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지음 | -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지음
▣
저 자 이효석(1907~1942)
인간, 성, 그리고 자연의 혼연일체를 추구하는 심미주의자
여자는 ‘넥타이’와 같은 것
스마트한 옷에 나비 모양의 장식을 단 구두를 신고, 최신식 중절모에 핼쑥한 얼굴로 우수가 깃든 눈빛으로 거리를 걷는 남자, 이효석. 그는 분명 ‘여자 같은 남자’였다. 그는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뿐 아니라 성미 또한 매우 까다로운 편이며, 매사에 소심하고 섬세했다.
대학을 나온 뒤 효석은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작가들은 거의 모두가 창작물을 무자비하게 검열하는 경무국 직원들과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효석은 당연히 변절자로 혹독한 지탄을 받게 됐다. 민족과 문학을 배반한다는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면서 한 열흘 출근을 하였을 때였다. 퇴근길에 광화문을 내려오는데, 어떤 청년이 효석의 앞을 가로막으며 “너도 개가 다 됐구나.” 하고 욕지거리를 막 퍼부었다. 그 말을 들은 효석은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말았다. 효석은 당장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 뒤 그는 실업자가 되어 몹시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가 효석의 일생에서 가장 큰 시련기였는데, 그때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사먹는 밥집에서 싸구려 밥을 사먹으면서 효석은 10전 짜리 밥을 사먹는 것이 계면쩍어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이런 밥을 먹는 것을 누가 보면 어쩌나’, ‘이런 밥을 먹는 걸 아는 사람이 보면 어쩌나’ 그저 걱정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1931년 효석은 경성 태생의 열여덟 살 처녀 이경원과 결혼했으나 신혼생활에 열중하지 않았다. 수송동에서 큰 방을 두 칸으로 나누어서 한쪽을 거실 겸 침실로 쓰며 시작한 신혼생활이었으나, 평소 여자에 대한 눈이 높아서인지 아내를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효석이 그리는 여인은 ‘연애적 모험성이 있고, 눈자위에 윤택이 흐르고 응시하는 초점이 확실하지 못하여 나를 노리는지 혹은 내 등뒤 죽은 석고조상을 바라보는지 분간할 수 없는 그런 여인, 루날의 뿌랑슈급의 여인’이었다.
그리고 실은 데이트하는 멋쟁이 아가씨도 있었다. 언젠가 최정희 여사가 효석의 집을 방문했을 때, 경원씨는 친정에 가고 없었다. 그런데 어떤 한 여자가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다가 숨어 있던 것을 발견하고 여사가 효석을 비난했더니 그는 “그 여자는 내게 색채 좋은 넥타이 정도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좋은 색채의 넥타이를 매고 거리를 걸으면 사람들이 선망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이 여자와 거리를 함께 걸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린다는 것이다.
깔끔한 외모와 자상하고 섬세한 기질로 깊이 파고드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여자들은 효석에게 많은 매력을 느꼈다. 진일부 우체국장의 딸인 일본여자 마이코는 평양에 있는 이효석에게 끈질기게 연애편지를 보냈고, 1941년 상처한 후, 평양에 있는 ‘방가로’ 다방마담이면서 방송에 출연했던 여인 옥수복은 효석에게 정성을 바쳤다고 한다.
심미주의에 빠진 로맨티스트
이효석은 1907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남안동 681번지에서 진부면장을 지낸 이시후와 강원도 홍천군 기린면 진동리 출신인 강홍경 사이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가산. 필명으로 아세아(亞細兒)란 이름을 쓴 적도 있다. 어려서는 서당에서 공부를 했는데, 신동이라는 소리도 들을 정도로 영민했다.
1920년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일고보에 무시험으로 입학하는데, 4~5학년 무렵부터 체호프에 열중했고, 토마스 만과 맨스필드 및 아일랜드의 심미적 작품, 그리고 사샤 기트리의 희곡집 등을 즐겨 읽었다.
경성제대를 졸업한 효석은 잠시 총독부 경무국에서 문학작품을 검열하는 일을 하지만 그만둔다. 1932년 함북 경성에 간 효석은 영어교사로 취직해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거기서 그는 문학세계의 주된 가닥을 이루게 될 생활 속의 심미주의에 매료돼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라는 지고지순한 경지를 추구한다.
