요량이라는 말에 아주 넘어가고 말았다. 정주사 마누라도 마음이 흡족해서 초봉이를 설득했다. 윤희의 질투로 인해 서울을 가지 못하게 된 초봉은 낙심천만인 데다, 어머니 유씨의 설득 또한 집요했다. 결국 승재에 대한 미련과 미안함을 접어두고, 초봉은 집안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태수에게 시집가기로 마음먹었다. 한참봉네 집에서 태수와 초봉이의 약혼이 있던 날 형보는 초봉이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음흉한 마음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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