이효석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에서 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행하기에는 너무나 여린 정감과 예리한 감수성을 갖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에는 좌익이념을 작품 속에 부각시키기 위해 고심했지만, 이내 이를 탈피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1936년 효석은 평양 숭실전문학교 문과 교수로 옮겨오게 되는데, 이때에는 이미 좌익이념을 완전히 탈피하고 그 대신 ‘자연과 성’이라고 하는 새로운 경지를 본격적으로 문학에 심는다. 이때 나온 것이 『메밀꽃 필 무렵』인데(발표 당시에는 제목이 『모밀꽃 필 무렵』이었다), 이 작품은 ‘좌익 이데올로기’나 ‘심미주의 경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즉,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와 예술, 그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지 않는 중도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후 효석은 일제말기 전쟁의 위협이 더 절박해질수록 더욱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하면서 각박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서구세계를 지향하는 꿈을 키웠다. 이때 그는 현실도피의 길인 심미주의에 깊이 매료되었고, 거기에 심취한 나머지 그의 작품들을 비도덕성, 병적 감수성 및 변태성의 무분별한 퇴폐주의에 물들게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라를 잃은 이 땅에 태어나서 더러 시류에 순응했으나 대체로는 자기만의 고독한 세계에서 유폐된 채 살던 한 지식인 작가는 1942년 이 세상에서의 여로를 끝내고 서른 다섯의 많지 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그는 고향인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에 매장되었다.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효석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
Short Summary허생원은 나이가 들수록 집도 가족도 없이 허구헌 날 늙은 나귀를 몰고 장에서 장으로 찾아다니는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20여 년이 지나도록 진부, 대화, 봉평장을 빠뜨리지 않고 찾아다니는 것은 젊은 날 봉평에서 잊을 수 없었던 기억 때문이다. 무덥고 달 밝던 그날 밤, 목욕을 하기 위해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에 들어갔다가 뜻밖에 마주친 성서방네 처녀와 살을 섞었던 단 한 번의 추억 때문이었다.
허생원은 동업자인 조선달과 같이 장사를 시작한 지 아직 그리 오래되지 않은 동이라는 청년과 함께 다음 장을 찾아 밤길을 걷고 있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었다. 막 피기 시작한 꽃은 소금을 뿌린 듯 아름다웠고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허생원은 그날도 이런 밤이었음을 생각하고 20년 전의 그 일을 동이에게 이야기하는데…….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허생원: 장돌뱅이. 젊은 시절 봉평의 어느 밤에 이루어진 한 번의 인연을 추억으로만 간직한 채 떠돌이 생활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조선달: 허생원의 동업자. 허생원과는 달리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식구들과 함께 정착하기를 원한다.
동이: 장돌뱅이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총각. 허생원 일행과 동행한다. 어머니를 늘 그리워한다.
봉평장에서의 허생원과 동이의 만남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 놓은 저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치않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을 낚아 보았다. “그만 걷을까?”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 번이나 흐붓하게 사본 일 있었을까. 내일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 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 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과 주단 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꾼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해 놓고 계집의 고함 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충줏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면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도 않을걸. 축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렇다곤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줏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고 낚었나 부지. 착실한 녀석인 줄 알었더니.”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궁리 말구 가보세나그려. 내 한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얼금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 충줏집 문을 들어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버렸다. 상 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꾼인데 꼴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칠 때, 결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 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게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지껄였다―어디서 주워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 좋겠다. 장사란 탐탁하게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당나귀 사건으로 함께하게 된 동이
그러나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도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뜩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도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낳게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세울 것은 무어야, 원. 충줏집은 입술을 쫑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 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면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담력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채서는 어떡할 작정이었누 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얼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레벌떡거리며 황급히 부르러 왔을 때에는, 마시던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없이 허덕이며 충줏집을 뛰어나간 것이었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달음질하려니 거슴츠레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다. “부락스런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는 않는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 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까스러진 목 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꼽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쓸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 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닿아 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리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생원은 짐승 때문에 몸뚱어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 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라 비슬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흘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를 쳤다. “고 녀석 말투가.” “김첨지 당나귀가 가버리니까 왼통 흙을 차고 거품을 흘리면서 미친 소같이 날뛰는 걸. 꼴이 우스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우. 배를 좀 보지.” 아이는 앵돌아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뭇 시선을 막으려고 그는 짐승의 배 앞을 가려 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늙은 주제에 암새를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아이의 웃음소리에 허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코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그만 채찍을 던졌다. 술기도 돌아 몸이 유난스럽게 화끈거렸다.“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 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걸.” 조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했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허생원의 잊을 수 없는 한 여인과의 만남
드팀전 장돌이를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 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 지방도 헤매이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지반 가까웠을 때, 거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 본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여 사흘 동안에 다 털어 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끊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아미타불로 장돌이를 다시 시작할 수밖에는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던 것이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 재산을 모을 염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계집 하나 후려보지는 못하였다. 계집이란 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었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졌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 번의 첫 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 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